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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5년 4월
평점 :
내겐 좀 쓰잘데기 없는 신조가 하나 있었다.
소설가, 시인의 산문집을 멀리했다.
그 소설이나 시를 그 소설이나 시로만 읽고 싶었다.
작가에 관해 알게 되는 게 싫었다.
그 작가가 그걸 '창조했고'
그 창조된 세상을 원래 있는 사실로 '그런 척'하고 싶었다.
작가가 그 세상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어떤 마음으로 창조했는지, 그걸 아는 게 그닥 달갑지가 않았다.
사실은 궁금했지만.
그러다 바뀌었다.
소설 같은 허구의 문학은 '허구'이기에 의미있다는 걸 배우고 나서다.
허구를 인정하고 허구라서 더 좋아하게 되고
드디어 소설을 메타적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감히 소설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 뒤로는 소설가의 산문집을 찾아다니며 읽는다.
김영하 작가의 소설가 데뷔에 관해 지면에서 본 적이 있다.
듣보잡 문예지에 낸 소설이 당선되지 않았는데
지금의 문학동네(그때는 우유배달소 윗층에 세들어 살던)에서 눈여겨 보았고
미팅했고 그렇게 책이 나와서 지금까지 죽 문학동네와 동고동락한다는.
그렇게 '같이 컸다'는 말이 그득하게 다가와서 떠나질 않았다.
이분은 참 의리 있구나...
중증의 치매 어머니가 젊었을 때 여군이셨단다.
그 '반전'은 그 사실을 가족에게 숨겼다는 고백에서 더 도드라졌다.
엄마는 내가 아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시절의 자신에 대해
입을 다문 채 이 세상을 떠났고
21p)
나는 이런 문장에서 울컥한다.
이전 다른 리뷰에도 썼지만 사람들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문장에서.
우린 우리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엔 도통 관심이 없다.
'역사'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존재하지 않았으나 '의미있다'고 떠드는 시간들에 관해서는
'공부'까지 하면서 정작 더 의미 있을 지도 모르는 '엄마의 시간'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의 엄마가 무슨 일을 했는지.
가을 바람 끝에 하늘을 쳐다보느라 우뚝 서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그래서 엄마들은 그 시절에 관해 입을 다무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들의 이야기는 대개, '느네 아버지한테 시집와서~' 그 다음부터 시작된다.
하소연.
그래서 우리는 엄마들의 그 이전이 많이들, 없는 줄 알지.
내가 아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시절의 자신에 대해 '적극적으로' 입을 다문 채 세상을 떠나신 작가의 어머니께 뒤늦게 명복을 빈다. 상주나 문상객은 아니지만 목울대가 아파오니 명복을 빌어드릴 감히, 조그만 자격은 받은 것 같다.
그 뒤 문장은 거짓말 안 보태고 열 번 더 읽었다.
그럼으로써 내게는 제한된 정보만으로 독자가 적극적으로 상상해내야 하는
소설 속 인물들과 다르지 않게 되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기억은 더욱 희미해지고 상상과 뒤섞일 것이다.
무엇이, 누가 실제로 어떻게 존재했는가는 모호해질 것이다.
기억에도 반감기가 있다면 그것은 언제일까.
그날의 빈소에서 나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22p)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오늘 나는
어쩔 수 없이,
언젠가의 내 어머니 빈소를 떠올린다.
그 곳에서 할 생각 하나를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