오늘 밑줄

대상 a를 설명하는 또 다른 말로 외밀성extimé이 있습니다.
『세미나 16』에서 제시되는 개념입니다. 불어 intime은 내밀한 것,
extérieur는 외부를 뜻하는데요, 이 두 단어가 합쳐진 것입니다.
"바깥에 있는 내밀한 것이 무슨 뜻일까?"라고 어려워하실 수 있는데요, <도식 10>을 보면 한 번에 이해가 됩니다. 대상 a는 상징계안쪽에 있는데요, 완전히 안쪽에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즉 상징계 외부에 실재계가 남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외부에 남아 있는으로 볼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외밀하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라캉은 성경 말씀을 인용하면서 외밀성의 개념을 설명합니다. 즉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에서 네 이웃이 바로 대상 a, 외밀성이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지적은 외밀성과 이웃, 대상 a를 에 - P44

일리언이라고 합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일리언 1>을 보면 페이스허거 facehugger라는 에일리언이 나오는데, 페이스허거는 사람의 얼굴을 뒤덮고 입안으로 포자를 집어넣어서 배 속에서 에일리언이 자라게 하고, 결국 에일리언은 배를 뚫고 나오게 되죠. 배속에 있는 에일리언, 그것은 내 안에 있는 외부죠. 그것이 바로 대상 a입니다. - P45

중세가 오히려 광기나 자유로움이 있었던 시기이고, 르네상스가광기와 무질서를 이성의 질서로 억압한 시기라고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감을 잡으셨을 텐데요, 프랑스 철학은 억압을 정말 싫어합니다.
광기를 받아들일지언정 억압은 정말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런 정신들이 1968년 프랑스 문화혁명에서도 나타납니다. 관료적 시스템, 구태의연한 제도를 타파하고,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고, 자유로운 삶과상상력의 권리를 인정해달라고 외쳤는데요, 이런 것이 다 연결되어있습니다. 르네상스에 대한 해석 하나에서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가 반대로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르네상스가 종교와 무질서에 억압되었던 세상을 인간의 이성으로 해방시켰다고 볼 수도 있고, 프랑스 철학처럼 광기와 무질서가 자유롭게 활동했던 세상을 이성으로 억압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라캉의 관점에서보면 강박증과 르네상스를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 P58

정신병리에서는 상징계가 실재계를 제대로 덮지 못한 상태를 도착증이라고 얘기합니다. 어떤 물체를 보면 성적인 환상을 느끼는 페티시즘이나 관음증, 노출증 같은 것이 여기에 속합니다. 도착증을 비유적으로 말하면 초콜릿 파이의 껍질이 덜 형성된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강박증자들은 실재계가 대부분 상징계에 의해 억압되어 있기 때문에 쾌락을 거의 못 느끼고, 히스테리증자들은 대상 a로부터 잉여 향유에 탐닉하거나, 고통스러운 증상 속에서 일부 쾌락을 느낍니다. 우리가 느끼는 대부분의 쾌락은 대상 a로부터 나오는 쾌락인데, <도식 15>를 보면 히스테리증자들은 대상 a의구멍이 크지 않기 때문에, 즉 상징계가 상당히 많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즐기면서도 제대로 못 즐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도착증자들은 <도식 16>에서처럼 실재계의 많은 부분이 노출되어 있기때문에, 즉 상징계의 지배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특정물체를 통해서나 노출될 때의 응시나 관찰할 때의 시선을 통해서실재계의 쾌락을 그대로 경험합니다. 도착증에서는 법체계, 즉 상징계가 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도착증자가 느끼는 쾌락은 신경증자의 쾌락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훨씬 더 강력합니다. - P64

상상계는 안개나 공기처럼 상징계에 스며들어간다는 설명을 드렸는데요, 상상계는 상징계와 같이 활동을 하면서 상징계의 질서가 우리에게 환상으로 작동하게 합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내용인데요, 즉 상징계는 환상phantasme으로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정신병자는 실재계가 자신을 덮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서 환각hallusination을 사용합니다. 라캉 정신분석에서 환상은 집단적으로공유하는 것이고, 환각은 공유할 수 없는 개인적인 것입니다. 환각은 정신병자들이 사용하는, 실재계에 대한 상상계의 방어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해당하는 신경증자들은 실재계를 방어하기 위해서상징계를 사용합니다. 법과 질서의 체계를 통해서 방어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상징계는 완전히 그 자체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계와 함께 작동하는 것입니다. 마치 정신병자가 환각을 보는것처럼 대다수 인간이 속한 우리 신경증자들도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환상의 선글라스를 낀 상태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기가 라캉 정신분석에서 중요한 지점이고, 환상이라는 개념은 지젝에 이르면 더 중요해집니다. - P75

제가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서 기호나 불어를 될 수 있으면 사용하지 않는데요, 중요한 기호 두 개는 설명을 드리려 합니다. 소외를 뜻하는 기호가 있는데요, 주체를 뜻하는 S에 빗금을 긋고, 라고 씁니다. 주체가 결여를 겪게 된다는 것을 뜻하고, 소외의 단계를 상징하는 기호로 사용합니다. 이것을 빗금 친 주체, 결여가 생긴 주체, 결여된 주체 또는 프로이트의 설명을 따라서 거세된 주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거세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로 언어의 체계에 의해서 쾌락 자체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제거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다음 분리의 단계는 대타자를 뜻하는 Autre의 A를 쓰고, ‘완전한 줄 알았던 대타자도 알고 보니 결여가 있더라‘라는 뜻으로 A에 빗금을 그은 기호 A라고 씁니다. 빗금친 대타자, 결여가 있는 대타자라는 뜻입니다. 이 기호는 욕망의 그래프에도 사용됩니다. - P91

죽음충동은 어떤 것을 이완하고 몰락시키는 충동인데, 프로이트는 죽음충동이 그가 보기에 충동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충동이라고 말합니다. 충동에는 성적 충동, 보고 싶은 충동, 듣고 싶은 충동 같은 여러 충동이 있는데, 그런 모든 충동의 가장 근본에 있는 것이 죽음충동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유기체가 시작되었던 근본의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충동이기 때문입니다. 라캉 관련 책을 읽을 때 죽음충동이 어렵게 생각되는 것은 라캉이 죽음충동을 이름이 주는 어두운 느낌과 달리 매우 긍정적으로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라캉과 현대 프랑스 철학은 그 중심점을 실재계 쪽에 두기 때문에상징계의 질서가 고도로 발달해서 체계가 잡히고 숨쉴 틈도 없이돌아가는 사회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실재계를 더 긍정적으로 봅니다. 그들은 그런 상징계의 체계가 해체되고 일종의 무정부적인 무질서의 상태가 되면서 비로소 새로운 가능성이 생겨난다고 보기 때문에 죽음충동을 긍정적인 입장에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죽음이니까 부정적인 것이라고 오해하실 수 있는데요, 붕괴와 몰락을 통해서 새로운 대상 a 또는 증상이 출현함으로써 시스템의 변화의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죽음충동입니다. 라캉과 그 이후의 미학자들은 죽음충동을 통해서 기존 체계의 균열과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예술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합니다. - P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 고흐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바바라 스톡 지음, 이예원 옮김 / 미메시스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베프가 좋아하던 반 고흐.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아는 고흐의 그림 몇 편을 알 따름이다. 어린 시절에 고흐가 남동생 테오에게 썼다는 편지 모음집을 읽었던 것도 같은데 기억이 흐릿하다. 혼란의 와중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그림을 베프는 제일 좋아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어두워서 나는 별로 썩 좋아하지 않았던 작품. 그 그림으로 [반 고흐]는 끝난다. 어리숙하고 환한 게 좋은 나는 제일 잘 알려진 작품을 좋아한다. 민이 읽기 전에 훑고난 후에 고흐가 문장력이 이토록 섬세했나 싶어 좀 놀랐다.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안에 문장들, 읽고 또 읽는 동안. 알듯 하면서도 일부러라도 모르고 싶은 마음이랄까. 나이들어 마주하는 빈센트 반 고흐는 생각보다 더 다정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다. 그 작품들 안에서도 이미 다 느껴지는 바. 다시 한번 고흐의 작품들을 마주하고 싶은 마음. 붉은 머리 빈센트 반 고흐의 영원성이 더 영원하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D에게 보낸 편지 - 어느 사랑의 역사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학고재 / 200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상 정리하다가 마지막 페이지들 다시 리딩하면서 느낀 건데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왜 바라보지 못하고 모르는 척 한 걸까 그런 질문들 다시 일어났다. 어제 오후에 들은 정희진 팟캐스트_에서 임경선이 말한 것들도 다시 겹쳤고. 갈래는 여러 가지인데 항상 어떤 식으로든지 마무리는 되어야 한다고 여겨서 사람들은 이미 다 아는 척, 너도나도 다 겪어본 것들이잖아, 뭐 굳이 다시...... 이런 말을 한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너희도 다 살아본 건 아니잖아, 이런 식의 대꾸를 하지는 않지만 그 삶이랑 그 삶이 똑같이 겹친다는 보장은 있나, 그런 식으로 삐뚤게 이야기하고 싶을 때는 있다. 어슐러 르귄을 읽어야겠다는 생각 들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존재하는 그러니까 이런 식의 관계도 있다는 걸 나는 민에게 알려주고 싶다. 낭만성이니 로맨스 혹은 민이 담임이 자기 학생에게 대놓고 너는 남미새여서 이러저러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농담처럼 해대는 것도 다 자기 깔때기 안에서 보니까 그런 거 아니겠는가 싶다. 젊은 여자 선생님이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면서 자기 학생에게 남미새라는 말을 농담처럼 아이들 사이에서 한다? 난 이거 문제 있다고 보지만 또 뭐.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모여 담임 욕을 엄청 해댔다고 한다. 너는 남미새야_ 라고 대놓고 말을 하지만 우리들 보기에는 자기가 남미새인데_ 라는 말을 해대며. 그러니까 서로가 서로를 위할 때와 서로가 서로를 까댈 때, 그 경계는 모호하고 흐릿하다. 정뚝떨. 아이들은 모여 담임이 없는 사이 정뚝떨_ 이라며 스승의 날에도 찾아가지는 않을듯_ 이란 말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좋은 선생님이라 여겼는데 농담을 한번 잘못 해서 아이들에게도 학부모들에게도 이런저런 말을 듣고 마네. 이번 에피소드를 통해서도 다시 한번 느꼈지만. 남미새라는 단어 하나가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는 판국이니 농담으로 할 수 있다고 해도 맥락 안에서 남미새가 존재하는 거 아닌가 싶다. 설령 남미새면 어떻고 로맨스에 미친 철없는 중년이면 어떤가 다 그 각자의 프레임 안에서 볼 것들은 다 보고 느낄 것들은 다 느끼고 행할 것들은 다 행하는데 말이다. 꼭 자기 프레임 안에서 모든 것들을 맞춰야 윤리적이라고 보는 거 좀 많이 역겨워. 윤리의 깔때기. 이걸 제일 조심해야 하는데 말이다. 모두가 잘난 사회라 그런지 이 윤리의 깔때기가 다 제각각 높이가 달라, 이걸 작년부터 자주 느낀다. 위산이 역류하고 속이 쓰려서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것들은 이상한 것들을 먹었기 때문이야. 몸은 즉각 반응을 하고 또 낑낑거리면서 요즘 유행한다는 장염에 걸린 건 아닐까 조바심을 내면서 오늘 읽을거리들을 쌓아놓고 바라보다가 또 그런대로 오늘도 보내겠구나 싶다. 앙드레 고르 마지막 몇 페이지 읽고 나니 편지 쓰고 싶다, 다 관두고. 중얼중얼 종알종알.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되는지는 참 순간인 거 같기도 하고. 태도와 말투와 경계. 얼마 전에 오빠들과 이야기 나눈 부분이기도 하고. 앙드레 고르가 자신의 연인이자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스로를 높이기 위해서 당신을 보잘것 없는 인물로 만든 걸 사과하는 구절들 좋았다. 아내의 투병 생활을 위해서 신문사를 관두고 아내의 간병을 하며 쓴 글들이 궁금해지기도 했고. 

 사람이 사람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누군가에게 내가, 내가 누군가에게 서로가 서로를 위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건 크나큰 기쁨이다. 닮고 싶은 연인들. 돌아오면 함께 읽고 싶어 연인을 위해서 한권 더 주문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onnight 2024-01-25 1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미새가 뭔가-_- 하고 검색해봤네요. 깜짝@_@;;; 자기 학생에게 담임이 이런 말을 한다고요? 자칭 페미니스트께서 @_@;; 농담으로라도 꺼낼 수 없는 말일 것 같은데요 뱅글뱅글@_@;;;

수이 2024-01-26 00:15   좋아요 1 | URL
농담으로 친구끼리 할 수 있는 법 하다고 여겨서 선생님은 말씀하셨겠지만 그 말을 들은 학생도 곁에 있던 다른 학생들 모두 상처를 받고 모멸감을 느꼈다는 데서 선생님이 적절치 못한 언행을 보이셨다고 느꼈어요.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는데 거기에서 찰나 모든 것들이 드러날 수도 있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미새라는 단어는 어떻게 생겨난 걸까요? 문득 궁금해지네요.
 






아이리스 머독과 메리 워녹이 있어서 읽으려고 찜해뒀다가 아직 읽지 못한 책, 처음 읽는 여성 철학사가 다른 출판사에서 질문하는 여자_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다. 원제를 몰랐다면 다른 책인가 했을 텐데 목차가 똑같아서 알게 됨. 어제 포스팅한 히파르키아, 아 히파르키아가 책 제목은 아님. 책 제목은 뭐지 까먹었다. 아 철학자 강아지 결혼_이다. 제목만 보고서는 아 내 이야기랑 겹치는 건가 했다가 책 내용 훑고 알게 된 거임, 히파르키아 이야기라는 건. 그러고보니 애인이 한 이야기가 떠올라서. 만일에 당신이 책 읽는 여자가 아니었다면 관심도 없었을 거야_라고 해서 책 읽는 여자들은 흔하고 흔한데 어째서 그런 이유로 나를 택한 건가 물었더니 당신 같이 읽는 여자들은 별로 없어_라고 해서 당신 전 여친들은 무슨 책을 읽었는데? 물어보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유행하는 베스트셀러 류의 에세이와 소설류를 많이 읽으셨더라. 지적으로 오만한 거야, 당신이. 했더니 가부장제의 산물이라 이거지? 해서 그렇지, 이 가부장제에 찌든 인간아. 했더니 하지만 내가 만난 여자들 중에 페미니스트는 당신이 처음이야, 라고 해서 그 소리를 들을 때는 나도 모르게 움찔하긴 했다. 친구들아, 내가 페미니스트가 맞니? 라고 물어보고 싶어져서. 하지만 나는 전문으로 읽는 이도 아닌걸. 당신이 같이 읽자고 했으면 됐잖아, 전 여친분들에게. 말했더니 읽자고 했지. 그랬는데? 왜 넌 그렇게 어려운 것들을 읽니? 대체, 라고 말씀하셨지. 그럼 독서모임 같은 곳에서 책 읽는 여자를 찾지 그랬어? 물어보았더니 당신은 그렇게 해서 연애한 적 있어? 물어봐서 무슨 남자를 만나겠다고 독서모임을 해, 그건 좀 아닌 거 같아, 라고 했더니 같은 생각_ 이라고 말해서 으흠 했다. 


며칠 전에 친정 모임(이것 봐, 친정이래, 내게는 이제 시댁도 없는데)에서 동생 하나가 언니 책 읽는 남자라면 지긋지긋하지 않아? 물어봐서 책 읽는 남자가 왜 지긋지긋하니? 물어보니 형부 아니 엑스 형부도 책으로 만났잖아. 해서 응 그렇지, 대꾸하고 동생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노라니 책으로 만난 악연인데 또 책 읽는 남자를 만나고 싶어? 물어봐서 언니는 다 책으로 만났는걸. 첫사랑 빼고. 언니 친구들도 다 책 읽는 사람들인데_ 대꾸하니 하긴 언니랑 책이랑 떼고 생각한다는 건 좀 아니긴 아니네, 했다. 동생아, 너는 왜 책을 안 읽니? 했다가 언니처럼 팔자 편한 사람들이 읽지. 난 장사하느라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니, 하는 쌀쌀맞은 대꾸를 듣고는 어쩐지 미안해지네, 하니까 아니야, 난 우리 언니가 행복한 게 좋아. 하고 꽈악 안아줘서 좋았다. 언니 같은 내 둘째 동생. 맞다, 그러고보니 첫사랑은 지독히 책을 읽지 않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소파에서 내가 읽고 있는 책을 소리내어 읽어주면 한참동안 눈을 감고 가만히 듣곤 했다. 더 읽어줘, 더 읽어줘 하면서. 이 이야기는 현재 애인에게 하지 말아야겠다. 어쩐지 한소리 들을 각이야. 엄마와 어제 한참동안 차가 막힐 때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두렵지 않니? 엄마는 또 물었고 나는, 닥치지도 않은 두려움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할 정도로 나는 어리석지 않아. 답했다. 만일 가슴 아플 일이 생기면 어쩌니? 엄마가 물었고 가슴이 아파도 그 전에 온통 기쁨만 한가득한 순간들이 있어, 말하니 엄마는 웃었다. 걱정이 담긴 불안한 미소. 나도 엄마여서 안다. 엄마가 왜 그런 어정쩡한 미소를 짓는지. 엄마는 두려운 게 뭐야? 물어보았다. 세상의 시선들. 엄마가 운전하면서 답했다. 난 그 시선들 너머에 있을 거야. 왜 이렇게 당당해? 엄마가 물어봐서 또 답했다. 내가 읽은 책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그러니 당당해도 괜찮아. 내가 두려우면 그 시선들 안에서 계속 살았어야 해. 또 말하고. 우리는 대화 형식이 비슷하다 맨날 엄마야. 엄마는 걱정하고 나는 괜찮다 하고 엄마는 또 걱정하고 나는 또 왜 불안하다 겁먹는가 하고 말야. 그렇네, 이제야 패턴을 알겠네. 오늘은 하늘에 맡기고 그저 하루를 보내도록 하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4-01-24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24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민이가 사달라고 해서 사주고 배송 전 히파르키아 히파르키아 홀로 중얼거리다가 마사 누스바움이 언급한 히파르키아가 바로 이 히파르키아라는 걸 뒤늦게 깨달음. 이야 이 언니는 정말 대단했구만. 그 시대에 그 정도였다니. 다시 감탄함. 역시 여자는 똑똑하고 봐야...... 라는 소리를 저절로 하고 말았습니다, 이 못난 인간아. 하고 잠깐 반성. 이거 내가 타파해야할 지점이다. 스님도 나 똑똑한 사람들한테 약한 거 이미 캐치하시고 예전에 조언해주셨는데. 가물가물하지만 네가 쳐놓은 그물에 네가 잡히고말 수도 있다, 뭐 그런 식의 말씀을 하셨던 거 같다. 전 그래도 똑똑이들이 좋아요, 스님. 하고 대꾸하고 부처님 보면서 부처님도 똑똑하고 잘생겨서 좋아하는 거예요_라고 대꾸해서 보살님들 다 웃긴 적 있음, 어렸을 때. 내가 놓은 그물에 내가 걸리지 않도록 조심할 일. 근데 이게 가능할까 모르겠다. 아흔아홉살 정도면 좀 뭘 깨달을지도. 아 스님 말씀 그거였음?! 하고. 아는 동생 우울증 걸렸다. 갱년기여서 그런듯. 함부로 조언할 일 아닌지라 좀 보려고 한다. 미친듯 우울증 관련서 읽는 거 보고 알았다. 좀 정리되면 만나야 할듯. 그러고보니 좀 정리가 되고 만납시다, 이 말을 작년부터 어마무시하게 하고 다녔다. 말로만 떠들지 말고 그들 다 올해 안에 봐야돼. 잊지 마. 다 나를 살린 사람들이야. 수연아. 다시 체크.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4-01-24 0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이 책 너무 근사해요! 히파르키아, 히파르키아.... 저도 외워두어야 할 이름이네요.
그림은 또 왜 이렇게 내 스타일? 이러고 있습니다!

2024-01-24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24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