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멀리서 들려오는 가냘픈 목소리에 그녀는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메가폰을 쥔 여자의 목소리가 차츰 가까워졌다. 선주 언니는 아니었다.
시민 여러분, 도청으로 나와주십시오. 지금 계엄군이 시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거대한 풍선 같은 침묵이 병실의 모서리들을 향해 부풀어오르는 것을 그녀는 느꼈다. 트럭이 병원 앞길을 지나가며 목소리가 크고 선명해졌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함께 나와서 싸워주십시오.
그 목소리가 멀어진 지 십분이 채 되지 않아 군인들의 소리가 들렸다... 한 강, <소년이 온다>中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의 비상계엄선포가 기습적으로 이뤄지고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그리고 국회로 모여달라는 이재명 대표의 방송을 들으며, 전남 도청의 마지막 밤에 울려퍼졌던 외침을 떠올렸다. 계엄군이 도청으로 진입하기 직전 도청으로 와 달라는 간절한 외침.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1980년도 전남도청과 2024년 국회.
계엄령이면 차를 타고 가야하는데, 계엄상태에서 서울까지 갈 수 있을까.
택시는 잡을 수 있을까. 가족들은 어떻게 해야하나.
크고 작은 여러 생각들은 짐이 되어 내 자신을 일어나지 못하게 했고, 결국 뉴스를 보며 새벽 4시에 상황 종료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국회에 모인 여러 시민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1980년 당시 죽은 자에 대한 산자의 부채의식이란 이런 것이었을까.
아직 잔불과 여진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이지만, 여러가지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지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