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상류층 출신의 젊은이가 있다. '마리오'란 이름을 지닌 그는 20대 초반에 파리에 들렀다가 우연히 사진 한 장을 보게 된다. 여자의 목을 감싼 수갑을 찬 두 손의 이미지였다. 헝가리 사진 작가 André Kertész의 그 사진은 청년 마리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로부터 2년 뒤,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 남아있던 그 사진의 인상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영화를 찍을 카메라를 샀고, 배우와 스태프로 친구와 지인들을 총동원한다. 자기 자신도 배우로 한 장면 출연했다. 그렇게 찍은 2시간짜리 영화에 그는 큰 기대를 건다. 그러나 영화는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영화는 그의 첫번째이자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영화의 진가를 알아봐 주는 이들이 조금씩 생겼다. 그러다 1966년에 브라질 정부에 의해 필름이 몰수되는 수모를 겪는다. 그의 영화가 에이젠슈테인과 푸도브킨 같은 러시아 영화 감독들의 영향을 받은, 말하자면 사회주의에 물든 '빨간색'의 영화라는 이유였다. 1964년에 집권한 군부 독재 정권하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필름은 어느 대학생의 손에 들어가게 되고, 그는 필름 복원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그렇게 영화는 다시 세상에 나와 관객들을 만난다. 영화의 제목은 'Limite(Limit)', 마리오 페이소토(Mário Peixoto)의 1931년 작품이다.


  영화는 당시 유행하던 온갖 종류의 영화 기법을 제멋대로 섞어 놓은 것 같다. 루이스 브뉴엘의 '안달루시아의 개(1929)'에 나오는 그 유명한 눈동자 장면도 비슷하게 나온다. 러시아의 감독들, 에이젠슈테인과 푸도브킨의 몽타주 기법을 따라한 장면들도 있다. 연관성 없는 사물들의 극도의 클로즈업 쇼트들이 정신없이 이어지기도 한다. 실험 영화 같은데도, 나름의 서사는 갖추고 있다. 다만 매우 불친절하다.


  초반부에 등장하는 보트에는 두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가 타고 있다. 그들은 마치 조난당한 것처럼 보인다. 여자 한 명은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데, 관객들은 여자의 생사 여부도 알 수 없다. 지치고 절망한 표정의 남자는 미동도 하지 않고 누워있는 여자를 바라본다. 남자와 거리를 두고 앉아있는 또 다른 여자도 기진맥진한 상태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떤 사이이며, 무슨 사연을 가진 걸까? 러닝 타임 2시간 동안 세 사람이 배에 타기 전의 행적에 대한 단서들이 차례대로 조금씩 주어진다. 마치 추리물 같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사물과 풍경의 이미지들이 관객들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무슨 영화가 이렇단 말인가, 난해함과 지루함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이 영화를 본 이들의 반응은 양극단으로 나뉜다. 잊혀진 걸작이라는 찬사가 있는가 하면, 과대평가된 졸작이라는 혹평도 있다. 브라질 영화사에서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명작으로 손꼽는다. 그렇다고 해서 세계 영화사적 의미도 동등하게 획득했다고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이 영화를 오늘날의 영화과 학생이 찍었다면 온갖 비아냥과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제작된 1931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그 모든 냉소와 조롱을 방탄복처럼 막아준다. 사실이 그러하다.


  이 2시간짜리 무성 영화가 펼쳐 보이는 기이한 이미지의 세계를 인내하기란 결코 쉽지않다. 그나마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다채롭게 사용된 클래식 음악들이다.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모음곡,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세자르 프랑크, 프로코피에프, 보로딘의 음악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그렇게 귀는 호강하지만, 눈은 파편화된 이미지에 혹사당한다. 보는 동안 쉬었다 다시 보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이 영화를 보려고 모인 사람들이 있다면 그곳에 가서 외칠지도 모른다.


  "모두 나가주세요. 이 영화는 진정한 영화광을 위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많은, 보통 사람들은 이런 영화를 보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다만, 영화광()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 그것도 뼛속 깊이 영화로 채워진 진정한 영화광들만이 이 영화의 시간을 견딜 수 있다. 보고 나서 이 영화에 열광하느냐 또는 실망하고 분노하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마음의 준비가 된 사람이라면 영상의 재생 버튼을 누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하는 이들에게 '진정한 영화광'이라는 호칭은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제목 'Limite'처럼 일반 관객과 영화광의 한계(limit), 그 경계(border)를 가늠할 수 있는 작품이다.  



*사진 출처: scielo.br 사진의 첫번째 이미지가 마리오 페이소토에게 영감을 주었던 사진 이미지다. 영화의 맨 첫 부분을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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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가끔 드는 생각이 있다. 학교 다닐 때 과제로 중간 기말 보고서 쓰듯이 매일 보고서 한 편씩 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 매우 건조한 문체로 꽤나 긴 글을 써내려가고 있는데, 이런 글을 찾아서 읽는 독자들은 어떤 이들일까, 때론 궁금해지기도 한다. 오늘 쓰는 글은 희곡 수업 기말 과제 같은 글이 될지도 모른다. 스위스 극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희곡을 독일의 SWF 방송국에서 TV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흑백 화면 속에 담긴 '노부인의 방문(Der Besuch der alten Dame, 1959)'은 원작에 충실한 무대 장치와 고전적 연출이 돋보인다. 이 작품은 뒤렌마트에게 극작가로서의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그의 대표작이다.


  원래 보려고 했던 영화는 지브럴 좁 맘베티 감독의 'Hyenas(1992)'였다. 그런데 영화 자료를 구할 수가 없었다. 이 영화의 원작이 뒤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이어서, 그럼 연극 공연으로 된 것을 한 번 보는 건 어떨까 싶었다. 희곡 수업도 내가 무척 좋아하는 수업이었다. 희곡 창작과 비평 수업을 열심히 들었었다. 오래 전 그 수업 시간들에 뒤렌마트는 만난 적이 없다. 성균관 대학교 출판부에서 내놓은 그의 희곡 '혜성'을 읽은 기억은 난다. 우선 '노부인의 방문' 희곡 대본을 읽어 본다. TV 영화에는 독일어 자막만 있어서 대본을 머릿속에 들여놓고 볼 수 밖에 없다.


  쇠락한 도시 귈렌의 역 앞은 부산스럽기만 하다. 이 도시 출신의 백만장자 클레르 차하나시안 여사가 이제 막 도착할 예정이다. 궁핍한 귈렌의 사람들은 부자의 투자를 받아서 도시를 재건할 꿈에 부풀어 있다. 그들 앞에 마침내 등장한 노부인은 엄청난 돈으로 가득한 장밋빛 미래를 약속한다. 단, 조건이 하나 있다. 자신이 가져온 관에 들어갈 사람 하나의 목숨이 필요하다는 것. 바로 노부인의 17살 때 연인이었던 알프레도이다. 노부인의 끔찍한 제안에 시장은 인간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즉각 거부의 뜻을 밝힌다.


  "그렇다면 기다려야 겠군요."


  그렇게 클레르가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은 차츰 변해간다. 식료품점을 하고 있는 알프레도의 가게에 찾아와 비싼 물건을 마구 가져가면서 외상 장부에 달아놓는다. 언젠가 노부인에게서 받을 돈을 생각하며 도시의 사람들은 분에 넘치는 소비를 하게 된다. 알프레도는 자신을 향한 무언의 압박이 커지고 있음을 느낀다. 시장과 경찰, 목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지만 그들은 모두 거절한다. 궁리 끝에 도시를 떠나려 하자 사람들은 그를 막는다. 과연 그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뒤렌마트의 작가 경력의 시작은 추리 소설이었다. 생계를 위해서 쓴 추리 소설이었지만, 그 작품들은 꽤나 인기를 끌었다. 그가 추리 소설에서 보여준 법과 정의, 죄와 심판에 대한 관점은 독특해서 그에 대한 법학 쪽 논문들도 많다. 희곡 '노부인의 방문'도 뒤렌마트의 추리 소설과 같은 주제를 다룬다. 과연 법은 정의를 실현하는가? 공정한 심판이 법 제도로 가능하지 않다면, 다른 방식을 택하는 것은 어떠한가? '노부인의 방문'은 이런 질문들을 차례차례 쏟아놓는다. 


  왜 클레르는 알프레도의 목숨을 원하는가? 클레르가 17살 때, 사귀던 알프레도의 아이를 가졌지만 그는 부유한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클레르를 버린다. 친자 확인 소송을 제기했던 클레르는 패소한다. 알프레도가 증인을 매수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온갖 비난을 받으며 비참하게 귈렌을 떠나야 했던 클레르는 이제 돈으로 자신의 정의를 실현하고자 한다.


  흑백 화면 속에 재현된 귈렌은 음울하고 퇴락한 인상을 준다.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세트들은 인물들에게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중간 중간에 들어가는 음악들은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관객들은 그 어긋난 음조들에 깃들인 불안과 공포가 서서히 커져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알프레도의 죽음이 예정되어 있으며, 귈렌의 사람들은 노부인이 요구한 정의를 실현하고 돈을 받을 것임을 알게 된다. 


  클레르 역을 맡은 엘리자베스 플릭켄쉴트(Elisabeth Flickenschildt)의 연기는 거울처럼 정확하다. 응축된 분노를 냉혹한 얼굴 속에 드러내는 압도적 연기는 TV화면을 가르고 나올 것만 같다. 알프레도 역의 한스 만케(Hans Mahnke)는 다가오는 죽음을 예감하고 서서히 무너지는 인물의 내면을 절제된 연기로 보여준다. 이 영화의 분위기는 마치 1920년대 독일 표현주의 영화를 연상케 하는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과장되거나 지나친 상징을 내세우지 않는다. 뭐랄까, 중용의 미덕을 잘 지킨 아주 표준적인 무대 연출 같은 인상을 준다. 오늘날의 화려하고 다양한 현대적 연출 방식과 비교하자면 교과서처럼 보인다. 이 연극을 영화로 처음 만나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다. 


  '노부인의 방문'은 표면적으로는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뒤렌마트의 신랄한 경고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연극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 죄의 심판, 법 제도와 정의에 대한 여러 의문들을 던진다. 관객은 알프레도의 죽음이 귈렌의 모든 사람들이 모인 시민 법정에서 언도된 것임을 알고 있다. 귈렌의 사람들은 자신들은 정당하며, 그 죽음에 대한 그 어떤 책임도 없음을 선언한다. 그리고 그들은 알프레도를 죽이고(이 장면은 여러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는 상징적인 행동으로 표현된다. 희곡 대본에도 그렇게 써있다) 모두 손수건으로 손을 닦는다.


  뒤렌마트가 바라본 인간은 탐욕에 찌들어 있으며, 법과 제도는 탐욕으로 인한 범죄를 공정하게 징계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 인간이 만든 그 어떤 형식적 제도와 규범도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로 기능할 수 없다고 본다.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귈렌을 찾은 방문자 클레르 차하나시안의 정의는 돈과 타락한 시민들의 도움으로 구현된다. 노부인은 오래전 자신을 짓밟은 남자와 법 제도를 그렇게 심판한다. 



*사진 출처: prism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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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언 서머(Indian summer)는 마치 여자와 같다. 농익은, 뜨겁고 열정적이지만 변덕스러운 여자. 오직 자신이 원할 때에만 오가기 때문에 언제 올지, 얼마나 머물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이 있다. 그레이스 메탤리어스(Grace Metalious)가 1956년에 쓴 이 소설은 그야말로 열풍이라고 할 정도로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주 평범해 보이는 마을 주민들의 숨겨진 비밀과 위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매카시즘의 광풍이 이제 막 가라앉기 시작했지만, 그 즈음의 미국 사회는 매우 보수적이었다. 소설 'Peyton Place'는 그런 답답한 미국인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청량음료처럼 느껴졌다. 불륜, 강간, 낙태, 살인과 같은 사건들이 일어난 어느 마을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미국인들에게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자유'를 누리는 것과도 같았다. 평범한 주부였던 그레이스 메탤리어스는 서른 살에 쓴 그 소설로 말그대로 돈방석에 앉는다.


  20세기 폭스사는 때를 놓칠세라 재빨리 영화로 만든다. 1957년에 마크 롭슨이 감독한 'Peyton Place'의 주연은 라나 터너(Lana Turner)가 맡았다. 매력적인 외모의 과부로 양장점을 하며 고등학생 딸을 키우는 코니 맥켄지 역이었다. 라나 터너는 뇌쇄적인 핀업 걸(pin-up girl)로 헐리우드에서 경력을 쌓았다. 외모에 비해서 딸리는 연기력은 늘 문제였다. 출연작들에서 보여준 연기력은 들쑥날쑥했으며, 복잡한 남자 관계와 사생활은 언제나 가십거리였다. 이 여배우에게 남자를 갈아치우는 일은 마치 숨쉬는 일과도 같았다. 영화로 벌어들인 돈은 썩어날 정도로 많았다. 다만 정말로 눈에 차는 남자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만난 남자가 조니 스톰파나토. 당시 로스앤젤레스를 장악한 마피아의 똘마니쯤 되는 인간이었다. 라나 터너는 이 남자를 정말로 좋아한 모양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반반한 얼굴과 보기 좋은 몸 뿐이었던 조니와 같이 살기 시작했다. 'Peyton Place'를 찍었을 무렵, 라나의 연인은 조니였다.


  영화 'Peyton Place'의 줄거리를 읊는 건 그다지 재미없다. 그보다는 원작자 그레이스 메탤리어스와 주연 배우 라나 터너, 전혀 다른 것 같지만 어떤 면에서는 비슷한 인생 여정을 걸었던 그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흥미로울 것이다. 그 두 사람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는 것, 그리고 그 때문에 인생을 진창길에 처박히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산다는 건

  벌판을 가로질러 가는 것 같은

  쉬운 일이 아니다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시 "


  그레이스와 라나, 성공한듯 보이는 두 여자에게도 삶은 쉽지 않았다. 무료한 삶을 견디기 위해 골방에 틀어박혀 썼던 소설 한 편으로 인생역전을 이룬 그레이스. 인기 여배우로 돈과 명성을 거머쥔 라나. 두 사람은 삶의 벌판길에 마주한 욕망의 구덩이에 자신을 내던진다. 그레이스는 세 명의 아이를 내팽겨치고 흥청망청 살아간다. 학교 교장이었던 남편과도 이혼한 후, 자신이 원하는 남자와 술독에 빠져 살았다. 라나의 삶도 곤경에 빠진다. 조니가 문제였다. 질투심에 미친 조니는 라나의 영국 촬영장까지 따라와서 난동을 부렸다. 당시 상대 배우였던 숀 코너리에게 총을 들고 위협했다가 오히려 얻어맞는다. 그 일은 라나에게 조니를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남자 때문에 배우 경력까지 위협받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조니의 뒷배인 마피아가 라나에게 돈을 뜯어내려고 협박하는 것도 문제였다.


  결국 사건이 터진다. 1958년, 라나의 집에서 조니가 칼에 찔려 사망한다. 살인 용의자는 라나의 딸 셰릴이었다. 셰릴은 엄마와 다툰 조니가 자신을 폭행하려 해서 어쩔 수 없었다며 정당방위를 주장한다. 당시 셰릴의 나이는 14살이었다. 과연 사춘기 십대 소녀가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진짜 범인은 라나가 아닌지 사건의 실체를 두고 떠들썩할 수 밖에 없었다. 셰릴은 보호 감호 처분을 받고, 라나의 법정 증언은 최고의 연기처럼 보인다며 세간의 비아냥을 듣는다. 영화 'Peyton Place'에는 라나가 연기한 맥켄지 부인이 살인 사건 재판에서 증언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쩌면 그 장면이 연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꽤나 큰 시련이었지만 라나의 배우 경력은 이어진다. 더글라스 서크 감독의 'Imitation of Life(1959)'는 라나의 명실상부한 재기작이 된다. 이후로도 영화와 TV 시리즈물에서 꾸준히 얼굴을 내비치지만, 배우로서 내리막길은 어쩔 수 없었다.


  라나 터너가 엄청난 스캔들을 견뎌낸 것과는 달리, 그레이스는 그대로 몰락한다. 서른 아홉의 나이에 지나친 음주로 인한 간경변으로 세상을 뜬다. 마지막 연인에게 남은 재산을 다 준다는 유언장을 두고 그레이스의 자녀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그레이스에게는 남아있는 돈은 커녕 오히려 빚이 있었다. 그레이스가 서른 아홉으로 세상을 뜬 그 해 1964년, 'Peyton Place'의 TV 시리즈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1969년까지 이어진 그 시리즈 드라마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제작사인 20세기 폭스 텔레비전에 막대한 흥행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단 한 푼도 그레이스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술에 절은 상태로 모든 저작권을 팔아넘겼기 때문이다.  


  "어느 날 깨어났을 때, 자신이 가진 모든 게 진정으로 자신이 전혀 원하지 않던 것임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그레이스는 그런 글을 남긴 적이 있다. 갑작스럽게 얻은 부와 명성으로 거침없이 욕망을 향해 스스로를 내던졌던 그레이스는 그 진창길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Peyton Place'의 영화 초반부에 맥켄지 부인의 딸 앨리슨이 고교 동창 노먼과 산길을 오르는 장면이 나온다. 앨리슨은 자신만이 아는 비밀의 장소라며 안내하는데, 노먼은 그 산에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었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 길에 있는 'Road's End'라는 팻말이 유독 내 눈길을 끌었다. 어쩌면 이 영화와 관련된 두 여자, 그레이스와 라나도 거침없이 내달린 욕망의 인생길 어디에선가 그 팻말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결코 멈출 수 없었던 그 두 사람의 삶은 쓸쓸한 말로를 보여준다.


  그렇게 'Peyton Place'는 두 여자의 절제되지 않은 욕망의 서사로 남았다. 더 나아가 이 작품은 억압되고 닫혀있는 미국인들의 내면에 욕망의 분출구로서 자리하게 된다. 이제 영화와 TV는 이전 시대와는 달리 성과 욕망을 대담하게 다루기 시작한다. 그레이스 메탤리어스가 자신이 살던 동네의 온갖 추문을 그러모아 창조한 Peyton Place는 어느새 미국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진 출처: nhhc.org 작가 그레이스 메탤리어스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배우 라나 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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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 속으로 떠나는 명상 여행'. 오늘 본 KBS '동물의 왕국'의 제목은 그러했다. 바다 속에서 부유하는 해파리떼, 새끼와 함께 깊은 바다를 여행하는 혹등고래, 시시각각 변하는 사막의 모래... 뭐 이런 자연 세계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명상을 하듯 편안히 호흡하고, 마음을 편히 갖자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좀 특이한 구성이기는 하다. 오늘 본 내용에서는 사자나 하이에나, 상어나 독수리 같은 동물은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명상하는 마음으로 보다가 그런 포식자들 나오면 시청자는 기겁할 것이다. 평화롭고 아름답지만 재미는 없다. 비로소 새삼 깨닫는다. 이런 자연 다큐에도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Ken Burns가 2001년에 만든 PBS TV 다큐 시리즈 'Jazz'는 모두 10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1917년부터 2001년에 이르는 재즈의 역사를 아우른다. 내가 이번에 본 것은 3편 'Our Language(1924-1928)'과 4편 'The True Welcome(1929–1935)'이다. 그 두 편을 보면서 느낀 것은 그렇다. 무엇보다 감독 Ken Burns가 얼마나 재즈를 마음 깊이 아끼고 사랑하는지 그냥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잘 전달하기 위해 서사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애썼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음악 다큐에 아무리 좋은 음악이 내내 흐른다고 해도, 거기에 매혹적인 이야기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Ken Burns가 생각한 방식은 재즈 뮤지션들의 인생 이야기를 옷감을 짜듯 씨실과 날실로 엮어가는 것이다.


  "야, 너 그따위로 연주할래? 한 번만 더 그런 거지 같은 연주하면 패버린다."


  이렇게 험한 말을 쏟아내는 사람은 누굴까? 1920년대와 30년대에 활동했던 블루스의 여왕 베시 스미스(Bessie Smith)다. 타고난 재능으로 9살때부터 길거리 공연을 했던 베시 스미스는 처음엔 가스펠 공연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 블루스로 전향했는데, 베시는 술 문제와 더러운 성격으로 유명했다. 반주를 맡은 연주자가 시원찮은 연주를 하면 걸걸한 입담을 보여주었다.


  3편은 재즈가 어떻게 흑인들의 영혼과 정서를 대변하는 음악이 되어갔는지 그 기원을 살펴본다. 'Our Language'는 재즈 음악에 깃들인 흑인들의 정체성을 가리킨다. 그 중심에는 가장 중요한 두 명의 뮤지션이 있었다.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과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이 그들이다. 그 두 명이 흑인으로서 재즈 초창기의 독창성을 확립해 나갔다면, 또 다른 한 편에는 백인 재즈 뮤지션들이 있었다. 베니 굿맨(Benny Goodman)과 빅스(Leon Bismark, 일명 Bix)는 자신들만의 재즈 언어로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재즈 연주자들의 어린 시절은 대개가 불우했다. 베니 굿맨은 뛰어난 재능으로 어려서부터 연주활동을 했는데, 그는 부모를 대신해 가장 역할까지 감당해야했다. 'Am I Bule?'로 유명했던 에델 워터스(Ethel Waters)는 사창가에서 태어나서 강한 성격으로 성장했다. 그들은 밑바닥 인생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고, 그 정서는 재즈라는 음악의 태생과도 맞닿아 있었다. 가난하고 주변부의 인생을 사는 흑인들에게 재즈는 삶이고 호흡이었다. 그러나 재즈는 흑인들만의 음악에서 벗어나 경계를 넓혀가기 시작한다. 4편 'The True Welcome'은 재즈가 대중적 인기를 얻어가는 데에 기여한 루이 암스트롱과 듀크 엘링턴의 삶과 음악을 비중있게 다룬다.  


  즉흥 연주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만능 연주자 루이 암스트롱, 재즈에 '우아함'과 '긍지'를 불어넣은 듀크 엘링턴은 1930년대를 대표하는 재즈의 거목들이었다. 우선 그들은 대공황의 힘겨운 파고를 넘어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을 가장 괴롭혔던 것은 인종차별이었다. 백인들만 출입할 수 있는 클럽에서 백인들을 위해 연주할 때가 많았으며, 대규모 공연이나 연주는 하기 어려웠다. 그들을 반겼던 것은 유럽이었다. 유럽 순회 공연을 통해 루이 암스트롱과 듀크 엘링턴은 독보적 명성을 얻는다. 


  'White Only'라는 글씨가 곳곳에 선명하게 있었던 시대. 흑인 재즈 뮤지션들이 이런 저런 활동의 제약을 받았던 반면에, 백인 재즈 밴드를 이끌었던 베니 굿맨은 많은 환영을 받았다. 특히 전국으로 생중계되었던 CBS의 라디오 프로그램 'Let's Dance'로 그의 명성은 커져갔다. 베니 굿맨은 재즈의 새로운 기원 '스윙'을 만들어 낸다. 그런 걸출한 재즈 뮤지션들이 있었던 시대가 바로 1930년대였다. 

 

  켄 번즈는 재즈의 역사가 바로 뛰어난 재즈 뮤지션들의 이야기임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들 각각의 인생 이야기는 재즈에 다양한 색채를 입힌다.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공기가 재즈의 언어를 만들어냈다는 점도 분명하게 드러낸다. 인종차별, 대공황과 금주법, 마피아가 활개를 치던 시대를 관통해야했던 재즈 뮤지션들의 역경과 비애가 바로 그것이다. 그 시절, 루이 암스트롱은 마피아 매니저 때문에 혹사당해서 입술이 찢어지는 심각한 부상을 입기까지 했다. 


  지나친 음주 문제로 28살에 요절한 백인 코넷티스트 겸 작곡가 빅스(Bix), 현란한 기교로 '4손의 사나이'로 불리웠던 피아니스트 아트 테이텀(Art Tatum)도 그 시절의 재즈 뮤지션들이었다. 그런 다채로운 뮤지션들의 음악으로 꾹꾹 눌러담은 이 놀라운 재즈 다큐는 결코 자막 같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재즈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 다큐 시리즈를 며칠에 몰아서 볼 것이 아니라, 진짜 아껴두었다가 하나씩 보는 것을 추천한다.


  3편과 4편은 재즈라는 음악이 어떻게 그 시대 사람들과 더불어 호흡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제 바야흐로 스윙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흑인들만의 음악에서 벗어나 인종적 경계를 허물며 미국의 음악, 그 영혼의 중심에 다가서는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켄 번즈는 다양한 스틸 사진과 영상 자료, 여러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 길고 놀라운 여정을 흥미있게 이끌어 나간다. 이 다큐를 보는 이들은 그가 진정한 '재즈 이야기꾼'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사진 출처: pb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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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형편없는(lousy) 결정이야!" 


  마리의 부모는 모두 농인()이다. 정상으로 태어난 마리는 결혼을 했는데, 자신의 아기가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언어치료사인 마리는 새로운 치료 방법인 인공와우 수술을 자신의 아들에게 해주려고 한다. 그런 마리의 결정을 부모는 이해하지 못한다. 인공와우 수술은 위험하며 그 결정이 형편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수술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는 마리의 뜻은 단호하다. 남편 크리스도 마리의 결정에 찬성한다.


  크리스에게는 농인인 형이 있다. 형 피터는 농인인 부인 니타와의 사이에서 아이 셋을 두었는데, 아이들 모두 농아다. 이제 5살이 된 첫째 딸 헤더의 인공 와우 수술 여부를 두고 피터와 니타 부부도 고심한다. 피터의 부모는 손녀 헤더의 미래를 위해서 수술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피터와 니타는 인공 와우 수술이 아이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라며 내켜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피터는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부모와 갈등을 겪는다. 과연 헤더는 인공 와우 수술을 받을 수 있을까?


  조쉬 애런슨 감독이 2000년에 만든 다큐 'Sound and Fury'는 인공 와우 수술을 두고 농인 가정에 일어난 갈등과 대립을 담아낸다. 당시의 미국에서 인공 와우 수술은 청각 장애에 대한 새로운 치료 방법으로 막 저변을 넓혀가던 시기였다. 다큐를 보면 그 신기술을 두고 청각 장애인 커뮤니티 내부에서도 의견이 양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인공 와우를 귀에 삽입하는 침습적 수술 방식에 농인들은 두려움과 거부감을 느낀다. 피터와 크리스 형제 가족들에게 닥친 갈등과 대립의 시작도 바로 그 수술 때문이었다. 농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 피터와 니타 부부는 헤더에게 수술이 필요없다고 마음을 굳힌다.


  "그건 네가 해야할 결정이 아냐. 헤더가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구!"


  헤더의 할머니는 그렇게 외친다. 그러나 피터의 뜻은 확고하다. 딸의 미래를 위해 가장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은 부모인 자신이며, 자신의 결정은 수술을 해주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내 니타도 피터와 뜻이 같다. 농인의 정체성을 가지고도, 직업적 성취를 이루고 행복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믿는다. 부부에게는 가족의 화합도 중요하다. 헤더가 들을 수 있게 되면 듣지 못하는 자신들에게서 멀어질 것이라며 염려한다. 부부 일심동체라는 말을 이 다큐에 나오는 피터와 니타 부부만큼 잘 보여주는 이들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동생 크리스 부부의 결정을 비난하고, 헤더의 조부모와도 극렬히 대립한다. 아이의 인공 와우 수술 문제를 두고, 이 가족은 극심한 분노와 논쟁에 휩싸인다. 


  아니, 듣지 못하는 딸에게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수술을 해주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지금 시점에서 이 다큐를 보는 이들은 아르티니안 가족에게 불어닥친 분노와 갈등의 광풍(fury)을 보는 것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인공 와우 수술이 지금은 표준적 치료 방법이 되었지만, 이 다큐가 만들어진 20년 전에는 획기적인 신기술로 그에 대해 의구심과 불안이 팽배했었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아이의 수술 결정을 두고 벌어지는 가족 갈등은 정상인과 농인의 현실 인식, 청각 장애인 커뮤니티 내부의 갈등과도 같은 여러 층위의 요인들이 겹쳐 있다. 


  "몸 속에 그런 이상한 기계를 집어넣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새로운 것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피터와 니타 부부는 헤더에게 수술이 필요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헤더의 할머니는 헤더에게 수술을 해주지 않기로 결정한 아들 내외를 인정할 수 없다. 맹렬히 대립하며 극심한 논쟁을 이어가던 끝에 피터는 결국 '분리'를 택한다. 피터 부부는 살던 뉴욕을 떠나 메릴랜드로 이사해 버린다. 헤더는 농아 학교에 다니게 하고, 부부는 가족과 단절된 채 그곳 청각 장애인 커뮤니티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낸다.


  다큐는 그렇게 끝나버린다. 정말 딸에게 수술 안해주고 살게 할 건가? 피터와 니타 부부의 그 완고하기 짝이 없는 믿음과 결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분노와 한숨을 내쉬게 만든다. 본질적으로 그들 부부는 아이가 들을 수 있게 되면 가족과 멀어질 거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아이에게 수술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보다는, 정체성의 혼란과 완벽한 정상인이 될 수 없다는 좌절감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는 그들 부부가 못 배운 사람도 결코 아니다. 좋은 교육을 받았고, 중산층으로서 여유있는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과연 아이의 미래를 위해 어떤 중요한 선택을 해야만 할 때, 부모가 취해야할 최선의 태도는 무엇일까? 'Sound and Fury'는 청각 장애인 부모가 아이의 수술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을 통해 거기에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과 여러 복잡한 요인이 개입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부모가 자신의 살아온 경험과 가치관에만 의지할 때 얼마나 편협하며 무모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 피터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알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열려 있는 마음으로 다양한 의견을 듣고 숙고하는 자세임에도 그 부부는 그렇지 못했다. 그 결과, 수술을 받고 싶어하는 헤더의 마음도 제대로 헤아릴 수 없었다.


  헤더는 그 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감독 조쉬 애런슨은 사람들로부터 이 가족의 후일담에 대한 수많은 질문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Sound and Fury: 6 Years later(2006)'를 만들었다. 헤더는 다큐가 나온 이후 3년 뒤인 9살 때에 인공 와우 수술을 받았다. 피터와 니타 부부는 수술을 받고 싶다는 헤더의 뜻을 받아들였고, 결국 마음을 바꿨다. 2006년에 만든 다큐에서 중학생이 된 헤더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삶 속에 새롭게 적응하며 잘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수술로 변화된 딸을 보며 니타도 인공 와우 수술을 받았다. 그들 가족은 수술을 두고 벌였던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봉합했다.


  헤더는 이후 조지타운 대학과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현재는 법조인이 되기 위한 경력을 쌓아 나가고 있는 중이다. 다큐 'Sound and Fury'는 청각 장애인 가족에게 일어난 갈등의 여정을 통해,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가치관과 문화적 배경의 차이가 가져올 수 있는 결정의 파장을 들여다 본다. 결국에는 소통과 이해가 분쟁을 풀어가는 가장 중요한 열쇠임을 관객들은 깨닫게 된다.



*사진 출처: aronsonfilms.com 

 


*내일은 글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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