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아빠도 만날만날 싸워.
모르는 척했지만, 너무너무 슬퍼.
내가 뭔가 잘못해서 그러는 것 같아.˝

아동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부모들이 싸울 때 아이들은 자기 때문
이라고 생각한단다.

아이가 그런 생각을 자주 하면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부모가 바라지 않는다는 일종의 신념으로 자리잡게 되고, 그 아이는 결국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성인이 된다는 것이다.

「모르는 척 공주」는 동화책이지만, 작가의 목소리는 아이들에게 향하지 않는다. 잠자리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부모를 향해 ‘엄마 아빠들이 싸울 때 어떤 생각을 하는가‘를 잔잔하게 말해준다.

이야기 책의 뒷면에 이런 당부의 말로 책은 끝난다. 아마도 이 부분이 작가가 유일하게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네 작은 가슴을 짓누르는 걱정거리.
‘모르는 척‘하지 말고 소리내어 말해봐.
˝무서워요! 슬퍼요! 화가 나요! 내 마음을 알아줘요!˝

살다보면 부부사이에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부모들은 보다 현명하게 갈등을 풀어야 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또한, 부모들은 아이들이 ‘무서워요!‘를 말하기 전 먼저 ‘모르는 척‘하지 말고 소리내어 말해야겠다.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엄마 아빠삶에서 얼마나 기쁨인지, 그리고 아이가 있어 비로소 완전한 가족이 되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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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3 2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13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13 2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13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커피소년 2017-04-13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림체가 어디서 많이 본 그림체라고 생각했는데 작가분이 ‘괜찮아‘를 쓰긴 분이군요.ㅎㅎ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그 분의 모델이 되는 아이가 혹시 연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겨울호랑이님의 따님을 닮았습니다..^^

맑고 순수한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비슷합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밝고 씩씩하게 자라나고 있는 것이겠지요..^^

겨울호랑이 2017-04-14 04:14   좋아요 1 | URL
^^: 네. 최숙희 작가님 책입니다. 참 친근감있게 아이를 그리신다는 생각을 저도 많이 합니다. 김영성님께서 연의를 귀여운 아이 모델로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숙희 작가님 책을 많이 못 읽었습니다만, 참 아이들 마음을 잘 읽는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번 책도 「괜찮아」와 분위기는 다르지만, 부모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부모의 역할과 자세를 돌아보게 됩니다^^:

사마천 2017-04-14 08: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심하게 싸운 부부집 애는 나중에 자폐가 되더군요.. 슬프지만 꼭 알아두어야 할 이치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4-14 08:38   좋아요 3 | URL
네 사마천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부부간 현명하게 싸우되 아이 앞에서 부부싸움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짧은 동화를 읽으며 다시 깨닫게 됩니다..

cyrus 2017-04-14 09: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의 눈에는 부모의 싸움이 낯설고, 무서운 상황으로 보입니다. 이런 모습을 자주 보게 되면 트라우마가 남을 수 있어요. 상대방의 언성이 높아지는 것을 듣게 되면 마음이 위축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이런 반응이 있었어요. 그래서 훈련병 시절 때 교관들의 강압적인 목소리를 참느라 힘들었어요. 다행히 아무 탈 없이 적응은 했습니다만 목소리만 큰 상대방과의 말다툼을 하지 않으려고 제가 먼저 피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7-04-14 09:13   좋아요 3 | URL
네. cyrus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이들은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쉽게 위축됩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가까운 부모의 다툼은 더 큰 상처로 남는 것도 아이들이 보호받아야할 위치에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부모들 각자의 인지와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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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놉티콘 : 제러미 벤담
제러미 벤담 지음, 신건수 옮김 / 책세상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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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놉티콘 : 제러미 벤담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64
제러미 벤담 지음, 신건수 옮김 / 책세상 / 2007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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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놉티콘(Panopticon)'은 영국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 (Jeremy Bentham, 1748 ~ 1832)에 의해 설계된 감옥을 의미한다. <파놉티콘>에서 벤담은 그가 설계한 이상적인 감옥을 간결하면서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글 서두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파놉티콘을 묘사한다.


[그림] 파놉티콘 (출처 : 허핑턴 포스트)


'여러분에게 제안하는 감옥 maison de penitence은 원형 건물이다. 어떠면 이것은 한 건물 안에서 다른 하나를 넣은 두 채의 건물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을지 모르겠다. 감옥 둘레에는 둥근 모양의 6층짜리 바깥 건물이 있다. 이곳에 죄수들의 수용실이 배치된다. 수용실 내부는 두껍지 않은 쇠창살로 되어 있어 한눈에 [안을] 볼 수 있으며, 수용실은 문이 안쪽으로 열린다. 각 층에는 좁은 복도가 있으며, 이 복도는 하나로 통해 있다. 각 수용실의 문은 이 복도로 나 있다. 중앙에는 탑이 있다. 그곳에 감독관들이 머문다. 이 탑은 3층으로 나뉘어 있다. 각 층은 수감자 수용실들을 2층씩 내려다보도록 구성되어 있다. 또한 감시탑은 바깥을 환히 내다볼 수 있는 발로 가려진 복도로 둘러싸여 있다. 이 장치 [발]로 인해 감독관들은 [수감자들에게] 잘 보이지 않으면서 수용실 전체를 구석구석 감시할 수 있다.... 이 감옥의 본질적인 장점을 한 단어로 표현하기 위해, 진행되는 모든 것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파놉티콘 Panoptique/ Panopticon 이라고 부를 것이다.'(p23)


<파놉티콘>에서는  감옥의 외양, 새로운 감옥의 장점, 수감자들의 관리, 수감자들의 교육에 관한 사항 등이 정리되어있다. 본문 70페이지 남짓 되는 이 책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이 책에 벤담의 사상(공리주의)이 현실적으로 적용되는 방안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파놉티콘은 감옥 건축 계획이다. 그러나 이것은 완벽한 감시를 통해 수감자를 교정하려는 목적만으로 계획된 것은 아니다. 파놉티콘은 벤담이 일생동안 연구하고 생각해온 것, 즉 법률이나 구호 제도, 경찰 체계, 특히 교육과 노동, 경제 제도를 현실에서 구체화할 수 있는 표준 모델이다. 벤담은 파놉티콘을 통해서 모든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p71 '해제 中)


FTA(Free Trade Agreement)가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의 현실적 적용모델이라면,  '파놉티콘'은 벤담으로 대표되는 공리주의(功利主義, Utilitarianism)의 현실적 적용 모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벤담이 제시한 파놉티콘은 단순한 수감시설이 아니라 복합적인 기능(처벌, 교육, 복지 보호)을 제공하는 공간(空間 space)이다. 중앙의 감시탑을 중심으로 일련의 관계가 형성되는 파놉티콘을 보면 자연스럽게 '중심'과'주변'으로 연결된 '제국(帝國)'의 모습이 연상된다.

 


[그림] 로마 제국의 도로망(출처 : 위키백과)


[사진] 로마 제국 도로 유적(출처 :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cjd23&folder=9&list_id=5024425)


로마는 제국을 위와 같이 '가도(街道 Via)'로 연결하여 제국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다. 가도를 통해 제국 내 시민들과 물자가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었고, 이민족의 침입 시에는 가도를 통해 병력을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었던 것은 파놉티콘 내에서 효과(效果)적인 제도의 운영과 연관되는 것 같다. 중앙집권적인 제도의 운영 역시 제국(Empire)과 파놉티콘의 공통점이라 하겠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중심부-주변부'로 나뉘어져 수탈과 침략으로 얼룰진 '제국의 시대'는 일종의 거대한 파놉티콘을 건설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제국주의'와 '공리주의'와 연결은 다른 부문에서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에 서술된 벤담이 생각하는 감옥의 목적을 보면, 선진국이 이른바 후진국을 계몽(啓蒙)한다는 명목으로 수행한 여러가지 침탈(侵奪)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제도가 수행해야 하는 목적에 대해 간략하게 나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고통의 본보기를 통해 범죄 모방 불식, 수감 기간 동안 수감자의 무례함 예방, 수감자 사이의 예의 유지, 수감자의 거주지 청결과 건강 관리, 탈옥 예방, 석방 후 생계 수단 마련, 필요한 교육, 올바른 습관 형성, 부당한 대우에서 보호, 처벌의 목적에 위배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복지 제공...'(p35)


'쾌락'을 '선(善)'으로 생각하고 이를 계량화하여 최대의 쾌락을 추구하던 공리주의자들의 주장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래서, 소속집단의 최대가 되지 못한다면 고통(惡)을 받게 될 것이고, 악으로 규정될 위험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악'으로 규정된 집단의 범위를 확대하면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의 처지와 유사하지 않을까. 이러한 면에서 '제국주의'는 '공리주의'가 효율(效率)적으로 광범위하게 구현된 체제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직 공리주의에 대해서 깊이 있는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향후 공리주의자들의 저서를 읽을 때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한 번 짚고 넘어가는 것도 좋을 듯 하다.


<파놉티콘>은 벤담이 꿈꿨던 공리주의 사회를 위한 격리된 유토피아(Utopia)다. 수감자들에게는 디스토피아(Dystopia)였겠지만. 책에서 설명되는 '파놉티콘'은 벤담 사상이 현실적으로 구현된 모델이기 때문에 공리주의의 이상향(理想鄕)이 어떤 곳인지 알려준다는 면에서 참고할만한 책이라 생각된다. 다만, <파놉티콘>은 벤담 본인에게는 이상적인 가치지만, 공감을 불러오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느낌은 예전에 플라톤(Platon BC 428 ~ BC 347)의 <국가 Politeia>를 읽을 때와 비슷했던 것 같다. 다만, 두 책의 중요한 차이가 있다면 전자(前者)는 단편(약 70페이지)이지만, 후자(後者)는 장편(약 580페이지)이라는 사실이다.

 

PS. <파놉티콘>을 수감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결코 이상향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안중근(安重根 1879 ~ 1910)의사가 순국하셨던 뤼순(旅順) 감옥의 모습에서 우리는 파놉티콘의 수감자와 제국주의 시대 식민의 처지를 느끼게 된다. (주의 : 안중근 의사가 수감되셨던 감옥은 하얼삔 감옥이 아니다.) 


[사진] 안중근 의사가 수감되었던 여순 감옥(출처 : 가톨릭 신문)


또한, 같은 원형구조이면서 그리스의 원형극장에서는 '중심-주변'의 또 다른 관계를 발견하게 된다. '감시와 통제'라는 '중심-주변'의 관계에서 서로 교감(交感)하는 관계가 우리가 추구해야할 진정한 가치가 아닐까 생각해보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


[사진] 그리스 원혁 극장(출처 : http://m.blog.daum.net/bond1226/4267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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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7-04-07 18: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내용은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쿨럭~--;)
이 리뷰 완전 좋은 걸요~.
한 백번쯤 ‘좋아요‘ 누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4-07 19:00   좋아요 1 | URL
^^: 양철나무꾼님 감사합니다.ㅋ 이런 백번을 누르시면 ‘좋아요‘와 ‘좋아요 취소‘가 반복되면서 결국 ‘좋아요 취소‘가 될 것 같네요. 99번만 부탁드려요.ㅋ 양철나무꾸님 즐거운 주말 되세요.

AgalmA 2017-04-07 19: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한국의 실세들이 모두 교도소 가는 상황이라 특별 편성하신 건 아니지요ㅎ?
서대문 형무소 갔을 때 감정이 묘했습니다. 그건 종교적인 건물 갔을 때와도 비슷....

겨울호랑이 2017-04-07 19:42   좋아요 3 | URL
^^: That‘s a good point! 입니다.ㅋ <파놉티콘> 에서 [발]은 두 가지 역할을 합니다. 평소에는 격리의 공간이 되지만, 주말에는 [발]을 제거하게 된다면 바로 ‘교회‘의 역할 을 수행하게 된다고 벤담은 설명하네요.. 아마도 Agalma님께서 그런 부분을 서대문 형무소에 가셨을 때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커피소년 2017-04-08 14: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파놉티콘..

저런 구조의 건물은 최악입니다..

예전에 보면서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한 기억이 나네요..

파놉티콘,, 감시사회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건물이 아닐까 싶더군요..

이유야 어찌되었던간에 개인의 기본 생활권에 대한 침해는 인권을 심하게 침해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보이고 싶지 않은 것들까지 적나라하게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감시당한다면.. 그것만한 지옥이 없을 것 같습니다..

헬 조선이 문제인 것은 돈 많은 권력자들이 수감되는 방은 그들의 감추고 싶은 것에 대한 권리를 존중해주는지 가릴 것 다 가려주고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해주는데 쥐뿔도 없는 사람들은 개인 권리를 모두 박탈당합니다.. 교도소 수감 생활에 공평함이 없습니다..

이래서야 법이 공정하다고 할 수 있는지요..

정말 억울하게 수감된 사람도 그런 취급을 당하는데 명백한 범죄사실이 존재하고 만인의 불행을 야기한 범죄자에게는 가장 좋은 방을 주고 황제수감생활을 하게 해줍니다.


겨울호랑이 2017-04-08 16:18   좋아요 2 | URL
그렇지요..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지만 만 명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고 했던가요. 그런 불공정은 처벌받는 감옥생활에서도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나와같다면 2017-04-08 2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pan opticon

공리주의자 벤덤은 왜 행복을 만들어주는 어떤 것이 아니 감옥을 설계했을까요..?

시선의 불평등과 정보의 비대칭으로 결국에는 수감자 스스로가 스스로를 감시하게 되죠..
그 점이 무서운것 같아요

우리는 그들을 볼 수 없지만
그들은 우리를 보고 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4-08 20:32   좋아요 2 | URL
많은 이들의 이익(선)을 위해 악을 격리시키고 이들을 악에서 선으로 계도하기 위한 목적이라 생각되네요.. 벤담에게 그들은 타자화된 대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서니데이 2017-04-11 20: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연의 사진이 달라졌네요.
겨울호랑이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7-04-11 20:06   좋아요 2 | URL
^^: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저녁시간 되세요.

2017-04-13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13 15: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홉스 & 로크 : 국가를 계약하라 지식인마을 22
문지영 지음 / 김영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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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계약하라>는 사회계약론(社會契約論)을 주장한 대표적인 두 인물 홉스(Thomas Hobbes, 1588 ~ 1679)와 존 로크(John Locke, 1632 ~ 1704)의 사상입문서다. <국가를 계약하라>에는 17세기 영국의 정치, 사회적 배경등을 잘 설명하고 있어 이들이 처했던 시대 상황이 사상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제시한다. 또, 홉스와 로크 이외에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 ~ 1778)의 사회계약설도 비교제시하여 '사회계약론의 위대한 시대 (1651 ~ 1762)'의 3대 사상가 철학을 간략하게나마 알려준다. 또, 이들의 사상이 후대의 파시즘으로 대표되는 전체주의와 신자유주의 등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알려주기에 입문서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홉스와 로크의 입장이 가장 크게 다른 지점은 '국가 이전의 자연상태'로 책에서는 소개되는데 이번 리뷰에서 이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자. 사실, 서양에서 국가에 대한 논의는 고대 그리스부터 시작되었다. 플라톤(Platon, BC 428 ~ BC424)의 <국가 Politeia>, <법률 Nomoi>,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BC322)의<정치학 Politics> 이래 많은 철학자들이 어떤 국가가 이상적인 국가인지에 대해 논의해왔다.   반면, <국가를 계약하라>의 홉스와 로크가 주목하는 것은 '자연상태(自然狀態)에 있다. 먼저 홉스의 '자연상태'의 개념을 살펴보자.


[그림] 홉스(출처 : 위키백과)


'홉스 계약론의 독창성은 무엇보다 그의 자연상태 개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요약되는 그의 자연상태는 일체의 공동체 감정이 없으며 어떠한 사회적 관계도 맺지 않은 평등한 개인들이 그들 모두를 두렵게 하는 공통의 힘 없이 사는 상태였다. 즉, 자연상태로부터 출발한 그의 논의는 본래 사회성을 타고나지 않은 개인들이 자연상태의 폭력과 죽음의 공포를 피하기 위해 사회를 수립하기로 계약을 맺고, 그 결과 리바이어던이 등장하게 된다는 설명으로 나아간다.'(p64)


이에 반해, 로크가 상정하는 '자연상태'는 다음과 같이 소개된다.


[그림] 로크(출처 : 위키백과)


'로크가 상정하는 자연상태는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존재하는 상태다. 그에 따르면 자연상태에서 인간이 누리는 자유는 "타인의 의지나 입법권에 구속되지 않고 오로지 자연법만을 자신의 준칙으로 삼는 것"이다.'(p114)


<국가를 계약하라>의 저자의 설명 내용을 정리하면, 홉스의 인간은 '신 앞에 선 단독자'와 같은 존재이며,  로크가 설명하는 인간은 가족 등 기초적인 혈연관계 등 국가 형성 이전의 사회적 관계는 형성된 '사회적 존재'라 여겨진다.


'로크의 자연상태와 홉스의 자연상태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는 로크의 자연상태가 일종의 "사회상태"라는 점에 있다. 홉스는 자연상태에서 인간이 철저히 개별적 존재로서 살아가는 것으로 묘사했다. 그의 자연상태에서는 친구나 연인, 가족과 같이 친밀한 애정으로 묶인 사람들의 집단이 연상되지 않는다. 이에 비해 로크의 자연상태에는 부부나 부모와 자식, 심지어 주인과 하인의 관계로 이루어진 이런저런 사회가 존재한다.'(p117)


마치, 홉스의 사상은 <구약성경>의 아담과 이브, 카인과 아벨 등이 처한 상황에서 부족공동체로 발전하는 과정을 설명한 것과 같다. 이에 반해, 로크의 사상은  관개수로(灌漑水路) 등 대규모 노동이 필요로 했던 시기(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을 하는 것 같다. 홉스와 로크가 이처럼 서로 다른 시대를 설명했기에 이들의 이론이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들의 사상을 평면적으로 단순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입문서(入門書)인만큼 단편적으로 결론을 내리지 말고, 이러한 내용을 염두에 두고 <리바이어던 Leviathan>과 <통치론 (Two Treatises of Government>에 대한 배경지식으로 참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추가적으로, <국가를 계약하라>를 읽으면서 가졌던 두 가지 생각을 짧게적어보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 첫 번째, 사회계약으로 절대권력을 리바이어던(Leviathan)으로 가정하고, 이를 절대권력화한 홉스가 최근 발생한 '박근혜 탄핵'을 봤다면 무엇이라고 했을까. '절대권력'이니 이를 잘못된 일이라 할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제' 자체가 로크가 주장한 '대의민주주의'이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의 부패를 '대의민주주의의 문제'라 할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에 대한 홉스의 답은 <리바이어던>에서 찾아야겠다.(사실 이 문제는 최근 개헌과 관련한 문제이기도 하다.)


두 번째, 자연상태가 자연법칙(自然法則)에 따라 유지가 된다는 이들의 사상적 배경을 통해 17세기가 과학(科學)의 발전과 더불어 자연과학과 사회과학(社會科學)으로 분화되는 분기점이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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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05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행정학과를 전공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행정학과 교수님은 강의할 때마다 로크의 위대한 업적을 강조했습니다. 교수님이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강조하는 내용은 그만큼 아주 중요하며 시험에 출제한다고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것입니다. 정말 시험에 로크에 관한 문제가 한 번씩 나왔습니다. 그 교수님 때문에 로크가 얼마나 위대한지 알고 싶어서 <통치론>을 샀어요. 그런데 아직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04-05 15:47   좋아요 1 | URL
^^: 저도 <통치론>을 이제 막 들어가려고 하는데, cyrus님이 아직 다 읽지 않으신 것을 보면 정말 어려운 책이거나, 재미없는 책이겠군요... 흠. 다소 걱정이 됩니다.. 그럼, 일단은 <리바이어던>부터 시작해야겠네요.ㅋ

cyrus 2017-04-05 16:05   좋아요 1 | URL
통치론, 제목만 봐도 ‘노잼’의 기운이 느껴지잖아요. ㅎㅎㅎ 학부생 시절에 책을 산거라서 그때는 교수님이 가르쳐주신 로크에 대한 내용만 이해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재미없어도 언젠가는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 ^^

겨울호랑이 2017-04-05 16:09   좋아요 0 | URL
^^: 그렇군요.. 시대가 시대인지라 요즘 이런 정치학 책으로도 손이 많이 가게 됩니다.ㅋ

북다이제스터 2017-04-05 2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새삼 궁금한 건 그 세 사람이 왜 뜸금없이 쌩뚱맞게 공통적으로 ‘계약‘이란 개념을 당시 들고 나왔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제게 귀뜸해 주실 수 있으세요? ^^

겨울호랑이 2017-04-06 08:55   좋아요 2 | URL
^^: 저자는 사회계약론이라는 개념이 나온 배경으로 17세기 당시 영국의 정치적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크롬웰의 공화정과 왕정복고 그리고 이후 권리장전의 채택이라는 정치적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사상의 필요가 ‘사회계약론의 시대‘를 만들었다고 하네요^^: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한 동로마군은 소아시아 반도의 남단 이수스를 돌아 622년 페르시아군을 격파하고 아르메니아 지방으로 진출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수스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622년은 바로 마호메트(무함마드)의 헤지라가 이루어진 해였다. 우연인지 모르나 그 찬란한 헤라클레이오스의 승리가 당시에는 안중에도 없던 이들 이슬람 교도의 활약에 의해 장차 물거품이 된다.' 

김경묵, 우종익 <이야기 세계사 1>


[그림] 무함마드와 헤지라 (출처 : http://ncc.phinf.naver.net/ncc02/2010/7/26/296/5-2.jpg)


<이슬람 문명>은 정수일 교수가 저술한 이슬람 종교와 문화 입문서(入門書)다. 이 책에는 이슬람 종교와 정치, 경제, 학문, 예술 등을 포함한 이슬람 문화에 대한 개괄적인 안내가 잘 되어 있다. 국내 몇 안되는 이슬람 전문가로서 이슬람에 대한 저자의 따스한 시선이 잘 나타난 책이다. 이 책의 많은 내용 중에서 잠시 생각이 머물렀던 부분을 정리해 본다.


622년 메카에서 메디나로 탈출한 무함마드의 헤지라 후 100년 후에 이슬람 제국은 서쪽으로는 이베리아 반도, 남쪽으로는 북아프리카, 동쪽으로는 인도의 인더스강유역까지 진출하는 급속한 팽창을 이룬다. 이러한 급속한 이슬람 제국의 팽창은 로마제국의 국교가 테오도시우스 1세(Flavius Theodosius, 347~395)에 의해 기독교(基督敎, Christianity)로 정해지기까지 약 300년이 걸린 것에 비하면 매우 빠른 속도로 팽창하게 된다.






[그림] 이슬람 제국의 발전(출처 : http://study.zum.com/book/14979)


이러한 이슬람의 급속한 팽창이 가능했던 원인에 대해 저자는 AD 7세기 전후의 국제적 환경, 이슬람 고유의 정교합일(政敎合一)의 체제, 이슬람 문명의 보편성과 세계성, 이슬람 문명의 관용성(寬容性)을 확산 원인으로 제시한다.(p57) 저자는 '이슬람 근본주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이슬람의 폭력성은 유럽에 의해 왜곡된 관념이라고 이 책에서 강조한다.


'이딸리아 스콜라철학의 대부 격인 신학자 아퀴나스가 느닷없이 내뱉은 "한 손에는 코란, 다른 손에는 검(劍)"이라는 것이 마치도 이슬람의 표징인 양, 경전 속의 한 구절인양 오인되고 있다. 그 결과 이슬람은 폭력의 종교로 비춰지고 있으며 급기야는 이러한 "호전성"이 이슬람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분쟁과 폭력의 원인이라는 식의 연역논리(演譯論理)로까지 이어지고 있다.'(p318)


'한마디로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허상(虛像)을 실상(實像)인 양 사변화(思辯化)하고 오도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계기마다 입에 오르내리는 "이슬람 근본주의'란 사실 얼토당토않은 일종의 허상이요 유령이다.(p316)... 이슬람 정치사상사에는 통칭 근본주의라고 할 만한 실체가 없다.'(p317)


그렇다면, 저자가 강조하는 '중용사상(中庸思想)'으로서의 이슬람 사상은 어떤 것일까.

저자는 가장 급진적인 이슬람 사상가의 이론 속에서도 중용이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이를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기실 이슬람사상은 극단을 배격하는 동양적인 중용사상(中庸思想, wasatiyah)이다. 오늘날 이슬람세계에서 대표적인 "근본주의"집단으로 지목되고 있는 무슬림형제단 운동의 사상 이론가인 까르다위마저도 현대 이슬람 부흥운동 가운데서 가장 강력하고 광범위한 조류는 "이슬람적 중용조류(中庸潮流)"라고 하면서 그 내용으로 원초(전통)주의와 혁신주의의 배합, 불변요소와 가변요소의 균형, 경직성(硬直性)과 외세 추종에서의 해방, 이슬람에 대한 포괄적(신앙, 사회, 정치, 입법 측면) 이해의 4가지를 꼽고 있다.'(p319)


 그렇지만, 이슬람 사상 운동의 한 흐름을 전체 이슬람 신앙으로 일반화 시키기에는 다소 무리함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슬람 신앙 안에서 '중용'은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을까. 이슬람 경전인 <꾸란 Koran>을 통해 살펴보자.


'하느님(알라)의 종들이라 함은 헌납을 함에 있어서 헤프지도 인색하지도 아니하여 항상 중용을 지키고, 하느님 곁에 어떠한 신도 두어 숭배하지 아니하고, 합당한 경우가 아니면 하느님이 금하신 생명을 죽이지 아니하며, 간음을 하지 않는 이들이라.' <꾸란(코란)> 25:65


'너희들의 손이 형틀에 매인 사람처럼 목에 묶여 있도록 하지도 말고, 또한 그것을 너무 넓게 펼치지도 말지니, 이는 너희가 인색하다는 비난도 받지 않고, 반대로 너무 헤퍼서 가난하게 되지도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 <꾸란> 17:29


'아담의 자손들이여! 예배를 올리는 곳에 갈 때는 그에 적절한 의상으로 단장을 하고, 잔치에서는 먹고 마시되, 그 도가 지나치지 않도록 하라. 그분은 지나치게 (낭비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시니라.' < 꾸란> 7:31


움베르트 에코(Umberto Eco)의 <장미의 이름 The name of the Rose>에서 잘 나타난 바와 같이 이슬람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BC 322)를 주석하고, 이를 서유럽에 전해주었을 정도로 당대에 많은 아리스토텔레스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아마도  이슬람의 경전(經典)인 <꾸란>에 나타난 중용사상은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Ethika Nikomacheia>에 나타난 중용 사상을 잠시 살펴보자.


'그렇다면 모든 미덕(美德)은 그것을 지닌 것이 좋은 상태에 있게 해주고 제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그리고 동등한 양이란 지나침과 모자람의 중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미덕은 자연과 마찬가지로 어떤 기술보다 더 정확하고 더 효과적이라면, 미덕이야말로 중간을 목표로 삼을 것이다. 여기서 미적이란, 도덕적인 미덕이다... 지나침과 모자람은 악덕의 특징이고, 중용은 미덕의 특징이다.'(1106a 15 ~ 1106b34)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사상은 주로 '도덕적인 면'에서의 중용이라면, 이슬람 경전에 나타난 중용은 생활윤리의 '실천척인 면'이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차이는 있지만, 이슬람교에는 저자가 강조한 중용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지만, 다른 한 편으로 중용사상만으로 이슬람교를 화합의 종교로만 규정하기에는 다음의 구절이 마음에 걸리는 것도 사실이다.


'너희들은 싫어하지만, 너희들에게는 (불신자들에 대항하여) 싸우라는 명이 떨어져 있느니라. 이 세상에는 너희들이 싫어하지만 실제로는 너희들에게 유익한 것이 있는가 하면, 너희들이 좋아하지만 실제로는 너희들에게 해로운 것이 있느니라. 하느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나 너희들은 그렇지 않느니라.' <꾸란> 2:216


개인적으로 이슬람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단편적으로 입문서적을 읽은 것이 전부이기에 '이슬람 문화가 어떤것인가?'에 대해 말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부분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위험은 우리가 항상 경계해야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슬람 문명>이 우리의 이슬람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한 목적으로 씌여진 훌륭한 입문서임은 분명하지만, 종착점이 아닌 이슬람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PS. '이슬람'만이 폭력적이라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성지탈환이라는 명분하에 이루어진 십자군(1099 ~ 1291) 전쟁과 유럽 종교 전쟁인 30년 전쟁(1618 ~ 1648)을 보더라도 기독교에서도 종교의 폭력성이 나타난다. '종교전쟁'이라고 불리는 많은 전쟁은 종교를 명분으로 한 여러 복합적인 요인(정치, 경제, 문화등)이 결합된 결과물이라 생각하기에, 폭력성을 어떤 종교의 성격으로 규정하는 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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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3 17: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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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3 18: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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