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를 보면서 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참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즈에 걸린 딸과 치매걸린 할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미혼모에, 여자친구를 자신이 고치지 못하는 병으로 먼저 보낸 남자라니. 이렇게 지독한 설정이 또 어디 있담. 꽤나 신파스러운 드라마 하나 만났구나. 이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콧물 남아나지 않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계속 드라마를 봤다
그런데 이 드라마, 지독한 속에서 따뜻함을 끌어낸다. 분명 신파 분위기였는데, 보통 지독한 설정이 아니었는데, 그 속에서 끈끈하고 따뜻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정을 이야기한다. 그러한 가운데 고마워 할 줄 아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물론 이 드라마가 사람을 한없이 착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존재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봄이가 에이즈라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마을 사람들이 보인 이기심은 참 무섭다. 그러나 그 무서움이 새삼 놀라웠던 건 아니다. 어쩌면 그 이기심이 무서웠던 건 나에게도 숨겨져 있을지 모르는 모습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감히 나는 그러지 않았을 거야, 라고 말할 수 없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내가.
하지만 영신의 따스함은 이 모든 마음들을 녹인다. 그 마음이 녹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리긴 했고, 그 가운데 수없이 슬퍼하고, 눈물 흘리긴 했지만, 종국에는 마을 사람들을 녹였고, 나를 녹였고, 이기적이고 사랑할 줄 모르던 두 남자를 수호천사 1,2호로 변신시킨다. 그 수호천사 1,2호의 거짓말은 또 얼마나 예쁘던지 들을 때마다 절로 미소가 솟아나면서도 한쪽 가슴은 짠해온다.
고맙습니다, 제작진은 이 이야기를 일컬어 어른들의 동화같은 이야기,라 표현한다. 맞다. 이 드라마는 동화처럼 참 맑고 예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더 이상 이런 드라마를 '동화'라는 단어로 제한하지 않는 세상이 오길 꿈꾼다. 그냥 이런 사람들이, 이런 따뜻함이 세상에 가득해져서 이런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는 동화같은 드라마가 아니라 리얼리티 드라마라고 불려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한가지 소망을 더 담아본다. 언제가 됐든, 나중에 아이를 낳게 된다면 꼭 영신이가 봄이 키우듯 키워야지.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라고 서슴없이 말할 줄 알고, 다른 사람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고 양보할 줄 아는 예쁜 마음을 가진 아이. 그렇게 살다 보면 험한 세상에서 손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손해 보는 편이, 그렇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궁극적으로는 훨씬 잘 사는 길이라고,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평생을 살지는 말자고.
도통 나도 못하는 걸 어떻게 가르치며 산담, 싶어 나도 영신의 마음을 조용히 배워 보려 한다. 역시 쉽지는 않다. 그러니 아직 고맙습니다,는 동화같은 드라마가 맞나보다
마지막회까지 보고 난 뒤, 나도 자꾸만 되뇌이게 된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여름의 끝무렵 이런 따뜻함과 만날 수 있게 해 준 이 드라마가 참 고맙다. 고맙고 예쁘다.
누군가에게 기적을 선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ps
공효진, 신구야 뭐 워낙 멋진 배우들이라는 거 알고 있었고
이 드라마에서의 배우의 재발견이라면, 내게는 장혁
이런 연기가 가능한 배우인 줄 몰랐던 건,
그간 봐왔던 작품에서의 그의 모습이 어딘가 힘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군에서 보냈던 지난 시간들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 세월이 그에게 배우로서의 힘을 빼줬겠구나, 싶어
자꾸만 앞으로의 그를 기대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목구비 이렇게 뚜렷한 배우가 좋아진 건 처음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