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이고 재능있는 젊은 여성이 있다. 스타가 되겠다는 열망을 가진 그 여자는 우연히 유명 배우를 알게 된다. 숨겨진 재능을 한눈에 간파한 그는 여자가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다. 그가 가진 인맥과 도움으로 여자는 자신이 가진 스타성을 입증해 보이고, 그렇게 대배우의 길로 들어선다. 자신의 은인이기도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진 여자는 결혼을 함으로써 일과 사랑, 그 두 가지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자가 점점 더 유명해지고 잘 나가는 동안, 남자는 오랫동안 그를 괴롭히던 술 문제 때문에 경력의 내리막길을 걷는다. 여자는 어떻게든 사랑으로 그 모든 것을 안고 가려고 하지만, 남자는 갈수록 더 망가질 뿐이다. 여자는 남자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최전성기에 은퇴를 생각한다. 남자는 그런 아내에게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아서 비극적인 선택을 하고 마는데...

  윌리엄 웰먼 감독의 1937년작 '스타 탄생'의 줄거리는 그렇다. 어떻게 보면 뻔한, 그저 그런 이 이야기는 이후로 3번이나 리메이크되었다. 오리지널이라고 할 수 있는 1937년작에서는 주인공 비키 레스터 역을 재닛 게이너가 맡았다. 재닛 게이너는 당시에 아주 잘 나가는 여배우 가운데 하나였고, 이 영화의 제작자인 데이비드 셀즈닉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다. 이 고전적인 미인 배우는 솔직히 이 역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 영화가 개봉 당시 흥행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은 당시 대중들이 이 여배우를 선호했음을 보여주기는 한다. 그러나 정적이고, 별다른 스타성을 보여 주지도 않는 재닛 게이너의 연기는 평이하며, 그리 큰 감동을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무성 영화의 연기 스타일에 익숙한 것처럼 보이는 이 배우는 영화 속의 '스타'라기 보다는 비련에 빠진 여성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더 적합해 보인다.

  그런 것과 비교하면 조지 큐커의 1954년작 '스타 탄생'의 주디 갈란드는 온몸으로 자신의 스타성을 입증해 보인다. 정말이지 이 영화에서 주디 갈란드가 보여주는 춤과 노래, 연기는 재능의 정점에 있는 배우가 가진 모든 것 그 자체이다. 한마디로 주디 갈란드가 누구인지를 영화로 보여준다. 너무 길고 많은 뮤지컬 곡들은 때론 과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 영화의 프로덕션은 당시 주디 갈란드의 남편이었던 시드니 루프트가 맡았다. 그는 오랜만에 영화로 복귀하는 자신의 아내를 '띄워주기' 위해서 제작비를 그야말로 물쓰듯이 썼다. 이 영화의 제작비는 5백만 달러를 넘겼는데, 이것은 그때까지 헐리우드 영화 사상 최고의 제작비였다. 이전 최고 제작비 영화의 기록이 250만 달러였던 것에 비하면 워너사로서는 엄청난 투자였다.


  문제는 그것이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영화는 수익 분기점을 겨우 어렵게 넘겨서 6백만 달러를 얻었다. 물론 최고의 흥행 수익이기는 했다. 그러나 프로덕션 제작비에 나간 돈을 빼고 나니 워너사에는 남는 돈이 별로 없었다. 주디 갈란드는 제작 기간 내내 이런저런 병치레를 내세웠고, 그 때문에 촬영이 9개월이나 미뤄진 것도 이유였다. 워너 경영자들, 해리 워너와 잭 워너가 분노한 것은 당연했다. 시드니 루프트를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했을뿐만 아니라, 추가로 제작하기로 한 작품 계약을 파기했다. 그 여파는 갈란드에게도 미쳤다. 부부 사이는 소원해졌고, 결국 갈란드는 남편의 폭력을 이유로 이혼에 이른다.

  1954년작에서 주디 갈란드의 상대역으로 나온 제임스 메이슨이 맡은 노먼 메인은 알콜 중독에 시달리는 유명 배우 역할이었다. 당시에 내로라하는 배우들에게 캐스팅 제의가 갔지만, 술에 찌들어 결국 비극적 선택을 하는 남자 주인공 역을 기꺼이 맡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조지 큐커는 말론 브랜도의 촬영장까지 찾아가서 제의를 했었는데, 브랜도의 대답은 이랬다.

  "지금이 내 인생에서 최고로 잘 나가는 때란 말입니다. 그런데 술에 찌든 머저리 역할을 하라고요? 지금 감독님 건너편에 있는 사람이 적당해 보이는데 어때요?"

  그때 건너편에 앉아있었던 배우, 말론 브랜도와 같이 '줄리우스 시저(Julius Caesar, 1953)' 영화를 찍고 있었던 바로 그 사람이 제임스 메이슨이었다. 그는 그렇게 노먼 메인이 되었고, 현실의 루프트 부인이었던 주디 갈란드를 잘 뒷받침해주는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술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것과는 달리, 제임스 메이슨은 노년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배우 경력을 성실하게 이어갔다. 그러나 주디 갈란드는 아역 배우 시절부터 시작된 약물 남용 문제로 평생 골머리를 썩였고 그것 때문에 죽음에 이른다. 영화 '스타 탄생'이 보여주는 이 아이러니는 단지 한 여성 배우의 비극적 인생만을 부각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는 어떤 면에서 거대 영화 스튜디오의 냉혹한 일면을 보여준다. 관객은 상품성이 떨어진 배우가 어떻게 제작사에 의해 버려지고 잊혀지는지, 그리고 인기 절정의 배우에게서 최대의 이익을 끄집어 내려고 온갖 애를 쓰는지 보게 된다. '스타'는 대중들이 볼 때의 이미지이지, 제작사가 보기에는 자신들에게 돈을 벌어다줄 복잡한 기계의 작은 톱니바퀴같은 부품일 뿐이다. 그 부품은 잘 관리되어야 하며,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때에만 유용하다.


  특히 여배우들은 그렇게 소모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여배우들은 결혼과 임신도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지 못했다. 주디 갈란드는 돈에 미친 엄마와 제작사의 요구로 2번이나 중절 수술을 받았다. 경력 단절을 막기 위해서였다. 캐서린 햅번은 스튜디오의 그 횡포에 맞서 아예 결혼을 포기했다. 햅번은 자신의 경력에 가정과 아이 따위는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했다. 직업적인 성공이 우선이었던 이 배우가 내연 관계였던 스펜서 트레이시의 병간호를 위해 5년간 영화를 찍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1937년 '스타 탄생'의 주연 배우였던 재닛 게이너는 30대 중반에 은퇴의 길을 택했는데, 그 이유는 아이를 갖기 위해서였다. 그 시절의 여배우들에게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과업이나 다름없었다.

  일단 스타가 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꽃길이고 인생은 순탄하게 잘 풀려나갈 것 같지만, 인생이란 것은 그렇게 쉽게만 흘러가지 않는다. '스타 탄생'은 은막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준다. 부와 명성, 엄청난 인기에 가려진 유명 배우의 삶 속에 깃든 슬픔과 외로움, 한순간에 그 모든 것이 끝날 수 있다는 불안함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고통을 관객들은 보게 된다. 너무나 높은 곳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별들도 언젠가는 추락할 수 있다. 그러므로 1937년작에서 주인공 에스터 블로젯(배우가 된 이후로는 비키 레스터란 이름을 쓴다)의 할머니는 꿈을 안고 헐리우드로 떠나는 손녀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네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언가를 희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하려므나."

  에스터는 자신이 원하는 스타가 되었지만, 한 남자의 행복한 아내는 될 수 없었다. 남자가 가진 내면의 유약함은 거칠고 냉혹한 거대 연예 사업에 맞지 않았고, 그것을 이기려고 선택한 술이 그를 파멸에 이르게 만든다. 한편으로 그 세계의 다른 이들은 도박, 마약, 여자 문제 그 밖의 문제들로 노먼과 같은 길을 걸었다. 스타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재능이었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강한 정신력도 필요했다. 그것이 결여된 이들은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렇게 '스타 탄생'이 보여주는 은막의 앞과 숨겨진 뒤의 삶은 영화의 주연배우 주디 갈란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은 작품처럼 보인다.

  1954년작 '스타 탄생'은 최초 개봉 당시 러닝 타임이 3시간을 좀 넘겼는데, 그것은 수입을 위해 영화관의 상영 횟수를 늘리고 싶어하는 극장주들에게는 못마땅한 조건이었다. 워너사는 그 때문에 조지 큐커와 시드니 루프트의 반대를 무릅쓰고 30분을 잘라내 버린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영화는 3시간에 가깝게 복원이 되기는 했지만, 중간 중간 스틸컷으로 대체된 불완전한 복원이었다. 워너사에게는 돈만 많이 먹은 골칫덩어리 영화처럼 생각되었을 것이다. 잘려진 필름들은 창고에 처박힌채 잊혀졌고, 결국 이 영화는 헝겊을 덧대서 기운 옷처럼 온전한 모습을 찾지는 못했다. 주디 갈란드의 '순전한 재능'이 보석처럼 박혀있는 이 영화가 그런 모양새를 갖게 된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1937년작은 오리지널로서 드라마에 충실한 면모를 보여준다면, 1954년작은 주디 갈란드의 열연과 인물들 내면의 세밀한 심리 묘사가 돋보인다. 오리지널의 대사들은 거의 대부분 동일하게 재현되었다. 이 영화에서 노먼 메인이 자존감에 상처를 입게 되는 두 장면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데, 비키에게 온 소포를 받는 장면과 노먼이 만취 상태로 즉결 심판에 넘겨진 장면이다. 비키에게 온 소포를 노먼이 받는데, 우편 배달부가 노먼에게 어떤 관계냐고 묻는다. 노먼이 남편이라고 하자, 우편 배달부는 '그럼 사인해주시죠, 레스터 씨.'라고 말한다. 소포를 받고 돌아서는 그의 얼굴 표정은 매우 어둡다. 이제 그는 비키 레스터의 남편 레스터 씨로 살아가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또 다른 장면, 즉결 심판에서 판사는 노먼에게 구류를 선고한다. 그러자 비키는 남편을 자신이 잘 돌보겠다면서 판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I will be responsible for him."

  이제 노먼은 배우 노먼 메인이 아닌, 아내 비키 레스터의 영향력 하에 놓이는 사람이 되었음을 관객은 알게 된다. 배우로서의 정체성도 잃었으며,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위치도 지키지 못한 그가 삶을 지탱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그렇게 그는 소멸의 길을 걷는다. 결국 홀로 남겨진 비키 레스터는 노먼의 장례식이 끝난 후 대중 앞에 다시 선 자리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저는 노먼 메인의 아내입니다."

  그렇게 비키 레스터, 아니 노먼에게는 에스터 블로젯이었던 여자는 자신을 빛나는 스타의 길로 이끈 남자를 기념한다. 그 선언은 슬프면서도 고결하다. 스타를 만들어낸 시스템 안에서 망가지고 부서져 버린 남편을 잊지않을 것이며, 자신은 그 시스템의 어떤 압력과 시련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다짐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스타 탄생'은 그렇게 은막 뒤에 감추어진 비정하고도 냉혹한 현실을 담아낸다. 



*사진 출처: warnerbros.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알랭(모리스 로네 분)이라는 남자가 있다. 알콜 중독증으로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그는 매일 이 말을 되뇌인다. 


  "내일은 죽어야지."


  그에게는 권총도 있다. 그는 정말 죽을 생각일까? 젊은 시절, 수려한 외모와 친화력으로 파리 사교계를 주름잡았던 그는 어쩌다가 알콜과 우울에 절어버린 낙오자가 되어버렸을까? 주치의는 4개월 동안 술 안먹고 잘 견뎠으니, 이젠 퇴원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알랭은 밖에 나가는 즉시 다시 술을 먹게 될 거라며 두려워 한다. 자신을 사로잡는 우울과 무력감에서 벗어나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찾고 싶은 알랭은 옛친구들을 찾아 나선다.


  친구 1 드부르: 넌 철 좀 들어야 해.


  알랭의 이 친구는 평범한 삶에 안착했다. 젊었을 때는 알랭과 신나게 잘 놀았는지 몰라도, 어쨌든 지금의 드부르는 멋진 아내와 귀여운 아이들에게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드부르는 알랭이 어른이 되지 못하고 소년 시절에 머무른다고 생각한다. '제발 어른의 삶을 살아, 철 좀 들라고'충고한다. 그 말을 들은 알랭은 좌절한다. 


  "네가 내 친구라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


  친구 2 에바: 내일 일 나도 몰라, 그냥 되는대로 사는 거지.


  알랭은 에바(잔느 모로 분)에게서 젊은 시절의 친구 소식을 듣는다. 스스로 차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고.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바닥인데 더 가라앉는 느낌이다. 에바에게 어떻게 살고 있냐고 물으니, 앞일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산다고. 에바는 '약쟁이'로 살고 있다.


  친구 3 솔랑주: 난 네가 부끄러워.


  한때 알랭의 연인이기도 했던 솔랑주(알렉산드라 스튜어트 분, 루이 말의 연인이었다)는 부유하고 안락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지인들과의 저녁 식사에 알랭을 초대해 놓고는 알랭이 알콜 중독자임을 까발린다. 이미 솔랑주의 집에 오기전, 카페에서 손님이 남기고 간 술 한잔을 마시고 상태가 안좋은 그는 비까지 흠뻑 맞았다. 그곳에서 그런 대접을 받으니 비참함과 모멸감은 이루말할 수 없다. 병주고 약주는 것일까? 도망치듯 나가는 알랭에게 내일 점심 식사에 꼭 와달라고 말하는 솔랑주. 식사 대신 마셔댄 술 때문에 기분은 더 엉망이 되었고, 몸은 가눌 수도 없다.


  루이 말 감독의 1963년작 '도깨비불(Le feu follet)'는 생의 의미를 절실히 찾는 한 남자의 이틀 동안의 여정을 그린다. 관객은 주인공 알랭이 왜 알콜 중독자가 되었고,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리는지 그 이유를 알 수는 없다. 다만 그가 죽고 싶어하는 마음 한편에 어떻게든 삶을 이어가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옛친구들에게서 무언가 위로와 희망을 찾으려는 그의 시도는 모두 무산된다. 그의 짧은 여정은 실망스럽게 끝난다.


  알랭 역을 맡은 모리스 로네의 연기는 지독한 마음의 고통 그 자체를 보여준다. 영화의 제목 'Le feu follet'은 도깨비불을 의미한다. 피에르 드리외 라 로셸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데, 그리 길지 않았던 생애 동안 파란만장하게 살았던 작가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어쩌면 주인공 알랭은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캐릭터인지도 모른다. 미치게 만드는 마음 속의 불을 어쩌지도 못하고 끌어안고 살았던 삶. 시종일관 무겁고 음울한 분위기가 영화 속에 흐른다.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모음곡(Gymnopedie)'이 한 남자의 고통스러운 내적 여정을 따라간다. 루이 말은 그 여정을 세련된 흑백 화면 속에 담아낸다. 영화적 깊이 보다는 감독이 가진 독창적 스타일이 돋보이는 그런 작품. 특히 좋은 구도로 찍은 야외 촬영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영화를 보면서 그런 궁금증이 들기는 한다. 루이 말은 왜 이런 무겁고 음울한 이야기의 영화를 찍었을까? 개인적으로 좀 힘든 시기였나? 희망이라고는 단 한 조각도 찾아볼 수 없는 영화를 보는 일은 관객의 입장에서도 버겁다. 이 영화의 우리말 제목은 '도깨비불'과 함께 '마지막 선택'으로도 나와있다. 뭔가 제목이 그 자체로 스포일러 같은 느낌이다. 영화를 보려는 이라면 힘든 하루를 보낸 날은 가급적 피하길 바란다.



*사진 출처: criterion.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셰르파 푸르바(Phurba)는 이제 22번째 에베레스트 등정을 앞두고 있다. 2014년 4월, 그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는 에베레스트 최다 등정 기록을 세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스러운 산, 에베레스트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제니퍼 피돔의 2015년 다큐 'Sherpa'는 2014년에 있었던 쿰부 아이스폴(Khumbu Icafall) 사고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다. 이 작품은 2017년작 'Mountain'으로 산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보여주었던 피돔의 전작이다.


  푸르바와 오랫동안 사업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는 러셀 브라이스. 그는 1994년부터 에베레스트 등정을 원하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등반 에이전시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회사는 비슷한 일을 하는 38개의 에이전시 가운데 하나이다. 이제 전문 산악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4000명이 넘는 일반인들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돈만 지불한다면 그 꿈을 이루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대략 10만 달러의 비용이 소요된다. 그 돈 가운데 셰르파에게 지불되는 돈은 5천 달러, 보통의 네팔인들 연봉 10배에 해당하는 돈이다.


  다큐의 도입부는 2014년 4월, 셰르파 선발대가 베이스 캠프 구축을 위해 길을 떠나는 장면이다.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는 악명 높은 쿰부 아이스폴이 자리하고 있다. 아이스폴은 절벽을 흐르는 거대한 얼음강으로 곳곳에 크레바스(crevasse)가 자리하고 있어서, 굉장히 위험한 코스로 꼽힌다.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선발대의 카메라에 엄청난 눈사태가 찍힌다. 그리고 화면이 끊긴다. 아이스폴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 사고로 16명의 셰르파들이 목숨을 잃었다. 300명에 가까운 셰르파들이 네팔 정부 당국에 사고의 재발 방지와 피해자들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요구하며 '파업'한다. 네팔 정부에게 에베레스트 등반 사업은 매력적이고 거대한 돈벌이이다. 어쩔 수 없이 셰르파들과 대면한 장관은 '계속 일을 하든지 여기서 그만 접든지 알아서 하라'며 떠넘긴다. 일이 이렇게 되자 난감해진 것은 러셀과 그 고객들이다. 러셀은 어떻게든 셰르파들을 설득하려고 하지만, 동료들의 죽음을 본 셰르파들은 요지부동이다.


  이 국면에서 갈등이 표출되는 것은 당연하다. 러셀의 고객 중 한 명은 셰르파들이 테러리스트처럼 자신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러셀은 일을 하고 싶은 셰르파들이 있음에도 동료들의 협박 때문에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푸르바는 그런 협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박지만, 셰르파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피돔은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다. 이 모든 사태에서 카메라는 매우 피상적으로 인물들의 대화만을 담아낼 뿐이다. 언뜻 보면 꽤나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제작자로서 감독이 갈등의 본질 속으로 들어가기 보다는 회피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결국 셰르파들의 파업에 러셀의 고객들은 등정을 포기하고 철수한다. 고객들 가운데에는 처음 실패하고 두 번째 도전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이듬해 다시 러셀을 찾았을까? 아마 찾지 않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그 이듬해인 2015년에는 네팔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에베레스트에서도 등반 중에 19명이 사망했다. 이 가운데 10명이 셰르파였다.


  다큐의 엔딩 자막에는 후일담이 나온다. 2014년의 쿰부 아이스폴 사고 이후 네팔 정부가 셰르파들의 요구를 모두 수용했으며, 또한 푸르바도 가족들의 소원대로 위험한 셰르파 일을 그만 두었다고 알려준다. 그런데 사실은 그와는 달랐다. 등반가이며 저술가인 Mark Horrell의 블로그에서 다큐에 가려진 뒷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네팔 정부가 셰르파들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일부 수용했던 요구들은 결국 철회되었다. 또한 푸르바의 근황에도 변화가 있었다. 2015년의 대지진으로 그의 집이 모두 부서졌으며, 삶의 기반을 잃은 그는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다시 셰르파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Sherpa'는 표면적으로는 비극적 사고를 기록한 다큐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으로는 에베레스트를 둘러싼 거대한 사업과 인간의 욕망을 다루고 있다. 다큐에서 그 사업의 상업성을 비판하는 에드 더글라스는 이렇게 되묻는다.


  "도대체 (일반인이) 위험을 감수하고 거기 오른다는 게 의미있어요?"


  그런데 그 말을 하는 더글라스가 인터뷰 내내 입고 있는 다운 재킷의 상표가 내 눈에 들어왔다. 등산복의 세계적 브랜드 N사와 더불어 비싸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R사의 옷이다. 저 사람은 그 회사의 후원을 받는 모양이네... 돈은 얼마가 들어도 괜찮으니 인생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으려는 사람, 그들을 상대로 하는 에이전시, 거기에 고용되어 일하는 셰르파들, 등반객들에게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로 먹고 사는 셰르파 마을, 그리고 에베레스트 입장료로 엄청난 수입을 챙기고 있는 네팔 정부 당국... 네팔 사람들에게 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지는 에베레스트는 돈으로 칠갑한 거대한 돈통이 되었으며, 거기에 연관된 이들은 모두가 돈의 부하들처럼 보인다.


  셰르파의 신화가 되었던 텐징 노르가이는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고, 유순하고 온화한 성품으로 서양 등반가들에게 환호를 받았다. 그러나 지금 시대의 셰르파들은 대부분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기초적인 영어 구사능력도 갖추고 있다. 결코 서양 등반객들에게 하인처럼 굴종적인 자세로 일하지 않는다. 2013년에 이탈리아 등반객이 셰르파에게 욕설을 했다가 폭력사태로까지 번지는 일이 있었는데, 러셀은 그것을 젊은 셰르파들의 참지 못하는 성미 탓으로 돌린다. 이처럼 이 다큐는 서로 다른 문화적, 인종적 관점의 차이도 담아낸다. 비록 'Sherpa'의 세계에 깊이있는 접근은 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산 에베레스트를 둘러싼 복마전과 같은 돈의 세계를 관객들은 잠깐이나마 엿볼 수 있다.



*사진 출처: markhorrell.com (사진 가운데 부분이 'Khumbu Icefall'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부클래식 Boo Classics 43
조지 오웰 지음, 김설자 옮김 / 부북스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탄광의 막장에 진짜 내려가본 작가가 있다.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 그는 1936년 1월부터 3월까지 영국 북부의 탄광촌에 머물면서 그곳 광부들의 삶을 취재했다. 그 기록을 바탕으로 쓴 책이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다. 이 책은 실질적인 탄광촌 취재기인 1부와 사회주의에 대한 오웰의 생각을 담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 오웰이 보여주는 피폐하고 비참한 탄광 노동자들의 삶과 열악한 노동 현장은 말그대로 뼈를 가르는 치열한 문장들로 열거되어 있다. 막장에 내려가 보고 나서 그는 이렇게 쓴다.


  "나는 육체 노동자가 아니다. 그리고 사정이 허락하면 결코 육체 노동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꼭 그래야 한다면 내가 해낼 수 있는 육체 노동이 있다. 나는 어느 정도 쓸만한 도로 청소부나 비효율적인 정원사나, 형편없는 농장 노동자는 될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낼 수 있는 온갖 노력을 하고 훈련을 받는다 해도 나는 석탄 광부는 될 수 없다. 그 일은 나를 몇 주 안에 죽게 할 것이다."


  그토록 엄청난 강도의 일을 매일매일 해내는 탄광 노동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고된 노동 여건을 견뎌낸다. 오웰은 최하층 노동자들이 그 모든 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질병과 가난에 길들여지는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그는 그들을 돕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자세하고 사실적인 기록을 남겨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글로써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고자 했던 작가의 실천적 신념에서 나온 결과물인 셈이다.


  1부가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하층 노동 계급의 삶의 단면이라면, 2부는 오웰이 가진 사회주의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펼쳐진다. 왜 사회주의인가? 그는 그 사상이 가난과 불평등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나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사회주의에 맹목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웰은 '사회주의는 믿지만, 사회주의자는 믿지 않는다'는 약간의 냉소주의와 거리감도 갖고 있었다.


  그는 사회주의가 가진 이상이 제대로 실현된다면 최선의 것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실제적으로 이끌어가는 이들의 무모함과 결함이 가져올 수 있는 파국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예측했던 것 같다. 이는 프랑스의 실존주의 문인 샤르트르가 공산주의의 이상에 극도로 매몰된 나머지, 스탈린 집권기의 강제 수용소와 무장 혁명의 폭력성을 옹호한 것과는 대비된다. 1950년부터 1956년 사이에 소련의 편에 섰던 샤르트르는 소련이 1956년에 헝가리의 반소 자유화 운동을 무력 진압하는 것을 보고서야 돌아선다. 공산주의를 맹목적으로 지지했던 그 시기는 샤르트르의 인생에서 오점으로 남았다.


  진정한 사회주의의 실현을 위해서 오웰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계급간에 존재하는 편견을 없애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서로 다른 계급이 하나로 뭉치고, 그들을 이끌어갈 사회주의 정당이 정치적 세력을 얻어서 가난의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오웰이 진심으로 원하는 일이었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자신이 사는 시대의 '자유'와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 글로써 투쟁했던 오웰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중산층의 출신 배경을 가지고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오웰의 젊은 시절은 가난과 노동의 일상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파리와 런던에서의 밑바닥 생활'은 그것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동물 농장'을 비롯해 독재권력이 감시하는 어두운 미래를 그린 '1984'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작품들은 인간과 시대를 꿰뚫어 보는 뛰어난 통찰력이 돋보인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닮고 싶어하는 작가가 쓴 책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 아낌없이 별점 5개를 매긴다. 문학성과 시대정신이 온전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 무엇인지 작가 조지 오웰은 자신의 삶과 작품으로 입증해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 영화사'란 과목은 뭔가 참 애매한 기억으로 남았다. 엄청 두꺼운 책을 교재로 썼는데, 글씨가 정말이지 깨알만 했다. 세계 각국의 오만가지 영화들을 모아놓은 잡동사니 책 같았다. 아, 물론 거기서도 가장 비중있게 다룬 것은 미국과 유럽의 영화사였다. 3학년 때 그 과목을 들었는데, 강사는 '400번의 구타(1959)' 같은 영화를 과제로 냈다. 이미 다 본 영화들이 줄구장창 나오는데다, 도무지 얻어들을 것이 없는 맥아리 없는 강의는 실망스러웠다. 그 과목이 아마 전공 필수였나, 억지로라도 들어야해서 더 짜증스러웠다. '400번의 구타' 대신 다른 영화를 과제로 써냈다가 학점 못받은 기억이 난다.


  그 수업에서 브라질 영화사 같은 건 다루지도 않았다. 한국 영화사를 비중있게 다루는 외국대학의 영화학과는 얼마나 될까? 그런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마리오 페이소토의 'Limite(1931)'를 얼마 전에 보고 나서 약간의 흥미가 생겼다. 브라질이란 나라에는 어떤 영화 역사가 있는지에 대해서 찾아 보다가 'Vidas secas(1963)'가 눈에 들어왔다. 넬슨 페레이라 도스 산토스(Nelson Pereira dos Santos)가 1938년에 그라실리아노 라모스가 쓴 동명의 소설을 각색해서 만든 영화다. 이 감독은 브라질 영화사의 매우 중요한 기점이 되는 '시네마 노보(Cinema Novo)'의 핵심 인물이기도 했다.


  시네마 노보, 번역하면 '새로운 영화'쯤 되겠다. 기존 브라질 영화가 서구 자본에 의해 영혼 없는 오락물만 양산하고 있다고 느낀 영화인들이 좀 뭔가 다른 영화를 만들어 보자, 해서 일어난 영화 운동. 뼈대는 소비에트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닮아있고, 곁가지는 프랑스 누벨바그의 작가주의 정신을 덧붙인듯하다. 아무튼 'Vidas secas'는 시네마 노보의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제목을 직역하면 '메마른 삶'이 될 텐데, 영화의 내용을 보면 '황폐한 삶'이 더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또 다른 제목 '보람없는 삶'으로도 나와있다. 어떤 제목이든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는 비참하기 그지없는 하층민의 삶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러닝타임 1시간 43분. 흑백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의 완성도는 무어라 말할 수 없이 심각하게 떨어진다. 배우들의 연기는 어설프기 짝이 없고, 이야기는 '옛날 옛적 브라질에'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영화의 배경은 1941년, 먹고 살 것을 찾아 떠도는 일가족의 고통스런 생존기가 펼쳐진다. 탐욕스러운 대농장주, 부패한 경찰과 관료, 그들이 가혹하게 수탈하는 민중의 밑바닥 삶... 대충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영화적 '재미'라는 것을 이 영화에서 기대하면 안된다. 영화가 정치적 대의명분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적 수단임을 명백하게 드러내는 이런 방식은 1930년대 소비에트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지향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나마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예술적 성취도 함께 이루어낸 것에 비해 'Vidas secas'는 그저 정치 선언적인 의미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영화 보기의 시간을 견디게 해준 것은 영화 속의 'Baleia'라는 이름의 개였다. 영화의 도입부, 땡볕의 더위에 메마른 평야를 걷는 부부와 어린 두 아들이 있다. 갈증과 배고픔에 시달리는 그들을 활기차게 이끄는 것은 바로 '발레야'이다. 이 가족들에게 발레야는 둘도 없는 충견인 동시에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결국 어렵게 도착한 마을의 집. 먹을 거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데, 발레야는 집 마당의 기니피그(꾸이, cui)를 잡아서 가져온다. 오랜 굶주림으로 키우던 앵무새조차 잡아먹은 가족에게 발레야는 식량도 조달한다.


  대농장주에게 푼돈을 받으며 소를 치게 된 가장 파비아노. 아이들은 양을 돌보는데, 발레야는 양몰이견으로도 활약한다. 외롭고 지친 아이에게 친구 노릇도 해주는 발레야는 진짜 자기 밥값을 해내고도 남는다. 솔직히 이 영화에서 발레야를 빼고서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개는 영화 속의 조연이 아니라 주연이다. 개 때문에 영화를 끝까지 보는 것은 참 드문 경우다. 얼마나 싹싹하고 영리하며 활기가 넘치는지 모른다. 물론 영화 속 가족의 처절한 밑바닥 삶도 놓치지 않고 보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Vidas secas'의 진정한 주인공은 발레야이다.


  나만 그런 인상을 받은 것은 아니다. 외국 논문에는 이 영화의 발레야와 가족의 관계를 라캉 이론을 적용해서 분석한 것도 있다. 라캉 이론에 개를 밀어넣다니, 참... 뭔가 아스트랄한 영화 평론의 세계를 목격한 느낌이었다. 아무튼 이 영특하고 충실한 개 발레야는 영화 내내 가족의 삶과 함께 한다. 그러다 발레야가 병이 드는데,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또 다시 길을 떠나는 가족은 발레야를 버린다. 그냥 두고 가는 게 아니라 안락사 시킨다. 아이들은 아빠가 개를 죽일 것이라는 알고 공포와 슬픔에 휩싸인다. 발레야도 자신에게 마지막 순간이 왔음을 직감한다. 가급적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주인을 안내한다. 마치 자신이 죽을 곳을 정하는 것 같다. 가만히 고개를 돌리고 기다리는 발레야. 마침내 총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린다. 이내 곧 가족은 그곳을 떠난다.


  발레야는 절뚝거리면서 집 앞 마당에 자리잡는다. 발레야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쇼트가 이어진다. 죽어가는 발레야는 가족들이 살던 집을 서글프게 바라본다. 마당에는 발레야가 가족들을 위해 잡았던 꾸이들이 몰려다닌다. 그 꾸이들을 잡아다 줄 가족은 이미 먼 길을 떠났다. 꾸이들을 바라보면서 발레야는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다.


  "우리도 사람답게 살아볼 수 있을까? 이런 삶은 정말 짐승과 다름없어."


  또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는 태양 아래 길을 떠나게 된 여자는 남편에게 한탄한다. 그러자 남편이 대답한다.


  "아니, 그건 불가능할 거 같아."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흙먼지 날리는 길을 걷는 일가족이 사라질 때까지 롱테이크가 이어진다. 그것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짐승처럼 사는 삶. 일가족은 자신들에게 충심을 다했던 개를 거두지 못했다. 어쩌면 그 지옥과 같은 삶을 그나마 온기있는 인간의 삶으로 만든 것은 '발레야' 덕분이었음에도... 


  개의 죽음은 그렇게 보는 이의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이 영화를 보려는 사람들은 영화학도, 영화광, 그리고 개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 정도나 될까... 발레야가 어떤 견종인지 찾아보았다. 브라질리언 테리어(Brazilian Terrier)이다.



*사진 출처: revistapesquisa.fapesp.b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