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감각 - 삶의 감각을 깨우는 글쓰기 수업
앤 라모트 지음, 최재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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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might as well fall flat on your face as lean over too far backwards"(14p)


원서/Anchor Books


"실패하지 않으려고 너무 안간힘 쓰느니, 차라리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까지 실패해 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11쪽)



이 말을 한 사람은 원서에는 'Thurber'라고 되어 있고 번역서에는 '카툰 작가 제임스 터버'라고 되어 있다. 


제임스 그로버 터버 ( James Grover Thurber , 1894년 12월 8일 – 1961년 11월 2일)는 미국의 만화가 , 작가, 유머 작가 , 저널리스트, 극작가, 그리고 유명한 재치 있는 사람 이었습니다. 그는 주로 New Yorker 에 출판되었고 그의 수많은 책에 수집된 그의 만화 와 단편 소설 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위키피디아)


제임스 터버는 이런 말도 했다.


"나는 여자들이 싫은데, 여자들은 항상 물건이 어디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굉장히 재미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실패하지 않으려고 너무 안간힘 쓰느니, 차라리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까지 실패해 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11쪽)

이 번역은 친절이 과하다는 느낌이다.

독자를 겨냥한 친절히 과해서 터버에게는 결례한 셈일지도 모른다.

그가 보이지 않으므로.


원문을 그대로 옮기는 게 저자에게는 더 낫다.


무리해서 뒤로 버티기보다는 차라리 앞으로 얼굴을 처박는 편이 낫다.


이 정도만 해도, 독자는 이게 "실패하지 않으려고 너무 안간힘 쓰느니, 차라리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까지 실패해 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뜻임을 안다. 저자가 이미 그 앞 문장에 '실수'를 언급해 두었기 때문에 더더욱.


더구나 이 문장엔 비밀이 숨어 있다.


fall flat on your face=


이 표현은 이런 뜻의 이디엄 맞다.

그런데 제임스 터버는 이걸 이디엄으로 사용한 게 아니다.
이 이디엄의 표면적인 뜻을 그대로 가져 와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다시 말해, 속뜻이 아니라 드러난 뜻으로.
'실패'를 2차적인 모티브로 사용한 게 아니라 
차라리 '얼굴을 처박는(fall flat on your face)' 1차적인
의미를 활용한 것이다.

그러니 이 번역은 친절하면 안 된다.

친절하지 않은 것이 제임스 터버의 의도를 살린 것이다.

그리고 그걸 인용한 앤 라모트(이 책 저자)의 의도를 살리는 것이다.


둘 다, 우리네 같이 평범~~~한 표현에서 머물지 않는,

언어의 귀재기 때문이다.


독자는, 굳이 원서를 찾아보지 않고도 그 정도, 누릴 권리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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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saw a home movie once of a birthday party I went to in the first grade, with all these cute little boys and girls playing together like puppies, and all of a sudden I scuttled across the screen like Prufrock's crab.(원서 15p/Anchor Books)

1학년 때 한 친구의 생일 파티를 촬영한 홈 비디오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은 기억이 난다. 하나같이 귀여운 꼬마들이 어울려 강아지처럼 놀고 있는데, 갑자기 내가 나타나더니 화면을 우스꽝스럽게 허둥지둥 가로질러 가는 게 아닌가! 나는 연쇄살인범이 되거나, 고양이만 스무 마리씩 기르는 괴상한 인간이 될 것이 분명했다.(번역서 13쪽)


번역서를 읽다가 갸우뚱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앞뒤가 말이 이어지지 않을 때.


이럴 때 가능성은 두 가지다.


번역자가 번역어를 제대로 찾지 못했고(숱한 고심을 한 줄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1. 번역자는 독자가 그걸 눈치 못 채고 넘어가길 바란다.

2. 번역자 스스로도 아쉬운 걸 알지만 스스로 넘어가 버린다.


생각해 보자.


귀여운 1학년 아이들이 생일 파티에서 놀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나'(역시 1학년)가 화면에 찍혔는데 우스꽝스럽게 허둥지둥 화면을 

가르지르고 있다...(원인)


나는 연쇄살인범이 되거나 고양이만 스무 마리 기르는 괴상한 인간이 된다...?(결과)


이 두 문장의 연결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은 것일까?

왜 화면을 우스꽝스럽게 허둥지둥 자로지르는 아이는 연쇄살인범, 혹은 고양이 매니아가 되는 것일까?


잃은 걸 찾아보자.


아하, 'Prufrock's crab'.

프루프록의 게.


이게 번역문에는 완전히 빠져있다.


'프루프록의 게'는 T.S 엘리엇의 시에 나온다.

《제이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 (Love Song of J. Alfred Prufrock)》라는 시다.


중간 쯤 나온다.


I should have been a pair of ragged claws

Scuttling across the floors of silent seas.

(고요한 바다 저 밑바닥을 재게 걷는 한 쌍의 초라한 집게발이었어야 하리)

/종이연필 역

이 시는 대단히 침울하다.

시의 화자가 바로 '프루프록'이란 중년 남자이며

시의 전반에 걸쳐 이 남자는 불합리한 이 세상에서 뭘 어째 보지 못하는

권태롭고 불행한 남자로 표현된다.

거론된 부분에서 프루프록은 자신을 저 심해 바닥의 한 마리 '게'에 투영한다.

('ragged claw'가 게의 발인지, 가재의 발인지에 관해서는 논쟁이 많지만

'게'가 우세한 쪽. 그래서 저가가 딱 꼬집에 'Prufrock's crab'이라 쓴 것)


앤 라모트(저자)가 '프루프록'을 데려왔으면 번역서에도 '프루프록'이 나왔어야 한다.

역주를 복잡하고 길게 달아야 할 것 같아 흡수시키고자 했다면 '권태롭고 불행한' 남자로 대변될 만한 또 다른 사람이나 캐릭터가 동반되어야나왔어야 했다.

그래야, 독자는 '우스꽝스럽게 허둥대다'의 서브 텍스트를 읽어낼 수 있다.


1학년 귀여운 꼬마가 생일 파티에서 허둥대는 모습에서

도대체 어떻게 연쇄살인범이며 고양이 매니아를 떠올릴 수 있단 말인지?


꼬마는 다름 아닌, '프루프록의 게'처럼 걸었기 때문에

연쇄살인범 혹은 고양이 매니아가 거론된 것이다.


그리고 '프루프록의 게'를 제거하기로 했다면, 

'scuttle'의 뜻을 정확히 포착해도 그나마 오독을 줄일 수 있다.


'scuttle'의 기본 이미지는 'move quickly'이다.

빨리 움직이는 것-.

번역자가 선택한 '허둥지둥 움직이는 것'도 물론, 빨리 움직이는 것에 포함된다.

아래 영영사전(longman) 예문을 보자. 


• let out a terrified scream and scuttled down the stairs.• He spotted a cockroach as it scuttled out from under a bin bag.
'scuttle'에는 이런 이미지도 있다.물론 엘리엇의 시에 쓰인 이미지는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내친 김에 엘리엇의 원시에 쓰인 'scuttle'을 생각해 보자.

현실의 비합리성, 부조리함을 '연인'에게 편지를 쓰듯 토로하는

침울한 프루프록은 결국, 이런 무의미함 때문에 갈등이나 고뇌를 겪을 필요 없는

저 심해의 'ragged claw'가 차라리 되었으면, 한다. 


이 시의 '게'의 'scuttle'은 어떤 이미지일까?


물론, 번역서에서 선택된 '우스꽝스럽게 허둥지둥'일 지도 모른다.

단테의 신곡 중 '지옥'을 인용할 정도로 둔중하고 침울한 시이지만

그 무게감을 이기지 못하고 차라리 '우스꽝스럽게 허둥지둥' 돌아다니는

'게'가 되고 싶다고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게'는 어쨌든, '프루프록의 게'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귀여운 1학년 꼬마의 우스꽝스러운 게 걸음'이 '연쇄살인범'이나 '고양이만 스무 마리 키우는 사람'의 이미지로 연장이 가능해질 수 없는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저자가 '프루프록의 게걸음'을 '연쇄살인범'이나 '고양이 스무 마리만 기르는 사람'으로 연결시킨 근거는 엘리엇의 시에 쓰인 이 구절 때문이다.


-There will be time to murder and create,

-The yellow fog that rubs its back upon the window-panes,
The yellow smoke that rubs its muzzle on the window-panes,
Licked its tongue into the corners of the evening,(fog-->cat의 상징화)

이제는 '게 걸음'과 '연쇄살인범, '고양이 스무마리...'의 의문이 풀림과 동시에
한 결 깊은 독서가 가능해진다. 프루프록만 살려 줬어도. 아니, 프루프록이 살려졌어야만가능해진다. 

*단테의 신곡 중 지옥 편 기도문
*햄릿의 상징: 'For you yourself, sir, should be as old as I am--if, like a crab, you could go backward.' 

1학년 꼬마 생일 파티 정경 속에서 저자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대단히 사소한 문장이나 이렇게나 둔중한 것들을 천연덕스럽게 함의해서
한 마디로 '빵 터지게' 하는 부분이기에.

앤 라모트의 글은 일상적으로 편하게 쓴 것 같지만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어야 한다. 
쉽게 쓰였다고 해서 쉽게 읽히지 않는 글들이 있는데 그녀의 글이 그렇다.

이 번역은 쉽게 쓰인 글, 거기서 그만 멈추었다. 
적어도 이 부분은.

앤 라모트의 열성팬이기도 하고, 그녀의 책을 애정하므로
앞으로도 좀더 신중하게 비교하며 읽어보려 한다. 
원서도 독자가 있고
번역서도 독자가 있고
이 서재글에도 독자가 있을 테니

그 모든 독자를 위해.
번역은 무엇보다, 정확해야 한다.
유려함은 '읽는' 층위에서도 쟁취될 수 있다.
번역 층위에서 막힌 정확성의 진로는 독서 층위에서도 이루어지는
실로 많은, 아니, 어쩌면 저작보다 더 풍성한 '창조활동'을 막는다.

*《제이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 (Love Song of J. Alfred Prufrock)》는 이 시집에 수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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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빌리티와 푸코 모빌리티인문학 총서 38
카타리나 만더샤이트.팀 슈바넨.데이비드 타이필드 엮음, 김나현 옮김 / 앨피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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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기계가 공존한다. 기계가 주인이 되려한다. 이 정도면. 지금, 모빌리티는 단순히 ‘기계‘의 그것에만 멈추려 하지 않는다. 기계가 인간보다 더 능숙하게 해 내는 것처럼 보이는 모빌리티를 인간에게로 확장해야만 하는 시대에 인간은 3년째 모빌리티를 잃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읽어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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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빌리티 텍스트학 - 대안적 텍스트 연구 방법의 모색 모빌리티인문학 총서 27
이진형 외 지음 / 앨피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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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와 소설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모빌리티. 움직인다는 것(이동성)이 소설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구현되어 어떤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움직이는 것의 종착지는 ‘미래‘다. 소설은 미래를 이야기하는 문학이다. 움직이는 문학이다. 소설 텍스트이 모빌리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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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소설의 이해
우한용 외편 / 새문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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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많이 읽어라.


이런 충고를 하는 사람들이 열거하는 그 이유는 많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건 말을 안 했는지 모르겠다.

혼자만 알고 있으려고.

그러다 정말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으면, 너무 많이 읽게 되면

뒷감당이 안 될까봐.


책을 많이 읽으면 좋은 이유로 정작 중요한 이유 하나를 건졌다.

이 책에서.


책을 많이 읽으면,

감동 같은 걸 기대 안 한 책에서 더 큰 감동을 챙길 수 있다.


책을 많이 읽으면 내가 평소 안 읽는 책까지 읽게 된다.

혹은 자주 찾아 읽지만 '감동' 같은 건 눈곱만큼도 기대않았던 책까지 읽게 된다.


말하자면 '소설 이론서'같은 것.

(책을 많이 읽지 않으면서 손에 펴들게 되는 책은 아니지 않나? 흠흠)


이 책은 소설 이론서다.

아주아주아주 건조하고, 건조했고, 건조할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몇 쪽 읽다가 읽기를 유예하기 십상인,

혹은 과제든 뭐든 어쩔 수 없는 읽음을 담보하는 

이런 이론서를 읽더라도,


각오하자.


뜻밖의 '감동' 복병을 만날 수도 있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우리 자신에 관한 이야기 가운데는 

우리보다 나이를 더 먹은 이야기도 있는 법이다.

이처럼 이야기가 나의 존재보다 앞서는 판에 남의 이야기만 읽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자기속임일 지도 모른다. 

결국 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재미이지만 

우리 자신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존재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소설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에 지름길이라고 생각된다. 

(14p)

어떤가.


굳이 소설작법서나 소설 이론서를 구태여 볼 것까지는 없는 당신이라도

코끝이 아주 조금은, 아주 조금은 찡~~해 오지 않는가 말이다.


자꾸 곱씹게 되는 이 문장.


우리들이 알고 있는 우리 자신에 관한 이야기 가운데는 

우리보다 나이를 더 먹은 이야기도 있는 법이다.


내가 알고 있는 나에 관한 이야기 가운데

나보다 나이를 더 먹은 이야기라...


그렇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내가 기억하는 나이리라.

내 안에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가 있고

그 나까지 감안하면 나는 필경,

나보다 나이를 더 먹은 이야기를 품었으리라.


문장에 빠져 허우적대다 정신 차려보니

소설 이론서다.


소설로 돌아가자, 얼른.

적어도 앞으로 나는 소설을 대하는 태도가 바뀔 테다.


내가 읽는 소설은, 그 소설을 쓴 이가 자신도 모르는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내가 쓰는 소설은, 그 소설을 쓰는 내가 자신도 모르는 나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모르는 것을 체험시키는 것-.

그게 책의 소명이요 소망이 아니겠는가.

소설도 그러하듯.


책의 외관은 딱, 안 읽기 좋게 생겼다.

1999년 출간된 초판 그대로라 올드하다.

폰트도 올드하다.

답답~~~한 것이, 딱 안 읽고 싶다.


그런데도 읽었다. 그래서 얻었다.

23년 동안 절판되지 않는 뚝심을 발휘했으나 리뷰가 덜렁 1개다.


앞으로는 표지와 출간연도에 속지 말자고 다시 한 번 뻔한 다짐을 한다.


소설을 읽고, 소설을 쓴다면, 읽자. 얻는다.


이야기는 이야기에 이어져야 하고 끝이 없다. 그렇다면 완성된 형태의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 날이 인류의 종말과 시기상으로 맞아 떨어질지도 모른다. 이야기의 종말은 언어의 종말이다. 소설은 새로운 변형은 있을지 몰라도 종말은 없다. - P11

소설은 인간의 가능성을 미래형으로 두고 탐구하는 것이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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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외투.광인일기.감찰관 펭귄클래식 64
니콜라이 고골 지음, 이기주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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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학 시절, 광고회사에서 인턴 비슷한 걸 했다. 알바에 가깝겠지만.

시안을 잡던 '보스'님들이 갑자기 손모델이 필요하다 하면서

모두의 손이 회의 탁자 위로 모아졌드랬다.

마치, 선상님, 큰 죄를 지었으니 어여 작대기로 손등을 때려주세요, 하듯.


제일 젊은 나답게 내 손등은 주름 하나 없이 매끈했고 가늘고 길었....

아니, 그냥 그들의 구미에 맞았다.


그때부터 촬영을 하기 전까지 며칠 간 내 손은 황금손이 되었다.

그들은 내 손에 동동구리무를 처발처발해가며 마구 마사지를 해주었고

뜨거운 타올로 스팀도 해 주었고

알바생답게 쓰레기통 같은 걸 들어 내가려고 하면 

"야! 누가 얘한테 이거 시켰어?"했다.


'미생'에서 '우리 애'라고 하는 걸 장그래가 들었을 때 느낌 같은 게 몰아닥쳤다.


3일 천하.


내 황금손은 촬영이 끝나자 3일만에 다시 알바생의 손으로 전락했다. 


그 3일 동안, 내 손은 내 존재의 층위, 그 맨 위로 올라섰다.

나보다 내 손이 더 고귀했다. 아니, 나는 고귀하지 않을지언정, 내 손만큼은 고귀했다.


그때의 내 손을 '코'로 바꾸면 니콜라이 고골의 '코'가 된다.


인간의 총합보다 더 고귀해져버린 코.

왜?

잃어 버렸으니까.


그 코는 더 고귀해버린 존재답게 고급 관리의 외피마저 입는다.

더 이상 코가 아닌 것이다. 잃어버린 코는.


3월 25일 페테르부르크에서 기기묘묘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발사 이반 야코블레비치는 두 가지 음식을 동시에 차리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당연하지!)

아내가 던져 준 빵을 먹으려 그걸 자른 후 무언가 하얀 물체를 발견한다.


아는 사람의 코!


수요일과 일요일마다 면도를 하는 8등관 코발료프의 것.

아침에 일어나 코가 실종된 것을 안 코발료프는 코를 찾아 나선다. 

마차에서 내리는 제목을 입은 신사! 그의 코였다. 


그러니까 당신은 제 코란 말입니다!


귀하께서는 뭔가 착각하신 것 같군요. 저는 저 자신입니다.

더구나 우리는 전혀 친밀한 관계일 리가 없는 것 같은데요.

(46-47p)

그는 곧장 신문사로 가서 사건의 전모를 상세히 알리는 광고를 내기로 결정했다.

(49p)


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 없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52p)

이쯤 읽고 나면 어째서 도스토예프스키가 니콜라이 고골을 찬미했는지 알 수 있다.

이쯤 읽고 나면 니콜라이 고골의 소설을 죄 긁어 모으게 되는 심정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고골은 아무도 흉내내지 못하는 유머마저 갖췄다.


사실, 당신에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는 게 몹시 유감스럽습니다. 코담배라도 맡으시면 어떨까요? 두통도 걱정거리도 사라질 겁니다. 그뿐 아니라 치질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지요(55p) / 신문사 광고 담당 관리의 말

이 대목에서, 아무도 없는데 혼자 소리내서 웃었다.

그러다 곧 누가 볼새라 웃음을 싹 걷어냈다.


코가 없는 사람에게 코담배라니.


코가 없는 나에게 코담배를 건네던 사람들이 몇 생각나서 말이다.

웃다가 울면 안되는데...


이 슬픔은 코발료프가 천신만고 끝에 코를 찾았지만 코를 붙이지 못해 끙끙대다

찾아간 의사가 하는 말에서 분노어린 울음이 되고 만다.


지금 있는 그대로 계신 편이 훨씬 더 좋을 겁니다. 찬물로 자주 씻으십시오. 그러면 코가 없어도 있는 것처럼 건강하게 지내실 거라는 점을 확신합니다. 

당신의 코는 오늘도 안녕하신가.

잃어버리지 않게 잘 간수하시길.

혹시 잃더라도 너무 울진 마시길.

어차피 세상은 당신 코 같은 건 코만큼도 안 여길 것이므로.


이때부터 사건은 미궁에 빠져버렸고, 그 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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