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그리스.이탈리아 여행기 <먼 북소리>가 다시 나왔다. 예전에 나왔던 것은 김난주 씨가 번역한 중앙 M&B판. 이번에 나온 판은 윤성원 씨가 옮겼고, 하루키의 대부분의 책이 나왔던 문학사상사. 예전 책디자인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지만, 문학사상사의 북디자인 감각은 참 클래식하다.(뉘앙스는 알아서 판단할 것.) 판형은 <해변의 카프카>의 판형과 같고, 사진은 중앙M&B에 실린 것과 동일하다. 다만, 중앙M&B의 것이 판형이 커서 사진도 크다.
번역도 대부분 동일하다. 크게 문제 삼을 부분은 없다. 다만, 지명과 인명이 약간 수정되었다. 김난주 씨는 일본어식으로 표기된 외국어를 그대로 번역했고, 윤성원 씨는 방겔리스를 '반젤리스'라고 고친 것처럼 원어에 충실하게 번역하려 한 듯 하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식 지명이 눈에 띈다.
윤성원 씨는 역시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핀볼>, <태엽감는 새> 등을 번역했고, 김난주 씨도 하루키의 대표작들을 대부분 번역했지만, 역시 번역의 맛은 김난주 씨가 더 있다. 윤성원 씨와 김난주 씨 번역의 차이는 아내와 마누라의 차이다. 윤성원 씨는 꼬박꼬박 아내로 번역하고, 김난주 씨는 문맥에 따라 재치있게 '아내'와 '마누라'를 번갈아 쓰고 있다.
예전에, 김난주 씨가 번역한 하루키 수필 3부작을 읽었을 때 느꼈던 것이지만, 다른 것은 몰랃 김난주 씨가 번역한 하루키를 읽노라면 그의 유머감각을 최대한 우리말로 바꿔서 살려놓는 듯한 느낌을 든다. 거기에 비해 윤성원 씨의 번역은 너무 정중하다고 할까?
게다가, 의도적으로 '부사어'를 빼먹은 구절도 몇군데 보인다. 예를 들면, 하루키가 방겔리스에서 풍로를 빌려, 생선을 굽는 장면에서 방겔리스가 '독일인이나 프랑스인은 생선먹는 법을 몰라'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김난주 씨는 원서에 있는 '득의'(일본어로 뭐라고 하는지 모른다)를 '우쭐해 하며'로 번역했는데, 윤성원 씨는 이 부분을 생략했다. 이런 대목이 몇군데 발견된다.
또 사소한 부분에서도 조금씩 틀리다. 윤성원 씨가 최대한 매끄럽고 우리말로 의역을 했다면 김난주 씨는 약간 거칠다는 느낌이 드는 직역스타일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너무 다듬었다는 느낌이 드는 윤성원 씨의 글보다는 생생한 느낌이 살아 있는 김난주 씨의 글이 좋다. 이것은 어디까지 취향의 문제이니 깔끔하게 다듬하진 의역스타일의 글이 좋다면 윤성원 씨 번역을 읽으면 되고, 원문의 단어를 직역스타일로 옮긴(김난주 씨는 거의 단어 배열도 원본과 동일할 때가 많다.) 것이 좋다면 김난주 씨 것을 읽으면 된다.
그리고, 문학사상사 본을 보면서 조금 눈에 거슬렸던 것 하나. 책 초기에 하루키가 살 집을 지도로 그려서 보여주는 '양송이' 그림이 있는데, 페이지 문제인지, 그림이 원래 있을 자리보다 몇 줄 밑에 들어가 있었다. 차라리 몇칸을 비우더라도 원래 있을 자리에 지도를 넣어주는 것이 독서에 훨씬 좋은데 말이다. 있던 자리에 그림이 없어서 꽤 당황했다.
PS. 그런데 예전에 김난주 씨가 번역했을 때부터 궁금했던 것인데 '페다 치즈'가 도대체 뭘까? 체다 치즈는 알겠는데... 그냥 치즈의 한 종류인가? 일본어 원어로도 페다 치즈라고 표시가 되어 있던데...
PS. 오스트리아의 '굿 다이'..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아마도 오스트레일리아의 '굿 다이'의 오기인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