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밥 딜런(Bob Dylan)’이 선정되었을 때, 그가 유명한 가수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의 이력이나 노래는 잘 알지 못했다. 그 당시 밥 딜런의 수상에 대해 꽤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받을만한 적당한 이유가 있었기에 선정되었다고 생각했었다. 매년 노벨 문학상이 발표되면 관심을 가지지만 내가 워낙 시를 읽는 것을 어려워하고 좋아하지 않아 그냥 넘어갔었다. 밥 딜런은 노벨 문학상 수상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최근 개봉한 밥 딜런의 전기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A Complete unknown)’을 보고 영화가 너무 좋아 스웨덴 한림원은 밥 딜런에게 왜 노벨 문학상을 주었는지 궁금해졌다. 이 책의 제목인 『다시 찾은 61번 고속도로』는 그의 유명한 노래이며 이 노래가 수록된 음반 역시 엄청났다고 한다.
[밥 딜런 시선집 1은 사회비판적이고 저항정신이 두드러지는 52편의 작품을 골라 엮은 것이다.… 모든 살아 있는 예술, 살아 있는 사유와 철학이 그러한 것처럼, 그의 노래는 이른바 ‘바람 부는 길’위에 뿌리박고 있다. 바람 부는 길 위에 서 있기에, 그의 목소리에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자의 당당함이 배어 있다. -p.160
이것은 손으로 넘기는 시집이 아니라 턴테이블 위를 빙빙 돌아가는 말과 소리의 향연이다.… 나는 밥 딜런의 앨범들을 ‘턴테이블 시집’으로 본다.
-p.164, 옮긴이 해설 중에서]
이 책에 수록된 글은 밥 딜런 노래의 가사이다. 노랫말은 당연히 음악과 함께 들어야 하겠지만 글로만 읽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밥 딜런의 글이 직접적이라 다른 시에 비해 읽기는 쉬웠지만 그렇다고 무난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노래한 시대에 대해 먼저 알아야 했다. 각 노랫말이 특정(실제) 사건에 관련된 것(토피컬 송-topical song)도 많아 배경도 중요했다.
책을 읽으면 누구라도 밥 딜런의 시에서 저항 정신과 사회 비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자유로운 리듬에 푸념 섞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토킹블루스’ 형식의 굉장히 긴 가사도 특징적이다. 밥 딜런은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를 추구했다. 포크, 일렉트릭, 컨트리, 가스펠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며 그 속에 여러 가지 메시지를 담았다는 것이 노벨상 수상의 이유일 것이다.
[정치적 세계
우리는 정치적 세계에 살고 있다
사랑이 머물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범죄에는 얼굴이 없다
........
우리는 정치적 세계에 살고 있다
빙빙 돌며 요동치는
깨어나자마자 당신은 훈련된다
가급적 쉬워 보이는 해결책을 선택하게끔
..............]

‘컴플리트 언노운’은 무명 뮤지션인 밥 딜런이 뉴욕에 입성한 1961년에서 그가 포크 장르와 결별한 1965년의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까지를 배경으로 한 전기 영화이다. 냉전이 격해지고 인종차별이 여전했던 시절, 전통 포크 뮤지션들은 어쿠스틱 기타 하나로 사회를 비판한 저항시인들이었다. 밥 딜런도 처음에는 포크 뮤직에 발을 들여놓고 피트 시거와 조안 바에즈와 교류하며 활동했다. 기타와 하모니카를 연주하며 직접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드는 싱어송라이터였다.
나무위키에서 딜런의 커리어를 총 9가지로 분류했는데 이 영화는 신인 뮤지션인 그가 저항의 아이콘으로 추앙받고 일렉트릭 기타로의 전환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피아노와 기타를 거의 독학한 밥 딜런은 1950년대 중반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했으며 밴드를 결성한다. 그는 ‘우디 거스리’의 음악을 듣고 ‘노래란 삶의 방식을 배우는 것’임을 체감하고 대학을 그만두고 뉴욕으로 간다. 영화는 병원에서 투병중인 우디 거스리를 만나러 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딜런은 그곳에서 유명한 포크 가수인 ‘피트 시거’를 만난다.
이 영화에서 배우 ‘티모시 샬라메’를 다시 봤다. 4년 동안 연마한 기타와 하모니카 연주 실력, 밥 딜런과 거의 비슷한 모습의 연기와 노래 실력까지 정말이지 대단했다. 피트 시거 역의 ‘에드워드 노튼’과 조안 바에즈 역의 ‘모니카 바바로’ 역시 직접 기타를 연주하며 부르는 노래 실력이 엄청났다. 딜런의 연인인 실비 역의 엘 패닝도 매력적이었다.
컴플리트 언노운에서는 전반부의 밥 딜런을 표현한 ‘Blowin’ in the Wind’와 후반부의 밥 딜런을 의미하는 ‘Like a Rolling Stone’ 두 노래가 반복적으로 나올 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중간에 내가 아는 노래가 나와 반가웠다.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였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김광석 님이 리메이크해 이 곡을 불렀었다.
이 노래는 딜런과 실비, 조안 바에즈가 은근한 삼각관계를 이루는 부분에서 실비가 조안을 의식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딜런은 자유를 추구하는 남자였다. 자신이 생각하고 가고자 하는 방향에 거침이 없었다.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실비는 온전히 딜런을 소유할 수 없어 좌절하고 슬퍼하며 그를 떠난다. 많은 남자 예술가들이 그렇듯 밥 딜런 역시 뮤지션으로서는 대단하지만 인성이나 사랑에 대해서는 그다지 충실하지 않은 사람인 것 같았다.
밥 딜런은 19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어쿠스틱 기타를 버리고 일렉트릭 기타를 선택한다. 그리곤 오토바이를 타고 우디 거스리를 만나러 간다. 거기에서 부르는 노래가 ‘Song to Woody’다. 이제는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고 자신을 길을 가겠다는 것이 영화의 마지막이었다.
티모시 샬라메가 그 노래를 부르는 내내 내 옆에 앉으신 초로의 여자분께서 그 노래를 소리 내어 따라 부르시는 것이었다. 영화도 좋았지만 그 분의 노래에 너무 반해 영화가 끝나고도 여운이 남아 한참 앉아 있었다.
밥 딜런만 멋있는 사람이 아니다. 밥 딜런의 음악을 좋아하고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는 수많은 팬 역시 멋진 사람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