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는 컴퓨터였다
캐서린 헤일스 지음, 이경란.송은주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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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력이 독특하다. 화학을 전공하다가 문학으로 바꿨다. 그런 사람답게 ‘융합‘을 해냈다. 디지털 문학 전문가. 문학이면 문학이지 ‘디지털‘ 문학 전문가라니, 매력적이지 않나. 융합의 시대, 문학의 융합은 어떤지 궁금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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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리를 불태운다
브루노 야시엔스키 지음, 정보라 옮김 / 김영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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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이 소설을 가장 잘 이해할 사람 중 한 명이자 한국어를 모국어로 한 사람이 번역을 했다 하니 관심 두배다. 기획까지 했다니 하니 관심 세 배다. 이 정도면 읽을 이유가 충분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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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게이하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2
윌라 캐더 지음, 임슬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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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무언가를 잃어버릴 운명이었다. 두 사람 모두 그것에, 서로에게 매달렸으나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135p


욕망할수록 인간은 상실을 경험한다고 한다.

우리 삶이 아이러니한 증거이기도 하다.


욕망하지 않을 때는 뜨겁지는 않아도 잃을 건 적다.

욕망할 때는 각오해야 한다. 욕망하는 것을 가질 수도 없지만

운이 좋아 가졌다 하더라도 자신이 욕망하던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게 거라고.


욕망 자체가 '결핍'에서 출발하므로.

라캉님이 그러셨지.



봉투를 뜯자 오려낸 신문 기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폴린은 곧장 본론에 들어갔다.

해리 고든이 결혼한 것이다!


138p)


이런, 해리 같으니라고!!


(그러나 이건 표면이다.

소설의 뒤쪽에 해리 고든의 '내면'이 나온다.

표면과 많이 다른.)


작은 마을에서는 여럿의 삶이 바투 붙어 굴러간다.

사랑과 증오가 옷깃이 닿을 만큼 가까이서 두근거린다.

집 밖으로 나갈 때마다 모두가 오가는 거리 한복판에서

나를 속이고 배신했던 남자와,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간절히 원했던 여자와

몇 마디 간격을 두고 스쳐 지나가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 여자의 치맛단이 살짝 닿을지도 모른다.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하고 자기 갈 길을 간다.

아슬아슬한 탈출. 

저 넓은 세상에는 이토록 아슬아슬한 탈출이 없다.


175p)


아슬아슬한 탈출!

넓은 도시에는 없고

작은 마을에는 있는 것.


여럿의 삶이 바투 붙어 굴러가는 공간.


윌라 캐더가 왜 '자연주의' 작가라고 불리는지 알겠다.


문학의 자연주의는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보다 인간다운 삶이 붙어 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도시의 익명성에는 '스침'은 있으나 '탈출'은 없다.

생의 아슬아슬함은 더더구나 없다.

모두가 평행선을 걸을 뿐이니까.

자연과 가까운 작은 마을에서는 모두의 발걸음이 교차하니까.

사랑과 증오가 가까이서 두근거릴 정도로.


아, 아슬아슬한 탈출!

(나도 하고 싶다)


******************************


이제 [루시 게이하트]를 완독했다.


완독하고 나니, 루시의 욕망이 만져질 듯 잡힌다.


시골처녀, 루시의 욕망은 '옆 사람'이었던 것 같다.


자신보다 훨씬 튼튼한 무언가가 옆을 지켜주었다. (145)

둘이 만나는 동안 옆자리를 지켜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 (173)



루시는 서배스천과 만난 후, 자신보다 훨씬 튼튼한 그가 옆을 지켜주어 좋았다.

서배스천이 죽고 고향으로 돌아와 해리와 재회할 때 램지 부인에게 옆을 지켜달라고 

부탁할 생각을 했다.


루시는 '옆'에 누군가가 필요했다.


늘 비어있는 것 같던 옆자리에 

서배스천이 들어섰으나 그는 늙고 유부남이고 또 죽고 말았다.


고향으로 돌아와 해리에게 옆 자리를 의탁하려 했으나 

해리는 차가운 빙판 길에 루시를 남겨두고 떠나 버린다.


빙판 속으로 꺼져 드는 루시의 손을 잡아줄 옆 사람은 여전히 없었다. 


이 소설의 아이러니는 역시 이 '옆자리'에서 완성된다.


동이 트기 전부터 잠에서 깬 루시가 그를 데리고 강으로 오리 사냥을 가던 아침이 떠오른 날도 있었다.(중략) 가만히 서서 동이 트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새가 날아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그의 옆에서 느껴지는 기대감에 저릿저릿했다. (229)


이건 루시가 죽고 게이하트 씨도 죽고, 뒤에 남은 해리의 시점이다. 


늘 옆자리가 채워지지 않던 루시였으나

정작 타인(해리)에게 루시는, 한 때나마 옆자리를 채워준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소설의 첫문장은 루시를 회상하는 '우리'의 시점이다.

마을 사람들이 루시를 떠올리면 밝은 빛을 느끼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지도 모른다.


이제 떠나고 없는 사람이지만 떠올리면 옆자리가 채워지는 듯 그득해지는 사람.

살아 생전 어떤 휘황한 업적이나 화려한 행적이 없어도 

무엇으로든 '좋은 느낌'으로 공간 한 조각을 채우던 사람.


루시는 스스로 그런 사람이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 같다.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살갗 아래서 펄떡이는 생을 느끼게 해주었던 루시.

그녀가 떠나고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허전한 것이다.


그들의 옆자리가.


그러나 루시는 부재는 빛으로 남았다.

옆자리를 채우고 싶어하던 그녀의 소망은 

오히려 그녀에게 살갗 아래서 펄떡이는 생을 투사했고

사람들에게 그 생을 빛으로 남겼다. 


욕망하자.


비록, 욕망하는 이는 결핍으로 고통스러워할지언정

그걸 대하는 누군가에게는 펄떡이는 생을 선사할 지도 모른다.


루시 게이하트처럼.



제가 살 수 있는 유일한 삶은 전에 하던 일을 계속하는,

전보다 열심히 해내는 것 뿐이에요.










삶을 사는 것 외에 중요한 건 딱히 없어.

삶에서 누릴 건 다 누리렴.

난 이제 다 늙어서 잘 안다. 성취는 삶의 장식품 같은 거야.

가장 중요한 게 아니라고.

때로는 사람들이 실망스럽고, 때로는 나 자신이 실망스러워.

어쨌든 중요한 건 계속 살아가는 거란다.

봄에 힘든 일이 있었다고 낙담하면 안 돼.

네 앞에는 긴 여름이 있는 데다가 모든 일은 때가 되면 풀리기 마련이니까. - P173

제가 살 수 있는 유일한 삶은 전에 하던 일을 계속하는,

전보다 열심히 해내는 것뿐이에요. - P193

그러니까, 길을 가다가 마차에 루시를 싣고 오는 사람들을 만났다고 했잖아,

아닌가, 해리?

가장 배짱 있는 사람도 그 정도 질문에서 그만두고 말았다. - P225

이곳을 영영 떠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겪었다. ‘고향‘이 무엇이겠나, 결국 실망을 겪고 참아내는 법을 배우는 곳 아니겠나? 게이하트 가족이 살던 집을 떠나는 길, 그는 의식하지도 못한 채로 잠시 보도에 멈춰 서서 지금껏 수천 번은 족히 그랬던 것처럼 세 개의 가벼운 발자국을 바라보았다.

달아나려는 발자국을.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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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게이하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2
윌라 캐더 지음, 임슬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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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라 캐더의 [루시 게이하트]를 딱 절반 읽었다.

이제 조금 더 전개가 이어지다가 절정을 맞을 참이다.


절반 읽은 지점에서 잠시 책을 덮고

처음으로 돌아간다.


플랫강 유역에 있는 작은 마을 해버퍼드에서는 여전히 루시 게이하트 이야기를 한다.


9p


루시의 '부재'가 느껴진다.

떠났든, 죽었든.


절반의 결말을 내놓고 시작하는 첫문장이다. 



생은 계속되고 우리는 눈앞의 일상을 살아내야 하니까. 하지만 루시라는 이름을 언급할 때면 다들 낯빛이나 목소리가 은근히 밝아지며 허물없는 눈동자로 넌지시 말한다. '그래, 너도 기억하지?'


화자가 복수이다. 우리.

마을 사람들이다. 해버퍼드 마을 사람들.


이들은 이젠 떠나고 없는 루시를 떠올리며 낯빛이나 목소리가

은근히 밝아진다.


Lucy Gayheart.


'lucy'는 라틴어 'lux'가 어원이다.

그 뜻은 '빛'.


gay=lightheaded/carefree


심장이 밝은.


루시 게이하트.


빛의 밝음과 생명력이 느껴지는 이름이다.

그래서 전체 서사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이름이다.


마을 사람들(화자)과 함께 독자(나)는 루시 게이하트를 회고한다.

떠나지 않은 상태의 루시를 돌아본다. 

독자는 그녀를 만난 적 없으니 화자는 적극적으로 개입해 안내한다.

3인칭 관찰자 신분이면서 루시의 눈과 귀와 머리와 마음이 된다.

마음대로 그 내면을 들어간다.


뿐만 아니다. 

주요 인물인 서배스천, 해리의 마음 속에도 거리낌없이 들어선다.


윌라 캐더는 자유간접화법의 달인이다.

인물과 서술자의 목소리가 자유자재로 섞인다.

누가 인물이고 서술자인지 구분이 어렵다.

그 구분이 어렵다는 건 이 소설의 미덕이 된다.


3인칭이란 렌즈로 줌아웃한 거리감을 자유간접화법으로 바짝 당긴다.

한 발 떨어져 루시를 보면서도 어느새 루시가 되기도 한다.

(소설의 자유간접화법을 익히고 싶은 소설가라면 이 책은 고퀄의 텍스트북!)


절반까지 읽은 상태에서 '삼각 관계'를 한 번 들여다보자.


루시-서배스천-해리


루시는 무언가를 동경하는 시골 처녀.

서배스천은 위대한 예술가(루시가 보기에)

해리는 속물적인 부잣집 도련님


해리를 택하면 편안한 삶이 보장된다.

서배스천은 유부남이고 나이도 아버지뻘에 아는 건 노래밖에 없다.


루시는 서배스천에게서 예술의 열정을 본다.

루시가 동경하던 것의 정체다.


해리와 서배스천이란 남자는 모두 루시를 '통해' 무언가를 본다.


해리는 루시를 통해 자신의 취약성을 채우려 한다.

서배스천은 루시를 통해 청춘의 열정을 채우려 한다.


루시가 서배스천을 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서배스천은 이미 루시의 많은 것을 파괴했다. 어떤 사람들은 신변과 재산에 일어난 변화로 인생이 바뀌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운명이란 감정과 생각에 일어난 변화였다. 그뿐이었다. 


서배스천은 루시에게 파괴자다.

이전 세상의 파괴자.


서배스천을 만나기 전의 루시는 낱말에 직접적인 뜻 외에 다른 의미가

깃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103p


서배스천은 루시에게 창조자.

낱말의 다른 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창조자.


파괴자면서 창조자.


서배스천으로 인해 루시의 이전 세계는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가 창조된다.


인생에 이런 사람을 한 명이라도 만나는 건 기적과도 같은 행운이다.


이런 사람 옆에 '사랑'이란 단어를 붙이는데 우리는 주저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이런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에 '사랑'을 붙이는 게 문제다.


물론, 루시에게 서배스천은 '비극'의 서막이었다.

많은 사랑이 그렇듯이.

어쩌면 진짜 사랑이 그렇듯이.


이들의 사랑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절반을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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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종류들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호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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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있다.

내게는 조르주 페렉이 그렇다.

내가 천재가 아니니 천재를 알아볼 길은 없다.

뭐가 천재인 지도 잘 모른다.


생각해 보면, 그런 게 '천재' 같다.


잘은 모르겠는데 그냥, 천재 같은 느낌을 주는...


옛 저택에서는 계단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없었다.

오늘날의 건물들에서는 그보다 더 더럽고, 더 춥고, 

더 적대적이고, 더 인색한 것이 없다.


우리는 계단에서 더 많이 생활하는 법을 배웠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문장을 보면 감응된다.

왜 좋은지 모르겠는데 무지 좋다.


책장을 넘기지 않고 글자를 노려보고 있게 된다.

거꾸로 읽어도 보고, 다시 돌아가 읽어도 보고, 

매직아이 그림 보듯 책장을 뚫고 그 너머도 보게 된다.


천재가 쓴 글인데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좋다.

대개, 천재들은 너무 난해하게 쓰는데.

페렉의 글도 난해하다.


이 말을 왜 하는지 모르겠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상하게 짜증이 안 난다. 


먼저, 우리는 우편배달부와 함께 학교에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앞도 뒤도 없이 이 맥락없는 문장이 이상하게 좋다.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다.

우편배달부와 함께 학교에 가기.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을 거침없이, 뜬금없이 떠드는데

이상한 사람이란 생각이 별로 안 든다. 


조르주 페렉과 같이 이상해지고 싶다, 차라리.

그럼 뭔가 굉장히 쓸데없는데, 사실은 굉장히 의미가 있고,

알고 보면 굉장히 괜찮은 걸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생각의 천재에게 기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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