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 용산 걸어본다 1
이광호 지음 / 난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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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용산이어야 했나? 나날의 삶을 통해 잘 알고 있는 지역이기도 때문이겠지만, 용산이라는 모더니티의 참혹함과 혼종성에 이끌렸을 것이다. 용산의 순결할 수 없는 시간과 장소들은 사회적인 시간과 신체의 감각이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먼 과거의 것들을 보존하려는 당위와 노력에 비해 가까운 과거인 근대의 기억들은 잊으려 한다는 것이다. (p.7)

용산은 애써 지우고 싶은 식민과 이식의 역사와 모욕과 단절의 시간이 폭력적인 개발을 호출하는 기이한 장소이다. 불균등한 시간들이 어지럽게 교차하면서 일상적 우울과 권태로 뒤섞일 때, 용산의 '과도한 산문성'이 만들어진다. (p.7)

어떤 장소는 기억 너머에 있고, 어떤 장소는 기억 이전에 있다. 영감을 주는 특별한 장소 같은 것이 있다고 믿기 힘들다. 가보지 못한 장소와 지나친 장소, 차마 지나치지 못한 장소가 있을 뿐이다. 멀리서 보면 장소는 무심하고 자명하며, 가까이서 보면 장소는 비밀스럽고 남루하다. 생의 매 순간과 우울과 설렘 속에 자리잡은 특별한 장소가 있을 것이다. 평범한 장소가 문득 지울 수 없는 뉘앙스로 마음에 새겨질 수 있다. 익숙한 풍경이 낯선 시선 속에서 특별한 장소로 전환되는 그런 순간. 하지만 그 순간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으며,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은 어떻게 보존될 수 있을까? 무감한 시간들을 견딜 수 있는 고유한 장소가 남아 있을까? (p.10-11)

단절과 망각의 형식. 이곳은 또한 망각의 도시다. 이 도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거리와 거리를 오가는 무감한 발걸음들은 알지 못한다. 효창공원과 이태원과 남일당에 이르기까지 장소의 기억을 소환하는 일은 무언가를 걸어야 하는 일이다. 이곳에서는 그 기억들을 지우기 위한 모든 가능한 일들이 벌어진다. 거리의 무기력한 풍경과 빌딩들의 부주의한 스카이라인과 작고 초라한 가게들과 골목 안의 오래된 그림자는 눈을 감았다 뜨면 마법처럼 달라진다. 거대한 담이 사라지거나 누추한 집들이 매끈한 콘크리트로 뒤덮이거나, 지우고 싶은 장소들은 텅 빈 공간이 되어버릴 것이다. 기억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치려는 이 현기증나는 속도들. 시간은 절대 머뭇거리지 않으며 장소는 침묵하고 망각은 사람의 일이다. 그들의 기억이거나, 너의 기억이거나, 나의 기억이거나, 혹은 우리의 기억이거나. 살아 있다는 것은 기억이 남아 있거나 혹은 기억이 사라져간다는 것. 기억은 완전할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미지의 가능성이다. (p.14-15)

참혹한 기억이 생생해서 아침햇살이 지옥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황홀했던 시간의 세부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늙어가는 것이 문득 두려워질 것이다. 기억은 나의 시간에서 빠져나와 너의 미래로 흘러간다. (p.15)

나는 기다림 이전에 있고, 너는 기다림 너머에 있다. 기다림을 넘지 않으면 너에게 갈 수 없다. (p.16)

깊이가 사라진 풍경, 매력을 뿜어내지 않는 건물들은 사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거리의 오래된 혼란과 망각을 견디기 위해 거기에 서 있다. (p.21)

삼각지 쪽에서 철길을 가로질러 집 쪽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삼각지 고가로 올라가는 위태로운 육교를 올라야 한다. 육교는 고가를 따라 건너야 하기 때문에 지루할 만큼 길었고, 계단은 공사로 인해 위태로울 때도 있었다. 허공을 향해 올라가는 것 같은 가파른 계단. 그런 위태로운 육교를 걸어간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이 얼마나 위태로웠는지 오랜 후에 알게 된다. 매 순간의 위태로움에 대해 알지 못하다가, 어느 날 내게 들이닥쳤던 위험한 시간들을 한꺼번에 마주하게 될 때.

어떤 예감에도 불구하고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측면에서 삶은 매 순간 재앙이다. 삶에 대한 전지적 관점이란 오만이거나 기만이다. 너에게 할 수 없는 말들이 마음속에서 저 혼자 죽어갔다. (p.22-23)

익숙한 무기력을 견디는 방식. 고요하고 작은 걸음걸이, 바람도 우울도 비껴가는 걸음걸이, 기계적이고 무심한 작업, 되도록 시간을 지키려는 일 인분의 식사 같은 것들. (p.27)

아이들은 순수하다기보다는 무심하며 다만 최선을 다해 놀고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자기들이 방금 타고 놀았던 그네에서 몸이 빠져나왔을 때 아직 흔들리고 있는 그네의 움직임, 자기 몸 뒤에 남아 있는 시간들에 대해 무감할 수 있음에 대해. 저들이 결국 겪게 될 어긋난 시간, 그 몸 뒤의 시간들을 결국 깨닫게 될 거라는 뼈아픈 상상. (p.28)

그 시절의 허영과 부주의에 대해서는 어떤 자기 연민도 허락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p.28)

장소의 의미를 둘러싼 싸움은 기억에 대한 투쟁이다. 역사의 승자들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기억을 다시 세우는 일이지만 억압된 기억은 긴 우회를 거쳐 언젠가 유령의 얼굴로 귀환한다. (p.32)

청파동 골목길은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깨끗하고 우아한 풍경과는 거리가 멀지만, 어떤 계획도 없이 시간과 우연과 왜곡이 만들어낸 휘어진 골목길들은 돌발적인 아름다움을 만든다. 이곳에서 풍경의 원근법은 무의미하며, 예기치 않은 굴곡과 방치의 시간이 흐른다. (p.35)

절대로 닿을 수 없을 만큼 누군가와 떨어져 있다면, 죽음처럼 건너갈 수 없는 곳에 누군가가 있다면, 너는 다른 시간 속에 있는 것이다. 아득한 거리는 아득한 시간이다. (p.37)

봄의 시제는 가정법이다. 봄은 언제나 '봄이 오면'이라는 시간대로부터 다가온다. 봄은 만질 수 없는 꿈처럼 오는 것이다. 눈부신 것은 봄이 아니라 봄의 불가능함이다. 상냥하고 뼈아픈 계절, 날카로운 소망이 만들어낸 부재의 장소, 세상에 없을 익명의 시간.

완전한 아름다움이란 곧 파괴될 어떤 것이다. 어느 날의 너처럼. (p.72)

어떤 장소가 제의적인 공간이 되는 것은 우연에 기댄 것이다. 스쳐지나가던 골목길과 육교와 작은 공원과 카페가 어느 순간 가벼운 마음으로 지나치지 못하는 장소가 되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이 만들어지는 것은 오로지 사람의 의지는 아니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만드는 것은 우연이라는 이름의 사소한 운명들이다. 그 우연들에 운명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겠지만, 어떤 우연들은 삶을 일거에 다른 시간으로 돌려놓고 되돌아오지 못하게 만든다. 그 우연들의 의미를 찾아낸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삶은 피할 수 없이 잔혹해 보인다. (중략) 그 봄날이 몇 번이나 지난 뒤에도 눈 오는 날 그 곳을 찾아가 한참 동안 혼잣말을 하거나 무언가를 눈 속에 묻거나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람. 혼자만의 비밀스런 의례를 치르는 사람은 그 장소의 주인이 아니라, 그 장소에 찔린 자이다. 장소는 긴 애도의 자리가 된다. (p.72-73)

어떤 장소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그곳의 시간으로부터는 벗어날 수 없다. 너의 장소를 벗어난다 해도 너의 부재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p.89)

모델하우스의 내부에는 깨끗한 가구와 생활용품들이 배치되어 있고, 가구 안에는 세련되고 깨끗한 의복까지 걸려 있다. (중략) 이 가상공간에서 유일하게 실제적이어서 남루한 것은 구경하러 온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삶 자체이다. 일상적 삶의 공간이 이렇게 완벽할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p.89)

대규모 가게나 주차시설조차 없는 경리단길을 걷는 것은 의식적인 외출이라기보다는 우연한 산책에 가깝다. 이 거리는 이태원의 피로감이 만들어낸 무심함의 형식이다. 어두워지면 이태원은 맹목적인 열기로 가득하지만, 이 거리에서는 부드러운 일몰의 사소한 충고를 들을 수 있다. (p.92)

습관적으로 무심하게 여기를 이태원이라고 부를 때, 그 이름 안의 참혹한 시간들을 다 불러낼 수 있을까? 차마 불러내지 못하는 시간의 이름들.

너의 이름은 뼈아픈 비밀과 같고, 나는 결코 '너'라는 단 하나의 이름에 닿을 수 없다. 너의 영혼과 삶을 정확하게 요악하는 이름은 없다. 이름은 불가능하지만, 또한 불가피하다. 너에게 꼭 어울리는 이름은 없다. (p.93)

이곳의 식당들이 주는 매혹의 핵심은 '오리지널'의 맛과 스타일에 유사하다는 것, 한국화되지 않은 본토의 맛을 보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태원은 결코 '오리지널'이 될 수 없는 곳이다. 이곳은 오리지널 이전에 있거나 오리지널 이후에 있는 곳. 그 기이한 활기, 다양성의 과잉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뉴욕이나 홍콩이 될 수 없다. (p.98)

여행객이란 그런 것이다. 누군가가 장소의 스토리를 말해주기 전에는 그 장소의 의미를 알 수 없으며, 그 장소의 의미는 여행객의 시선 앞에 한없이 가벼워지거나 무화된다. 이태원에서는 모든 사람이 여행객이 된다.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이 거리는 여행객의 거리다. 여행의 시작은 알 수 있지만 아무도 그 여행의 끝을 알지 못한다. 어떤 시간도 완전히 수습되지않은 채 어느 순간 닫힐 수도 있는 길, 끝없이 도착이 연기되는 길의 시간을 여행이라고 할수 있을까?

어쩔 수 없는 오인과 참혹한 우연으로서의 생은 결국 전모를 다 알기도 전에 불현듯 마감될 것이다. 이번 생의 여행이 어떤 장면에서 멈추게 될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은 비밀로 남게 된다. (p.98-99)

이 거리는 낙원인가? 어쩌면 모든 것이 허락되는 인공낙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스타일의 접합과 스타일의 과잉은 탐닉의 너머에서 이 매력적인 물질과 육체와 공간의 무가치함을 역설적으로 전시한다. 이 낙원은 지상의 낙원이기 때문에 여전히 허구적이고 피상적이며, 사람들은 그 낙원의 공기를 하룻밤 호흡하고 상투적인 귀가를 해야만 한다.

다른 삶의 기미를 만날 수 있지만, 다른 삶은 결코 시작되지 않는다. (p.102)

작은 맛집이 대형 체인점이 되면 장소와 얽혀 있는 하나의 미각은 개별성을 상실한다. 어떤 음식은 아직 한 시절의 감각을 보존하고 있지만 또 어떤 음식은 너무 쉽게 한 시절의 질감을 무화시킨다.

멀리서 보면 삶의 궤도는 결국 어긋나 있고 실재적인 것은 삶의 세부뿐이지만 세부는 보존되지도 기억되지도 않는다. 이 세계의 속도와 허위를 견뎌야 할 것이다. 나 자신을 견디고 있는 것처럼. (p.135)

하늘에서 죽는 새는 없다는 것, 결국 땅으로 내려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일찍 알았다. 어린 날 조류의 어떤 깊이도 없는 눈을 두려워한 것이 그것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p.137)

불안을 감추기 위해 어두운 공원에 숨어 중얼거리는 사람은 얼핏 스치는 뒷모습에 말을 건넨다. 모든 뒷모습이 너의 것처럼 보일 때, 결국 그게 자신의 뒷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p.142)

거대한 개발의 풍문으로 들떠 있는 이곳이 애도의 장소가 되기는 힘들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애도의 지속을 허락하지 않는 곳은 살 만한 세계가 아니다. (p.144)

잘 지내느냐고 차마 묻지도 못할 것이다. '그날'로부터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것처럼. 저 캄캄한 시간에 대해 한순간도 등을 돌리지 못하는 것처럼. (p.144)

망루에 오르는 것은 무언가를 걸어야 하는 일이다. 망루 위에서 맞이하는 시간이란 언제 아래로 다시 내려갈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시간, 바람이 몰려오는 칼날 위에 서 있는 것, 결국은 혼자만의 망루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 더 갈 데가 없는 시간이다.

망루에 올랐던 사람들은 그 방법 외에 말할 수 있는 길이 없었으며, 경찰관들은 그 작전의 부당성을 말할 입을 갖지 못했다. 이 끔찍한 침묵에 대해 이 공터가 말하는 것은 없다. 시간이 지나 결국 이곳에 높고 아름다운 건물이 세워진다고 해도 이 두려운 침묵은 그 건물을 지탱하는 철근 마디마디에 새겨질 것이다. 그 침묵들은 자라나서 더 큰 침묵에게 다가가 그것을 뒤흔들 것이다. 남일당은 용산 재개발의 종착지이면서, 이곳에서 벌어진 참혹한 근대화와 150년 전부터 시작된 '식민'의 마지막 장면이다. 진출과 개발이라는 이름 뒤의 무서운 비밀들. 모든 참혹한 길들이 여기로 모여들어 오래고 두려운 비밀에 대해 숙덕거릴 것이다.
모든 죽음은 제각각의 이유로 자연스럽지 않다. 죽음을 설명하지 못하면 삶은 추악해진다. 너의 부재를 설명하지 못하면 나는 무의미하다. (p.145)

끊임없이 무언가를 세우지 않으면 안되는 자본의 주술은 여전히 용산을 지배한다. 개발이라는 이름 자체가 거대한 거짓말이라면, 이 땅이야말로 가장 오래면서 가장 새롭고 거대한 거짓말의 장소였으니까. 남일당에 대한 애도, 이 오래고 끈질긴 거짓말에 대한 애도.

애도는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다림이다. 나는 너라는 부재 속에 대기한다. (p.148-149)

어떤 지독한 기억은 이 생애가 끝날 때까지 지워지지 않을 것 같지만 반드시 망각의 순간이 도래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가장 아름답고 참혹한 얼굴도 마침내 지워지는 시간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 최후의 순간에도 망각은 그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거한다. '너를 잊게 된다는 것'은 '네가 있었다는 것'에 대한 증명이다.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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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곰 2014-11-05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밑줄을 참 많이도 그어 놓으셨어요 ㅎㅎ (사실 저도)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 용산 걸어본다 1
이광호 지음 / 난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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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이라는 도시가 갖는 이중성, 그 멜랑꼴리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한 책이 또 있을까. 매일 이 거리를 걷는 나같은 이들에게 이 책은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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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작가님들을 자주 만났다고 합니다. 하나같이 완소 완소 : ) 

이 작가님들을 함께 모아두니, 뭔가 독서를잘 꾸려온 듯한 느낌적 느낌이다. 헤헷.


제 다른 기록들은 이렇다고 합니다. ㅋㅋ


http://www.aladin.co.kr/events/eventbook.aspx?pn=140701_15th_records&CustNo=747707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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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2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07 0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14-07-02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보고 끄덕끄덕...좋은 이벤트여요~

웽스북스 2014-07-07 01:10   좋아요 0 | URL
BRINY님 결과도 궁금해요 ^^
 
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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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다시 만들 수는 없어요" 낸시는 아버지에게 그 말을 돌려주었다.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13쪽

그것으로 끝이었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들이 모두 하고 싶은 말을 했을까? 아니 그렇지 않았다. 또 물론 그렇기도 했다. 그날 이 주의 북부와 남부에서 이런 장레식,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례식이 오백 건은 있었을 것이다. (중략) 그러나 가장 가슴 아린 것, 모든 것을 압도하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한 번 더 각인시킨 것은 바로 그것이 그렇게 흔해빠졌다는 점이었다. -22쪽

그도 난공불락의 남자로 남아 있으려는 전투에서 계속 패배했다. 시간은 그의 몸을 붕괴를 막기 위해 고안된 인공 장치들의 창고로 바꾸어 놓았다. -24쪽

오랜만에 비로소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내 인생의 주인이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에 왜 내가 내 삶을 불신해야 할까? 차분하게, 똑바로 생각해보면 앞으로 훨씬 더 견실한 삶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 왜 내가 소멸의 가장자리에 있다는 상상을 할까?-37쪽

창문 너머로 나무의 잎들이 변하는 것이 보였다. 10월이 흘러가고 있었다. 의사가 찾아왔을 때 그는 말했다. "언제 퇴원하죠? 1967년 가을을 놓치고 있잖아요" 의사는 침착한 표정을 귀를 기울이더니, 이윽고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직도 모르겠어요? 모든 걸 다 놓칠 뻔했는데." -47쪽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86쪽

크레이머는 뇌암으로 쓰러졌고, 부인이 휠체어를 밀며 마을 거리를 돌아다니는 광경이 눈에 띄곤 했다. 그는 은퇴를 한 상태에서도 계속 중요한 사명에 자신의 모든 인생을 바치는 사람처럼 전능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러나 죽기 전 열한 달 동안은 당혹감에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작아진 것에 어리둥절했고, 자신이 무력한 것에 어리둥절했고, 제럴드 크레이머라는 이름을 부르면 대답을 하는 사람이 약한 모습으로 휠체어에 앉아 죽어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어리둥절했다. -91쪽

한때 독단적으로 모든 일의 한가운데 있다 이제는 아무 일에도 끼지 못하게 된 사람의 쓰라린 의기소침함이었으니. 사실 이제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화가 나서 절대적인 소거라는 축복을 기다리고 있는 꼼짝도 못하는 영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92쪽

"통증이 사람을 정말 외롭게 만드네요" 그러면서 다시 허물어지며 그녀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정말 창피해요"
"창피할 일 전혀 없습니다."
"있어요. 있어요" 그녀는 울었다. "자신을 돌볼 수 없다는 거, 궁상맞게 위로를 받아야 한다는 거..."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런 건 전혀 창피한 게 아니죠"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은 몰라요. 의존, 무력감, 고립, 두려움... 그게 다 아주 무섭고 창피해요. 통증이 있으면 자신을 겁내게 되요. 그 완전한 이질감이 정말 끔찍해요"
자신이 이렇게 된것이 부끄러운 거로구나. 그는 생각했다. 자신도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초라한 거겠지. 하지만 누군들 안 그럴까? 그들 모두 자신이 지금 이런 꼴이 된 것이 부끄러웠다. 나는 안 그런가? 신체의 변화가 부끄러웠다. 남자의 힘이 줄어든 것이 부끄러웠다. 그를 비틀어버린 오류들과 그를 기형으로 만든 충격들 - 스스로 가한 것과 외부에서 온 것 모두 - 이 부끄러웠다. -96쪽

밀리선트 크레이머가 겪는 축소의 과정에 무시무시한 웅장함을 부여하는 것, 그리고 그것과 비교되어 자신의 황량함이 아주 작아 보이게 만드는 것은 물론 그녀가 겪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심지어 손자들의 사진,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통 집 사방에 걸어놓고 있는 그런 사진들, 어쩌면 이 여자는 이제 그런 것도 안 볼지 몰라.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통증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97쪽

열흘 뒤 밀리선트는 수면제를 잔뜩 먹고 자살했다. -97쪽

가족사에 저항하려면 상당한 전투성이 필요했는데, 그것은 이제 그의 무기고에서는 사라지고 없는 것이었다. 전투성은 거대한 슬픔으로 바뀌었다. 긴 저녁의 외로움 때문에 아들에게 전화하고 싶은 유혹에 굴복하고 나면, 그 뒤에는 늘 슬픔이 찾아왔다. 슬프고 기진맥진했다. -98쪽

순진하게도 그녀는 자신에게 귀중한 모든 사람의 결함을 지워버림으로써, 지나친 사랑으로 사랑함으로써 불행으로부터 숨으려 했다. 마치 건초를 꾸리듯이 용서를 꾸렸다. -110쪽

그러나 위로를 얻고자 하는 소망은 하찮은 것이 아님을 그는 깨달았다. 더군다나 기적적으로 아직도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에게서. -112쪽

거짓말은 아주 흔하지만, 당하는 쪽이 되어보면, 그건 정말 경악스러운 거야. 당신같은 거짓말쟁이들에게 배신을 당하는 사람들은 점점 많은 수모를 겪게 돼. 그러다보면 마침내 당신도 그 사람들을 전보다 하찮게 여길 수밖에 없어. 안 그래? 당신처럼 능숙하고 집요하고 사악한 거짓말쟁이들은 언젠가는 틀림없이 자신에게 심각한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거짓말을 하는 상대한테 그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아마도 스스로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조차 못할거야. 거짓말이 섹스도 안 하는 가여운 짝의 감정을 고려해 주는 친절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겠지. 자기 거짓말이 미덕이고, 자기를 사랑하는 얼간이를 향한 관용의 행동이라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이건 그냥 그거야. 빌어먹을 거짓말이라고. -127쪽

그는 늘 안정에 의해 힘을 얻었다. 그것은 정지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것은 정체였다. 이제 모든 형태의 위로는 사라졌고, 위안이라는 항목 밑에는 황폐만이 있었으며,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이질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중략) 맙소사, 그는 생각했다. 한때 나였던 남자! 나를 둘러쌌던 생활! 나의 것이었던 힘! 그때는 어디에서도 '이질감'은 느낄 수 없었다. 한때는 나도 완전한 인간이었는데.
-135쪽

노년은 전투에요. 이런 게 아니라도, 또 다른 걸로 말이에요. 가차 없는 전투죠. 하필이면 가장 약하고, 예전처럼 투지를 불태우는 게 가장 어려울 때 말이에요. -149쪽

그가 알게된 것은 삶의 종말이라는 피할 수 없는 맹공격이 가져온 결과 전체와 비교하자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가 긴 직장생활 동안 사귄 모든 사람의 괴로운 사투를 알았다면, 각각의 사람들의 후회와 상실과 인내가 담긴, 공포와 공황과 고립고 두려움이 담긴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알았다면, 이제 그들이 떠나야 할 것, 한 때 그들에게 생명과도 같았던 그 모든 것을 알았다면, 그들이 체계적으로 파괴되어가는 과정을 알았다면, 그는 하루 종일, 또 밤늦도록 계속 전화기를 붙들고, 전화를 적어도 수백 통은 해야 했을 것이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162쪽

그래도 전에는 혼자 있을 때면 잠시, 사라진 구성요소들이 기적처럼 돌아와 그를 다시 거역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주고 그의 지배를 재확인해줄 것이라고, 실수로 그에게서 잘려나간 권리가 회복되어 불과 몇 년 전에 중단되었던 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수많은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점점 줄어드는 과정에 있었으며, 종말이 올 때까지 남아 있는 목적 없는 나날이 자신에게 무엇인지 그냥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할 것 같았다. 목적 없는 낮과 불혹실한 밤과 신체적 쇠약을 무력하게 견디는 일과 말기에 이른 슬픔과 아무것도 아닌 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 결국 이렇게 되는 거야. 그는 생각했다. 이거야 미리 알 도리가 없는 거지. -167쪽

그는 이제 없었다. 있음에서 풀려나,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처음부터 두려워하던 바로 그대로. -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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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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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겨워서 구역질이 났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내가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 기쁜 마음을 배운 것이었다.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것. -17쪽

실제로 아버지는 미쳤다. 소중한 외아들이 성인이 되어가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삶의 위험에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걱정 때문에 미쳐버렸다. 어린 소년이 성장하고, 키가 크고, 부모보다 찬란하게 빛난다는 것, 그때는 아이를 가두어둘 수 없으며 아이를 세상에 내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바람에 겁에 질려 미쳐버렸다.-20쪽

"그런데 왜 이러시는 거에요, 아버지?"
"인생이 그래서 그래. 발을 아주 조금만 잘못 디뎌도 비극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으니까."-23쪽

나도 그것이 좋았다. 내가 어른이 되던 시점에서는, 갑자기 모든 것이 그렇게 까다로워지기 전에는, 나는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데 큰 재능을 보이던 사람이었다.-26쪽

나는 어른, 교양 있고, 성숙하고, 독립적인 어른이 되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바로 그 점에 겁을 먹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젊은 성인의 가장 작은 특권을 시험적으로 사용해본 것을 벌하려고 나를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서도 나의 공부에 전념하는 태도, 대학생으로서 누리는 독특한 가족 내 지위는 더없이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29쪽

법률가가 되는 것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것이 피가 잔뜩 묻어 악취를 풍기는 앞치마 - 피, 기름, 내장 조각 등 손을 닦을 때마다 온갖 것이 묻었다 - 를 두르고 일을 하며 보내는 삶에서 가장 멀어질 수 있는 길이라는 것뿐이었다. 나는 나에게 요구될 때마다 기꺼이 아버지를 위해 일했고 아버지가 나에게 가르치는 정육점 일의 모든 것을 순순히 배웠다. 그러나 아버지도 내가 피를 좋아하도록 가르치지는 못했다. 아니, 나는 피 앞에서 무심해지지도 못했다. -47쪽

이래서 영원이 존재하는 것인가? 한평생에 걸쳐 있는 자잘한 것들을 계속 주물럭거리려고? 인생의 매 순간을 그 자디잔 구성요소까지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아니면 이것은 그저 나만의 내세일까? 각자의 삶이 독특하듯 각자의 내세도 독특한 것일까? 사람마다 다른 사람의 내세와는 다른, 지울 수 없는 지문 같은 내세를 갖게 되는 것일까?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삶에서처럼 나는 오직 있는 것만 알 뿐이고, 죽음에서는 있는 것이 있었던 것으로 바뀔 뿐이다. 살아 있는 동안에만 삶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사라진 뒤에도 계속 그 삶에 붙어 있게 된다. -64쪽

하지만 내세는 기억이 없는 곳이 아니었다. 아니, 기억이 전부인 곳이었다. 이럴 줄은 미처 몰랐다. -65쪽

꿈이건 아니건 여기에는 지나간 삶밖에 생각할 것이 없다. 이것이 '여기'를 지옥으로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천국으로 만드는 것일까? 망각보다는 나은 것일까? 아니면 나쁜 것일까? 죽음에서는 적어도 불확실성은 사라질 것이라고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뭐하는 존재인지, 내가 이런 상태로 얼마나 오래 있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불확실성은 여전히 지속되는 것 같다. -65쪽

존재하는 모든 것이 기억된 과거뿐이기 때문이다. 복원된 과거가 아니다. 그러니까 감각의 영역이 직접 다시 살아내는 과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되풀이될 뿐이다. 내가 나의 과거를 얼마나 더 감당할 수 있을까? 육체에서 분리된 채 이 기억의 동굴 속에 숨어서, 시계 없는 세상에서 시곗바늘이 뱅뱅 돌도록 나 자신에게 나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하고 있으니, 벌써 백만 년이나 이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66쪽

어떤 사람들은 일을 갈망한다. 어떤 일이든, 가혹하든 고약하든 상관없다. 자기 삶의 가혹함을 쏟아내고, 마음에서 자신을 죽일 것 같은 생각들을 몰아내기 위해. -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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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4-01-27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5쪽 놀랍구나! 기억이 전부인 곳이라니....

웽스북스 2014-07-07 01:10   좋아요 0 | URL
네 언니. 너무 인상적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