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그림책으로 한글을 어떻게 익혀야 하는지에 대해 문의를 받는다. 안 봐도 그림이 그려진다. 그림책을 펴고 사이좋게 앉은 엄마와 아이. 엄마는 한자 한자 글자를 짚어가며 그림책을 읽는다. 혹시라도 아이가 빨리 글자를 익히게 하는 바램으로. 여기서 끝나도 좋으련면, 한걸음 더 나아가 교육열에 불타는 엄마는 아이에게 '이건 무슨 글자야?'하는 테러를 가하기도 한다.

한글을 가르치고 싶으면 학습지를 사다가 시키길 간곡히 부탁한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한창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있는데. 어떤 손가락이 영화 화면에 떡하니 나타나 글자를 한자 한자 짚기 시작한다. 그래, 뭐 화면이 좀 가렸다고 생각하면 되지..하고 영화에 다시 몰입할 찰나, 손가락의 주인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 글자 뭐라고 읽는지 아니? 한 번 읽어봐."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그림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고,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귀를 타고 들어온다. 아. 얼마나 포근하고 행복한 시간이랴. 그런데, 난데없이 손가락이 튀어나와 시커멓게 그려진 지렁이들을 짚어댄다. 아, 미운 손가락. 때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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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공부는 많이 그려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좋은 작품을 많이 보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명화를 많이 보여주려고 애씁니다. 명화전도 많이 가고, 아이들을 위한 명화집도 많이 구입해서 보여주지요. 하지만 아이들용으로 나온 명화집을 곰곰히 뜯어보면 전부 서양화, 그것도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으로 가득합니다. 다양한 재료로 다양한 상상력을 표현한 수없는 좋은 작품 중에 극히 일부분만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지요.  상식이 아니라 그림을 즐기고, 직접 그림을 그리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명화화집보다는 그림책을 읽는 것이 더 좋습다. 그림책의 그림은 예술작품으로도 완성도가 높으며 다양한 표현기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림책에는 아이들이 따라할 수 있는 미술기법에서, 유화, 파스텔화, 연필화, 목탄화, 판화, 한국화, 세밀화 등 온갖 미술기법이 펼쳐집니다.

아이들도 직접 따라할 수 있는 재미있는 미술활동을 보여주는 책으로는 아래 다섯 권이 있습니다. 물론 이만큼 잘 그리긴 어렵지만 기본적인 기법들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1학년 때 배우는 것들입니다. 아마 그림을 보시면 금방 아실겁니다.

 

 

 

<까만 크레파스>는 크레파스를 이용한 스크레치 기법으로 만든 그림책입니다. 아마 그림만 보시면 금방 아실 겁니다.  색색 크레파스로 흰도화지를 메우고, 까만 크레파스로 덮은 다음 샤프로 그림을 그려보는 것 말입니다. 이 그림책을 읽고나면 크레파스로 직접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이 그림책 속의 불꽃놀이 스크레치 작품은 굉장히 이뻐요. 스크레치 기법의 좋은 점은 크레파스로 색칠을 하면서 다양한 색감을 익힐 수 있고, 여러번 재생이 가능하다는 점이지요. 까만 화면을 살살 긁어내면 화려한 색깔이 쏘옥 나타나는 마술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그림책에서 흔히 사용되는 콜라쥬 기법. 이 기법을 사용한 대표적인 그림책이 <요셉의 작고 낡은 오버코트가>와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 그리고 단행본으로는 아직 번역되지 않아 국내에서는 주로 외서로 그 그림을 접하는 에릭 칼의 그림책들입니다. 콜라주는 다양한 재료를 붙여서 만드는 기법이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아이들 그림책에 다양하게 사용되는 기법입니다. 서로 다른 느낌의 재질이 어우러지면서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독특하지요. 에릭 칼의 경우는 콜라주를 할 종이를 직접 만든다고 합니다. 원하는 색의 종이를 만들기 위해서지요. 심스 태백 같은 경우는 주변에 있는 잡다한 물건들을 사용합니다. 단추, 신문지, 광고지, 과자상자 등 그림을 꼼꼼히 뜯어보면 별것별것이 다 있어요.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도 굉장히 독특한 느낌이지요. 그림 속에서 온갖 물건들이 동동 떠다니는 이질감이 있다고 할까요?  콜라주도 잘 만들기는 무척 어렵지만, 주변에 있는 종이로 재미있게 해볼 수 있는 활동입니다. 굳이 색색 종이를 살 필요없이 매일 신문에 끼워지는 광고지를 이용해서도 재미있는 콜라주 작품을 만들 수 있지요. 그밖에도 콜라주 그림으로 유명한 작가로는 레오 리오니를 꼽을 수 있겠네요.

 <손바닥 동물원>은 손바닥과 손가락에 물감을 바르고 그것을 도화지에 찍어서 만든 그림책입니다. <손바닥 놀이공원> 역시 같은 작가의 작품으로 기법 역시 똑같지요. 이와 비슷한 작품으로는 에드 앰벌리의 <손도장으로 그리는 세상> 등이 있구요. 손바닥, 발바닥을 이요해도 좋고, 당근이나 감자, 야채같은 것을 파서 찍어 보아도 재미있을 겁니다. 이 찍기 놀이는 상상력을 무궁무진하게 발전시킬 수 있지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물로 보이니까요.

스크레치, 콜라주, 손바닥 찍기 같은 것은 아주 어린 아이라도 재미있게 참가할 수 있는 활동입니다. 재료도 구하기 쉽고, 테크닉 자체가 어렵지 않으므로 그림을 잘 못그린다고 생각하는 엄마도 부담없이 아이와 함께 활동을 할 수 있지요. 책들은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기 때문에 그림책도 읽고 미술 활동도 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은 연필과 목탄, 펜등 단색을 사용해 그린 작품들입니다. 흑백그림이지만 소재의 섬세한 사용이 온갖 색채를 사용한 그림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지요. 저는 사진도 칼라사진보다는 말간 느낌의 흑백사진을 더 좋아합니다. 오히려 한가지 소재로 그린 그림이 더 사실적이지요.

 

 

 

 

동양화의 기법을 사용한 그림책도 많지요.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은 민화 느낌이 강하고요, <만희네 집은> 수묵채색화 느낌입니다. <우리는 바다를 보러 간다>는 중국 작가가 그린 수채화인데요. 색의 농담으로 표현한 점이 부드럽고 동양적인 느낌입니다.

그림에 중점을 두고 볼만한 그림책으로는 다음의 책들을 추천합니다. 먼저 다이앤 딜론과 레오 딜론의 그림책들입니다.

작년에만 이들 부부의 책이 3권이나 동시에 나왔습니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이들 부부의 그림책은 그림에서 압도적인 느낌을 받습니다. 특히, <무슨 일이든 다 때가 있다>의 경우 전세계 그림의 독특한 느낌을 살려냈습니다. 일본풍 그림, 중국풍 그림, 중세풍 그림, 고딕풍 그림, 이집트 벽화풍 그림 등이 모두 한 권에 다 들어 있답니다. <모기는 왜 귓가에서 앵앵거릴까>는 마치 에어브러쉬로 그린듯한 색입자가 화사하게 펼쳐지는 그림책입니다. <작은 기차>와 <북쪽나라 자장가>는 주로 잠자리 그림책으로 읽히는데요 포근하고 환상적인 화면이 일품입니다. 사람이 그림을 이렇게 잘 그릴 수 있구나 하는 놀라움이 느껴진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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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 그림을 참 못그렸다. 미술학원도 다니고, 그 오랜시간 정규교육에서 미술을 배웠지만 미술 시간은 몇몇 소질있는 아이들이 설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린이책을 읽으면서 미술을 이렇게 배웠더라면 적어도 지금까지 기분 내키면 스케치북을 펴고 이런저런 그림을 그리며 즐거워할텐데 하는 생각이 들고 있다. 내가 정규교육에서 잃어버린 것은 그리고 만드는 즐거움이다. 완성품의 성적과 상관없는 무에서 형태가 만들어지고 거기에 색깔이 입혀지는 그 과정 자체가 얼마나 놀랍고 즐거운지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미술에 자신이 없는 엄마라도 집에서 조금만 열의가 있으면 미술을 가르칠 수 있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은 여러모로 유리하다. 일단, 나중에 화장을 할 때도(!)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유리하다. 눈썹을 그리는 것, 마스카라 칠하는 것, 색조화장하는 것... 그 실력은 다 미술시간에 연마하는 것이다.

먼저 추천하고 싶은 책은 다음의 낙서 그림책 3권이다.

이 세 권은 정말 즐겁다. 고미 타로가 그리고 쓴 <그림으로 생각키우기 1.2>권은 굉장히 유머러스하고 기발하다. 이 책을 자녀와 함께 하다보면 '내 새끼가 혹시 천재가 아닐까'하는 즐거운 공상(!)에 빠지는 부모들이 많다고 한다. 그만큼 자유롭게 펼쳐지는 아이들의 상상력은 어른들이 보아도 매력적이다. 또, 이 2권은 양도 굉장히 많은 편이라 연필, 색연필, 크레파스 등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서 접해야 할 필기도구와 그리기 도구를 자기 마음대로 쓰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뭐든, 양에서 질이 나온다는 것, 그림도 예외는 아니다. <... 그리기 100선>은 고미 타로의 책보다는 학습지적인 느낌이 든다. 종이 질은 <그리기 100선> 쪽이 조금 나은 편이다. 기본적인 컨셉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세 권 다 어느 정도 그려진 그림에 상상력을 덧붙여 완성시키는 형식이고, 아이들이 그림에 대해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서 선 그리기, 형태 그리기, 입체 그리기 등 자신의 생각을 그림으로 옮기는 과정을 익힐 수 있다.

아이에게 좀더 이론적인 것을 가르치고 싶다면, 이 책 세 권을 권해주고 싶다. 초등학교 중학년 이상은 되어야 읽을 수 있는 수준으로, 미술에 대해 기본기가 없다고 고민하는 엄마들이 읽어도 좋다. 미술을 공부할 때 접하는 이론적인 부분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어린이책이라고 절대 우습게 보지 말 것. 좋은 어린이책은 상세함과 친절함을 고루 갖추고 있다. 모두 세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번째 <어떻게 그릴까?>에서는 내가 눈으로 보고 있는 저 대상을 어떻게 스케치북에 옮길까를 가르쳐준다. 그림을 그리고나면 항상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저것이 과연 내가 그린 것이 맞을까?  이 책은 그런 서툰 사람에게 '천재도 훈련이 필요하다'고 잘라 말한다. 이런저런 그림 실력을 높히기 위한 스킬도 함께 들어 있어, 그림을 제대로 그리고 싶은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가 많을 듯. 둘째권 <무슨 책을 칠할까?>에서는 색채가 상당히 감성보다는 과학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미술 이론에 지겹게 쫓아다니는 빛의 삼원색, 보색, 채도, 명도 같은 것을 쉽게 풀어준다. 언뜻 보기에는 과학책에 더 가깝다. 세번째 권인 <무엇으로 그릴까?>는 소재에 대한 책이다. 소재는 미술전공자가 아니면 수채물감이나 아크릴 물감 정도에서 멈추기 쉽다. 그런데, 자신이 본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소재를 알고 있어야 된다. 이 책 세 권이면 정말 왠만한 미술학원이 안부럽다.

찰흙놀이는 아이들의 감성과 신체발달에 큰 도움을 준다. 흙을 만지면서 자연스럽게 손과 손가락의 근육이 자극을 받기 때문에 두뇌발달에도 영향을 준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것, 저런 것을 떠나서 찰흙놀이는 아이들이 무척 좋아한다. 그리고 집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활동이기도 하다. 이 책은 반갑게도 국내 저자가 쓴 책이다. <흙동이와 찰흙놀이해요>는 초등학교 저학년, <흙동이의 유아 찰흙놀이>는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의 수준에 맞는다. 이 두 책의 경우 연령별로 세심하게 분류를 한 점이 특이하다. 찰흙과 조각도 정도가 필요한 재료의 전부. 찰흙으로 모양을 만들고, 그것으로 역할놀이도 해보고, 실제 생활에서 쓸 수 있는 물건도 만드는 등 전문가가 아니면 생각하기 힘든 커리큘럼들이 많다. 집에서 찰흙놀이를 시키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서 못했다면 이 책으로 시작하면 좋을 듯. 무엇보다 다른 미술 활동 보다 찰흙놀이는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무엇인가 짜증나고 잘 안풀리는 일이 있을 때(어른뿐만 아니다 애들도 그럴 때가 분명히 있다!) 신나게 찰흙을 반죽하고 뭉치고, 잘안되면 다시 뭉그러뜨리고... 이러다 보면 기분이 환해질 것 같다.

 

 

 

 

자 이제는 만들기다. 만들기는 재미있는 컨셉의 책이 많이 나와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책이 따로 재료를 구입할 필요없이 책 속에 있는 재료만으로 칼과 가위, 풀 등의 기본 도구만 갖추어 지면 만들어볼수 있는 것들이다. '한 장의 종이로 만드는 팝업북 31가지'라는 부제가 붙은 <메이킹북>은 부제 그대로 책을 만들어볼 수 있다. 아이가 모든 활동을 혼자하기는 힘들지만, 엄마가 도와주면 이야기를 이해할만한 정도의 유치원생도 신나게 만들기에 도전할 수 있다. 이 책의 미덕은 손이 가는 것에 비해 그럴듯하고 번듯한 결과물이 나와 아이들에게 성취감을 준다는 점이다. 일단, 만들기는 '뿌듯함'이 중요하다. <페스티벌>과 <나의 가족과 친구들>은 <메이킹북>의 저자가 만든 책으로 <메이킹북>보다는 조금 연령대가 높은 편. 하지만 기본적인 활동은 비슷하다. 카드, 입체물, 미니북 등 종이를 이용해 다양한 것들을 만들면서 지식까지 익힐 수 있는 책이다. <들쑥이와 날쑥이의 종이나라여행>도 즐거운 책. 이 책은 책을 읽는 과정이 만들기 과정이며, 만들기가 끝났을 때 새로운 책 한 권이 눈앞에 펼쳐진다는 희열이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2차원의 세계에 머무르는 인쇄된 이야기를 3차원의 입체로 끌어 올린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책을 읽는-만드는- 독자이다. <유아종이접기교실>은 거의 종이접기책의 고전이자 스테디. 종이접기를 아이와 함께 해보고 싶은 부모님들이 손쉽게 참고할 수 있고, 설명도 쉬운 편이다. <신나는 어린이 조형교실>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유용한 책이다. 이 책에는 111가지 만들기 실기가 실려 있는데, 이 정도만 알면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서 하는 활동과 그 응용이 다 들어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학교 미술을 잘하고 싶다면 이 책에 있는 만들기를 보는 편이 좋을 듯. 재미는 앞의 책들보다 떨어지지만, 성적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에 나름대로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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