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쓰기 - 김훈 산문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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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김훈은 이 책의 '꼰대는 말한다'에서 스스로를 '꼰대'로 칭한다. 그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그의 결혼식 주례사를 들은 젊은 하객들이 했던 불평 때문이다. 이른바 '꼰대의 주례사'가 되어 버린 자신의 말들을 돌아보는 김훈의 자기반성은 정말 포복절도할 정도로 유머러스하다. '신혼부부는 집밥을 꼭 해먹어야 한다'든가, '양가 부모는 공평하게 잘 찾아뵈어야 한다'든지 하는 말들은 정말 하객들이 '꼰대' 소리 나오는 게 당연하겠구나 싶다.


  '꼰대'라는 단어를 찾아보니,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 이라고 되어있다. 언제부터인가 이 말은 무언가 시대착오적인 모든 것을 대변하는 말이 되었다. 이 단어를 들으면, 지금 시대의 세대간 감정과 생각의 골이 얼마나 깊은 것인가를 새삼 느끼곤 한다. 어쨌든 이 꼰대 노작가의 책을 읽어내려가는 것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일산에 거주하는 작가가 호수공원을 늘 다니며 느꼈던 소회 같은 것들,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들은 그나마 읽기가 수월하다. 그러나 자신이 거쳐온 시대를 회고할 때는 나 또한 거리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시대와 세대를 이해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책에는 그의 대표작 소설 '칼의 노래'의 주인공인 이순신 장군에 대해 덧붙이는 글들도 있고, 그의 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이런저런 일들이 보여주는 생활 사회사적인 글도 있다. 그러나 역시 세대 차이는 어쩔 수 없다. 나는 이 책에서 그가 말하고자 했던 정서와 생각들을 절반 정도, 많이 잡아 보아야 60% 정도나 이해한 것 같다. 여전히 멀게 느껴진다.


  문득 이 책의 출판사 마케팅 팀에서 구매 독자 연령을 어느 정도로 잡은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작가의 아래 세대인 내가 이해하는 정도가 이러한데, 젊은 세대들이 이 책을 구매했다 하더라도 그 정서를 공감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의 판형과 활자는 노안이 오기 시작하는 40대 이후의 세대에게 친절하지 않다. 짜증스럽게도 작다. 이 책을 그나마 잘 이해할 수 있는 세대를 위한 배려가 없다. 한참 동안 이 책의 활자를 보고 나서 피로가 몰려왔다. 아마 마케팅 팀에서 이런 걸 결정한 사람은 '꼰대'의 나이에 있는 사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으면서 나도 모르게 서글퍼졌다. 이 꼰대 노작가는 언제까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며, 나는 그 글을 언제까지 읽을 수 있을 것인가... 작은 활자를 보느라 피곤해진 눈을 부비며, 내가 젊은 시절에 그토록 많은 책을 읽어두었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나이가 들수록 책을 읽는 것이 버겁게 느껴진다. 늙는다는 것은 이토록 귀찮고 괴로운 일이다.


  이 책을 읽고 '꼰대'가 무시나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와 소통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칠순에 접어든 그의 세대를 이해하려면 그들의 살아온 시대를 돌아보고 알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결정적 요인이 있었을 것이다. '꼰대'들의 생각과 행동이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게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진다면, 역으로 젊은 세대가 보여주는 모든 것들이 기성 세대에게는 '문화 충격'으로 다가온다.

 

  EBS '클래스 e' 강의를 보면서 내가 받은 약간의 '문화 충격'이 있었다. 젊은 강연자들 대부분이 시작과 끝에 인사를 안한다. 말로는 인사를 하는데,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유일하게 '기획의 세계'를 강연한 최장순 씨만 아주 정중하게 인사를 했는데, 그건 그가 만나는 대부분의 이들이 '고객'이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인사를 잘 하는 것은 기본에 속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는 이들은 TV 시청자들을 학생으로 생각하는지 고개를 숙여서 인사하지 않는다. 인사를 제대로 하는 강연자는 '꼰대'의 나이에 접어든 이들이었다. 그들은 기성 세대로 '인사'의 예의를 차릴 줄 알았다.


  노작가의 글은 그가 스스로를 지칭하듯 '꼰대'스럽지만은 않다. 거기에는 그가 살아온 삶과 시대, 사람과 정신이 들어있다. 때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그 조차도 끌어안을 수 있다면 우리 시대를 가르고 있는 세대간 갈등은 다채로운 사회의 바탕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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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3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별 2021-01-25 19:35   좋아요 0 | URL
댓글 잘 읽었습니다. 그렇죠. 저도 일산 호수 공원에서 작가가 들은 이야기가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작가는 늘 타인의 삶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죠. 재밋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통해 삶을 성찰하고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소재를 찾을 수가 있으니까요. EBS Class e 강의는 좋은 것이 많아요. 최근에는 법의학자 유성호 씨 강의가 좋더군요.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하더군요.
 

 

  어느 날 비평 수업을 들어갔더니, 누군가 열변을 토해내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 그건 제대로 된 영화인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등등. 가만히 들어 보니 영화 제작 쪽 누군가가 평론하는 이들에게 이런 말을 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답답하면 니들이 찍던가..."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가'의 영화 버전이 되겠다. 나도 이렇게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지만, 가끔 어떤 평론들은 읽다 보면 뭔가 가슴이 답답해지고 도대체 이거 쓴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쓴 건가 싶을 때도 있다. 아, 물론 '답답하면 니들이 찍던가'라는 말은 정말 프로 의식이 결여된 말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작가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사진들에 대해 수잔 손택이 비평한 글을 읽으면 그런 답답함을 느낀다. '타인의 고통'에서 손택은 살가도의 사진에 대해 아주 신랄하게 비평하는데, 두 가지 관점에서이다. 살가도가 찍은 기아, 난민, 전쟁의 참상을 담은 사진들은 너무나도 미학적으로 아름다운데, 그것이 제 3세계 약자의 고통을 서구인의 시점에서 미화한 작업이라고 비판한다. 또 다른 하나는 그런 불행과 고통을 담아낸 사진들 속의 인물들에 이름을 부여하지 않고 '익명화'해서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그저 연민만을 느낄 뿐 구체적인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고통이나 불행은 너무나 엄청날 뿐만 아니라 도저히 되돌릴 수도 없고 대단히 광범위한 까닭에 아무리 특정 지역에 개입을 하고 정치적으로 개입하더라도 그다지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고 느끼게 만들어 버린다." (수잔 손택, '타인의 고통' 중에서)


  '타인의 고통'의 번역은 대단히 불친절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비평에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다들 읽어보았을 책이다. 손택의 '사진에 관하여'는 사진 비평가들 뿐만 아니라 사진을 배우는 이들에게 경전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1977년에 쓰여진 이 책의 비평적 유효성이 그렇게나 타당한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부분 사진이라는 매체가 가진 관음주의적 속성, 무기력함, 그리고 정치성을 비판하고 있다. 그의 동성 연인이었던 애니 리보비츠(Annie Leibovitz)가 사진 작가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하게도 느껴진다. 


  빔 벤더스 감독의 다큐 'The Salt of the Earth(2014)'는 세계적인 사진 작가 세바스티앙 살가도에 대한 헌사라고 할 수 있다. '브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1999)'와 같이 빔 벤더스는 예술가들의 삶을 담은 다큐 작업에 일가견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Everything will be fine(2015)'같은 극영화는 그에게 맞지 않다. 보고 나서 저런 걸 왜 만들었나 싶을 정도다. 아무튼 이 다큐는 살가도의 평생에 걸친 사진 작업들을 조망하는데, 내레이션을 살가도 본인이 주로 이끌어 간다. 자신의 사진 한장 한장에 대해 말할 때마다, 당시 사진을 찍었을 때의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그걸 보면서, 살가도가 사진을 찍는 대상에 얼마나 깊이 몰입하고 진정성있게 다가갔는지를 알 수 있다. 적어도 손택이 비판한 것처럼 '구경거리'를 찍어서 화제로 만들려는 선정주의적 태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브라질 출신의 이 사진 작가는 젊은 시절, 조국의 독재 정권을 피해 프랑스로 이주했다. 경제학자로서 세계 은행에 근무하기도 했던 그는 아내가 취미로 하려고 산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을 시작했다. 말 그대로 카메라가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카메라를 가지고 그는 전세계를 누볐다. 에티오피아의 기근, 르완다 내전, 세르비아 내전, 걸프전, 아마존 오지와 파푸아뉴기니, 북극... 그는 자신이 본 세상의 모든 것들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했다. 그러나 르완다 내전은 그에게 정신적인 내상을 입히기도 했다. 인간성이 말살된 참혹한 살육의 현장에서 그는 자신의 직업에 깊은 회의를 느낀다.


  "키갈리(르완다의 수도)에 이르는 150km가 온통 죽음 뿐이었어요. 그건 지옥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황폐해진 고향 땅을 푸른 숲으로 가꾸는 작업은 치유의 시간이 된다. 이른바 '테라 인스티튜트(Terra Institute)' 캠페인을 통해 자연이 가진 무한한 힘에 대해 느끼게 된 살가도는 2004년부터 2011년까지 'Genesis'를 완성한다. 지구 곳곳을 돌면서 담아낸 그 사진들은 자연의 아름다움, 그 광대함, 그것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에게 부여된 보호의 책임을 역설한다.


  이 다큐 한편을 보는 것은 살가도의 인생과 그의 사진 전부를 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가 가진 사진에 대한 진정성은 그가 찍은 사진 속 인물들에 대한 밀도있는 접근과 존중에서 나왔음을 마음 깊이 느끼게 된다. 물론 그는 소위 거물 사진 작가로 그의 사진 작업들은 늘 세계적인 화제를 담았고, 그것이 그의 유명세를 더하게 했다. 살가도의 아내 렐리아가 유능한 기획자로서 그 모든 사진 작업들을 주관했고, 시대의 요구를 절묘하게 포착할 줄 알았다는 점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그가 찍은 사진 속의 대상을 돈벌이와 명성의 수단으로 여겼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나도 인정한다. 살가도의 사진들은 정말로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기아로 인해 뼈 가죽이 드러난 이들, 내전으로 인해 피폐해진 이들의 얼굴, 극도의 가난에 시달리는 하층민들의 얼굴, 그 모든 참혹한 풍경 속에서도 빛이 나는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 미적인 후광을 보는 것만으로도 곤혹스럽고 괴로웠다. 2005년 7월, 서울 프레스 센터에서 있었던 살가도의 사진 전시회에서였다.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불행과 고통에 처한 이들의 사진이 아름다운 것은 잘못된 것인가' 이런 질문을 살가도의 사진들은 우리에게 던진다. 그 점은 살가도의 사진에 일종의 멍에처럼 남은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이 다큐에서 살가도가 보여주는 대상에 대한 진정성과 연민, 공감의 깊이가 남다르다고 느꼈다. 그것은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사진에서 보여준 아름다움이 보는 이를 '현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사진에 담긴 너머의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상상'은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이야기 속 사람들과 '연대(solidarity)'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수잔 손택이 말한 것처럼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책임감을 회피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15년 전, 살가도의 전시회에서 아직도 기억나는 작품이 있다. 원주민의 아이였던가, 죽은 아이가 저승길을 갈 때 길을 잃지 말라고 '눈'을 그려주는 풍습이 있는 곳이었다. 아주 평화롭게 보이는 죽은 아이의 감긴 눈꺼풀에는 커다란 '눈'이 그려져 있었다. 꽃다발에 둘러싸인 관에 잠든 소녀는 새롭게 얻은 눈으로 다른 세상을 향해 잘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시회를 나오면서, 출구 쪽에 있는 직원에게 혹시 포스터를 얻을 수 있냐고 문의했다. 직원은 입구에 있는 담당자에게 문의해 보겠다고 하고는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그 여직원은 나에게 포스터를 건넸다. 원래 특별 초대 손님에게만 주는 것인데 부탁을 해서 얻어왔다고 했다. 나는 아직도 그 포스터를 간직하고 있다. 그 웃음과 친절은 살가도의 따뜻한 사진들과 함께 잊혀지지 않는 추억으로 남았다.



*sal은 포르투칼어로 '소금'을 뜻한다. salgado는 'salty', 그러니까 '짠맛을 내는, 짠맛의' 의미인데, 이 다큐의 제목 '세상의 소금'은 사진 작가 세바스티앙 살가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사진 출처: gettyimages.com(사진 작가 세바스티앙 살가도와 그의 아내 렐리아, 뒷편에 보이는 사진은 브라질 금광 노동자들을 담은 그의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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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은 매일의 일상에서 생존하기 위한 갑옷(armor)같은 거죠. 그것이 사라진다면, 그건 문명이라고 할 수 없어요."


  그렇게 말하는 이의 갑옷은 푸른색 프렌치 워크 자켓(French work jacket)과 투박한 면바지, 어깨에 둘러맨 작은 카메라 가방, 편한 스니커즈였다. 그는 뉴욕 패션 사진계의 거장 빌 커닝햄이었다. 늘 자전거를 타고 뉴욕 시내를 누비면서, 그가 좋아하는 의상을 입은 사람은 누구든 찍었다. 낮에는 거리에서, 밤에는 여러 파티와 행사장을 누볐다. 그렇게 그가 찍은 사진들은 뉴욕 타임즈에 'On the Street'과 'Evening Hours'라는 이름의 포토 에세이로 실렸다.


  리처드 프레스(Richard Press)가 2010년에 만든 다큐 'Bill Cunningham New York'은 빌 커닝햄의 사적인 모습을 담았다. 그는 뉴욕 패션계의 유명인사들을 담는 사진 작가였지만, 그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커닝햄을 감독 리처드 프레스는 8년 동안 설득했고, 마침내 다큐를 찍을 수 있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그에게 감독이 다큐가 끝나갈 무렵에 묻는다.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은 있냐고.


  "그러니까, 내가 '게이(gay)'냐고 지금 묻는 거 맞아요?"


  리처드 프레스가 'Yes'라고 외친다. 커닝햄의 대답은 이러했다.


  "난 항상 일하느라 바빴어요. 밤낮없이 일했죠."


  그랬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옷'만이 가득했다. 그는 많은 셀럽(celebrity)들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았지만, 그들이 그의 마음에 드는 멋진 옷을 입었을 때만 찍었다. 카트린 드뇌브를 거리에서 보았지만 그는 찍지 않는다. 별로 흥미있는 옷을 입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자신은 파파라치(paparazzi)가 아니며, 시대의 패션을 기록하는 사진 작가라고 말하는 빌 커닝햄의 표정에는 대단한 자부심이 묻어난다. 그가 자신의 직업에 임하는 자세는 '수도승'같다. 그는 자신이 초대되는 연회나 행사장에서 술과 음식은 물론 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는다. 그곳에 가기 전에 미리 3달러 안팎의 식사로 끼니를 때운다. 오직 그의 관심사는 사람들이 입은 '패션'이다.


  그가 평생 동안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유명인사들이었다. 그러나 그가 뉴욕 타임즈에 오랫동안 기고한 'On the Street' 칼럼에는 온전히 거리에서 만난 각양각색의 의상 사진으로 채워졌다. 그 기록은 일종의 패션 사회사이기도 했다. 일반인들의 패션에서 다가올 유행의 흐름을 읽어내고, 자신만의 안목으로 시대를 기록했다. 뉴욕 역사 협회에서 빌 커닝햄의 사진 작업들을 소장하고 기념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는 평생을 옷에 미쳐서 산 사람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찍는 화려하고 멋진 옷을 입은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카네기홀에 딸린 그의 작은 스튜디오는 소박한 침대 하나와 네거티브 필름이 가득한 여러 개의 캐비닛, 패션 관련 서적들이 전부였다. 화장실은 복도에 있는 공용 화장실을 썼다. 그러다 카네기홀 재단에서 리모델링을 진행하면서 입주한 예술가들을 퇴거시키게 되는데, 커닝햄도 어쩔 수 없이 재단에서 마련한 아파트로 옮기게 된다. 그는 새로 입주한 아파트 집주인에게의 주방 시설을 제거해달라고 요청한다. 그에게는 사진을 보관할 장소가 가장 중요했던 것이다. 


  "돈이란 건 가장 값싼 거에요. 자유가 세상에서 제일 값진 거죠(Money is the cheapest thing. Liberty is the most expensive)."


  빌 커닝햄은 자신의 사진 작업에 돈이 물드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 그가 입은 푸른색 프렌치 워크 자켓은 프랑스 지하 상가에서 파는 작업복이었다. 파리 청소부들이 입는 것과 같은 옷이었다. 그 옷은 그가 타고 다니는 슈윈(Schwinn) 자전거와 함께 그만의 트레이드마크였다. 다큐에서 그는 자신의 29번째 자전거를 소개한다. 28번째 자전거는 도난당했다. 자전거를 타고 뉴욕을 누비는 패션 수도승, 빌 커닝햄의 삶은 그런 것이었다. 


  이 다큐를 보는 이들은 빌 커닝햄의 눈이 가장 빛나고 반짝거리는 순간이 자신의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했을 때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그때, 그의 얼굴은 설레임과 즐거움이 가득하다. 20대 때 징집되었던 그는 1950년대 프랑스에서 군복무하면서 패션에 눈을 뜬다.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자신만의 모자를 만들어 팔기도 했다. 그가 파는 모자는 마릴린 먼로와 진저 로저스 같은 유명 여배우들이 쓸 정도로 잘 나갔다. 그러다 우연히 패션 사진 작업을 하게 되면서 그의 일생은 옷에 바쳐졌다.


  오직 '옷' 사진으로만 꽉 채워진 삶.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화려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 옷이나 찍어서 내다파는 인생 아니었냐고. 냉소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그렇기도 하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그렇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정말로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존재한다. 특히 예술 분야는 실제적인 유용성과는 대부분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화를 한번 생각해 보자. 영화가 세상에 얼마나 쓸모가 있을까? 영화 감독과 비평가들이 하는 일은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에 얼마나 기여를 하고 있을까? 지나간 청춘의 날들에, 나는 영화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 거라 진심으로 믿었었다.


  빌 커닝햄은 2016년, 87세로 세상을 떴다. 죽기 전까지 그의 사진 작업은 계속 이어졌었다. 다큐에 나왔을 때는 80에 가까운 나이였는데도 변함없이 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매일 같은 옷차림에 자전거를 끌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리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 나이까지 이런 열정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정말로 가능할까? 이 다큐의 마지막 장면에서 커닝햄은 이렇게 외친다.


  "아이구, 이젠 그만 찍읍시다. 나 일해야 한다구요."


  영화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만약에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오직 영화에 대한 열정만으로 평생의 삶을 지탱해나가는 누군가가 만드는 영화 속에 있을 것이다. 그 영화에 들어있는 그 무언가가, 그것이 꿈이든 매혹이든 어떤 이의 삶을 흔들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그의 삶이 희망을 품을 수 있다면 그 영화는 구원의 영화가 되지 않을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그런 영화를, 꼭 영화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열정이 필요하다. 빌 커닝햄의 삶을 담아낸 이 다큐는 그 열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다큐는 archive.org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영어 자막은 제공되지 않는다.


**사진 출처: gettyimag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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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음악 선생님이 낸 여름방학 숙제는 클래식 음악프로그램 듣고 선곡표를 노트에 적어오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실시간으로 선곡표가 올라오는 시대이지만, 1980년대에는 그야말로 아날로그 시대이므로 모든 신청곡은 엽서나 편지로만 가능했다. 선곡표 같은 것도 당연히 없었다. 생방송 듣고 그냥 적는 수 밖에. 처음에는 좀 번거롭고 귀찮았지만, 듣다보니 의외로 재미가 있고 참 좋았다. 원래 정해진 1시간 이외에 두세 개 프로그램을 더 들을 때도 있었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에는 그렇게 정리한 노트가 2권이 넘었다. 나중에 보니, 제대로 숙제를 해온 사람은 나 뿐이었다. 모두들 그 숙제가 진저리나게 싫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렇게 클래식 음악에 입문했다. 유일하게 KBS 1FM 클래식 채널만 들었다. 


  '당신의 밤과 음악'을 그 당시 진행했던 이는 아나운서 황인용 씨였다. 사연을 보낸 이들 가운데 선정이 되면 KBS 로고가 새겨진 파이로트 펜 선물 세트를 보내주었다. 내가 보낸 사연이 당첨이 되어서 받아보니, 금색의 샤프 펜슬과 볼펜 세트였다. 신청했던 음악이 아직도 기억난다. 조지 거슈인의 '랩소디 인 블루'였다.


  전곡 연주를 들려주는 '명연주 명음반'의 정만섭 씨는 처음에는 저녁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나왔었다. 그러다가 낮 방송으로 프로그램이 옮겨 왔다.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들은지가 30년이 다 되어가는데, 내 기억으로 마리아 칼라스 노래를 들려준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아마도 언젠가 지나가는 소리로 자신은 칼라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기는 하다. 프리츠 분덜리히의 열렬한 팬으로서 1년에 한번은 꼭 그가 부르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들려준다. 이 노래를 들으면 비로소 한 해가 다 지나갔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맑고 투명한 목소리로 독일 가곡을 노래했던 이 뛰어난 테너는 친구들과 별장 휴가를 갔다가 실족사로 36살의 나이에 세상을 떴다.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클래식 전용 채널이지만, 국악 방송도 나온다. '흥겨운 한마당'이 폐지되면서 이제는 'FM 풍류마을'만 남았다. 별로 즐겨 듣지 않아서, 그 시간에는 이각경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해피타임 4시'로 채널을 돌린다. 주로 1980년대에서 2000년대를 아우르는 가요를 들려준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트로트도 가끔 나오지만, 김수희의 '남행 열차'와 김연자가 부르는 '아모르 파티'를 듣는 것도 괜찮다. 다양한 청취자들의 이런저런 사연들이 정적인 클래식 채널의 청취자들 사연보다 더 생동감 있다.


  저녁 9시 40분부터 10시까지는 우리 가곡을 들려주는 '정다운 우리 가곡'이 있다. 전에 진행하던 배창복 아나운서의 진행이 참 좋았다. 가곡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도, 차분한 진행이 좋아서 그냥 들을 때가 많았다. 그는 KBS의 여러 다큐 프로그램의 내레이션도 했는데, 최근에 기억남는 것은 '우주에서 본 지구 4부작'이었다. 발성, 발음의 고저와 장단, 그 무엇 하나 빈틈이 없어서 탄복을 했다. 다큐도 좋았지만 4부작을 보는 동안 배창복 아나운서의 내레이션이 기다려질 정도였다. 그 정도 중견 아나운서라면 어느 정도 매너리즘이 있을 수도 있을 텐데,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직업에 대한 프로 의식이 대단한 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방송 잘 보았다고 시청자 게시판에 쓰려고 했는데, 그러는 사이에 진행자가 바뀌었다. 그래서 이후로는 그 20분 동안 이상호의 '드림팝'을 듣는다.


  '드림팝'은 아주 옛날 팝송부터 최신 음악까지 두루두루 들려준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백미는 시청자 사연인데, 아주 재미있는 사연들이 많다. 얼마 전에 들은 인상적인 이야기는 육아에 지친 아기엄마가 주인공이었다. 드림팝을 들으면서 수학 문제집을 푸는데, 그것이 육아 스트레스 해소에 정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나같은 수학 포기자에게는 정말 신박한 사연이었다. 야근하면서 듣는다는 직장인, 아이 학원 앞에서 차 세워놓고 듣는다는 학부모 등등, 여러 삶의 모습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라디오를 듣다 보면 그렇다. 사람의 목소리가 주는 '온기'가 얼마나 매력적인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아마 라디오는 앞으로 100년 후에도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전달해 주는 그 따뜻함, 소통한다는 느낌이 라디오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책도 마찬가지이다. 전자책이 나온 지가 꽤 되었지만, 지금도 사람들은 진짜 종이로 된 책을 사고 있다. 종이를 직접 넘기는 그 촉감과 무언가 소장한다는 느낌은 사람들에게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출판 시장은 지금의 전염병 시대에 더 확장하고 있다. 사람들은 집에 있으면서 읽을 책을 사고, 음악을 들으려고 음반을 사고 있다.


  영화는 어떨까? 나는 100년 후의 영화가 어떤 모습일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지금의 영화에 어떤 인간적인 온기, 물적인 느낌이 있는가?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영화는 뭔가 곽티슈의 티슈, 인스턴트 음식 같은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냥 소비해 버리고 마는 것,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별 의미 없는 것. 자신이 구독하고 있는 유튜브에 오늘 업데이트 되는 동영상이 무엇인지 관심있는 사람은 많지만, 신작 영화를 궁금해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영화를 생각하면 설레임을 느낀다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아, 영화 공부하는 친구들은 그래야만 할 것이다.


  작년에 드디어 비디오를 버렸다. 방 한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지가 꽤 되었는데, 공부할 때 쌓아둔 비디오 테이프 때문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결심을 하고서 버렸다. 비디오 테이프는 그래도 추억이 있는 거라 버리지 못했다. 우스운 것은 클리너 테이프도 버리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다시 비디오를 살 일도 없을 텐데 말이다. 그 비디오 테이프들을 언제쯤 버릴 수 있을 지는 나도 모른다.


  며칠 동안 갑자기 방문자 수가 폭증해서 무척 놀랐다. 이 블로그에 늘 방문하던 이들의 숫자는 30명에서 50명 안팎이었다. 뭔가 마음의 안정감을 주는 숫자였다. 내가 유튜버라면 정말 신나고 좋았겠지만, 나는 매일의 글쓰기 연습을 위해서 다시 블로그를 시작했으므로 솔직히 당황스러웠고 난감했다. 내 글은 대부분 길고, 그다지 재미도 없는 글이므로 왜 오는 것인지 알 수도 없었다. 요새도 이렇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뭔가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가 삼켜버린 내가 아는 많은 이들의 청춘의 시간들을 생각한다면, 나는 영화에 대해 애정이라기 보다는 해탈 내지는 관조의 심정으로 바라보게 된다.


  가끔씩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EBS의 '비즈니스 리뷰'라던가 클래스 e의 창업 비결, 같은 것을 본다. 얼마 전, 마케팅에서 말하는 타깃 설정, 그러니까 고객 설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아주 흥미있게 보았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시제품을 만들 때, 자신들이 물건을 사려는 가상의 고객을 설정해놓고 회의를 진행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고객에게 진짜 이름도 부여하고, 그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까지 다 써놓은 지침이 있단다. 예를 들면 '에밀리'라는 이름을 붙이고, 에밀리의 나이, 수입, 취미까지 상세하게 적어놓고 그 가상의 에밀리가 싫어할 것인지 좋아할 것인지를 검토한다고 했다. '이건 에밀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에요'라든지, 또는 '에밀리라면 이런 기능이 있었으면 하고 바랄 거에요'라고 하면서 회의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블로그에 오는 이들은 어떤 이들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들의 이름을 준영, 은주로 붙여보았다. 나이는 30대 후반부터 그 이후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오래된 드라마 리뷰를 읽어볼 정도라면 젊은 친구들은 아니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20대 친구들은 오지 않을 것 같다. 그 친구들은 유튜브를 더 좋아할 것 같은데... 아무튼 영화를 좋아하는, 영화에 애정을 가진 이들일 것 같다는 생각은 한다. 준영 씨와 은주 씨를 비롯해 다른 이들에게 내 글이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지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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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다. 수업이 끝나고 후배 L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L이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그 소식 들었어요? 필름이 아닌 디지털로 상영하는 영화관이 벌써 여러 군데 생겼는데, 아마 점차 더 늘어날 거에요. 우리가 공부하는 영화와 세상이 급변하고 있어요."


  필름이 아니라 디지털로 영화를 본다는 것은 당시의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영화 산업계는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었고, 기술적인 발전도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크리스토퍼 케닐리가 2012년에 만든 'Side by Side'는 영화 산업이 필름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시기에 대한 영화적, 산업적 성찰을 담아낸 다큐이다. 이미 그 시기에는 디지털 영화 제작이 안착 단계에 들어서 있었다. 여러 유명 영화 감독, 촬영 감독을 비롯해 관련 업계 전문가들의 인터뷰들이 아주 흥미롭게 구성되어있는데, 그로부터 8년의 시간이 지난 오늘에 와서 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여기에 나온 인물들을 분류해 보면, '오직 필름 사랑'을 외치는 크리스토퍼 놀란, 마틴 스콜세지 같은 중도파, '새로운 기술 디지털 최고'의 편에 선 조지 루카스와 제임스 카메론, 대충 이렇게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이 다큐는 마치 결말을 다 알고 있는 사건이나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든다. 필름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이라면 한편으로는 마음이 쓰라리기도 하고, 영화 제작의 최전선에 있는 저런 뛰어난 영화인들의 고민과 성찰은 더 치열했다는 것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조류에 영화를 띄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그 다큐에 나온 이들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제작한 조지 루카스에게 필름은 너무 구식이고 돈도 많이 들고 불편했다. 그가 디지털 신기술을 열렬히 환영했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제임스 카메론은 떠버리 흥행사 같다. 자신이 만든 '아바타(2009)'가 3D로 제작한 선구적 작품임을 내세우면서 신기술 예찬론을 펼친다. 그 영화에 무슨 대단한 영화적 성찰이나 깊이가 있었던가? 영화관에서 본 '아바타'는 이제까지 내가 알던 영화에 대한 종말을 선언하는 작품 같았다. 오직 기술만을 내세운, 영혼이 실종된 영화였다. 다큐에서 3D 기술에 대해 다른 영화인들은 새로운 술책(gimmick)이거나, 흥밋거리(intrigue)일 뿐이라고 말한다. 물론 각자의 영화적 관점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다. 그래서 이런 영화적 기술의 진보 앞에서 묻게 된다.


  "과연 영화적(cinematic)인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가?"


  'cinematic'의 사전적 의미는 영화와 관련된 모든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영화를 영화답게 만드는 요인들은 무엇일까? 우리는 영화가 분명 사실이 아니며, 환상을 제공해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영화로 재현된 이미지는 현실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배우와 사물, 풍경은 카메라에 담긴 진짜였다. 그러나 기술의 진보는 이제 구태여 현실을 담아낼 필요가 없어졌다. 모든 걸 특수 효과로 재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마틴 스콜세지는 새로운 세대가 CGI(computer-generated imagery)로 인해 영화에서 보여지는 모든 것들을 믿지 않을 것을 우려한다.


  그런가 하면, 디지털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영화에 참여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해주는 점은 대표적 성과로 꼽힌다. 이제 영화를 찍는 것은 저예산으로도 충분히 가능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영화라는 매체를 창작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데이비드 린치는 이에 대해 아주 냉소적인 평가를 내린다.


  "모두가 펜과 종이 쪼가리를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들이 다 대단한 글을 쓰는 건 아니죠. 영화에도 마찬가지 일이 일어날 겁니다."


  '영화적인 것'에 대한 고민없이 무조건 무언가를 찍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이 배우들의 연기이든, 영화 속의 음악이든, 잊혀지지 않는 대사이든, 인상적인 풍경이든 영화 속의 그 무언가는 관객에게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이야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영화는 문학과는 전혀 다른 것이며, 어쩌면 그 점이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것이 손쉽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어려운 일임을 보여준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에는 탁월하지만, 영화적인 이미지를 구현하는 일에는 서툴다면 그건 '후진' 영화가 된다.


  이제는 '필름 vs. 디지털'의 논쟁은 별 의미가 없게 되어버렸다. 이 다큐가 제작되던 2012년에서 8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2020년인 오늘날에는 그런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어제 뉴스에서는 최근에 새롭게 제작되는 영상물들이 주로 10분 안팎의 콘텐츠들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사람들이 이동 중에 손쉽게 볼 수 있도록 그렇게 짧게 만들어지는 드라마와 연극, 뮤지컬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시대의 관객에게 1시간 30분에서 2시간에 이르는 영화에 집중하는 것이 과연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이 다큐에서 열렬한 필름 사랑을 고백했던 크리스토퍼 놀란은 아직도 필름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가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사실 필름의 현상과 소각 과정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유독물질의 해악은 오랫동안 환경보호론자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우리에게 꿈과 매혹의 시간을 선사하는 영화의 이면에는 그런 문제도 있음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디지털 기술의 도입이 영화를 보다 친환경적 산업의 영역으로 이끌었음은 새로운 진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동숭 시네마텍에서 필름으로 보았던 '안개 속의 풍경(1988)'을 잊지 못한다. '아바타'는 영화관에서 본 나의 마지막 영화였다. 어쩌면 나는 필름이 아닌 영화는 '진짜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우습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만약에 언젠가 아주 아주 엄청난 돈이 생긴다면 필름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을 하나 차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세상에는 필름으로 된 영화를 너무나 사랑해서 잊지 못하는 어느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 사진 출처: filmmakermagazine.com(왼쪽은 키아누 리브스, 오른쪽은 데이비드 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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