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을 독점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부당하게 결탁하는 조직을 뜻하는 ‘카르텔’만큼 현 정부의 탄생 기반과 정체성을 알려주는 투명한 키워드도 없다. 소위 정계와 법조, 언론, 군부, 학계를 망라하는 광범한 엘리트 카르텔이야말로 체제화된 분단현실의 토대에서 기능해온 집단이며, 이들의 기반과 동조 속에서 지금의 정부가 태어난 것 아니던가.

정부는 올해 초 노동, 교육, 연금 방안을 개혁한다면서 주제가 다른 사안을 줄줄이 엮어 ‘이권 카르텔’로 명명해왔다. 검찰조직과 수사기관이 동원된 카르텔 척결 작업은 전임 정부를 포함하여 자신들의 이권 추진에 방해가 된다고 보는 공동체를 탄압하는 표적수사로 이어지고 있다. ‘반(反)카르텔’을 외치지만 그들 자신이 철저한 카르텔의 몸통인 셈이다. 적대적 전선 형성과 표적수사를 내세우는 카르텔의 정치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언론을 억압하고 통제하여 민주주의의 기반을 위협하고 핵심적인 공공 의제를 은폐한다는 점이다.

윤석열정부가 제시한 ‘글로벌 중추국가’는 한국이 글로벌 행위자가 된 상황을 배경으로 이 행위자가 지향할 가치와 글로벌 질서의 상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견국가론 등의 접근과 차이가 있다. 글로벌 질서의 변화에 대한 감각을 내포하고는 있지만, 내용적으로 선진국 담론의 퇴행적 전유라는 점에서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 198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탈냉전과 한국사회의 민주화는 분단체제의 토대를 계속 약화시켰다. 분단체제하에서 형성된 기득권은 이로부터 큰 위협을 받았고 이 변화에 저항해왔다. 그러한 과정에서 만들어진 한국정치의 동학(動學)은 비교적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대의정치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즉 서로 다른 이념과 정책 지향이 합의된 규칙을 따르며 경쟁하는 것을 가로막으려는 힘이 정치와 공론장에 개입한다. 이 힘은 어떤 목소리라도 이념의 낙인을 찍어 공론장에서 추방할 수 있는, 심지어는 그 생명도 박탈할 수 있는 무한대의 권한을 자임해왔다.

요약하면 한국사회의 대전환과 글로벌 문명 전환의 결합이 한국이 가져야 할 방향감각이다. 이를 위해서는 선진과 후진, 선도와 추수, 중추와 말단과 같은 위계에 의존하는 정체성 규정을 넘어서는 한국에 대한 사유가 필요하다. 김구 선생의 말을 빌리면 진·선·미의 실현을 지향하는 문화국가라는 발상도 가능하지 싶다

결국 군사적 적대 구조를 해결하기 위한 상호위협 감소와 신뢰 구축이 없이는 남북의 상황이 근본적으로 개선되기 어렵다. 생존과 안전이 지속적으로 위협받는 것이 가장 큰 문제지만, 한국 내부에서 사회의 대전환을 향한 모색과 실천이 분단체제의 효과에 기대는 저항에 의해 좌절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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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강독 1 정신현상학 강독 1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전대호 지음, 전대호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모든 것이 걸린 관건은 진실을 실체로서뿐만 아니라 또한 마찬가지로 주체로서 파악하고 표현하는 것이다."(서문 17번 문단)... 저는 <정신현상학> 서문이 헤겔 철학 전체의 알파요 오메가이며, 바로 이 문장이 <정신현상학> 서문의 알파요 오메가라고 단언하겠습니다. _ 전대호, <정신현상학 강독 1> , p250

전대호의 <정신현상학 강독 1>은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의 <정신현상학 Phanomenologie des Geistes>의 본문과 이에 대한 해설을 함께 소개한다. 저자는 결코 친절하다 볼 수 없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에 대해 자신의 관점과 기존 해석과의 차이점을 본문에서 설명한다. 또한, 헤겔 뿐 아니라 그에게 영향을 준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와 셸링(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폰 셸링(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 1775~1854)의 생애, 사상과 용어에 대해서도 소개하여 헤겔 철학의 앞뒤를 넓게 보여준다.

일상에서 의식은 일단 단박에 대상을 향해 뛰어나가서 대상을 의식하고,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야 비로소 그 대상에 대한 자기 앎을 의식하고 점검하니까요... 핵심은 '의식'이 '대상'과 그 대상에 대한 자신의 '앎'을 양손에 쥘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손엔 대상을. 또 한 손엔 앎을. _ 전대호, <정신현상학 강독 1> , p271

또한, 저자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설명하기 위해 다른 <대논리학> 등의 내용을 교차적으로 보여주면서 깊게 소개한다. <정신현상학> 3장까지 다룬 본문을 통해 저자는 정신의 고양 과정 전반을 보여준다. 의식이 대상을 바라보고, 대상을 통해 자신을 자각하며 이를 통해 서로 다른 '정 正' 과 '반 反'이 '정-반'으로 얽히며 확장되며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나아가는 전개. <정신현상학 강독 1>은 분량상으로는 많지 않은 내용을 다루면서도, 내용상으로는 <정신현상학>의 적지 않은 부분을 담고 있는 번역-해설서라 여겨진다...

제가 아는 한, '변증법'의 진면목을 가장 잘 보여주는 문구는 "변증법적 운동 dialektische Bewegung" 입니다. 변증법이 뭐냐고 물으면, 진실의 운동이라고 대답하세요. 어쩌면 '운동'보다 '머물지 못함'이 더 나은 표현일 수 있겠습니다(p338)... 헤겔에게 '하려는 바와 하는 바의 불일치'는 딱한 사정이기는커녕 도리어 가장 아름다운 화음 쯤 됩니다. 이 화음이 안팎에서 울려 퍼지는 가운데 우리가 다 함께 비틀거리며 추는 춤이 변증법에 해당돼요. _ 전대호, <정신현상학 강독 1> , p339

'모든 것에 양면이 있다'고 말할 때 저는 악센트를 '양면'에 찍습니다... 제가 이해하기에 '변증법'이란 '다름이 함께 있음'이 표출되는 방식입니다. 제 악센트는 '맞선 둘의 얽힘'에 찍혔죠. _ 전대호, <정신현상학 강독 1> , p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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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9-30 2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책은 해설이 더 어렵기도 하던데, 이 책! 궁금하네요

겨울호랑이 2023-10-01 08:26   좋아요 1 | URL
원래 글항아리에서 <정신형상학 강독>을 5권까지 기획했으나, 이후 계획이 바뀌어 새물결에서 2권까지 나와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입문서와는 다르게 본문 중에 헤겔의 원서 내용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 자리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과 친절한 해설이 인상깊은 책이라 여겨집니다 ^^:)
 

대의기구가 어려움에 빠질 때 국민이 나서서 대신 싸워주지 않으면 그 제도는 제대로 존립할 수 없다. 이런 일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지 못하면 대의기구는 도대체 설 자리가 없어진다. 일이 이렇게 되면, 정부의 우두머리나 기습적으로 폭력을 동원할 수 있는 정당 지도자 누구라도 절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순간적인 모험을 감행할 경우, 대의기구는 대개 당장 전복되고 말 것이다.

대의정부를 운용할 만한 수준에 오른 사회라면 어디서든 시민이 일정 수준의 양심과 사심 없는 공공 정신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이 자신들의 계급 이익이 마치 정의와 일반 이익의 화신인 것처럼 착각하지 않을 만큼 지적 분별력을 기대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현대 사회에서 대의정부는 점점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움직인다. 선거권이 확대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굳어진다. 그 결과 한 공동체 안에서 지적 수준이 최고에 한참 못 미치는 부류의 사람들이 주요 결정권을 행사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최상의 지성과 인품을 가진 사람이 수적으로는 어쩔 수 없이 밀린다 하더라도, 그가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느냐 여부에 따라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대의기구 속에 한 나라의 일류 지성 중 몇 사람만이라도 포진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들로만 채워진다 하더라도, 그리고 비록 그들이 여러 측면에서 대중의 일반적인 생각이나 감정과 다르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하더라도 이들 앞서가는 지도급 인사들이 전체 심의 과정에서 확실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부족한 점을 개인대표제가 보완해줄 수 있다. 현대 사회의 틀 속에서 가장 완벽하게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민주적 다수의 본능에 맞서 부족한 것을 보완하고 잘못된 것을 고치려면 지성을 갖춘 소수밖에 의지할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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