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이었을 것이다. KBS에서 보여준 아시아 특집 다큐멘터리였던 같은데, 인도 편은 인도 어느 입시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교육열로 치자면야 인도도 입시 광풍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이다. 인도에는 도시 전체가 입시 학원으로 채워진 그런 곳이 여럿 있다고 하는데, 내가 본 다큐에 나온 도시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인도 각지에서 몰려든 수험생들이 꽉 짜여진 학원의 일정의 따라 하루를 일사불란하게 보낸다. 그야말로 난다 긴다 하는 수재들이 모여서 경쟁을 하는데, 그들이 목표로 하는 곳은 인도 공과대학교(IIT), 의과 대학, 교대, 이런 곳들이다. 인도 사회가 뿌리 깊은 카스트 사회이기는 해도 돈 잘 버는 안정적인 직업은 상류층으로의 지름길이다.


  자신에게 걸린 집안의 미래와 부모의 기대를 생각하며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한다. 하숙비와 학원비를 비롯해 생활비까지, 그곳에서 공부하는 자체가 엄청난 비용이 든다. 아무튼 대학 입시 시험을 치루고 다큐에 나온 학생들의 후일담까지 나오는데, 내가 충격을 받은 부분은 그 도시에 있는 냉각탑이었는지, 아무튼 높고 거대한 구조물에 관한 것이었다. 좋지 못한 입시 결과를 받아든 학생들이 해마다 그곳에서 목숨을 끊는다고 했다.


  학력고사 세대로서 내가 지나온 시대에는 입시 끝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학생들이 한 해에 꼭 몇 명씩 나왔다. 1980년대 신문에는 손주 시험에 붙으라고 찰떡 만들어 먹다 목에 걸리는 사고로 할머니가 죽는 일도 드문 드문 실렸다. 마치 영화 속의 흔하디 흔한 클리셰처럼, 학력고사 만점자의 인터뷰에는 늘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느니, 과외는 안했다느니, 규칙적으로 생활했다느니, 하는 내용들이 있었다. 요새도 수능 만점자 인터뷰에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 것 같다.


  내가 다녔던 재수 학원은 기숙 학원을 따로 운영했는데, 그곳에서 사고가 있었다. 내가 학원에 등록한 지 2개월이 되던 3월 말의 일이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그 학생을 나는 학원 복도에서 딱 한 번 보았다. 제법 덩치가 있는 여학생이었데, 머리를 삭발해서 눈에 확 띄었다.


  "죽을려면 지네 집에 가서 죽지, 재수없게 여기서... 참, 나..."

 

  그렇게 말한 사람은 학원 선생 가운데 한 명으로, 그 학원에 공동 출자한 사람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나는 다른 곳으로 학원을 옮겼다. 새로 옮긴 학원은 들어가기 전에 시험을 쳐야했는데, 그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으므로 나는 특별반에 배정되었다. 그곳에서 첫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았을 때가 기억이 난다. 50명 정원인 반에서의 석차가 이제까지 내가 받아본 적이 없는 등수였다. 나는 학창 시절 동안 전교 등수로도 그런 석차는 받아본 적이 없었다. 아무튼 그곳에는 서울대 다니다가 과가 마음에 안들어서 그만 두고 온 사람들도 여럿 있었고 그랬었다.

 

  "내가 대학 가면, 여기 학원에서 만난 애들은 아는 척 안할 거야."

 

  같은 반 누군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나도 속으로 그랬다. 너 같이 재수없는 아이는 나도 결코 아는 척 하고 싶지 않아. 걔가 어느 대학에 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서울대의 원하는 과에 간 사람도 있었고, 명문대 공대로 간 이도 있었다. 더러는 또 다시 떨어져서 후기 대학으로 갔다. 그러나 그곳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공부해서 치대와 의대를 간 친구들도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의대는 '워너비' 인기 학과였다. 내 생각에 의사가 되려는 사람은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돈 잘 버는 전문직이어서 모두다 가고 싶어했다.


  아마도 3학년 1학기였던 것 같은데, 개인 프로젝트 수업에 다큐를 만들려고 했었다. '청소년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처음 만드는 다큐로는 너무 버거운 소재였는데도 나는 그걸 꼭 만들고 싶었다. 기획 단계에서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고, 결국은 그냥 미완으로 남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왜 나는 그런 이야기의 소재를 택했던 것일까? 아마도 재수 시절의 그 '사건'이 마음 속에 오랫동안 남아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사건을 직접 목격한 것도 아닌데도, 그 일은 잊혀지지가 않았다. 그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로 보기도 어렵고, 어쨌든 나는 아직도 종교인이 아닌 사람이 머리를 빡빡 밀은 것을 보면 '흠칫'하고 놀라는 때가 있다.   


  기사를 검색해 보니, 작년에도 수능 끝난 후에 비극적 선택을 했던 학생이 있었다. 그래도 요새는 대학 입시 전형 과정도 다양해져서 그런지, 학생들도 자신의 진로와 관련해서 여러 선택지를 갖고 있는 것은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대학 입시는 인생의 많은 과제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그것에 너무나 큰 의미를 부여해서 학생들이 지나친 압박감에 시달리다 못해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고 해도 그 꿈을 직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또한 그 직업으로 만족할 만큼의 소득을 얻는 경우는 더 드물다. 대개는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간다. 그러고 보면,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 보다 더 흔들리고, 부서지기 쉬우며, 더 좌절하기 쉽다는 생각도 든다. 그 과정이 때론 혹독하기 때문이다.


  재수 시절에 겪었던 이야기들이야 여러가지가 있다. 나는 언젠가 그것을 소설로 써야지 하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고서 이렇게 세월이 흘렀다. 이제 그걸 소설로 쓴다 해도 그 책을 누가 사서 볼까 싶다. 나와 비슷한 꼰대 세대로 재수를 했던 이들이나 사서 볼까? 지금의 젊은 세대가 그런 이야기를 읽을 것 같지가 않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블로그에나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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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새 EBS 클래스 e에서 박중근의 '90년생과 일하는 법'을 보고 있다. 강의는 대부분의 회사에서 리더의 위치에 있는 '꼰대' 70년생이 어떻게 하면 '자기 중심적'인 90년생과 더불어 잘 일해나갈 수 있는지를 다룬다. 강의의 외피는 회사의 인적 관리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뭔가 세대 분석론 같기도 하고 의외로 재미가 있다.


  가끔 주변에서 듣는 요즘 회사의 풍경은 확실히 낯설게 느껴지기는 한다. 부하 직원에서 일을 시키면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생각해 보구요."


  생각해 보고, 그 업무를 할지 말지 결정하는 세대. 내가 들은 또 다른 이야기는 이렇다. 상사는 물론 동료와의 대화 녹음이 일상화 되어서, 조금이라도 본인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인사팀에 발췌한 녹음 파일을 보낸다고 했다. 그렇게 쏟아지는 고발 때문에 인사팀에서는 속된 말로 '돌아버릴 지경'인 듯하다. 스마트폰에 기본적으로 장착된 녹음 기능이 요새는 그렇게 쓰이는가 보다. 하긴, 요새 대학생들은 강의 시간에 필기를 안 한 지 오래고, 많이들 녹음을 해간다고 듣기는 했다.


  다큐 'The Social Dilemma(2020)'를 보면서 그 90년생들을 떠올렸다. 그들의 성장기에 접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ing service)'가 세대적 특성을 규정하는 데에 특별한 역할을 했을 것도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셜 미디어로 무엇이든 즉시 연결되며, 소통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런 연결망 안에서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완벽하게 잘 돌아가야 한다는 믿음.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과 아날로그 시대를 거쳐온 기성 세대들이 같이 일하면서 겪는 갈등은 비단 한국만의 경우는 아닌 모양이다. 외국의 회사들도 비슷한 세대 갈등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다큐는 거대 소셜 미디어 회사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이용자의 정보를 토대로 극도의 상업적 이윤 추구에만 몰두하고 있는 문제를 다룬다. 끊임없이 이용자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그 과정이 마치 마약에 '중독'되는 것과 비슷하며, 그것을 이윤 창출의 상업적 방편으로 이용하는 소셜 미디어 회사들의 비윤리성을 지적한다. 그것을 막으려면 정부의 정책적 규제, 그리고 이용자 스스로 자신의 주의력을 분산(distraction)시키는 그런 소셜 미디어에 비판적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참 단순한 요약 같지만, 다큐에서 제기하는 소셜 미디어의 주요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은 어렵고 암울해 보인다.   


  특히,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는 주 연령대인 십대에서 정서적인 문제를 호소하는 비중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주의깊게 다룬다. 이 부분은 심리학에서 아주 관심있게 연구하고 있는 주제들이고, 그 연구 결과들도 많이 나온 상태다. 다큐에서 인터뷰한 실리콘 밸리의 임원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소셜 미디어 이용을 극도로 엄격히 제한, 또는 금지하고 있다고 털어 놓는다. 뭔가 자신들이 만들어 낸 그 도구들이 무서운 괴물의 면모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다큐는 거대 소셜 미디어 회사의 핵심 파트에서 일했던 주요 경영진들, 관련 분야 학자들의 인터뷰들이 주를 이룬다. 그들이 말하는 무거운 이야기들을 보다 쉽게 보여주기 위해 가상의 가족이 등장하는 영화적 설정을 넣었는데, 그 부분도 꽤나 흥미롭다. 한마디로 현재적 시점에서 소셜 미디어의 문제점을 다룬, 아주 잘 만들어낸 시사 다큐라고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thenewsminu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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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분. 오래전 읽은 시나리오 작법 책 첫부분에 나온 조언은 '20분 안에 관객을 사로잡지 못하는 영화는 망한 영화'라고 쓰여 있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그 이후로 나는 어떤 영화를 보든 20분을 한계 시간으로 정해놓고, 그 영화를 볼 것인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대개 괜찮은 영화들은 그 기준선 안으로 여유있게 들어온다. 다만, 가끔 그 20분을 넘겨서 인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대가()'라고 내가 생각한 영화 감독들이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이 그러했다. 그의 영화 '희생(1986)'은 나에게 대단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영화였다. 세 번을 보았는데, 안타깝게도 그 세 번 모두 보다가 졸았다. 나중에 눈을 떠보면 집이 불타고 있는 마지막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세바스찬 융거와 팀 헤더링턴이 만든 다큐 'Restrepo(2010)'는 시작부터 예사롭지가 않다. 미군 장갑차 내부를 보여주는 화면은 갑작스런 폭발음과 함께 관객을 놀라게 만든다. 2분 45초쯤이다. 내 머릿속의 20분 기준선은 이미 날아가 버렸다. 탈레반이 설치한 IED(Improvised Explosive Device)가 지나가는 길목에서 터졌고, 다큐의 초반부는 폭발음에 놀란 미군 병사들이 전투에 돌입하는 그 짧은 순간을 긴박하게 담아낸다. 촬영을 맡은 팀 헤더링턴은 총 대신에 카메라를 들고 그들의 전투 현장을 찍는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촬영이다. 그는 무려 1년여의 시간을 장병들과 같이 지냈다.


  미국 잡지 'Vanity Fair'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다큐는 2007년 5월부터 15개월 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격전지라고 알려진 코렌갈 계곡(Korangal Valley)을 사수하는 미 육군 부대 장병들의 모습을 담았다. 


  "거긴 죽음의 땅이지. 엿같은(holy shit) 곳이라구!"


  그곳에 배치되었다고 하자, 장병들에게 쏟아진 말들은 암울하기 짝이 없다. 험준한 협곡에 드문드문 자리한 부락들에 살고 있는 민간인들은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도 없다.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을 정찰나갈 때에 오히려 군인들의 신경은 더 곤두선다.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올지도 모르고, 탈레반과 내통하는 이들이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기 때문이다. 미군의 기습 작전으로 여자들과 어린 아이들이 죽는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그런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낄 여유조차 없다. 장병들은 자신의 동료들이 전투에서 죽어나가는 것을 계속 목도하기 때문이다.


  다큐 초반에 일등병 Restrepo가 교전 중에 사망하는데, 부대에서는 협곡 맨 꼭대기에 짓는 초소 이름을 그를 기억하기 위해 'OP(outpost) Restrepo'라고 명명한다. 그는 무척 따뜻한 품성을 가진 이로 부대원들을 위해 식사 준비도 잘 해내고, 그가 연주하는 기타 연주는 팍팍한 막사 생활에 지친 다른 장병들에게 위로를 준다. 그런 그의 이름을 부대원들이 끔찍하게 생각하는 그 초소에 붙인 것에 대해 어떤 장병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그곳의 일상은 아주 단순하다. 정찰과 휴식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데, 전투는 느닷없이 시작되므로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매일 하는 본부와의 교신 내용은 근처 부대에서 누가 죽고 다쳤다는 소식 뿐이다.


  다큐 후반부는 부대원들에게 하달된 'Rock Avalanche' 작전을 담아내는데,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작전에서 부대원들은 동료들를 잃는 비극을 겪는다. 카메라는 그들의 눈물, 두려움, 고통과 분노를 가감없이 그대로 담아낸다. 동료의 시신을 대충 덮고, 눈물을 흘리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다음에는 누가 그렇게 될 것인지 알 수 없는 극도의 불안감을 견디면서 전투에 임한다. 그들은 오직 자신과 동료들을 위해서 싸울 뿐이다. 거기에 자신들의 조국인 미국의 국민들이나 그 어떤 대의명분 같은 것은 끼어들 자리가 없다. 그것을 강조하며 일깨워주는 사람은 오직 부대장 뿐이다.


  "도대체 이 끔찍한, 말도 안되는 전쟁을 왜 그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서 하는 것인가?"


  이 다큐를 보는 동안 드는 의문은 그것이다. 그 전쟁과 파병을 결정하는 미국의 정치인들과 군 수뇌부들은 실제로 희생되는 군인들의 목숨에 얼마만큼의 무거움을 체감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미국 잡지 'The Atlantic'에서 언젠가 이에 대해 다룬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특집 기사는 미국이 세계 각지에서 수행하고 있는 전쟁의 규모가 갈수록 방대해지는 이유를 다뤘다. 거기에서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미국의 정치인들 대부분은 군대에 가본 적이 없는 이들이며, 실질적인 전투의 공포와 위협을 모르는 그들은 파병을 일종의 체스 게임의 말을 이동하는 것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그 기사는 또한 이 시대의 미군들에게 더이상 미국이 수행하는 전쟁의 대의명분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이 사라진 시점에서 어떻게 군인들에게 목숨을 건 전투의 타당성을 설명할 것인지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옆의 동료가 전투에서 죽거나 다쳐도, 매일 경계 근무를 서는 것이 무섭고 힘들어도, 그들은 미국에 있는 자신들의 가족과 애인, 친구들에게 그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어떻게 지내냐고 묻는 어머니에게 그런 속내를 털어놓을 수는 없다. 그런 어머니의 생일을 앞두고 그저 '생일 축하해요, 엄마'라고 했을 뿐이라고, 한 장병은 말한다. 그래서 이 다큐를 본 미군의 가족들은 자신들이 잘 알지 못했던 전투와 군인들의 실제적인 삶을 알게 되었다는 소감을 다큐를 만든 융거와 헤더링턴에게 무척 많이 알려왔다고 한다. 헤더링턴은 2011년 리비아 내전을 취재하는 도중에 폭발물 사고로 사망했다. 그때 그의 나이는 마흔이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목숨을 걸고 했던 진정한 보도 사진 작가였고 다큐 제작자였다.


  다큐 마지막 부분에서 인터뷰를 하던 장병들의 얼굴들은 하나같이 어둡고 슬퍼보였다. 그들 대부분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호소하고 있었다. 어떤 장병은 잠을 자면 악몽에 시달리기 때문에 차라리 깨어 있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어쩌면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할 무거운 상처들을 짊어진 그들에게 조국인 미국이 해줄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2010년 4월, 미군은 코렌갈 계곡에서 완전히 철수한다. 그곳에서 50명의 미군이 희생되었음을 알려주면서 다큐는 끝이 난다.


  다큐를 보고나서 우리 나라는 남북이 분단된, 휴전 상태의 나라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이런저런 한반도의 위기 상황에서 '차라리 전쟁을 해서 쓸어버리자'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에게 전투의 한복판에서 동료의 시신을 보고 울부짖는 'Restrepo'에 나오는 젊은이들의 얼굴을 한번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 어떤 대의명분과 정치적 올바름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죽음의 전투는 그 군인들에게 '빌어먹을(f**king)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사진 출처: indiewire.com(사진 왼쪽이 팀 헤더링턴, 오른쪽은 세바스찬 융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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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지나는 아파트 후문 담벼락 안쪽으로 쪼그만 초등생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고양이 한 마리를 두고 서로 만지고 예뻐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흔히 '턱시도'라는 별칭으로 불리우는, 검정 바탕에 배 부분은 흰색을 띈 그 고양이는 짐짓 거만한 표정을 지으면서 여자애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었다. 낮에는 초등생 아이들이 와서 그러더니, 오후에는 중학생 여자애들이 그 난리였다. 담벼락 안쪽은 아파트 베란다가 접해있는 방향으로, 꽤나 넓은 풀밭이 자리하고 있었다. 녀석은 그곳이 다 제 영역인 것처럼 해가 좋은 낮 동안 그곳을 차지하고서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어느 날 오전에, 아이들이 오기 전에 녀석이 있는지 한번 그 담벼락 안쪽으로 가보았다. 나는 녀석이 그곳에 낮에만 오는 줄 알았더니, 아예 누군가 집을 지어주었고 집 옆에는 사료 포대와 물병까지 다 갖추어져 있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아파트 단지이기는 했어도, 고양이들 나름대로 영역 다툼이 있는 곳인데 이 녀석은 정말 '땡' 잡았군, 하고 생각했다. 내 기척을 느꼈는지, 두툼한 담요가 깔아진 집에서 천천히 나와서는 입을 쫘악 벌리고 하품을 늘어지게 했다. 그러고는 내 앞에 터억 자리를 잡고는 도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녀석은 여느 길고양이들과는 달리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나는 녀석을 한번 쓰다듬어 주려다가 그만 두었다. 녀석은 이미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므로, 구태여 내 예쁨까지 받을 필요는 없었다. 사랑을 넘치게 받는 존재들은 그 사랑의 귀함을 모른다.


  그런데 녀석의 몸은 생각보다 너무 뚱뚱했다. 하도 애들이 이것저것 간식을 사다 먹이는 모양인가 보네, 싶었다. 아무튼 네 팔자가 상팔자로구나, 하고 뒤돌아 나왔다. 그러다 어제 아파트 단지를 지나오는데 녀석을 보았다. 그곳은 녀석의 집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이었다. 단지를 돌아다니는 녀석의 품새는 아주 여유가 넘쳤다. 나를 보아도 도망치지 않고 가만히 응시하고 서있었다. 가만 보니 녀석의 몸이 비대한 것은 출산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 것임을 알았다. 적어도 새끼가 세 마리 이상은 될 것 같았다. 새끼들 태어나면 그거 귀여워하느라 아이들이 더 난리를 치겠군, 하고 지나왔다.


  이 아파트 단지의 고양이들은 오랫동안 늘 적정 숫자를 유지하고 있다. 가끔 1층 화단 밑에 누군가 사료와 물을 챙겨놓은 것을 보기는 했다. 그래도 고양이들끼리 영역을 두고 혈투를 벌이거나 떼지어 몰려다니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이곳의 고양이들은 사람들에게 앵기는 법이 없었고, '거리두기'를 소홀히 하지도 않았다. 대개는 사람을 보면 도망가기 바빴다. 고양이들의 생김새도 참 볼품없었다. '코숏(Korean Shorthair Cat, 토종 한국 고양이)'이라 부르는 길고양이들 가운데에 미묘들이 얼마나 될까마는 그래도 사람의 눈길을 끄는 녀석들은 드물었다. 대개는 말라 있었고, 털들은 윤기가 없었다. 옅은 노랑색 바탕의 '노랑이'들, 꺼먼색의 '턱시도' 녀석들, 세 가지 색이 뒤섞인 '삼색이'들이 전부였다. 더러 성질 나쁜 녀석은 사람을 보면 경계가 심해서 더 소리를 내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아파트 단지는 고양이에게 먹이를 챙기는 캣맘들과 늘어나는 고양이들 때문에 불편을 겪는 입주민 사이의 갈등이 심각한 곳도 있다. 언젠가 기사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런 갈등이 있었던 아파트 단지에서 일어난 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캣맘들이 고양이 밥을 챙겨주기 시작하면서 불어난 고양이 개체수 때문에 입주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구청에서는 중성화 비용이며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서 더이상의 개입을 꺼린 상태였다.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에서는 중재를 위해서 그런 일에 나름 일가견이 있는 이를 불렀다. 그는 오랫동안 길고양이 보호를 위해서 일해온 이였는데, 아파트 단지마다 불거지는 이런 갈등 속에서 오히려 고양이들이 희생되는 것을 보고 그것을 중재하는 일도 하고 있었다.


  중재를 하게 된 그는 우선 캣맘들에게 더이상 먹이를 주는 일은 일체 하지 말고, 당분간 고양이들이 스스로 개체수를 조절할 수 있도록 놔두라고 부탁했다. 입주민들에게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 보아달라고 했다. 그러나 캣맘들은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가운데 '사건'이 터졌다. 고양이들이 맹독성 먹이를 먹고 대량으로 죽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다시 그곳을 찾은 그 중재자는 개탄했다. 자신들이 책임을 지지도 못할 고양이들에게 그저 밥을 주는 것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일이며, 입주민들의 마음을 얻지 않고는 고양이들도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런 일을 수두룩하게 보아왔던 것이다.


  최근에 인터넷 게시판에서 내가 본 글 가운데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자신의 동네에 갑자기 길고양이들이 엄청나게 늘어서 왜 그런가 했더니, 근처의 철거되는 재건축 단지에 서식하던 길고양이들을 모아서 캣맘들이 대거 이주시켰다는 이야기였다. 그건 그 동네 사람들에게도 불편을 끼치는 일이었지만, 그 동네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에게도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영역 동물인 고양이들의 세계에 갑자기 군대에 해당하는 고양이들이 들이닥쳤으니, 그건 그야말로 전쟁이나 다름없는 재앙이다. 한동안 고양이들의 피터지는 다툼이 이어질 것은 뻔한 일이다.


  고양이들은 귀여워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야생의 생태계에서는 의외로 흉포한 포식자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얼마 전에 읽은 과학 기사에는 어떤 동물학자가 자신의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정원에서 잡아온 조류들을 조사해서 발표한 내용이 있었다. 그 학자도 고양이가 그토록 다양한, 생각보다 많은 숫자의 새들을 사냥한 것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고양이가 자연 생태계에서 의외로 조류의 생존에 위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이다. 고양이의 '은혜 갚기'라고 알려진 행동은 쥐나 뱀, 새와 같은 동물들을 잡아서 주인집 댓돌에 놓는 것을 말한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엊그제 본 사진에는 시골집 고양이가 잡아서 문 앞에 놓았다는 '꿩'이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믿지 않았을 텐데, 그 과학 기사를 읽고 나서 그건 진짜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길고양이들의 삶이 고달픈 것이야 더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람의 손에서 키워지는 고양이들의 수명이 일반적으로 10년 이상인데 반해, 거리의 삶을 사는 고양이들의 수명은 2년에서 3년 사이를 오간다고 들었다. 그런 고양이들에 대해 연민을 가진 어떤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도 나름대로 이해가 간다. 단순히 밥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포획해서 중성화 수술도 해주고, 그 고양이들이 살고 있는 곳의 주민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가며 고양이들이 보다 좋은 여건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애쓰는 이들도 있다. 이 거대한 도시에서도 인간과 더불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고양이들을 향한 그런 따뜻한 배려가 남아있음을 본다.


  그러나 도시의 삶에서 길고양이들에게 인내심을 갖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밤에 울어대는 고양이 울음소리는 정말 견디기 힘들 때가 많다. 어느 해 겨울의 일이었다. 한밤중에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창문을 열어 보니, 아파트 출입구 근처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울고 있었다. 그 추운 겨울날에 짝을 찾는 애절함은 알겠는데, 소리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괴이하고 끔찍했다. 마치 칠판을 쇳조각으로 쉴 새 없이 긁어대는 소리였다. 언제쯤 울음 소리가 그칠까, 하고 기다리는데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다시 창 밖을 내다보니, 러닝셔츠에 반바지 차림의 젊은 남자가 보였다. 그도 자다가 깨서 나온 것 같았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맥주캔 같은 것을 고양이 쪽으로 내던졌다. 그제서야 고양이는 울음을 그쳤고, 놀라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비로소 다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아주 오래전 재수 시절에 학원 친구 S와 길을 가다가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뮤지컬 캣츠의 '메모리(Memory)'를 듣게 되었다. 내가 그 노래에 대해 주인공인 고양이가 과거를 추억하면서 부르는 노래라고 했더니, S는 이런 말을 했다.


  "아니, 어떻게 고양이가 과거를 추억할 수가 있어? 그런 게 가능해?"


  S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그렇게 되물었다. 아마도 S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예전에 한창 주성치 영화를 열심히, 즐겁게 본 적이 있었다. 당시에 주성치 영화팬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떠돌았다. 세상에는 주성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어쩌면 고양이에 대해서도 이 세상에는 고양이를 이해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뉠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나는 고양이를 그저 바라볼 뿐, 다가가지 않는다. 그 눈동자에 깃들인 세계는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오묘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난 길고양이들은 단 한번도 내가 불렀을 때 와본 적이 없으며, 나도 그 어떤 고양이에게 애착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래도 가끔 고양이가 지나다니는 것을 보면 무채색의 아파트 풍경에 다채로운 빛을 더한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아파트 담벼락의 그 고양이가 낳을 새끼들은 과연 누가 데려가서 키울 것인가, 요새 궁금한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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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츠츠이 야스타카의 소설집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꽤 오랫동안 책장에 처박혀 있었다. 2006년에 제작된 애니메이션을 본 것도 있고, 그 원작자의 혐한 발언을 알게 된 뒤로는 더 보기가 싫어졌다. 그러다가 이제서야 읽어 보았다. 책에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외에 2편의 단편이 더 실려 있다. 그 중 '악몽' 같은 경우는 작가가 대학 시절에 심리학에 심취했다더니, 거기서 영향받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정신분석 이론의 소설화 같은 것이랄까, 그런 것이 좀 독특하긴 했다.


  소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그냥 좀 심심한 느낌이다. 아, 여기서 이런 설정을 따왔구나, 하는 것을 확인하는 정도. 이 애니메이션에 대해 뭔가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죄다 스포일러가 된다. 이야기의 외피는 타임 리프(Time leap)라는 소재를 빌어온 SF(과학소설)을 취하고 있지만, 그 내부의 얼개는 로맨스, 성장 영화라는 틀을 갖추고 있다.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라는 것이 그토록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The Girl Who Leapt Through Time)'라는 제목 때문인지, 시간을 거슬러 가는 것을 '타임 리프'라고 말하는데, 영어로는 '타임 슬립(Time slip)'이 더 보편적으로 많이 쓰인다.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의 여주인공 마코토가 몇 번이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의도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점에서 'slip'이 가지고 있는 예기치 못한 '미끄러짐'의 의미 보다는 'leap'라는 단어가 더 적절할 것도 같다. 마코토는 자신에게 부여된 시간 여행의 횟수만큼 과거로 '도약해서'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에 본 애니메이션 분석하는 것도 그렇고, 원작 소설도 읽어보니 별다른 내용이 없어서, 이걸 가지고 무슨 글을 쓰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에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 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을까 하는... 요새 들어서 자꾸 떠오르는 일이 있기는 하다.


  J와는 1년 동안 같이 수업을 들었었다. 그 1년이란 시간 동안 J와는 말 몇 마디 나눈 것이 전부였다. 그랬는데도 나중에 J의 소식을 들었을 때, 한동안 충격을 받아서 마음이 꽤나 무거웠었다. 여러가지 불행이 겹쳤던 J는 아주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같은 공간에서 1년이란 시간 동안 수업을 들었다는 사실 때문이었을까, 나는 별다른 친분도 없었으면서도 J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짠하다. 내가 본 J는 자신감이 넘쳤고, 솔직하며 직설적인 사람 같았다. 가끔 J를 떠올릴 때면, J는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J가 만들고 싶었던 영화는 그렇게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만약 다시 과거로 돌아가 볼 수 있다면, 그 수업 시간으로 돌아가서 J에게 한 번쯤은 물어 보고 싶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으냐고... 그런데 생각해 보니, 친하지도 않은 내가 J의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또한 그걸 듣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 것도 없다. J 보다 삶의 시간들이 더 많이 주어졌다 하더라도, 만들고 싶은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J의 동기들 가운데에 누가 영화 감독이 되었다는 소식을 여태껏 들은 적이 없다.  


  요 며칠 동안 내내 마음이 무거웠었다. 건너 건너 아는 이의 죽음의 소식을 접했는데, 그는 내 또래였다. 5년 동안의 투병 기간은 생각보다 이르게 온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젊은 나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늙었다고 할 수도 없는 그런 나이. 젊은 나이의 죽음은 '요절(夭折)'이란 단어를 쓰는데, '夭'란 글자 자체가 '젊어서 죽다'의 의미이다. 거기에 꺾일 '折'자를 더했으니, 젊은 나이의 죽음이 갖는 비통함이 배가되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노년의 나이가 되어서 죽음을 맞이하면 덤덤해질 수 있을까? 도대체 죽기에 적당한 나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나 할까?


  지난 3월, 유럽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에 전염병이 들불처럼 번졌고, 그 결과 사망자의 대부분을 차지한 이들은 노인들이었다. 정부의 부실한 방역 대책에 항의하며 거리로 나온 노인들의 피켓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


  "죽어도 괜찮은 나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나이에 찾아 오든지 죽음은 슬픈 일이다. 그런 죽음의 소식을 듣고 나니, 나에게 남은 날들은 얼마나 될까 헤아려 보게 된다.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 것도 그런 데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에게 언제든 죽음의 시간은 들이닥치기 마련이다.


  과거로 돌아가서 J의 대답을 듣는다고 해도, 나는 J가 세상을 향해 영화로 말하고 싶었던 그 이야기들을 대신 해줄 수가 없다. J의 못다한 이야기는 그렇게 남았고, 그것이 그와 가깝게 지냈고, 그를 기억하는 이들을 가슴아프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읽으면서 나는 그 오래전 수업 시간의 J를 떠올렸다.



*사진 출처: ko.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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