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밍량의 '데이즈(子, 2020)'를 보고나서 나는 그의 '애정만세(1994)'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주인공 메이는 홀로 공원을 걷다가 갑자기 처철하게 목놓아 운다. 그 영화를 본 지가 꽤 오래되었는데도 나는 아직도 그 장면을 잊지 못한다. 메이의 울음은 소통에 대한 갈망과 결코 해소할 수 없을 것 같은 외로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데이즈'를 보고 메이의 울음을 떠올린 것은 그와는 다른 의미에서이다. 나는 차이밍량의 창작자로서의 마지막을 보았다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슬픔을 느꼈다. 이 영화는 그의 영화에 대한 종언()이나 다름없다.


  강(이강생 분)은 지독한 목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통증 때문에 꽤 견디기 힘든 침술 시술을 받기도 한다. 방콕에 사는 젊은 청년 논은 옷 장사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지만, 마사지 일도 부업으로 하고 있다. 강은 방콕의 호텔에서 논에게 마사지를 받는다. 둘은 거리의 음식점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 헤어진다. 이것이 '데이즈'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러닝 타임 2시간 6분을 어떻게 채운 것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지루하고 진부하며 보잘 것 없는 롱 테이크(long take)들의 연속이라고. 적게는 1~2분, 길게는 6~7분에 이르는 쇼트들이 계속 이어진다. 내가 각각의 쇼트들을 세어본 것이 아니라서, 추측하건대 이 영화 전체의 쇼트들은 50개 미만일 것이다.


  이 영화의 비극은 영화를 본 관객이 '게이 포르노'라고 쏟아놓는 독설을 듣는 것에 있지 않다. 이것은 창작자의 종말과도 같다. 한때 눈부신 재능으로 빛났던 영화 감독이 이렇게나 망가질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참담한 기분이 들게 한다. 나는 '흔들리는 구름(2005)' 이후로 차이밍량의 영화를 끊었다. 뭔가 그의 영화 세계가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데이즈'를 본 것은 그의 현재를 한 번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롱 테이크는 낡아빠진 구닥다리 유물의 반복적 재현이며, 극도로 절제된 대사로 의도적으로 무성 영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시도는 자기 기만일 뿐이다. 차이밍량은 베를린 영화제 상영 때에 자막 없이 상영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영화의 대사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부수적인 것이며, 영화의 시원(原)인 무성 영화로 돌아갈 필요성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강은 논과 관계를 마치고 호텔에서 선물로 오르골을 건네는데,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채플린의 '라임라이트(Limelight, 1952)' 주제곡이다. 물론 '라임라이트'는 유성 영화다. 그러나 '채플린'이란 인물은 무성 영화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차이밍량은 '데이즈'를 통해 지금 시대 영화의 모든 것을 조소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그런 비웃음은 공허하게 울리며 흩어진다.


  차이밍량의 초기 영화들, '애정만세(1994'), '하류(1997)', '구멍(1998)'이 그토록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던 것은 그 영화들이 가진 보편성에 있었다. 현대인의 고독, 상실감, 소통에 대한 갈망을 자신만의 영화 언어로 그려낸 그에게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영화적 영감을 소실한 것 같다. 창작자는 작품으로 관객, 또는 독자와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겪은 고통과 슬픔을 일방적으로 늘어놓으며, 공감과 연민을 '구걸'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길가의 걸인을 떠올리게 만든다. 차이밍량은 '데이즈'로 자신의 고통을 위무받고 싶어하며, 더 나아가서 걸인처럼 관객에게 그것에 대한 동의와 연민을 구걸하고 있다. 참담한 일이다.


  이 영화를 좋은 영화이며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하려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그건 그 사람들의 말이고, 해야할 일일 것이다. 나는 내 글을 쓰며, 나의 일을 할 뿐이다. '데이즈'는 결코 좋은 영화가 아니다. 마치 아마추어가 어설프게 찍은 퀴어 영화 같은 인상을 준다. 이 영화의 간단한 요약은 '늙은 게이의 그저 그런 나날들'이 될 것이다. 이강생이 분한 '강'은 젊은 게이 '논'의 미래이다. 늙고 아픈 육체와 젊고 매끈한 육체는 같은 시간대, 공간 속에 위치하고, 그 둘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차이밍량이 보여주는 이런 대비는 영화적으로 하등 새로울 것이 없다. 나는 이것을 비평적으로 포장할 그 어떤 의지도 갖고 있지 않다.


  어쩌면 차이밍량은 더이상 영화를 찍고 싶어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좋은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흘러갔다. '데이즈'는 그의 나태함과 영화적 상상력의 부재를 여실히 입증한다. 차이밍량은 이제 은퇴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창작자로서의 그의 진정한 종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끝을 보는 것은 그의 영화를 아끼고 사랑했던 이들에게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나는 '애정만세'의 메이처럼 목놓아 울고 싶은 기분마저 들었다. 



*사진 출처: hollywoodrepor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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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큰 저택을 청소할 수 있겠어?"


  여자는 자신의 가사 도우미들에게 웃으면서 그렇게 묻는다. 여자는 한창 건축 중인 자신의 대저택을 둘러보는 중이다. 이 집은 여자에게는 평생의 숙원과도 같다. 여자는 그 집에 '베르사유 궁전(Palace of Versailles)'이란 이름을 붙였다. 정관사 'The'가 붙지 않았으니, 진짜 베르사유 궁전의 미국판쯤 된다고 할 수 있을까? 정말로 어마어마한 저택이기는 하다. 여자의 이름은 재키, 남편은 데이비드 시겔. 미국에서 부동산과 리조트 사업으로 엄청난 부를 쌓은 재력가이다.


  로렌 그린필드가 2012년에 제작한 다큐 '베르사유의 여왕(The Queen of Versailles)'은 재력가 부부의 화려한 일상을 촬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은 무려 17개의 욕실이 있는 대저택인데, 새로 짓는 베르사유 궁전은 30개가 될 거라고 재키는 자랑한다. 오랫동안 재키는 베르사유 궁전의 화려함과 웅장함을 본떠서 만드는 새 저택에 어울릴 온갖 앤티크 가구들이며 장식품들을 사들였다. 그것들을 보관하는 전용 창고까지 있을 정도다. 이제 그 '꿈의 집'이 지어지기를 기다리는 일만이 남았다, 고 생각한다.


  부자라고 인생이 그렇게 순탄하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2007년,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금융 위기가 이 부부의 일상을 뒤흔든다. 거칠 것 없었던 사업은 자금 흐름이 막히면서 직원들의 대량 해고, 은행의 압류, 자산 매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다큐를 제작하는 감독에게 이건 생각지 못한 '호재'였는지도 모른다. 급전직하하는 부자의 모습을 담아낼 기회가 흔하겠는가? 꿈의 집 베르사유 궁전의 건축은 중단되고, 그들이 살고 있는 대저택의 일상에도 변화가 생긴다.


  입양한 재키의 조카 한 명을 비롯해 여덟 명에 이르는 아이들을 돌보는 유모와 가사 도우미들, 집안일을 하는 사람들이 우선 줄어든다. 그러자 집안은 재키가 키우는 개들의 배설물들이 나뒹굴며, 수족관의 물고기와 키우던 도마뱀이 죽어 나간다. 주방도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아이들은 제멋대로이며 어질러 놓기 바쁘다. 은행에서는 데이비드의 돈줄을 막고 있고 그는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재키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엄청나게 많은 물건을 사들이고, 남편의 우울한 기분을 달래준다며 성대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기도 한다. 재키는 34세에 결혼한 이후로 그렇게 물쓰듯 돈을 쓰며 살아왔다. 그때 데이비드의 나이는 65세. 그는 2번의 이혼 경력이 있는 사업가로 재키는 흔히 말하는 그의 '트로피 와이프(trophy wife)'였다.


  재키의 인생 역전은 미인대회에서 시작되었다. 공대를 나와서 엔지니어로 IBM에서 일하기도 했던 여자는 다닥다닥 붙어있는 칸막이 사무실에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뉴욕으로 가서 모델일을 하다가 미인 대회에 출전한다. 데이비드를 만난 것도 그 대회의 파티에서였다. 그들의 결혼 생활은 꽤 순탄하게 이어져 왔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돈 가뭄'에 늙은 남편은 화가 난 상태고, 여자는 삶의 방식을 바꾸고 싶은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다. 이 부부는, 그리고 이 집의 아이들은 이 위기를 잘 견딜 수 있을까...


  감독 로렌 그린필드는 재력가 부부의 삶에 닥친 풍랑을 감각적으로 담아낸다. 거기에는 부자들의 일상에서 잘 보이지 않는 고용인들의 목소리도 들어있다. 재키의 아이들을 돌보는 필리핀 유모는 돈을 벌어서 죄다 고국의 가족들에게 부친다. 정작 자신의 어린 아들은 못보고 지낸지가 꽤 되었다. 유모에게는 부양해야할 친정 식구들도 여럿이다. 화려한 저택에서 떨어진 한 귀퉁이 작은 조립식 건물은 오로지 침실 한 칸으로 되어있다. 침대는 접이식으로 매우 비좁은 공간이다.


  "우리 아버지는 시멘트로 된 집 한 채를 갖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어요. 그런데 그걸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죠. 그리고 결국 시멘트 무덤에 누워계세요."


  필리핀 보모는 그렇게 말하며 눈물을 훔친다. 자신이 돌보는 이 집구석의 아이들은 이미 수십 대의 자전거가 있는데도 월마트에 가서 자전거며 장난감과 물품들을 미친듯이 사들인다. 그렇다.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재키는 남편의 사업이 어찌 되든 자신이 받는 스트레스를 값비싼 캐비어 통조림으로 달랜다. 보톡스 시술도 거를 수 없다. 이 여자는 자신의 베르사유 궁전이 지어지지 못할까봐 가슴 아프고 조바심이 난다.


  다큐는 이 부부의 경제적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는 도중에 끝이 난다. 세상에서 부자 걱정하는 게 가장 쓸데없는 일이다. 이 부부의 현재는 평화롭다. 데이비드의 사업은 위기를 넘겼고, 재키의 베르사유 궁전은 이제 곧 완공을 앞두고 있는 모양이다. 이 대저택은 미국에서 4번째로 값나가는 집이며, 추정가만 해도 3400억이다. 팔려고 내놓아도 살 만한 사람이 별로 없을지 모른다. 재키의 꿈은 이뤄질 것이다.


  그런데 이 다큐의 반전은 부자의 시련과 곤궁(?)을 그려낸 것에 있지 않다. 이 다큐는 그 화제성 덕분에 2012년 선댄스 영화제, 브리스번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런데 데이비드 시겔의 심사가 무척 불편했던 모양이다. 그는 이 다큐로 자신의 사업체와 관련된 명예가 손상되었다며 제작을 지원한 미국 독립 영화 협회(IFTA)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무려 3년에 이르는 법적 공방이 계속 되었다. 결국 다큐의 저작권에 일정 부분의 지분을 갖는 것으로 감독과 제작사는 합의를 해야했다. 부자 성질 건드리면 뒤끝도 그렇게 지독하다.


  문득 오래전 공부할 때 들었던 '영화와 법' 강의가 떠오른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적인 문제들에 대해 다루는 강의였다. 변호사 양반이 퇴근한 늦은 저녁에 하는 강의였다. 한 학기 동안 배우면서 내가 느낀 것은 그랬다.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에 그리 관대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 명예 훼손은 '사실의 적시()'와는 관계없이 적용되는 죄목이라는 것. 어쨌든 만약에 대비해서 영화 제작을 하는 이들은 제작의 마지막 단계에서 법률적 조언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다큐 제작의 경우에는 실제 인물과 사건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더 많은 것들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베르사유의 여왕'은 돈이 썩어나가게 많은 부자에게 닥친 꽤나 심각한(?) 일상의 위기를 면도칼처럼 예리하게 잘 포착해 낸다. 그것이 궁금한 이들이라면 이 다큐가 그 궁금증을 조금은 풀어줄 것이다. 그런데 엄청난 부자라고 해서 그렇게 삶이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그들이 느끼는 주관적 행복은 관객이 보는 것과는 다를 수 있다. 재키의 첫째 딸 빅토리아는 2015년에 약물 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떴다. 부부는 딸에게 생긴 비극을 이 다큐의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다큐를 본 이들이라면 과연 그럴까, 하고 생각할 것이다. 대저택에 사는 그 가족들의 내면이 무질서와 공허함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베르사유의 여왕'이 입증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dogwoo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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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점 가라앉는 것 같아요. 침몰하는 배처럼..."


  비좁은 팡 부인의 방에는 아들과 딸 내외를 비롯해 친척들로 북적인다. 68세의 팡 부인은 죽음을 앞두고 있다. 살거죽이 드러난 초췌한 얼굴, 가느다란 팔, 촛점을 잃은 눈동자, 입을 반쯤 벌리고 겨우 내쉬는 숨은 이제 곧 죽음의 소식이 전해지리라는 것을 알려준다. 중국의 다큐멘터리 감독 왕빙의 '미세스 팡(Mrs.Fang, 2017)'은 임종을 앞둔 노인과 그 가족의 모습을 담아냈다. 죽어가는 이의 모습이 마치 서서히 물에 가라앉는 배를 떠올리게 한다고 가족 중 누군가 말한다.


  임종의 과정은 길게는 몇 주, 짧게는 며칠이다. 죽음을 앞둔 이는 식사를 거의 하지 못하는데, 장에서 더이상의 영양소를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치매나 다른 혼수성 질환이 아니라면 깨어있을 때의 의식은 또렷하지만, 대개는 가수면(眠) 상태로 누워있다. 호흡이 불규칙해지는 시점은 이제 임종의 과정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와도 같다. 'Death Rattle'이라고 알려진 그르렁거리는 거친 숨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말은 할 수 없는 상태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듣는 것은 가능하므로, 이때 가족들은 환자에게 마지막으로 말을 건넬 수 있다. 내가 본 임종의 모습은 그러했다.


  다큐의 첫 화면은 비교적 정정한 모습으로 자신의 방에 서 있는 팡 부인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사망하기 전 해의 가을이다. 해를 넘겨 여름의 초입인 6월에 이르자 부인의 상태는 악화된다. 다큐의 대부분은 열흘 동안의 팡 부인과 가족의 일상을 찍었다. 팡 부인의 주변 침대와 의자에 이리저리 흩어져 앉아있는 가족들은 결코 조용하지 않다. 그들은 쉴 새 없이 자신들의 일상을 비롯해 부인의 장례 절차에 대한 의논도 하고, 죽음의 징후가 어떤 것인지 경험을 토대로 부인의 상태를 가늠하기도 한다. 간호를 맡은 가족은 부인의 등에 생긴 욕창 때문에 수시로 자세를 옮겨주기도 하고, 주사기로 물을 입안으로 흘려 넣어 마시게도 한다.


  카메라는 팡 부인의 얼굴을 상당히 오랫동안 비춘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화면 속 부인의 임종 과정을 함께 한다. 이것은 누군가에게는 낯선 경험이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과거의 기억과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당연히 그것은 고통스럽고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카메라를 응시하는 부인의 눈을 보면, 어느 정도는 촬영을 인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지점에서 감독 왕빙이 얼마나 다큐 제작자로서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나는 의문을 품는다. 과연 팡 부인은 이 다큐의 촬영을 허락했다고 볼 수 있는가? 부인의 인지기능은 치매로 손상된 상태다. 엔딩 크레딧에 보여지듯 자녀들의 촬영 동의를 얻은 것에 대한 감사와는 별개로, 팡 부인이 이 다큐의 촬영을 허락했다고 볼 수 있는 명백한 증거는 없다.

 

  이 다큐의 뭔가 생경하고 기이한 지점은 죽어가는 이의 얼굴을 오랫동안 응시하는 데에만 있지 않다. 팡 부인의 가족과 이웃들의 모습이 그러한데, 특히 남자들이 동네와 접한 천변에 나가 뱀장어며 물고기를 탐욕스럽게 잡아들이는 모습들이 꽤 비중있게 나온다. 물고기가 잘 잡히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계속 찾아다니며, 전기 충격기로 기절시킨 물고기를 상당히 많이 건져올린다. 그 지역에서 여름에 그렇게 물고기를 잡는 것은 귀한 식재료를 얻는 일이므로 놓칠 수 없는 일인 모양이다.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을 집요하게 취하는 그들의 모습은 관객에게 긴장과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알록달록한 이불을 덮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겨우 숨을 내쉬고 있는 팡 부인의 주변에는 온갖 소음이 가득하다. 도박을 하다 돈을 잃었다는 이야기며, 아는 누구의 이혼 소송 이야기도 나온다. 방안의 TV는 항상 켜있다. 이웃들은 밖에서 떠들썩하게 음식을 먹으며 자신들이 본 죽음의 모습과 팡 부인의 손자들은 왜 안오는지, 할머니의 임종을 지켜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그랬다. 팡 부인의 마지막 날들에 주변은 그렇게 시끄러웠다. 그런데 그것은 어떤 면에서 무례하거나 상스럽게만 보이지 않는다. 살아있는 자들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드디어 팡 부인에게 마지막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에 카메라는 거리를 두고 비켜서 있다. 부인은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관객은 부인이 세상을 떠나가는 모습을 볼 수는 없다. 왕빙 감독은 그 지점에서 물러서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가족들에게만 허락된 순간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소음은 사라졌고, 대신 나즈막하게 읊조리는 기도문과 조용한 흐느낌이 그 작은 방을 채운다. 팡 부인의 마지막은 그러했다.


  러닝 타임이 1시간 26분 정도인 그리 길지 않은 다큐이지만, '미세스 팡'을 보는 일은 꽤나 복잡하고 괴로운 감정을 수반한다. 알지도 못하는 이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며, 관객은 자신이 갖고 있는 어떤 '죽음'의 기억과 함께 그와 관련된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불편하고 낯설며, 보다가 그만 두고 싶은 마음마저 드는 그 순간이 언젠가는 우리 모두에게 찾아온다. '죽음을 기억하시오(Memento Mori).' '미세스 팡'은 감독 왕빙이 그려낸 바니타스(Vanitas)인 셈이다.



*사진 출처: sabzian.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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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생각했던 건 이게 아니야."


  모니카(한예리 분)는 남편 제이콥(스티븐 연 분)에게 그렇게 불만을 표현한다. 사방이 드넓은 풀밭인 외딴 곳에 덩그라니 있는 이동식 주택은 모니카의 기대를 무너뜨린다. 그곳은 그렇게 이 부부의 새로운 출발지가 된다. 부부에게는 두 자녀, 첫째 앤(노엘 케이트 조 분)과 둘째 데이비드(앨런 킴 분)가 있다. 남편의 직업은 '병아리 감별사'. 아내도 같이 작업장에서 일한다. 갓 부화한 병아리의 항문의 모양새를 보고 수평아리를 감별해 내는 직업이다. 그 직업군에서 한국인들은 뛰어난 감식안으로 전세계로 진출했다. 제이콥도 그렇게 1970년대에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왔다.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Minari, 2020)'은 한국인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목부터가 눈길을 끈다. 영어의 미나리에 해당하는 'dropwort' 대신에 'minari'라고 썼다. 아마도 감독에게 '미나리'란 식물은 결코 다른 언어로 대체될 수 없는 '그 무엇'임을 짐작케 한다. 그렇다. 이 영화는 감독 자신의 자전적 경험이 들어있으며, 그의 외할머니는 한국에서 미나리 씨앗을 미국으로 가져와서 심었다고 한다. '미나리'는 그에게 혈연과의 연결고리가 되며, 그의 근원이 되는 나라를 가리키는 것이다.


  어린 아들 데이비드는 심장이 약해서 부부의 근심거리인데, 가뜩이나 병원과 먼 곳의 시골 깡촌에 왔다고 생각하는 모니카는 어떻게든 떠나고 싶어한다. 그러나 남편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그곳에 커다란 농장을 일굴 생각이다. 한국인 이민자들을 위한 농산물을 심어서 근처 대도시에 내다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병아리 감별사 일과 병행하는 농장일은 결코 쉽지가 않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낮에 돌봐줄 사람이 없는 것도 문제다. 모니카는 자신의 어머니(윤여정 분)를 모셔오기로 한다. 영어를 하지 못하는 외할머니와 아이들은 잘 지낼 수 있을까? 제이콥의 농장은 과연 잘 되어갈까? 그들 부부가 꿈꾸는 아메리칸 드림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 영화의 대부분은 한국어 대사로 이루어져 있다. 모니카와 제이콥, 모니카의 어머니가 대화를 나눌 때 영어 자막이 화면에 뜬다. 앤과 데이비드는 주로 영어로 대화한다. 영어 대사는 당연히 자막으로 안나온다. 이 영화는 미국 제작사(브래드 피트가 만든 제작사)에서 만든 영화다. 감독도 한국계 미국인, 배우들도 한예리와 윤여정을 빼고 미국 국적이다. 당연히 스탭들도 그렇다. 그런데 이 영화는 미국의 영화제에서 '외국어 영화'로 분류되고 있어서, 이 부분이 과연 '미국적인' 영화가 무엇이냐에 대한 논란을 낳고 있다. 단지 한국어 대사가 주가 된다고 해서 미국 영화가 아니라고 보는 것에 이민자들, 특히 아시안 이민자들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언어'라는 장벽이 가진 꽤나 견고한 힘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영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아역 배우들이다. 특히 어린 아들 데이비드로 나온 앨런 킴은 타고난 연기자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 아이에게는 현실과 배역의 경계가 드러나지 않는다. 극중에서 미국 태생으로 영어를 모국어로 쓰면서도 이민자 부모의 언어인 한국어도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연기가 아주 좋다. 그건 딸 역의 노엘 케이트 조도 마찬가지다. 이 두 아역 배우들을 보는 즐거움은 어쩌면 이 영화의 70프로, 아니 그 이상을 차지한다.


  배우 윤여정이 외할머니 역으로 주요 영화제의 연기상을 휩쓸고 있지만, 어쩐지 내게는 틀에 박힌 연기처럼 보인다. 윤여정은 오랫동안 TV의 일일 드라마, 주말 드라마 등에서 자신의 연기 이력을 이어오면서 그다지 인상적인 면은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현지 미국인들의 시각에서 윤여정의 연기가 다르게 평가받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스티븐 연의 연기도 평이하다. 뭔가 연극적인 대사 처리가 드문드문 드러나는 것이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한예리의 연기는 아주 좋다. 이 영화에서 한예리는 자신의 배우로서의 존재 가치를 명백하게 각인시킨다. 낯선 땅에서 어떻게든 뿌리내리고자 하는 이민자, 두 아이의 엄마로서 불안과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을 매우 잘 소화해냈다.


  '미나리'에서 특히 눈여겨 볼 부분은 1980년대 초반을 재현해낸 소품과 미술 세트들이다. 극중에서 모니카는 신실한 크리스찬으로 나오는데, 거실 벽면을 장식한 태피스트리에는 예수님이 보인다. 그 시절의 한국에서 그 자줏빛 태피스트리는 왠만한 집들마다 다 있는 벽장식품이었다. 성서적 내용부터 시작해서, 돈 잘벌게 해달라는 의미의 멧돼지 그림까지 다양한 무늬들이 짜여져 있었던 기억이 난다. 거기에 나온 컬러 TV는 대체 얼마만에 보는 것인지, 아니 저런 걸 지금도 소품으로 구할 수 있나 싶어서 놀랐다. 심지어 욕실에 있던 푸른색 '플라스틱 바가지'까지 미술에 신경을 정말 많이 썼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차들도 당연히 그 시대의 차들인데, 굴러가는 것이 신기하게 보일 정도다. 


  극중에서 윤여정은 미나리 씨앗을 한국에서 가져와 집 근처 냇가에 심어놓는다. 미국이라는 낯선 곳에서 힘들게 뿌리내리는 딸과 사위, 손주들의 미래가 어디서든 잘 번성하는 미나리처럼 되어가길 바라는 뜻이다. 미나리는 물이 있는 곳이면 마다하지 않고 잘 자란다. 물을 정화하는 수생식물의 특성이 있어서, 심지어 공장 폐수가 나오는 곳에서도 자란다. 아마 좀 나이가 있는 세대라면 공장 지대 폐수를 끌어다 미나리를 키워 팔다 적발된 뉴스를 심심치 않게 들었을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희생해야 한다구."


  다시 도시로 돌아가서 살자는 아내의 요구에 제이콥은 그렇게 말한다. 그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두 아이들에게 아버지로서 가치있는 무언가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거대한 정원(garden)을 가꾸는 것, 그것은 농작물을 길러내는 농장(farm)이기도 하지만 그가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어하는 정신적 가치가 들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식물들처럼 이민자들은 새로운 곳에서 정착하고자 최선을 다한다. 때로 그것은 많은 희생을 수반한다.


  제이콥이 일하는 공장 굴뚝에서는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쓸모없다는 이유로 폐기처분되는 수평아리들을 소각하기 때문이다. 그 연기는 낯선 곳에서 자신들의 유용성을 입증해내지 못하면 언제든 밑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는 이민자들의 냉엄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나리'는 미국으로 떠난 한국인 이민자들의 이야기인 동시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애를 쓰는 모든 이민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이삭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그렇게 자신의 어린 시절과 부모, 혈연으로 이어진 모국의 근원을 들여다 본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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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파리 영화로 만나는 도시
마르셀린 블록 지음, 서윤정 옮김 / 낭만북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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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을 오래전에 사놓고 책장 한구석에 처박아 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엊그제 꺼내어 읽어보았다. 책의 제목처럼 파리를 배경으로 한 46편의 영화들에 대한 소고이다. 무려 31명의 다양한 필자들이 참여했다. 영화 관련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비교 문학, 미디어 연구자, 언어 전공자 등 여러 지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자신들이 본 영화들에 대해 짧은 리뷰를 썼다. 대개는 줄거리 요약에 그치고, 더러는 장면 분석이 심도있게 들어간 부분도 있다. 어떤 이는 자기가 연구한 프랑스 초기 영화 감독 알리스 기 블라쉐에 대한 장문의 글도 실었다. 솔직히 별다른 느낌은 없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므로 프랑스 영화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 책을 보고나서야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2010)'에서 주인공 코브와 에이드리언이 대화를 나누었던 거리의 배경이 파리라는 것을 알았다. 키에슬로프스의 '세 가지 색: 블루(1993)'도 파리에서 찍었다는 사실도 함께. 도시가 가진 오랜 역사와 전통이 어느 곳에 카메라를 들이대더라도 그냥 '그림'이 되어버리게 만든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번역은 별다른 흠은 없지만, 좋다고 말할 수도 없다. 31명의 필자가 쓴 글이 각기 다른 결의 문체로 느껴져야 할 텐데 번역자 자신의 문체로 죄다 통일되었다. 저자 한 명이 다 쓴 리뷰라고 읽다가 필자들이 여러 명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다양한 필자들의 고유한 문체를 살려내지 못한 이 책의 번역은 상당히 아쉽다.


  이 책에 나온 영화 속의 파리를 구경하고자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에 대해 나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는 못한다. 그냥 이 영화 속에 나온 장소는 파리의 어디구나, 라고 새롭게 알게 된 것에 그칠 뿐이다. 그러고 보니, 대체 이런 책의 기획은 왜 했을까 싶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미국에서 기획된 이 책은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대도시 시리즈로 기획된 모양이다. 같은 출판사의 '필름, 뉴욕'도 있다. 책 뒷부분에 나온 필자들 소개를 들여다 보다 문득 어느 국적인가 궁금해져서 국적별로 분류해 보았다. 호주 1명, 프랑스 1명, 이탈리아 1명, 영국 8명, 그리고 미국이 20명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미국의 연구자들이 바라본 파리 배경 영화들 분석인 셈이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기는 한가...


  연구자들의 이력은 무척 화려한데, 특히 미국 필자들은 여러 대학의 영화 관련 학과에 소속되어 있었다. 내가 느낀 것은 그렇다. 세계 영화 산업을 이끌어가는 것이 주류 헐리우드 영화이므로 그것을 뒷받침하는 학문적 영역도 넓게 구축되어 있구나 하는. 어쨌든 영화와 매체 관련 글을 써서 많은 이들이 먹고 살 수 있는 '판'이 있다는 건 한편으로는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다 보고 났더니 눈이 피로하다. 이 책의 활자는 무지 작다. 정말 깨알처럼 작다. 아직 노안이 오지 않는 젊은 친구들, 그리고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오래전 영화부터 최신 영화가 궁금한 이들은 한 번 읽어볼 법하다. 영화들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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