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츠이 야스타카의 소설집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꽤 오랫동안 책장에 처박혀 있었다. 2006년에 제작된 애니메이션을 본 것도 있고, 그 원작자의 혐한 발언을 알게 된 뒤로는 더 보기가 싫어졌다. 그러다가 이제서야 읽어 보았다. 책에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외에 2편의 단편이 더 실려 있다. 그 중 '악몽' 같은 경우는 작가가 대학 시절에 심리학에 심취했다더니, 거기서 영향받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정신분석 이론의 소설화 같은 것이랄까, 그런 것이 좀 독특하긴 했다.


  소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그냥 좀 심심한 느낌이다. 아, 여기서 이런 설정을 따왔구나, 하는 것을 확인하는 정도. 이 애니메이션에 대해 뭔가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죄다 스포일러가 된다. 이야기의 외피는 타임 리프(Time leap)라는 소재를 빌어온 SF(과학소설)을 취하고 있지만, 그 내부의 얼개는 로맨스, 성장 영화라는 틀을 갖추고 있다.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라는 것이 그토록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The Girl Who Leapt Through Time)'라는 제목 때문인지, 시간을 거슬러 가는 것을 '타임 리프'라고 말하는데, 영어로는 '타임 슬립(Time slip)'이 더 보편적으로 많이 쓰인다.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의 여주인공 마코토가 몇 번이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의도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점에서 'slip'이 가지고 있는 예기치 못한 '미끄러짐'의 의미 보다는 'leap'라는 단어가 더 적절할 것도 같다. 마코토는 자신에게 부여된 시간 여행의 횟수만큼 과거로 '도약해서'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에 본 애니메이션 분석하는 것도 그렇고, 원작 소설도 읽어보니 별다른 내용이 없어서, 이걸 가지고 무슨 글을 쓰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에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 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을까 하는... 요새 들어서 자꾸 떠오르는 일이 있기는 하다.


  J와는 1년 동안 같이 수업을 들었었다. 그 1년이란 시간 동안 J와는 말 몇 마디 나눈 것이 전부였다. 그랬는데도 나중에 J의 소식을 들었을 때, 한동안 충격을 받아서 마음이 꽤나 무거웠었다. 여러가지 불행이 겹쳤던 J는 아주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같은 공간에서 1년이란 시간 동안 수업을 들었다는 사실 때문이었을까, 나는 별다른 친분도 없었으면서도 J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짠하다. 내가 본 J는 자신감이 넘쳤고, 솔직하며 직설적인 사람 같았다. 가끔 J를 떠올릴 때면, J는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J가 만들고 싶었던 영화는 그렇게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만약 다시 과거로 돌아가 볼 수 있다면, 그 수업 시간으로 돌아가서 J에게 한 번쯤은 물어 보고 싶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으냐고... 그런데 생각해 보니, 친하지도 않은 내가 J의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또한 그걸 듣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 것도 없다. J 보다 삶의 시간들이 더 많이 주어졌다 하더라도, 만들고 싶은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J의 동기들 가운데에 누가 영화 감독이 되었다는 소식을 여태껏 들은 적이 없다.  


  요 며칠 동안 내내 마음이 무거웠었다. 건너 건너 아는 이의 죽음의 소식을 접했는데, 그는 내 또래였다. 5년 동안의 투병 기간은 생각보다 이르게 온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젊은 나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늙었다고 할 수도 없는 그런 나이. 젊은 나이의 죽음은 '요절(夭折)'이란 단어를 쓰는데, '夭'란 글자 자체가 '젊어서 죽다'의 의미이다. 거기에 꺾일 '折'자를 더했으니, 젊은 나이의 죽음이 갖는 비통함이 배가되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노년의 나이가 되어서 죽음을 맞이하면 덤덤해질 수 있을까? 도대체 죽기에 적당한 나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나 할까?


  지난 3월, 유럽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에 전염병이 들불처럼 번졌고, 그 결과 사망자의 대부분을 차지한 이들은 노인들이었다. 정부의 부실한 방역 대책에 항의하며 거리로 나온 노인들의 피켓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


  "죽어도 괜찮은 나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나이에 찾아 오든지 죽음은 슬픈 일이다. 그런 죽음의 소식을 듣고 나니, 나에게 남은 날들은 얼마나 될까 헤아려 보게 된다.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 것도 그런 데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에게 언제든 죽음의 시간은 들이닥치기 마련이다.


  과거로 돌아가서 J의 대답을 듣는다고 해도, 나는 J가 세상을 향해 영화로 말하고 싶었던 그 이야기들을 대신 해줄 수가 없다. J의 못다한 이야기는 그렇게 남았고, 그것이 그와 가깝게 지냈고, 그를 기억하는 이들을 가슴아프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읽으면서 나는 그 오래전 수업 시간의 J를 떠올렸다.



*사진 출처: ko.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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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에 빈민가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내가 가르쳤던 과목은 영어였다. 사실 무슨 대단한 뜻을 가지고 한 것은 아니고, 뭔가 좀 의미있는 일을 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마음에서였다. 나름의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시작했던 그 일은 내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아이들은 수업 태도가 좋지 못했고, 기본적인 학습 능력도 상당히 많이 떨어져 있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6학년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알파벳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런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에 대해 이미 포기해버린 듯한 모습을 보인 점이었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하는 마음도 없었으므로 수업 시간은 배우는 아이들에게도, 가르치는 나에게도 고역이었다. 


  아이들의 가정환경은 매우 불우했다. 편부모 슬하, 또는 조부모가 양육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은 하층민에 해당하는 계층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계층의 아이들에 대해 알지도 못했고, 어떤 면에서는 그런 아이들을 만나볼 기회도 없었다. 아이들의 마음 속 깊이 자리한 무력감과 패배감을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나는 헬렌 켈러를 가르친 설리번 선생도, '죽은 시인의 사회(1989)'의 키팅 선생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공부방을 위탁 운영하는 곳은 종교단체였는데, 그들의 태도도 문제가 있었다. 자원 봉사자 선생들을 고용인처럼 여긴달까, 그런 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던 차에 가르치는 시간을 나중에 가외로 요구하길래 그만 두었다. 


  올해 EIDF 상영작인 크세니아 엘리안 감독의 '겨울 아이들의 땅(2018)'을 보다가, 문득 그 공부방의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 아이들은 이제는 사회인이 되었을 텐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자신들이 처했던 여러가지 어려움들을 잘 극복하고, 그래도 씩씩하게 잘 살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전의 나는 그 아이들에게 무언가 조금이라도 희망의 기운이라도 불어넣어줄 수 있을 만큼의 인내심도, 이해심도 없었다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겨울 아이들의 땅'에 나오는 7살 자카르는 형 프로코피, 부모와 함께 시베리아 최북단 지역의 돌간족(Dolgans)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 이들은 유목 생활을 하는 소수 민족으로 2010년 인구조사에서 7800명 정도를 기록할 정도로 소멸 위기에 처해 있다. 가도 가도 눈과 얼음 벌판인 이곳에서 사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러시아 정부는 가정 교사를 파견한다. 다큐는 가정 교사에게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그 두 아이들의 일상을 담았다. 70분 남짓한 이 다큐는 별다른 내용이 없다. 엉뚱하고 호기심 많은 자카르의 수업 시간의 모습, 부모와 함께 하는 일상, 형과 함께 눈밭에서 구르고 싸우는 모습, 이것이 전부이다. 그런데도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맑아지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도시 생활에 찌든 이들에게 선사하는 힐링 다큐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첫 수업 시간에 젊은 여선생님 넬리가 자카르에게 묻는다.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고. 


  "음, 그냥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자카르의 소망은 그러하지만, 소년이 선생님과 부모님, 형에게 하는 질문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형에게 우주가 얼마나 큰지 묻는가 하면, 순록 사냥을 따라가서는 죽은 순록의 근육이 왜 움직이는가를 아버지에게 묻기도 한다. 촬영 감독에게는 왜 일을 안하고 맨날 쓸데없는 사진만 찍고 있느냐고 호통(!)을 치기도 하는데, 그 장면에서는 웃음이 나온다. 아이의 질문에 그 누구도 딱 맞는 답을 해주지 못한다. 그렇게 한없는 질문들을 던지면서, 아이의 꿈도, 희망도 커져간다. 


  키우는 개와 눈밭에서 구르고, 형과 눈싸움하다 얻어맞기도 하고, 아이가 그렇게 자신을 둘러싼 가족과 광대한 자연 속에서 티없이 사는 모습은 결코 도시의 아이들이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기도 하다. 자카르와 형이 받는 문명의 혜택이라고 해봐야, 아버지의 작은 노트북으로 보는 괴수 영화 같은 것이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평온하고 행복해 보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대 도시의 그 어떤 부모나 아이들도 자카르와 그 가족의 삶을 부러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그러한 삶은 단절되고 낙후된, 발전의 가능성이 없는 원시적 삶일지도 모른다.


  끝이 없어 보이는 설원에 서 있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구김살이 없다. 그 누구도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더 열심히 하길 요구하거나 채근하는 법이 없다. 도시 아이들의 얼굴에 없는 생기와 순수함이 자카르에게는 가득하다. 그 얼굴을 보면서, 오래전 내가 가르쳤던 공부방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나는 그들의 얼굴에서 열패감과 깊은 좌절감을 읽어낼 수 있었고, 그것은 나에게도 안타까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어제,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이 끝났다.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직업과 직장, 더 좋은 집과 생활 환경... 그 기나긴 경쟁의 여정에서 고 3인 아이들은 겨우 한발을 떼었을 뿐이다.


  "우리 아들 시험 잘 봐서 꼭 의대 가자!"


  소원을 비는 쪽지에 어떤 학부모가 쓴 글귀 사진을 인터넷 뉴스에서 보았다. 이 시대 학부모가 자신의 아이에게 바라는 최고의 소망은 그런 것이었다.


  자카르가 사는 '겨울 아이들의 땅'에는 경쟁에서 뒤쳐졌다고 절망하거나 슬퍼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 광대한 설원의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이 아이를 꿈꾸게 만든다. 그런 아이들이 존재하는 세상이야말로 희망이 있다고 할 것이다.



*사진 출처: marxfil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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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V에서 재방해준 옛날 드라마 '바람은 불어도(1996)'가 끝난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엊그제 보니 그 드라마를 또 다시 틀어주고 있다. 이렇게 한 해에 같은 드라마를 두 번이나 방영해주는 경우는 드문데, 내가 편성 담당자가 아니니 왜 그런지는 알 수가 없다. 편수가 적은 24부작 '청춘의 덫(1999)'이 끝난 후, 마땅한 대타 드라마를 찾지 못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옛날 드라마들을 도대체 왜 방영하느냐, 이걸 누가 보느냐, 그와 같은 의문을 가지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이러한 옛날 드라마들은 그 드라마와 같은 시대를 살았고, 그 드라마에 나온 인물들의 이야기와 가치관에 공감하는 중장년 세대들에게는 잊지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옛날 드라마들만 전문적으로 방영하는 케이블 채널도 있는 것이다. KTV 같은 경우, '전원일기'를 계속 방영해주고 있는데, 이 또한 인기가 많다. KTV 시청자 게시판을 보면, 자신이 원하는 오래된 드라마 방영 요청에 대한 글, 추억의 드라마를 보게 되어 좋고 고맙다는 글, 왜 결방이 되었나 항의하는 글까지, 옛날 드라마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도 나름 대단함을 느낀다.


  '바람은 불어도'는 문영남 작가의 소설 '황가네 식구들'을 드라마로 각색한 것이다. 문영남 작가에게 큰 인기를 가져다준 실질적인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다. 1992년에 MBC에서 방영된 '분노의 왕국'도 꽤나 인상적이었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안타깝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배우 변영훈의 열연이 돋보이는 드라마였다. 아무튼 문영남은 '바람은 불어도'로 본격적으로 드라마 작가로 나설 수 있었고, 역시 이 작품으로 이름을 알린 배우 손현주는 문영남 작가가 평생의 은인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얼마나 인기가 있었던지, 일일 드라마로서는 무려 245부작, 거의 1년에 가깝게 '엿가락' 늘이듯 드라마가 방영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의 줄거리는 어떠한가? 인쇄소 공장장인 황정운(김무생 분)과 그의 철없는 동생 황정택(한진희 분), 그들의 어머니(나문희 역), 황정운의 세 아들과 그들의 가족을 둘러싼 바람 잘 날 없는 황씨 일가의 일상이 드라마의 주요 내용이다. 그야말로 3대가 모여 살면서 복작거리는, 전형적인 대가족 홈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도 이 드라마를 젊은 세대가 좋아했을 거라는 생각은 섣부른 추측이다. 요새 젊은 세대들이 TV 공중파와 케이블 채널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진부하다고 외면하는 것처럼, 당시의 젊은 세대에게도 당시 드라마들, 특히 일일 드라마에서 내세우는 가족, 가부장주의, 이런 것들의 가치관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을 리가 없다. 여전히 일일 드라마를 비롯해 주말 드라마를 보는 세대는 중장년층이었고, 파격적인 설정은 보기 어려웠다.


  3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 설정은 당시에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많았다. 동시대에 방영되었던 MBC의 '전원일기'도 시대적인 공감성을 상실하고 표류하고 있었다. 가족의 모든 것을 묵묵히 자신의 짐으로 짊어진 가부장으로서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와는 다른 삶의 선택들을 하는 여러 자식들, 그들의 배우자들에게 부여된 며느리의 의무, 여전히 권위를 가진 조부모 세대, 이런 전형적인 틀에 박힌 일일 드라마의 공식을 '바람은 불어도'는 답습한다. 김무생의 부인 역으로 나오는 배우 김윤경은 성깔있는 시어머니 나문희를 아주 극진히 모시고 사는데, 그 자신도 큰 며느리(박성미 분)에게는 꽤나 고루하고 까탈스러운 시어머니 노릇을 한다. 박성미는 집안의 대소사를 잡음없이 해내는 큰 며느리이면서, 또 인자한 맏동서이기도 하다. 박성미야 말로 '낀 세대'로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가 없는 위치에 있다. 


  그에 비하면 윤유선이 맡은 둘째 며느리는 삶의 방식에 있어서 좀 더 자유롭다. 우선 분가를 해서 살고 있고, 자신의 어머니도 모시고 살고 있다. 다만 힘든 점이 있다면 남편(정성모 분)이 지나친 짠돌이인데다, 자신을 항상 어린애 대하듯 가르치려 하고 나무랄 때가 있어서 속이 터지곤 한다. 이 드라마에서 윤유선은 좀 철은 없지만, 따뜻하고 감정표현에는 솔직한 둘째 며느리의 모습인데, 뭔가 '전원일기'의 김회장 댁 둘째 며느리 수남 엄마(박순천 분)의 모습과 겹치는 것도 같다. 그러고 보니, 이 드라마는 '전원일기'의 일일 드라마 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당시 KBS에서는 이 드라마를 홍보하면서 김무생의 셋째 아들 내외로 나온 배우 최수종과 유호정을 무척 강조했는데, 이것은 젊은 세대의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람은 불어도'에서 최수종이 보여주는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은 신세대와는 동떨어져 있다. 그도 여전히 가부장제의 수혜자로서 가족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자신의 부인도 잘 따라주길 바란다. 이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여성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이 드물다. 오직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인 할머니 나문희만이 그러할 뿐이다. 한진희의 부인 역으로 나오는 윤미라는 그런 면에서 좀 독특한 캐릭터이기는 하다. 늦은 나이에 한진희와 인연을 맺게 되는 윤미라가 보여주는 모든 행동과 사고방식은 대가족과 가부장제에 맞지 않는다. 한마디로 철 없고, 경우가 없다. 그래서 큰 동서 김윤경이 보기에는 고쳐야할 '버르장머리'들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3대가 바람 잘 날 없는 이 집안이 그래도 굴러가는 이유는 김무생 덕분이다. 그는 노모에는 다할 수 없이 효도하고, 가장으로서 충실하며, 아버지로서 자식들의 어려움을 보살피려고 최선을 다한다. 인쇄소 공장장으로서도 그가 직원들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유능한 직장 상사 보다는 자애로운 '아버지'에 가깝다. 말하자면 '따뜻한 리더쉽'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그의 방식은 새로 부임한 사장이 보기에 구시대적인 비효율성과 비합리성의 총합일 뿐이다. 김무생이 오랫동안 일하면서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알아봐주던 전임 사장과는 달리 그 아들은 결국 해고 통보로 '구세대'인 김무생을 '퇴출'시킨다.

 

  내가 보기에 이 드라마에서 가장 현실성이 있었던 부분은 바로 그 대목이었다. '바람은 불어도'가 방영되던 그 시기는 인터넷 혁명으로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던 때였다. 기성 세대에게 그것은 새로운 변혁의 물결이었고, 거기에 적응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인쇄소'라는 공간은 사회의 축소판이었고, 김무생은 그러한 기성 세대를 대변하는 인물로 여겨졌다. 그가 겪은 일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닥친 현실이었다. 구세대의 지혜, 경험은 더이상 존중받지 못했고, 새로운 세대들이 배운 지식과 신문물이 커다란 파고처럼 들이닥치고 있었다.


  결국 김무생은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가출'을 감행한다. 재방된 이 드라마에서 내가 다시 눈여겨 본 회차도 이 부분이었다. 여관방에서 쓸쓸히 혼자 앉아있는 김무생의 모습은 그 시대 어떤 가장의 슬픈 모습이기도 했다. 드라마는 다시 김무생이 공장장으로 복귀하는 것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그러나 현실의 많은 가장들은 그렇질 못했고, 이듬해인 1997년 말에 닥친 IMF 구제금융 사태는 더 많은 이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바람은 불어도'는 그해 한국방송대상 드라마 부문, 작가상(문영남), 여자 탤런트상(나문희)을 받으며, 명실공히 최고의 드라마로 자리매김했다. 그것은 시청률에서도 알 수 있는데, 역대 최고 시청률인 '보고 또 보고(1998)'에 이어 2위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평균적으로 40~50%에 이르는 높은 시청률을 보여주었고, 이것이 무리한 연장 편성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지금의 시점에서 이 드라마를 보면, 마지막 대가족 동화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시대의 시청자들도 대가족을 그려낸 이 드라마의 비현실성을 모르지 않았다. 사라져가는 시대의 유물을 TV에서 바라보는 것과도 같았다. 가족은 점점 더 작은 단위로 해체되어 가고 있었고, 이듬해 겪게될 경제 위기를 통과하면서 드라마 속에서 이런 대가족을 보는 일은 어렵게 되었다. 물론 김수현은 꿋꿋하게 대가족 드라마를 써냈지만, 그 드라마들은 현실의 반영이라기 보다는 작가의 설교를 이상화한 극본이었을 뿐이다. 김수현의 대가족 드라마들은 '부모 세대를 우습게 생각하지 말라'는 근엄한 훈계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의 훈계를 사람들이 더이상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된 시점에서 김수현은 새로운 드라마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 언급하고 싶은 중요한 연기자로는 배우 김지영이 있다. 한국 드라마에서 따뜻한 할머니 역을 도맡아 했던 김지영은 중년의 나이부터 할머니 배역을 해냈다. '바람은 불어도'에서 둘째 며느리 윤유선의 친정 엄마로 나오는데, 사람 좋고 모진 구석 없이 따뜻한 품성을 잘 보여주는 연기를 한다. 이 드라마에서 허연 가발쓰고 연기한 나문희 보다 실제 나이는 좀 더 많았다. 나문희에게는 이 드라마 이후 보다 많은 할머니 역이 주어진다. 한진희는 다소 코믹한 인물 설정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다지 잘 어울리지는 않는다. 한진희도 영 이 배역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다시는 그런 희극적인 배역은 하지 않겠다고 인터뷰 하기도 했다.

 

  지나간 드라마를 다시 보는 일은 때론 먼지 쌓인 책을 다시 들여다 보는 것과도 같다. 책장을 열어보면서 내가 그 당시에 느꼈던 느낌, 생각들을 되돌아 보게 된다. 그리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놓친 부분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먼지를 털고 보면 그런 새로운 발견의 경험이 열린다. 오래되었다고, 오늘날에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쉽게 폄하할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3대가 함께 정겹게 어울려 사는 대가족들이 있던 그 시대는 이제 멀리 사라져 버렸다. 다만 그저 이렇게 드라마에서나 존재할 뿐이다. 이 마지막 대가족 동화는 KTV에서 평일 저녁 8시 30분부터 2회씩 방영되고 있다. 지나간 시대의 정서, 추억, 그리고 중견 연기자들의 그 시절 연기들을 다시 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기억해둘 만하다.

 

 

*사진 출처: 경향신문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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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밖에 나갔다 오는 길에 보니, 자전거를 타고 가는 이들의 뒤편에 달력이 하나씩 묶어져 있었다. 그들은 모두 노인들이었다. 근하신년()이라는 반투명의 흰색 비닐 포장이 된 새해 달력을 얻는 것이 오늘의 주요한 일과였음을 짐작케 한다. 대체적으로 많은 곳에서 12월 1일에 달력을 나누어 준다.


  최근 몇 년 동안 달력 얻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실감했다. 주거래 은행의 벽걸이 달력은 3개월이 한 장에 인쇄된, 아주 실용적인 달력이어서 오랫동안 써왔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인가, 더이상 벽걸이 달력은 만들지 않는다고 해서 난감했었다. 다른 은행도 마찬가지였다. 벽걸이 달력은 비용 때문인지 만드는 곳이 점점 줄어들었고, 탁상 달력들로 대체되고 있었다. 작년에는 그나마 우체국에서 얻은 벽걸이 달력이 참 좋았었다. 지역 우체국 직원들이 찍은 아름다운 풍경 사진들이 달마다 인쇄된 달력이었다. 한 달이 지날 때마다 달라지는 계절의 풍광이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내년도 우체국 벽걸이 달력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내년 달력은 탁상용으로만 배부되고 있었다. 벽걸이 달력은 이제 구하기가 정말 어렵게 되었다. 얼마나 경기가 좋지 않으면 이럴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사실, 그걸 느끼게 된 것은 몇 년 전부터 변하기 시작한 달력의 재질 때문이었다. 부들부들하고 약간의 두께감이 느껴지던 재질이 얇아지고, 다소 거친 질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달력의 단가를 높이는 유명 화가의 그림이나 사진 작품 대신에 그저 그런 그래픽 디자인, 일반인 대상의 공모전에서 뽑은 그림 같은 것들이 실렸다. 예전의 화려하고 멋진 그림과 사진이 있었던 달력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는 뭐랄까, 달력의 몰락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제는 달력은 공짜로 얻는 것이 아니라 구매하는 것으로 바뀌는 추세도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각양각색의 독특한 디자인의 달력들이 연말이면 시장에 나오고 있다. 작년에 내가 받은 달력 가운데에는 달력에 자신이 원하는 필체로 직접 날짜를 기입할 수 있는 '창작' 달력도 있었다. 그걸 일일이 써넣는 것이 귀찮아서 누군가에게 주고 말았다. 나에게는 정말 별로인 달력이었다.


  예전에는 달력 얻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달력 인심'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연말이면 사람들은 이리저리해서 달력을 네다섯개 얻는 일이 보통이었다. 경기가 호황이었던 시절에는 은행들도 실적이 좋았을 터이니 달력 인심도 아주 넉넉했다. 그러나 이제 걸어두면 돈이 들어온다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은행 달력 얻는 것은 VIP 고객에게나 쉬운 일이다. 보통의 예금 잔고를 가진 이에게 은행이 배부할 달력은 없다. 없다면서 나에게는 주지 않는 달력을 바로 옆 고객에게 건네는 것을 겪어 보면, 자본주의의 그 쓰디쓴 뒷맛이 어떤가를 잘 알게 된다.


  달력이 흔하던 시절에는 명절 때 전을 부치는 채반에 흰색의 달력 종이들을 쫘악 펼쳐놓고, 그 위에 각양각색의 전들을 놓았다. 달력 종이들은 기름을 잘 먹었으므로 어머니들의 명절 필수용품이었다. 나중에는 그 종이들에 형광물질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외면당했지만, 그런 시절도 있었다. 요새처럼 요리에 쓰는 기름종이들이 잘 나와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일력()'을 보는 것도 흔했다. 매일 한 장씩 뜯게 되어있는 그 달력을 걸어놓은 집과 상점들도 많았다. 일력에는 열두 간지()에 따른 동물들이 손톱만큼 작게 그려져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말(午, 십이지의 일곱째)의 날에 태어났으므로, '말'자를 넣어 이름을 지으려 했다고 가끔 지나가는 말로 웃곤 하셨다. 물론 말자, 말순이란 이름의 '말'은 '끝()'이라는 뜻이다. 아들을 낳길 간절히 바라던 시대에 원하던 아들이 아닌 딸이 태어나면 그런 이름을 짓던 시대도 있었다. 드라마 '아들과 딸(1992)'에 나오는 등장 인물인 막내딸 '종말이'의 이름도 역시 그런 의미에서 지은 것이다.


  일력은 최근에 다시 유행을 타면서 새로운 세대에게도 익숙한 물건으로 자리잡고 있는 모양이다. 예전에는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시간의 흐름을 나타낼 때, 그 일력들이 주르륵 뜯겨나가는 클리셰가 많이 쓰였었다. 만약에 요새 그런 걸 쓰는 감독이 있다면, 관객들은 감독의 역량에 의문을 품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같은 시대를 거쳐온 이들에게는 그런 클리셰를 보는 것이 정겹고 반가울지도 모른다. 


  지금의 사람들에게 벽걸이 달력 보다는 책상 달력이 더 유용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책상 달력을 얻는 것이 더 수월해진 것이 꽤 되었다. 그런데 책상 달력도 받아보면 마음에 드는 것을 찾기가 참 어렵다. 날짜의 크기가 너무 작으면 보기가 불편하고, 또 나에게는 필요한 음력(曆)이 없는 것들도 많다. 어떤 달력에는 '손 없는 날(사람의 일을 방해하는 귀신이 땅에 없는 날, 이사나 중요한 일을 할 때 이 날을 선택한다)'이 적혀 있어서 정말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달력을 참 좋아했었다. 또한 메모할 공간이 너무 작아서도 안되었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조건들에 부합한 책상 달력을 2년 전에 썼었다. 어느 출판사에서 만든 달력이었다.


  작년에 그 책상 달력을 구하려고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그걸 건네준 이에게 물어 보니, 출판사의 사장이 바뀌면서 달력을 없애버렸다고 했다. 새로운 사장은 출판사 창업주의 아들로 유학을 다녀온 이였는데, 자신의 아버지가 공들여서 내놓았던 달력을 쓸모없는 낭비로 여긴 모양이었다. 그가 해외에서 배운 학문이 마케팅이어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른다. 다만, 적어도 그의 아버지는 자신이 만드는 책과 함께 달력의 의미도 아들인 그 보다는 잘 아는 사람이었을 것 같다. 


  아직 내년도 벽걸이 달력을 구하지 못했다. 그걸 구할 다른 곳을 알아 보는 대신에, 그냥 내 마음에 드는 것을 사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그에 맞추어 사는 수 밖에 없지 하면서도, 오래전 연말이면 서로 달력을 넉넉히 나누어 주고 받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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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지인의 선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선배는 젊은 시절에 점을 본 적이 있는데, 마흔 넘어서 크게 잘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했다. 그 말은 좋은 예언이었지만, 정작 그 선배는 그 말을 믿고 뭔가를 하지 않고 지낸다고 했다. 인생에 큰 한 방이 터질 거라는 그 말에 의지하며 마흔을 훌쩍 넘기는 것을 옆에서 보는 것이 참 답답하다고 했다. 그 선배라는 이에게 결국 '한 방'이 터졌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것도 정말 오래된 이야기다.


  'Searching for Sugar Man(2012)'을 보고 나서 문득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젊은 시절에 냈던 음반 두 장이 자신의 나라 미국에서는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한 무명가수가 이 다큐로 인해 칠순이 다된 나이에 새로운 음악 인생을 열어가게 된다. 그야말로 '인생 한 방'이란 말의 참뜻을 보여준다. 다큐의 주인공 식스토 로드리게즈의 이야기다. 그의 노래는 인종차별이 횡행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저항의 노래로 받아들여졌다. 미국에서는 음반 프로듀서와 그 가족이 단지 6장만을 구매했다는 로드리게즈의 음반은 남아공에서 수백만 장이 팔렸다. 그렇게 그는 남아공 민주화 운동의 음악적 아이콘이 되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로드리게즈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른 채, 그저 매일매일의 생계를 이어가려고 온갖 일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대부분 몸을 쓰는 일, 우리가 막노동이라고 하는 일이었다. 그런 삶을 오랫동안 이어가던 그에게 누군가 찾아와서, 남아공에서 당신과 당신의 노래는 엄청난 인기가 있으니 와서 공연을 해달라고 한다. 아니, 이럴 수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결국 현실이 된다.


  사실 이 다큐에서처럼 로드리게즈에게 해외공연은 남아공이 처음은 아니었다. 1979년과 1981년에 호주에서 이미 성공적인 공연의 경험이 있었지만, 다큐에서 그 부분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이 다큐는 의도적으로 그 부분을 알리지 않음으로써, 일종의 '영웅 만들기'에 더 촛점을 맞춘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남아공에서 열린 공연 장면에서 의외로 로드리게즈가 차분하고 평온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과거의 그런 공연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는 막노동꾼으로 사는 동안 음악 경력이 단절되기는 했어도, 어느 날 갑자기 꿈같은 콘서트장에 불려나온 초짜배기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아무튼 이 다큐는 로드리게즈의 인생 역전을 가져오게 만든 소중한 선물과도 같았을 것이다. 노년에 접어든 나이이기는 했어도, 결국 그의 인생에 '한 방'이 크게 터졌고, 그는 여러곳에서 초청받는 유명 가수의 반열에 오른다. 뮤지션(musician)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위키피디아를 찾아 보니 2018년까지 공연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남아공에서 수백만 장이 팔렸다는 음반 수익금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로드리게즈와 계약한 서섹스 레코드사의 클래런스 아반트는 이에 대해 묻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어이, 이봐. 대체 로드리게즈의 행방이 궁금한 거야, 아니면 그 음반 수익금이 어디로 샜나가 궁금한 거야? 난 그 일 그만 둔 지가 꽤 되었다고. 이제와서 그런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 말하는 아반트의 면상을 보면, 정말 노련하고 영악한 음악 장사꾼이 어떤지 잘 알 수 있다. 그는 무수히 많은 인기 가수들을 길러내어서, 일명 'The Black Godfather'라고 불리우는 인물이다. 나중에 이 다큐의 인기로 로드리게즈의 음반이 재발매되는 과정에서 과거의 그 수익금을 놓고 법적 다툼이 있었다고는 하는데, 제대로 정산되지는 못한 듯하다. 어쨌든 로드리게즈는 지난 시절에는 막노동으로 연명을 했을지언정, 이 다큐가 소위 '대박'을 터뜨리고 나서는 음반과 공연 수입이 막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화려하게 살기 보다는 이전의 소박한 삶의 방식을 그대로 이어갔다. 그런 것을 보면 그가 나름의 삶의 철학을 가진 인물임을 짐작케 한다.

 

  이렇게 무명가수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사한 감독 말릭 벤젤룰의 그 뒤의 이야기는 참 슬프다. 이 다큐로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상을 비롯해 여러 영화제를 휩쓸었지만, 그는 2014년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서른 여섯, 참으로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이걸 보고 나니 새삼 느끼는 것이 있다. '인생 한 방'이란 것이 저렇게 있기는 있는데,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 많은 이들이 그것을 꿈꾸지만, 그건 복권 당첨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중요한 것은 로드리게즈의 경우에는 그가 젊은 시절에 만들었던 음반 2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가 만들었던 노래를 알아주는 먼 나라의 많은 이들이 노래의 생명을 이어가게 만들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이 세상의 누가 재능을 알아봐 줄 것이며 인정을 해주겠는가. 언젠가 쓸 평론, 언젠가 쓸 시나리오, 언젠가 쓸 소설... '언젠가'라는 말이 있는 한, 그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지금, 여기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창작하는 이들을 가장 힘들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언젠가'라는 무시무시한 미래 부사이다. 물론, 뭔가를 지금 쓰고 만든다고 해서 그것이 '대박'이 된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인생이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인생 한 방'의 행운을 가져다 주는 여신은 결코 공평하지 않으며, 때로 그렇게 찾아온 행운이 어느 순간에는 불행이 되기도 하는 예를 심심치 않게 보기도 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고도'를 무작정 기다리는 디디와 고고처럼, 우리 모두는 '대박'을 기다리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Searching for Sugar Man'의 관객들은 어쩌면 주인공 식스토 로드리게즈의 그 대박 행운의 결말 보다는, 그가 젊은 시절에 낸 음반 2장의 실패 이후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묵묵히 살아낸 힘든 노동의 시간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로드리게즈는 어쨌든 자신만의 삶을 성실히 살아냈다. 비록 그가 원하던 음악의 삶은 아니었지만, 그는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나에게는 그 점이 노년의 그에게 찾아온 행운 보다 더 인상적이었다. 그런 그였기에 로드리게즈는 엄청난 행운 앞에서도 담담하고 고요하게 자신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인생 한 방'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터지지 않을 수도 있다. 대개는 그러하다. 다만,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면, 그리고 매일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조금씩이라도 만들어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은 가치가 있다. 우리에게 매일 주어지는, 아주 평범한 하루가 선물이며 신비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이 다큐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진실인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telegraph.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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