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시로
나쓰메 소세키 지음, 최재철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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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들을 읽다보면 사람의 마음과 세상살이의 미묘하고 복잡한 질곡들을 참으로 정밀하게 써낸다는 인상을 받게된다. 그가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눈은 감상적이지는 않으나 연민을 담고 있으며, 냉소적인 것 같으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산시로"는 소세키가 그러한 눈으로 바라본 방황하는 청춘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다.

  억압적인 고등학교 시절에서 벗어나 동경의 대학에서 만난 독특하고 기이한 사람들, 그들이 사는 모습과 세계관은 산시로에게 때론 찬탄을, 때론 이해하기 어려운 곤혹스러움을 남기기도 한다. 그 혼란 속에서 만난 첫사랑의 매혹은 그를 더욱 흔들리게 만든다. 그러는 동안 산시로는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자각과 함께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고 공존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해간다. 물론 상처와 고통이 수반된다. 산시로는 첫사랑을 이루지 못한 좌절과 슬픔을 안게 되는 것이다.

  산시로가 사랑했던 미네코가 자신도 산시로처럼 방황하는 청춘임을 마음으로 호소하는 단어인 "스트레이 쉽(Stray sheep)"은 마치 모든 청춘들을 지칭하는 말처럼 들린다. 양들은 자신들이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 몰라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어지러운 발자국들을 남긴다. 이 소설은 그 예민하게 떨리는 발자국들을 포착해낸다. 그러한 발자국들이 끝나는 지점은 바로 청춘의 길이 끝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삶은 지속되는 것이기에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은 시작된다.

  방황하는 청춘에 대한 이야기에는 떨림과 묘한 우수가 존재한다. 비록 시대적인 배경이나 공간이 다를지라도 그 본질에는 시련과 고통이 관통하고 있다. 나의 기억 속에는 그러한 이야기들로 J.D.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조셉 콘라드의 "청춘", 토마스 하디의 "석공 주드"가 있었다. 이제 "산시로"의 이야기가 새롭게 더해졌다. 이것이 전해준 마음의 울림은 오래도록 지속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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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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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에서 책을 빼어서 읽기 시작한지 3시간 정도쯤 되었을까? 정말로 눈길 한번 다른데에 주지 않고 몰입해서 이 책을 읽어내려간 것 같다. 중간 중간 웃음을 자아내는 부분도 있었고, 또 가슴 한켠을 아리게 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을 아울러 마지막 귀절에 다다랐을 때, 나의 가슴에는 일종의 희열이랄까, 벅차오름 같은 것이 생겨났다. 그랬다. 이 책에는 참으로 보기 드문 흡인력과 감동이 존재한다. 이는 작가 자신의 삶의 체험을 활자 하나 하나에 절절하게 녹여내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말할 때, 사람은 얼마나 진실해질 수 있을까? 좀 더 그럴듯한 모습,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적당히 보여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작가란 직업을 지닌 이들은 참으로 스스로에게는 가혹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글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이 숨김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은 보여주고, 무엇은 숨기고, 무엇은 말하고 싶지 않고, 무엇은 적당히 꾸미고 하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모름지기 진실한 글이란 그 자체가 전부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박완서의 젊은 날의 전부를, 아니 미처 말하지 못한 그 이면의 것까지도 생생하게 재현해낸다. 

  작가가 스스로와 가족,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느것 하나 흐트러짐이 없다. 그 꼿꼿함과 치밀함이 후에 글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만드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을 것이다. 책을 읽다가 문득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 생각났다. 그 책이 조이스의 문학 여정의 입문기에 관한 자전적 고백이었듯,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박완서라는 한 작가가 있기까지의 신산하고 고단했던 역사적, 개인적 체험의 이야기를 담아낸 문학적 초상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다 읽고나서 출판년도와 판본에 대해 확인하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995년에 초판 1쇄를 찍은 책이 2000년을 넘기면서 28쇄까지 찍어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은 삶이라는 그 영원한 드라마에 여전히 매혹되어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비록 그 드라마 한편이 나오기까지 무수한 시련과 고통의 시간이 존재했을지라도 말이다. 박완서는 자신의 삶이 담긴 이 책을 통해 그 여정을 담담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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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스케치
유미리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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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미리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자신의 상처와 과거를 처절히 응시하기까지 작가가 감내해야했을 시간과 노력들을 쉽게 가늠할 수 없었기에 충격이랄까, 한편으로는 연민도 느껴졌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밑바닥에는 작가 자신의 가족과 가족사에 관한 성찰이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 가족 스케치는 유미리의 자전적 글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그다지 주목할만한 작품은 아닌듯 싶다.  전반부의 짧은 리포트 형식으로 쓰여진 다양한 가족들의 모습이 이채롭기는 하지만 후반부에 나오는 작가 자신의 가족사는 "풀하우스"나 "가족 시네마", "물가의 요람"에서 수차례 반복되고 변주되는 이야기들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이 모든 가족의 이야기는 흥미와 놀라움을 떠난 폐부를 찌르는 서늘함으로 남는다. 그것은 작가가 보고 느끼고 쓰는 가족의 실제의 모습들이란 따뜻함과 보살핌으로 묶였다기 보다는 상처와 비밀, 돌아보고 싶지 않은 기억과 부서지기 쉬운 연대들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가족이 그런 것이 아니다, 작가는 극단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할 있는 점을 충분히 수긍한다. 그러나 작가가 관심을 갖는 것은 결코 행복한 가족에 관한 것은 아니다. 행복한 가족의 이야기는 그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쓸 수 있을 것이다. 불행한 사람들, 고통 받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쓰는 것, 유미리의 글쓰기가 서있는 지점은 바로 그곳이다. 독자가 그곳을 바라보는 것이 충분히 고통스러울 때에야 작가의 글은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가족스케치는 극단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소외와 경계선에 위치한 이들을 향해 보내는 작가의 인간적인 시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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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스케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2
도리스 레싱 지음, 서숙 옮김 / 민음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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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한 작가가 보여줄 수 있는 세계의 깊이와 넒이는 어느정도나 될까? 레싱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그 질문에 답하기가 결코 쉽지 않음을 실감하게 된다. 어느 특정한 주제나 분야에만 매달리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이가 매일 맞닥뜨리는 세세한 일상에서부터 철학과 세계관까지 전방위적인 관심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런던 스케치는 레싱의 작품들 가운데 약간은 평범하고 소품처럼 보이는 책이기도 하다. 수록된 단편들의 수준이 균일하지 않을 뿐더러 어떤 것은 지루하고 별다른 감흥을 주지도 못한다. 그러나 레싱이 쓰는 글은 이런 것이다는 것을 보여주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어머니와 딸 사이에 존재하는 팽팽한 긴장감과 세대차를 잘 그려낸 "장미밭에서", 길거리에서 사생아를 낳은 고등학생 미혼모의 이야기 속에서 여성들의 연대를 포착해낸 "데비와 줄리", 결혼에 종속되어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중년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는 "흙구덩이" 와 같은 글은 레싱 특유의 날카로운 시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 책은 런던이란 도시, 그리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것이 특정 공간과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기이한 느낌을 들게 만든다. 나는 이 책을 읽고나서 런던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 보다는 나 자신과 내 주변의 사람들의 삶,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생각했다. 결국 사람살이의 모습은 비슷하다는 것, 그것이 비록 서로 다른 겉모습을 갖고 있을지라도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겹쳐질 수 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어쩌면 그것은 그 글들에 작가가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영국에 정착하기까지의 다양한 삶의 체험을 통해 얻은 국제성이라고나 할까, 통합적인 세계관이 투영되어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간들은 악하고 어리석어요." 단편 "폭풍우"에 나오는 택시기사의 말은 마치 레싱이 독자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런 인간들과 세상을 바라보며 글을 쓰는 것, 레싱은 다른 의미에서 구도자처럼 보인다. 그건 분명 가치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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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환장할 봄날에 창비시선 232
박규리 지음 / 창비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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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는 잡지를 읽을 때 맨 뒷장에서부터 읽는 기이한 습벽이 있다. 예전에는 나만 이런가 싶은 생각도 해보았으나 알아보니 예상외로 그런 사람들이 꽤 있는 모양이다. 소설이나 다른 일반 서적 같은 것은 그렇게 할 수 없지만 첫장부터 꼼꼼히 읽는 것은 한편으로는 답답하고 괴로운 일이기도 하다. 시집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냥 손 가는대로 아무데나 펴서 읽는다. 그렇게 읽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한권을 짜깁기하듯 다 읽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박규리의 시집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중간에 한부분을 읽다가 마음이 바뀌어서 첫장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시집을 덮고나니 이 시들을 그렇게 읽은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처음부터 읽게 된 이유가 있었다. 이 시의 소재 대부분은 절과 스님, 그곳을 지나치는 이, 머무르는 이, 그곳을 둘러싼 자연에 관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처음엔 이것이 시인의 상상속의 산물인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묘사와 느낌들이 상상이 아닌 체험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처음부터 찬찬히 읽어봐야할 것만 같았다. 상상에서 체험으로 나아간 시들이 쪽수를 넘겨갈 수록 이것은 시인의 삶 자체라는 결론에 이르게 만들었다. 그랬다. 시인은 적지않은 년수의 세월을 절의 공양주로 살았던 것이다.

  체험과 삶은 엄연히 다른 것이라고 누군가 내게 이야기해준 것이 기억났다. 체험은 단지 무언가를 해본다는 데에 그치는 것, 그래서 다시 돌아올 삶의 자리가 있는 한정적인 것이지만 산다는 것, 삶이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며 그곳이 그 사람이 서있는 전부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내가 파출부의 하루를 체험해 보는 것이 파출부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의 하루와 동일시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박규리의 시들은 체험이 아닌 삶으로서의 기록들이다. 그것들은 때론 처연한 표정을 짓는가 하면 상처를 후벼파기도 하고 반성도 하고 눈물도 흘린다. 놀랍지 않은가? 시들에게 그러한 생명의 힘이 느껴진다는 사실이... 그러나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것들은 모두 일회성의 체험이 아닌 매일의 일상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도록 단련되었기 때문이다. 그 목소리들은 읽는이에게 스며들어서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나도/ 언제쯤이면/ 다 풀어져/ 흔적도 없이 흐르고 흐르다가/ 그대 상처 깊은 그곳까지/ 온몸으로 스밀/  죽, 한사발 되랴   "죽 한사발"

  이 시집은 그녀가 대접해주는 따끈한 죽 한사발 같은 느낌으로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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