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성학 개론

 

대학교 일이다. 90년대에는 아직 여성학이라는 과목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남학생이 여성학을 수강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남학생이 여성학을 수강하면, '남자'라는 이유 하나로 "A"를 준다는 일종의 '남학생 가산점'이 있다는 유언비어가 돌았다. 그 말에 혹해서 '여성학 개론'을 친구와 함께 수강신청 했었다. 예상대로 정원 50명 중 친구와 나 둘만 남자고, 48명이 여성으로 강의가 진행되었다. 다른 과목 같으면 이런 '청일점'이 좋은 상황이겠지만, 여성학 과목에 있어 청일점은 일종의 '이방인' 같은 존재였다. 과목의 특성상 남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 부조리한 사회구조 등이 강의 내용의 다수였고, 강의장은 대다수 수강생들의 공분(公憤)으로 가득차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나는 남자였기 때문에 그 분노에 대해 심적으로 공감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어느 날 가부장제에 대해서 수업이 진행되었을 때였다.
'가부장제'라는 사회구조에 대한 수강생들의 분노는 거의 폭발 직전이었고,  교실 안에 있는 두 남자의 존재를 '이방인'이 아닌 '공공의 적' 수준으로 격상시킬 정도로 험악해져 갔었다. 그러한 분위기를 교수님도 감지하셨을까. 그때 그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이 험악한 분위기에서 우리를 '공공의 적'에서 같은 '피해자'로 돌려 놓았다.

 

'가부장제의 혜택을 모든 남성이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다수의 힘없는 남성 역시 가부장제의 폐해 속에서 더 상위의 남성에 의해 억압받는 구조가 가부장제인 것입니다.... 가부장제의 모든 여성과 다수의 남성이 피해를 보는 제도인 것입니다.'

 

대강 이런 내용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나와 친구는 '힘없는 남성'이 되어 다른 피해자들과 같이 분노하면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날 수업은 '여성학 개론' 개강 이후 처음으로 여성과 같은 입장에서 들은 수업이었다.

 

2. 우리나라의 성별 격차 문제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지난 2016년 6월경제활동 참여와 기회, 교육, 건강, 정치 권한 등 4개 분야에서 성별 격차를 수치화해서 145개국의 순위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성평등 지수는 0.651(1에 가까울 수록 평등)로 145개 조사 대상국 중 115위였다. (Economy Insight 7월호 中)

 

우리나라 여성의 지위는 중국(91위), 일본(101위)에 비해서도 낮은 순위에 속하며, 우리는 이러한 객관적 수치를 통해서 확인된 성별 격차를 당연히 줄여야 한다. 여기에는 이견(異見)이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사회에서는 성별 갈등의 문제가 더 커지는 현실을 우리는 보고 있다. 지난 5월 강남역 화장실에서 여성이 살해된 이후 최근 메갈리아 논쟁까지. 이러한 성별 갈등을 보면서, <향연> 중 아리스토파네스의  '남녀추니' 이야기가 생각난다.

 

3. 플라톤 <향연> 중 '남녀추니' 이야기

 

오래전 우리들의 본성은 바로 지금의 이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 다른 유의 것이었네. 우선 인간들의 성(性)이 셋이었네. 지금처럼 둘만, 즉 남성과 여성만 있는 게 아니라 이 둘을 함께 가진 셋째 성이 더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의 이름만 남아 있고 그것 자체는 사라져 버렸지... 그런데 그것들은 힘이나 활력이 엄청났고 자신들에 대해 대단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신들을 공격하게 되었네....그래서 제우스와 다른 신들을 그들에 대해 무슨 일을 해야 할지를 숙의하면서 어쩔 줄 몰라 막막해 하고 있었네... 그래서, 제우스가 간신히 생각을 짜내어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네. '어떻게 하면 인간들이 계속 살아 있으면서도 힘이 약해져서 방종을 멈추게 될 수 있을지 그 방도를 나는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그들 각각을 둘로 자르겠다. 그러면 한편으로는 그들이 약해지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수가 더 많아지게 되어 우리에게 더 쓸모 있게 될 것이다.'.(플라톤, <향연>정암학당 (2010)  189d-190d)

 

4. 진정으로 이익을 보는 자는 누구일까

 

가부장제는 전형적인 성별 불평등의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 다수가 피해자인 사회 구조다. 비록 가부장제는 최근에 많이 약화되었지만, 힘있는 남성 위주의 사회 제도인 것은 지금도 여전하다. 다수가 불행한 사회 제도의 개선을 위해서는 남성만 또는 여성만의 노력으로는 이룰 수 없다. 사회전체의 합의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성별간 소모적인 논쟁이 지난 4개월간 이어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달라진것은 없으며 끊임없는 논쟁만 확대재생산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논의를 멈추고 다음과 같은 사항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당신이 도박판에서 도박을 시작한 지 30분이 지나도 누가 호구인지 모른다면, 바로 당신이 호구다.'

 

  우리는 논쟁을 잠시 멈추고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 시점에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우리가 호구는 아닐까, 아니면 남성과 여성을 갈라놓아서 이득을 보는 제우스는 누구일까 생각을 해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렵겠지만 자신과 관점이 다른 사람을 적대하기보다는 포용해서 함께 풀어가려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성별 불평등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우리의 절반이 여성이고, 우리의 다른 절반은 남성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작은 움직임이 사회의 큰 변화가 되어 세상을 바꾼 사례를 우리 각자가 알고 있다. 이제는 성별 불평등에 대한 관점이 사회적으로도 공유되었으니,우리가 성별격차를 줄이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작은 실천을 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날이 많이 더우니 영양가 없는 말만 많아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주부터는 날이 선선해져야할텐데, 광복절을 건국절이라고 부르시는 분들 때문에 다음 주도 아마 더울 것 같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6-08-13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3 2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3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3 2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lavis 2016-08-13 2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여성학 들으면서..처음으로 남자가 되고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남자가 되은 이유는 단 한가지 였어요 여성학을 공부하는 남자가 되고싶었거든요 남자가 되고픈 꿈을 겨울호랑이님이 이뤄주셨?^^

겨울호랑이 2016-08-14 00:29   좋아요 1 | URL
여성학이 존재하는 반면 남성학이 없는 이유는 아마 모든 학문이 남성적이라는 반증이라 생각합니다. 여성학이라는 학문이 필요없도록 모든 분야에서 여성의 시각, 소수와 약자의 입장이 배려되어야한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clavis 님의 멋진 로망과는 달리 저는 학점 때문에 신청했었답니다. ㅜㅜ 감사합니다. 편한 밤 되세요 clavis 님

나와같다면 2016-08-14 00: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랜 옛날,
우리는 남자와 여자로 갈라지기 전
하나의 쌍으로 이루어진 완성체였다고 한다

하지만 완성체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능력에 위협을 느낀 제우스 신은
그들을 둘로 갈라내 버렸다

서로 떨어지게 된 인간은 하나로 붙어있을때
모르던 외로움의 고통을 알게 되고,
자신이 잃어버린 반쪽과 다시 하나가 되고 싶어한다

나는 기억해 두개로 갈라진 후
너는 나를 보고 나는 너를 봤어 널
난 알아 네 영혼 끝없이 서린 그 슬픔
그것은 바로 나의 슬픔

겨울호랑이 2016-08-14 00:37   좋아요 0 | URL
멋진 내용이네요 감사합니다 나와같다면님.. 그런데 떨어져서 생긴 외로움의 고통의 원인을 상대방 탓으로 돌려 증오하는 요즘인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clavis 2016-08-14 0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멋지기만 한걸요
이천년 동안 성서 안에서의 여성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래서 여성신학을 들을때 여성학과는 또 다른 신세계가 오픈되는 기분이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6-08-14 00:46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여성신학은 잘 몰랐는데 clavis 님 덕분에 호기심이 생기네요. 해방신학과는 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나중에 여성신학에 대해 궁금한 부분 clavis 님께 질문드려도 될까요?^^

clavis 2016-08-14 0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문우답이 될 가망성이 농후하지만요^^위노나 게이틀리의 ˝촉촉하고 따뜻하고 짭조름한ㅡ흑흑 기억력 쇠진ㅡ하느님˝을 먼저 추천드려요 분도출판사의 책입니당

겨울호랑이 2016-08-14 01:07   좋아요 0 | URL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이기적 유전자 - 2010년 전면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진화론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대표작이다. 


이 책의 핵심은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이 유전자가 만들어 낸 기계'(p40)라는 것이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논란이 많았다는 말을 다 읽고 나니 이해하게 된다. 마치,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의 소설<우주 전쟁(The War of the Worlds>에서 화성인의 정체가 '큰 세다리 괴물'이 아닌 우리보다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허탈해하는 소설 속 주인공만큼이나 많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리라.




<이기적 유전자>의 내용을 크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처음에 구성 요소 분자들이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자기 복제 능력을 가진 유전자가 우연하게 생겨나게 된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소진되는 구성 요소 분자를 대신하여 생존하기 위해 유전자는 운반자(개체)를 만들어 냈고, 유전자는 생존하기 위해 진화를 한다.


유전자는 그저 존재할 뿐이다.(p72) 그렇지만, 유전자는 계속 존재 하기위해 유전자는 개체의 뇌와 신경계를 프로그램을 통해 통제한다. 그러한 통제의 결과 개체는 '이타적'으로 또는 '이기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것들은 모두 '유전자의 생존'을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구체적으로, 동물의 행동은 세대간/성(性)간/사회적으로 보이는 개체의 행동(배신, 사기, 협력, 보복등)은 모두 이러한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다만, 인간의 경우에는 '문화'라는 특이성이 존재한다.(p318). 인간의 경우 기존 동물/식물계에는 포함되지 않는 새로운 문화 전달의 단위가 필요하며, 저자는 이를 밈(meme)라고 규정한다. 우리가 '유전자의 운반자'로 만들어졌지만, 이러한 밈의 존재와 능력으로 인해 주체적으로 우리 삶을 설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



과학서적은 많이 읽지 못한 편이라 끝까지 읽을 수 있을지 걱정했으나, 저자가 일반인들을 고려하여 상세하게 내용을 풀었기 때문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이러한 저자의 배려는 복잡한 수식없이 '진화'에 대해 풀어가는 전체적인 내용 구성에서도 나타난다. 
대신, 간단한(?) '게임이론(Game Theory)'를 사용하여, 유전자의 선택을 설명한다. 흔히, '죄수의 딜레마'로 잘 알려진 게임 이론 중 책에서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ESS : 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은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점에 이른 상태의 전략이다.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은 게임 이론에서 경쟁자 대응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하면 서로가 자신의 선택을 바꾸지 않는 균형상태를 말한다.(위키피디아)

다른 이야기지만, '내쉬 균형'은 영화 <뷰티풀 마인드(2001)>에 나오는 내쉬 (John Forbes Nash, Jr.)에 의해 우리에게도 다소 유명하다. 러셀 크로우가 열연한 작품으로 경제학과 수학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추천한다.(진정한 천재들이 어떤 존재들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고 '감히 나 같은 범인(凡人)이 경제학을 전공하다니..' 하면서 좌절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장혁, 박소담이 주연한 드라마 '뷰티풀 마인드'와는 한국에서 상영했다는 사실 빼고 관계가 없다.




이 책을 읽고서 전반적으로 '진화론'과 그 영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다윈의 <종의 기원>의 영향을 제한적으로 생각을 했었다. 인간의 창조라는 영역에서 창조론으로 대표되는 서양 신학(神學)과의 갈등 정도의 막연함이 진화론의 사회적 영향에 대한 내 인식이었다. 그렇지만,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거의 모든 학문분야가 '진화론'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우선 생각나는 몇 가지만 적어보자.


'유전자-개체'의 관계를 '개체-사회'로 확대시킨다면, 개인 윤리학과 공동체 윤리학이 과연 같은 것인가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주로 공동체 윤리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데, 이러한 공동체 윤리가 개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도 진화론적인 해석이 필요할 것 같다.  신학(神學)적으로는 구약시대에 논의된 유대민족의 구원 문제가 과연 신약시대 개인의 구원과 연장선상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歷史) 적으로는 역사의 발전 문제와 유전자의 우열관계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며,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역사 현상에 대한 유전학적인 관점에 대한 접근도 제기될 수 있을 것 같다. 음악적으로는 한 시대를 풍미한 음악 사조에 대한 생물학적인 접근도 등장하는 등 사회 전반에 있어 그 영향이 크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기적 유전자>는 일반인을 위한 교양서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적인 내용은 다분히 절제되어 있지만 여기에 담긴 내용을 통해 지금까지의 세계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이 책을 충분히 느낀 것이라 생각된다.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hapter13 유전자의 긴 팔'에서 예고한 저자의 또 다른 저서 <확장된 표현형>을 통해서 더 깊이있는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릇 피(血)와 기운(氣)이 있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소, 말, 돼지, 양, 벌레, 개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결같이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어찌 큰 놈만 죽기를 싫어하고, 작은 놈만 죽기를 좋아하겠습니까? 그런즉, 개와 이의 죽음은 같은 것입니다. ... 당신은 물러가서 눈 감고 고요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하여 달팽이의 뿔을 쇠뿔과 같이 보고, 메추리를 대붕(大鵬)과 동일시하도록 해 보십시오. 연후에 나는 당신과 함께 도(道)를 이야기하겠습니다." - 이규보, <슬견설(蝨犬說) 中>


이규보가 말한 도(道)는 진화론이 아니겠지만,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난 후의 독자라면 '개'와 '이'의 죽음이 '개체의 소멸'이라는 측면에서는 완전히 동일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어느 시점에 자기 복제자(replicator)가 우연히 생겨났다. 자기 복제자는... 스스로의 복제물을 만든다는 놀라운 특성을 지녔다. 그 탄생은 전혀 우연히 발생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어날 성싶은 일과 일어날 성싶지 않은 것을 판단할 때 수억년이라는 세월은 우리에게 낯선 시간이다. 만약 1억년 동안 매주 축구 경기 내기를 하면 분명히 여러 차례 횡재할 수 있을 것이다.`(p58)

`자기 복제자가 점점 많아지면서 구성 요소 분자는 점점 더 소진되어 결국 희소하고 귀중한 자원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 자원을 차지하기 위하여 자기 복제의 여러 가지 변종들 내지는 계통들이 경쟁했을 것이다... 자기 복제자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계속 존재하기 위해 자신을 담을 그릇, 즉 운반자 vehicle까지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p64)

`유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미리 생존 기계의 체제를 만드는 것뿐이다. 그 후 생존 기계는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가 되며 유전자는 그저 수동적인 상태로 그 안에 들어앉게 된다.`(p113)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타적이든 이기적이든 동물의 행동은 유전자의 제어 하에 있으며, 그 제어가 간접적이기는 하나 그와 동시에 매우 강력하기도 하다는 것이다.`(p123)

`유전자는 우두머리 프로그래머이며 자기의 생명을 위해 프로그램을 만든다. 유전자는 자기의 생존 기계가 생애에서 부딪치는 모든 위험을 그 프로그램이 얼마나 잘 대처하느냐로 심판받는다.`(p127)

`우리가 비록 어두운 쪽을 보고 인간이 근보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우리의 의식적인 선견지명, 즉 상상력을 통해 장래의 일을 모의실험하는 능력이 맹목적인 자기 복제자들의 이기성으로 인한 최악의 상황에서 우리를 구해줄 것이다.`(p335)

`우리는 유전자의 기계로 만들어졌고 밈의 기계로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p335)


댓글(9)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억의집 2016-08-12 15: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기적 유전자 읽고 엄청 충격 받았었어요. 첨엔 너무 위험한 사유지 않나 싶었는데 결국 도킨스가 말하는 우리는 유전자의 명령(?)속에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구나 싶더라구요. 전 종교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도킨스나 윌슨의 진화 생물학과 물리관련 책 읽으면서 종교를 완전 버렸어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것보다 도킨스가 굉장히 뛰어나고 위험한 사상가이기도 한 것 같아요. 도킨스가 글이 완고하죠.

겨울호랑이 2016-08-12 16:2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기억의집님 저도 도킨스의 글을 통해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다만 진화론과 도킨스이론에 대해서는 좀더 다각적인 조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향후에도 기억의집님의 좋은 의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북프리쿠키 2016-08-12 1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어 사둔 책이예요~!! 아 물론 만들어진 신도 재워놓았구요^^ 도킨스의 힘을 느껴보고 싶네요!!

겨울호랑이 2016-08-12 17:44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북프리쿠키님^^; 좋은 독서가 되실거라 생각해요 편한 저녁 되세요^^

여누애비 2016-12-09 15: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 호랑이님 제가 독서 초보자인데 종의기원 같은 책을 읽기전에 초보자가 읽을만한 책 없을까요?진화론에 관한 초심자 책같은거 있음 추천해주실수 있는지요? 무리한 부탁이지만 염치없게 부탁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16-12-09 15:2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통통이님
저도 초보자인지라 제가 읽은 책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식인 마을 시리즈 중에서<다윈 & 페일리 : 진화론도 진화한다 >가 전체적인 ‘진화론‘의 흐름과 영향등이 잘 정리된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리처드 도킨스의 <현실, 그 가슴뛰는 마법>은 칼라로 되어 있고 전체 과학 여러 분야와의 관계도 잘 정리되어 개념잡기에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 통통이님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여누애비 2016-12-09 15: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친절하게 가르쳐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ㅠㅠ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겨울호랑이 2016-12-09 15:27   좋아요 0 | URL
^^: 네 통통이님께 도움이 되어 저도 기쁩니다. 행복한 금요일 되세요

여누애비 2016-12-09 15: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겨울호랑이님도 즐건 주말되세요^^
 
그리스 비극의 이해
천병희 지음 / 문예출판사 / 200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리스 비극의 이해>는 그리스 고전의 번역학자 천병희 교수의 그리스 비극(悲劇)에 대한 해설서다. 책의 목적과 주요 내용은 작가의 머리말을 따라가 보자.

이 책에서는 그리스 비극의 기원에 관한 설명에 이어 3대 비극 작가들의 생애에 관한 자료들과 현존하는 비극 31편 및 사튀로스 극 1편에 대한 해설이 제공될 것이다. - 천병희-

특히, 3대 그리스 비극작가인 아이스퀼로스(Aischylos), 소포클레스(Sophokles), 에우리피데스(Euripides)의 생애와 작품 소개가 책의 주요 내용이다.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짧게 이름만 들어봤던 이들이지만, 그들의 작품은 그리스 신화와 <일리아스>, <오뒷세이아>의 재해석이 대부분이다. <그리스 비극의 이해>를 통해 그리스 비극의 주요 내용이 낯설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그리스 비극에 세 작가가 미친 형식적인 영향

배우의 수를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늘린 것은 아이스퀼로스가 처음이며, 소포클레스는 배우의 수를 두 명에서 세 명으로 늘리고 무대 배경을 도입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p11)


아이스퀼로스는 이런 의미에서 비극의 창시자이고, 소포클레스는 비극의 완성자라고 불린다.

우리의 판소리가 소리꾼 1명에 의해 진행되는데 반해, 그리스 비극에서는 주요 화자인 배우가 2~3명으로 아이스퀼로스와 소포클레스를 거치면서 늘어가고 있는 것은 대조적이다. 배우의 수가 늘어난 이유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아이스퀼로스가 배우의 수를 1명에서 2명으로 늘려 대화가 드라마의 중심이 되게 하였고, 소포클레스가 다시 배우의 수를 2명에서 3명으로 늘린 것도, 인간이 주역인 드라마에서는 좀더 폭넓은 인간 관계를 통하여 다양한 시각에서 주인공의 성격과 의도와 행위를 조명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p114)

서양에서는 이처럼 배우의 수(數)를 늘려가면서, 보다 복잡한 인간 내면을 표현하려고 했던 반면, 우리나라의 전통 판소리에서는 전지(全知)적 시점에서 사건을 조명하려고 한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형식의 우열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인간(人間) 내면의 감정에 대해서는 그리스에서 보다 많은 관심이 있었고,  그러한 관심은 사실적인 그리스 미술(美術)에도 반영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편, 세 작가들이 사용한 주요 기법과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아이스퀼로스의 비극은 동일한 행위가 한 순간에 두 얼굴을 가진다는 특징을 가지며, 이러한 특징은 <아가멤논>에서 잘 나타난다.(p49)

소포클레스 비극은 '비극의 확대(parekstasis tragica)'라는 기법을 통해 인간의 생각과 현실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p92)는 면에서 다른 작가들과 차별점이 있으며, <아이아스>에 이러한 점이 잘 나타난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에서는 '상황 희극(狀況 喜劇)'적인 면을 통해 희극에 영향을 주었다.(p200)

2. 세 작가의 내용적 특성

 

살라미스 해전에서 아이스퀼로스는 전사로서 몸소 이 전투에 참가했고, 소포클레스는 소년 합창단의 선창자로서 이 전투의 승리를 감사드리는 찬신가를 주도했으며, 에우리피데스는 전투가 있던 바로 그 날 태어났다....

아이스퀼로스가 평생동안 자신의 드라마에서 신들의 위대함을 찬미하고, 신들의 섭리에 관하여 사색했다면, 아테나이의 욱일승천(旭日昇天)과 서산낙일(西山落日)을 다 겪은 소포클레스는 아이스퀼로스 못지않게 신들의 힘과 위대함을 인식하고 신을 공경하는 경건한 생활을 하지만, 신은 알 수 없는 존재였기에, 소포클레스는 인간 존재의 한계성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다른 세대로부터 이 승리를 전해들었을 뿐인 에우리피데스는 소피스트(sophistes)들의 상대주의에도 영향을 받아 모든 정신적 유산에 대해 비판적으로 수용하려는 태도를 취했다.(p80)

공통적으로 세 작가 모두 그리스 신화에서 그 소재를 가져와서 작품을 구성했다. 청중들과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었지만, 그들의 해석은 저마다 달랐다. 재해석된 작품의 내용은 동일하지만  다른 주제로 씌여져 있기때문에, 마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랴소몽(羅生門)> ,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같은 매력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세 작가의 다른 시선을 생각하면서 작품을 해석하는 것도 그리스 비극을 감상하는 다른 매력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작품 해석을 보니 그리스 비극에는 고대 신화를 바탕으로 구성되었으면서도 당대의 현실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담겨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상은 2000년의 시간이 경과하면서 빛이 바랜 채색화처럼 되버렸지만, 그 안에 뼈대를 구성하는 인간에 대한 공통된 고민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호소력을 가지는 것 같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공통된 고민이 생명력을 가지고, 작품들을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그리스 비극의 이해>를 읽기 전 <그리스 비극 걸작선>을 먼저 읽었다. 그리스 비극에 대한 사전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접한 비극(悲劇)은 내게 다른 의미에서 비극(비劇)이었다. 그리스 비극에 대한 이해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작품을 접하고는 '다시 읽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섣부른 판단이었다. 문학작품에 있어서는 특히 작품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리스 비극의 이해>는 충분히 우리에게 그리스 비극에 대한 안내자의 역할을 수행해 준다.

그리스 비극에 있어 불행한 결말보다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관련된 비극적 상황이 비극의 필수 조건이었다.(p187)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0 14: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고전 하면 겨울호랑이 님이십니다..

겨울호랑이 2016-08-10 14:24   좋아요 0 | URL
제겐 과찬이십니다만, 센스하면 곰곰생각하는발님이시지요^^: 감사합니다.
 
플라톤전집 5 - 테아이테토스 / 필레보스 / 티마이오스 / 크리티아스 / 파르메니데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르메니데스>는 소크라테스와 제논, 파르메니데스 간 형상(形相)과 하나(一者)에 관하여 논의한 대화편이다. 그게 형상이론 부분과 하나에 대한 논의로 나뉘어지며, 대강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다른 대화편과는 달리, 소크라테스가 파르메니데스에 의해 깨우침을 받는 구조로 이루어져있다.


1. 형상(形相) 이론


가. 제논의 역설 : 만물은 하나

1) 존재하는 것들이 여럿이라면 그것들은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해야하지만, 

같지 않은 것이 같을 수 없고, 같은 것이 같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함(127e)


나. 소크라테스의 반론

1) '같음'의 형상과 '같지 않음'의 형상이 그 자체로 존재함(129a)

2) 형상(여럿과 하나, 정지와 운동)들의 섞임과 분리를 통해 만물이 생겨남(129e)


다. 파르메니데스의 비판

1) 정의, 아름다움, 좋음 등은 형상이 존재하지만, 무가치한 것들의 형상은 존재하지 않음(130a-130e)

2) 형상 전체는 하나이며, 여러 개의 분리된 개체 안에 존재할 수 없음(131a)

3) 만약. 형상들을 부분들로 나눌 수 있다면, 각각의 사물 안에 존재하는 것은 '형상 전체'가 아닌 '형상 부분'임(131c)

-> 부분은 전체보다 클 수 없기 때문에 모순이 발생함(131e)


라. 소크라테스의 형상(形相)에 대한 수정된 정의 : 형상은 혼 안에서만 존재하는 사유(noema)(132b)


마. 파르메니데스의 반론

1) 사유는 존재하는 것에 대한 사유임(132c)

2) 사유가 형상이라면, 모든 사물은 생각해야 함-> 소크라테스에 대한 논박(132c)


바. 소크라테스의 재수정된 형상(形相)에 대한 정의 : 형상은 자연에서 본보기로서 존재하고, 다른 것들은 형상을 닮고 모방함(132d)


사. 파르메니데스의 재반론

1) 형상들은 절대적인 것이며 고유한 본성을 가지고 있음(133d)

2) 사물과 형상은 같은 이름을 갖지만 서로 관련되지 않은 별개의 것임(133d)


"우리는 우리 사이의 권위로는 신들을 지배하지 못하고, 우리의 지식으로는 신적인 것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오. 같은 이유에서 신들은 우리의 주인들도 아니며 인간사도 알지 못하오. 그들은 신이니까."(134e) 


'형상'에 관한 첫 번째 논의를 통해 우리의 현상계과 이데아의 세계는 별개의 이원화(二元化)된 세계임이 논의된다. 


2. 하나(一者) : '여럿이 존재한다면'이라는 가설의 검증을 통한 하나의 존재 증명


가. 첫 번째 가설 : 만약 하나(一者)가 존재한다면


1) 첫 번째 연역 

가) 하나는 전체여서도 안되고, 부분을 가져서는 안됨(137d)

나) 하나는 한정되지 않은 것이며, 형태도 없음(137e)

다) 하나는 어디에도 없음(138b)

라) 하나는 어떤 방식의 운동도 하지 않으며, 어떤 것 안에도 있을 수 없음(139a)

마) 하나는 다른 것이나 자신과 같은 것일 수 없고, 자신이나 다른 것과 다른 것일 수도 없음(139b)

바) 하나는 자신이나 다른 것과 동등하지도 않고 부동(不同)하지도 않음(140b)

사) 하나는 시간에 관여하지 않으며(140e), 하나는 존재에 관여하지 않음(141e)

아) 하나는 이름도 없고 설명될 수도 없으며, 지식이나 감각적 지각이나 의견의 대상이 될 수 없음(142a)


2) 두 번째 연역 

가) 하나는 존재에 관여할 수 없으며, 하나의 존재는 하나와 같지 않음(142b)

- 존재한다는 것은 존재에 관여한다는 의미(142c)

나) 하나는 언제나 존재를 내포하고, 존재는 하나를 내포함(142e)

다) 하나가 있다면 수(數)도 있어야 하며, 수는 무한히 많기 때문에 존재에 관여함(144a)

라) 존재는 수많은 사물에 배분되어 있으며, 많은 종류로 나뉘어 있음(144b)

마) 하나는 존재에 의해 부분들로 나누어진 만큼 다수이고 수가 무한함(144e)

바) 하나는 모두 그 자체의 부분들이고, 부분들 전체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님(145c)

사) 하나는 전체이므로 다른 것 안에 있으며, 모든 부분이므로 자신 안에도 있음(145e)

아) 하나는 언제나 자신 안에도 있고 다른 것 안에도 있으므로 언제나 움직이기도 하고 정지해 있기도 함(146a)

자) 하나는 다른 것들과도 다르고 자신과도 다를뿐더러 다른 것들과도 같고 자신과도 같은 것임(147b)

차) 하나는 다른 것들과 접촉하지 않고, 다른 것들은 하나와 접촉하지 않음(149e)

카) 하나는 다른 것들이나 자신과 동등하기도 하고 동등하지 않기도 함(149e)

타) 하나는 생성되기도 하며 존재하기도 하므로, 자신보다 더 젊지도 더 늙지도 않으며, 자신보다 더 젊어지지도 않고, 더 늙어가지도 않음(152e)

파) 하나는 시간에 관여하여 과거, 현재, 미래에 존재와 생성됨(155d)


3) 세 번째 연역  

가) 하나는 관여하기도 하고 관여하지도 않기도 함(155e)

나) 하나는 생성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하며, 정지해있다가 움직이기도 하는 등 모든 상태를 경험함(157b)


나. 두 번째 가설 : 만약 하나(一者)가 존재한다면 다른 것들은 무엇을 경험하는가?


1) 첫 번째 연역

가) 다른 것들은 부분을 갖기 때문에 하나와 다름(157c)

나) 부분은 전체라고 부르는 어떤 형상의 부분(157e)

다) 전체와 부분 모두 하나에 관여해야 하며,하나와 다른 것들은 여럿이 존재함. 하나에 관여하는 것들은 그 수(數)가 무한함(158b)

라) 하나와 다른 것들은 서로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함(158b)


2) 두 번째 연역

가) 하나는 다른 것들과 떨어지지 않고, 다른 것들은 하나와 떨어지지 않음(159b)

나) 하나와 다른 것들은 같은 것 안에 있지 않고(159c), 다른 것들은 하나에 관여할 수 없으며, 다른 것들은 자신 안에 하나를 가질 수 없음(159d)


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가설의 결론


만약 하나가 존재한다면, 하나는 모든 것이고 자신과 다른 것들과 관련해서 하나조차 아님(160b)


라. 세 번째 가설 : 만약 하나(一者)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1) 첫 번째 연역

가) 하나의 경우 하나에 관한 지식이 존재하며, 다른 것에 관한 지식도 존재함(160d)

나) 하나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하나는 많은 것들에 관여함(161a)

다) 하나는 다른 것들과 '같지 않음'을 갖게 됨(161b)

라) 하나는 다른 것들과 동등하지 않으며, 다른 것들과 부동(不同)함(161c)

마) 말하는 것들은 모두 존재하므로 '존재하지 않는 하나'는 존재함(162a)

바)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음에 관여하고, 존재하지 않은 것은 존재함에 관여하므로 하나도 반드시 존재함(162b)

사) '존재하지 않은 하나' 는 정지하기도 하고, 움직이기도 함(162e)

아) '존재하지 않은 하나' 는 생성되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하며, 생성되지 않기도 하고, 소멸하지 않기도 함(163b)


2) 두 번째 연역

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할 수 없고, 다른 방법으로 존재에 관여할 수도 없음(163c)

나) 하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에 관여할 수 없으며, 변할 수 없음(163e)

다) 하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상태에 있지도 않음(164b)


마. 네 번째 가설 : 만약 하나(一者)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1)  첫 번째 연역

가) 사유를 통해 파악되는 존재는 반드시 작은 조각으로 나뉘어져 파악되어야 함

나) 하나가 없다고 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하나로 파악되기도 하고, 여럿으로 파악되기도 함(165c)

다) 하나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하나가 가진 속성은 나타남(165e)


2) 두 번째 연역

가) 하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여럿'으로 판단할 기준도 없게 됨(166b)


바. 하나(一者)에 대한 결론


1) 만약 하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음(166c)

2) 하나는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함(166c)


 "하나가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하나도 다른 것들도 자신들과 관련해서든 서로와 관련해서든 온갖 방법으로 모두 다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며,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166c)


하나(一者)에 대한 논의는 이해하기가 까다롭다. 처음에 정리하다 보니 '하나...... 존재...... 같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라는 내용만 반복되는 것 같아 많이 답답한데, 반복되는 내용을 바탕으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되는 것 같다.


'하나(一者)'는 사물의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변화 한다고도 말할 수 없고, 생성한다고도  말할 수 없는 모호함을 가진다. 마찬가지 이유로, 크다고도 작다고도 말할 수 없으며, 움직임이 있다고도 또는 없다고도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하나가 없다면 다른 존재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는 존재한다....


<파르메니데스>에서 나오는 논의가 어렵다고 생각되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파르메니데스의 사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대표적인 내용 몇 가지를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1. 이분법적 사고

- 제3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양자택일'의 상황 속에서 진행되는 논리는 이해하기 어렵다. '나의 적(敵)의 적(敵)은 친구다'라는 논리구조와 같다고 생각되지만, 쉽게 공감되지 않기에 따라가기가 어렵다.


"하나가 다른 것들과 다르고 다른 것들이 하나와 다른 한, 둘 모두에 '다르다'가 사용된다는 점에서 하나와 다른 것들은 다른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상태에 있네. 그리고 같은 상태에 있는 것은 같은 것일세."(148a)


"자네는 '다르다'와 '둘 중 하나다'를 동의어로 여기지 않는가?" "나는 그렇게 여깁니다."(164c)


2. 존재의 조건

- 파르메니데스는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심지어, '존재하지 않음'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하면서 논의가 진행된다. 영어를 비롯한 서구권에서는 'nothing' 이라는 단어가 존재하기 때문에, 파르메니데스의 논리처럼 진행이 가능하다. 'Nothing exists' 라고 하면 말이 되지만, 문화권이 다른 우리는 이해하기 어려울 뿐이다.


"우리가 참말을 하고 있다면 우리가 말하는 것은 분명 존재하는 것들일 테니까. 그러나 우리는 참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므로 우리가 말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들이라고도 주장해야 할 걸세."(161e)


"따라서 하나가 존재하지 않고 계속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려면, 자신이 존재하지 않도록 강제할 존재하지 않음의 존재를 가져야 하네. 이는 존재하는 것이 완전하게 존재하려면 존재하지 않음의 존재하지 않음을 가져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세."(162a)


3. 존재함과 존재하지 않음

- 파르메니데스는 이분법에 근거하여, 존재함과 존재하지 않음, 큰 것과 작은 것이 하나(一者)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해 모순적인 성격을 언급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모순적인 것이 아니라 상태 변화가 아닐까. 물이 끓게 되면 액체에서 기체로 변화하게 된다. 이것을 파르메니데스는 '액체이기도 하면서 기체이기도 한, 액체도 아니면서 기체도 아닌'으로 묘사한 것 같다.(그렇다고 고체도 될 수 없는 것이, 파르메니데스의 세계는 2원적 세계이기 때문에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파르메니데스>를 읽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많은 논의에 비해 허무한 결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논의를 요약하면, 우리의 세계 밖에는 형상(idea)의 세계가 존재하며, 이 세계는 우리가 말로 규정짓기 어려운 여러 특성이 있다는 결론이 아닐까.

 

어렵게 논의를 이어가다보니,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달리기 시합으로 유명한 '제논의 역설'이 생각났다. 제논의 역설에서 결코 아킬레우스는 거북이를 이길 수 없다고 하지만, 실제 달리기 시합의 결과는 그렇지 않다. 사실과 무관한 논리싸움인 '제논의 역설'이 <파르메니데스> 작품속에서도 나타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고대 그리스 이후 많은 철학자들이 <파르메니데스>를 가지고 많은 고민을 한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직은 잘 알지 못하지만, 더 깊은 공부를 한다면, <파르메니데스>의 깊은 맛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만약 어떤 것이 어떤 것 안으로 들어간다면, 그것은 필시 들어가고 있으니 아직은 그 안에 없고, 벌써 그 안으로 들어가고 있으니 아직 전적으로 바깥에 있는 것도 아니겠지? 어떤 것이 이런 일을 겪는다면, 그것은 부분들을 가진 것일 수밖에 없네. 그것의 일부가 벌써 다른 것 안에 있고, 나머지는 바깥에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부분들을 갖지 않는 것은 전체가 어떤 것 안에 있는 동시에 전체가 어떤 것 밖에 있을 수 없네."(138e)

"하나는 자신과 같지도 않을 걸세. 하나의 본성은 분명 같은 것의 본성과 같은 것이 아닐세. 어떤 것이 어떤 것과 같으면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지. 하나가 여럿과 같아지면 하나는 아마도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될 걸세. 그러나 하나와 같은 것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면, 어떤 것이 같은 것이 될 때마다 그것은 언제나 하나가 될 것이고, 하나가 될 때마다 같은 것이 될 걸세. 그러므로, 하나가 자신과 같아진다면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하나이면서 하나가 아닌 걸세. 하지만 그것은 분명 불가능 하네."(139d)

"만약 하나가 존재한다면, 존재할 수는 있지만 존재에 관여할 수는 없는가? (관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의 존재는 하나와 같지 않을 걸세. 만약 같다면 하나의 존재는 하나의 존재일 수 없고, 하나는 하나의 존재에 관여할 수 없을 테니까."(142b)

"하나가 있다면, 존재는 분명 그 안에 있네. 그러나, 존재한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과거나 미래에 존재와 함께 했고 함께하게 될 것처럼 현재 존재에 관여하는 것을 의미하네."(151e)

"하나가 많은 것들에 관여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네. 만약 존재하지 않는 것이 그 하나이고 다른 것이 아니라면, 하나는 오히려 그렇게 해야 하네."(160e)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립간 2016-08-09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 님, 매번 슬쩍 글만 보고 가다가 인사차 댓글을 남깁니다.

독서충동, 충만히 받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16-08-09 15:1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마립간님 저도 마립간님의 독서기록을 눈팅만 했네요 ^^;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비가 오네요. 시원한 오후 보내시기 바랍니다.^^

서니데이 2016-08-09 1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즐거운 저녁시간 되세요.^^
 
호치민 평전
윌리엄 J. 듀이커 지음, 정영목 옮김 / 푸른숲 / 200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많은 동료들이 그가 죽은 뒤에도 기억하는 것은 그의 개인적인 품성, 선량하고 소박한 이미지, 불굴의 낙관주의, 대의에 대한 진지하고 헌신적인 태도였다."(p225)


본문에 나오는 호치민에 대한 그의 동료들 평가다.


어린 시절 반공(反共)교육을 받고 자란 나에게 호치민은 북한의 김일성, 중공의 모택동, 캄보디아의 폴 포트와 더불어 공산주의 시대의 독재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12년 정도 전까지도 이러한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었다. 


2004년 정도의 일이었던 것 같다. 성당 후배 중에서 운동권 출신의 똑부러진 후배가 있었다. 평소 에는 다소 맹한 구석도 있지만, 사회문제에 있어서는 눈을 반짝이며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그런 똑똑한 후배였다. 어느 날인가 이 후배가 무슨 어이없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나는 가볍게 이 후배에게 "이런 호치민 같은..." 이라고 농담삼아 말했다. 별 생각없이 던진 농담에 후배는 정색을 하면서 칭찬을 해줘서 고맙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호치민에게 별 관심이 없었지만, 그 후배의 뜻밖의 반응에 호치민이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지금에야 그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호치민 평전>은 베트남의 민족 지도자 호치민에 대해 미국인 윌리엄 J. 듀이커가 저술한 평전이다.  베트남전의 적국이었던 미국인의 시점에서 서술된 책이기에 한계점이 있다. 만약, 일본인이 <안중근 평전>을 썼다면 그 내용에 대해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책에서도 그런 한계가 존재한다. 프랑스와 일본, 중국의 베트남 지배 야욕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분석을 하면서, 호치민을 민족해방을 위해 노력하는 투사의 모습이 비춰지는 것에 반해, 미국과의 전쟁 시기 호치민의 모습에는 독재자의 그림자가 나타난다. 또한, 이미  날조된 것으로 알려진 "통킹 만 사건" 등에 대해서도 명확한 설명이 없이 넘어가는 등 저자의 미국인으로서의 한계가 나타난다.  이러한 편향된 저자의 시선을 독자가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아쉬운 부분이라 생각된다.


호치민이 유학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고, 프랑스, 소련에 가서 공산주의 사상을 공부하고 이후 반(反)제국주의 투쟁을 했으며, 검소한 생활 등으로 유명한 베트남 지도자라는 사실은 이미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사실을 다시 알고자 950페이지에 달하는 평전을 읽는다는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나는 평전을 읽으면서 '호치민에게 공산주의는 목적이었을까, 아니면 수단이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아마도 이에 대한 답이 그가 '베트남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이유 중 하나가 될 것이기도 하리라.


이러한 질문과 관련해서 그가 1922년 프랑스 장관과 나눈 대화가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내 삶에서 중요한 것,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 동포의 자유입니다. 이제 가도 됩니까?"(p146)


그의 이러한 사상은 당시 공산혁명의 맏형이었던 소비에트 연방 주도하의 코민테른(Communist International),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제3인터내셔널)의 지침과 맞지 않는 것이었다. 


"레닌은 당대의 도덕률이 혁명적 행동 규약과 거의 관계가 없고, 실제로 둘 사이에 화해 불가능한 모순이 일어나기도 한다고 가정했다. 반면 응우옌 아이 쿠옥(호치민)의 행동규범 목록은 전통적인 유교 도덕을 연상시키는 면이 강했다. 검소해야 한다, 다정하면서도 공정해야 한다, 잘못은 단호하게 고쳐야 한다, 신중해야 한다, 배움을 존중해야 한다, 공부하고 관찰해야 한다, 오만과 자만을 피해야 한다, 관대해야 한다."(p224)


호치민은 베트남의 전통사상에 기반하여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 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주위에서 코민테른의 지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오해를 사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베트남 해방'이라는 목표를 향해 간다. 


"개인적으로 볼 때 그토록 매력있고 성격이 미묘한 사람이 어떻게 글에서는 그렇게 단조롭고 단순한 모습을 보여주는지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그의 인격과 그가 오랜 세월에 걸쳐 유지한 정치적 영향력의 비밀이 숨어 있다. 응우옌 아이 쿠옥(호치민)은 다른 많은 마르크스주의 지도자들과는 달리 자신의 청중이 지식인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노동자, 농민, 병사, 사무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지적인 총명함으로 독자에게 감명을 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대신 그는 단순하지만 생생한 말로 그들을 설득하여 자신의 세계관과 변화를 성취하는 방식을 공유하고자 했다."(p140)


마오쩌둥과 마찬가지로 그는 폭력 투쟁가보다는 교육을 통해 전사들을 양성하고, 일반 대중에게 다가가는 그의 노력은  적에게는 '위험한 선동가'로서, 일반 대중에게는 따뜻한 '호 아저씨'의 모습으로 비춰지게 되었다. 그는 대중에게만 따뜻하게 대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1945년 베트남을 지배하던 일본의 패망 이후,  호치민은 응오 딘 디엠(훗날 남베트남의 대통령, 고딘 디엠)의 석방을 명령하는 등 공산주의 혁명과 배치되는 사상을 가진 사람들과도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해방 이후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p520)


평전에 서술된 이러한 기록을 통해서 호치민에게 공산주의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에게 진정한 목적은 '독립'과 '해방'이었다. 호치민에게 식민지를 통해 유지되는 제국주의에 맞서는 길은 식민지 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원조를 해주는 공산주의 세력과의 연대였으리라.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는 공산주의자라기 보다는 독립투사였고, 민족주의자였다.


사상, 이데올로기보다 조국의 해방을 우선시 하는 그의 모습 속에서 우리 나라의 독립투사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우리의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독립투사들이 항일(抗日) 투쟁에서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현실속에서 살고 있다. 한국전쟁이라는 후대의 사상적 대립의 기준으로 당연히 인정해야할 그들의 공훈이 묻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 호치민이라는 개인에 대한 관심으로 책을 읽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베트남의 역사'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두 나라가 가지고 있는 공통된 분모 때문인 것 같다. 

우리나라와 베트남은 오랜 시간 중국(中國)과의 대립, 공통된 유교(儒敎)문화의 영향,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경험, 해방 후 분단되었던 조국 등 공통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반면, 지금도 분단된 우리의 현실과 통일된 베트남은 다른 역사를 가진다. 

어떤 것이 우리에게는 분단을, 그들에게는 통일을 가져왔을까? 호치민이라는 한 사람에 대해 조금 알게 된 지금 더 많은 생각할 과제를 부여받은 느낌이 든다.


<호치민 평전>은 저자의 편향된 시각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왜 호치민이 지금도 베트남 사람들에게 '호(胡)아저씨'로 불리는지를 알려주고, 갈수록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베트남'의 역사, 관계 등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의미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응우옌 아이 쿠옥(호치민)이 보기에 아시아인들은 서구인들이 보기에는 후진적이지만, 현대 사회의 전면적 개혁의 필요성을 서구인들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p133)

"자본주의는 식민지를 통해 자신을 부양하고, 여러분과 싸우는데, 여러 동지들은 왜 식민지를 무시합니까?"(p174)

"여러분이 이 작은 그룹 내에서도 단결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조국으로 돌아간 뒤에 어떻게 대중을 단결시켜 식민주의자들과 싸우게 하고 나라를 구하는 일에 나서게 할 수 있겠는가?"(p333)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붉은눈 2016-08-08 17: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호치민이 그 친근한 이미지를 잃지 않은 채 어떻게 베트남 국민들에게 여전히 존경을 받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서평을 읽고 나니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겨울호랑이 2016-08-08 18:52   좋아요 2 | URL
안녕하세요? 붉은눈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으시면 호치민과 베트남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더위에 건강 조심하세요^^

사마천 2016-08-08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긴책 멋진 독서 잘 하셨네요. 베트남 역사는 <베트남과 그 이웃 중국>이라고 서울대 유인선 교수 책이 있습니다.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멀리 사마천 사기의 <남월열전>까지 이어지는 오랜 기간의 중국과의 관계가 다루어져 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6-08-08 21:11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사마천님 베트남 역사책은 찾기 어려웠는데, 이번에도 좋은 책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깊이 있는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 조심 하시고 편한 밤 되세요^^

2016-08-09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09 1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09 2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0 0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아의서재 2017-05-14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쓰신 리뷰 덕에 이 책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구매 버튼 누릅니다. ^^

겨울호랑이 2017-05-14 22:04   좋아요 1 | URL
달걀부인님 감사합니다^^: 분량은 제법 되지만 마치 베트남 판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을 보는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의 혁명이 성공했다면 호치민과 같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걀부인님 즐거운 시간 되세요^^:

NamGiKim 2018-01-02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서평 잘 읽었습니다. 작년 추석때 이 책을 읽고 호치민을 매우 존경하게 된 사랍입니다. 호치민에 대해 보다 더 알게되니 틈만나면 월남패망이나 보트피플을 외치며 진보인사들을 종북빨갱이 취급하는 인간들이 더더욱 한심해 보이게 됩니다. 앞으로 이런서적이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겨울호랑이 2018-01-02 17:1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과거 우리가 얼마나 편향된 교육을 받아왔는가를 더 많이 느끼는 요즘입니다. ‘절대선-절대악‘의 대결 프레임 속에 모든 것을 이분법적인 기준으로 선택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가 하는 문제는 분명히 우리 모두가 인식해야할 부분이라 생각됩니다.NamGiKim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NamGiKim 2018-03-27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치민을 굉장히 존경하지만 그도 한계가 있었죠. 하나는 토지개혁이고 다른 하나는 트로츠키주의자 숙청입니다. 토지개혁 과정에서 수십만의 가톨릭 신자들이 월남했고 약5천에서 2만가까이 되는 사람이 죽었죠. 그리고 호치민은 민족주의자와의 연합을 추구하면서 스탈린 시기 소련을 인식해서 였는지는 몰라도 트로츠키주의자들을 굉장히 배척했죠. 이 두가지 한계가 있다고 해서 무작정 비판하는것은 삼가야한다 봅니다. 무엇보다 호치민은 토지개혁에서의 실수를 높은 지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정한뒤 철저히 자아비판을 했기에 그것부터가 이미 된 인물이라 봅니다. 6개월전 읽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낌 감격이 워낙 크기에 4월에 다시 읽은뒤 서평을 다시써볼까 합니다. 근데 이 호치민 평전 리뷰 올린 놈 중에 공산당 독재를 유지했다는 이유로 독재자 파시스트라 까는 어느 이상한 분이 계시네요.ㅋㅋㅋㅋ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호주석 묘에 참배하는 뉴스기사에 호치민에 대한 댓글을 다니 초록 일베들이 고기에 굶주린 개 처럼 저를 빨갱이로 몰더군요. 진짜 그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베트남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된다면 그러지 못할텐데

겨울호랑이 2018-03-27 23:23   좋아요 1 | URL
호치민에 대한 평가는 우리보다 베트남인들이 보다 정확하게 내릴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국민들에게 ‘호아저씨‘라는 애칭으로 불리우면서도, 프랑스와 미국을 잇달아 물리친 리더십은 단순히 독재라 말할 수 없는 사실이라 여겨집니다. 이러한 사실을 이념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정당한 평가를 내린다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되네요. 인물의 한계부분은 모든 사람이 유한의 존재이기 때문에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만 역사의 평가를 내린다면 행위를 설명할 수 있는 타당성이 있는가가 되리라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