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내가 시를 쓰는 이유


요새 내가 시를 쓰는 이유는
참새 때문이다

짹짹 찍찍

참 시끄럽기도 하지

얘, 그게 시니?
시가 맞아?

내 정신머리로는
네 시가 이해가 안 돼

그런데 아무튼
난 참새가 정말 고마워

너 때문에
시를 쓸 용기를 얻었거든
진짜

참 같잖은 말도
시가 되는 시대

뭐 어떠니

너처럼 나도
이렇게 시시껍절한 말로
시를 쓰는데

그래도 뭔가 부끄러운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백주 대낮 사거리에
벌거벗고 서 있는 느낌

비웃는 거 알아
그래도 써야 한다는 거 알아

인생도 한때
시도 한때

그래도 누군가의 가슴을 후벼팔
그런 시를 쓰고
싶다

참새야
고마워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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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아파트, 풍경

 


단지 사이의 도로 가장자리
거긴 야쿠르트 여자의 지정석이다

여자에겐 단골손님이 참 많다

그거 2개만 줘

젊은 여자는 아무렇지 않은 듯
중년의 야쿠르트 여자에게 반말투로 말한다
친한 사이인가

야쿠르트를 사는 손님 가운데에는
중풍으로 몸이 불편한 여자도 있다

나는 그 여자를 15년 동안 보아왔다
오른쪽이 마비된 여자는 해마다
조금씩 기력이 쇠하고 있다

그래도 살아있다는 것
힘들게 다리를 끌며 걸어가는 여자를
나는 본다

올겨울은
유독 흐린날이 많았다

나는 한적한 놀이터를 지나간다

놀이터 가장자리의 도로반사경에
나이든 여자의 얼굴이
둥글게 부푼다

저런 못생긴 얼굴이
나일 리 없어

생기 없이 늙어버린

시간은 공평하고
잔혹하고
슬프다

올해는
이 아파트를 떠나야지

너무 오래 이곳에 살았다

미친 듯이 짖어대는 큰 개들
화단에 널브러진 개똥들

싸고
깨끗하고
좋은 집은
어디에도 없어

오늘은 두 집이나 이사한다
손 없는 날인가

올해는 정말 떠야지

근처엔 놀이터가 없어야 하고
윗집엔 애들이 없어야 하고
같은 라인엔 개를 키우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회색 하늘 위로
백일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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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내과 예약이 있어서 병원에 다녀왔다. 작년 12월에 받은 건강 검진 결과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재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종합병원은 언제나 사람들로 미어터진다. 진료실에 들어가서 의사와는 5분 정도 이야기한 것 같다. 의사는 다시 확인해야 할 검사와 추가로 필요한 검사에 대해 말했다.

  원무과에서 수납하고 채혈실로 갔다. 병리과의 젊은 여자 직원이 피를 뽑았는데, 생각보다 아프다. 지혈하느라 채혈한 곳을 누르고 있었는데, 피가 좀 많이 나온다. 피 뽑은 자국도 작은 피멍이 아니라, 이상하게 작은 직선 모양으로 줄이 그어진 것처럼 자국이 났다. 피 뽑는 것도 기술인데, 저 직원은 실력이 참 별로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제 피 뽑을 때 바늘 들어가는 느낌에서 이 사람 피 잘 뽑는구나, 아니다를 구분할 지경이 되었다.

  채혈 결과를 기다리는 데 1시간이 걸렸다. 병원에서 기다릴 때는 달리 뭘 할 게 없다. 책을 읽다가 집중이 안 되어서 그만두었다. 이럴 때는 묵주기도를 하는 편이 낫다. 묵주기도는 같은 기도문을 반복해서 하는 염경기도(念經祈禱)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묵주알을 굴렸다. 그렇게 5단 기도를 2번 했다. 중간중간에 대기실의 사람들 소리가 들렸다. 아주 늙은 할머니 환자는 남편이 보호자로 옆에 있었다. 그 할머니 남편도 거진 80이 다 되어 보였다. 거동이 약간 불편한 할머니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내를 살뜰히 챙겼다. 저 나이에도 서로를 챙기고 의지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나는 '부부'라는 인연에 대해 잠시 짧게나마 생각했다.

  내과 접수를 보는 간호사는 정신없이 바쁘다. 내 앞에서 간호사와 이야기하는 사람은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이다. 남자는 약국에서 받아온 약봉투를 들고 있었다. 다음 진료 예약을 하는데, 자신이 연차 휴가를 낼 수 있는 날짜를 말한다. 남자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남자의 모친이 그 옆으로 온다. 남자는 보호자로 병원에 왔다. 연차라도 빼서 어머니의 진료를 챙기는 아들이 있으니, 저 아주머니는 노부부보다는 형편이 낫다.

  바로 옆의 간호사는 젊은 여자에게 인슐린 주사 놓는 법에 대해 설명을 한다. 환자는 여자의 모친이다. 이제 처음으로 인슐린 주사를 맞게 된 모양이다. 주사의 용량을 얼마나 할 것인지, 언제 맞아야 하는지, 소모성 재료대 요양 급여 신청은 어떻게 하는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기는 딸이 늙은 엄마를 챙긴다. 저 아주머니 환자도 복받은 사람이네. 병원에 오면 저렇게 부모 챙기는 자식들 모습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대기실 건너편에는 신장내과가 있다. 노부부가 진료실에서 나온다. 간호사가 할아버지에게 투석실에 가야 한다고 말한다. 신장이 많이 안 좋은 환자인가 보다. 여긴 할머니가 남편을 챙기고 있다. 느린 걸음으로 노부부는 대기실을 떠난다. 신장내과 옆에는 혈액종양내과가 있다. 대기실 의자 뒤편에는 정장 차림의 젊은 남자들이 두어 명 앉아있다. 내 생각엔 제약회사 영업부 직원 같았다. 오전 진료 끝나기를 기다려 남자들은 진료실을 조심스럽게 노크한다. 문 앞에서부터 아주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남자가 손에 든 쇼핑백은 의사에게 줄 선물 같아 보이기도 한다. 병원에 오면 의사라는 직업이 가진 권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냥 알게 된다.

  채혈한 지 1시간이 지나서 검사 결과가 나왔다. 진료실에 들어가는데, 몸이 약간 휘청하는 느낌을 받는다. 결과가 안 좋으면 어쩌지. 중년의 여자 의사는 내가 앉고 나서, 잠깐 모니터를 보고는 차분하게 말을 시작한다. 나는 안 좋은 말을 들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검사 결과가 정상 수치로 나왔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나는 죽은 줄 알고 염라대왕 앞에 불려 나갔다가, 한 10년 더 살아도 된다는 말을 들은 사람 같았다. 내 나이 또래의 여자 의사는 병원 홈페이지에 나온 얼굴과는 달리 인물이 별로였다. 하지만 나에게 검사 결과를 알려주는 그 순간만큼은 진짜 선녀처럼 보였다.

  살았다.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진료실을 나왔다. 밀린 환자 때문에 점심도 못 먹고 일하고 있는 접수 간호사에게도 따뜻한 인사를 건넸다. 병원문을 나서자마자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프기 시작했다. 집에 와서 타이레놀을 2알이나 먹어야 했다. 어쨌든 살았다. 커다란 마음의 짐을 덜어낸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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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11월, 베란다 우수관으로 비릿한 냄새가 흐른다
소금에 절여진 배추물
모두들 절임 배추로 김장을 할 때
저 집은 배추를 사다 절이는가 보다

엄마는 김치 담그는 법을 잊어버렸다
나는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다
얼마나 다행인가
고춧가루만 보아도 입안이 쓰리다

나의 젊은 날에 엄마는
박스가 터져나가도록 김장 김치를 보내주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다

김치 담그는 법을 잊어버리고
내 생일도 잊어버리고
나는 그렇게 엄마를 잃어버렸다

엄마가 담근 김치맛이 기억나지 않는다
다행이다
그리워할 무언가가 없다는 것
간절하지 않다는 것

난 요양원 같은 데 가고 싶지 않아

그래요

엄마를 요양원에 보낸
그 첫 밤이 어떨까 생각해본다

슬플까
괴로울까
그래서 눈물이 흐를까

주룩주룩
빗물처럼
우수관으로 비린 배추물이

나는 토할 것 같은
입을 틀어막으며
마루 문을 세차게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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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밥 딜런(Bob Dylan)이 노래를 잘 부른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물론 가창력이 좋아야지만 가수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밥 딜런은 노래를 못 부르는, 현대판 음유시인쯤 된다. 나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그 가수는 평생 부른 노래로 노벨상까지 거머쥐었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스스로 가창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밥 딜런은 가수가 되는 걸 포기하려 했다고. 그런데 누가 밥 딜런에게 말했단다. 넌, 너의 노래를 부르면 돼.

  2023년은 개인적으로 나에게 최악의 한 해였다. 여러 과의 병원을 성지 순례하듯이 다녔다. 아픈 몸은 좀처럼 낫질 않는다. 기분 나쁘게, 속 끓이는 일들이 계속 있었다. 나는 몸이 아픈 이유가 스트레스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복용하는 약의 부작용 때문인지 쉽게 지쳤고, 뭔가에 집중하는 일이 힘들어졌다. 영화 보는 것도, 책 읽는 것도 해내기가 힘들었다. 글도 쓸 수가 없었다.

  작년 한 해 동안 써낸 영화 리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영화를 보는 것이 힘들게 되니까, 글도 써내질 못한다. 그래도 글을 써야 하니까 이런저런 일상 글이라도 쥐어 짜 내어 수필로 만들었다. 그냥 글쓰기 연습인 셈이었다. 뭔가 제대로 된 글을 써내질 못한다는 좌절감은 늘 있다.

  올해는 수필에 이어 시를 써보려고 한다. 생각해 보니, 나는 중학교 때부터 시를 써왔었다. 집안 창고의 박스 어딘가에 그 노트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시인이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은 소설이었다. 작가가 되어야지.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쓴 글로 벌어 먹고살 거야.

  "그런데, 작가가 된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오래전, 나에게 그렇게 말하던 사람은 입가에 일그러진 미소를 흘렸다. 그래, 언젠가 네가 한 말을 되돌려 주마. 하지만 이렇게 세월이 흐르고 보니, 나는 그 애한테 여적지 그 말을 되돌려 줄 기회를 잡지 못했다.      

  오늘도 병원에 다녀왔다. 다음 주에도 병원 예약이 있다. 늙음과 병고는 우울함을 몰고 온다. 노래를 더럽게 못부르는 밥 딜런은 자신의 노래에 개성을 입혔다. 그리고 근성으로 버텨냈다. 힘들어도 버틴다는 건 중요하다. 그건 전혀 즐겁지 않다.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면서 이를 악물어 보는 거다. 올해도 난 아플 거고, 써지지 않는 글을 부둥켜안으며 괴로워할 것이다. 어쨌든, 넌 너의 글을 써라. 나에게 하는 그 말을, 나는 지상의 어느 방 한 칸에서 외롭게 글을 쓰는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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