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이었던 것 같다. TV를 틀었는데,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유태인들이 막 독일군에게 끌려가는 혼란과 공포가 가득한 장면이 이어지고 있었다. 영화는 이제 막 초반부를 좀 넘어서고 있었다. 그 영화에는 무언가 사람을 잡아끄는 마력이 있었다. 아무튼 그때부터 영화를 보기 시작해서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보았다. 영화가 끝났을 때에는 먹먹함마저 느꼈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


  "정말 저주받은 재능이네. 영화를 저렇게 기깔나게 뽑아내다니..."


  '기깔나다'는 사전에도 없는 비속어이다. 보통 '기가 막히게 대단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때깔'이 그 어원이라는 말도 있는데, 아무튼 그런 표현을 써서 말할 수 밖에 없는 영화였다. 그 영화는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2002)'였다. 나는 그 영화를 오랫동안 외면해 왔었다.


  '물속의 칼(1962)'을 처음 보았을 때가 생각난다. 흑백 화면 속에서 펼쳐지던 그 팽팽한 긴장감과 물 위의 '요트'라는 좁은 공간을 다루는 폴란스키의 탁월한 감각에 감탄했었다. 그 영화는 그의 첫 장편 영화였다. 한마디로 뛰어난 신인 감독의 세상을 향한 포효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어지는 영화 작업들을 통해 자신의 천재성을 입증해 나갔다. '악마의 씨(1968)', '차이나 타운(1974)'을 보았을 때의 전율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새겨져 있다. 그런가 하면 '진실(Death and the Maiden, 1994)'은 또 어떠한가? 우리나라에서는 '시고니 위버의 진실'로 알려진 그 영화에는 두 명의 주인공, 시고니 위버와 벤 킹슬리가 나온다. 그 두 사람의 진실을 향한 치열한 대결의 여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극도의 몰입감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폴란스키는 그런 대단한, 엄청난 영화를 만들어 낸 사람이었다.


  내가 그 모든 영화들을 보았던 때는, 아직 폴란스키의 아동 성범죄 사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이었다. 나중에 그의 추악한 범죄 행위가 드러났을 때, 나는 한편으로는 이미 그의 영화들을 다 봐두었다는 사실에 안도했었다. 더이상 그의 영화들을 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피아니스트'를 작년에서야, 그것도 우연히 틀었던 TV에서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감탄하면서 약간의 거리낌도 느꼈다. 그의 영화를 보면서 감동을 받는 것은 괜찮은 것일까, 하고...


  클래식 음악계의 거장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자신의 음악 경력을 피아니스트로 시작했다. 그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였지만, 그의 아내는 더 유명했다. 천재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였다. 이십대 후반에 다발성 경화증으로 더이상 연주 경력을 이어갈 수 없었던 아내를 외면한 바렌보임은 러시아 피아니스트와 딴살림을 차렸다. 그리고 아들 둘을 두었다. 자클린이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후에 그가 세간의 비난을 받기는 했지만, 지휘자로서의 경력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나는 바렌보임의 연주를 듣지 않는다. 라디오에서 그의 피아노 연주나 지휘곡이 나오면 그냥 꺼버린다. 싫기도 하지만, 듣는 자체가 괴롭기 때문이다. 어쩌다 그의 음악인 줄 모르고 듣는 때가 있는데, 듣고 나서 그렇게 말하기는 한다. 연주는 괜찮네...


  바렌보임의 경우는 그것이 도덕적인 흠결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그의 경력에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그것이 직업 윤리를 어기거나 명백한 범죄 사실에 해당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는 동료 여성 성악가들에 대한 성추행으로,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은 미성년자 성추행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서 그것이 그들의 경력과 명성에 먹칠을 했다. 폴란스키는 그런 면에서 본다면 궁지에 몰릴 정도의 박한 대우를 영화계에서 받고 있지는 않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그의 천재적인 영화적 재능에 대해 영화계와 동료 영화인들이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프랑스 세자르 영화제에서 그에게 감독상을 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피아니스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고도 미국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직접 수상하지도 못했다. 아마 죽을 때까지 미국을 갈 수 없는 불편이야 좀 겪겠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영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개인의 사생활과 예술 작품은 별개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과연 타당한가? 오래전 시나리오 수업을 들을 때의 일이다. 그 강의를 맡은 백발이 성성한 칠순의 소설가 선생님(수강생들끼리는 '영감님'이란 별칭으로 불렀었다)이 어느 날, 분노에 차서 성토한 일이 있었다. 당시에 시인 서정주의 문학 작품에 대한 학계와 문단계의 비판과 함께 문학사적 '삭제'에 대한 논의들이 많이 있었다. 영감님은 그런 일련의 일들에 대해 모두들 '정신나간 짓'을 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근본도 모르는 것들 같으니..."


  영감님은 서정주의 후배였다. 문단의 그 누구도 서정주의 그늘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자들은 없었다. 서정주의 후배, 제자들이 한국 문학을 이제까지 이끌어 왔기 때문이다. 그가 말한 '근본()'은 생물학적 근본이 아니라, 문학적 근본의 의미였다. 서정주를 부인하는 것은 문인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이며, 한국 문학의 '호로자식'이 됨을 자처하는 일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서정주는 명백한 친일 행각 이외에도, 5공화국 시절의 전두환 찬양시까지 만들어 바쳤던 이로 평생을 권력에 영합하면서 살아온 인물이다. 그런 그의 생애와 별개로 '시'만큼은 문학적으로 인정받고 칭송받아야 마땅한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뛰어난 감성의 시들을 만드는 '시인 서정주'와 시대의 권력에 순응하고 영합하는 '인간 서정주'는 전혀 다른 개체인가? 예술가의 작품을 예술가의 생애와 별개로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논리는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떠올리게 만든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하나의 육체에 깃든 한 명의 사람일 뿐이고, 결국 그것의 분리는 정신 장애와 파멸을 의미할 뿐이다. 예전에는 다중 인격 장애로 알려졌지만, 그 질병의 정의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는 '해리성 정체성 장애(Dissociatvie Identity Disorder)'가 바로 그것이다. 


  무엇보다 '예술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건 어떠한가? 어느 연쇄 살인범이 있었다. 그는 감옥에서 복역 중에 자신의 살인 행각에 대한 책을 써냈다. 그 책은 나름의 문학성을 인정받았고, 문단에서 그를 문인으로 인정하는 이들까지 생겼다. 그가 쓴 소설은 '문학상'까지 수상했다. 그는 정식으로 문예가 협회에 입회를 신청했지만, 당연히 그 신청은 거부당했다. 그러자 협회의 문인들이 탈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문학성만 뛰어나다면 그의 소설은 그가 저지른 살인들과 달리 평가할 수 있는가? 그 소설을 여러분은 읽을 수 있겠는가?


  실제로 일본의 연쇄 살인범 '나가야마 노리오'의 이야기다. 가리타니 고진과 같은 유명한 문예 평론가,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작가 츠츠이 야스타가가 그의 편에 서서 협회를 탈퇴했다. 살인범이 쓴 책은 도저히 읽을 수 없다면, 사기범이나 절도범이 쓴 뛰어난 소설은 읽을 수 있다고 용인할 수 있겠는가? '예술성'이 그렇게 만능의 '투명 망토'내지는 '마법 탄환'으로 기능하는 것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논쟁의 주제이기도 하다.


  아마도 예술이 인간 세계의 그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그 가치를 잘 보여주는 소설은 김동인의 단편 '광화사()'와 '광염(炎) 소나타'일 것이다. 두 작품 모두 예술의 궁극성에 도달하기 위해 미쳐버린 예술가의 이야기이다.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결국은 사람을 죽이는 화가, 영감이 떠오르지 않자 불을 지르는 방화범이 된 작곡가가 주인공이다. 낭만주의 시대의 예술가의 초상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오래전, 학교에서 있었던 연극 세미나에 갔었다. 어느 미국 연극 연출가가 자신의 연극과 연출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세미나가 끝날 무렵에 질문을 받는 시간이 있었다. 한 학생이 질문을 했다.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저의 삶, 그리고 함께 하는 가족입니다."


  나는 좀 놀랐다. 그의 입에서 '연극'이라는 말이 나올 줄 알았던 것이다. 그것이 아닌, '삶과 가족'이라는 답을 듣게 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대답은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내 마음 속에 남았다. '예술'을 최우선으로 하는 삶은 때론 그것을 하는 이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파괴하기까지 한다는 것을 나이들수록 인정하게 된다. 예술은 삶에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며, 온전한 삶을 살아가는 이가 만드는 예술이 더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폴란스키의 나이가 올해 87세이다. 그가 죽기 전에 어떤 걸작 영화를 만들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 영화를 구태여 보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다 '피아니스트'처럼 우연히 TV에서 보게 될 수도 있겠지. 또 다시 감동을 받고, 불편한 마음을 알아챌 것이며, 그렇게 말할 것 같기도 하다. 저주받은 재능, 이라고. 그것이 영화를 좋아하는, 그리고 '예술'이라는 이름에 매혹된 많은 이들의 괴로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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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탁 위의 소금통이 엎어진 것을 치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일이 얼마나 곤혹스럽고 귀찮은 일인지. 여기 저기 흩어진 소금들을 깨끗이 치웠다고 생각해도 며칠 동안 그 근방에서는 자잘한 소금 알갱이들이 밟히곤 한다. 소피 피엔스의 2006년 다큐 '지젝의 기묘한 영화 강의'를 보는 일은 마치 그 소금통 치우는 일 같다. 난감하고 번잡스럽다.


  우선 이 다큐를 보기 위해서는 지젝이 예시로 드는 영화들을 대부분 다 알고 있어야 한다. 무려 40개에 달하는 영화들은 할리우드 고전 영화부터 2000년대의 영화까지 아우른다. 그걸 다 보았다는 전제하에 지젝이 하는 영화 강의를 듣는다 하더라도 결코 쉽지가 않다. 영화들을 분석하기 위해 지젝이 쓰는 이론적 틀은 정신분석학이다. 이드(Id), 에고(Ego), 수퍼에고(Superego), 리비도(Libido), 이런 용어들은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대한 대강의 이해를 갖고 있는 이들에게는 익숙한 용어일 것이다. 지젝은 그 용어들을 자주 사용해서 설명하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낯선 느낌이 든다. 어, 이건 내가 알던 정신분석학적 개념이 아닌데.... 그렇다. 지젝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아닌 라캉의 프로이트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 라캉 철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대략적인 이해가 있어야 이 다큐를 온전히 이해할 수가 있다.


  내가 영화를 공부하던 때에는 이제 막 라캉의 인기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당시에는 국내에 소개된 라캉 저작이 한권도 없었을 때였다. 그러니까 라캉의 원전 번역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지젝의 책들은 정신없는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고, 여기저기서 라캉 이론 갖다 설명하고 뭐 그런 혼돈의 세계가 연출되고 있었다. 말하자면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라고나 할까. 나에게 라캉은 너무 난해했고, 그의 이론이 가지는 학문적 유용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그때에도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은 이미 한물갔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했다.


  아무튼 열렬한 라캉 주의자인 지젝의 영화 강의를 듣기 위해서는 그렇게 40개의 영화들, 라캉 철학에 대한 개요 정도의 이해가 필요하다. 자, 그럼 다큐를 보기로 하자. 나는 다큐의 초반부 대략 10분 동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지젝의 영어 발음이 너무 독특해서 관객이 그것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좀 시간이 걸린다. 사실 다큐 내내 귀에 거슬리기는 하는데, 중간 부분에는 그의 강의에 집중하느라 잘 모르다가, 마지막에 끝날 때쯤 그 억양이 심하게 튀는 느낌이 든다. 아무튼 그의 진짜 특이한 영어 발음과 억양을 다큐 내내 인내해야 한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충분히 있다고 말하겠다. 그의 기묘한 영화 강의는 재미있고, 요모조모 신기한 구석이 참 많다.


  막스 브라더스(Marx Brothers)의 '스파이 대소동(Duck Soup, 1933)'을 한번 보자. 지젝은 막스 브라더스 3형제, 그루초, 치코, 하포가 연기하는 캐릭터를 초자아, 자아, 원초아로 설명한다. 그런가 하면, 정신적 에너지의 발현으로서의 '목소리'라는 개념을 가지고 '엑소시스트(1973)', '위대한 독재자(1940)'를 설명할 때는 무릎을 치게 된다. 저렇게도 영화를 볼 수도 있구나, 하면서 어느새 지젝의 '팬'이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지젝이 다큐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영화는 데이비드 린치의 작품이다. 아마도 린치의 영화들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라면 좀 심드렁하게 볼 수도 있는데, 이해하기 어렵다는 린치의 영화도 지젝이 명쾌하게 설명하는 것을 보는 자체로도 재미있다. '블루 벨벳(1986)', '로스트 하이웨이(1997)',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 그 세 편 보는 것도 오랜전의 나에게는 버거웠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그때 봤으니 지젝 강의 들을 때 써먹는구나 싶기도 하다. 아, '광란의 사랑(1990)'도 나오는데, 그건 못봤다. 아마 앞으로도 볼 일이 없을 것 같다.


  지젝의 히치콕 사랑도 빼놓을 수가 없다. 주로 언급한 '현기증(1958)', '싸이코(1960)', '새(1963)', 이외에도 히치콕의 4개 작품이 더 나온다. 이쯤되면 '히치콕 빠돌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 다큐는 흥미있는 점이 하나 더 있는데, 지젝이 설명하는 영화들의 촬영 장소들을 대부분 다 가본다는 것이다. '새'의 배경이 되는 보데가 만을 수상 보트를 타고 설명하고, 코폴라의 '컨버세이션(1974)'은 진 해크만이 투숙했던 호텔에 가서 방과 욕실을 둘러 보며 설명한다. 그런 깨알같은 디테일과 설정들이 이 다큐가 가진 매력을 배가시킨다.


  그렇게 무려 2시간 반 동안 지젝은 아주 열정적인 영화 강의를 들려준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결국 이런 것이다. 영화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욕망'을 구현해낸 효과적인 도구였으므로, 영화를 본다는 것은 동시대 사람들의 내면과 그 넘쳐나는 욕망을 읽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 물론 지젝이 보는 방식대로 영화를 볼 필요는 없지만, 그가 제시하는 '기묘한' 영화 보기가 신선했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요즘 만들어지는 영화 가운데, 그렇게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과 욕망을 잘 드러낸 영화가 있었던가? 솔직히 딱히 떠오르는 영화가 없다. 동시대의 사람들이 직면한 사회적 현실과 그 뒤에 가려진 이야기들에 대해 치열하게 탐구하고 보여주는 예술 작품으로서의 영화가 있는가? '작가'로서의 감독은 가고, '흥행사'로서의 감독이 더 열렬한 박수를 받는 시대에 영화가 가진 예술적 위상은 이제 낡은 개념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젝의 말마따나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가 너무나도 필요하기 때문에 영화는 이제까지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질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사진 출처: thepervertsgui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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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때, 방송반 애들이 1교시 수업 시작 전에 했던 '명상의 시간'이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5분 정도의 짧은, 뭐 별 의미없는 미사여구의 나열 같은 원고를 읽었더랬다. 요새 시쳇말로 하자면 뭐랄까, '영혼 없는' 대본 읽기 같은 그런 거. 아무튼 그 프로그램의 배경 음악은 당연히 '타이스의 명상곡'이었다.


  '타이스의 명상곡'은 프랑스 오페라 작곡가 쥘 마스네의 3막 오페라 '타이스'에 나오는 곡이다. 오페라는 그다지 인기가 없어서 오늘날에도 그다지 많이 상연되지는 않는다. 오직 이 음악만이 유명한데, 이 곡이 가진 서정성과 평화로움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오페라는 원작이 있다. 아나톨 프랑스의 장편 소설 '타이스(Thais)'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환락의 삶을 사는 아름다운 무희 타이스는 수도승 아타나엘을 만나 회개하면서 수도자가 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아타나엘은 타이스에게 반하게 되고... 그 뒤의 이야기는 책을 직접 읽으면서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 아무튼 오래전에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랬다. 


  "아니, 이거 생각보다 꽤 재밌는 걸."


  재미있는 글이 반드시 좋은 글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좋은 글은 재미가 있다. 어제, 무슨 다큐를 볼까 검색하다가 '지젝의 기묘한 영화 강의(2006)'가 걸려 들었다. 러닝 타임이 무려 2시간 반. 너무 길다. 우선, 다른 사람들은 이 다큐를 어떻게 보았나 검색해 본다. dvdprime 사이트에 2010년에 누군가 쓴 감상기가 있었다. Figure8, 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이가 쓴 리뷰가 있었는데, 참 글이 재미있었다. 지나치게 무겁지도 않았고, 좋은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다큐의 내용에 대해 잘 이해하고 쓴 글이었다. 나에게는 없는 좋은 문체를 볼 수 있는 글이었다(괜찮은 리뷰 글이므로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그렇다. 글쓰기에서 문체(style)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것이야말로 글을 쓰는 이를 잘 나타낸다.


  내 문체는 진정성에 있어서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좋은 편이지만, '재미'라는 요소가 그다지 드러나지 않고, 다소 건조(dry)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정도의 자기 객관성도 없이 글을 쓰지는 않는다. '재미'라는 요소를 갖지 못하면 글의 확장성은 제한될 수 밖에 없다. 그 점이 늘 고민되고 마음에 걸린다. 그런데 '나'라는 사람 자체가 그다지 재미가 있는 사람이 아니므로, 도대체 그 '재미'를 어떻게 뽑아낼 것이냐, 그게 참 어렵다.


  '재미'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떠오르는 이가 있다. B는 참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소설 창작 수업에서 알게 된 B는 나와는 꽤 나이 차이가 있었다. 비록 이십대 초반의 어린 친구였어도 그 생각의 깊이는 좀 남다른 데가 있었다. B는 지독한 골초였다. 자기 말로는 전에는 두 갑씩 피웠는데, 줄어서 한 갑이라고 했다. 학교에서 지나가다 보게 되는 B의 모습은 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러다 학기 중에 폐렴에 걸렸었다.


  "이렇게 담배 피우다가는 일찍 죽어요."

  "그럼, 그냥 죽을게요."


  의사의 말에 그렇게 말했다는 B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막 웃었다. B다운 대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B는 부잣집 딸로 백화점에서 몇십만원 하는 옷만 입고 다녔는데, 그건 B가 직접 이야기해서 알게 된 것이다. 다른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참 밉상이었을 텐데 내게는 그런 것조차 B의 솔직함으로 보였다. 그 B의 진면목을 알게 된 것은 그 창작 수업의 종강 모임에서였다. 강의를 맡은 소설가 선생이 고깃집에서 밥을 샀다. 수강생들이라고 해봐야 10명 안팎이었고, 뭐랄까, 문학 수업과 그쪽 사람들에게서는 인간미 같은 것이 있었다. 아무튼 수업을 마무리하는 자리였는데, B가 마침 내가 있는 테이블에서 고기를 굽게 되었다.


  나는 B가 고기를 굽는 것을 보면서, 회식 자리에서 고기 굽는 것은 이른바 '핵인싸'가 해야하는 일임을 실감했다. 우선 고기를 잘 구워야 했고, 잘 익은 고기를 나름대로 균형있게 배분해 줘야 했으며, 또 중간중간 이야기를 끌어가며 사람들이 고기에만 집중하는 '지루한 순간'을 메꾸는 것도 그의 역할이었다. B 자신은 고기를 거의 먹지도 않았는데, 나는 먹는 내내 B의 그 신기(技)에 가까운 고기 굽는 솜씨를 보면서 감탄했다. 그랬다. B는 진정한 '인싸'였다. 사람들의 관심사를 꿰뚫는 통찰력, 집중력, 배려, 유머, 그 모든 것은 아웃사이더의 감성으로 살아온 '아싸'인 나에게는 머나먼 것들이었다. B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그런 감각을 지닌 B라면 잘 살고 있을 것 같다. 나는 B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친구가 되지는 못했다. 우린 너무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었다.  


  이런, 명상의 시간에서 어쩌다 고기 굽는 이야기까지 왔을까. 이런 것을 영어로는 'red herring'이라고 한다. 시선을 돌리는 의미없는 단서나 이야기 같은 것. 스릴러 영화나 오래된 흑백 '필름 느와르' 영화를 보다 보면, 배우들 대사에서 가끔 그 단어가 튀어나온다. 말하자면,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의미없는 단서, 시선을 빼앗는 쓸데 없는 것이란 뜻이다. 이 말의 어원에 대해 쓰자면 좀 길다. 관심있는 이들은 찾아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다시 명상으로 돌아와서, 내가 요새 명상을 하게 되면서 느낀 것들에 대해서 써보려 한다. 약간의 불면증이 있어서, 명상을 하면 좀 나아질 수도 있다기에 시작한 것이다. 불교 단체인 정토회에서 온라인으로 주말에 한번, 지도법사인 법륜 스님이 일반인 대상으로 명상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누구나 무료로 참여가 가능하다. 나는 불교 신자도 아니고, 정토회와 아무런 이해 관계도 없다. 다만, 그 명상 프로그램이 초심자가 접하기에 가장 좋고, 믿을 수 있기 때문에 추천할 뿐이다. 요새는 무슨 상품명 언급하는 것도 '뒷광고'니 뭐니 너무 말이 많아서, 글을 쓸 때도 항상 신경을 쓴다. 일종의 자기 검열 같은 거랄까, 그런 부분에 철저한 것이 좋다고 생각도 하지만 답답할 때도 있다.


  명상을 하게 되면 가장 크게 느끼는 불편함은 몸의 감각, 예를 들면 가려움증과 다리 통증, 졸음과 같은 것들이다. 특히 '가려움증'이 가장 신경이 쓰인다. 가만히 있으면 여기 저리 가렵기 시작한다. 평소에는 안가렵다가 명상을 시작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가려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는 바쁘게 사느라 평소에는 몸의 감각에 대해 잘 인지하지 못하다가, 명상을 하면서 고요해지는 순간 몸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10년도 더 된 이야기인데, 우연히 '가려움증'에 대한 1시간 짜리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미국 컬럼비아 의과 대학의 교수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였다. 일종의 '시민대학'이라고나 할까, 미국은 그런 좋은 프로그램도 많은 모양이었다. 어떻게 하다가 웹사이트를 타고 들어가서 듣게 되었는데, 물론 자막은 없었다. 그런데 그 교수 아재는 적당한 속도로 말을 했고, 화면에 뜬 파워포인트 자료들이 있어서 그럭저럭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강의를 듣는 일반인들의 수업 태도도 아주 좋았다. 필기를 해가며 열심히 들었다. 아, 미국이란 나라에 저런 모습이 있구나, 감탄했던 것 같다.


  아무튼 그 교수 아재는 '가려움증(Pruritus)'를 강의하는데, 그리스 철학자들부터 시작해서 데카르트까지 감각 지각에 대한 나름의 철학적 역사부터 훑는다. 내게는 그 점도 참 신박했다. 교수 아재는 가려움증의 원인의 95%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해서, 또 한번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나머지 5%가 특정 질병과 연관된 가려움증이라고 했다. 그의 강의를 듣고 나니, 뭔가 '가려움증'에 대한 작은 소책자를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가려움증 치료에 쓰이는 약부터 일반 영양제 이야기도 했는데, 아마도 우리나라 같으면 영양제 회사에서 돈 받은 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나중에 질문 답변 시간에 수강생 시민 한명이 진지하게 영양제 브랜드 좀 알려달라고 했는데, 교수 아재는 좀 당황한 것처럼 보였지만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참 재미있는 강의였다.


  나는 자기 전에 명상을 하는데, 보통 25분 정도 한다. 하다보면 졸음이 말도 못하게 쏟아진다. 가려움, 다리 저림, 졸음, 이렇게 3단계를 겪고, 온갖 생각들이 물밀듯이 들이닥치기 때문에 마음은 무슨 시장통 같다. 법륜 스님이 했던 비유 가운데 재미있는 말이 있다. 명상할 때 떠오르는 잡생각들을 시장통을 지나가는 사람에 빗댄 것이다. 시장통을 지나가다 보면 이곳 저곳 가게에서 호객 행위를 하면서 사람을 잡아 끄는데, 명상을 하는 이의 마음 속에 일어나는 일도 그와 같다는 것이다. 끌려서 가게에 들어가지 말고, 그냥 쭉 가던 길을 가라고 했다. 설사 어느 가게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더라도, 다시 나와서 가면 된다고. 나는 그 비유가 참 마음에 들었다.


  사실, 명상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생각들은 글쓰기에 대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 나 자신을 감동시키고 다른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명상의 시간에는 그조차도 집착이고 망상이 된다. 나는 글쓰기에서도 그런 욕심과 나 자신을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좋은 글이란, 그런 비움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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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는 글입니다.


  추워지는 계절에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TV 시리즈 연작 '십계(1989)' 가운데 1편, 언어학자인 아버지와 그의 어린 아들이 주인공인 영화다. 1시간이 채 되지 못하는 이 짧은 드라마가 말하는 주제는 무척 무겁고 심오하다. 이 연작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곳은 당연히 '종교' 쪽이다. 예전에는 이 시리즈를 다 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전편을 구해서 본다는 것이 참 어려웠다. 지금처럼 영화 공부하기 편한 시대가 아니었다. 원하는 자료 찾으려고 비디오 가게들도 여러 군데 들리고 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이 '십계'가 온전히 다 갖추어진 곳이 있기는 했다. 성 바오로 딸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서원이었다. 회원 가입을 하면 빌릴 수가 있어서 결국 다 보았다. 그 시리즈는 항상 인기가 있었으므로, 늘 대여 중일 때가 많았다.  

 

  "하느님을 믿어요?"

  "그럼."

  "그분은 어떤 분인가요?"


  언어학자 크르지스토프의 누나인 이레나는 독실한 신자다. 그는 어린 조카 파웰의 물음에 파웰을 꼭 안아주며 묻는다. 무엇을 느끼냐고 하자, 파웰은 고모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래, 하느님은 그런 분이야."


  신을 믿는 누나와는 달리 크르지스토프는 신이 아닌, 자연과학의 법칙을 신봉하는 사람이다. 그는 컴퓨터로 대변되는 현대 문물에 대해서도 강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 그의 아들 파웰은 그런 아버지를 좋아하고 잘 따른다. 어느 아주 추운 날, 파웰은 스케이트를 타고 싶다고 말한다. 크르지스토프는 아들과 함께 컴퓨터로 연못의 얼음 두께를 계산해 본다. 그 계산의 결과는 연못의 얼음이 아들 파웰의 몸무게를 충분히 지탱할 수 있고, 깨지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아들은 연못으로 스케이트를 타러 간다.


  주의깊게 볼 것, 그래서 불행해지는 일을 가급적 피할 것. 인생의 어떤 고통과 불행은 예기치 못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우리가 가진 약점과 불안정성에 기인하는 경우도 많다. 크르지스토프가 완전하다고 믿은 과학의 법칙, 진리는 미세한 균열을 가진 것이었고, 그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가져온다. 


  결국 아들의 시신을 연못에서 건지는 것을 보면서, 크르지스토프는 절망한다. 그는 아들이 스케이트를 타러 가기 전날 밤에 직접 연못으로 가서 얼음의 두께까지 재어보고 확인까지 했었다. 그가 신봉하던 과학과 삶을 지탱하던 가치관 모두가 무너져 내린다. 그는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들을 잃었다.


  마치 과학과 컴퓨터를 물신 숭배하는 크르지스토프에게 닥친 신의 징벌 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단선적 시선에서 더 나아가 깊이 볼 것을 요구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어떤 신념, 확신, 사상, 가치관 그 모든 것들은 결코 확고부동한 진리가 아니며, 지상의 유한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 가운데 '신'의 지위를 부여하고 맹목적으로 따르게 되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을 키에슬로프스키는 황량하고 암울한 폴란드 바르샤바의 풍경 속에 담아낸다.



*사진 출처: prezkroj.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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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때, 아침 첫 수업 시작 전, 그러니까 대략 8시 50분쯤에 '명상의 시간'이란 이름의 학교 방송이 나왔다. 방송반 애들이 하던 건데, 그냥 별 시덥잖은 이야기들을 나름 우아하게 늘어놓는 방송이었다. 5분 정도 되는 그 방송은 뭐 오늘 하루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보내자, 가끔은 하늘과 꽃도 보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자, 그런 내용들이었다. 중학교 방송반 애들의 방송 원고 수준이란 것이 뭐 그랬겠지. 그걸 주의깊게 들은 애들이 얼마나 되었을까? 나도 그 방송 나오면, 조금 있으면 1교시네, 그랬었다. 그런데 많은 아이들은 그 방송이 나오기만 하면 몸서리를 쳤는데, 그건 '명상의 시간'을 읽는 방송반 아이의 목소리가 '전설의 고향' 오프닝을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란 제목이 세로로 뜨면서, 음울한 까마귀 소리와 함께 시작하는 KBS의 오래된 드라마. 우리 집에 있던 흑백 TV는 갈색 장식장에 다리 받침이 4개 있었더랬다. 그 시절부터 봐오다가, 1980년대 초반에 금성 칼라 TV가 나오면서 칼라 방송으로 보게 되었다. 그 칼라 TV가 나왔을 때 처음 봤던 방송은 외화 '기동순찰대'였다. 아무튼 당시의 아이들에게 '전설의 고향'은 좀 무섭기는 해도, 뭔가 끊을 수 없는 마력의 드라마였다. 무슨 대단한 재미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거기에 담긴 기이하고 나름 놀라웠던 이야기들이 꽤나 인기를 끌었다. 무서운 이야기들은 보고 나면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극이 끝날 때면, 성우 김용식 씨가 어디에서 전해 내려오는지 지역명과 함께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교훈도 말해준다. 언젠가 케이블 TV에서 김용식 씨의 개인 다큐를 본 적이 있다. 그에게도 이 방송은 성우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애착이 가는 방송이었다고 했다.


  대개는 권선징악의 이야기들이었지만, 더러는 참신한 이야기들도 있었고, 특히 내가 좋아했던 이야기는 '구미호'가 나오는 전설이었다. 정말 구미호 이야기는 잊을 만하면 나오고 그랬었다. 배우 최선자 씨가 주로 구미호, 내지는 귀신, 무당과 같은 배역을 맡아서 했는데, 정말 잘 어울렸다. 어떻게 보면, 배우로서는 그렇게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이 싫기도 했겠다 싶기도 하다. 아무튼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은 약점을 가지고 있었고, 그 약점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벌을 받거나, 때로는 죽음에 이르기도 했다. 아주 고전적인 의미의 '인과응보'를 여실하게 보여준달까? 아이들에게 그만한 TV 도덕 교과서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이야기 소재도 고갈되었고, 사람들에게 그런 고전적 이야기의 드라마가 더이상의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하게 되면서 1989년에는 중단되었다. 종영은 아니었고, 여름 특집으로 한정적으로 1996년부터 다시 시작되었는데 그 때도 드문드문 챙겨 보았던 기억이 난다. 케이블 TV에서도 그 당시 그렇게 방영된 '전설의 고향'을 가끔씩 틀어준다. 그걸 보면, 지금은 인기 배우가 된 이들의 신인 시절 모습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의외로 많은 배우들의 '연기 등용문(!)'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결국 그렇게 부활한 드라마였지만, 특수 효과나 분장 면에서 한정된 제작비 때문에 질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영화가 보여주는 컴퓨터 그래픽의 사실성에 비한다면야 어떤 의미에서 아이들조차도 외면할 것 같은 수준이었다. 스티로폼에 암회색 페인트칠 해놓은 돌무더기가 쌓인 험준한(?) 마을 입구 세트장도 그냥 즐겁게 봐주던 1980년대 전설의 고향 시청자들이 아니었다.


  그런 외적인 문제점 이전에 어쩌면 사람들은 구닥다리 과거의 괴담에 흥미를 잃었던 것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 그런 권선징악의 이야기가 주는 훈계를 귀담아 듣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1980년대를 거쳐 90년대에 이르는 시대는 경제발전의 호황과 함께,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는 중산층으로의 진입, 부의 축적에 집중되었다. 사람들의 내면은 도덕과 윤리적 가치 보다 물신주의에 빠르게 물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많은 중장년층 세대에게 그 시대는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시기가 아니라, '어떻게든 돈이 잘 벌리던 시대'로 기억된다.


  아무튼 '전설의 고향'은 2009년을 끝으로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그 방송이 다시 부활하기를 기대하는 이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지난 방송들에서 추억을 찾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 요즘 세대들이야 그 드라마를 보게 된다면, 도대체 저런 '후진'걸 어떻게 보냐고 하겠지만 그 드라마와 함께 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단순히 재미로 보는 것은 아니다.


  '전설의 고향'에는 분명, 국가가 국민의 가치관을 억압하고 강제하던 시절의 '교훈적 가치'들이 명확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것을 당시의 사람들이 즐겁게 보았던 이유는 1980년대라는 그 시대가 점점 더 전통적 사회와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나름대로 자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시대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 고전 드라마가 강조하는 가치들은 어디까지나 '이상향'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되돌아갈 수 없는 시대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이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편의주의적이고 물신숭배적인 가치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던 시대였다.


  '전설의 고향'과 더불어 내게는 1988년에 MBC에서 보여준 이혁수 감독의 '여곡성(1986)'이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진짜 그 당시에 그걸 공중파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게 충격과 공포였다. '여곡성'은 한국 공포 영화를 우습게 생각하던 나에게 진정한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어떻게 저런 날것의, 사람의 감각을 온통 뒤흔드는 공포를 보여주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 생각했었다. 그 영화의 몇몇 장면들은 세월이 꽤 흘러서도 잊혀지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저런 놀라운 한국 영화가 왜 언급되지 않는지, 나중에 영화를 공부하면서도 의문을 품었다. 그 '여곡성'이 2018년에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래도 그 영화를 알아봐준 사람이 있기는 있었구나 했었다. 그러나 그 리메이크 영화는 사람들에게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영화 '여곡성'이 보여준 한국적 공포의 세계도 놀라웠지만, 나에게 그 영화는 당시 한국 사회에 대한 내면적 풍경으로도 느껴졌다. 물론 나는 당시에 학생이었고, 뭔가 그 영화를 분석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경제발전과 호황으로 정신없이 질주하던 그 시대의 사람들과 사회의 이면에는 뭔가 조금씩 썩어 들어가고 어그러지기 시작하는 것들이 있었다. 영화 속 한 집안에 닥친 엄청난 액운은 가장의 비도덕적이고 불의()한 행동이 그 시작점이었다. 그런 어긋난 윤리와 파렴치한 과거의 행위 때문에 그 집안의 뿌리는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영화 '여곡성'은 단 한번 그렇게 공중파 방송으로 나왔을 뿐이고, 다시는 그 어떤 형태로든 방영된 적이 없다. 어쩌면 그 엄청나고 대단한 영화를 내가 본 것은 행운 같기도 하다. 아마도 그 영화에 대한 추억을 가진 이들은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돌아보며, 그렇게 떠올릴 수 있는 드라마와 영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이 나이가 들었을 때 어떤 드라마와 영화를 떠올릴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내가 공중파와 케이블 방송에서 드라마를 안 본 것이 꽤 되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지금 세대의 작가들이 쓰는 이야기들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꽤 많은 공감을 받았다는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도 나는 시큰둥하게 봤다. 그 시대를 살아온 내가 보기에 그 드라마의 핍진성은 그렇게 크지 않다. 젊은 세대가 보기 좋도록 잘 꾸며놓은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 드라마에서 사실적인 것은 오직 '노래' 뿐이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나중에 그 드라마를 '인생 드라마'로 꼽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렇게 '전설의 고향'과 '여곡성'을 추억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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