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희곡"은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는데, 

내용 떄문에 아주 많이 불편해 한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이분이다.


Laura Kieler – Wikipedia

(설명 및 이미지 출처=wikipedia)


Laura Kieler


In 1873, she married Victor Kieler, a schoolteacher. The events of her marriage served as the inspiration for the character Nora Helmer in Henrik Ibsen's play A Doll's House. Kieler's husband contracted tuberculosis soon after their wedding, and like the character Nora, Laura Kieler borrowed money under false pretenses in order to finance a trip to Italy for a cure. Some years later, in a desperate attempt to repay the loan, Kieler forged a check. When Kieler's husband learned of the fraud, he demanded a divorce and sought to bar his wife from their children. Kieler had a nervous breakdown and entered a mental asylum for a month. They later reconciled, but Kieler never forgave Ibsen for using her life as fodder for his controversial drama.


이거야 원...


<인형의 집>의 주인공 노라와 상황이 똑같다.


입센은 주변 사람, 그것도 동료 작가의 삶을 자기 작품의 모델로 썼다.

그런데 너무 똑같은 게 문제.


Laura Kieler는 뚜껑 열렸다. 그럴 만 했지 싶다.


이후 자신의 작품에 입센이 자기 삶을, 그것도 내보이고 싶지 않았을 부분을 갖다가 쓴 것에 대해 심히 유감을 표했다.


Her later works occasionally made references to Ibsen, including her 1890 play Mænd af Ære, which first played at the Casino Theater in Copenhagen. The play featured the plight of a woman who, in a fraught relationship, was exploited by her husband for writing material in a manner reminiscent of her own previous struggle. The intro to her book Silhouetter also features a personal account of her conflicted relationship with Ibsen. Later still, she withdrew from more personally-informed novels, and made a living writing historical and religious books.


Maend Af Aere

희곡 같은데, 남편에게 글쓰기 소재로 착취 당하는 한 여성의 곤경을 묘사했단다.
<Silhouetter> 의 서문에는 입센과의 갈등 관계에 대한 개인적인 설명도 실었고...

우리는 김봉곤 소설가의 <그런 생활>에 사용된 실제 인물과의 카톡 내용 이슈를 기억한다. 그때 꽤 뜨거웠다. 책도 리콜되었던가...


남의 삶을 소설이나 다른 장르의 문학에 '그대로' 쓰는 것에 대해서는 숙고할 여지가 많을 것이다. '그대로'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대로'를 아는 이가 이 세상에 본인 밖에 없을 테니 괜찮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본인만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모를 텐데, 굳이 그게 '나'라고 짚고 들어가서

오히려 다 알게 할 필요가 있나...할 지도 모른다.


여기서 '조금'의 여지를 생각해 본다.


그게 왜 그렇게 '그대로'여야 하는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밖에 모를 일이라 해도, 

이 세상에 어쨌든 한 사람은 알 이야기지 않은가. 


'하나'의 힘을 가볍게 친 거 아닌가 모르겠다.


뭐 꼭 '그대로'여야 하나.

'조금' 바꾸면 안 되나.


소설이나 다른 장르의 문학에서 '그대로' 가져와야 한다면,

'창작'의 여지가 소거되는 것일 텐데.


필시 그 단 한 사람도 '창작'의 결과물인 소설(다른 문학 장르 포함)에서

'실제 그대로'를 보니 당황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가만 있긴 힘들지 않았을까.


어차피 허구인 소설 속에서 아무도 모를 실제 '그대로'를 쓴다고 

이 세상 79억 9천 9백만 9천 9백 99명이 모른다 할지라도 

단 한 명이 불편하다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소설도 희곡도 허구다. 

허구면 허구답게 쓰자.

실제를 토대로만 하자.


그대로 쓰지는 말자.


그게 뭐 허구냐고.


아무리 현실이 소설 같더라도 말이다.


소설/희곡은 허구라서 

실제에 없는 의미가 발견되는 것이잖나 말이다.


<인형의 집>을 다시 읽다가 생각나 끼적임.

이 사실이 명작의 아우라를 훼손하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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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공간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그는 곧바로 무료 세미나, 예술가와 작가를 위한 워크숍, 토론 모임 등을 열기 시작했다.

(11)

내가 딱 만들고 싶은 서점 및 북카페의 시작.


5년 계획으로 다가 들고 있다.

그 첫걸음이 이 책 읽기.


<평생 교육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야간 학교>


이것이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창립자, 조지 휘트먼의 오픈 마인드였다.


그럼 나는...흠...


<평생 책읽고 쓰고 떠들다 죽을 사람들을 위한 공간>


이럼 어떨까.


뭘 읽고 쓰는 사람들은, 내 경험 상 떠들길 좋아한다.

이상하게 글은 잘 쓰는데 떠들 때 말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직접 물어보긴 그렇고 건너건너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글은 여러 번 고치니까요."


말 되네.


세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또한, 일손을 보태는 대가로 하룻밤 묵어갈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했다.

(12)


나도 북스테이할 공간을 지을 건데.

일손 보탠다고 하룻밤 재워주지는 못할 것 같다.

북클럽을 인도하든,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하든 하면 재워줄 의향 있다, 뭐.


밥은 김치찌개나 된장찌개에 시골 할머니 김치만 놓을 생각이다.

난 시골에서 오픈할 거니깐.

멀다고 안 오면, 망하는 거지 머.


이곳은 아름다운 공간입니다. (중략)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있을 때 일어나는 어떤 진동이 느껴집니다. (중략) 그래서 우리가 이곳에 이끌리는 것입니다. (중략) 우리에겐 이런 유대감이 필요합니다.(18)


그 어떤 소설보다 감동이다, 내겐. 쿨쩍.

북카페 오픈하면 이걸로 현판이라도 만들고 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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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6-08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이 있었군요. 저도 언제고 사 봐야겠습니다. 근데 북카페든 북스테이든 좋긴한데 서점하는 사람들 독서는 포기해야 한다고 하던데 이거하면 글 쓸 시간이 없어지지 않을까요?^^

젤소민아 2025-06-09 02:13   좋아요 1 | URL
스텔라님 오랜만이여요~아마 서점에 손님이 별로 없을 거라서요~~ㅋㅋ

조용히 살러 시골/산속으로 들어가고픈데 바쁘면 안되지요~~~.
돈을 벌기보다 진짜 생을 살기 위해 계획하는 일이랍니다.
돈은 글 써서 벌게요. 아참 글 써서 벌긴 더 힘든 거죠...? ㅠㅠ

그리고 이 책은 여건되시면 추천해요.
서점 이야기는 서문에 있고, 본문은 그 서점과 연을 맺은 거장 작가들의 인터뷰랍니다~~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 - 2023 브라게문학상 수상작
프로데 그뤼텐 지음, 손화수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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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다 못 끝냈다. 울음이 목까지 차오른다. 차마, 터지지는 않았다. 소설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소설의 첫머리에서 닐스의 죽음은 담보되어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사서 한 걸음만 내딛으면 곧 죽은 존재가 되는 어떤 존재의 회고담. 그의 인생엔 뭐니뭐니해도 ‘사람‘이 있었다. 아, 사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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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게이하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2
윌라 캐더 지음, 임슬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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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라 캐더의 [루시 게이하트]를 딱 절반 읽었다.

이제 조금 더 전개가 이어지다가 절정을 맞을 참이다.


절반 읽은 지점에서 잠시 책을 덮고

처음으로 돌아간다.


플랫강 유역에 있는 작은 마을 해버퍼드에서는 여전히 루시 게이하트 이야기를 한다.


9p


루시의 '부재'가 느껴진다.

떠났든, 죽었든.


절반의 결말을 내놓고 시작하는 첫문장이다. 



생은 계속되고 우리는 눈앞의 일상을 살아내야 하니까. 하지만 루시라는 이름을 언급할 때면 다들 낯빛이나 목소리가 은근히 밝아지며 허물없는 눈동자로 넌지시 말한다. '그래, 너도 기억하지?'


화자가 복수이다. 우리.

마을 사람들이다. 해버퍼드 마을 사람들.


이들은 이젠 떠나고 없는 루시를 떠올리며 낯빛이나 목소리가

은근히 밝아진다.


Lucy Gayheart.


'lucy'는 라틴어 'lux'가 어원이다.

그 뜻은 '빛'.


gay=lightheaded/carefree


심장이 밝은.


루시 게이하트.


빛의 밝음과 생명력이 느껴지는 이름이다.

그래서 전체 서사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이름이다.


마을 사람들(화자)과 함께 독자(나)는 루시 게이하트를 회고한다.

떠나지 않은 상태의 루시를 돌아본다. 

독자는 그녀를 만난 적 없으니 화자는 적극적으로 개입해 안내한다.

3인칭 관찰자 신분이면서 루시의 눈과 귀와 머리와 마음이 된다.

마음대로 그 내면을 들어간다.


뿐만 아니다. 

주요 인물인 서배스천, 해리의 마음 속에도 거리낌없이 들어선다.


윌라 캐더는 자유간접화법의 달인이다.

인물과 서술자의 목소리가 자유자재로 섞인다.

누가 인물이고 서술자인지 구분이 어렵다.

그 구분이 어렵다는 건 이 소설의 미덕이 된다.


3인칭이란 렌즈로 줌아웃한 거리감을 자유간접화법으로 바짝 당긴다.

한 발 떨어져 루시를 보면서도 어느새 루시가 되기도 한다.

(소설의 자유간접화법을 익히고 싶은 소설가라면 이 책은 고퀄의 텍스트북!)


절반까지 읽은 상태에서 '삼각 관계'를 한 번 들여다보자.


루시-서배스천-해리


루시는 무언가를 동경하는 시골 처녀.

서배스천은 위대한 예술가(루시가 보기에)

해리는 속물적인 부잣집 도련님


해리를 택하면 편안한 삶이 보장된다.

서배스천은 유부남이고 나이도 아버지뻘에 아는 건 노래밖에 없다.


루시는 서배스천에게서 예술의 열정을 본다.

루시가 동경하던 것의 정체다.


해리와 서배스천이란 남자는 모두 루시를 '통해' 무언가를 본다.


해리는 루시를 통해 자신의 취약성을 채우려 한다.

서배스천은 루시를 통해 청춘의 열정을 채우려 한다.


루시가 서배스천을 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서배스천은 이미 루시의 많은 것을 파괴했다. 어떤 사람들은 신변과 재산에 일어난 변화로 인생이 바뀌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운명이란 감정과 생각에 일어난 변화였다. 그뿐이었다. 


서배스천은 루시에게 파괴자다.

이전 세상의 파괴자.


서배스천을 만나기 전의 루시는 낱말에 직접적인 뜻 외에 다른 의미가

깃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103p


서배스천은 루시에게 창조자.

낱말의 다른 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창조자.


파괴자면서 창조자.


서배스천으로 인해 루시의 이전 세계는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가 창조된다.


인생에 이런 사람을 한 명이라도 만나는 건 기적과도 같은 행운이다.


이런 사람 옆에 '사랑'이란 단어를 붙이는데 우리는 주저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이런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에 '사랑'을 붙이는 게 문제다.


물론, 루시에게 서배스천은 '비극'의 서막이었다.

많은 사랑이 그렇듯이.

어쩌면 진짜 사랑이 그렇듯이.


이들의 사랑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절반을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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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에 있다는 것
클레르 마랭 지음, 황은주 옮김 / 에디투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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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절한 자리에 놓인다는 것, 실제적이든 상징적이든 변두리로 몰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목을 끌지 말고 움츠릴 줄 알아야 한다고 요구받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의 삶은 “위축되고” “발목 잡히는 ”비주류의 양상을 띤다. 우리 안의 무엇이 우리를 저지할까? 우리는 신체, 젠더, 외모, 그리고 사회와 시대 환경이 우리의 신체에 투영하는 판단에 의해서 매우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방식으로 발목 잡힌다. … 우리는 의식하지 못한 채 할당된 자리와 은밀한 명령에 순종한다. … 이 세상은 당신을 위해 어떤 공간도 만들지 않았다. 


(p52~53)


책 소개에 올라온 이 문장 때문에 구매를 결심했다.


김현경 작가의 <사람, 장소, 환대>에서는

메리 더글러스의 <순수와 위험>이 곧잘 인용된다. 



여기 소개된 문장 중에 이게 있다.


더럽다는 것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


<사람, 장소, 환대:74p)

우리 발을 따듯하게 해 주는 양말이지만 새 양말도 더럽게 느껴진다.

식탁은 밥 먹는 장소니까.


미국에서는 두루마리 휴지가 식탁에 올라오면 기겁한다.

연상된다고.(이 풍부한 상상력이라니)


부적절한 자리에 놓인다는 것, 실제적이든 상징적이든 변두리로 몰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목을 끌지 말고 움츠릴 줄 알아야 한다고 요구 받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 문장을 자꾸 다시 보게 된다.


부적절한 자리에 놓여 

이목을 끌지 말고 움츠리라고 요구 받는 사람들.


고국을 떠나 남의 나라에 산 지 오래됐다.


여긴 처음부터 내게 부적절한 자리였다.

이목을 끌지 말고 움츠리라는 요구?

숱하게 받았다.

뼈가 시리도록 받았다.


아니, 그런 요구를 받기 전에 알아서 기었다.


언어가 안 되니까.


한국에서는 영어 학원 다니면 고급반에도 들어가고 그랬는데

여기 와 유치원생 말도 못 알 아먹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원래 유치원생 말은 알아 먹기 힘들단다. 어느 나라건.)


세상 많은 책 중에 가장 반가운 책은 '나'가 들어 있는 책인지 모른다.

글자 사이에 낀 내가 보인다.

텍스트 저변에 움츠려 앉은 내가 보인다.


내가 쓰지 않았는데, 내 이야기를 하는 책.

내가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책.

이제껏 내가 만난 적 있고, 앞으로 만날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 책.


이 책은 어쩌면 나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할 것 같다. 

내가 모르는 나의 이야기.

즐거운 독서는 담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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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5-18 1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 장소 환대, 를 완독했는데 리뷰를 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어요. 어렵게 읽었거든요. 이 어려운 책을 쉽게 풀어 쓰는 리뷰를 쓰고 싶군요. 다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 꽤 공부가 되었던 좋은 책입니다.

젤소민아 2025-05-18 21:36   좋아요 1 | URL
그 책이 나온 초기에 제목보고 그냥 샀어요. 저는 소설을 쓰니까..그 제목이 소설에 대입됐더랬죠.

제게 소설은, [어떤 장소에서 벗어나 혹은 그곳으로 들어가 어떤 사유로든 환대받지 못하는 사람을 소개하는] 문학...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목만으로도 큰 걸 해내는 책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 제목에 아마 많이들 각자의 장소에서 나름의 환대를 생각했을 듯하거든요.

이런 이야기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페크님~

2025-05-21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5-25 1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5-25 16:2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