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장 쪽으로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묘하게 빠져드는 일상의 잔혹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M은 최근 교회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좀 많이 보고픈 웬디누나'라고 나를 지칭했는데 사람들 사이에 웬디가 누구냐는 파문을 일으켰다. 선아가 없는 걸 보니 선아가 웬디인가봐,라는 추측에 S집사님, 어? 웬디는 작고 귀여운 요정이잖아 -_- 너무해요 집사님. 크고 안귀여운 나는 가서 '작고 귀여운 요정은 팅/커/벨이에요 흑'이라고 말해줬다. M아 민망하다. 다음부터는 그냥 이름 써주라)

M이 편지를 써달라고 하는데, 난 동생이 군대에 있을 때 한번도 편지를 쓰지 않은 죄인이라 M에게 편지할 수가 없다고 했다. 내가 M을 아무리 이뻐라해도, 동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이러면서 -_- 그런데 벌써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M의 부재를 느끼는 건 능숙한 반주자가 사라진, 사모님의 가끔 틀리는 반주 소리를 들어야 하는 찬양 시간이 아니다. 그 시간은 이미 각오한 시간이었으니까. 난 아동부 예배를 마치고 늘 간이의자에 앉는다. 그리고 M은 마지막 반주를 마치고 내 옆에 와 앉았다. 우린 그냥 아무 말 없이 앉아 있거나, 예배시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거나 했다. 이건 그냥 일상적인 시간이어서, 미처 각오하지 못했던 시간이었다. 허전함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느껴지더라.

2

저녁엔 인사동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대학 동기인 우리는 숟가락 친구들,이라는 별칭이 있다. 같은 선생님 밑에서 같은 걸 배우며 자란 우리는 서로 매우 개성있다,고 여기지만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는 비슷비슷할 거다.

나는 내가, 우리 학교 내에서 나름 시니컬한 편인 우리 친구들 중에서도 나름 시니컬한 편에 포지셔닝돼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학교 사람들이 아닌, 다른 그룹의 사람들을 만날 때는 사람들이 나를 너무 반듯한 이미지로 봐서 당황스럽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들은 내 말에 맞장구를 친다. C양왈 "야야 나도 완전 긍정적인 이미지잖아" Y양 왈 "나는 천연기념물이라고 그러더라" 그리고 덧붙이는 한마디의 말에 난 또 쓰러진다

"사람들이 나한테 물어보잖아, 도대체 니가 말하는 광란의 밤,의 의미는 뭐냐고 -_-"

3

이제 우리는 곧 스물 아홉이다. 아무래도 내년에 결혼을 할 것 같은 Y는 대학원 진학과 결혼 두 가지를 모두 해내야 하는데 만만치 않은 현실이 고민이다. C는 회사에서 인사기록표를 작성해 내면서 자신이 작성할 게 없었다,며 본인이 빈칸 인간이 된 것만 같아 자기 발전을 위한 한 해를 보내야겠다고 결심했단다. R은 그토록 하고싶어하던 다큐멘터리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문화인류학과 영상을 함께 전공하는 프랑스의 학교를 찾아, 2월, 랭귀지부터 시작해야 하는 막막한 유학길에 오른다.

그리고 나는, 모르겠다. 올 한 해는 안주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쓰면서 이런 저런 도전을 했고, 여러 번 좌절을 했으며, 지금은 그냥 안주해버릴까,라는 생각을 했다가, 떨쳤다가, 했다가, 떨쳤다가, 하고 있는 중. 적당히 안정적인 직장에서 이제 일도 많이 익숙해진, 가끔 야근이 많아 피곤하지만, 좋은 사람들과 일해서 다행스러운, 현실에 안주하려면 뭐 할 수도 있겠다. 

돈도 별로 없으면서, 몸값 올리기,는 늘 내 관심사의 밖에 있다. 올 한해 관심 가졌던 곳들을 보면 그렇다. 나는 그런 곳들은 내가 '마음을 먹으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며 힘들게 마음을 먹었는데, 우습게도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덕분에 준비되지 않은 나 자신에 대해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반성할 수 있었던 한 해였다. 그렇지만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는 여전히 막막하다. 어쩌면 자기개발,과는 거리가 먼 나의 새해 계획은 현실성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그냥 몸값 올리기,에 충실하는 삶이 더 편하고 쉬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지금의 방황들을 그만두고, 그 길을 선택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또 그 확률이 결코 적지만은 않음을 알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닌 듯 하다.

역시나 이나이 먹도록 무엇 하나 확실한 것 없는 우리들. 다시 뭔가에 도전하고, 여전히 끊임없이 고민하는, '안정'과는 거리가 먼 우리들의 삶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당황스럽지는 않다. 안정,이라는 건 어쩌면 찾아오지 않을 그 무엇인지도 모른다. 평생. 그러니 내가 지금 안주를 선택한다해도,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또 흔들릴 예정임을 안다. 

4

돌아오는 길 지하철, 책을 읽으며 앉아있는데, 옆자리 아주머니가 자꾸만 내게 기대온다. 그런데 무의식적으로 기대는 게 아니라, 좀 의식적으로 기댄다는 느낌이 든다. 기댔다가, 몸을 뗐다가, 하는 주기, 혹은 상황을 살피면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 살짝 술을 한 잔 드신 듯한 이 아주머니는 자다 깨서 자꾸만 누구에게 전화를 건다.

나에요, 나 술을 좀 마셔서 지하철에 돈도 안내고 탔어요. 그냥 담 훌쩍 넘어서.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겠어요.

누군가에게 계속 이 얘기를 하고 싶었나보다. 내가 지금 지하철에 돈도 안내고 타는 일탈을 감행했으며,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나 상대는 모두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지 않는 것 같다. 자꾸만 다른 누군가를 찾는 것을 보니. 피곤한 육체를 내 몸에 기대는 아주머니는, 다른 누군가에게 그 곤한 마음을 기대고 싶었던 것 같다.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피하던 내가 아주머니의 마음에서 외로움을 읽어내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상대방의 이런 마음이 읽힐 때마다, 나는 묘한 마음이 되곤 하는데, 내가 이렇게 상대방의 마음이 보일 정도로 나이를 먹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그게 실은 곧 내 모습이기에 더 알기 쉽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은 아주머니는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을 체념했는지 차가운 지하철 의자 옆 쇠기둥에 몸을 기대어 잠이 든다. 사람에게 기대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댓글(6) 먼댓글(1)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 스물아홉, 귀차니즘
    from 지극히 개인적인 2008-01-24 00:16 
    실은 내가 삘받으면 좀 오버스럽다 싶게 챙기는 편이다. 학교 다니던 시절 학보사 동기였던 K가 군대를 갈 때, 동기들의 편지를 쌩오버를 해가면서 다 받아내고는 그걸 접착식 앨범에 친구들 사진 한장씩과 함께 붙여서 전달해줬었다. 실은 K와 내가 그렇게 친했던 것도 아니고, 별 감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괜히 '동기가 군대에 간다'는 사실 자체에 좀 취해 있었던 것 같다. 과도한 의미부여랄까? 연대의식 강한 연극영화과에 다니던 친구 P가 동기사
 
 
Mephistopheles 2007-12-24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는 일도 어려울 뿐더러 기댈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점점 어려워지는 듯 합니다.^^

웽스북스 2007-12-24 09:52   좋아요 0 | URL
아울러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 또한 어렵죠-
세상엔 어려운 일 투성이인 것 같습니다

무스탕 2007-12-24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가 없어 내가 허전할거라는거 알면 대처하기 좋을까요..?
그냥 그렇게 익숙해 지는거.. 조금 아쉽기도.. 조금 쓸쓸하기도..

웽스북스 2007-12-24 12:13   좋아요 0 | URL
알더라도, 사실 존재 자체를 그 무엇으로 대처할 수 있겠어요
그냥 각오하는 거죠

깐따삐야 2007-12-24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예기치 못한 순간에 느껴지는 허전함. 혼자 속으로만 짠-하죠.
2 웬디양님 반듯하고 조신한 거 맞는 것 같은데요.
3 우리가 벌써 스물하고도 아홉이군요. 되게 늙어보인다.ㅋㅋ
4 이젠 어른이어서 그런가. 기댈 때도 폼을 중시한다는.-_-

웽스북스 2007-12-24 12:14   좋아요 0 | URL
1. 의외로 사소하고 작고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그런 경우가 많아요
2. 이봐이봐 이렇다니까요 ;;
3. 그죠. 스물 넷쯤에 싱글즈를 보면서 저 나이는 아직 멀었다고만 생각했었는데
4. 역시 나이가 들면 '가오'로 먹고 살아야죠 ㅋㅋ
 


상사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다. 하필 식장은 본가가 있는 의정부. 태어나서 한번도 가보지 않은 역이다. 꾸물꾸물하다 보니 1시간쯤 지각이 예상된다. 서울역쯤 오니 결혼식 시간이 다되가는데 ;; 그냥 확 서울역에서 내려서 빈둥거리다가 다섯시 약속을 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래도 오늘 식은 못봐도 나중에 결혼식 마치고 오셨을때 "저 갔었어요"라고 말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눈 질끈 감고 갔다. 환승역은 익숙한 창동역

창동역은 G언니의 가게에 가느라 몇번 간 적이 있었다. 역시나 처음 가보는 곳. 의정부행 열차를 기다리는데 어떤 할머니가 다가오신다. 저, 여기는 어딜 가는 전철을 타는 건가요? 우리의 친절한 웬디씨. 아, 네, 어디로 가시는데요? / 아, 난 00역을 가는데... / 아 그러세요? 잠시만요, 저도 이 동네가 익숙지 않아서요- / 나는 휴대폰을 꺼내 지하철 노선을 검색했다. / 아니, 요즘은 그런 것도 되요? / 아, 예 검색 기능이 들어있어요. / 그러나 할머니가 말하는 역은 휴대폰에 입력돼있지 않았다. 내 휴대폰이 만들어지고 난 뒤 새로 생긴 역인가보다. / 아, 제 휴대폰에는 나와 있지 않는데요, 아마 신규 개통된 역일 거에요, 여기서 저랑 같은 걸 타면 되실 것 같은데. / 어느 역까지 가는데? / 아, 저는 의정부까지 가요

아니, 그게, 나는 이쪽에서 타면 되거든요. 그러니까, 의정부, 덕소 방면은 이쪽인 것 같은데, 학생이 거기 서 있어서, 나는 거기는 어디 가는 열차를 타는 건가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어요 / 헉!!!!!! 나는 그러니까 반대편, 아무 열차도 오지 않는 곳,으로 추정되는 플랫폼에 서 있었던 것이다. 흑 이렇게 창피할 때가 ㅠ_ㅜ / 아......그렇네요... 감사합니다, 실은 제가 이동네를 잘 몰라서 (라고하지만 일주일 전에도 여기서 지하철을 타지 않았더냐 -_-) 덕분에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내가 지나치게 민망해하자 할머니는 아니라며, 그냥 그 쪽으로 지하철이 진짜 오는 건가 궁금했던 거라며, 내 어깨를 툭툭 치신다. 민망하고, 고맙고, 창피하고, 그런 상황 속에서 지하철이 온다. 의정부까지만 가는 열차라 할머니는 타지 못하고 나만 타고 갔다. 이런 건 미안하게도 조금 다행스럽다. 같은 칸에서 계속 민망하고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냥 아무일 없었다는 듯 다시 타인 속에 섞이게 될 테니까.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고 오리발을 내미는 심정으로 나는 의정부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다.



PS

1시간이나 늦은 결혼식에 나는 다행히 축의금을 낼 수 있었고 (돈세고 있는데 가서 냈다 -_-) 음식은 맛있었고, 불굴의 비굴한 의지로 폐백 마치고 인사 돌 때까지 기다렸다가 얼굴도장도 콕 찍고 왔다. 이렇게 뿌듯할 수가.



제가 이 글을 쓰며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한마디는 무엇일까요? 한 단어이고 주관식입니다. 맞히는 분께는 '웬디의 독심술상'을 드리며, 상품으로 편혜영의 사육장 쪽으로를 보내드립니다. 새 책은 아니구요, 5일쯤 전에 받아 오늘 다 읽은 헌책입니다 ^^



댓글(25)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순오기 2007-12-24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녀의 본심은?
태그의 마지막에 힌트를 얻어 '개근'!

라주미힌 2007-12-24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굴

바람돌이 2007-12-24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갔었어요 ㅎㅎ

푸하 2007-12-24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안 읽었어요.(답글 쓰고 읽어야지...^^) 그런데 한번 쓱 훑어보니 '불굴의 비굴한'이말이 눈에 들어오네요.^^; 거의 언어유희군요.^^;

Mephistopheles 2007-12-24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치겠군요.
아니면 결혼식가서 축의금 낸 것이 일종의 적금이라는 생각..??

웽스북스 2007-12-24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쿠, 이렇게 답이 안나오다니.... 이거 핵심을 파악하라는 것이 아니고, 본심을 파악하라는 건데, 너무 어려운 것 같은 분께 한마디 드리자면 살짝 회심의 미소를 짓던 순간이었달까요? ㅋㅋㅋㅋㅋㅋ

Mephistopheles 2007-12-24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망면피?

무스탕 2007-12-24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

의정부.. 멀지요.. ( ")

깐따삐야 2007-12-24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굴도장 아닐까??

웽스북스 2007-12-24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역시 저는 혼자 안드로메다에 살고 있는 걸까요? ㅋㅋ
제가 혼자 회심의 미소지은 순간을 아무도 캐치하지 못하시다니 ㅋㅋㅋ

정답은 12시쯤 발표해야겠다~ ㅋㅋㅋ

깐따삐야 2007-12-24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도전! '친절한'이 아닐까?? (왜케 집착하니...-_-)

Mephistopheles 2007-12-24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음식이 맛있었을 때

마늘빵 2007-12-24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움 나를 봐주세요, 가 핵심이에요. 이렇게해서라두 방문객 수를 찍고픈거야아아. 그쵸

웽스북스 2007-12-24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정답 발표하면 한대 맞겠다 -_-

깐따삐야 2007-12-24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학생' 아닐까?? (나 계속할거야 그냥!)

웽스북스 2007-12-24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
학생!!! 맞아요 나 민망한 가운데서도 '학생' 소리 듣고 회심의 미소 지었잖아요 ㅋㅋㅋㅋ 흐뭇 ^-^ 이 나이에 학생이라니 ㅋㅋ 역시 안드로메다 정신세계는 외계에서 오신 깐따삐야님 밖에 맞힐 분이 없나봐요

깐따삐야 2007-12-24 10:35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 웬디양님, 완죤 귀엽잖아욧! 무지 동안인가 보이.^^
근데 나도 간혹 그런 말 들으면 기분 좋더라구요. 나이 먹어간다는 반증이지 모.
퀴즈 대한민국 문제는 못 맞히면서 이런 건 잘 맞혀. 흐흐흐.

마늘빵 2007-12-24 11:39   좋아요 0 | URL
어! -_- 그런거였다니. 실망이여요. 어쩜 그럴 수 있어. 흙흙. (뭐가)

웽스북스 2007-12-24 12:01   좋아요 0 | URL
깐따삐야님 // 그르쵸 그르쵸, 나이 먹어가는 반증이죠- 제가 무지 동안이면 '학생' 한번에 화르르르르 기뻐하며 퀴즈까지 냈겠습니까. 아무래도 할머니께서 눈이 어두우셨나봐요. 사실 진짜 숨겨진 본심은 우리 깐따삐야님 주소와 전화번호를 따기 위해 낚는 거 아니었겠습니까. ㅋㅋ 주소와 전화번호 알려주세요. 저의 사랑스러운 글씨체도 보여드리죠 크크 (근데 여기 잘 뒤져보면 내 사진 있는데 ㅋㅋ 동안과는 거리가 멀어요~)

아프님 // 그러게요 뭐가요- 방문객 수를 찍고 싶어서,라는 불순한 의도로 해석하신 아프님이 더 너무해요 어쩜 그럴 수 있어 흙흙

깐따삐야 2007-12-24 14:00   좋아요 0 | URL
요기서 웬디양님 사진 본 적 있는데. 얼굴은 귀여운데 키는 크더라는.(키 크고 얼굴 귀여우면 안 되기라도 하냐? 아뇨.-_-)
암튼 연락처 따내는 것 까지 재치만땅인 우리 웬디양님! 흐흐. 고마워요. 즐거운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겠사와요.:)

2007-12-24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7-12-24 14:54   좋아요 0 | URL
아직 젊잖아요?? 이거참 서러워서..난 20대 초반부터 아저씨로 불렸다규우~~

웽스북스 2007-12-25 01:33   좋아요 0 | URL
ㅋㅋㅋ 오늘 아가씨 소리 또 들었어요 앗싸

프레이야 2007-12-24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힛, '학생'에서 뿅 갔군요, 웬디양 님.
하기야 아직 '아가씨' 이런 소리 들으면 뭔들 못해주겠수? ^^

웽스북스 2007-12-25 01:33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런 거 아니겠어요 ^^ 혜경님도 완전 동안이시던데요 뭘~
 



금요일 저녁엔 같이 밥먹어줄 사람 찾기가 어렵다. 아무리 야근 많은 회사라지만 금요일까지 야근하는 건 너무 우울하잖아. 갑작스런 업무 요청이 많은 광고실과는 달리 우리 실 사람들은 듀데이트가 정해진 업무를 많이 하는 편이라 금요일에 야근하지 않고 업무를 끝낼 수 있을 정도로 평일에 조정해 놓는 경우가 많다. 나도 금요일엔 거의 야근을 하지 않는다. 밖으로 떠돌지. 그런데 오늘은 일도 애매한 시간에 끝났고, 약속을 잡을 수도 없었다. 집에서 좀 할 게 있어 너무 늦게 들어올 수가 없었거든. 일이 끝난 시간은 7시 반 정도. 집에 가서 밥을 먹으면 너무 늦을 것 같고, 여기서 먹자니 혼자 먹기 좀 싫고, 샌드위치를 사먹으면 딱인데, 하필 점심 메뉴가 샌드위치였네.

그냥 집에 가야겠다, 라며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려는데 못보던 떡볶이가게가 생겼다. 갑자기 침이 스읍~ 고인다. 헤헤헤 떡볶이 먹고 가야지. "아저씨 떡볶이 1인분에 얼마에요" "2천원입니다" "그럼 떡볶이 반만 주시고, 오징어튀김 반 주셔서 2천원 어치 주시면 안되요?" 이걸 거절하는 주인은 거의 없다. 떡볶이도 먹고 튀김도 먹고싶은데 어쩌라고 ㅠ_ㅜ 떡볶이라는 것이 먹기 전에는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아도 먹다보면 또 달달한 맛에 은근 질려서 그렇게 2천원어치를 시켜도 다 못먹는 경우가 태반이다. 역시 이 아저씨도 주신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떡볶이 그리고 오징어튀김. 어라 근데 이 오징어 튀김을 '그냥 준다......' 아저씨 가위는 없나요? 라는 나의 물음에 매우 곤란해 하는 아저씨 아래 쪽으로 몸을 숙이고 한참이나 가위를 찾는다. 이내 민망해진 나는 '그, 그냥 먹을 게요' 라고 이야기한다. 아 가위없이 오징어튀김 먹는거 난감한데, 나보다 아저씨가 더 난감한 것 같았다.

사실 아저씨는 날 모르지만 난 아저씨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떡볶이를 달라고 말하는 순간. 아, 여기서 신발 팔던 아저씨구나. 노점에 예쁜 구두가 가끔 날 유혹할 때가 있어 그럴 때마다 서서 신발들을 구경하곤 했는데 언젠가 플랫슈즈가 너무 신고 싶던 날, 그 아저씨 노점에서 한참이나 골랐던 기억이 있다. 굉장히 친절하게 잘 찾아주셨는데, 내가 맘에 들어한 신발은 사이즈가 없어서 결국 그냥 왔던 기억. 그럴 수도 있는 건데, 나는 괜히 미안한 마음을 가졌었다. 사실 아저씨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 (그러니까, 내 눈에는 감우성, 남들 눈에는 김용만?) 로 생겨서 더 그랬는지도 몰라 ㅋㅋ

왠지 결혼한 지 5년쯤 되서 3살짜리 딸이 있을 것만 같은 아저씨. 안그래도 한참동안 그 자리가 비어 있어 지나면서 그만 두셨나, 생각했는데 업종을 바꾸셔서 짜잔, 하고 나타났나보다. 오늘이 첫날인가보다. 집게질이 서툴다. 그동안 떡볶이 만드는 걸 연습하셨을 것 같기도 하고 ㅋㅋ 떡볶이는 고추장 맛이 강해 매운 밀가루 떡볶이였다. 사실 처음에 좀 실망을 했는데, 아 이 중독성. 먹을수록 맛있다. 질퍽한 떡볶이 국물이 묻은 오징어 튀김을 먹는다. 오징어가 잘 안끊어져 처음엔 밀가루만 먹고, 다음엔 오징어만 먹고.

이러던 중 옆에 또 손님이 왔다. 떡볶이 2천원 어치, 튀김 2천원 어치를 먹는다. 나는 순간 불안해졌다. 아, 아저씨는 가위가 없는데, 손님은 두명이다. 떡볶이를 뜨고, 튀김을 다시 튀기는 아저씨를 보는 내가 더 불안하다. 떡볶이를 맛있게 먹는 손님들은 튀김이 나오자 당황한다. 어, 라고 하는 순간 나의 긴장은 한층 고조된다. 순간 아저씨가 말한다. "죄송합니다. 가위가 없어요" 다행히 손님들은 이해한다. 다행히 한 명은 튀김보다 떡볶이를 더 좋아했고, 한명은 떡볶이보다 튀김을 더 좋아했다. 그래도 그 둘이 튀김을 불편하게 먹을 때마다, 난 나의 불편함보다 그게 더 신경이 쓰인다. 저 아저씨는 얼마나 더했을까.

둘이 떡볶이를 거의 다 먹자, 아저씨가 접시를 달라고 하더니 다시 한가득 떡볶이를 주신다. 서비스에요. 둘은 입이 좋아서 입이 함지박만해진다. 괜히 나도 안심이 된다. 아저씨, 저런 수완도 있구나. 그리고 아직 떡볶이를 먹는 내게 묻는다. 더 드릴까요? 나도 그 서비스를 받고 싶지만 더 먹으면 남길 것 같아서 괜찮다고 말한다. 옆 손님 둘의 친구 두 명이 또 온다. 뭐야, 니들끼리 떡볶이 먼저 먹는거야? 응, 먹어봐 맛있어. 우리는 오뎅 먹을래, 나는 떡볶이. 어, 너네 근데 왜 튀김을 다 베어먹어놨냐? 응 내가 좀 그랬어 ㅋㅋ 아가씨 마음도 착하다. 가위 탓은 하지 않는다. 왁자지껄한 사이, 떡볶이가 또 다 떨어지고, 아저씨는 접시를 가져가 다시 한가득 담아준다. 가위 탓을 하지 않았던 게 고마워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우와, 무한 리필 떡볶이에요, 라며 아가씨들은 좋아하고, 덩달아 나도 같이 미소짓는다. 맛있게 떡볶이를 먹어주는 모습에 아저씨도 기쁜 듯 보인다. 아저씨가 표현하는 미안한 마음이 모두의 기쁨으로 변신뿅하는 순간. 나도 웬일로 이 떡볶이는 질리지 않는다. 당장 먹기에는 달달한 떡볶이가 맛있지만 두세개 먹다 보면 질려서 끝까지 먹어본 적은 없는데, 이 매콤한 고추장맛 떡볶이는 자꾸만 젓가락을 가게 하는 매력이 있다. 한접시를 깨끗이 싹 비웠다. 옆손님들은 계속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떡볶이를 먹고, 사람많은 금요일 거리의 이 떡볶이 가게에는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나는 기분좋게 이천원을 내고 지하철 역을 향해 갔다. 아저씨, 신발보다 떡볶이가 훨씬 많이 팔렸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내일은 꼭 가위 챙기세요! 가위가 없으면 떡을 듬뿍 챙기셔야겠어요, 그리고 오뎅 국물 맛있게 배우는 법은 꼭 부인에게 전수 받아 오세요! 라고 미처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마음으로 되뇌이며.


댓글(4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늘빵 2007-12-21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쓰읍. 빠알간 매운 떡볶이 먹고 싶잖아요. -_- 오징어 튀김도 대따 좋아하는데. 자꾸만 상상돼.

웽스북스 2007-12-21 22:27   좋아요 0 | URL
오징어튀김은 자고로 생오징어에 밀가루 얇게 발라서 바삭 바삭하게 튀겨야죠, 흐흐흐 또 상상되죠? ^^

춤추는인생. 2007-12-21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훈훈해요^^ 전 떡볶이는 입맛에 잘 안맞아 밖에서 잘 사먹지 못하고 집에서 해먹는 편이지만. 이런 아저씨의 떡볶이라면 얼마든지 맛있게 먹어드릴수 있을것 같은 마음이 들어요.
맵고 짜야해요 춤인생의 떡볶이란.ㅎㅎ

웽스북스 2007-12-21 22:31   좋아요 0 | URL
아 춤인생님, 떡볶이 전 제가 하면 맛없어서 못먹어요 ㅠ_ㅠ 춤인생님이 떡볶이 만드는 법 가르쳐주시면 저도 맵고 짠 떡볶이 맛있게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은데요 흐흐흣 (레시피를 공개하라!)

이매지 2007-12-21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요새 떡볶이에 묻힌 김말이 튀김이 너무 먹고 싶어요 -_ㅠ 아흑- 떡볶이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그 묻힌 튀김은 맛있는 ㅎㅎ

웽스북스 2007-12-21 22:59   좋아요 0 | URL
이매지님 강남역 놀러와요 (아 너무 먼가?) 이매지님한테 김말이 10개 사주고 싶은 급충동이 들었어요 ㅎㅎㅎ 그치만 난 오징어 ㅋㅋ

이매지 2007-12-21 23:14   좋아요 0 | URL
저 그러고보니 강남역에는 한 번도 안 가봤어요;
뭐 회사가 우글거리는 동네라 갈 일이 없기도 했지만 ㅎ

웽스북스 2007-12-21 23:32   좋아요 0 | URL
아 정말요? 사람만 많고 별거 없는 동네랍니다 아쥬 그냥 맨날 맨날 빨리 빠져나가고 싶은 동네 ㅋㅋㅋ 나 동생들 만나서 맛있는 거 사주고 이런거 좋아해요 흐흐흐 (시간나면 꼭 연락해요 ^^)

깐따삐야 2007-12-21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를 빼놓고 이렇게 맛난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뉘!
웬디양님이랑 떡볶이랑 튀김 앞에다 놓고 마구마구 수다 떨면 완죤 잼나겠어욤.^^

웽스북스 2007-12-21 23:34   좋아요 0 | URL
그래서 우리 어여쁜 깐따삐야님은 어디살아요? 막 부산, 대구, 이렇게 멀리 사는 거 아니죠? ㅋㅋㅋ

깐따삐야 2007-12-21 23:36   좋아요 0 | URL
서울이 아니라서 일단 아쉽네요. 진짜 막 속상할라 그래. 그래도 "어여쁜"이란 말에 눈이 반짝. 하지만 아쉬운 건 어쩌지 못한다는.-_-

웽스북스 2007-12-21 23:46   좋아요 0 | URL
흑흑 나도 서울은 아닌데, 그냥 수도권 정도 ㅜ_ㅜ
KTX가 다니나요 지하철이 다니나요 ㅠ-ㅠ

깐따삐야 2007-12-21 23:52   좋아요 0 | URL
그래도 머 사랑엔 국경도 없다는데 그까잇꺼 머 거리 쯤이야. 난 원거리 연애도 가능해욤.ㅋㅋㅋㅋ
난 충청도 츠자인데 언젠간 웬디양님이랑도 반갑게 상봉할 날이 있겠죠? :)

웽스북스 2007-12-21 23:59   좋아요 0 | URL
어머어머 충청도 츠자였구나, 좋아요 좋아요 ^^
멀지 않은 날, 반갑게 상봉할 그날을 기다려요 흐흐흐~
나는 대전은 많이 가봤는데 대전에서 내려본 적은 없어요 (기차타고 대전역만 지나가봤다는 거? ㅋㅋㅋ) 충청도는 가깝지만 참 멀게 느껴지는 곳 ^^ 깐따삐야님 덕에 한결 충청도가 정겨워졌어요 ㅋㅋ

2007-12-22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22 0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7-12-22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떡볶이 이야기 신나게 읽었는데, 충청도 츠자란 댓글에 헉~~ 나도 나도 충청도!! ^^

웽스북스 2007-12-22 00:53   좋아요 0 | URL
광주와 충청도, 제겐 둘다 낯선 동네 ^^

깐따삐야 2007-12-22 01:08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반가워요. 고향이 충청도시군요! 역시 충청도 츠자들이 쫌 착해.ㅋㅋㅋㅋ

웽스북스 2007-12-23 01:58   좋아요 0 | URL
아이고 어머니 저를 왜 충청도에서 낳지 않으신 건가요 ㅠ-ㅠ

Mephistopheles 2007-12-22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몇 줄을 읽으면서 으이구 연애 하세요 웬디양님..이랬다가 자연스럽게 떡볶기를 향한 식탐으로 앞의 말은 그냥 넘어가버렸습니다.ㅋㅋㅋ

웽스북스 2007-12-22 00:54   좋아요 0 | URL
헤헤헤헤 떡볶이 사주세요 메피님

깐따삐야 2007-12-22 01:07   좋아요 0 | URL
헤헤헤헤 저도 사주세요 메피님^^

Mephistopheles 2007-12-22 02:26   좋아요 0 | URL
애인들 만들어서 같이 오시면 떡볶기가 뭡니까 순대 오뎅이 뭡니까. 제가 떡 벌어지게 한 턱 낼께요..오호호호

푸하 2007-12-22 02:52   좋아요 0 | URL
메피님 저도 사주시면 감사히 먹을께요.^^;

웽스북스 2007-12-22 03:23   좋아요 0 | URL
흠. 푸하님과 함께 연기를 해볼까? ㅋㅋㅋㅋ
푸하님 떡볶이를 위해 잠시 영혼을 팔 수 있나요? ㅎㅎ

푸하 2007-12-22 03:39   좋아요 0 | URL
아니 연기를 하려면 시나리오를 감추셔야죠... 인제 얻어먹을 길이 막연해짐. 책임지셔요^^

무스탕 2007-12-22 10:59   좋아요 0 | URL
저도 애인 만들어서 델꼬가면 머 사주세요? +_+

웽스북스 2007-12-23 02:00   좋아요 0 | URL
제 사진은 보셨을테니, 이 분은 푸하님이 아닙니다,라고 하고 가면 되지요 (라고 하는 순간, 떡볶이 먹는 길은 영원히 사라져버린 것인가 ㅋㅋㅋ) 그리고 무스탕님, 흠, 그건, 쫌 ㅋㅋ +_+

다락방 2007-12-23 14:32   좋아요 0 | URL
저도 떡볶이 사주세요 메피스토님. ㅎㅎ

라주미힌 2007-12-22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떡볶이 먹고 왔는뎅... 순대볶음이랑... 둘 다 맛이 ㅡ..ㅡ;
냉동실에서 막 꺼내서 데운 듯 했음..
으흐. 그래도 다 먹었지요... 맛보다는 겨울의 흥취라고나 할까..

웽스북스 2007-12-22 03:23   좋아요 0 | URL
흐흐흐 또 이런날 길에서 떡볶이 한번 먹어주는, 그러면서
오뎅국물 호호 불며 먹어주는 맛이 있어야지요 ^^

푸하 2007-12-22 0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재밌게 쓰다니...
속에 이야기가 많은 츠자군요.^^;
저도 떡볶이 일인분을 딱 갈라 튀김과 섞어 먹어요.

웽스북스 2007-12-22 03:24   좋아요 0 | URL
이런걸 재밌게 보다니...
속에 떡볶이가 많은 총각이군요
떡볶이 취향도 비슷하고 ㅋㅋ

Mephistopheles 2007-12-22 09:40   좋아요 0 | URL
와 불붙는 듯한 이 느낌은 뭘까??=3=3=3=3

웽스북스 2007-12-23 02:01   좋아요 0 | URL
매운떡볶이를 먹으면 입에 불이붙지요 ㅋㅋ

무스탕 2007-12-22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아파트 단지는 금요일에 장이 서요. 어제 애들에게 순대를 먹이자! 결심을 하고 순대를 주문하는데 옆에서 지글지글 끓고 있는 가래떡 뚝뚝 끊은 떡볶이가 저를 유혹하더군요. 지금 입병이 나서 매운것에 쥐약인데 어찌까.. 하다 그냥 왔지요 -_-;;
웬디양님 페이퍼 보니 어제 놓친 떡볶이가 둥실둥실 떠다닙니다. 다음주엔 꼭 사먹어야지!!

웽스북스 2007-12-23 02:02   좋아요 0 | URL
가래떡 떡볶이, 표면적이 넓어 떡볶이 국물이 맛있게 스읍 스며들죠. 입병이 원망스러웠게겠네요 ㅠㅠ 다음주엔 꼭 사드세요 입병 꼭 나으시고요 ^^

마노아 2007-12-22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집 아래 층 방앗간에서 떡볶이를 파는데 2천원 어치는 너무 많고 게다가 지나치게 매워서 다 못 먹거든요. 그래서 어린이들 애용하는 '컵떡볶이' 500냥짜리를 애용하기로 했어요. 근데 민망해서 아무도 없을 때만 두 번 시켜봤어요. ㅋㅋㅋ

웽스북스 2007-12-23 02:02   좋아요 0 | URL
아 우리동네도 그런거 있음 좋겠네요 ㅋㅋ

2007-12-23 2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24 0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7-12-24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훈훈한 모습...보기 좋아요. ^ㅡ^

웽스북스 2007-12-25 01:32   좋아요 0 | URL
엘신님도, 주말에 훈훈한 일 하고 오셨잖아요 ^-^
 



1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그 때는 꼭 크리스마스 캐롤 테이프같은 게 하나씩 구비가 돼 있어야 했었나보다. 오히려 지금은 캐롤을 살 일이 없는데 그 때는 집집마다 캐롤 테이프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우리 집에는 만화 주제곡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인기를 얻던 똑순이 캐롤집이 있었다. 똑순이 김민희가 부른 캐롤이 있는 음반이었는데, 그 목소리가 어찌나 앙칼지고 또랑또랑하던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러던 언젠가 아빠가 우리집에 새바람을 불고 온 캐롤 음반을 사왔으니, 그건 영구 캐롤이었다. 심형래가 영구 없다 버전으로 부르는, 그 유명한 '달릴까, 말까'가 담겨 있던 음반. 나는 동생과 그 테이프를 돌려놓고 깔깔깔깔대며 테이프가 끝날 때까지 웃었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웃긴 버전의 노래는 두곡 정도였다는 거다. 달릴까, 말까, 이 곡이랑 산타할아버지 우리 마을에 오시네- '정말 오시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아 그게 어찌나 웃겼는지 한번 터진 웃음보는 심형래가 느끼진지버전으로 심각하게 고요한밤 거룩한밤 같은 캐롤들을 부를 때까지 이어졌다. 생각해보면 웃음이 웃음을 부른 거였지.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구르며 웃는 나와 동생. 내 웃음이 동생이 웃음을 부르고, 동생의 웃음이 내 웃음을 부르던 시간이었다. 그 이후로 웃고 싶을 때 그 음반을 틀었지만, 그날만큼 웃긴 적도, 웃은 적도 없었다.

2

가끔 옛날에 이 노래를 좋아했어,라고 말하는 건 옛날에 좋아했던 부끄러운 책 제목을 말하게 되는 일만큼 화끈거리기도 한다. G언니가 이문열을 가리켜, 부인하고만 싶은 첫사랑,이라 표현했던 마음과 비슷할런지도 모르겠다. 내가 저걸 좋아했던 걸 가능하면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는 마음. 실은 예전에 좋아했던 것 중에 또 그런 것들이 많다. 세월이 지나고 흐르니, 유치하게 느껴지는 것들. 그래서 꽁꽁 혼자만 알고 있는 것들. 물론 목록은 잘 기억도 안나거니와, 기억난다 해도 노코멘트

3

이것도 언젠가 부끄러워지게 될 지도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마냥 좋은 음반이 있으니 그건 자화상 1집. 대학교 1학년 때 기숙사에 함께 살던 우리는 토이와, 이승환과 자화상에 열광했었다. 컴퓨터로 음악 듣는 게 흔치 않던 시절, 음악 듣는 걸 좋아하던 C언니는 매 학기 힘들게 미니 컴포넌트를 택배로 날랐고, 우리는 덕분에 촉촉한 음악들을 매일 들을 수 있었다. 옆방 살던 W는 우리가 토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우리 방으로 와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그러나 공교롭게도 우리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노래를 틀어놓고는 두 소절 듣고 아~ 너무 좋아! 하고는 나갔다. 그럼 우리는 벙- 한 표정으로 그 노래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러면 끝나고 얼마 있다가 다시 와서는 어, 바뀌었네, 하면서 다시 틀어놓고 다시 두 소절 듣고 나갔다. 정말 특이한 녀석.

토이도 좋고 이승환도 좋고 자화상도 좋고, 그 때 비슷하게 다 좋아했지만 지금 자화상의 음반이 기억에 남는 건 일단 구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 때는 막 갑자기 이 음반이 듣고 싶어져 한곡씩 검색해서 듣기도 했다. 귀할 수록 더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인 것 같다. 

내인생의OST라는 태그를 보자마자 난 이 세가지가 떠올랐다. 음악만 듣고도 미친듯이 웃던 철없는 시절, 그리고 다같이 음악에 돌돌 말리던 시절에 듣던 다시 구할 수 없는 음악이 주는 아련함. 그리고 가끔 과거에 내가 좋아했던 사실을 부인하고 싶게 만드는 음악들. 모두 나름 내 인생의 OST가 되어주었는걸.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람돌이 2007-12-21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전에 우리집 애들한테 심형래버전 징글벨을 불러줬더니 자지러지던데요. ㅎㅎ

웽스북스 2007-12-21 09:09   좋아요 0 | URL
그게 애들 시절일 땐 기절하게 좋은가봐요
저도 진짜 자지러지게 웃었었거든요
기억력이 나쁜 제가 그날의 기억은 정말 생생하다니까요 ^^
그 이후로는 어떤 코믹 캐롤이 나와도 안웃었었답니다

Mephistopheles 2007-12-21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참...페이퍼의 노래들을 듣고 있자니..완벽한 세대차이를 느끼는 중....

웽스북스 2007-12-21 09:09   좋아요 0 | URL
메피님은 어떤 캐롤을 듣고 자라셨나요? ㅋㅋ

깐따삐야 2007-12-21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달릴까아~ 마알~까아~ 기억난다. 리듬에 맞춰 엄지손가락을 살풋살풋 뒤집어주시는 쎈쓰! ㅋㅋ
2 난 뭐 소풍 가서 '담다디' 부른 적도 있는데. 어릴 때 18번은 '비 내리는 영동교'였구.
3 자화상 '나의 고백' 이 노래 무지 좋아했었음! 나원주는 '별이 빛나는 밤에' 고정 게스트로도 나왔었는데. 정말 모락모락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뻬빠에욤. 나 오늘 또 못 자게 생겼군.-_-

웽스북스 2007-12-21 09:12   좋아요 0 | URL
1. 흐흐흐 역시 깐따삐야님도 그세대였지. 아, 우리 동갑이지 ㅋㅋ
2. 우리반 애들은 막 룰라춤 투투춤 이런 거 추고 그랬어요 (나는 몸치)
3. 내가 바로 여기 연결하고 싶던 그 노래가 나의 고백,이에요-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못했어요. 엄한 남의 블로그 연결해놓을 수도 없고. ㅠ_ㅠ 나도 그 때 별밤 들으면서 자랐었지요- ㅎㅎ 나 그 때 막 별밤에 퀴즈풀러 나가고 그랬었는데, 혹시 인식하지 못하는 새 깐따삐야님 내목소리를 들었을지도 몰라요 흐흐흐

깐따삐야 2007-12-21 19:14   좋아요 0 | URL
룰라, 투투. 키득키득. 기억난다. 김건모 춤도 한때 유행이었잖아요.
별밤 퀴즈 코너에 나왔었구나. 나 거의 꼬박꼬박 들었는데. 에펠탑이 미국에 있다고 말했던 여학생이 혹시 웬디양님은 아니겠져? ㅋㅋㅋ

마늘빵 2007-12-21 21:55   좋아요 0 | URL
또또또 둘이 신났어 신났어 (왜 둘이 신난게 못마땅한게냐!! -_- 글쎄다.)

웽스북스 2007-12-21 22:21   좋아요 0 | URL
깐따삐야님 // 홍홍 왜이래요 이래뵈도 나 우승 했었는데 (우옹~~~) 근데 에펠탑은 그럼, 영국에 있나요? ㅋ 런던에 있는 라인강 옆에? ㅋㅋㅋㅋㅋㅋ 김건모 유행해서 막 애들 김건모 바지, 이상한 할랑할랑한 바지 이런 거 입지 않았나요? 아 또 바지하니까 생각나는 건 소방차바지 ㅋㅋㅋ

아프님 // 글쎄, 왜 못마땅할까요 ㅋㅋㅋㅋㅋ 이런 투기쟁이. 투기는 내 전공인데 말이죠 ^^ (깐따삐야님 내 이름에 별표 두개 달았어요?)

깐따삐야 2007-12-21 23:25   좋아요 0 | URL
허걱! 우승? 대단허요. 그럼 목소리 들으면 기억 날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메멘토이므로. 어디 전화번호 불러바 불러바.
소방차 하니깐 또 우리 원관이 오빠 생각나네 그냥. 점프할 때 으찌나 귀여워 주시던지!
별표 달았지요. 원하면 색깔도 바꿔줄 수 있어.ㅋㅋㅋㅋ

웽스북스 2007-12-21 23:36   좋아요 0 | URL
그때 목소리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해요- 라디오가 찢어질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우승은 소 뒷걸음질치다가 쥐잡은 격이랄까. 나한테 진사람이 매우 쪽팔려했어요. 내가 중2였으니까 ㅋㅋ 홍록기가 진행하던 시절- 실력은 1%정도였던 것 같아요 ㅋㅋㅋ
그리고 별표로 충분해요 별두개 보고 어찌나 헤벌쭉 됐는지, 스스로 미쳤어 미쳤어 막 이랬다니까요 ㅋㅋ

깐따삐야 2007-12-21 23:40   좋아요 0 | URL
중2 때 우승했음 정말로 대단허요! 별밤 퀴즈 코너는 수준도 상당했는데. 똘똘한 건 알았지만 오훙~ 정말 멋지당~^^
담엔 달도 달아주구 해도 달아줄게욤. 흐흐.(고마해라 고마해-_-)

웽스북스 2007-12-21 23:47   좋아요 0 | URL
나 나가던 날은 문제 수준이 이상했는지 객관식은 오답에 오답을 거듭하다 맞히고, 내가 진짜 알았던 건 두세문제 막 이랬어요 다 찍어서 맞히고 ㅋㅋ 그 때 녹음해놓은 테이프를 잃어버린 게 진짜 다행이라니까요 아님 쪽팔려서 죽어버렸을거야 ㅋㅋ

깐따삐야 2007-12-22 01:10   좋아요 0 | URL
이론이론. 이쁘다 못해 겸손하기까지 해. 어쩜!
잃어버렸다는 건 우째 그짓말 같기도...( ..)

웽스북스 2007-12-22 03:2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제가 거짓말은 또 못하거든요-
정말 잃어버렸어요 ㅠㅠ

순오기 2007-12-23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깐따님 둘이 댓글놀이 하는거 보면 너무 즐거워용! ㅎㅎ
세대를 같이 간다는 건 이래서 좋구나!
나는 캐롤하면 초등6년때 담임선생님이 한글로 적어가며 가르쳐줬던 징글벨~~~
우린 30년만에 선생님 모시고 동창회하면서 이 노래를 불렀답니다.
아~~~~감동!!

웽스북스 2007-12-25 01:32   좋아요 0 | URL
아, 정말 멋진 장면이네요
겪은 일도 아니면서, 마치 영화의 한장면처럼 스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