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마


엄마의 집 찬장에서 다시마를 발견했다
몇 년을 묵은 것 같은, 아주 잘 마른 다시마
나는 다시마를 물에 불린다
푸른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후쿠시마 원전이 터지기 전의 그 바다
불린 다시마에다 집간장과 식초, 소금,
그리고 매실 원액과 청주를 넣는다
정해진 비율 따위는 없다
레시피 같은 것을 무시하므로 내 요리는
변화무쌍하며 늘 새로움이 있다, 고 생각한다

엄마의 다시마는 원래 국물을 내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제 나의 냉장고에서 다시마 절임으로
변모하는 중이다 구부러진 다시마의 여정
엄마는 이 다시마를 언제 사놓았는지 알지 못한다
오늘은 나의 할머니, 그러니까 엄마에게는 시어머니가
되는 우리 할머니가 불쌍하다고 눈물을 지었다
그런데 엄마는 할머니와 늘 불화했다

어디에 계시는 거니? 얼마나 외로우실까?
엄마, 할머니는 아주 오래전에 돌아가셨어

엄마의 머릿속에서는 뺄셈이, 그리고 나서는 덧셈,
곱셈과 나눗셈이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무너져 내리는 기억의 방주(方舟)
나는 방주에 난 커다란 구멍에 내 주먹을 넣어본다
어떤 기억의 물은 흙색이고 어떤 기억의 물은 청색이다
흙색의 물은 지루하며 청색의 물은 가엾다

요새는 왜 그렇게 흰색 차들이 많으냐?

모두들 흰색의 세계로 도망치고 싶은 것이겠죠
나는 같은 대답을 매일 엄마에게 들려준다

다시마의 세계는 갈색이고 눈물이며
그래서 짠맛이 난다 엄마의 잃어버린 바다와
다시마가 끈적거리는 시간을 천천히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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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游泳)


지렁이는 신나게 헤엄을 치고 있다
장맛비가 마련해준 아스팔트 웅덩이
그들의 행복한 비명은 사방으로 퍼져
나는 조심스럽게 유영(游泳)의 우주를 건너간다
비록 누군가의 부주의한 걸음걸이와
차의 뒷바퀴에 으스러질 휘발성의 행복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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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래끼


무지근한 통증은 너와 함께 온다
나는 네가 절대로 그립지 않다
너 없이도 잘살고 있다 하지만
너의 부드러운 눈길을 기억한다
아주 약한 안약에서부터 센 안약까지
차례대로 넣어본다 나는 너를 막아야 한다

나은 것 같다가 다시 아프고 가렵다
나는 조금씩 끈기를 잃어가고 있다
너는 물기를 머금은 염화칼슘처럼 끈덕지게
내 눈가를 파고들며 묻는다 이길 수 있니?

곪아서 터지게 내버려둘 자신이 없으므로
열심히 눈을 닦아주며 온기를 불어넣는다
그대로 그렇게 잠들어 줄 수 있다면
그래, 우리는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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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剽竊)


남의 나라 작가 소설 베껴서
문학상도 타고
문학상 심사위원도 하고
교수 노릇도 한다

끼리끼리
짬짜미
붉어진 얼굴
더 붉어질 것도 없으니

악독(惡毒)한 시대를 견디려면
영악(獰惡)해야 하는데
우직한 글은 악덕(惡德)이 되어 버려

비릿하게 썩은 내가 나더라도
향내 나는 표절(剽竊)의 종이로
잘 포장해서 먹고사는 것들

아, 세상살이가 다
그렇지 않습니까?
모두가 다 아는 걸
눈을 찡끗,

부끄러움을 모르면
그렇게 괴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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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


엄마가 요양원에 들어간 지 한 달이 되었네요
다행히 엄마가 잘 적응해서 지내세요
그런데 한가지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요
엄마를 만나러 가면 엄마한테서 냄새가 나요
거기서는 목욕을 일주일에 한 번만 시켜준대요
이 더운 여름에 일주일에 고작 한 번이라니,
다른 곳도 그런가요?
네, 보통은 일주일에 한 번이라고 들었어요
두 여자는 그렇게 말을 주고받았다

우연히 그 이야기를 듣던 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엄마는 여름만 되면 땀을 됫박으로 흘린다
요양원에 가고 싶어하는 노인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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