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난 연의는 아빠에게 '킨더 조이'를 달라고 조릅니다.

 평소 연의 간식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연의엄마와는 달리 아이와 친해줄 별다른 것이 없는 연의에게 저는 버튼을 누르면 간식이 나오는 '자판기'에 가까운 편입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저는 킨더조이 초콜렛을 내주었습니다. 참고로, '킨더조이'는  초콜렛과 장난감이 같이 있기에 연의는 좋아하는 간식인 반면, 연의엄마 불량식품 리스트(Black List)에 올라있는 품목 중 하나입니다. 때문에, 연의는 제게 '엄마한테는 비밀이야.'라고 말하면서 조용히 먹었고, 저는 그런 연의를  그냥 웃으면서 바라보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비밀이라고 자신이 말해 놓고 아침식사 중 엄마에게 자기가 먼저 "엄마, 아빠가 나한테 킨더 조이 줬어!" 하고 먼저 이야기를 하네요....ㅜㅜ : 


잠시동안 우병우를 능가하는 아내의 레이저 공격을 받았습니다. 공격을 받으면서 '과연 연의의 행동은 합리적인 선택이었는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연의의 선택은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하 내용에서는 그 결론에 대한 설명을 적어보겠습니다.



[그림] 킨더조이(이미지 출처 : http://byeolx2.tistory.com/977)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 속에서 '죄수의 딜레마'를 통해 유전자의 최적 선택 행동을 설명합니다. 반복되지 않는 게임에서 게임 참가자들은 '배신'이라는 카드를 선택했을 때, 최선의 결과를 얻게 됩니다.


'만일 당신이 "배신"카드를 낸다면 나 또한 "배신"을 내야 내가 최선의 결과를 얻게 된다. 상호 배신으로 벌을 받지만, 만일 "협력"의 카드를 낸다면 나는 봉이 되어 뜯기게 되므로 이보다 나을 것이다..... 당신이 어느 카드를 내든 간에 나의 최선의 수는 항상 "배신" 카드를 내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p342)




[표1]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나온 여러 가지 결과로부터 내가 얻는 이득(p341)


반복되지 않는 게임에서는 "배신"이라는 카드가 가장 효율적이지만, 반복되는 게임에서는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몇 번 게임을 반복함으로써 우리는 서로에게 신뢰 또는 불신을 쌓고, 보복하거나 회유할 기회를 갖게 된다.'(p344)


'배신'을 방지하는 전략으로 가장 효율적인 전략은 "Tit for Tat"(TFT :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전략으로 이러한 보복 전략이 배신을 방지할 수 있다고 언급됩니다. 다시 연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살펴보면, 연의가 '킨더 조이'게임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표2] 킨더 조이 게임에서 연의가 얻는 이득(겨울호랑이 추정)


어떤 경우에도 연의는 킨더조이는 확보합니다. 이 경우, 나중에 엄마에게 들키는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일까요? 추가적인 판단을 위해서는 들켰을 때의 손해와 아빠의 배신(아빠가 먼저 고자질할 가능성)에 대한 고려 역시 필요합니다. 


예상되는 손해의 경우,  몰래 킨더조이를 먹었다가 나중에 엄마에게 들킬 경우 추가적인 간식을 제공받을 수 없는 위험이 예상됩니다.  반면, 아빠는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때 최선의 전략은 엄마에게 미리 말하고 '착한 어린이 인증'을 받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6년이라는 시간동안 관찰된 아빠의 행동은 연의에게 '배신하지 않을 것'임을 충분한 빅데이터(Big data)를 통해 입증되고 있습니다. 이에 '아빠의 배신'은 논외로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혹시 있을지 모르는 아빠의 배신에 대한 보험으로 '엄마에게는 비밀이야.''라고 인증을 요청한 것이 아닐런지..지난 주 일요일 1회성 게임에서 연의의 행동은 전략적/합리적 선택임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연의는 이러한 행동을 계속할까요? 

이런 질문에 추가적으로 '연의는 반복되는 게임(보복가능성)을 가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 '라는 질문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반복되는 게임에서도 연의의 선택은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6년동안 동쪽에서 해가 뜰 확률이, 갑자기 내일 서쪽에서 해가 뜰 가능성보다 높기 때문에', 딸바보인 아빠로부터의 보복 가능성은 '0'이라고 판단해도 확률적으로 무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따라가보니, 연의의 모든 행동은 게임의 반복성과 비반복성을 떠나서 모든 경우에지극히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연의가 뛰어난 전략가인지, 아니면 연의의 순진한 행동을 겨울호랑이가 어렵게 해석했는지는 이웃분들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ㅋ 


날이 많이 추운 날입니다. 별로 대단하지 않은 일상의 내용을 다르게 생각해봤습니다.

이웃분들 가볍게 읽으시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PS. 내용을 정리하던 중 보복가능성(TFT)을 추가하여 실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나, 부녀(父女)관계가 자칫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빠질 수 있으므로 자제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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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2-21 12: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재에서 표를 작성한 후 북플에서 보니 깨져있네요.. 북플에서 표작성 기능은 지원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cyrus 2017-02-21 13:01   좋아요 4 | URL
저는 표를 직접 이미지 파일 형태로 만들어 복사해서 붙입니다. 그래야 알라딘 서재나 북플로 보면 깔끔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이미지 파일이 크면, 북플에서는 조금 잘려 나옵니다. ^^;;

겨울호랑이 2017-02-21 13:10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cyrus님 감사합니다. 수정해서 다시 올려야겠어요

yureka01 2017-02-21 13: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연의가 아주 똑똑하네요..아빠에겐 협력을 이끌어 내고,,엄마에겐 아빠에게 책임을 전가 시키는 전략^^..

겨울호랑이 2017-02-21 14:13   좋아요 2 | URL
^^: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하는 것을 보면 뽀로로에 나오는 꼬마 여우 ‘에디‘ 같아요..ㅜㅜ: 유레카님도 충분히 아시겠지만, 당하면서도 즐겁네요. 유레카님, 감사합니다.^^:

마립간 2017-02-21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쓴 저의 글인데, 제 딸아이의 전략적 선택입니다.

http://blog.aladin.co.kr/maripkahn/4000974

겨울호랑이 2017-02-21 14:13   좋아요 2 | URL
^^: 마립간님 따님도 이미 ‘게임이론‘을 본능적으로 습득하고 있네요!
아이들을 보면서 ‘게임이론‘ 자체가 자연과 사회 질서를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아니면, 플라톤 말처럼 우리 안에 세계의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하게 됩니다..^^: 마립간님 감사합니다.

sslmo 2017-02-21 1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네요.^^
크느라고 그런 걸까요?
연의 어린이 얼굴이 좀 야윈것 같아요~ㅠ.ㅠ

겨울호랑이 2017-02-21 14:13   좋아요 1 | URL
네^^: 양철나무꾼님 이제는 젖살도 많이 빠졌어요. 대신, 키도 많이 컸네요. 이제는 아이에서 어린이가 되어가는 딸아이를 보면 여러 생각이 드네요.^^: 양철나무꾼님 감사합니다.

커피소년 2017-02-21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예를 들어서 죄수의 딜레마를 설명해주신 것 같습니다..ㅎㅎ

연의의 전략적 선택인지.. 연의의 순수함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습니다만..

저는 순수함을 선택하겠습니다..ㅎㅎ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계산적이지 않다는 것을.. 믿고 싶습니다..ㅎㅎ

자상한 아버지가 주신 맛있는 초콜릿이 얼마나 달콤했으면 비밀로 간직하자는 이야기를 금새 잊어버렸을까요..ㅎㅎㅎ

너무 귀여운 이야기입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어린 아이의 순수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게 되는 경우가 아닐까 싶더군요.ㅎㅎ

연의의 자진 신고를 통해 겨울호랑이님은 우병우를 능가하는 레이저 공격을 받아 심장이 쫄깃쫄깃해지는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느끼지 못 할 불편함과 공포일 겁니다..



오래 전 읽었던 잔혹한 현대사에 대한 책에서 초콜릿 때문에 경찰(독재정권의 개가 된 나쁜 경찰)에게 잡혀간 삼촌(정부를 비판하고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안타까움과 공포 그 자체였으니까요...


어른들이라면 죽을 때까지 비밀로 간직하고 갈 수 있는 것들을 아이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자진 신고를 해버린다는 점...

참으로 무서운 일이죠..

만약 제 생각이 틀렸고... 연의의 전략적 선택이었다면....

똑똑한 아버지의 똑똑한 교육을 받은 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겨울호랑이 2017-02-21 14:53   좋아요 2 | URL
^^: 김영성님 감사합니다. 아마도 연의가 전략적 선택을 한 것은 아닐 것 같구요(초콜렛 관련 교육은 제가 시킨 적은 없습니다.ㅋㅋ), 순수한 어린이의 자연스러운 선택일 것 같네요. 김영성님께서 말씀하신 문제는 어린이의 순수함이 문제라기 보다는, 그러한 순수함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더 큰 문제라 생각되네요... 전쟁터에서 적십자기를 보면 공격하지 않는 나름의 약속처럼 어린이들의 순수함을 어른들이 보호해줘야한다는 생각을 오늘 김영성님의 글을 보면서 느낍니다.. ^^:

커피소년 2017-02-21 15:08   좋아요 1 | URL



“^^: 김영성님 감사합니다. 아마도 연의가 전략적 선택을 한 것은 아닐 것 같구요(초콜렛 관련 교육은 제가 시킨 적은 없습니다.ㅋㅋ), 순수한 어린이의 자연스러운 선택일 것 같네요.”



제 생각을 존중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연의의 순수하게 웃는 모습을 생각하니 차마 전략적 선택이라고는 생각하지 못 하겠더군요..ㅎㅎ



“김영성님께서 말씀하신 문제는 어린이의 순수함이 문제라기 보다는, 그러한 순수함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더 큰 문제라 생각되네요... 전쟁터에서 적십자기를 보면 공격하지 않는 나름의 약속처럼 어린이들의 순수함을 어른들이 보호해줘야한다는 생각을 오늘 김영성님의 글을 보면서 느낍니다.. ^^:”



예.. 맞습니다.. 순수함의 유무가 사람의 행복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

어린 나이에 순수함을 일찍 잃어버리는 것은 아주 큰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그 나이에 느낄 수 있는 행복의 권리를 빼앗겨버리는 것이니까요..^^

전쟁터에서 적십자기를 보면 공격하지 않는 나름의 약속처럼 순수함이 지켜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서 씁쓸합니다..^^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굳이 범죄행위가 아니더라도 아이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전쟁이 애초에 일어나지 않는다면 적십자기를 공격하지 않는 것의 약속을 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나와같다면 2017-02-21 22: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연의는 아빠를 무한 신뢰 하는군요♡
뭉클 하셨겠어요..
잠시 내가 무한 신뢰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누구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겨울호랑이 2017-02-22 05:06   좋아요 0 | URL
^^: 나와같다면님 감사합니다. 계속 그런 신뢰를 받았으면 하는데 쉽지 않겠지요. 말씀하신대로 감사하면서 최대한 노력을 해야겠지요..^^:

나와같다면 2017-02-21 22: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존 내쉬교수
인간의 행동을 수학적으로 제시하면서 기존 경제학이 분석하지 못했던 것을 풀었다고 노벨경제학상을 받으셨죠..

내쉬 규형.. 모든 사람들이 멍청한 짓을 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행동할 경우 볼 수 있는 세상

2015년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아벨상 Abel Prize 받으셔서 너무나 좋아했었는데.. 상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죠 ㅠㅠ

존 내쉬 교수에 대해서 토론하던 그 사람.. 그 시절이 그립네요

제가 존 내쉬 교수를 존경하는 이유는 이루어낸 업적보다도.. 정신분열증을 이겨낸 과정..

겨울호랑이 2017-02-22 05:07   좋아요 1 | URL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통해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대단한 분이었는데 다소 허무하게 죽음을 맞으셨어요..ㅜㅜ

AgalmA 2017-02-23 19:58   좋아요 2 | URL
모든 사람들이 멍청하고 합리적이지 않게 행동하는 사례들을 보여준 <컬쳐쇼크> 책 내용 생각나네요. 합리성이란 게 사실 당시의 합리성에 더 가까웠던. 많은 철학과 이론들이 후대에 계속 비판 지점이 생기는 것도 그런 연유일 테고, 큰 그림으로 보면 이 과정이 또 합리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요.

겨울호랑이 2017-02-23 20:16   좋아요 2 | URL
‘게임이론‘은 인간의 합리성에 대해 확률을 결합시켜 후에 카너먼 등이 경제학을 심리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는 면에서도 확실히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55년에 발표한 이론이 40여년이 지난 다음에야 인정받았다는 것을 보더라도 내쉬는 경제학계의 선지자라 여겨집니다..

AgalmA 2017-02-23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기적 유전자>를 연결한 멋진 육아 일기인데요^^ 재밌습니다. 이 컨셉 시리즈로 계속 부탁드려요ㅎ~

겨울호랑이 2017-02-23 20:17   좋아요 1 | URL
^^: 현재는 밑천이 바닥났네요.. ㅋ 다음번엔 탄핵일기와 연결시켜볼까 생각중입니다. ㅋ Agalma님 감사합니다^^: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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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헌법
차병직.윤재왕.윤지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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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을 왜 읽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쉽지 않다.... 손가락으로 조문을 짚어가며 헌법을 읽는 사람들은 거기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 서문 中- 


<지금 다시, 헌법>은 일반인을 위한 헌법 안내서다. 헌법(憲法)은  '국가 기관의 조직 및 작용에 대한 기본적 원칙과 국민의 기본적 권리·의무 등을 규정한 근본법. 한 나라의 법체계 가운데 최고의 단계에 위치하는 법( 출처: 위키피디아)'으로 정의되는데, <지금 다시, 헌법>은 헌법의 구성에 따른 설명을 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책을 읽기 위해 헌법의 목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장 총강(總綱) 

제2장 국민의 권리(權利)와 의무(義務) 

제3장 국회(國會)

제4장 정부(政府) 

제5장 법원(法院)

제6장 헌법재판소(憲法裁判所) 

제7장 선거 관리(選擧 管理)

제8장 지방 자치(地方 自治)

제9장 경제(經濟)

제10장 헌법 개정(憲法 改正) 


제1장 총강에서는 대한민국의 국호, 정체, 주권등에 대한 내용이 나오며, 제2장에서는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3장부터 제5장까지는 국민으로부터 권력, 입법권(入法權), 행정권(行政權), 사법권(司法權)을 위임받은 기관에 대한 설명된다. 7장에서는 국민의 뜻이 반영되는 선거에 대한 내용을. 8장과 9장에서는 지방자치와 경제 등에 대한 사항을 다루고 있으며, 마지막 10장은 헌법 개정에 대한 내용이 언급된다. 이를 통해 헌법이 대한민국 권력의 주체와 권한위임기관, 대한민국 주요 정책 목표를 내용으로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 다시, 헌법>에서는 헌법의 10장 130조까지의 본문과 6개조의 부칙을 쉽게 풀이한다. 전문 법조인이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했기에 부담스러운 한자(漢字)는 빼고 본문만으로 풀이를 했기에 심적으로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다. 이러한 편안함에 법조전문가들인 저자들의 시각에서 제정 후 3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한 지적들이 독자들의 문제의식을 자극한다. 그러한 지적 중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헌법 제79조 [사면권] 제1항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 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

-> 사면, 감형, 복권은 사법부가 고유의 권한을 발동하여 행한 결과를 대통령이 행정권으로 뒤집는 것이다. 이 같은 권한은 초권력적 대통령제, 다른 말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p348)


 '헌법 제87조 [국무위원] 제4항 군인은 현역을 면한 후가 아니면 국무위원으로 임명될 수 없다.

-> 현역 군인은 국무위원이 될 수 없기에, 장군은 국방부장관으로 취임하기 전에 군복을 벗는다. 이 조항도 낡은 유물처럼 지금은 쓸모없어 보인다.'(p368)


<지금 다시, 헌법>에서는 일반인들은 신경쓰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조항에 대해 면밀하게 문제점과 저자들이 생각하는 개선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작은 표현 하나가 얼마나 많은 의미를 가지는지도 실감케 하고 있다.


'제30조 [범죄행위로 인한 피해구조] 타인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생명, 신체에 대한 피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로부터 구조를 받을 수 있다.

-> 모든 범죄의 피해자에게 국가가 구조금을 지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망이나 장해, 중상해의 경우로 한정했다...사정만 허락한다면 범죄로 인하여 생존 기반을 송두리째 상실하 정도로 격심한 경제적 피해를 입은 사람도 국가가 구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그렇다면 구체적 시행은 사정에 따라 훗날로 미루더라도, 헌법에 그 가능성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좋겠다... 헌법에 직접 규정하거나 간접적으로나마 여운을 남겨두면 법률에 의한 시행을 촉구할 수 있다. "생명, 신체에 대한 피해"를 "생명, 신체 등에 대한 피해"로 바꾸면 된다. 헌법에서 글자 한 자의 차이는 이다지도 크다.'(p196)


<지금 다시, 헌법>은 1987년 10월 29일 제정된 제10호 헌법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대통령제의 문제점은 '헌법개정'이라는 문제에 있어 폭넓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머지않아 헌법의 개정 가능성이 매우 높아보인다. 그렇게 생각했을때 곧 사라질 헌법인 10호 헌법을 설명한 <지금 다시, 헌법>을 지금 읽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게 된다. 그렇지만, <지금 다시, 헌법>을 읽은 후 지금이 다시 헌법을 읽어야할 때(Kairos)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리뷰 서두에서 언급한 저자의 서문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헌법을 왜 읽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쉽지 않다.... 손가락으로 조문을 짚어가며 헌법을 읽는 사람들은 거기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 서문 中-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블랙리스트', '민간인사찰'등의 문제와 얼마전 통과된 '테러방지법'의 위험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만일 우리가 평소 헌법에 대해 잘 인식하고 있어서 "블랙리스트"가 '헌법 제22조 [학문, 예술의 자유와 저작권등 보호] 1항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는 헌법을 위반한 사항이라는 것과 "테러방지법"이 '헌법 제18조 [통신의 비밀]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라는 헌법을 위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등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알고 있었다면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 것이다.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당했다는 사실을 '이념투쟁'등으로 몰고가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가를 전국민이 인지했다면, 지금의 혼란은 짧게 가져갈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다시, 헌법>을 읽은 후 헌법은 대한민국을 정의하는 선(線)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헌법안에는 현재 대한민국이 운영되는 원칙(原則)이 있으며, 우리가 가야할 지향(志向)이 담겨있고 우리사회의 모습이 담겨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헌법을 안다는 것은 지금의 우리 자신을 안다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치 컬러링북(coloring book)의 도안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으면, 그 안의 채색을 아무리 잘해도 좋은 그림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우리 삶의 도안을 제대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삶의 도안은 다음 11차 헌법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림1] 컬러링북( 그림 출처 : http://www.childbook.org)


<지금 다시, 헌법>은 현행 헌법을 다시 살펴볼 때 일반인들이 헌법에 쉽고 편안하게 접근하면서도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아직 읽지 않은 분들은 다음의 질문에 대해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한 후 책을 읽는다면 더 의미있는 독서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그리고, 책을 펼쳐서 당신이 꿈꾸는 세상이 헌법에 녹아있는지를 살펴보고, 만일 그러한 내용이 없다면 그 내용은 어떤 내용으로 포함되기를 원하는지 고민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당신의 그러한 고민이 다음 대통령의 공약에, 그리고 헌법의 개헌사항으로 포함되기를 마음깊이 간직하고 선거등을 통해 현실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한다면 비로소 이 책의 독서가 끝나는 것이라 생각된다. 


당신의 바람과 생각을 담을 수 있는 헌법이 제11호 헌법이 되기를 바라면서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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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02-19 18: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헌법에는 현재의 원칙이 있지만, 향후 지향을 위해 달라져야 할 것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냥 제 바램입니다. ^^ 말씀처럼 그냥 우리사회의 모습이 담겨있어 답답합니다. ㅠ

겨울호랑이 2017-02-19 18:56   좋아요 2 | URL
그렇습니다..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에 동감입니다. 헌재의 원칙이라고는 하지만, 헌법 자체가 정치적인 결과물임을 먼저 생각한다면 헌재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는 명확할 것 같은데 다소 아쉽네요..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님 지난달 많이 바쁘셨는데 지금은 좀 나아지셨는지요?^^: 남은 일요일 잘 보내시고 충전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2017-02-19 2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20 0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월 18일 제16차 촛불 집회가 있는 날입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촛불 집회 모처럼 나왔습니다. 오늘 제사가 있어 밤늦게까지 함께하지는 못해 일찍 다녀갑니다.

강풍이 부는 날에도 많은 분들이 집회를 준비하고 계신 모습을 보니 마음이 절로 숙연해 집니다..

자유발언을 듣고 들어가는 길에 이오덕님의「내 손안의 헌법」을 사가지고 들어갑니다.

아직 집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임에도 다시 한 번 우리의 가치와 지난 시간동안 말하지 못하고 당했던 시대의 아픔을 짧게 나마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 집회에 참석하실 이웃분들은 바람이 제법 차가우니 마스크나 귀돌이 등도 준비하시면 좋을듯합니다. 저는 이만 돌아가신 할아버지 뵈러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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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7-02-18 18: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추운날 고생하셨습니다. 저도 매번 나가고 싶은데 상황이 여의치않네요.
^^;

겨울호랑이 2017-02-18 20:56   좋아요 2 | URL
부끄럽게도 저도 많이 참석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런저런 일이 있어 마음같지는 않네요.. 이제 몇번 안 남았으니 조금 기다리면 봄이 오겠지요.. 시이소오님 감사합니다^^:

yureka01 2017-02-19 09: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거 수고하셨습니다....가서 보고 온다는 게 어딥니까.^^.마음을 실어 주셨으니까요.

겨울호랑이 2017-02-19 09:35   좋아요 2 | URL
유레카님 감사합니다..^^: 다음주에는 거의 마지막이 될 듯하니 온 가족을 몰고 나가야할 듯합니다..ㅋ 편한 주말 되세요
 
신기관 한길그레이트북스 143
프랜시스 베이컨 지음, 진석용 옮김 / 한길사 / 2016년 2월
평점 :
품절


<신기관(Novum Organum)>은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 ~ 1626)이 저술한 책으로 전체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권은 '(우상)파괴편'이며, 제2권은 '(진리)건설편'으로 불리운다. 제1권에서는 유명한 '베이컨의 4가지 우상'이 언급되면서 귀납법을 통한 학문의 추구를 강조하고, 제2권에서는 '열'을 통해 학문추구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번 리뷰에서는 1권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베이컨의 귀납법(歸納法)


가. 베이컨과 데카르트


'진리를 탐구하고 발견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으며, 이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하나는 감각과 개별자에서 출발하여 일반적인 명제에 도달한 다음, 그것을 [제1]원리로 혹은 논쟁의 여지 없는 진리로 삼아 중간 수준의 공리를 이끌어내거나 발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감각과 개별자에서 출발하여 지속적으로, 그리고 점진적으로 상승한 다음, 궁극적으로 가장 일반적인 명제에까지 도달하는 방법이다. 지금까지 시도된 바 없지만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과학적]방법이다.'(제1권 19)


[그림1]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 ~ 1650) ( 출처 : 위키피디아)


베이컨과 같은 시기에 대륙에서는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 ~ 1650)가 활동하고 있었다. 데카르트는 '방법론적 회의'를 통해 철학의 제1명제(Cogito ergo sum)를 도출하고 그로부터 그의 사유를 넓혀갔다고 한다면(연역법 演繹法), 베이컨은 귀납법만이 진정한 과학적인 방법임을 강조한다. 베이컨 자신은 '귀납법'만이 진정한 과학적 방법이라고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깊이 와닿지 않는다. 제2권에서 제시된 그의 과학적 분석을 따라가다보면 이러한 점을 특히 더 느끼게 되는데, 그 이유는 과학(科學)적 방법에 '수학(數學)'이 빠졌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나. 베이컨 식(式) 귀납법의 한계 : 정량적 분석의 한계


역설적으로 베이컨이 비(非)과학적 방법이라고 비판한 '연역법'의 데카르트가 수학을 강조한 반면, 정작 '과학적인' 베이컨의 방법론에서는 수학이 빠져있다는 것은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특히, 다음의 베이컨의 진술에서 더욱 그러하다.


'일반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과거의 무한(無限)과 미래의 무한(無限)'사이의 구별도 결코 성립할 수 없다. 만일 양자의 구별이 성립한다면, 하나의 무한이 또 하나의 무한보다 더 큰 것이 되고, 더 작은 무한은 점차 줄어들어 마침내 유한에 근접하고 말 것이다.'(제1권 48)


여기서 말하고 있는 '과거의 무한', '미래의 무한'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 ~ 1274)의 <신학대전>에서 나온 개념이다. '과거의 무한'과 '미래의 무한'을 '음의 무한대(마이너스 무한대)', '양의 무한대' 라는 개념으로 대칭시켜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베이컨의 논술(두 개의 무한이 공존할 수 없다는 이론)이 맞지 않음을 우리는 수학의 좌표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베이컨 이후에 '극한', '미적분' 개념이 등장하기 때문에 베이컨을 비판할 이유는 되지 못하겠지만.


[그림2] 정발산 수열(출처 : http://hanmaths.tistory.com/95)


'설명의 편의를 위해 오늘날 우리들이 자연에 대해 적용하고 있는 추론을 (경솔하고 미숙한 것인만큼) "자연에 대한 예단(豫斷, anticipation)"이라 부르기로 하고, 사물로부터 적절하게 추론된 것을 "자연에 대한 해석(解析, interpretation)"이라고 부르기로 하자.'(제1권 26)


베이컨은 자신이 주장한 '귀납법'을 '자연에 대한 해석'으로 부르며, '연역법'을 사용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을 펼친다. 여기에 등장하는 개념이 '우상(偶像, idola)'이다.


2. 베이컨의 우상(偶像)


가.  idola와 idea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우상(偶像, idola)과 신(神)의 이데아(idea) 사이에는, 다시 말해 황당무계한 억측과 자연에서 발견되는 피조물의 사실상의 모습 사이에는 실로 큰 차이가 있다.'(제1권 23)


베이컨은 자연의 실체를 왜곡하는 인간의 편견을 4가지 우상으로 정리하고,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귀납법'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인간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우상에는 네 종류가 있다. (편의상) 이름을 짓자면 첫째는 '종족(種族)의 우상'(iolda Tribus 인간성 자체에 뿌리막고 있는 우상)이요, 둘째는 '동굴(洞窟)의 우상'(idola Specus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우상)이요, 셋째는 '시장(市場)의 우상'(idola Fori 인간 상호간의 교류와 접촉에서 생기는 우상)이요, 넷째는 '극장(劇場)의 우상'(idola Theatri 철학의 다양한 학설과 그릇된 증명방법에서 생기는 우상)이다.(제1권 39)... 이러한 우상들을 몰아낼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은 참된 귀납법으로 개념과 공리를 형성하는 것이다.'(제1권 40)


나. 우상의 극복 방법 : 귀납법


베이컨은 '종족의 우상'을 제거하기 위해 '자연을 분해하는 방법(제1권 51)'을, '동굴의 우상'을 제거하기 위해 '자신의 지성을 강하게 의심하는 방법(제1권 58)'을, '시장의 우상'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황당한 학설을 거부하거나,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여 극복하는 방법(제1권 60)'을, 마지막으로 '극장의 우상'을 극복하는 방법으로는 '학문의 방법(귀납법)(제1권 61)'을 활용하여 극복할 수 있다고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베이컨은 특히 '시장의 우상'을 강조한다.


'시장의 우상은 모든 우상 중에서 가장 성가신 우상으로서, 이른바 언어와 명칭이 [사물과] 결합해 지성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성이 언어를 지배한다고 믿고 있지만, 실상 언어가 지성에 반작용하여 지성을 움직이는 일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수학자들처럼) 차라리 처음부터 정의에서 출발해서 논쟁을 차근차근 전개해나가는 쪽이 훨씬 낫다.' (제1권 59)


다. 시장의 우상과 비트겐슈타인


베이컨의 '시장의 우상'의 내용은 후대의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 ~ 1951)의 그의 전기 철학 저서인  <논리-철학 논고>에서 언급한 다음의 내용을 연상케 한다. 베이컨의 조언을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비트겐슈타인은 '수학'을 통해 '언어 논리에 대한 오해'를 극복해 나간다. 비트겐슈타인에 대해서는 아직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에 나중에 자세히 볼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위키백과]의 해당 내용을 옮겨본다.


'이 책은 철학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으며, 내가 믿기에는, 이러한 문제들의 문제 제기가 우리의 언어 논리에 대한 오해에 기인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의 전체적인 뜻은 대략 다음의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말해질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 나에겐 여기서 전달된 사고들의 진리성은 불가침적이며 결정적이라고 보인다. 따라서 나는 본질적인 점에서 문제들을 최종적으로 해결했다고 생각한다.'(출처 : <논리-철학 논고>, 이영철 옮김, 책세상) 


[그림3]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 ~ 1951)(출처 : 위키피디아)


3. 베이컨의 학문 연구 방법


베이컨은 <신기관> 제1권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그의 귀납적 연구 방법을 독자들에게 제안한다. 귀납법이라는 방법이 bottom-up 방식이기 때문에 충분한 사례의 수집과 이상치(outlier) 제거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음을 베이컨은 강조한다.


'내 생각으로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자연지와 경험지를 앞에 놓고 다만 두 가지만 주의하면 별다른 기술이 없어도 정신 본래의 힘만으로도 우리가 설명한 자연에 대한 해석 방법에 도달할 수 있다. 첫째로 고정관념을 버리는 일이며, 둘째로 적당한 시가가 될 때까지 성급한 일반화의 유혹을 물리치는 일이다.'(제1권 130)


'어떤 사물의 본성을 오직 그 사물 속에서만 찾으려 하는 것은 하책(下策) 가운데 하책이다. 어떤 사물에는 숨어 있는 본성이 다른 사물에는 아주 명백하게, 거의 손에 잡힐 듯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물에서는 경이롭게 생각되는 일이 다른 사물에서는 거의 주의를 끌지 못하는 일이 왕왕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사물에 숨어 있는 본성은 그 사물에 대한 연구만으로는, 그 사물에 대한 실험과 고찰만으로는 알아내기 어렵다. 그런 본성이 아주 분명하게, 흔하게 나타나는 다른 사물을 보아야 한다.'(제1권 88)


'학문과 기술의 발견 및 증명에 유용한 [참된] 귀납법은, 적절한 배제와 제외에 의해 자연을 분해한 다음, 부정적 사례를 필요한 만큼 수집하고 나서 긍정적 사례에 대해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제1권 105)


<신기관>은 '과학적 학문 연구'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음에도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신기관((Novum Organum))> 전체에서 베이컨이 그렇게 비판했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C.)의 저서 <형이상학>, <범주들 명제에 관하여> 등 구(舊)Organum에 해당하는 저술과 큰 차이가 없어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이 가치가 있는 것은 베이컨의 '학문을 대하는 정신'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림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C.) (출처 : 나무위키)


'그런데 오늘날에도 이런 헛된 숭배에 빠져들어 <창세기> 나 <욥기>와 같은 성경 구절에 기대어 자연철학을 세우려고 애쓰고 있는 자들이 있으니, 이것은 실로 "산 자들 가운데서 죽은 자를 찾는"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신학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이 이처럼 어리석게 결합되면, 공상적인 철학이 등장하기도 하고 이단적인 종교가 출현하기도 하는 것이니, 그와 같은 헛된 숭배는 어떻게든 막아야 하고 규제해야 한다.'(제1권 65)


마치, 위의 글은 베이컨이 21세기 미국으로 돌아와 '진화론'과 '창조론' 다툼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쓴 것과 같은 느낌마저 드는 것을 보면 <신기관>은 역시 우리 시대에도 고전이라 생각된다.


ps. '우상(偶像)'이라고 할 때는 잘 몰랐는데 idola와 idea라고 놓고 보니, 베이컨이 용어 선택을 할 때 언어적인 측면을 많이 고려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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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17-02-15 16: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베이컨은 대단합니다. 베이컨 까지 다 소개해주시는 호랑이님도 대단하시고요 ^^

겨울호랑이 2017-02-15 16:10   좋아요 0 | URL
에고.. 사마천님 과찬이십니다. 저도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4가지 우상‘만 접하다가 <신기관>을 통해 전체 맥락을 뒤늦게 알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사마천님, 행복한 오후 되세요.

yureka01 2017-02-15 17: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학이 없었더라면 과학도 없었을 것입니다..^^..통계학 경제학 자연과학.. 기계공학 ..건축공학..전부 큰 줄거리는 수학에서 수학으로 끝나죠..

겨울호랑이 2017-02-15 17:26   좋아요 2 | URL
네^^: 유레카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그런데, 수학은 언급하지 않는 베이컨의 과학은 ‘팥없는 붕어빵‘느낌입니다. ㅋ 감사합니다.

컨디션 2017-02-15 1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분야의 책은 저에겐 접근자체가 어려운데, 리뷰까지 이렇게 마치 한편의 논문형식으로 쓰시다니, 입이 떡..벌어집니다.
베이컨은 데카르트에 비하면 장수했군요. 아버지와 아들뻘..(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ㅎㅎ)
참, 베이컨 인물사진(그림?)은 왜 안올리셨는지요.(이왕 이리 된 거, 이런 걸 궁금해합니다ㅠ)

겨울호랑이 2017-02-15 18:51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컨디션님^^: 베이컨의 저작 3부작이 「학문의 진보」, 「신기관」, 「새로운 아틀란티스」3부작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제 리뷰도 순서를 따라가다보니 2부까지 왔네요^^: 말씀하신 베이컨 사진은 1부 「학문의 진보」에 넣어 중복을 피하고자 여기에서는 넣지 않았습니다. 작은 것에도 궁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컨디션님 편한 저녁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