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어느 날
조지 실버 지음, 이재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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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벤저민 퍼시의 '쓴다면 재미있게'가 너무 '재미있게' 번역되어 탄복했고,

그 번역자를 따라와서 구매한 책이다.


로맨스가 강조된 소설 쪽은 잘 안 읽는데 말이다.


원서도 같이 읽고 있다.


원서를 읽다 보니, 저자의 필력이 참 좋다. 짧지만은 않은 문장을 짧아 보이도록 가뿐하게 내달리면서도 짧지만은 않은 문장이 갖는 무게감이 있다. 가벼운 로맨스 소설이 아닌 모양이다.


기대감에 번역문도 본다.


흠...


이것부터 보자. 소설의 도입부다.


겨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특히나 기침, 재채기 등으로 세균 폭탄을 맞는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I've been coughed on and sneezed at, and if the woman in front of me shakes her dandruff my way again, I might just douse her with the dregs of the lukewarm coffee that I'm no longer able to drink because it's full of her scalp.]


[내 앞에 서 있는 여자가 또다시 내게 비듬을 턴다면 그때는 내가 이 미적지근한 커피에다 여자를 담가버릴지도, 아니 남은 커피를 여자에게 부어버릴지도 모른다.] 


dregs of coffee는 '바닥에 거의 닿을 정도로 남은 'small amount of liquid'를 말한다.


굳이 'dregs'를 사용한 것은, 얼핏, 인물의 '소심함'을 표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dregs'를 살리지 않으면, 이 인물은 비듬 좀 턴다고 출렁출렁, 가득 찬 커피를 

누군가에게 확 부어버리는 '대담한' 캐릭터로 읽힌다. 아닌가?


그런데 번역문에서는 'dregs'가 잘 살지 못했다. '남은 커피'로는 좀 아쉽다. 

마시다 어느 지점에서 중단한 커피는 양에 관계없이 모두 '남은' 커피니까.


더구나, '내가 이 미적지근한 커피에다 여자를 담가버릴지도' 란 번역구에 의문을 갖게 한다. 

'dregs' 정도의, 아주 소량의 커피에 어떻게 사람을 담가버린단 말인지?


번역을 하다 보면 원문에 있지 않은 단어를 살려내기도 하고, 원문에 버젓이 있는 단어를 죽이기도 한다. 그럴 수 있는 일이고, 그래야 하는 일일 것이다. 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이건 '소설'이다. 정보를 전달하는 논픽션이 아니다.


소설의 번역은, 저자가 의도한 단어와 문장과 표현을 될수록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훼손하지 말아야 함과 동시에 과도하게 살려줘서도 안 된다.


다시 말하지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의 묘미를 전하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기막히게 좋은 문장은 기막히게 좋은 문장대로,

밋밋한 문장은 밋밋한 대로.


어쩌면 저자에게는 그런 조율마저 의도되었을 지 모르는 일이므로.

그리 의도된 조율마저, 독자에게는 '도끼'가 되어 줄 수 있으므로.


소설의 독서가 어디, '줄거리'에만 뜻을 두던가.


더 읽어보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비듬을 털었다고 해서 그 여자를 커피에 담가 버리고 커피를 확 부어버리는 

대담무쌍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왜 번역자는 원문에 있지도 않은, 짧지도 않은 구절을 구태여 추가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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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 - 출세욕 먼슬리에세이 2
이주윤 지음 / 드렁큰에디터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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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가져야 할 덕목은 1. 유익 2. 재미 3. 감동. 이 중 어느 하나만 가져도 박수받아 마땅한 책. 이 책은 2번을 꿰찼다. 적당히 재미있다면 1번, 3번으로 자꾸 곁눈질할 텐데, 1번, 3번 잊어 버리게 만들 정도로 2번이 확고부동했다. 이도 저도 없으면 이책처럼 대차게 웃기기라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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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별에서의 이별 - 장례지도사가 본 삶의 마지막 순간들
양수진 지음 / 싱긋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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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 리뷰 쓴 이래, 별 다섯개 처음 찍었다. 그것도 아직 읽지 않은 ‘기대‘ 리뷰에. 


근 5년 이내에 본 책 제목 중에 최고다. 

[동국대 불교대학원 생사문화산업학과에서 공부하던 중 장례지도사의 길로 접어었던] 저자이력이 [이 별에서의 이별]과 만나는 접점에서 작고 투명한 보석 하나가 톡, 영글어지며 손바닥 안으로 떨어지는 것 같다.


젊은 여 장례지도사가 잠잠히, 그러나 의미있게 목도했을 죽음들.


죽음이니, '이별'을 담보했을 것이다.

책 제목으로 '이별'을 심어놓고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별'을 떠올렸을 것이다.

별같은 이 세상과 이별하고 별처럼 떠나는 사람들을 배웅했을 것이다. 


아, 얼마만인가.


한 권의 책에, 별이 떴다.

그 별에 손 뻗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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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이 구린 건 맞춤법 때문이 아니다 - 밋밋한 글을 근사하게 만드는 100가지 글쓰기 방법
개리 프로보스트 지음, 장한라 옮김 / 행복한북클럽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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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글쓰기 가이드, 즉 작법서다.


원서는 영어다. 원저자는 미국인,Gary Provost.


편집자, 기자 출신의 소설가다로 'David And Max'란 청소년 소설로 뉴베리상도 받았다.

편집자, 기자 출신답게 그의 작법서에는 'word'란 단어가 키워드로 부각된다.


Make Your Words Work by [Gary Provost]


Make Every Word Count: A Guide to Writing That Works—for Fiction and Nonfiction by [Gary Provost]


글쓰기를 다루는 앵글과 렌즈는 저자마다 다르다.

글쓰기를 대하는 철학, 관념, 태도 같은 넓은 앵글을 가진 저자가 있고,

문법, 단어 등에 좁은 렌즈를 들이대는 저자도 있다.


게리 프로보스트는 후자이다.


그가 강조하는 글쓰기의 키워드는 '문법'이다.

정확한 문법을 구사하면 글도 정확해지고 그만큼 읽기 편해진다고 설파한다.


그래서

[내 글이 구린 건 맞춤법 때문이 아니다]란 그의 이 책에는

버젓이

'제8장: 문법오류는 막는법'이라는 섹션이 들어있다.


물론, 문법 외에도 글쓰기에 관한 구체적인 가이드는 병존한다.

그러나 어쨌든, 저자는 '단어'와 '문장구조'같은 '문법적' 정확도를 강조한다.


이 책의 원서는 이렇다.


당신의 글쓰기를 향상시켜 줄 100가지 방법


그리고 그 '방법' 중에 '문법'이 아주 중요하다는 강론이다. 


그런데 한글 번역본 제목이,

'내 글이 구린 건 맞춤법 때문이 아니다'라니.


'맞춤법'은 글쓰기에서 당연히 궁극의 기본으로 지켜져야 하는 근간이요,

이 책의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문법'의 중추이다. 


맞춤법없이 어떤 문법이 완성될 수 있나 말이다.


물론, '맞춤법' 하나에만 연연해하지 말고, 글쓰기의 다양한 각도를 폭넓게

아울러야 한다는 의도인 줄은 안다. 


그러나 그렇다해도, 저자가 보는 방향과 거스르는 제목일 필요가 있을까?


출판사는 이 책의 기획단계에서 이걸 고민했어야 한다.

언어 스펙트럼에서 양극단을 점하고 있을 게 분명한 영어와 한국어란 언어의 글쓰기를 다룰 때,

적어도 원저자가 초점을 맞춘 지점이 어디인지.

영어와 한국어의 극명한 차이를 둥글고 원만하게 품고 갈 수 있는 '지점'이라면,

영어 원문을 굳히 보여줄 필요까진 없다.

이를테면, 글쓰기 철학이라든가, 태도라든가, 자세라든가...라면 말이다. 


이 책의 저자는 

문장을 짧게 써라, 정확한 단어를 써라, 평행구조의 표현을 써라, 유의어를 잘 써라 등,

꾸준히 '단어'와 '문법'을 짚고 있다. 글쓰기를 말하면서, 편집자요 기자였던, 그래서 순수문학보다 글쓰기 가이드책을 더 많이 내고 글쓰기 지도자로 매진한(그가 타계한지 20년이 넘었어도 그의 글쓰기 강연 그룹은 아직 진행중이라 하니) 저자는 '문법'을 강조한다. 


제목이 주는 갸우뚱함에 대해서는 이미 말했고,

이번에는 영어 원문을 드러내주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평행구조에 관한 부분이다. 


한글로만 보았을 때, 과연 '평행구조'가 무엇인지, 위 예문을 보고 알 수 있을까?

오랫동안 글을 쓰고 글을 대해온 나는, 경험 덕에 어설프게는 짐작이 간다.

그런데 글쓰기 가이드책을 읽으며 글쓰기에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들에게

'짐작'만 주어서야 되겠는가?


여기서 말하는 평행구조는 영어를 겨냥하고 있다.

한국어는 '낫놓고 기역자도 모를' 저자이니, 한국어의 한 조각이라도 염두에 두었을 리 없다.


영어란 언어의 단어와 구조만이 특질적으로 가질 수 있는 평행구조를 말함이다.

물론, 한국어에도 평행구조가 있다. 어설픈 짐작으로 '적절한 무게감을 균등하게 분배한 대칭적 문장구조'를 말하는 것 같다.


그러니, 이 부분에서는 특히, 영어 원문과 원래 단어를 드러냈어야 한다.

그래야 이해가 쉽거나 가능하다. 


이건 빙산의 일각이다. 


영어를 봐야 알겠는데...하고 생각된 부분이 한 두곳이 아니다. 



대뜸, '이 문장은 일곱 단어로 이루어져있다'라고 한다.


대체 어느 문장을 말하는 것인가?

소제목?


다양한 길이의 문장을 활용하라============> 4단어인데?


노안이면 점으로밖에 안 보일 폰트급수로 찍어놓은,


Vary Sentence Length.

이걸 말하나? 이건 또 3단어인데?


대체 '일곱 단어'는 어디 있는 거야?


아하! '이 문장은 일곱 단어로 이루어져있다', 이거?

그러니까 자기 문장?? 이걸 말하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이 또한 5단어인데???


단서를 찾기 위해 그 다음 문장을 읽을 수밖에.


[이 문장의 단어도 마찬가지다.]


이런....


지금, 독자하고 뭐하자는 건가...숨은단어찾기 중?

독자는 고민에 빠진다. 일곱 단어....일곱 단어...


오호라! 혹시? 영어 원문이??


이 문장은 일곱 단어로 이루어져있다=>이걸 거꾸로 영역해 보았다.


This sentence is written with seven words.

원문과 같을 지 모르지만....아무튼지간에 일곱단어, 찾았다!


이런 식이다...휴...


이런 사태가 한 번도 아니고 수차례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하도 희한한 일이기에. 또 돈 내고 책 산 독자로서, 의문과 억울함이 동시에 들어서.


누구보다 이 문제를 선두에서 포착했을 번역자에게 묻고 싶다.

최종 교정을 보지 않았느냐고. 영어원문 병기의 필요성을 제안하지 않았느냐고.


출판사 편집자에 묻고 싶다.

번역본을 보지 않고도 책의 '민낯'을 제일 먼저, 가장 가까이서 목격한 사람으로서

본인은 '일곱 단어'를 찾았냐고.


찾았다면, 왜 독자에게는 가르쳐 주지 않냐고.


책은, 친절한 그림이나 화려한 색채, 필요없다.

오롯이 활자면 된다. 책은, 정말 그거면 된다.


그런데 책이 활자로만 충분할 수 있는 이유는 책을 펴는 순간, 책은 그 많은 것의 절반이 독자에게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독자의 상상력 같은. 독자는 상상력을 발휘해 활자로만 표현된 '이야기'들에 경악하고, 울고, 분노한다. 그리 해주는 게 독자다.


따라서 책을 만들어 이득을 취하는 이들은 독자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래서 가급적 독자가 쓸데없는 무언가까지 상상해야하는 수고를 덜어줘야 한다. 


그 일을 하는 사람이 '편집자'다. 에디터다.

오죽하면 에디터는 잘못 활자화된 오타를 집어내고, 오죽하면 에디터는 잘 안 읽히는 번역을 바로 잡아주기도 해야 한다.

친절하고 꼼꼼하고 능력있는 편집자 덕분에 독자는 오롯이 활자만으로 책을 만나고도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다. 그래서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읽어 주는 것이다.


이 책은, 독자를 수고스럽게 한다. 그것도 매우. 

영어원문이 필요한 경우에 그걸 넣어주는 건 수고랄 수도 없다.

그건 편집자로서 '기본'이요, '필수'인 행위다.


'너무 영어식'이라는 느낌은 들긴 했는지, 한글 문법에 관한 'tip'을 몇 가지 섹션 말미에 추가하긴 했는데, 어떨 때는 큰 따옴표, 어떨 때는 작은 따옴표...하는 식으로,

초등학교 국어 학습서의 '여기서 잠깐' 코너를 보는 것 같아 헛웃음이 나온다.


큰 따옴표는 대화체에 쓰고, 짧게만 쓰지 말고 길게도 좀 써보고, 남의 글을 필사도 해보고, 다 썼으면 소리내 읽어도 보고...


이런 내용이라면 '글을 쓰는 사람들'이 독자가 아니라 '글을 써 본 적없는데 이제부터 글을 쓰려는 사람'이 타겟 오디언스다. 아닌가?


그렇다면 제목은 다시 한 번, 틀렸다.


[내 글이 구린 건 맞춤법 때문이 아니다]

'내 글'이란 걸 쓰거나 가진 사람이란 뉘앙스니, 이미 글을 쓰는 사람을 말한다.


이 책은 결코 그런 사람들을 위한 책이 아니다.

글쓰기 지망생들을 위한 가장 기본의 책]이다.

아직 '맞춤법' 같은 문법적 토대마저 견고히 굳어지지 않은 글쓰기 입문자, 말이다.


내 글이 구린 건 아직 맞춤법 때문이다....라고 고백하고 싶은 사람들 말이다.

그 어떤 독자보다 '성실한' 편집의 배려가 필요한 사람들 말이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어긋난 것 같은 아쉬움이

번역 단계에서 불거졌고

편집 단계에서 헤매는 느낌.


그 결과물을 받아든 독자는, (가뜩이나 막막한 글쓰기의 미로에서) 길을 잃었다.


*별 하나도 아깝지만, 알라딘 알고리즘이 '최소한 별 하나'를 강요하기에 

별 하나 했다가, 평생 글쓰기 지도에 천착해 온 원저자의 노고에 감사하며,

안타까운 그의 죽음에 별을 달아드린다. 


이 책에주는 별은 그래서, 하나도 없고,

알라딘에 한 개, 저자에게 큰 별 한 개.


*    *   *    *    *


첨언하자면, 이 책은 전작이 있다.


전략적 글쓰기


2008년도, 그러니까 10여년 전에 이미 같은 원서로 나왔던 책이다.

출판사가 바뀌어서 '개정판'이라는 안내문이 없다.

저작권이 소멸되거나 변경되어 다른 출판사에서 나오면서

그런 안내문도 소멸되어 버린 폐해는 고스란히, 독자의 몫이다.


10여 년 전에 이미 나왔던 책과

2020년도에 처음 나온 책이 주는 체감 온도는 많이 다르다.


일일이 뒤져보고 따져보지 않았던 독자의 게으름을 탓할 수밖에.


'개정판'이란 안내문은 없어도 뭔가 언질을 주는 것을 '배려'라 한다.

그것도 큰 배려다.

몰라서 사는 것과 알고도 사는 것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므로.


툴툴거리며, 책덮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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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 스토리 컨설턴트의 글쓰기 특강 - 흥미진진한 영화 대본, 소설, 드라마, 웹툰을 쓰는 비법
리사 크론 지음, 서자영 옮김 / 처음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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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것은 책이다.

그것도 글쓰기 책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쓴 책이리라.


그런데 왜 이렇게 글을 못 썼을까?

못 쓰다 못해 '비문' 투성이다.


번역자가 원저의 내용조차 제대로 이해 못하고 옮긴 부분도 부지기수.

(아직 1/10 밖에 안 읽었는데 이 정도다)


예를 들면, 이런 식.


[이미 알고 있겠지만, 소설을 쓰는 것은 꽤 어려운 작업이다.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것만큼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사람들은 시작하자마자 포기하는 작가가 엄청나게 많은 것이 너무나 당연해 보여 이것에 전혀 의문을 가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도대체 여기서 '이것'이 무엇일까?

사람들이 전혀 의문을 가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이것이 과연 무엇일까?


1. 소설을 쓰는 것?

2. 시작하자마자 포기하는 것?

3. 소설쓰기가 어렵지 않은 것?


영어의 대명사는 가능한 한 우리말로는 구체적인 명사로 풀어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꼬이기 십상이다. 


[잘 쓰는 법을 배우는 것의 문제점은, 스토리의 측면에서 봤을 때 이미 버스가 떠났다는 것이다.]


이해하기 위해 추론의 도식을 세워보기까지 해야 한다.


잘 쓰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문제점이 있다----->무슨 문제점?

스토리의 측면에서 봤을 때, 버스가 떠났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이해하란 말인지??


스토리의 측면에서 본다...........는 말은 대체 무슨 뜻인가?

스토리의 기능적 측면

스토리의 구조적 측면

스토리의 생리적 측면


등이라면 몰라도 이 책 자체가 '스토리컨설턴트'의 '스토리'에 관한 내용인데

'스토리의 측면'이란 게 당췌.....


[스토리란 어려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그 일이 그의 내면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필시 원래는 더 좋을 이 문장이 전형적인 '번역투/직역투' 때문에 지난하게 읽힌다.

무책임한 '것'이 너무 많다. '것'을 좀 더 책임감 있는 단어로 바꾸면 훨씬 더 잘 읽힐 텐데.


---> 스토리란, 어려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인물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 일어나고, 그 일이 인물 내면에 변화를 일으키는, 일련의 과정(또는, 형식)이다. (물론, 원서를 아직 보지 않고, 번역만 보고 고쳐 본 것)


원서의 '정확한' 내용이 너무나도 궁금하여 원서를 사 보기로 했다. 확인하고, 리뷰를 업데잇할 생각이다.


참고로, 참담한 수준의 번역 때문에 이해 안 가거나 읽기 불편한 부분을 죄 빼고

그나마 읽히는 부분만 건져서 보더라도


책 내용은 좋다.


소설을 '스토리'에만 국한시켜 너무 좁게 단정시켜 버린 앵글이 아쉽긴 하지만,

'소설=스토리'라고, 부분의 겹을 전체라 여기고 읽어도 

건질 게 많다. 어쨌든 단순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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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에 원서의 앞 부분이 공개되어 있어 원문을 보고 왔다.

하...이건 뭐, 다른 책이라 해도 될만한 수준 아닌가...


첫단락부터 제동이 걸린다.


[What's the biggest mistake writers make? This is the question I've been asked most frequently over the years. The answer is easy. They don't know what a story is. So even though they have a great idea, their prose is gorgeous and there is a lot of action, there is no real story and so no driving sense of urgency; which translates to: no readers.]


엄청나게 쉬운 문장이다. 한국의 초등학생 정도도 무리없이 읽을 수 있는.

그런데 쉬워서 자칫 삐걱할 수 있는 게 영어다. 


[작가가 저지르는 가장 실수는 무엇일까? 지난 몇 년동안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대답은 간단하다. 스토리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근사한 문체로 다양한 사건을 다뤄도 진정한 스토리를 말하고 있지 않으니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러니 독자가 없다.]


얼핏 보기엔 별 문제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번역문은 이 단락의 '핵'을 놓치고 있다.


바로, 'driving sense of urgency' 때문이다.


뒤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저자는 '스토리의 작용'에 관해 꽤 힘주어 설파한다. 

스토리를 유기체처럼 다루며 스토리와 우리 인체의 생물학적 반응에 관해서도 짚어낸다.


그러면서 강조하는 말이 바로 '읽고 싶게 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그냥' 읽고 싶게 하는 마음이 아니다. 

'간절히' 읽고 싶게 하는 마음이다. 


이 책 전체에 깔린, 저자의 소신이 바로 머리말의 이 첫단락,

그것도 바로 이 'urgency'에서 예고하듯, 터져나온다.


'urgency'의 핵심은 'quickly'이다.


뭔가 안달나고, 조급해서 '빨리' 덤벼드는 이미지다.


즉, "진정한 스토리가 없으니 'urgency' 감각을 주지 못한다(there is no real story and so no driving sense of urgency; which translates to: no readers.)'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하지 않아도 '대충' 스토리같아 보이는 소설(영화, 드라마)도 읽히긴 한다.

그러나 'sense of urgency'를 주지 못한다............


이게 이 단락의 핵심이다.


안 그런가?


그런데 번역문에 'sense of urgency'가 어디로 가 버렸나?

없다.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덜렁, 이리 되었다.


첫단락부터 독자는 손해 보았다.

어쩌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을 '정수(essence)'의 조각을 놓쳤다. 


sense of urgency


이 단어만 갖고도, 독자는 배울 게 있다.

아...좋은 아이디어, 좋은 문체, 좋은 사건을 확보해도 

'sense of urgency(=빨리 달려들어 읽고 싶게 만드는 흥분감, 조급함, 안달감)'를 줄 수 있어야 하는구나, 하고.


단순히, 그냥 '읽고 싶게 만드는 힘'이 아닌 것이다.


그 둘의 차이는 '천지'만큼이다. 천지차이


그리고 더 큰 오류가 있다.

바로, 'writer'의 대치어로 선택한 '작가'란 단어다.


이 책은 '작가 지망생 혹은 작가지만 잘 안 팔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다.

그래서 뭉뚱그려 '작가'라고 한듯하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작가 지망생'이 과연 작가인가?

영어로 'writer'라 하면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도 있지만

그냥 '글쓴이'도 'writer'다. 즉, 초등학생이 숙제로 글짓기 숙제를 냈어도 교사가 그 숙제 페이퍼를 들어 보이며 "who is the writer?"하고 물을 수 있다. 그냥 '쓴 사람'이다.


그 다음 단락을 보자.


[아무리 열심히 작업하고('work'는 여기서 '작업'이라기보다 '습작'이 적절하다. 글쓰기 말이다) 글쓰기 워크샵에 참가하고 학위를 취득해도 여전히 내 책을 출판하겠다는 기획자(원서의 'agent'는 '기획자'가 아니다. '출판 대리인'이다. 말 그대로, 중개인)도 없고 출판 계약도 못하며, (중략) 자비 출판을 한다 하더라도 친구나 가족이 겨우 몇 권 사는 것이 전부...(후략)]


읽어서 알겠지만, 이게 '작가'를 말하는 게 맞나?


무슨 작가가 글쓰기 워크샵에 참가하고(강사로 참여한다면 모를까)

아직 책을 출판도 못했고

출판 대리인도 안 붙고

출판 계약도 못했고


이건......쉽게 말해 '작가'를 꿈꾸고 습작중인 '취준생'의 모습, 아닌가?


다 접고, 책 출간을 안 했는데, 어떻게 우리말로 '작가'가 성립할 수 있나?


여기서 말하는 'writer'는 '그냥 글을 쓰는 사람'이지 '작가'가 아니지 않나?

적어도 우리말로 '작가'는 '프로페셔널'하게,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을 일컫는다.

하긴, SNS에 글쓰면서 자칭 '작가'라 하는 이들이 너무 많아 문제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의 한글 번역본은


누구를 상대로 쓴 글인지,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어쩌면 모든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쳤는 지도 모른다.


첫단락에서부터.


원서가 참, 좋은 책인 것 같아 길게 떠들었다.

원서를 사서 읽어보면, 떠들 게 더 많아질 것 같아 걱정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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