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우리는 김훈의 소설이 문제적이라 했다. 김훈의 소설이 새삼 지금 이곳에서 문학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중요한 아이콘으로 부각되는 까닭은 그의 소설에 나타나는 바로 저 불가피의 감각과 인간의 동물성에 대한 안쓰러운 긍정이 포스트-IMF 시대 한국사회의 예민한 정치적 무의식의 성감대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그 무의식이란 물론 IMF 이후 개전의 여지가 없는 듯 더욱 강화되어가는 강고한 시장과 경쟁 씨스템 속에서 나날의 삶을 불안과 생존의 절박을 떠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조건에서 나오는 것이다. 거기에 있는 것은 삶을 압박하는 거대한 씨스템의 위력에 짓눌려 느끼는 불가피한 무력함이고, 이른 바 먹고 사는 것을 당장에 해결해야 할 지난한 과제로 맞닥뜨리는 데서 오는 불안과 비애이며, 살아남아야 한다는 비루한 생존 (혹은 성공)의 요구 밑에 다른 모든 가치를 종속시키는 정신적 빈곤의 자발적인 내면화다. 김훈의 소설이 건드리는 대중독자의 성감대는 바로 이 지점이다. 거대한 불가피 앞의 무력한 우울과 신음을 통절하게 그리는 동시에 그것을 유려하게 미학화하는 김훈의 소설은 독자들이 떠안고 있는 저 비루한 삶의 감각을 적절히 환기시키면서도 거기에 정신적, 미학적 품격을 부여해주는 것이 아닌가.

김훈의 소설이 갖는 호소력은 그렇게 대중이 겪는 자발적, 비자발적 굴욕의 현실감각을 적절히 환기해주는 데서 오는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거기에 너무 가까이 가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적 소재는 그 삶의 감각을 적절히 거리화하는 효과를 발휘하고, 하드보일드와 미려함, '사실'에 대한 산문적 집요와 한시적 여운이 모순적으로 공존하는 문체의 흡인력 또한 그것을 거들고 있다. 그럼으로써 결과적으로 김훈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어쩌면 거기에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지난한 생물학적 당위에 압도된 스스로의 비루한 삶에 대한 긍정의 위안과 속화된 보편주의-나만이 그렇 것이 아니라 고래로 인간이 원래 그런 존재라는-의 알리바이를 제공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물론 작가의 의도와는 별개로 일어나는 사건이지만 김훈 소설의 논리와 메씨지가 그와 전혀 무관한 것도 아니다. 특히 그와 관련해서 인간사의 지난한 사실의 세목들을 진지하게 대면하게 하는 김훈 소설의 미덕이 거꾸로 프레임에 의해 선택된 것일 수 밖에 없는 그 사실을 부당하게 특권화해 오히려 한층 더 복잡하고 다층적인 현실의 문제를 은폐하는 위험 또한 안고 있는 것이라는 점은 이 대목에서 덧붙여둘 수 있겠다.




창작과비평 가을호 '김훈소설이 묻는 것과 묻지 않는 것' - 김영찬

 

 

 


끄덕 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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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출근길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사서 선물로 받은 '비매품'
그의 산문집 읽Go 듣Go 달린다를 읽으며 기분이 좋아졌다 흐흐

그 첫 파트인 읽Go 에는 김연수가 여러 권의 책들을 읽으며 쓴 느낌들이 적혀 있는데
나는 이 파트를 읽으며, 이런 파트를 만들어봐야지, 하고 생각했다

책이 책을 부르다
그러니까 책에서 책을 소개하고 있는 문구들을 옮겨적어보는 것.
물론 마음에 드는 것만

나는 책을 읽으며, 그 책을 통해 다른 책을 소개받는 일을 좋아한다
작가란 대부분 작가 이전에 왕성한 독서가들일테니 ^^


아, 김연수 좋아! ^^


1. 브루클린 풍자극

폴 오스터의 주인공은 소설에서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책'을 만드는데, 낸 골딘의 작품을 들여다 보노라면 그 어리석음이 무엇인지 이해할 만하다. 그건 바로 타인의 삶 속으로 깊이 개입하지 않으려는 태도다. (중략)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거리를 따라 걸으며 "그 때까지 살아왔던 어느 누구 못지 않게 행복했다"고 생각한다.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에 첫번째 비행기가 충돌하기 딱 46분 전인 2001년 9월 11일 오전 여덟시의 일이다. 아무리 쿨한 삶을 살아간다 해도 하얀 구름처럼 쏟아져내리는 그 죽음과 재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소설은, 사진은, 시는 세상 모든 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른다. 본직적으로 예술은 그처럼 뜨겁기만 하다.

* 폴오스터의 책은 한 권 (공중곡예사) 이후로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었는데, 싫었다기보다는 너무 흔해보여서였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이유라니 하하! (실은 최근 알랭드보통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것도 비슷한 이유이니, 이런 호기가 또 어딨나 싶다)

2,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카잔차키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우게 되면 절대로 세상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 삶은 불가해하다느니 어쩌니 떠들어댈 수 없게 된다. 결국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 읽고 나면 당장 책을 집어 던지고 밖으로 뛰쳐나가 세상의 모든 것을 처음인 듯 바라보고 듣고 냄새맡게 만든다. 세상에 이런 책이 어디 있을까? 그런 점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는 한 번 읽고 나면 당분간 읽지 않아도 좋은 책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잔뜩 찌푸린 얼굴로 방에 틀어박혀 사는 게 지겹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 그 때가 바로 조르바를 다시 만나야 할 시간이다. 일단 첫 장만 넘기면 된다. 그 다음에는 낄낄거리며 읽고 나서는 책을 집어 던진 뒤 밖으로 뛰어나가게 된다.

* 조르바를 다시 만나야 할 시간인걸까? 하지만 난 절대 조르바같이 될 수 없다는 스스로의 한계를 너무 잘 알고 있음

3. 적과 흑 - 스탕달

속물적인 태도와 자존심이 그처럼 가깝다는 사실은 인간의 정신이 얼마나 오묘한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이 기나긴 소설에서 쥘리앵은 독자가 지루해할 틈도 주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지점까지 자신을 몰고 간다. 그건 속물적인 태도 때문이기도 하고 자존심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두 가지 상반된 마음이 공존하는 사람이기에 쥘리앵 소렐을 경멸할 사람은 이 세상에는 없다 (중략)
나는 쥘리앵 소렐, 드 레날 부인, 마틸드 등을 한없이 그리워한다. 그들은 권총을 가까운 곳에 놓고서는 호랑이와 친해지려고 했던 사람들이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는 책장을 덮은 뒤에 두고 두고 생각해볼 문제다. '불안에 대한 갈구'라고 스탕달은 이 책의 어딘가에 써 놓았다. 그래. 이 시대가 시시하게 된 것은 이제 불안을 갈구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내면적 안전보장의 시대. 다들 더 높이 오르려고 하기보다는 다만 전락하지 않으려는 시대. 쥘리앵 소렐이 21세기에 더 매력적인 까닭은 여기에 있다.

4. 아Q정전 - 루쉰

이번에는 아Q정전을 읽으면서 한 번도 웃지 않았다. 너무나 쓸쓸하고 외롭기만 했다. 혼자여서 그런 게 아니었다. 삶이 자신의 의지에서 한 번 벗어나기 시작하면 자기 얼굴이 꼭 다른 사람의 얼굴처럼 보일 때가 있다.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삶을 어떻게 짐작할 수 있을까? 머저리 아Q. 가끔 나는 처형 직전에 노래 하나를 끝까지 부르지 못한 아Q를 완전히 이해하기도 하고, 전혀 납득하지 못하기도 한다.



5. 소년의 눈물 - 서경식

서경식씨는 여기에 '나는 될 수 있으면 이 대목에 시선을 주지 않으려 애썼다'라고 썼다. 참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서경식씨는 왜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했던 대목을, 오랫동안 싫어했던 소설의 한 구절을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도 잊지 못하는 것일까? 소년들이 결국 인정해야만 하는 사실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리라.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만,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람만, 내 처지와 너무나 꼭같아서 차라리 혐오스럽던 책들만 오랫동안 자기 안에 살아남는다는 것. 올 봄에 도쿄에 갔을 때 누군가 서경식씨를 만나겠느냐고 내게 물었다. 만나보고도 싶지만 만나고 싶지 않은 마음도 든다고 대답했다. 서경식씨라면 보자마자 나를 소년 취급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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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2-08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는 나와 전혀 다른 남을 접할 수 있어 좋습니다.
특히 책 목록을 볼 때면 이런 책도 있구나 하지요.
대부분 처음 보는 책일지라도 여기 저기서 같은 제목을 보게 되면 어느 순간 익숙해지고
결국 나중에는 제가 직접 대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거든요.
좋은 책들과 좋은 시간 가지세요.
아침에 만나서 더 반갑네요.

웽스북스 2007-12-08 10:54   좋아요 0 | URL
이 책들을 소개한 책(읽고듣고달린다)은 비매품이어서 읽어보시라고 할 수가 없는 게 참 아쉬운 책이랍니다. 참 좋아요 이책 ^^

Hani 2007-12-08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다른 좋은 책을 소개받는 일은 즐거운 일이에요. 또 다른 블로거를 통해서 좋은 책들을 소개받는 일도 기분좋은 일이죠. 김연수 작가 아직 만나보지 못한 작가인데.. 만나보고 싶네요^^

웽스북스 2007-12-08 13:16   좋아요 0 | URL
충분히 만나볼 만한 작가에요 ^^ 저도 아직 3-4권 정도 밖에 읽지 못했지만, 그냥 시간을 두고 종종 만나고 싶은 생각이에요- 지금까지는 소설만 봤는데 이번에 저 책 보면서 산문도 괜찮겠다 싶어서 다음엔 산문을 읽어볼까 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

깐따삐야 2007-12-08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점 나이 먹을수록 고전이 이래서 고전이구나, 하게 되더라구요. '적과 흑'. 제게는 '폭풍의 언덕'만큼이나 재밌었던 소설입니당.^^

웽스북스 2007-12-09 01:23   좋아요 0 | URL
가끔은 어린시절, 뭣도모르던 시절에 읽었던 고전들이 좀 아깝게 느껴지기도 해요- 다시 읽어보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들. 물론 다시 읽겠다고 결심하기가 쉽지는 않지만요 ㅠ

stella.K 2007-12-10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김연수의 책을 사면 그 책을 끼워준단 말입니까? 확인 들어 갑니다. 후다닥!

웽스북스 2007-12-09 20:35   좋아요 0 | URL
아....어쩌나 이벤트 기간이 끝난 걸로 알고 있어요ㅠㅠ
http://larvatus.egloos.com/ 대신 이곳을 소개해드릴게요 ^^
 



성적표라, 알라딘이 자꾸만 나의 과거를 떠오르게 하네, 흐흐

대학에 들어가, 스스로 정한 두가지 소박한 목표가 있었다.

1. 3.0 밑으로 떨어지지 않기
2. F안맞기

남들은 4.0 넘고 막 이런 게 목표일 때, 나의 목표는 정말 너무나도 저렴해주신 관계로, 나는 저 목표를 매번 달성했다. 학보사 생활을 함께 병행했던 나는 자랑스레 학고를 맞았다고 하는 선배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학고가 열심히 신문사 생활을 했던 것의 반증이라는 양. 신문사 장학금은 2.0이 넘어야만 주어졌는데, 나는 신문사를 너무 열심히 하느라, 학고를 맞아 장학금도 못받았다,라는 호기가 은근한 자랑이던 시절. 나는 꿋꿋이 매학기 장학금을 타냈다.

첫학기, 풋풋한 마음으로 좋아하던 신문사 동기와 참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방학이 되고, 서로 집이 멀어 만날 수는 없었지만 거의 매일 통화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던 날들 중 언젠가 첫 성적표가 나왔고 우리는 서로의 학점을 공개했다. 우리의 학점은 딱 0.1점 차이. 하지만 그 친구는 2.95, 나는 3.05 으하하하하하! 같이놀고 비슷한 학점을 받았으나, 0.1 더받아서 나는 3점대다,라며 무지무지 뿌듯해 했던 기억. 대학시절 받았던 학점 중 저 하한선과 가장 가까운 학점이다. 3.05라니, 아슬아슬! 그 이후로는 거의 비슷한 학점을 받았던 것 같다. 4학년이 되어 신문사를 그만두기 전까지. 점점 올라가긴 했지만.

신문사를 그만두고, 나는 학생이고 싶었다. 그러니까, 공부만 한 번 해보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4학년 1학기 때, 굉장히 많은 과목을 수강했다. (실은 학점을 적게 들었던 관계로 이래야 졸업이 가능했다 ㅋ) 전공 수업을 다섯개쯤 들었고, 진짜 교양도 좀 들었고, 언정(우리학부-언론정보문화학부)애들이 와서 맨날 죽쑤면서 꿋꿋이 와서 듣는다고 놀려대던 경경 애들이 재수없어서 마케팅 수업도 교양으로 들었다. 그래서 온전히 학생으로 한 학기를 보냈다. 남들 다 하는 취업 준비도 1년 내내 거의 안했다. 대책 없어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내가 학생일 수 있는 그 마지막 1년을 빡빡하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덕분에 취업이 좀 늦어지긴 했지만- 다시 그 때로 돌아간대도, 나는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4학년 1학기 성적표는 경이로웠다. 태어나서 그런 성적표는 받아본 적도 없었다. 4.5/4.5 게다가 경경 애들이 놀려대던 그 마케팅 수업은 1등이었다. (우리학부는 등수를 알려주는 수업이 없는데 경경 수업은 등수도 알려주는 게 좀 신기하긴 했다) 아무도 나의 비장한 각오를 몰라주긴 했지만, 그냥 나는 혼자 통쾌했다. 우리 학부 무시하기만 해봐라, 흥! 

그런데 사람들이 참 간사한 것이, 2학기가 되니 사람들이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같이하자고 몰려든다. 학교에는 또 막 이상한 소문이 돈다. 쟤가 엄청 똑똑한 애였다더라, 막 이런 거. 실은 그래봤자 내 총 평점은 3.7을 겨우 넘는 수준임에도 말이다. 그래도, 나도 간사하니까- 그런 것쯤은 살짝 이용해줬다. 이제와 밝히는거지만 사실 운이 좋았다. 내가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봤자. 늦잠자느라 수업 빠지고 이런 것들은 해결이 안되는데, 같은 수업 듣는 친구가 노트필기를 워낙 꼼꼼히 하는 애라, 걔한테 다 배우고 시험을 봤는데 턱걸이로 A+ 나온 과목들이 몇개 있었다.

아, 쓰다보니 좀 재수가 없어지긴 했는데 더 재수없어지기 전에 두번째 목표 이야기로.

두번째 목표는 F 안맞기였는데, 이 목표를 향한 나의 행보는 매우 처절했다. 하하하 ㅠㅠ

2학년 1학기 때 비주얼베이직 수업을 듣는데 이게 1교시였던 데다가, 프로그래밍은 워낙 잼병이라 이 수업이 F의 위기에 놓였다. 같이 듣던 신문사 동기 H양은 이 수업을 포기하고 F를 맞았다. 하지만 난 성젹표에서 도무지 F라는 글자를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여, 수없이 많이 지각을 하고, 뭔지 하나도 모르면서도 수업과 시험은 꼭 가려고 노력했다. 그리하여 난 처절하게 이 과목에서 D+을 맞았다. 그리고 다음학기 바로 재수강.

2학년 2학기 때 성경의 이해 수업을 듣는데, 꼭 졸리거나 햇볕이 쨍쨍한 시간, 공부 죽어도 하기 싫은 시간이 이 수업 시간이어서, 나는 결석을 좀 많이 했다. 나와 함께 수업을 듣던 아까 그 H양은 역시 포기하고 F를 맞았다. 하지만 나는 또 성적표에서 도무지 F와 조우할 자신이 없었다. 하여 기말고사의 순간, H양은 가지 않았고, 나는 백지를 내는 한이 있어도 갔다. 이 수업은 한학기에 4권의 서평을 내야 하는 수업이었는데, 나는 황금같은 기말고사 기간에 책 4권을 한꺼번에 읽고 서평을 쓰느라 거의 좀비가 됐다. 그래도 난 꿋꿋이 4권의 서평을 다 내고 D를 맞았다. 사람들은 도무지 나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여전히 나의 선택에 후회가 없다. F는 안맞았으니까. 물론 4학년 2학기 때 H양과 함께 나란히 재수강.

그 때 F를 맞고 다른 과목에 주력했다면 성적이 더 높지 않았을까 싶긴 하다. 어차피 재수강할 거. 하지만 난 아까와 마찬가지로 이것도 역시, 다시 학교로 돌아가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을 거다. 그래도 난 4년 내내 F가 없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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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12-08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F는 없지만 D 맞아도 재수강은 안 했어요. 난 최선을 다했고 결과가 안 좋았던 것뿐이라며 배짱 부렸던... 졸업하고 후회가 되던걸요. 학점 관리 좀 더 해줄걸...하고요. 뭐, 어쩌면 지금 다시 그렇게 하라고 해도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지만요^^

웽스북스 2007-12-08 00:37   좋아요 0 | URL
근데 둘다 재수강하면서 너무 재밌었어요- 비주얼베이직은 다시 들으면서 그나마 프로그래밍이 뭔지 프로세스 정도라도 알게 되서, 지금 일하는데 도움이 살짝, 매우 살짝 되요- 그니까, 개발자 앞에서 원리 정도는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랄까요 ㅋㅋ 물론 개발자 입장에서는 우스울지도 몰라요- 성경의 이해 수업은 4학년 2학기 때 다시 들으면서 진정 행복했던 수업이라지요- 저녁시간에 들었던 수업인데 뉘엿뉘엿 해지는 길을 걸어 수업들으러 가던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답니다. 유일하게 재수강한 게 저 두과목이에요 ^^

깐따삐야 2007-12-08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교적 고루고루 들으셨당. 저는 거의 인문학 쪽으로 쏠려 있었는데. 물론 그 때 그 시간으로 돌아가도 또 다시 그럴 것 같긴 하지만요. 그리고 웬디양님 화끈하신 데가 있군요.^^

웽스북스 2007-12-08 00:39   좋아요 0 | URL
전산쪽은 의무였어요 12학점. 제가 듣고 싶어서 들은 게 아니라는 사건. 마케팅은 오기로 들었고 ㅋㅋ 저도 선택의 자유가 있다면 인문학 쪽 수업을 더 많이 들었을 것 같아요= 지금 주어진다면 더더욱 그렇구요-
그나저나 이렇게 소심하면서 화끈하기도 쉽지 않죠, 그래도 전 F가 없습니다 하하하하하 ㅋㅋㅋㅋ

마늘빵 2007-12-08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F도 없고 D도 없지만 총학점은 높지 않다는. 고만고만하게 다녔다는 이야기. 그치만 학점은 낮은데 졸업등수는 3등이었다는. 이로부터 추측가능한 결론, 교수님들이 학점을 짜게 줬다. -_- 내 학점으로 3등을 하다니.

웽스북스 2007-12-08 00:42   좋아요 0 | URL
아니 아프님 D도 한번 안맞아봤단 말이에요? 이거이거 대학생활 헛하신거 아니에요? 막 이러고 ㅋㅋ
전 먼저 졸업한 친구가 우등상을 받아서 대학교도 우등상을 준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이 먼저 졸업한 친구는 쿨함을 지향하는 C양, 이 한정된 인간관계 ㅋㅋ) 미리 알았으면 나도 공부 열심히 했을텐데, 막 이랬다지요 ㅋㅋㅋ 졸업식에 가기 싫어서 다른 친구한테 너 1등해서 앞에나가서 우등상 받으면 갈게,라고 했는데, 그 친구 진짜 1등해버려서 졸업식에 결국 가족 다 끌고 갔던 슬픈 추억도 ㅠ_ㅠ 아프님도 3등이면 우등상 받으셨겠네요 ^^ 부럽다, 나 꼭 받아보고 싶었는데 ㅋㅋㅋ

마늘빵 2007-12-08 00:53   좋아요 0 | URL
우등상 그런건 안주던데... -_- 전 몰랐어요. 제가 3등이었는지. 나중에 성적증명서 보고 알았어요. 25명중 3등. 워낙에 철학과는 인원이 적은데 졸업인원은 더 적어서. 근데 어떻게 내 학점이 3등이야. -_- 교수님들 너무해 막 요러고.

웽스북스 2007-12-08 01:04   좋아요 0 | URL
우등상 아무도 안줬어요? 아니면 1등만 줬나? 우리학교만 우등상이 있었나? 근데 자꾸 그렇게 말씀하시니 성적이 살짜쿵 궁금해지는데요? 흐흐흐흐

순오기 2007-12-08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설문에선가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것 순위를 물었는데, 10대부터 60대까지 모두 1순위는 '공부를 열심히 할 걸!'이었다는군요. 결과야 어쨋든 나름대로 열심히 했으면 자존심 팍~ 서는 일 아닌가요? 난, 대학원 갈려고 C는 봐줘도 D는 절대 용서못해...이랬는데, 아직도 대학원은 문턱에도 못갔다는...ㅠㅠ

웽스북스 2007-12-08 00:45   좋아요 0 | URL
전 공부를 열심히할 걸!이 아닙니다 ㅋㅋㅋㅋ 공부엔 이제 별 미련이 없습니다. 다만 그 외 다른 것들에 열심을 내지 못한 게 좀 후회되긴 해요.
순오기님은 대학원에서 뭘 공부하고 싶으셨는지, 궁금하네요 ^^ 얼마전에 탔던 택시기사아저씨 부인은 나이 50에 지금 또 대학에 가셔서 열심히 공부하신다던데, 순오기님도 화이링이에요! ^^

라주미힌 2007-12-08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런 우등생들... 내가 못 볼 것을 보았도다...
b 맞은거 재수강해서 d 맞고 열받아서 삼수강 해서 간신히 C 맞은 아름다운 추억이 있죠 ㅡ.ㅡ;
그것도 1학년과목... 상대평가로 바뀌는 바람에.. 1학년들이 취업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하는 줄 몰랐음...

웽스북스 2007-12-08 01:10   좋아요 0 | URL
아 요즘 대학생들 정말 열심히 하긴 하더라고요- 전 B맞은 거 재수강하는 사실 자체를 증오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말이죠, 그러니까 라주미힌님은 B맞은 걸 재수강하는 수준의 학점이셨단 말이죠? 전 그랬음 학교 3년은 더 다녔을 거에요 ㅋㅋ (자랑이다~)

라주미힌 2007-12-08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가 별로 없어서 ...
1학년 과목이라 만만했거든요.. (아.. 이런것도 해명 해야되다니 ㅠㅠ)

웽스북스 2007-12-08 02:03   좋아요 0 | URL
푸흐흐흐 그만 웃어버린 사건! ^^

Mephistopheles 2007-12-08 0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쯤에서...
신나게 놀고 마시고 자화자 하면서 졸업시 평균 3.8 받은 이가 댓글 남기고 갑니다.

웽스북스 2007-12-08 10:27   좋아요 0 | URL
어라, 메피님 그런 분이셨군요 -_- 쳇

비로그인 2007-12-08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눈에는 열심히 공부하던 우리 과 한 친구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제 대학시절은 님과 찜닭과 캡틴을 함께 했던 H양과 흡사하구요.
혹시 내 친구 ㅇㅇ아니세요?

웽스북스 2007-12-08 10:27   좋아요 0 | URL
하하 그럼 승연이 본명이 아니어야하는데 말이지요 ㅎㅎ

잉크냄새 2007-12-08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공대출신이면서 1학년 물리학을 F 받았죠. 놀고 먹은 1학기 중간고사 15점, 빡세게 공부한 기말고사 15점...4학년 재수강시 석양의 무법자 동기와 정말 열심히 해서 6년 후배들을 제치고 2등으로 교과를 마칠시 물리학 교수가 교실에서 일으켜세워 칭찬을 해줬는데,이거 칭찬이 아니라 왠지 무덤을 손수 파주시는 아름다운 마음이라고 밖에 생각할수가 없더군요. 너거들 빵구내고 저렇게 다시 할래?

웽스북스 2007-12-08 11:57   좋아요 0 | URL
아 이거야말로 이건 칭찬도 아니고 욕도 아니야의 오묘한 경지에 서 있는 그래서 기뻐해야할지도 슬퍼해야할지도 모르겠는 경계에서 몸둘바를 모르겠는 그 사건이시군요- 그럼 1등은 그 동기였나요?

다락방 2007-12-08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이 밑에 댓글달면 안되는 1人 이로군요. 이로서 웬디양님과 제 관계는 아주 멀어져버렸어요.

저는 학고도 먹었고, F는 달고 살았고, F가 안나오면 D였고,A는 받아본적도 없고, 친구에게 "만점은 3점이지?"라고 물었던 그런 학생이었거든요. 전공 교수님은 "오늘 다락방 나왔으니 출석은 안부른다" 고 말씀까지 하셨던. orz
애들은 수업끝나고 만화방에 있는 절 찾으러 오곤했죠.

네, 전 이런사람이예요. 흑 ㅜㅡ

웽스북스 2007-12-09 01:22   좋아요 0 | URL
아 다락방님
무지 매력적인 학생이셨군요-
전 이런 친구들 굉장히 좋아했었답니다

F가 없는 건 제가 유능해서가 아니라 소심해서였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내가 지나치게 순진했다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난 아무리 그래도, 당연히 명백한 증거가 눈앞에 있는 한, 진실이 승리할 거라고 생각했다



네이버가 이렇게 협의가 쉬운 매체였나?

물론 지면이야 미리 부킹돼있었을테니, 소재교체를 하는 정도였겠지만
검찰 발표 나고 몇시간 채 지나지 않아
네이버 메인 면에 이런 광고가 뜨다니,
이건 미리 제작해놓지 않고서는 불가한 일이랄 수 밖에

게다가 랜딩페이지는 더더욱 가관
아무리 그래도 공식 유알엘이 BBK 즐이 뭡니까
당신이 만들어, 나름의 꿈을 담았던 회사를



나 인생 그렇게 살아온 사람 아닙니다!!!! 라는 절규가 메아리친다
자기가 걸어온 걸음, 자기 인생, 자기 자신을 부정해가면서까지
그렇게 자기 자신을 버리고 대통령이 되고 싶나보다

아무리 그래도, 난 저런 조악하고 저급한 사이트를 나의 선거캠프로 쓰고 싶지 않을텐데....
그런것도 뭣도 없나보다, 그냥 대통령만 되면 그만인가보다
정말 저 얼굴을 뉴스에서, 신문에서, 대통령이라는 이름으로 봐야 하는 거야?


너무 뻔한 결과였나보다, 나만 순진하게 믿고
검찰 발표가 나면 뭔가 판세가 뒤바뀔 거라고 생각했나보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고
이렇게 미리 조악한 사이트와 저급한 배너를 만들어놓고 있는 줄도 모르고

너무나 사실이 명백했기에
내가 두려워했던 건 검찰이 사실을 덮는 게 아니라 (그럴 확률 거의 없다고 생각했음)
국민들이 그 사실이 명백히 밝혀진 이후에도 이명박을 뽑을 것 같다는 사실이었다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고 믿는 국민들이니까
그런데, 사실자체가 차단이 돼버린 상황이구나, 미처 몰랐구나,


정신차리고 공부하세요 아가씨!




어제 4시경, 네이버 메인면 배너를 보다가
눈을 의심한 웬디의 반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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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12-08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설문조사 하나.
이명박 후보가 도덕적으로 부도덕하다라는 설문은 월등히 그렇다 가 높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최고라는 것은 무얼 이야기하는 걸까요??
재미있는 대한민국이라니까요.^^

웽스북스 2007-12-08 00:15   좋아요 0 | URL
재미있는 주변조사 하나
제 주변에는 이명박을 뽑겠다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S군도 회심한 상태구요. 믿을 수는 없지만 ㅋㅋ 그렇다면 그 많은 이명박 지지자들은 다 어딨을까요?
정말 재미있는 대한민국입니다.
 


그러고보니 밤,참- 말,참 예쁘다

대학시절 4년을 기숙사에서 보낸 나는 다양한 야식 문화와 함께 했는데, 대략
전자렌지라면 - 탕수육 - 치킨 - 찜닭 - 그 이후로는 다양!

뭐 이정도라 할 수 있다. 가스렌지가 없던 그 때, 누구나 책상 위에 전자렌지용 라면 용기 하나쯤을 가지고 있었으며, 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4분 30초간 돌리면 되는 전자렌지 라면은 최고의 인기 야식이자 식사대용품이었다. 여름에는 비빔면도 인기 최고. 나는 한동안 집에 와서도 전자렌지에 라면 끓여먹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그 중 단연 인기 품목은 짜파구리였는데, 이건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2:1의 비율로 섞었을 때 최고의 맛이 난다. 그러니까 3명은 모여야 먹을 수 있단 얘기. 남자는 두명도 가능하겠다. 짜파게티의 느끼함을 너구리의 개운함이 싹 감싸주는 맛이랄까. 가끔 우리 집에 놀러오는 애들이나 모임, 엠티 등에서, 할 줄 아는 유일한 요리는 라면과 계란후라이이며, 할 줄 아는 유일한 특별 요리는 짜파구리뿐인 나는 이 음식을 몇번 해줬다. (해줬다고 하기도 민망하군) 내가 또 짜파게티 물 하나는 잘맞춘다 흐흐흐- 학교를 휴학하고 라면 전문 N사 계열 광고대행사에서 인턴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직원 아이디어를 낼 때 낼 게 없어서 끄적끄적 이걸 낸 적이 있다. 이걸 미니홈피 다이어리에 올렸던 걸 누가 봤는지 학교에 소문이 잘못 돌아 나는 복학 후에 스쿨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후배에게 이런 말도 들었다.

"어, 언니 저는 언니가 학교 졸업하고 N사 들어가서 짜파구리 개발중이라고 들었었는데- 지금 왜 학교에 계시는 거에요? "

아, 도대체 이런 소문은 어디서, 왜 났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짜파구리 사랑은 대단했지. 하지만 귀찮아서 잘 안끓여먹은지 2년도 넘었다.

우리학교는 산속에 있어서 가장 가까운 중국집이 차로 20분 가량 걸리는 곳에 있었다. (물론 더 가까운 바닷가 중국집이 있었지만 배달이 안됐으므로 패스) 자장면이나 짬뽕은 불어서 시킬 수가 없었고, 대신 탕수육을 그렇게 자주 시켜먹었었는데, 이 중국집은 우리 학교에 탕수육 팔아서 건물을 지은 중국집이라는 거! -_- 하지만 이건 치킨의 시대가 오기 전의 일이다

바야흐로 뼈 없는 닭의 시대가 오고, 학교 주변은 치킨집의 춘추전국 시대를 이뤘는데, 원조 뼈없는 닭인 '살로만 치킨' 닭의 양은 비슷하나 껍데기가 두꺼워 수북히 담겨와 남학생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캡틴', 그리고 상대적으로 얇고 깔끔한 밀가루 껍데기와 좋은 기름에 튀겨 깔끔함을 추구하던 여성들을 공략했던 '회나무'까지(그래도 지가 치킨이지) 이 정도가 대표선수 되시겠다. 우리는 모두, 우리 부모님께 학교 앞에서 닭장사를 하게 해야 한다고 우겨댔으며,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하룻밤에 희생되는 닭의 양이 몇마리인지를 헤아려보기도 했다. 여기서 깜짝퀴즈, 결국 끝까지 살아남은 치킨은 저 세 업체 중 어디일까요?

그리고 찜닭의 시대가 왔다. 찜닭의 시대가 오면서 탕수육은 사양산업으로 접어들었고, 치킨과 찜닭 양립 시대가 왔다. 우리 학교 근처에 있던 처가 찜닭과 같은 맛의 찜닭을 나는 서울 어디에서도 먹어본 적이 없다. 간장국물이 아닌, 매운 국물, 풍성한 당면. 일단 오면 일회용기를 한번 뒤집어 바닥에 대고 빙빙 돌려 양념이 골고루 묻게 한 다음 함께 온 부추전과 먹으면, 그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결국 긴장한 대학관 사모님께서는 안동까지 가셔서 찜닭 만드는 기술을 전수받아 오셨고, 자극적인 처가 찜닭을 먹기 힘들어하던 학생들은 간장 소스의 대학관 찜닭을 선호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의 첫번째 찜닭은 매콤한 처가찜닭. 친구들과 함께 찜닭먹는 일주일에 한번 찜닭 먹는 날도 정해놓았었고,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서 친구랑 둘이 찜닭을 시켜서 꾸역꾸역 먹다가 토할뻔하고 -_- 내 다시는 찜닭을 먹지 않으리라 다짐하고는 돌아서서 또 찜닭을 시켜먹었던 기억도 있다. 이제 학교 근처에도 처가 찜닭은 없다고 한다. 신촌 어딘가로 이사해 찜닭집을 내셨다는데, 한 번도 찾아가본 적은 없다.

참 배고팠던 때였다. 일단 하루세끼 학교밥을 먹을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으니, 지치고, 힘들었고, 어떤 때는 메뉴만 보고 돌아서서 온 적도 있었다. 그런 날, 저 밤참들은 내가 참말 고마운 존재들이었다. 입새에 일던 찜닭에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던 그 기억이 지금까지도 먹을 걸 보면 일단 축적해두고 봐야 한다고 믿는 구차하게 먹을 것에나 집착하는 나 자신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또 참 먹을 것 귀하게 여기기가 쉽지 않던 이 21세기에 음식 귀한 줄 알고 자랐던 게 다행스럽다 싶기도 하다. (이런 초합리화!)

지금은 돈도 벌고, 거주 환경도 바뀌었으니, 예전보다 맛있는 걸 많이 먹게 되면서 조금씩 입맛이 까탈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워낙 막 먹고 자라서, 아무거나 다 맛있긴 하지만, 가끔씩 음식 앞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내 모습 뒤로, 저 정크푸드들을 먹으며 행복해 했던 나의 대학시절이 스친다. 어쩌면 신촌에 있다는 그 처가찜닭을 다시 찾아가지 않고 있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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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4년전 일기를 읽다가 기절
    from 지극히 개인적인 2007-12-07 00:57 
    나는 매일 12시가 넘으면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투데이 히스토리를 눌러 1년전 오늘, 2년전 오늘, 3년전 오늘, 4년전 오늘....... 의 일기를 쭉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 그럴 때마다 가끔 놀랄 정도로 현재의 삶과 일치한다던가, 혹은 현재 했던 생각을 그 때도 했던 것들에 놀라는데, 오늘 밤참 관련 페이퍼를 쓰고 투데이 히스토리를 눌렀다가 난 그만 웃어버렸다 드디어 성공했다 캡틴 둘이 먹기에 이은 찜닭 둘이
 
 
깐따삐야 2007-12-06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씩 알라딘은 잔인해욧. 이 시간에 이런 페이퍼라니.-_-

웽스북스 2007-12-07 00:01   좋아요 0 | URL
그런 의미에서, 깐따삐야 별의 야식을 소개해주시죠? ㅎㅎ

마늘빵 2007-12-07 00:07   좋아요 0 | URL
나는 닭을 싫어하므로 무감정. -_-

깐따삐야 2007-12-07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는 이야기 시작하면 내 흥에 내가 빠져서리 밤을 꼴딱 새워야 할지도 모르는데. 자극시키지 마세욤.ㅋㅋ

웽스북스 2007-12-07 00:06   좋아요 0 | URL
흑, 저도 이 밤에 자극되면 안되는데, 이상하게 기대가되네 ㅋㅋ

마늘빵 2007-12-07 00:08   좋아요 0 | URL
어서 두 분 다 라면을...! 하나씩 끓여서 사진 찍어 올리세요. 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맛있는 라면 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맛있는 라면 (둘리 노래)

웽스북스 2007-12-07 00:19   좋아요 0 | URL
어, 나 그노래 디게 좋아하는데
라면이 있기에 세상 살맛나
하지만 라면은 맛좋은 라면은 구멍뚫린 구공탄에 끓여야 제맛
(까루까루고추까루~)

푸하 2007-12-07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계신거 같아요. 그 이야기를 선명하게 드러내시는 데, 묘사와 서사의 능력이 있으셔서 그런 듯해요.
짜파구리... 두 가지 스프의 결합입가요? 상상만해도...!!! 네요.^^;

웽스북스 2007-12-07 00:21   좋아요 0 | URL
!!!! 라니요, 정말 맛있는데 흐~
묘사와 서사의 능력은 없는데, 순전히 먹는 얘기라 그래요 ㅋㅋ

Mephistopheles 2007-12-07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살아남은 뼈없는 닭집은 살로만치킨 같아요..
찜닭...전 찜닭을 먹으면서 몇번 불쾌했던 기분이 들었었죠.
이건 찜닭을 가장한 당면닭이였으니까요..

웽스북스 2007-12-07 01:00   좋아요 0 | URL
전 닭도 닭이지만 당면이랑 감자도 좋아해서
당면이 많은 게 불만이었던 적은 별로 없었어요-
애가 가끔 심하게 불어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긴 하지만 ㅋㅋ

살아남은 치킨집은 나중에 발표할게요

프레이야 2007-12-07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웬디양님 대문사진 넘 예뻐요.
저 어제 밤참으로 군고구마랑 잉어빵 먹었어요.ㅎㅎ

웽스북스 2007-12-07 13:20   좋아요 0 | URL
흐흐 대문 사진은 아는 분께서 제가 생각나는 사진이라며 선물해주셨답니다 (엄훠! ㅋㅋ) 저도 매우매우 좋아라하는 사진이에요~ 그니까 제가 꽃을 닮은 건 아니구요, 뭐 그냥 다양한 뭐, 에잇 ㅋㅋ

네꼬 2007-12-07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안녕하세요? 네꼽니다. (꾸벅)
글 읽기 전에 사진이 먼저 눈을 빼앗았어요. 마음이 화사해집니다.
배고픈 글인데 그것보다도..... 전, "초합리화" 이런 얘기에 늘 마음을 빼앗겨요. *_*

웽스북스 2007-12-07 13:20   좋아요 0 | URL
네꼬님 찌찌뽕! 저도 오늘 네꼬님 서재가서 즐겨찾기 추가하고 왔는데
네꼬님도 ㅋㅋ
기념으로 '초합리화' 단어 사용을 허하노라~

비로그인 2007-12-07 13:32   좋아요 0 | URL
저는 네꼽니다를 배꼽입니다로 읽었어요.

웽스북스 2007-12-07 19:34   좋아요 0 | URL
네꼽니다
배꼽입니다
백곰입니다

흐흐흐 (죄송합니다)

비로그인 2007-12-07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는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즐겁죠.
특히 입안이요.

웽스북스 2007-12-07 19:35   좋아요 0 | URL
흐흐 읽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시다니
대단한 정신력의 소유자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