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자의 옷은 낡고 헤졌으며, 그가 가려는 방향에 자리한 출입문은 막혀있다. 그가 이제 막 지나온 농촌의 집은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다. 허물어진 지붕, 현관문 앞에서 희롱하는 남녀, 집밖에서 소변을 보는 남자, 방랑자에게 으르렁거리는 적대적인 개... 중세 시골 마을의 생생한 풍광을 담은 이 그림은 귀족이나 부유한 이들의 집 거실에는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림의 제목은 '방랑자(Wayfarer)', 이를 그린 화가는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이다.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는 지옥의 생생한 이미지를 보여준 중세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David Bickerstaff의 다큐 'The Curious World of Hieronymus Bosch(2016)'는 화가의 생애와 작품 세계, 사후 500주년을 기념하는 고향 마을에서의 기념비적인 전시회를 담았다.

  3면화(Triptych, 성당 제단의 앞면을 장식하는 그림)는 보쉬의 주력 작품이었다. '쾌락의 정원(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은 에덴 동산, 속세, 지옥으로 이어진 3면화로, 특히 지옥편은 무시무시한 도상학적 상징들로 가득하다. 현대인의 눈에도 이 중세 화가가 그려낸 지옥의 이미지는 충격으로 다가온다. 새의 머리를 한 괴물은 사람을 삼키고 있는 중이며, 온갖 고문 기구와 변형된 신체가 그림 곳곳을 채운다. 도대체 이런 그림을 그린 화가는 어떤 사람일까?

  보쉬의 생애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부친은 화가였고, 집안은 대대로 신앙심이 깊었다. 화가는 자신이 평생 동안 살았던 고향 s-Hertogenbosch의 지명을 자신의 이름에 넣었다. 그곳의 대다수 주민은 상인들이었다. 몇 개의 수도원과 교회가 자리한 중세의 평범한 소도시에서 보쉬는 존경받는 화가이며 지역의 유지였다. 그는 그렇게 평탄한 삶을 살다가 60대 중반에 세상을 떴다. 보쉬의 명성은 사후에 더 커져갔다. 그가 창조해낸 놀라운 도상학적 이미지들은 후대의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현대 회화에 있어서 그 기괴하고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은 초현실주의와 긴밀한 접점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과연 보쉬는 그 기기묘묘하고 괴상하기 짝이 없는 이미지들을 온전히 자신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것일까? 다큐는 보쉬가 중세의 종교 서적과 문학 작품들에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었음을 지적한다. 르네상스의 교양인으로서 보쉬는 그림 속에서 학문적 지식과 신앙을 조화롭게 구현할 방법을 찾았다. 보쉬가 그린 일련의 성인들에 대한 그림은 소박함 속에 은유적 상징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그가 그린 은수자(隱修者)들의 모습은 어떤 면에서 그림을 통해 신에게 다가서고자 하는 보쉬의 삶이기도 했다. 그가 면밀하게 그려낸 지옥의 끔찍한 이미지들 또한 세상 사람들을 향한 신앙 교육의 일환이었다. 그럼에도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기이한 도상학적 그림에 후대의 사람들은 이 화가를 악마주의 신봉자와 약물 중독자로 여기기도 했다.

  이 다큐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보쉬의 그림이 중세 민중들의 삶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언급한 점이다. 분명, 보쉬의 그림들은 당대 권력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의 그림 속에는 '방랑자'에서 볼 수 있듯 서민의 거칠고 고단한 삶의 풍광이 펼쳐진다. 보쉬의 그림은 성인과 천당, 속세와 지옥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 안을 채우는 것은 보편적 중세인의 삶에 대한 관찰과 성찰이다. 후대 화가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the Elder)이 사실주의적 중세 풍속화를 그려냈다면, 보쉬는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종교화 속에 중세의 환상적 시공간을 펼쳐놓는다.

  보쉬가 만들어낸 도상학적 이미지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면에서 현대인은 그가 남긴 그림을 통해 5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중세의 문턱을 넘으려는 시간 여행자인지도 모른다. 이 여행이 주는 놀라움은 보쉬의 그림을 볼 때마다 새로운 궁금증이 일어난다는 데에 있다. 다큐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기이한 세계'는 비밀스러운 중세 화가에 대한 좋은 길잡이가 되어준다.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방랑자(Wayfarer)


아기 예수를 안은 성 크리스토퍼(Saint Christopher Carrying the Christ Child)


쾌락의 정원(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사후 추정 초상화


**사진 출처: themoviedb.org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생애와 작품 세계(1909-1992)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0/francis-bacon-1909-199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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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영화 '태풍 클럽(Typhoon Club, 1985)'의 결말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어의 '다녀왔습니다(ただいま, 타다이마)' '어서 와(おかえり, 오카에리)'는 마치 한 벌의 젓가락 같다. 집에 들어오는 사람이 'ただいま'라고 말하면, 집안에 있는 사람은 'おかえり'라고 응답한다. 영화 '태풍 클럽(台風クラブ, 1985)'의 중학생 켄은 허름한 판잣집에 살고 있다. 켄은 현관문을 계속 열고 닫으면서, 'ただいま'와 'おかえり'를 반복한다. 집안에 누군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켄에게 가족이 있기는 하다. 폐인처럼 보이는 켄의 아버지는 술에 취해서 한밤중에 집밖을 서성인다. 그렇다. 켄에게는 가족이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영화 속에서 켄은 주문처럼 'ただいま'와 'おかえり'를 뇌까린다.

  소마이 신지((相米慎二) 감독의 '태풍 클럽(1985)'의 주인공들은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이다. 8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기이하고 불편하게 엉키며 직조된다. 영화는 도입부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는다. 여름날 저녁, 시골 학교의 수영장에서 여중생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동급생 아키라는 마침 수영을 하고 있다가 여학생들을 훔쳐 본다. 여학생들은 그런 아키라를 골려주기 위해 아키라에 목에 끈을 묶어 수영장 밖으로 억지로 끌어낸다. 아키라는 익사할 위기에서 겨우 되살아난다. 학교에서 바보 취급을 받는, 왕따의 대상인 아키라에게 여학생들이 집단으로 휘두르는 폭력. 무언가 이 학교는 범상치 않은 곳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 지역에 태풍이 예보된 가운데, 영화는 다큐멘터리처럼 시간 순서대로 진행된다. 목요일부터 월요일까지, 태풍이 지나가는 동안 아이들의 일상적인 삶이 뒤흔들리고 억눌렸던 본성이 폭발한다. 주말 동안 어쩌다가 학교에 갇힌 아이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광기에 가깝다. 자신의 감정을 올바르게 표현할 줄 모르는 켄은 좋아하는 여학생 미치코를 겁탈하려고 든다. 영화의 중반부, 8분 가량의 이 시퀀스는 공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흥분한 켄은 'ただいま'와 'おかえり'를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미치코를 쫓는다. 켄은 미치코가 도망친 교무실 문짝을 부수며 압박한다. 그런가 하면 연극반의 3총사 여학생들은 동성애에 빠져든다. 학교에 남은 6명의 아이들은 태풍이 몰고온 폭우 속에서 속옷 차림으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이렇게 청소년 연기자들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면서 최대치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이 감독의 연출력은 비범한 것일까, 아니면 착취적인 것일까?

  태풍에 정신이 이상해져 버린 것은 학교에 갇힌 아이들 뿐만이 아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가출을 감행한 리에는 인근의 도쿄 도심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낯선 젊은 남자를 따라나서고, 결국에는 남자의 자취방에까지 간다. 남자와 리에가 함께 있는 장면이 주는 공포는 이 남자의 의도가 불분명하다는 데에 있다. 대학생이냐고 묻는 리에의 질문에 남자는 얼버무린다. 리에에게 값비싼 옷을 사주며 자신의 처소로 유인한 이 남자는 어설픈 원조교제를 시도한 것일까? 리에는 결국 정신을 차리고 그곳에서 빠져나온다.

  소마이 신지의 '태풍 클럽'은 영화 전체에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의 에너지가 가득하다. 솔직히 이 감독이 말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일은 쉽지 않다.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의 모습은 확실히 정상성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 그것이 '태풍'이라는 자연적 재난에 의해 야기된 필연적인 결과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어떤 면에서 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단서는 아이들이 아닌, 영화 속 '어른'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태풍 클럽'에서 어른들의 존재는 거의 의도적으로 삭제되어 있다. 학급의 젊은 담임 교사 우메미야가 그나마 비중이 있고, 양호 선생과 교장은 거의 보조 출연에 그친다.

  우메미야는 교육자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실패한 사람이다.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난데없이 들이닥친 중년의 남녀를 보게 된다. 우메미야가 사귀는 여자의 엄마와 삼촌을 자처하는 이들은 우메미야에게 조카를 책임지라며 행패를 부린다. 그들의 입을 통해 아이들은 우메미야가 연인의 돈을 물쓰듯 쓰며 비겁하게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메미야는 학교에 갇혀 있던 아이들이 학교로 와달라고 전화를 걸었을 때에도 그 요청을 무시해 버린다. 전화를 건 우등생 미카미가 그런 우메미야를 비난하자, 우메미야는 이렇게 강변한다.

  "너 말이야. 대단한 것처럼 굴지만, 15년 전에 나도 너 같았어. 네가 15년 뒤엔 나처럼 된다고, 알겠냐?"

  실패한 인생을 자인하는듯한 우메미야의 미카미를 향한 질타는 기묘한 울림을 준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이성적이며 냉정한 미카미는 오직 학업에만 열중한다. 미카미는 도쿄의 고등학교로의 진학이 결정된 상태이다. 미카미의 눈에 동급생들의 모든 행동은 유치하고 한심하게 보일 뿐이다. 미카미는 출세하고 성공했다고 여기는 삶에 진입하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그런데 미카미도 그 삶이 정말로 괜찮은 건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믿고 따르던 우메미야의 한심스런 행태는 미카미를 좌절에 빠뜨린다. 15년이 지난 후에 자신이 저런 모습이라면, 과연 이대로 계속 사는 것이 가치가 있는 걸까...

  소마이 신지는 아이들을 사각의 틀 안에 가둔 쇼트들을 반복적으로 제시한다. 미카미가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장면, 독서실 창문 밖에서 찍은 쇼트는 미카미를 학교의 수인(囚人)처럼 보이게 만든다. 아이들은 학교 창문의 안과 밖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강당의 무대 위 사각의 프레임에 갇힌 존재들이다. 결국 그 틀은 태풍 속 비바람이 몰아치는 운동장으로 뛰쳐나감으로써 부서진다. 다른 아이들이 그렇게 감정을 분출시키면서 잦아든 것과는 달리, 미카미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옥죄는 틀에서 탈출한다. 교실 안의 책상을 창가에 차곡차곡 쌓은 후, 미카미는 창문을 열고 투신 자살을 시도한다.

  이 영화는 얼핏 보기에 청소년 성장 영화라는 외피를 두른 것 같다. 하지만, '태풍 클럽'의 아이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일반적인 청소년기의 성장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아이들의 일탈과 폭주는 병리적인 현상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속 '학교'라는 공간은 거대한 병동으로서의 일본 사회와 맞닿아 있다. 1980년대, 일본은 세계 제일의 경제 대국이었다. 고도 성장의 정점에서 일본인들은 안정적인 삶을 향유했다. 그럼에도 일본 사회는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변하는 중이었다. 견고한 가족주의에는 균열이 가고 있었으며. 청소년 세대는 약물 남용(암페타민 복용과도 같은)을 비롯해 여러 범죄 문제에 노출되었다(1983년, 저널리스트 Robert C. Christopher는 이에 대한 칼럼을 뉴욕 타임즈에 기고했다). 개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일본인들은 삶의 구심점을 설정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다.

  영화 속 '태풍'이라는 자연 현상은 그러한 일본 사회의 내면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작용한다. 책임감을 지닌 어른의 부재, 가족의 붕괴, 방향성을 상실한 아이들... '태풍 클럽'에서 학교는 물질적 풍요 속 정서적 공황에 처한 일본 사회의 축소판인 셈이다. 소마이 신지는 자신이 통과하는 동시대의 일본을 냉철하게 직시한다. 이 영화가 개봉된 1985년, 일본은 미국의 강압적 요구로 '플라자 합의(Plaza Agreement)'를 받아들이게 된다. 침체에 빠진 미국 경제를 구하기 위한 인위적인 환율 조정이었다. 그 합의로 일본은 소위 '잃어버린 10년(Lost Decade, 1991-2001)'이라는 경제 침체기를 마주한다. 영화 '태풍 클럽'은 그러한 격변기에 접어들기 직전, 임계점을 향해 가는 일본 사회의 피폐한 내면을 중학생의 눈을 통해 압축적으로 담아낸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소마이 신지 감독의 영화 '이사(お引越し, Moving, 1993)'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6/moving-19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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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남자가 자신이 궁금해하는 질문 하나를 지독하게 파고 든다. 'What is a Woman?' 남자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의사와 심리학자를 비롯해 정치인, 교수, 그리고 저 멀리 케냐까지 가서 마사이 부족을 만난다. Justin Folk의 다큐 'What is a Woman?(2022)'은 6월에 미국에서 개봉된 후 격렬한 논쟁을 촉발시켰다. 이 다큐를 이끌어 가는 이는 미국의 보수 정치 평론가 Matt Walsh. 그는 '여성'이란 단어의 정의(definition)가 매우 궁금하다. 그런데 그 궁금증의 이면에는 non-binary(제 3의 성, 트랜스젠더나 젠더 퀴어에 속하는 이들)에 대한 혐오가 내재되어 있다.

  Journey. 이 다큐는 성차(sex differences)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지닌 보수 정치 평론가의 도발적인 탐구 여정이다. 그는 생물학적 성을 부정하는 이들, 특히 트랜스젠더를 LGBT Movements가 만들어낸 비현실적 존재로 인식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막무가내로 억지 소리를 쏟아내지는 않는다. 과연 '여성'을 어떻게 정의할 것이냐에 대한 매트 월쉬의 질문은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진지하게 공명한다. 트랜스젠더이면서 성전환 수술 전문의가 된 의사, 페미니스트 성심리 상담가, 성전환시술인 호르몬 요법을 전문으로 하는 내과 의사, 젠더 연구 전문가인 사회학과 교수... 월쉬의 인터뷰는 '젠더(gender, 사회적으로 획득한 성정체성)'의 실제적 근거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공격적으로 진행된다. 그는 '젠더'를 터무니없는 허상으로 인식한다.

  케냐로 날아간 월쉬는 마사이족들과의 인터뷰를 자신의 신념에 단단하게 덧댄다. 마사이 족장은 'non-binary'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월쉬의 질문에 웃음을 터뜨린다. 마사이족 사람들에게 그건 듣도 보도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 지점에서 '트랜스젠더'는 기이한 이형적 존재로 새삼스럽게 각인된다. 이제, 보수 정치 평론가는 성 정치 운동을 자신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거대한 기만극으로 확신한다. 그는 TV와 영화와 같은 문화 컨텐츠들이 LGBT에 대한 긍정과 호감의 메시지를 양산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그러한 환경이 특히 청소년들의 'gender dysphoria(sex와 gender의 불일치에서 오는 불행감)'를 조장하며, 결과적으로 트랜스젠더의 삶으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한다.

  'What is a Woman?'은 굉장히 논란의 여지가 많은 다큐임에도 여러모로 시사하는 부분도 있다. 트랜스젠더가 되려는 청소년들이 감수해야 하는 의학적 위험을 다룬 점이 그러하다. 호르몬 요법에 쓰이는 약물의 장기적인 추적 연구가 없다는 점, 또한 비가역적인 신체 변화를 가져오는 수술의 후유증이 관객에게 객관적 정보로 주어진다. 아마도 이 다큐는 LGBT 운동가들에게는 악의적이고 편협한 시각에서 제작된 한심한 다큐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많은 언론과 평론가들이 이 다큐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다(출처: en.wikipedia.org).

  그러한 관점과는 별개로 종횡무진, 도발적 질문으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자신의 논지를 설파하는 매트 월쉬를 보는 일은 꽤 흥미롭다. 이 다큐가 취하는 접근 방식은 마이클 무어의 '로저와 나(Roger & Me, 1989)'를 떠올리게 만든다. 미시간주 플린트 출신의 백수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불굴의 의지로 GM의 수장을 만난다. 마이클 무어는 고향 플린트를 유령 도시처럼 만들어버린 GM의 공장 폐쇄를 따질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한다.

  그 허망한 결말에 이르기까지 무어의 여정은 미국 사회의 계층적 간극과 주변부의 황폐한 풍경을 담는다. 'What is a Woman?'의 매트 월쉬의 여정은 어떤 의미에서 성적 다양성 담론에 대한 보수 우파의 극렬한 공격처럼 보이기도 한다. 6월 24일, 미국 대법원은 여성의 낙태권을 지지한 'Roe v. Wade(1973)'의 판결을 뒤집었다. 미국 사회에서 성적 소수자의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도 그렇게 제한받게 될 날이 올까? 어떤 관객들은 이 다큐를 보며 그런 음울한 질문을 던질 법도 하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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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영화 'Yuni(2021)'의 결말 부분이 들어있습니다.


  중년의 부부가 Yuni의 집을 찾아온다. 여고생 유니는 이제 두 번째 청혼 신청을 받는다. 늙수그레한 남자는 두툼한 돈봉투를 내민다. 결혼 전, 신부의 집안에 건네는 지참금이다. 남자는 아내의 동의를 얻었다면서 유니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 나라에서는 본부인의 동의만 있다면, 남자는 세 명의 아내를 더 둘 수 있다. 유니의 집안은 그리 넉넉치 않다. 유니의 부모는 돈을 벌기 위해 먼 도시 자카르타에서 일하고 있다. 할머니와 지내는 유니는 이제 고 3, 명석한 이 소녀는 대학에 가고 싶지만 학비 때문에 고민이다. 그런 가운데 연달아 혼담이 들어온다. 유니가 사는 곳에서는 두 번의 혼담을 거절한 여자는 영원히 결혼하지 못한다는 믿음이 있다. 유니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우리에게는 멀고 낯설게 느껴지는 인도네시아 영화. Kamila Andini 감독의 영화 'Yuni(2021)'는 인도네시아 시골에 사는 여고생 유니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은 속옷부터 시작해서 방안의 물건이며 소지품이 온통 보라색인 소녀와 만난다. 유니는 보라색만 보면 눈이 뒤집힌다. 보라색 물건이 눈에 띄기만 하면 훔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보라색 매니아 유니. 그렇지만 학교에서는 치렁치렁한 교복 치마와 흰색의 히잡(hijab)만이 허용될 뿐이다. 유니의 학교에서는 이슬람 율법에 의한 교육이 강화되고 있다. 조만간 여학생들이 처녀성(virginity) 검사를 받게 될 거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음악 동아리 활동은 이슬람적 가치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금지당한다. 좀처럼 믿기 어렵지만, 그게 유니가 처한 현실이다. 

  오랜 가부장적 전통은 유니 또래의 소녀들에게 남자에 예속된 삶을 강요한다. 유니의 동급생 가운데에는 일찍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여학생도 있다. 조혼(早婚, child marriage)은 인도네시아 사회의 커다란 사회 문제로 남아있다. 인도네시아에서 18세 이전에 결혼하는 여성의 숫자는 무려 120만 명에 이른다(2018년 통계 기준, 자료 출처: https://reliefweb.int). 2019년, 인도네시아의 혼인법 개정으로 부모의 허락 하에 여성이 결혼할 수 있는 연령은 16세에서 19세로 상향 조정되었다. 그럼에도 이 나라의 높은 조혼율은 좀처럼 내려오지 않고 있다. 조혼은 여성의 교육 기회를 박탈하며, 신체적으로 취약한 상태에서 가정 폭력에 쉽게 노출되게 만든다. 이러한 조혼과 일부다처제는 특히 가난한 집안의 여성들에게 무거운 굴레가 된다.

  유니와 친해진 미용사 수치는 자신이 이혼녀가 된 이유를 들려준다. 어린 나이에 결혼한 수치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남편으로부터 구타를 당하고 결국에는 이혼에 이르렀다. 그런가 하면 유니의 절친 사라는 사귀던 남자 친구와 함께 있다가 그 장면이 사진에 찍혀서 협박을 당한다.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의해 혼전의 연애 관계는 부정한 것으로 여겨지며, 여성과 그 가족은 불명예의 상황에 놓인다. 결국 사라는 남자 친구와 생각지도 못한 이른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식에서 사라가 흘리는 뜨거운 눈물은 결코 기쁨의 눈물이 아니다. 사라가 꿈꾸던 미래와 자유는 순식간에 멀어졌다.

  겉으로 보기에 유니는 평범한 여고생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틈만 나면 친구들과 즐겁게 수다 떨고, 연모하는 문학 선생님 때문에 어쩔 줄 모른다. 자신을 좋아하는 남학생 요가와는 풋풋한 연애를 시작한다. 하지만 유니가 바라는 밝은 미래는 점점 더 멀어진다. 좋은 성적으로 대학 입학 장학금을 받으려는 계획도 틀어졌다. 두 번의 청혼을 거절함으로써, 유니는 그 지역의 암묵적 전통에 저항한다. 견고한 가부장제와 종교적 인습에서 벗어나려는 유니의 몸부림은 보라색에 대한 집착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유니에게는 꿈과 열정의 색인 보라색은 실은 그곳에서 '과부(widow)'를 상징하는 색이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유니보다 더 안좋은 처지에 놓인 사람은 문학 교사 다마르일 것이다. 다마르는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알아챈 유니에게 청혼한다. 어머니의 소원을 이루어주고 싶다면서 다마르는 유니에게 애원한다. 인도네시아에서 LGBT의 인권은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다. 그들 대부분은 가족의 요구에 순응하고, 사회적 낙인을 피하기 위해 결혼 제도에 안착한다. 감독 카밀라 안디니는 'Yuni'를 통해 인도네시아 사회의 성적 차별과 폐쇄성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유니와 같은 하층민 여성들은 조혼과 일부다처제, 가정폭력과 같은 어려움과 마주한다. 동성애자인 다마르는 어쩌면 평생 동안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며 살아가야 한다.

  이 영화에서 요가는 유니에게 사랑의 마음을 고백하며 매번 시를 써서 전한다. 그 시들은 인도네시아의 위대한 시인 Sapardi Djoko Damono(1940-2020)의 것이다. 카밀라 안디니는 특히 시 'Rain in June'이 이 영화를 만드는 데에 부분적으로 영감을 주었다고 밝혔다(출처: womenandhollywood.com). 영화의 마지막, 유니의 결혼식 날에 폭우가 쏟아진다. 그 비를 맞으면서 보라색 예복을 입은 유니는 맨발로 걸어간다. 인도네시아에서 우기는 일반적으로 10월에 시작한다. 6월에 내리는 비는 예외적인 일이다. 퍼붓는 비가 꽃이 피기 직전의 나무에 마구 밀려든다. 아직 자신의 삶을 살아갈 준비가 되지 않은 유니가 겪는 감정적인 시련은 '6월의 비'로 형상화된다. 영화 'Yuni'는 인도네시아의 주변부, 십 대 소녀의 삶에 대한 정밀한 초상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Sapardi Djoko Damono의 시 'Hujan Bulan Juni(Rain in June)'

Tak ada yang lebih tabah
Dari hujan bulan juni
Dirahasiakannya rintik rindunya
Kepada pohon berbunga itu
Tak ada yang lebih bijak
Dari hujan bulan juni
Dihapuskannya jejak-jejak kakinya
Yang ragu-ragu di jalan itu
Tak ada yang lebih arif
Dari hujan bulan juni
Dibiarkannya yang tak terucapkan
diserap akar pohon bunga itu

------------------------

No one is more patient
From the rain of June
Withheld her longing
To the flowering tree
No one is the wiser
From the rain of June
He removed his footprints
The hesitant in the street
No one is wiser
From the rain of June
He left the unspoken
absorbed the roots of the flower tree

원문 출처: https://steemit.com/art/@suhaimich/indonesian-poetry-maestro-sapardi-djoko-dam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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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자신을 교육부의 '노예(slave)'라고 소개한다. 그 말에 경찰관 크로포드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진다. 크로포드는 남자에게 거듭 맥주를 권한다. 호주의 내륙 오지(outback) Tiboonda, 학교 교사 존 그랜트는 흙먼지 풀풀 날리는 시골 학교를 이제 막 떠나왔다. 그에게는 6주 동안의 크리스마스 휴가가 주어졌다. 시드니로 날아갈 비행기를 타기 위해 그는 인근 소도시 Bundanyabba에서 하루를 보내야 한다. 술집에서 만난 이 경찰관은 친절한듯 보이지만 그 태도는 꽤나 위압적이다. 존은 내키지 않으면서도 이 낯선 도시에서의 하룻밤을 술집 말고 달리 보낼 데가 없다.

  그가 크로포드의 소개로 들어간 음식점 한 켠에서는 동전 도박장이 열렸다. 두 개의 동전을 던져서 둘 다 앞면이냐, 뒷면이냐에 따라 돈을 따는 단순한 도박. 남자들은 도박장의 열기에 취해있다. 존은 심심풀이로 도박에 참가한다. 행운의 여신이 연달아 미소를 짓는다. 단숨에 400달러를 따낸다. 좀 더 운이 따라준다면, 그를 교육부의 노예로 만든 1000달러의 보증금을 갚을 수 있다. 휴가비까지 탈탈 털어서 도박판에 건다. 그가 도박장을 나왔을 때, 그의 수중에는 담배 몇 개비와 약간의 동전이 전부였다. 존 그랜트는 말 그대로 분단야바에 발이 묶인다. 과연 그는 여자 친구가 있는 시드니에 갈 수 있을까...

  Ted Kotcheff 감독의 영화 'Wake in Fright(1971)'는 호주 출신의 작가 Kenneth Cook의 동명 소설(1961)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케네스 쿡은 자신이 머물렀던 Outback의 소도시 Broken Hill(영화에서 가상의 도시 분단야바로 형상화됨)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소설로 썼다. 그는 내륙 오지의 황량한 환경과 그곳 사람들의 무지와 야만성을 지독히도 싫어했다. 소설은 그러한 케네스 쿡의 날것 그대로의 감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영화는 143쪽 가량의 중편 소설을 충실히 재현한다. 시나리오 작업은 자메이카 출신의 영국인 Evan Jones가, 감독은 캐나다 출신의 Ted Kotcheff가 맡았다. 참으로 기묘한 조합이었다. 두 사람은 호주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으나, 이 이방인들의 눈으로 바라본 호주 내륙과 사람들에 대한 묘사는 전율을 느낄 정도로 사실적이다.

  동전 도박으로 파산한 존은 남은 돈을 그러모아 맥주 한 잔을 들이킨다. 그 술집에서 만난 중년의 남자 하인즈는 존에게 호의를 베풀며 자신의 집에 머물 것을 권유한다. 존은 하인즈의 집에서 거친 광부 조와 딕, 알콜 중독자 의사 닥을 만난다. 무지막지하게 술을 마시면서 그들은 곧 친구가 되고, 캥거루 사냥에 가기로 의기투합한다. 이 네 사람이 캥거루 사냥에서 보여준 잔혹함과 광기는 야만인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이 장면은 실제로 캥거루 사냥꾼들을 섭외해서 찍었다. 캥거루들은 난사된 총알에 의해 피투성이가 되고, 칼에 의해 난도질 당한다.

  호주 뉴 웨이브 영화의 신호탄이 된 Nicolas Roeg'Walkabout(1971)'은 백인의 시각으로 호주 자연의 원시성을 이상화한다. 영화 'Wake in Fright'에서 자연은 경외와 찬미의 대상이 아니다. 황량하고 거친 오지 내륙의 풍광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내면을 변화시킨다. '우리'라는 테두리 바깥에 있는 외지인은 차별과 감시의 대상이 된다. 광대한 자연 속에서 통제되지 않은 인간 내면의 본성은 일탈 행위에 무감각해진다. 존 그랜트는 처음엔 야바의 모든 것에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술집을 꽉 채운 남자들의 폭음, 도박장의 미친듯한 열기, 광부 조와 딕의 역겨운 언행, 의사임에도 술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진 닥의 삶. 그런데 문학과 역사를 전공한 존의 지성은 그곳에서 순식간에 야만적 폭력으로 대체된다. 존은 그렇게 '야바'의 사람으로 변해간다.

  호주 내륙의 이 오지 도시는 어떤 의미에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곳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술과 도박, 사냥과 같은 오락이 극대화되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호주 Outback 사람들의 초상은 결코 과장되거나 과거의 것이 아니다. Pete Gleeson의 다큐 'Hotel Coolgardie(2016)'는 내륙 오지 마을의 주점을 배경으로 그곳 주민들의 상스러운 민낯을 드러낸다. 폭음, 무자비한 살육, 성적 일탈(존과 닥의 동성애를 암시하는 장면이 있다)... 깔끔한 양복 차림의 존 그랜트는 거지 노숙자의 신세가 되어 거리를 헤맨다. 어떻게든 시드니에 가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히치하이킹으로 트럭에 몸을 맡긴다. '시드니'라는 글자가 박힌 트레일러의 기사는 존에게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그런데 그곳은 시드니가 아니다. 마치 반복되는 악몽처럼 존은 다시, 야바의 역 앞에 서있다. 이 영화의 제목 'Wake in Fright'는 원작 소설을 여는 구절에서 따왔다.

  "May you dream of the Devil and wake in fright.
  (당신이 악몽을 꾸고, 공포 속에서 깨어나길!)"


  오래된 저주의 문구. 원작자 케네스 쿡에게 Broken Hill에서의 삶은 그 저주 같았을까? 호주인들이 쿡의 소설과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좋아할 리가 없었다. 호주에서 이 영화는 빠르게 잊혀졌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2004년, 미국 피츠버그에서 폐기 직전의 원본 네거티브가 발견되면서 영화는 기사회생했다. 놀라운 귀환이었다.

  영화의 초반부, 존은 야바행 기차 객실에서 신나게 맥주를 마시며 노래를 부르는 백인 일행을 지나친다. 존이 앉은 자리 건너편에는 조용하게 창밖을 응시하는 원주민이 앉아있다. 그 기차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호주라는 국가를 나타낸다. 기차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는 백인들, 한쪽 구석으로 밀려난 원주민, 그리고 그들 바깥에는 결코 정복되지 않은 자연이 자리한다. 주인공 존 그랜트의 여정은 호주인의 어두운 내적 심연과 맞닿아 있다. 원작자 케네스 쿡은 문명화된 도시의 외관 속에 교양인으로 살아간다고 믿는 호주인들에게 조소를 보낸다. 영화는 호주인의 정체성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호주 자연, 그 원시성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담아내었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호주 뉴 웨이브 영화들 리뷰

1부 호주 뉴 웨이브의 신호탄, Walkabout(1971)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3/walkabout1971.html

2부 호주인의 정체성과 자연: Sunday Too Far Away(1975), The Last Wave(1977)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3/sunday-too-far-away1975-last-wave1977.html

3부 발굴된 호주 여성의 서사, My Brilliant Career(1979)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3/australian-new-wave-3.html

4부 호명된 국민, 재조명된 호주인 서사:
Breaker Morant(1980), Bruce Beresford
Gallipoli(1981), Peter Weir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3/breaker-morant1980-gallipoli1981.html


***다큐 'Hotel Coolgardie(2016)'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5/hotel-coolgardie20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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