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 교수의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 1 - 와인의 세계
이원복 글.그림 / 김영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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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구멍난 와인 지식을 메워주는 쉽고 탄탄한 입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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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를 시작하기 전에는 항상 각오가 방대하다. 이번에도 나를 노려보는 수많은 책들을 다 읽겠노라고 다짐에 다짐을 했으나, 누워서 책장 넘기는 것도 귀찮았던 관계로 책은 많이 보지 못했고 대신 눈만 또록 또록 굴리면 되는 드라마 하나를 드디어 끝냈다. 질질 오래 끌던 꽃보다 아름다워를 보며 난 참 질질 오래 짰다. 드라마를 보면서 난 정신적으로 거의 미수(한고은)였다. 미수가 알면 기분나빠 할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인철이 미수에게 "너로 인해 내 인생 전부를 위로받는 느낌이었어' 라고 이야기할 때, 또 얼마나 울었는지. 둘이 헤어질 때, 엄마로 인해 속상해할 때, 근데 그런 엄마가 더 자유롭고 행복해 보일 때, 나는 계속 계속 울었다. 새벽 6시까지. 구질구질 궁상스럽지만 참 어쩔 수가 없더라. 태어나서 이렇게 많이 울면서 본 드라마는 또 없지 싶은데, 이건 드라마가 워낙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그간 내 마음이 많이 말랑말랑해지고 공감의 폭이 더 넓어졌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 살면서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보면서 우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노희경 드라마의 특징은 모든 캐릭터가 다 사랑스럽다는 것. 무조건적인 악역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등장하지 않는다. 한 명 한 명에 모두 애정이 담겨 있어서, 자신의 드라마를 봐 주는 시청자들이 누구든 미워하는 게 싫은가보다. 시간이 흐르면서 따뜻해지는 인철(김명민)과 그의 엄마의 관계도 인상적이었다. 이해할 수 없던 엄마를 이해하게 되고, 아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해보는 엄마의 모습은 미수/미옥네 가족과는 또 다른 느낌의 감동을 준다. 자식들을 다 버리고 간 아빠도, 그리고 그 아빠를 꿰차고 들어선 여자도, 모두 나쁘지 않다. 전형적이지 않은 캐릭터가 노희경 드라마 캐릭터의 전형으로 자리 잡는 느낌이랄까.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 가면서 자꾸만 드라마가 다루지 않는 것들에 마음이 가는데, 아빠가 새 여자와 결혼해 낳은, 그래서 짐짓 더 성숙해 보이지만 자꾸만 위축되 가는 것 같은 재건이의 미래가 암담해 자꾸만 눈물이 나고, 민이가 엄마에게 버림받은 순간, 그 순간의 상실감이 그 아이의 삶에 미칠 영향이 걱정이 된다. 내가 갈게, 한 마디를 오래도록 붙들고 어쩌면 오지 않을 지도 모를 미수를 평생 기다릴 인철의 삶도 염려되고, 자신이 좋아했던 사람을 정말 좋아하는 친구에게 보내는 아픈 일을 겪고도 진심으로 두 사람의 사이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재인에게도 마음이 간다. 아무래도 점점 오지랖만 넓어지는 기분.

고두심도 고두심이지만, 아, 배종옥은 정말 연기를 잘한다. 이건 연기를 넘어선 것이다. 눈물을 삼키며 엄마, 를 부르는 그 연기를 배종옥처럼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리고 박상면, 아아, 분명 내 이상형이 가오잡는 사람이라고 깐따삐야님께 이야기했었는데, 가오 한번 잡지 않는 박상면이 그리 좋을 수가 없다. 이상형의 혼란을 겪으며, 결론적으로는 난 저런 사람이 좋구나, 라고 도장 쾅쾅 찍는다. 지적 성숙을 이성과 감성의 성숙으로 잘 연결시킨, 게다가 모든 사람들을 놀랍도록 배려하고 이해하는 저 마음에 지칠 줄 모르는 사랑이라니. 다른 드라마는 당분간 보지 않을테니 꽤 오래동안 박상면이 내 이상형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 같다. 그러고보니 거침없이 하이킥을 볼 땐 최민용이 이상형, 고맙습니다를 볼 때는 장혁이 이상형이었구나. -_- (아 그런데 저 둘도 지금 생각해도 이상형 맞긴 맞는데, 이상형이 공존할 수 없는 특징을 가진 여러명이어도 되는건가?)

요즘 들어 부쩍 엄마가 놀아달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엄마랑 놀자. 놀자는 말이 어쩐지 너무 유치하게 느껴지고, 아니 엄마가 왜 저렇게 나에게 놀아달라고 떼를 쓰나,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꽃보다 아름다워는 바로 그 놀아준다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엄마 심심해, 엄마랑 놀자, 라고 계속 이야기하는 엄마. 그리고 사는 일에 바빠 엄마와 놀아주는 일은 늘 2순위인 자식들. 엄마가 밖으로 나도는 게 싫었으면서, 이제는 왜 엄마는 헬쓰, 수영 같은 취미도 하나 못만들었을까, 라고 생각하는 자식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오버랩하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어릴 적에는 우리가 어떻게든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보려고, 어떻게든 엄마가 나와 더 놀아줬으면 좋겠다며 형제들끼리 경쟁을 했지만, 이제는 놀아달라는 엄마에게 큰 선심이나 쓰는 양 그럼 1시간만 논다~ 라고 놀아주고는 갖은 생색을 내는 나도 참 불효녀다. 효도라는 건 참 별 게 아니면서도 힘든 일이다. 시간과 마음을 내어 부모님과 놀아주는 일.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은 늘어나고 할 일은 줄어드는 부모님이 그 시간을 외롭고 심심하지 않게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일이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이제라도 이 드라마를 본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그래서 나는 한국 드라마가 좋다고. ^_^ 내 마음에 오래 남을 드라마 목록에 하나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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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8-02-09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박상면이 이상형? 극중 성격은 맘에 들지만 그래도 외모는 아니던걸요. 헤헤~~
어제 친정갔을때 엄마가 KTX타고 부산가자고 하셨을때 우물쭈물하던 제 모습이 부끄러워집니다. 에휴...사는게 왜이리 바쁜지요.

웽스북스 2008-02-09 14:12   좋아요 0 | URL
그죠, 저도 이렇게 썼지만, 또 하지 못하는 것들이 분명 더 많을 걸 알고 있지요- 그래서 더 부끄럽구, 죄송하구 그래요 ㅜㅜ 박상면은, 정말 저런 사람 만나면 행복하겠다, 싶을 정도로 맘에 쏙 드는 캐릭터였어요- 나중엔 막 얼굴도 잘생겨보이구 그랬어요- (드라마를 보면서 콩깍지가 씌일 필요는 없는데 말이죠 ㅋㅋㅋ)

깐따삐야 2008-02-09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웬디양님 어머니는 참 귀여우세요. 우리 엄마는 가끔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_-

웽스북스 2008-02-09 22:30   좋아요 0 | URL
우리 엄마두, 속으로 꾹꾹 삼키는 편이에요- 그래도 좀 귀엽긴 해요- 오늘 꽃보다 아름다워 실천편으로 효도놀이좀 했는데 무지 좋아하시더라구요 ㅋㅋ

깐따삐야 2008-02-09 22:54   좋아요 0 | URL
웬디양님 어머니는 일단 본인이 예쁘시다는 걸 아시고 인정받고 싶어하신다는 게 넘흐 귀여우세요. 항상 소녀 같은 면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죠.^^
난 효도놀이로 시작해도 엄마의 지청구놀이로 변질되어 버려요. 흑!

웽스북스 2008-02-10 02:00   좋아요 0 | URL
아 지금까지 효도놀이 하느라 완전 빡세요 아무래도 이제 그만해야될 것 같아요 (뭐든 결심하면 과하게 해놓구 지치는 스타일 ㅜㅜ)

다락방 2008-02-09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이 드라마에서 박상면은 정말이지 최고의 남자였어요!!

웽스북스 2008-02-10 02:01   좋아요 0 | URL
으흑 역시 다락방님이 알아주시는군요 ㅜ_ㅜ 주변에 혹시 이런사람 보이거들랑 신고해주세요 흐흐흐

하루(春) 2008-02-10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드라마에 원래 류승범이 캐스팅되려 했는데(화려한 시절에 출연했었죠) 스케줄이 안 맞아서 김흥수가 출연하게 됐다더라구요. 류승범이 나왔으면 어땠을까 하면서 봤는데...

제가 전에도 댓글에 썼듯이 절대 잊을 수 없는 또 한편의 드라마였어요. 얼마나 엉엉 울었던지...

웽스북스 2008-02-10 14:31   좋아요 0 | URL
류승범도 잘 했겠지만 김흥수의 여리여리하면서도 귀엽고도 강한, 장남의 역할을 해야한다는 압박을 가지고 있는 유약한 막내 이미지는 좀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 김흥수가 소화한 재수를 류승범이 하는 걸 상상할 수 없듯, 류승범이 소화했을 재수라면 김흥수가 한 모습을 상상할 수는 없었겠죠- 암튼 김흥수는 꽤 호연을 보여줬어요 ^_^

정말이지 엉엉 울지 않을 수 없는 드라마에요- 말씀하신대로 빨간약 바르던 장면도 정말 가슴 아팠어요 ㅜ_ㅜ

순오기 2008-02-10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 난 이 드라마 무슨 상 줄때 나오는 자료화면만 봤지만, 그게 고두심이 가슴에 아까징끼 바르는 거랑 배종옥이 가슴치며 울던거였던가~ 그 화면만으로도 다 본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봤으면 난 아마 눈물의 수도꼭지 틀어놨을거에요. 내가 안보길 잘했지~ㅠㅠ
엄마랑 놀아주는 딸이 있어 행복한 어머니 그룹에 나도 끼일 날이 멀지 않았다!ㅠㅠ

웽스북스 2008-02-10 14:48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사실은 꼭 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순오기님 이거 보시면 정말 눈에 수도꼭지 틀어놓으실 것 같아서요 또 함부로 말씀드리기가 어려워요

순오기님은 아마 양쪽의 입장에서 더 실감하시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실 것 같아요 이건 안봐도 비디오에요 정말 ㅜ_ㅜ

그나저나 빨간약을 아까징끼라고 하는 거 처음 알았어요 ;;;

순오기 2008-02-10 17:19   좋아요 0 | URL
ㅎㅎ '아까징끼'를 모르는구나~ 이런게 세대차이^^ 일본식이라고 나중에 '머큐롬'이라 했어요. 그 드라마에선 고두심이 '아까징끼'라고 하던 것 같던데... 아니 '빨간약'달라고 했던가? ㅎㅎ

웽스북스 2008-02-10 22:21   좋아요 0 | URL
아 순오기님 때문에 다시 봤어요 ㅋㅋㅋ 그냥 이름은 얘기 안하구 이거...라구만 얘기하네요 ^-^ 머큐롬까지는 알았는데 아까징끼는 진짜 처음 들었어요 그러고보니 빨간약 발라본지도 오래됐네요 어려서는 자주 발랐었는데

마노아 2008-02-11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드라마 꼭 볼래요. 저녁에 외출하게 되면 혼자 식사하게 될 엄마가 늘 밟혀요. 가급적 밥은 집에서 먹으려고 하지만 그게 맘처럼 안 될 때가 많잖아요. 엄훠, 내가 데이트 못하는 것은 효심 탓???ㅡ,.ㅡ;;;;

웽스북스 2008-02-10 22:22   좋아요 0 | URL
엄마가 마음에 밟히는 그 마음이 곧 효녀지요 ^^ 근데 올해는 데이트를 하는 게 효녀일지도 모르겠어요 ^-^ (어째 남얘기처럼 막 ㅋㅋ)
 
[거울 속의 아이들] 서평단 알림
거울 속의 아이들 - 인권을 빼앗긴 채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 이야기
김정연 외 지음, 김준영 그림, MBC W 제작진 / 아롬주니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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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점심은 공교롭게도 카레였다. 외부 손님이 오셔서 회사 근처에 있는 깔끔한 인도 음식점으로 가서 카레를 주문해 먹었고, 그날 따라 유난히도 난이 많이 나와 반도 못먹고 나머지를 남길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아침에 읽었던 이 책의 내용을 기억해내며, 음식을 남기는 일에 평소보다 많은 가책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실은 평소에는 무감한 편이다)

   
  쥬린다는 주섬주섬 배낭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아침에 내가 쥬린다에게 주었던 난이었다.
"쥬린다. 너 그거 먹지 않았던 거야? 아직도 갖고 있었어?"
나는 놀란 얼굴로 말했다.
"응, 엄마 주려고... 엄마 이거 옴 오빠가 아침에 나 먹으라고 준 거야. 엄마 먹어"
쥬린다는 이미 식을 대로 식어버린 난을 엄마에게 내밀었다.
 
   


난은 인도 음식이다. 그리고 나는 여기 한국에서 난을 먹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난을 먹는 나는 난을 남길 수 밖에 없었고, 인도에 사는 쥬린다는 배고픈 상황에서도 누군가로부터 받은 난을 먹지 않고 엄마에게 가져다 준다. 분명 그 나라 음식인데, 그 나라에 사는 가난한 아이에게 이 음식은, 다른 나라에 있는 나에게보다 더 귀한 음식이 돼버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이런 불공평을 넘어선 아이러니가 도대체 얼마나 많이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세계에 있는 빈곤층 어린이들의 모습을 담은 책으로, MBC 다큐멘터리 W의 어린이 인권 관련 코너를 모아 동화 형식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실상과 함께, 현지에서 NGO들이 활동하고 있는 모습도 담았다. 아직도 마녀 사냥의 풍습이 남아 있는 나라에서 평생을 마녀로 낙인찍혀 살아가는 아이들. 거리에서 꽃을 파는 아이들, 부모의 빚을 갚기 위해 채석장에서 평생을 일하는 아이들, 소 한마리에 팔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더 다양한 모습으로, 많은 아이들이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생존이라는 것은 워낙 절박한 문제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문제가 해결된 뒤에야 그 이후의 것들을 고민할 수 있는 법인데, 이 아이들은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에 그 이후의 것을 고민할 수 없었고, 그렇게 자란 아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다시 똑같은 부모가 되어 같은 방식으로 아이를 키울 수 밖에 없는 구조적 악순환의 고리가 가슴 아프다. 배우지도 못했고, 충분히 고민하거나 사유할 여력이 없을 수 밖에 없었던 그 부모를 감히 누가 탓할 수 있겠는가.

어른이라면 이런 현실들에 대해 좀 더 구조적으로 다룬 책들을 보며 고민하는 편이 나을 수 있겠지만, 아이들에게는 이런 동화 형식의 책을 통해 좀 더 쉽게 접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친구같은 제 또래 아이들의 삶에 닥친 현실의 고통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접하고 그들을 위하는 마음을 갖고 자란 아이라면, 분명 그 아이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타인의 향한 마음이 남다를 것이다. 나중에 아이가 생긴다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혹은 그 이전부터 함께 이런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기아대책이나 월드비전 같은 기구를 통해, 아이의 친구를 만들어주고, 아이의 이름으로 매달 후원하도록 해야겠다, 가능하면 편지도 쓰고, 더 가능하다면 함께 여행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 알라딘 서평단 리뷰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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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2-09 0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단도서였군요. 함께 사는 세상의 불공평과 아이러니를 알아가는 것이 나이를 먹는 것일수도... 아이의 이름으로 후원하기 전에 부모가 먼저 해야 하는 일이겠죠? 물론 웬디양님 말씀은 부모도 하면서 아이 이름으로도 한다고 읽히지만요! ^^

웽스북스 2008-02-09 05:08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오늘도 주무시다가 일찍 깨신 거에요? ^_^ 요즘엔 리뷰 쓰기 힘들어서 서평단 도서 신청 잘 안하는데, 이건 읽어보고 싶더라고요. 흐흐흐~ 저는 월드비전 통해서 이미 2명 후원하고 있답니다.

순오기 2008-02-10 17:33   좋아요 0 | URL
아마 10시쯤엔가 책 읽다가 스르르~~ 자다가 깨어나서 알라딘 탐방하고 마저 다 읽었어요! 알라딘 폐인ㅎㅎ
월드비전에 두 명이나요? 쉽지만 어려운 일이라서 나는 한 명만. 2년 후엔 방문할까 계획중이지요. ^^

웽스북스 2008-02-09 12:22   좋아요 0 | URL
아 저두, 실은 1년에 한명씩 늘려야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아 2명에서 스탑 상태에요, 실은 돈만 보내지 정서적으로는 생각했던 것만큼 마음을 주지 못하는 게 또 현실이네요- 실례로, 두번째로 후원한 아이는 지금 이름도 잘 기억이 안나요 -_- 편지나 카드가 와도 요즘은 무심하구요, 하튼 문제야 문제 ㅋㅋ

순오기 2008-02-10 17:35   좋아요 0 | URL
나도 후원금만 통장에서 빠질뿐, 카드 답장도 생일선물도 한번 못 했어요. 그냥 내년까진 그렇게... 그 후에 가볼까 생각해요. 우선 돈을 모아야 돼요! ^^

웽스북스 2008-02-10 22:23   좋아요 0 | URL
그죠 저도 그래요- 역시 마음을 쓰는 일이 더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이건 참 이상하고도 재밌는 것 중 하나인데,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일에 조금 재주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소개팅 시켜줬던 건 성사율 0%였긴 했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냥 주변에 있는 좋은 사람들을 서로 친구시켜주고 이런 일들을 좋아했다는 거다.

K와 J는 고등학교 시절 나와 같은 동아리에 있던 친구인데, 나는 K와 따로, J와 따로 친했다. 그리고 Y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당시 나름 친하게 지내던 오빠들과 무리지어 놀던 친구 중 한 명으로 당시 유행하던 단체 돌림일기, 뭐 이런 것들도 같이 쓰고 하며 친하게 지내던 사이. (그 때 여섯명이 함께 쓰던 돌림일기는 아직 책꽂이에 있는데 어쩐지 낯부끄러워질 것 같아 꺼내어 보지는 않고 있다. 그러고 보니 그 모임도 나와 H오라버니를 중심으로 각자의 친구들로 결성이 됐던 모임이었구나 -_-)

그러다 우리는 2학년이 됐고, 나와 같은 동아리에 있던 K와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Y와 내가 2학년 때 한 반이 됐다. 그리고 우리는 다섯, 여섯명쯤 무리지어 노는 친구들 (그러니까 함께 도시락을 먹는다는 의미 ㅋㅋ) 이 됐는데, 구성이 생각해보니 나와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2명과 나와 같은 동아리였던 친구들 2명이었다. J는 여전히 다른 반이었고, 나와는 동아리 친구였고. 실은 J와 나는 서로 싫어하던 사이였는데, 싫어하다보니 정이 들고, 오해가 풀리고, 뭐 이러면서 급 친해졌던 관계.

대학에 오고, 나는 집을 떠나 기숙사에서 살게 됐고, K와 J와 Y와는 각각 다르게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K와 J가 휴학을 하게 됐고, 둘다 각자 심심하다고 연락을 해왔기에, 그럼 둘이 놀면 좋겠다 싶어 J에게 연락을 해보라며 K에게 J의 연락처를 알려줬었다. K는 회상하기를, 오죽 심심했으면, 이라고 하긴 하지만- 암튼 K는 J에게 연락을 했고 둘이 같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둘의 사이는 급 친해지고, 나는 또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지내면서 K와 J와 Y 모두와 조금씩 소원해졌다. 그리고 3학년을 마치고, 내가 휴학을 해 다시 집으로 왔을 때는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졌으니, 그 안어울리던 K와 J가 소위 말하는 베스트프렌드가 돼있는 사건. 아, 그 때의 당혹감이란. 암튼 그 과정에서 고등학교 때는 서로 말도 섞지 않던 J와 Y까지도 친해지게 되서 결국 나를 뺀 그 셋은 함께한 그 세월에 비례하는 매우 일상적인 친구가 돼버렸다.

내가 졸업을 한 후, K와 Y는 함께 호주에서 연수를 했고, J는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느라 그들은 또 나와는 그만큼의 시간을 보내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녀들을 만난 며칠 전, 나는 공교롭게도 제일 덜 친한 친구가 되어 그들과 함께했다. 이런 아이러니함이라니. 이젠, 니들 만날 때 나도 불러, 라고 내가 말해야 되는 상황이 되버렸다.

Y는 스물 아홉을 맞이하면서, 올 가을 쯤 결혼을 생각했던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 받았다. 때마친 다니던 회사도 불안정해지자, 그녀는 무슨 스물 아홉이 이래, 라며 경악을 했다. 그런 그녀가 뮤지컬 싱글즈를 보러 가잔다. 80년생들에게 29%를 할인해주는 스물 아홉살 이벤트를 한다며, 스물 아홉이 되서 계속 안좋은 일만 생겼는데, 이런 좋은 일도 생겼구나, 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우리는 경악한다. 으아아아악. 그런 이벤트의 대상이 80년생이 되버린 이 현실이 너무 싫어. 나는 빈정 상해서 절대 뮤지컬 싱글즈는 보지 않겠다며 갖은 오버를 떨었고, 본다 하더라도 80년생 할인 따위 받지 않겠다며 큰소리를 쳤다.

그날은 그녀를 위해 공연 한 편 예매하는 걸 아까워하던 남자친구가 새로 생긴 여자를 위해 라이어를 (심지어 2개월 할부로 -_-) 예매한 사실을 알고 Y가 경악을 한 날이었으므로, 그날은 Y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이 주가 됐다. 그녀가 지난 남자친구들과 헤어지면서 보여줬던 그 바닥의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경악을 했다. 아, 저럴 수도 있구나. 그치만 한편으로는 한번쯤은 해봤어야 했는데, 라며 부러워하던 나와 J. 이 나이 먹어서 다시 하기는 싫고, 저런 경험을 과거로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 라고 말해서 Y에게 더욱 욕을 먹었지만, 진심이었다. 어쩌면 그게 진심이어서 J와 내가 아직까지 그런 것도 못해봤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유독 삶 속에서도 가오 떨어져, 라는 말을 많이 하는 J와 나. 그딴 게 뭐 중요하다고. 라고 말하지만 분명 못할 게 뻔하다 우리는. 실은 객관적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일을 떠올리면서도 가끔씩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보면.

K는 심지어 집에서 '노처녀' 라는 구박을 노골적으로 듣는단다. 집에서는 그것이 알고 싶다,를 즐겨보는 부모님께 너 혹시 동성애자가 아니냐는 구박을 자못 심각한 목소리로 듣고 있는 지경이라며. 우리는 스물 아홉은 절대 노처녀,가 아니라며, 사회적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나는 회사에 결혼하지 않은 분들이 워낙 많다 보니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리고 그 분들을 노처녀라는 잣대로 바라본 적이 없었는데,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노골적으로 구박을 한 적이 없어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확~ 실감이 난다.

하긴, 그러고 보니 나는 말없이 조용히, 온 집안의 기도제목이다. 이젠 내가 직장생활을 잘 하도록,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하도록, 기도해 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 좋은 배우자를 위한 기도가 누구에게든, 1순위가 되버렸다. 어제 아침 가족 예배 때도, 아빠까지 이제 당연한 듯, 그런 기도를 하시는데 솔직히 좀 놀랐다. 결혼을 잘하는 일은 분명 중요한 일이겠지만, 그걸 위해 기도해 주는 게 나에게 최고의 축복은 아닐진대, 너무 인식이 일방화돼있는 듯 해 조금 불만이다. (워워, 화내면 또 히스테리라고 할라 -_-)

그러고보니 친구들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횟수가 늘어가는 게 내가 나이가 들었음을 반증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자꾸만 나이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지는 것 역시 그렇고. 나와 비슷한 누군가에게 칭찬을 해줄 때는 동안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게 되는 것도 그렇고, 그럼에도 동안이라는 말을 들을 땐 또 그리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없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올해엔 아마 나이에 대한 페이퍼를 스무개쯤은 거뜬히 더 쓰게 되지 않을까 싶다. ㅋㅋ 그치만 나이에 함몰되서, 혹은 쫓겨서, 혹은 그에 부응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잃지는 말아야겠다는 경계심이 더 들기도 한다. 어랄라, 친구 팔아 페이퍼 쓰다 보니, 여기는 삼천포, 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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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8-02-08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도 명절에 멀리 안가셨나봐요. ㅎㅎ 저는 오랜만에 내리 영화보고 술 마시고 잠자고 푸~~욱 쉬고 있어요 ㅎㅎ 어제 6년째 연애중 보는데, 중간에 "너 그새끼랑 잤어 안잤어" 이 대사에 뜬금없이 "12시 8분에 거기 있었습니까?"가 매치되서 어찌나 웃기던지 ㅎㅎ

웽스북스 2008-02-08 19:15   좋아요 0 | URL
네네, 전 요즘 훌라에 맛들인 엄마 때문에 훌라 상대가 되주느라 거의 초죽음이에요 ㅋㅋ 그나저나 제이드님 놀라운 적용 능력인데요? ㅋㅋㅋ

Mephistopheles 2008-02-08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니까 뭡니까...페이퍼는 친구팔고 뮤지컬 팔고 이것저것 다 팔았지만 결론은 소개팅..인건가요...??? 그런건가..??

웽스북스 2008-02-08 19:16   좋아요 0 | URL
뭐에요 이런 왜곡된 해석이라니, 이건 다 내가 스물 아홉이기 때문인 거죠? 그런거죠? (어긋난 히스테리 -_- ㅋㅋㅋ)

Mephistopheles 2008-02-08 19:35   좋아요 0 | URL
왜곡된 해석일까요 정곡을 찔렀기에 둘러대는 것일까요..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근데 아무리봐도 후자는 아닌 것 같고..=3=3=3=3

웽스북스 2008-02-08 21:0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왜곡된 해석이라는 말씀이신거죠? ^_^

Mephistopheles 2008-02-08 21:30   좋아요 0 | URL
모르죠...행여나 1%라도 웬디양님의 심리에 자리잡고 있다면야.......왜곡된 건 아닌 것 같은디요?

웽스북스 2008-02-08 21:38   좋아요 0 | URL
ㅋㅋ 후자는 아니라시길래요 ^-^
근데 저 글을 쓰면서는 맹세코 소개팅을 생각했던 건 아닌데 (실은 소개팅 해달라고 누군가한테 제 입으로 말했던 적은 한번도 없다는 ㅋㅋ) 뭐 해주시겠다면야, 거부는 안하구요, 막 이러고 ㅋㅋㅋㅋㅋㅋㅋ

Mephistopheles 2008-02-08 21:56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 웬디양님..제가 소개시켜드리면 정말이지 웬디양님께 실례를 끼치는 것일지도 몰라요..다 중늙은이 아저씨들인데..그래도 웬디양님은 20대잖아요..흑.

웽스북스 2008-02-08 22:10   좋아요 0 | URL
아...그래도 20대...ㅜㅜ

세실 2008-02-08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물아홉의 다이어리?
나름 연구하며 페이퍼 읽어야 해서 살짝 머리 아팠습니다.
이니셜만 여럿 나오면 머리 아파요.
님 좋은 배필 만나시길 기도드리옵니당^*^

웽스북스 2008-02-08 21:10   좋아요 0 | URL
실은 저도 쓰면서 좀 헷갈렸어요 세실님 ㅋㅋㅋ
그렇다구 애들 실명을 쓰기도 그렇구 말이죠 ㅎㅎㅎ

순오기 2008-02-08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적령기가 많이 물러난 요즘엔 스물 아홉이 꽃같은 나이 아닌가요?
배우자를 위한 기도는 필요하지요!!^^물론 본인이 하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웽스북스 2008-02-08 21:10   좋아요 0 | URL
주변에서 하도 많이 하셔서 저는 안하고 있어요 ㅋㅋㅋㅋㅋ
순오기님 댓글이 바로 제가 원한 댓글이에요
스물 아홉 꽃같은 나이인거죠? 그쵸? ^-^

마늘빵 2008-02-08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왜 서른살은 30% 할인 안 해준대요?

웽스북스 2008-02-08 21:11   좋아요 0 | URL
저도 서른살을 할인해주면 좋겠어요 살짝 빗겨나가서 아쉬운 척 하는 쾌감이랄까? ㅋㅋㅋ 스물 아홉의 이야기여서 그렇겠죠 뭐- 영화로 싱글즈를 봤을 때는 저 스물 아홉이라는 나이가 까마득했었는데 말입니다

비로그인 2008-02-09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보고 나니, 결혼은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꼭 하면 안되는 것도 아닌 일상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것도 제가 해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단지 선택하고 난 후의 방향이 약간 달라질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스물아홉 이벤트로 싱글즈라니, 참 그렇고 그래요. 흑.(슬퍼해야할지 좋아해야 할지 알기가 힘든 일) 이건 제가 배가 불룩하게 나와서 북카페 같은 곳에서 `싱글은 스타일이다' 이런 책을 꺼내 읽기가 뭣한 것과도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요. 아무도 뭐라하지 않지만 혼자 중얼거리는 일들이요.

웽스북스 2008-02-09 00:14   좋아요 0 | URL
참 그렇고 그래요, 에 동감이에요- y는 스물 아홉 되고 처음으로 좋았던 일이라고 하는데, 참 목소리 높여 열낼 수도 없고, 괜히 열내는 게 웃기기도 하고, 암튼 참 그렇고 그래요

결혼이란 건 어차피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을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는 또 당위의 문제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정작 저부터도 이게 선택의 문제,라고 얘기는 하지만, 나의 10년후 모습, 같은 걸 떠올릴 때는 결혼해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떠올리는 게 더 자연스럽기도 하고요.

깐따삐야 2008-02-09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 만나기 전까진 결혼 안 할거야, 라고 하고 싶다가도 왠지 주변을 두리번거려야 할 것만 같은 애매모호한 기분은 뭘까요. 나이가 웬수 같어요. 고작 숫자에 불과한 것이 내 일상의 자잘한 순간들을 모두 장악해오는 듯한 느낌. 안 좋아요. 안 좋아!

Mephistopheles 2008-02-09 11:28   좋아요 0 | URL
숫자에 불과하다고 펌하하기엔 정신적 육체적으로 영향을 많이 준다죠..^^

웽스북스 2008-02-09 12:2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자꾸만 나이에 대해서 할 얘기가 늘어가는 게 진짜 나이 먹었다는 생각 와락 들어요 정말 ㅠㅠ
 


2005년 초였나보다. 뮤지컬 노틀담의 꼽추를 보고, 살짝 아쉬움을 느끼며, 몇달 후면 온다는 노트르담 드 파리 오리지널 캐스트 공연을 무지 보고 싶어 했었다. 그러나, 당시 백수였던 나는 너무 비싼 티켓 값을 감당할 수 없었고, 그저 손가락만 쪽쪽 빨 뿐이었다 ㅜㅜ

옆자리 소중한 사원 혜진씨가 노트르담드파리의 공연이 설 연휴 때 할인된다며 예매하는 걸 보고 나도 알았다. 같이 볼 사람을 물색하다가 메신저에 들어온 B에게 살짝 의향을 떠봤더니 흔쾌히 오케이. 10만원짜리 좌석인 S석을 5만원에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은 것이라며 기쁜 마음으로 예매를 했다. 사실 5만원에 싸게 본다고 해도 덥썩 예매할 정도로 여유로운 건 아니지만, 작년에 못쓴 휴가비 돌려 받은 걸로 나에게 선물한 셈 치자며 눈 딱 감고 예매버튼. 당연히 기대는 컸다.

그러나 공연이 시작되는데, 어라, 어라, 세곡째 듣던 순간, 나는 B에게 속삭인다. "왜이렇게 노래를 못해?" B의 표정은 이미 일그러져 있었다. 매우 중요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음유시인 역할을 맡은 배우가 음량은 풍성한데, 자꾸만 반음씩 음이 떨어진다던가, 살짝 음역이 어긋난다던가 하는 게 자꾸만 귀에 거슬린다. 문제는 중요한 노래는 그 배우가 많이 부르다는 거지. 상대가 받쳐줄 때는 풍부한 성량으로 잘 부르는데, 독창을 할 때는 여지없이 음정이 불안하다. 아놔.

에스메랄다 역할을 맡은 배우의 음색은 에스메랄다의 다른 캐스트인 바다와 비슷했는데, 내가 개인적으로는 바다의 음색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오늘의 캐스트가 바다가 아니라며 좋아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괜히 좋아한 게 되버렸다. 노래를 못하는 건 아니었는데, 기대했던 음색이 아닌지라 나는 꽤나 실망. 여리고 예쁜 음성보다는 안정적이고 풍성한 음성을 기대했었다. 심지어 콰지모도 역할을 맡은 배우까지, 2부에서는 음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한다. 워낙 방대하고 스케일이 큰 곡들이어서 소화하는 데 다들 역부족이 아니었나 싶다. 실은 지금 오리지널 캐스트 음반을 듣고 있는데, 매우 심히 차이가 많이 나는군.

세종문화회관이 공연장으로 그리 훌륭하지는 않다는 이야기를 얼마 전에 들었었는데, 오늘 가보니 그 이유를 대충은 알겠더라는. 음악회를 사랑하는 E씨는 1층 가운데 라인 정도에만 앉아도 피아노 독주가 잘 안들린다며 웬만하면 세종문화회관 공연은 피한다고 했는데, 오늘은 너무 음량을 키워놔서 귀가 멍멍할 정도였다. 오래된 건물이라 시스템이 그렇게 훌륭하지는 않은 듯. 게다가 원곡을 번역해서 가사의 분절이 부자연스러운 관계로 가사의 전달도 어려운 상황에서 음향까지 엉망이니 가사의 30% 정도는 추론을 해야만 했다. 차라리 오리지널 캐스트 원어로 연기하고 자막을 보는 편이 전달은 훨씬 잘됐겠다, 싶을 정도. (또 오리지널 캐스트는 자막 보느라 장면 몰입이 어렵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그치만 무대 연출은 참 괜찮았다. 연출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겠다 싶을 정도로, 조명과 막, 그림자, 댄스 등의 적절한 활용 덕에 몇 장면들은 아직도 눈에 어른거린다. 특히 에스메랄다가 춤추며 올라가던 장면은 너무 아름다워서 살짝 전율이 느껴질 정도. 그치만 연습이 부족했는지 어긋나는 몇몇 동작들과 맞지 않는 줄, 이런 게 거슬린다. 저 가운데 아저씨는 왜 왼쪽으로 치우쳐서 선 걸까, 왜 저 앞줄 두번째 댄서는 동작에 힘이 없어 보일까, 막 이런 거 -_- 그러면 안돼 얘야, 비싼 돈을 내고 왔으니 즐겁게 봐야지, 라며 스스로를 다독였으나, 거슬리기 시작한 건 어쩔 수 없다. 우리의 B는 심지어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물론 작품 자체가 주는 생각할 점들도 분명 있지만, 그리고 그런 것들도 좋았지만, 그거야 원작 문학을 읽어도 충분히 아니 오히려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것들이고, 뮤지컬을 보는 건 텍스트 이외의 요소들의 풍성함을 통해 감동을 배가하기 위함이었는데 여러 가지가 눈에 거슬리다 보니, 10만원을 다 주고 봤으면 엉엉 울어버렸을지도 모르는 공연이 돼버렸다. 나는 5만원 어치는 된다며 스스로를 위로해버렸다. 하지만 우리 B는 그 5만원도 영 아까운 모양이다. 미안하다 친구야. 다음에는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자. 2개 ㅋㅋ

저녁에는 연극을 전공한 친구 (지난 번 대학로에서 마주쳤던) K를 만났다. 내가 이 얘기를 하니 안그래도 원곡이 번역되는 과정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실망을 했었다는 말을 전한다. 괜히 또 내가 유난히 까칠한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 흐흐흐. 뭐 나쁘지는 않았지만, 큰맘 먹고 나한테 준 선물 치고는 실망이야. 그래서 나는 선물을 받지 않고 반품하기로 했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른 선물을 준비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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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2-07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보려고 한 날짜에 바다 주연이어서 미뤘는데 그리고는 다시 예매를 못했어요. 세종문화회관은 소리를 한 번 삼켰다가 다시 뱉어내는 음향 체제라고 하더군요. 클래식 공연과 대중문화 공연을 접했었는데, 정말 못 들어주겠더라구요. 돈 주고 가는 공연이라면 세종문화회관은 가급적 피해야 할 것 같아요ㅠ.ㅠ 성남아트센터가 그렇게 소리가 럭셔리라던데... 거기서 위윌락유 뮤지컬 하는데, 크흑... 주머니가 넘흐 가벼워요.(>_<)

웽스북스 2008-02-07 02:25   좋아요 0 | URL
아 마노아님 안주무시고 계셨군요- 제돈 내고 보기엔 좀 아깝지 않을까 싶어요- 앞으로 계속 할인하던데, A석 이하로는 50% 할인가로 볼 수 있을듯 싶더라고요- 한번 알아보심이 좋을 듯 ^_^
어차피 배우들 얼굴은 잘 안보이니 멀리서 전체적인 무대를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럼 C석은 2만원에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쉬우면 망원경 빌리시면 될듯~ (아, 어쩐지 그게 더 좋아보인다 ㅜㅜ 너무 극빈한 티 내는 웬디 ㅋㅋㅋ) 작품 자체는 나쁘지 않구, 무대는 볼만 해요- 다른 건 모르겠구, 그랭구아르 역할은 박은태씨가 할 때 보는 게 나을 듯 해요~ 오늘 한 분은 인간적으로 음이 너무 흔들려서 흑

Mephistopheles 2008-02-07 0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된 건물이라서 음향시설이 낙후되서가 아니라 원래부터 지어지지 않아야 할 건물이였어요. 박통때 전시행정으로 선전용으로 지어진 건물이였죠. 고로 내부는 완젼 깡통이라고 보면 속편하답니다.

웽스북스 2008-02-07 10:00   좋아요 0 | URL
흐흐 메피님 이 설 새벽 덧글은 참 특별한 느낌인데요? 안주무신 거에요? 아님 일찍 일어나신 거에요? 아 어제 늦게 자고 오늘 일찍 일어났더니 너무 졸려요 ㅋㅋ 세종문화회관도 선전용이었군요- 그래도 좀 개보수를 해서 좋게 고치면 안되나? 거기서 하는 공연들은 좋은 것들이 많은데, 참, 아깝네요...

Mephistopheles 2008-02-08 01:21   좋아요 0 | URL
굉장히 고루한 건물이며 그 건물관계종사자들 역시 건물의 성격과 일치할껍니다. 아마 몇년전까지 대중예술 공연은 절대 불허했었다죠..^^

웽스북스 2008-02-08 12:38   좋아요 0 | URL
얼마전에 학교 다닐 때 같이 공연기획 동아리 하던 언니 한명이 그 쪽으로 입사했어요- 저는 몸만 담그고, 공연기획은 정작 바쁘다는 핑계로 거의 못해서 그 쪽을 잘 모르긴 하지만 말이죠 ㅋㅋ

암튼 언니랑 기회가 닿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참 경직된 집단이긴 하더라구요- 언니는 굉장히 자유로운 사람인데, 합창단 쪽만 하는걸 보니 좀 답답해 할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언니같은 사람이 동화되는 게 아니라 변화의 주역이 되면 한층 공연 문화가 좋아질 것 같기도 하지만, 또 좋은 공연을 그 시설에서 많이 하게 되면 씁쓸할 것 같기도 하고. 흠. 뭘 바라야하나 ㅋㅋㅋ

하루(春) 2008-02-07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공연 오케스트라가 직접 와서 연주했나요? 저는 뮤지컬에 취미를 가질 수가 없는 게 오리지널이라고 오는 사람들도 오케스트라와 함께 오지 않는 것 때문인데요. 왜 뮤지컬인데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더군요. 쿄쿄쿄 할인 못 받았으면 정말 따져도 될 만한 공연이었겠군요.

웽스북스 2008-02-07 10:02   좋아요 0 | URL
MR로 하더라구요- 확실히 느낌이 다르죠- 뮤지컬은 아무래도 노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배우가 노래만 잘하면 된다, 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서 중요치 않게 생각하나보죠 뭐. 그래도 나름 대형 뮤지컬이라는 고가 뮤지컬이 그러면 좀 곤란하긴 하죠-

순오기 2008-02-08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이런 이런~~ 무를수도 없는 선물이구만.^^
선물 물렀다고 나중에 자신에게 다시 선물하려는 웬디양은 자기를 너무 사랑해! ㅋㅋ
설 명절에 '~~~~~가라!'는 소리를 덕담으로 들으셨나요? ^^

웽스북스 2008-02-08 12:40   좋아요 0 | URL
제 자신을 사랑한다기보다는, 갖고 싶은 게 또 있어서 핑계를 만들어주는 거죠 ㅋㅋㅋ (이게 사랑하는 건가? ㅋ) ~~~가라, 이거 덕담 아니었어요? ㅋㅋ (흑)

푸하 2008-02-08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이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의 받침은 자기 사랑이었군요. 올 한해도 타인을 이해하는 수많은 감수성의 결들이 아름답게 주름지시길 바래요.

웽스북스 2008-02-08 13:39   좋아요 0 | URL
아, 이런, 자기사랑으로 이어지는 분위기인 거에요? 아닌데 아닌데, 어쩌다 이런 분위기가. 이게 다 순오기님 때문이에요 ㅋㅋ 저는 자학의 황제이며 타인에 대한 배려가 많이 부족한 편이어서 가끔 이런 자신을 보면서 깜짝 깜짝 놀라곤 한답니다. 푸하님은 아직 절 알려면 멀었어요 ㅋㅋ 아무래도 제가 가식적인 모습들을 많이 보여드렸나봐요 흐~

Jade 2008-02-08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웬디양님과 비슷한 때에 노틀담의 꼽추 봤었어요 ㅎㅎ 전 2004년 12월. 그때 저도 노트르담 드 파리 한국 온단 소리에 얼마나 보고싶던지 ㅎㅎ 세종문화회관이 그런줄 몰랐는데 새로운 걸 알았어요! 뭐 어차피 앞으로 뮤지컬 자주 보지도 못하겠지만...ㅎㅎ

웽스북스 2008-02-08 19:18   좋아요 0 | URL
오오오 정말요? 그 때 국립극장에서 했을 때였죠? 그건 본 사람 거의 못봤는데, 어쩐지 반가워요 ㅎㅎㅎ 나중에 오리지널 캐스트 내한하거든 그 때 보는게 좋을듯 해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