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서사비평 수업을 들을 때의 일이다. 수업은 수강생들 각자가 추천한 영화 한편을 매 시간마다 보고, 영화에 대한 생각들을 자유롭게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때, 첫 시간에 누군가 추천한 영화가 '첩혈쌍웅(1989)'이었다. '아, 무슨 저런 B급 감성의 후진 영화를 보자고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 보게 된 그 마지막 장면의 날아오르는 비둘기들... 정말이지 미치는 줄 알았다. 확실히 '홍콩 느와르' 영화들은 진짜 혼자서 좋아서 보는 거 아닌 다음에야, 영화 공부할 때는 마이너 취급을 받았다. 그나마 인정해준다고 하는 작품들이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 그리고 1997년의 홍콩 반환과 관련해서 그 시대를 반영하는 '첨밀밀(1996)' 정도나 될까, 아무튼 그랬다.
그런 홍콩 영화들을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쇼브라더스 제작의 1960,70년대 무협물들, 주성치 초기작들을 제외하고는 그나마 본 영화가 '영웅본색(1986)'뿐이었다. '천장지구(1990)'도 당연히 안봤다. 그러던 것을 그 영화가 개봉한 지 30년만에서야 이제야 만났다. 주윤발이 주연한 '도신(1989)'도 최근에야 보았다. 젊은 시절의 주윤발과 유덕화, 왕조현이 그렇게나 반갑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어떤 영화들은 그렇게 세월이 한참이나 지나서 우연히 만나기도 한다.
아마 '천장지구'를 이십대 때 보았더라면, 영화 보다가 그냥 나가버렸을 것 같다.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는 아화(유덕화 분)와 곱게 자란 부잣집 딸 조조(오천련 분)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둡지만, 그 두 연인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들이 그러한 어두움을 상쇄시킨다. '아름답다'라고 쓰기는 했지만, 다소, 아니 상당히 손발이 오글거리는 자기중심적 유치함이 가득한 장면들이기도 하다. 조조가 자신의 생일 케이크를 아화의 얼굴에 뭉개는 장면이라던지, 비오는 날 서로 검댕이 묻혀가며 즐거워하는 장면, 패러글라이딩 장면, 뭐 이런 장면들이 여러개 있다. 깡패로 내일 없이 사는 아화지만, 연애할 때 할 건 다 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압권은 두 연인이 오토바이로 시내를 질주하는 장면이 되겠다. 이렇게 '천장지구'를 보다보면, 여기서 본 것들을 다른 영화에서 참 많이들 울궈먹었네, 새삼 깨닫게 된다. 아무튼 그런 로맨스 영화의 원조 클리셰들이 많다.
이십대 때 보았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그 오글거림이 이제 나이들어서 보니 전혀 그렇지가 않다. 영화를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 주인공들의 절절함과 막막함에도 몰입하게 만든다. 아마도 그 영화 속의 청춘들을 보면서 나의 청춘 시절을 성찰하게 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영화의 가장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인 '타인의 삶을 통해 나 자신을 성찰하기(retrospection)'가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1991년에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전면적으로 시행되면서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배낭여행과 어학 연수 붐이 일었다. 강의실과 학교 벤치마다 어학 연수 업체의 홍보물들이 그득히 쌓여있었다. 그런 광고가 인쇄된 연습장과 노트를 참 잘 썼다. 방학 지나고 나서 얼굴이 안보인다 싶으면 캐나다, 하와이, 영국, 뭐 이렇게 연수를 떠난 거였다. 버글거리던 강의실은 좀 한산해졌고, 연수나 여행비용을 위한 아르바이트로 휴학을 하는 애들도 많았다. 있는 집 아이들이야 그냥 떠나면 되는 것이지만, 중산층 언저리의 아이들은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고 영혼까지 끌어모아 돈을 마련해서 어디론가 떠났다.
그렇게 누군가는 떠나는 동안, 나는 어학 연수 업체 광고가 인쇄된 연습장에다 영어 공부를 했다. 강남 출신의 친했던 친구 J는 캐나다 벤쿠버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그 친구의 안부를 묻는 편지를 Via Air Mail이라고 인쇄된 국제 우편 봉투에 넣어서 몇 번 보내기도 했다. J는 벤쿠버 풍경이 담긴 엽서에 답장을 보냈다. 아, 벤쿠버는 이렇게 생긴 도시구나... 마치 19세기 말에 이민을 꿈꾸던 아일랜드 사람들이 미국 본토에 정착한 친척들이 보내온 자유의 여신상이 찍힌 뉴욕 사진 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랬었다.
학교에는 진짜 흙수저들만 남은 느낌이었다. 어떻게든 학점과 영어 성적을 최대한 올려서 대기업에 빨리 취직하는 것이 많은 아이들의 목표였다. 자랑스런 사원증 목에 걸고, 대기업 본사 정문을 점심 시간에 커피 들고 드나드는 것, 그렇게 사회에 편입하는 것이 중요했고, 그렇지 못하는 삶은 낙오자 취급을 받았다. 자본주의 사회의 작은 톱니바퀴로 사는 삶 이외의 대안은 없는 것인지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보면 현실이란 참 암담하고 답도 없고, 괴로웠다.
'Exit'라고 적힌 출구는 쉽게 보이지 않았다. '천장지구'에 나오는 그 시절 홍콩의 젊은 애들도 뭐 별 뾰족한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아무 의미도 없는 트럭 레이스로 객기 부리고, 주먹질하고, 오토바이 경주하고, 그렇게 자신을 허무의 구덩이에다 내던지는 삶을 살고 있었다. 부잣집 딸로 태어나 고민없이 살았을 것 같은 조조도 그다지 행복해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다. 홍콩 반환을 앞두고, 부유층들이 캐나다로 삶의 기반을 옮기는 시기에 캐나다에 거주하는 조조의 부모도 딸을 그곳 학교로 불러들이려고 한다. 정해진 삶의 행로가 재미없다고 느꼈던 것일까, 조조는 아무 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하는 거칠지만, 한없이 불쌍하고 여린 아화에게 빠져든다. 어쩌면 조조에게 그것이 청춘의 출구였는지도 모르겠다.
조조가 택한 그 출구는 막혀있었다. 영화는 아화를 잃게 되는 조조의 청춘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피투성이 맨발로 힘들게 질주하며 아화를 찾으러 가는 그 밤의 아스팔트 도로는 그렇게 열려있다. 아화를 사랑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조조의 사랑은 그렇게 미완으로 남았다. 아화는 어떤 면에서 그 출구의 여정을 끝마친다. 창부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 어머니를 잃고, 진정한 사랑을 알지 못하고 살아온 그에게는 조조가 그 청춘의 출구였다. 그 출구로 들어선 직후에 그의 삶은 정지된다.
이 영화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아화의 방'이다. 빈민가라고는 하나, 아화의 방은 꽤 큰 편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홍콩의 주거난은 그리 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작년에 송환법으로 촉발된 홍콩 민주화 시위에 뛰어든 홍콩 젊은이들에게는 정치적인 이유 말고도 여러 이유가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자립을 위한 집 구하기가 극심하게 어려워졌다는 점이었다. 홍콩의 고질적인 사회적 문제인 주거난이 젊은이들의 미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인으로 등장했고, 젊은 세대는 그 책임을 기성세대와 정치권에 물었다. 그러나 아화가 살던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는 주거지 문제 보다는 다가올 홍콩 반환으로 인한 사회 체제의 불안정성이 더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청춘은 지나오고 보니 눈부시게 빛나고 아름다운 것이지, 그 시간을 살아내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끝없는 막연함과 고민들에 갇혀 자신에게 쏟아지는 그 빛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기성 세대는 젊은 세대에게 '좋은 때다'라고 쉽게 말하지만, 그 청춘들은 당신들이 지금 시대의 젊은이로 사는 것이 얼마나 팍팍한지 아냐고 항변할 지도 모른다.
'천장지구'를 내 청춘의 영화 목록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만약 그
때 보았더라면, 나는 이 영화에 흐르는 그 막막하고 고통스러운 청춘의 정서를 잘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비극으로 끝난 두 남녀의 사랑이 보여주는 감성이 촌스럽다고만 생각하지 않았을까. 어떤 영화를 이해하기까지 때론 그렇게 세월의 힘도 필요하다.
피와 폭력이 지배하는 한없이 가라앉는 화면의 무거움을 파숙 역으로 나온 오맹달의 뛰어난 바보형 연기가 막아낸다(오맹달은 이 연기로 홍콩 금상장 영화제 남우조연상을 받는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어두운 뒷골목 폭력배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출구 없이 헤매는 막막한 청춘의 초상이 담긴 절절한 사랑 이야기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사진 출처: EBS 세계의 명화 홈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