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폴라 일지
김금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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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이란 단어를 분명하게 사용하지만, 사실 잘 모르는 그 곳에 대한 일상의 보고가 흥미롭다.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일깨워준다. 오래된 간절한 바람과 소설의 소재를 위한 작가의 폴라 일지가 좋은 작품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관찰자로서의 한계로 인한 감동과 재미의 부족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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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밥 딜런(Bob Dylan)’이 선정되었을 때, 그가 유명한 가수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의 이력이나 노래는 잘 알지 못했다. 그 당시 밥 딜런의 수상에 대해 꽤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받을만한 적당한 이유가 있었기에 선정되었다고 생각했었다. 매년 노벨 문학상이 발표되면 관심을 가지지만 내가 워낙 시를 읽는 것을 어려워하고 좋아하지 않아 그냥 넘어갔었다. 밥 딜런은 노벨 문학상 수상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최근 개봉한 밥 딜런의 전기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A Complete unknown)’을 보고 영화가 너무 좋아 스웨덴 한림원은 밥 딜런에게 왜 노벨 문학상을 주었는지 궁금해졌다. 이 책의 제목인 다시 찾은 61번 고속도로는 그의 유명한 노래이며 이 노래가 수록된 음반 역시 엄청났다고 한다.

 

[밥 딜런 시선집 1은 사회비판적이고 저항정신이 두드러지는 52편의 작품을 골라 엮은 것이다.… 모든 살아 있는 예술, 살아 있는 사유와 철학이 그러한 것처럼, 그의 노래는 이른바 바람 부는 길위에 뿌리박고 있다바람 부는 길 위에 서 있기에, 그의 목소리에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자의 당당함이 배어 있다. -p.160

 

이것은 손으로 넘기는 시집이 아니라 턴테이블 위를 빙빙 돌아가는 말과 소리의 향연이다.나는 밥 딜런의 앨범들을 턴테이블 시집으로 본다.

-p.164, 옮긴이 해설 중에서]

 

이 책에 수록된 글은 밥 딜런 노래의 가사이다. 노랫말은 당연히 음악과 함께 들어야 하겠지만 글로만 읽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밥 딜런의 글이 직접적이라 다른 시에 비해 읽기는 쉬웠지만 그렇다고 무난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노래한 시대에 대해 먼저 알아야 했다. 각 노랫말이 특정(실제) 사건에 관련된 것(토피컬 송-topical song)도 많아 배경도 중요했다.

 

책을 읽으면 누구라도 밥 딜런의 시에서 저항 정신과 사회 비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자유로운 리듬에 푸념 섞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토킹블루스형식의 굉장히 긴 가사도 특징적이다. 밥 딜런은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를 추구했다. 포크, 일렉트릭, 컨트리, 가스펠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며 그 속에 여러 가지 메시지를 담았다는 것이 노벨상 수상의 이유일 것이다.

 

[정치적 세계

 

우리는 정치적 세계에 살고 있다

사랑이 머물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범죄에는 얼굴이 없다

........

우리는 정치적 세계에 살고 있다

빙빙 돌며 요동치는

깨어나자마자 당신은 훈련된다

가급적 쉬워 보이는 해결책을 선택하게끔

..............]



컴플리트 언노운은 무명 뮤지션인 밥 딜런이 뉴욕에 입성한 1961년에서 그가 포크 장르와 결별한 1965년의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까지를 배경으로 한 전기 영화이다. 냉전이 격해지고 인종차별이 여전했던 시절, 전통 포크 뮤지션들은 어쿠스틱 기타 하나로 사회를 비판한 저항시인들이었다. 밥 딜런도 처음에는 포크 뮤직에 발을 들여놓고 피트 시거와 조안 바에즈와 교류하며 활동했다. 기타와 하모니카를 연주하며 직접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드는 싱어송라이터였다.

 

나무위키에서 딜런의 커리어를 총 9가지로 분류했는데 이 영화는 신인 뮤지션인 그가 저항의 아이콘으로 추앙받고 일렉트릭 기타로의 전환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피아노와 기타를 거의 독학한 밥 딜런은 1950년대 중반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했으며 밴드를 결성한다. 그는 우디 거스리의 음악을 듣고 노래란 삶의 방식을 배우는 것임을 체감하고 대학을 그만두고 뉴욕으로 간다. 영화는 병원에서 투병중인 우디 거스리를 만나러 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딜런은 그곳에서 유명한 포크 가수인 피트 시거를 만난다.

 

이 영화에서 배우 티모시 샬라메를 다시 봤다. 4년 동안 연마한 기타와 하모니카 연주 실력, 밥 딜런과 거의 비슷한 모습의 연기와 노래 실력까지 정말이지 대단했다. 피트 시거 역의 에드워드 노튼과 조안 바에즈 역의 모니카 바바로역시 직접 기타를 연주하며 부르는 노래 실력이 엄청났다. 딜런의 연인인 실비 역의 엘 패닝도 매력적이었다.



 


 

컴플리트 언노운에서는 전반부의 밥 딜런을 표현한 ‘Blowin’ in the Wind’와 후반부의 밥 딜런을 의미하는 ‘Like a Rolling Stone’ 두 노래가 반복적으로 나올 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중간에 내가 아는 노래가 나와 반가웠다.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였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김광석 님이 리메이크해 이 곡을 불렀었다.

 

이 노래는 딜런과 실비, 조안 바에즈가 은근한 삼각관계를 이루는 부분에서 실비가 조안을 의식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딜런은 자유를 추구하는 남자였다. 자신이 생각하고 가고자 하는 방향에 거침이 없었다.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실비는 온전히 딜런을 소유할 수 없어 좌절하고 슬퍼하며 그를 떠난다. 많은 남자 예술가들이 그렇듯 밥 딜런 역시 뮤지션으로서는 대단하지만 인성이나 사랑에 대해서는 그다지 충실하지 않은 사람인 것 같았다.

 

밥 딜런은 19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어쿠스틱 기타를 버리고 일렉트릭 기타를 선택한다. 그리곤 오토바이를 타고 우디 거스리를 만나러 간다. 거기에서 부르는 노래가 ‘Song to Woody’. 이제는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고 자신을 길을 가겠다는 것이 영화의 마지막이었다.

 

티모시 샬라메가 그 노래를 부르는 내내 내 옆에 앉으신 초로의 여자분께서 그 노래를 소리 내어 따라 부르시는 것이었다. 영화도 좋았지만 그 분의 노래에 너무 반해 영화가 끝나고도 여운이 남아 한참 앉아 있었다.

 

밥 딜런만 멋있는 사람이 아니다. 밥 딜런의 음악을 좋아하고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는 수많은 팬 역시 멋진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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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야제 2025-03-22 1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너무 좋아해요.
제가 좀 문명에 뒤쳐지는 경향이 있긴 한데, 영화 개봉한 줄도 모르고 있었네요ㅠㅠ
글 읽고 바로 찾아보았더니 춘천은 상영이 끝났나봐요ㅠ
영화 보셔서 너무 좋으셨을 것 같아요.
음악 영화라서 아는 노래나, 좋아하는 노래 나올 때 특히 더 감동이었을 것 같아요ㅎㅎ
저는 언젠가 ott로 나오면 봐야겠어요.
좋아하는 배우가 3명이나 나와서 꼭 볼게요!
영상 첨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녁에 잘 듣고 있어요^^

페넬로페 2025-03-22 20:00   좋아요 1 | URL
김광석 님의 노래를 알고 있어 듣는 순간 반갑더라고요.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작들이 다 괜찮은 영화라서 영화관에 자주 다녀왔어요.
영화에 음악이 있으니 더 좋았어요.
전야제님, 좋아하시는 배우 3인이 누구일까요?
저는 티모시 샬라메가 좋아졌고
조안 바에즈 역의 모니카 바바로 배우가 상당히 매력적이었어요^^

전야제 2025-03-23 11:10   좋아요 1 | URL
저도 티모시 샬라메 좋아하고, 엘르 패닝도 넘 좋아해요!
에드워드 노튼의 연기를 좋아하는데, 이 영화에서 피터 시거 역으로 나오시더라구요.
오랜만에 이 배우님들의 영화를 찾아보려구요ㅎㅎ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작들 다 보고싶어요ㅠㅠ
미세먼지 많지만 날은 너무 좋아요. 즐거운 일요일 보내세요^^

서곡 2025-03-23 1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티모시 살라메가 밥 딜런 역을 하는 게 사실 상상이 잘 안 돼요 ㅋ 여러 배우들이 딜런 역을 한 특이한 영화 ‘아임 낫 데어‘가 기억나네요

페넬로페 2025-03-23 14:54   좋아요 1 | URL
저도 상상이 안됐는데 완전 잘 하더라고요. 노래, 기타, 하모니카를 수준급으로 연주해요.
그런 노력이 넘 멋졌어요.
요즘 아임 낫 데어 영화보고 있는데 밥 딜런의 전반적인 생을 표현하는 것 같아요.
이 영화는 초창기의 밥 딜런을 소재로 하고 있어요^^

그레이스 2025-03-24 2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벨문학상 받았을 때 한대수 책을 갖고 있어서,,, 그 책 읽었어요.
가사를 문학으로 볼 것이냐 때문에 말이 많았던걸로 기억해요.
막상 찾아볼 책이 없어서 조금 허탈했던 것두요^^
이 영화도 봐야겠어요 ^^

페넬로페 2025-03-27 19:22   좋아요 1 | URL
네, 한대수 가수가 먼저 리메이크 했죠.
밥 딜런의 가사는 엄청 직접적인데 반전이나 반골, 평화의 내용을 담고 있어 그게 노벨상 수상의 이유가 아니었나 생각했어요.
영화에 음악이 있어 좋아요.
조앤 바에즈의 노래를 많이 들었거든요^^

페크pek0501 2025-03-27 12: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01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밥 딜런(Bob Dylan)’이 선정되었을 때,˝ - 그때가 생각납니다. 이런 걸 뽑은 걸 보면 뽑을 만한 작품이 없었나 보다, 라는 말까지 나왔었죠. 저는 뽑을 만했겠지, 라고 생각했죠.^^

페넬로페 2025-03-27 19:23   좋아요 1 | URL
저도 밥 딜런이 뮤지션을 뛰어넘는 다른 뭔가의 뚜렷한 이유가 있어 수상했다고 생각했어요.
 
드립백 피어나다 - 12g, 7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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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드라마에서, 청와대가 보이는 넓은 집무실에서 로펌 회장님은 결정적일 때 소주를 마시며 새우깡을 먹는다. 소주와 새우깡이라는 환상을 비열과 추함과 짠함으로 바꾼다. 하지만 책과 커피는 그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는, 언제나 변할 수 없는 짝궁이다. 봄볕에 피어난 무민과 함께라서 더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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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5-03-21 1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엇 저 삼십분 전에 이거 주문했답니다 ㅎㅎ 양탄자배송이라 오늘 밤에 온다더군요 주말에 마시려고요 오늘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5-03-21 14:58   좋아요 1 | URL
아, 그러시군요.
즐거운 커피타임 가지시길요.
날씨가 많이 따뜻해져 곧 꽃이 많이 필 것 같습니다.
남은 3월도 건강하게 보내십시오^^

페크pek0501 2025-03-27 1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알라딘 드립백, 선물 받아 마셔 본 적 있어요. 오늘 커피 벌써 두 잔 마셨어요. 어쩌면 오늘 카페에 가서 마실 수도... 디카페인으로 마셔야지, 하고 있어요. 커피와 책은 절대 못 끊어!!! 입니당~~

페넬로페 2025-03-27 17:56   좋아요 0 | URL
알라딘 드립백은 책과 함께 선물하기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원두보다 일단 편해 좋습니다^^
 
역사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헤로도토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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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에 갈 수 있는 모든 곳을 다니며 방대한 자료를 수집해 『역사』를 집필한 대단한 헤로도토스. 역사적 사실뿐만 아닌 풍속, 지리, 대담을 다룬 이 책은 문학이며 지혜서이기도 하다. 오래전 모든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보여준 헤로도토스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그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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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5-03-17 1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천병희 선생의 번역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다.

페크pek0501 2025-03-27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4만 원이 넘다니... 그보다 9백 쪽이 넘다니... 저도 벽돌책 몇 권 가지고 있는데 보기만 해도 뿌듯해져요. 아, 읽어야 할 책 분량에 비해 짧은 우리의 인생이여!!!

페넬로페 2025-03-27 17:54   좋아요 0 | URL
짧은 우리네 인생인데 뭐하러 그렇게 전쟁을 하고 사람을 죽이며 땅을 넖혀야하는지 이해가 잘 안 됩니다. 권력이며 힘은 끝까지 가지 않는데도 말이죠.
<역사>가 방대한 분량인데 생각보다 다양한 부분이 서술되어 있어 읽기가 재미있었어요^^
 
디 에센셜 한강 (무선 보급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디 에센셜 The essential 1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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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복도식 아파트 11층에 살고 있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거나,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으로 올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하늘이다. 모든 것이 다 그렇듯 하늘도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계절과 시간에 따라 색깔과 농도가 달라지며 구름과의 어울림도 각양각색이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 비 오기 전이나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 온통 먹구름으로 덮여있는 회색빛 하늘, 별과 달이 함께 있는 검푸른 하늘 모두 경이롭다.

 

늦여름에서 가을 사이, 해질 무렵 노을 진 하늘의 모습을 나는 가장 좋아한다. 매일 나타나는 노을의 모습은 수만 가지다. 클로드 모네가 매번 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가서 그림을 그렸는지 이해가 될 정도이다. 하늘과 노을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을 보고 있으면 심장이 벅차다. 그냥 쿵 내려앉는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 모든 걱정과 번뇌가 사라진다.

 

자주 생각한다. 작가란 내가 이렇게 본 세상 모든 것을 언어로 표현해주는 사람이 아닐까하고. 그저 좋다’, ‘아름답다’, ‘멋지다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 언어를 창조하고 조합해 나의 감각과 느낌과 육체를 통합해주는 사람.

 

세 번째 읽은 한강의 희랍어 시간을 통해 내 생각이 더 확실해졌다. 처음에는 사랑으로 다가온 이 소설이 점점 언어와 문장으로 집중되어 갔다. 세상 모든 서사의 중심은 사건이 아닌 언어라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 언어로 표현된다는 이 단순하고 기본적인 것이 모든 것의 시발점이었다. ‘한 작품을 마치면 이미 자신은 그 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는 한강 작가의 말처럼 언어는 작가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과 독자를 변화시킨다.

 

적절하게 표현되지 못한 말 대신 내 속에서 나온 헛되고 의미 없는 언어와 타인의 말들은 저절로 부풀어지고 딱딱한 덩어리가 되어 옹벽 속에 갇히게 한다. 기억과 감정, 심지어 내 몸 구석구석에 붙어 있어 나를 구속시킨다.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책을 읽는다. 작가는 그런 나의 옹벽을 조금이나마 깨부수어주는 사람이다. 그들이 쓴 문장으로, 나와 비슷한 경험의 에피소드로, 내가 사는 세계와 완전히 다른 곳의 사람들과의 공감으로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럴 수 있다는, 그렇게 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더 많이 그래야 한다는 것으로 작은 길을 열어준다.

 

[글을 쓰려면 시간을 사유해야 한다는 것을. 무엇보다 먼저 나의 삶과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고, 필멸하는 인간의 짧디짧은 수명에 대해 생각해야 하고, 내가 지금까지 누구를 위해 글을 써왔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을. ‘언어라는 나의 불충분하고 때로 불가능한 도구가, 결국은 그것을 읽을 누군가를 향해 열려 있는 통로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자각해야 한다는 것을.

-p.340]

 

작년 한 해 동안 오노레 드 발자크의 소설을 읽었다. 발자크의 소설을 읽을수록 그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한편으로 내가 생각하는 소설의 기능과는 조금 동떨어져 있었다. 발자크 소설이 시대를 대변하는 동시에 보편성으로까지 연결되지만 내 마음까지 움직여 주지는 못했다. 거대한 시대적 흐름에서 뒤처지거나 편승하지 못한 인간은 함몰되어 버리고 마는 적나라함을 너무 솔직히 보여줘 힘이 빠지기 일쑤였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으로 작가의 작품을 다시 하나씩 읽으면서 발자크로 인해 깨어진 소설적 감수성을 조금씩 회복하는 중이다. 한강 작가 역시 발자크와 같이 이 시대를 그대로 보여주는 작가이다. 어떨 땐 읽기가 너무 힘들다. 하지만 서술하는 방식과 결과가 다르다. 소재의 스펙트럼도 엄청 넓다.

 

회복하는 인간파란 돌은 똑같이 죽음이 있지만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다. 슬픔의 강도가 파란 돌이 더 강했다. 그 사람이 잊히지 않아 다시는 행복할 수도, 웃을 수도 없을 것 같은 불행이 있었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고 마음이 아팠다. 슬프고 힘든 내용은 다 마음이 안 좋지만, 파란 돌은 나의 소설적 노스탤지어를 가져다주어 더 그런 것 같았다.



촉촉한 함박눈이 내리던 3월초에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강연을 읽었다.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여름의 소년들에게출간 후에와 연결되었다. 맥이 같았다.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을 던지고 그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서 살고 있는작가라는 숙명을 가진 사람의 고통이 보였다. 매번 그 질문의 모양과 내용은 다르지만 작가의 소설이 결국 사랑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 좋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이 두 질문 사이의 긴장과 내적 투쟁이 내 글쓰기를 밀고 온 동력이었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비와 구분이 잘 안 되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눈은 사람이 다니지 않은 모퉁이에 순식간에 두껍게 쌓여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눈을 좋아하고, 눈에 대한 표현을 기막히게 잘하는, 사주에 역마가 든 한강 작가(작가의 말)가 오랫동안 글을 많이 써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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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03-17 0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강작가님의 희랍어시간을 제일 좋아했었는데 몇일전에 소년이 온다를 읽고 생각이 바꼈습니다 ㅋ 그래도 희랍어 시간 너무 좋아요. 저도 희랍어 사간을 읽고 언어가 이렇게 아름다울수 있는거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페넬로페 2025-03-17 09:45   좋아요 1 | URL
희랍어 시간은 오래 전에 읽고 이번에 재독했는데 완전 새롭게 읽혔어요. 내용도 좋았지만 글이 아름다워 계속 그 의미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소년이 온다도 재독할 계획입니다^^

자목련 2025-03-17 1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강 작가의 글 정말 좋아요!
페넬로페 님의 글도 좋고요. 많이 많이!!

페넬로페 2025-03-17 13:01   좋아요 0 | URL
네, 좋고~~
노벨상 수상으로 더 좋아요.

전야제 2025-03-17 2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감수성 풍부하신 페넬로페님!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풍경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는 것에서 일상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지 느껴져요.
저도 노을 너무 좋아해요ㅎㅎ
매번 같은 시간, 같은 노을인데 말씀하신대로 다른 풍경이 펼쳐져요.
하루 일과 중에 가장 벅차오르는 시간!
한강 작가님의 글도 아름답지만 페넬로페님의 서정적인 표현들도 아름다워요.

가끔 어떤 책을 구석구석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몇번이나 읽어야 할만큼 푹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책들을 읽고 나면 정말로 예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더라구요.
그렇게 성장해나가는 느낌이 좋아서 모두들 독서에 빠지는 건가봐요ㅎㅎ
하물며 글을 쓰는 사람이란, 그걸 만들어내야 하니깐 얼마나 또 성장하게 될까, 부럽기도 해요!
저는 페넬로페님의 글을 읽으며 또 배우고 성장합니다^^
오랜만에 서재에 들어왔는데 너무 읽고 싶었어요.
천천히 읽어나갈게요ㅎㅎ

페넬로페 2025-03-17 22:00   좋아요 1 | URL
전야제님도 노을 좋아하시는군요.
자연은 보는 시선이나 위치에 따라 느끼는 것이 달라 보여 매번 신비로워요.
이제 조금 있으면 봄꽃이 필 텐데 기대되기도 합니다.

어느 책이건 한 번보다 여러 번 읽으면 확실히 그 의미가 깊게 보이고 느낌도 달라지더라고요.
근데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 천천히 읽지를 못합니다 ㅠㅠ
특히 서재에 들어 오면 읽고 싶은 책이 두, 세배로 늘어나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