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아파트 상가에는 연중무휴, 12시까지 영업을 하는 마트가 있다. 늦은 밤 갑자기 뭔가가 필요할 때, 난 편의점보다는 그 마트로 달려간다.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그 곳은 물건의 종류도 다양하고 사장님이 무척 친절하시다. 그날은 밤늦게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집에서 입는 옷 그대로에 패딩과 마스크만 걸치고 잽싸게 내려갔다. 많은 종류의 맥주가 있는 진열대 앞에서 무엇을 고를까 고민하고 있는데, 마스크도 쓰지 않은 한 노인이 들어왔다. 그는 내 옆으로 와서(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난 그 노인에게서 진한 술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패트병에 든 소주 두 병과 막걸리를 집어 들고는 얼른 계산을 하고 나갔다. 캔맥주 하나와 과자를 고른 내가 카운트로 가서 계산을 하면서 사장님께 이렇게 말했다.

 

방금 그 노인분은 이미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은데 또 저렇게 술을 사 가시네요

 

내 말을 듣자마자 평소 말수가 없는 사장님이 나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마트의 고객 중에 세 명 정도 저렇게 술을 많이 사 간다고 했다. 그들은 항상 술에 절어 있으며 알코올 중독이 의심될 정도라고. 그 중 한 사람은 젊은 남자인데 얼마 전 그의 어머니가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하셨다고 했다. 사장님은 그들에게 술을 팔 때마다 깊은 고민에 빠진다고 말했다. 그냥 모른 채 하며 그들에게 술을 파는 게 옳은지, 아니면 자기가 나서서 술을 그만 마시라고 말을 해야 하는지 항상 헷갈린다고 했다. 봇물 터지듯 나에게 쏟아내는 그의 말들에서 그동안 사장님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게 되었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 그 자체를 들여다보는 그의 따뜻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권여선의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봄밤에서 영경과 수환 부부는 중증 알코올 중독자로, 류머티스 환자로 같은 요양 병원에 입원해 있다. 금단 증상으로 괴로워하는 영경에게 수환은 외출하고 오라고 한다. 그녀가 바깥에 나가는 것은 술을 마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벚꽃이 핀 봄밤에 한 잔만 마시리라고 다짐한 영경은 며칠 동안 술을 마시고 의식 불명인 채 다시 요양 병원으로 실려 온다. 그동안 수환은 숨을 거두고 기억을 완전히 상실한 영경은 남편의 죽음도 알지 못한다.

 

[몸을 지탱하려면 하루에 적어도 반 리터의 독주가 필요했다. -p170

 

그는 속을 달래주는 해장술을 마신 후에야 간신히 다시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p171

 

쿠포에게는 오직 한 가지 특효약밖엔 존재하지 않았다. 하루에 반 리터의 독주는 배를 몽둥이로 후려치듯 강렬한 자극을 주어 그를 다시 일어서게 해주었다. -p255

 

그러는 동안 쿠포는 웅얼거리듯 신음을 했다. 전날보다 고통이 심한 듯 보였다. 이따금 끊어지는 신음은 그가 온갖 종류의 고통을 겪고 있음을 짐작게 했다. 수천 개의 바늘이 몸을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또한 묵직한 무언가가 몸 곳곳을 짓눌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차갑고 축축한 짐승이 허벅지 위를 기어 다니면서 송곳니로 살을 물어뜯는 느낌이었다. 또 다른 짐승들은 그의 어깨에 매달려 발톱으로 등 거죽을 벗겨냈다. -324]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 2권에서 제르베즈와 쿠포는 빠르게 밑바닥으로 추락한다. 그들을 끝없는 지옥으로 인도하는 것은 이다. 멈출 줄 모르고 갈 데까지 가는 술의 향연으로 폭력이 난무하고 가족과의 불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점점 포기하고 기대하지 않고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무기력한 삶이 이어진다. 쿠포가 술만 마시지 않았다면 랑티에를 집으로 끌어들이지 않았을 것이고, 나나는 거리의 여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죽음 직전의 섬망 상태에 빠진 환자(친척)를 본 적이 있다. 평생 알코올 의존증으로 여러 병을 앓다가 마지막을 앞둔 분이었다. 비명을 지르고, 헛소리를 하며 며칠 동안 괴로워 입술을 깨물어서 입술 전체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그분의 그런 모습을 본 순간 난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 모습에 무너져버렸다. 설사 그 사람이 살인자였더라도 그런 모습을 보면 그냥 울어버릴 수밖에 없다. 그런 모습이기에 수환은 영경을 밖으로 내 보냈고, 제르베즈는 어쩔 수 없이 쿠포를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계속 읽어나가며 나 역시 점점 그들을 체념의 상태로 바라보게 되었다. 나도 그들에게 무기력해졌다.

 

열쇠업자 비자르역시 술을 마시는 사람이고, 술만 마셨다하면 폭력적인 짐승이 된다. 그의 폭력으로 비자르 부인이 죽었고, 여덟 살인 딸 랄리에게도 채찍을 휘두른다. 그는 결국 랄리마저도 죽음으로 내몬다. 죽음 직전에 이르러서도 랄리는 성녀와 가시관을 쓰고 수많은 채찍질을 견딘 예수의 모습을 보인다. 한 번씩 이런 글을 읽을 때, 난 남자 작가들을 이해할 수 없다. 왜 그들은 여성에게 극도의 고통을 이겨내면서도 선하고 천사 같은 성녀의 역할을 맡길까? 그것도 그 어린 어린아이를 통해서. 그런 건 가능하지 않다

 

 

 

에밀 졸라는 결혼, 죽음에서 귀족, 부르주아, 상인, 서민, 농부의 결혼과 죽음을 비교하며 서술한다. 사람에게 주어진 환경은 중요하고 많은 영향을 끼친다. 각자의 환경에서 사람의 삶은 비슷하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거기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클레망스는 이제 서른 살이다. 그동안 아이 세 명을 기르느라 금발 머리는 누렇게 변했고 얼굴도 많이 상했다. 발랑탕은 술에 절어 생활했다...봉급날이면 목수는 술에 잔뜩 취했고 호주머니는 비었다...아내는 남편을 찾으러 술집에 가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러다 자신도 담배 연기 자욱한 술집 탁자에 걸터앉아 술을 홀짝거렸다.

-‘결혼, 죽음’, 서민의 결혼 중에서, p60~61

 

가난이 장롱을 온통 비워버렸다. 옷이라는 옷은 모두 싸구려 전당포에 맡겼다...요새는 부부가 구석에서 돗자리를 깔고 자는데 개도 마다할 돗자리다....모든 것이 모자랐고 생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빈민 구제소는 항상 기차가 떠나버려야 도착한다면서 모리소는 허탈하게 웃었다....비참함과 초상으로 덮인 들판, 파리 외곽의 추위와 배고픔으로 가득 찬 시체들 때문에 힘겹게 땀 흘리고 질질 끌리며 황량해진 들판.

-‘결혼, 죽음’, 서민의 죽음 중에서, p106~114]

 

모든 것을 잃은 제르베즈는 자신이 사는 초라한 공통주택을 바라본다. 그녀는 자신이 그곳에서부터 추락을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빈곤한 노동자들끼리 살아가는 초라한 곳에서 콜레라와 같은 가난은 전염되고 만다(p308)’ 고 믿는다. 결국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목로주점의 서문에서 작가는 내 소설 속 인물들은 본디 성정이 나약한 것이 아니라, 배움이 부족하고, 거친 노동과 비참함이 지배하는 환경 때문에 망가진 것뿐이다. 부디 나 자신과 내 작품들에 터무니없는 끔찍한 혹평을 퍼붓기 전에, 무엇보다 전부를 읽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주기를 바란다.(p8~9)'고 당부한다. 그들을 보며 포기하고 체념하는 나 자신에게 작가가 보내는 이 강렬한 당부가 다시 나를, 일으키고 일깨웠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라고, 희망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족속들이라 넘겨짚지 말고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들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스.로마 신화나 서사시에서는 신과 사람의 이름 앞에 의미가 있는 단어를 붙인다. 보통 신의 이름 앞에는 행복한이란 단어가 붙는다. 신들에게는 고통이 없다.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살면 그만이다. 사람의 이름 앞에는 아버지의 이름이 따른다. 가령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같이 표현된다. 그러나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에게 패하고 트로이아의 유민을 이끌어 새로운 나라를 세워야하는 의무를 지닌 아이네아스의 이름 앞에는 경건’, ‘성실’, ‘정직’, ‘아버지라는 단어가 붙여져 있다. 여기에서 경건이라는 것은 신들 특히 조국의 신들과 부모 형제, 친척 및 조국에 애정을 갖고 책무를 다하는 것으로 이상적인 영웅이나 지도자가 되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덕목이다(아이네이스, 숲출판사, p442) 지금 현재 너무나 어려운 현실에서, 우리는 이름 앞에 어떤 단어가 붙는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가? 그저 이 사람이 미우니 그냥 무조건 다른 사람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고 안일한 발상이다. 난 적어도 새로운 대통령이 제르베즈 같은 노동자와 랄리 같은 어린이를 유심히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날 것 그대로, 사실적으로 사회와 인물을 묘사한 작가 에밀 졸라는 민중을 처음으로 묘사한 소설을 썼다는 것으로 이미 대단하다. 그 시대, 그가 어떤 비판을 받았더라도 난 그의 이런 위대한 소설을 읽는 것 자체로 그를 존경한다.

 

[죽음은 제르베즈가 자초한 비참한 삶 속에서 마지막까지 조금씩 그녀를 침범해왔다. 심지어 제르베즈가 어떻게 죽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추위 때문에 얼어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은 빈곤함과 불결함 그리고 삶의 고단함으로 인한 것이었다....그러던 어느 날 아침 복도에서 악취가 풍겼고, 사람들은 이틀 전부터 제르베즈가 보이지 않았음을 떠올렸다. 그리고 계단 밑 골방에서 이미 시퍼렇게 변해버린 제르베즈의 시신을 발견했다.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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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2-17 06:5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재명이든 윤석열이든 도덕성 면에서는 이미 어느 누가 낫다고 판단할 지점을 넘어선 것 같습니다. 경제 발전과 코로나 회복이 중요하긴 하지만 약자와 소수자를 배제하고 혐오하는 선동으로 몰고 가는 건 참기가 어려워요ㅠ 여전히 고민중입니다

페넬로페 2022-02-17 13:35   좋아요 3 | URL
저도 같은 생각이예요~~
이번만큼 선택이 어려운 대선은 없었던 것 같아요 ㅠㅠ

Falstaff 2022-02-17 07:46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저도 월요일에 술에 관한 독후감을 올릴 터인데, 너무 멋있게 쓰셔서 기가 팍! 죽었습니다. 물론 아주 짧게 쿠포의 이름도 거론을 합니다.
(한 번 더!) 음메, 기죽어! ^^;;;

페넬로페 2022-02-17 08:45   좋아요 6 | URL
저는 이제 ‘술‘하면 쿠포가 떠오를 것 같아요~~
월요일에 올리실 술에 관한 글,
넘 기대가 됩니다^^

mini74 2022-02-17 07: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정말 잘 읽었어요 페넬로페님 생각이 많아집니다 ㅠㅠ

페넬로페 2022-02-17 08:46   좋아요 4 | URL
네, 저도 생각이 너무 많이 들었고 암담하기도 하고, 맘이 참 아팠어요^^

청아 2022-02-17 08:4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시누이네도 참 인간성이 악랄했죠.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다양한 성격과 행동에 지루할 틈이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쿠포의 고통에 관한 묘사... 무시무시했고요. 페넬로페님 깊이 있는 리뷰 항상 고맙습니다.~♡

페넬로페 2022-02-17 08:52   좋아요 5 | URL
사실적으로 쓴 소설중에 이렇게 지루하지 않은 소설은 처음이었어요~~러시아 작가들의 소설은 사실 좀 지루한 면이 있잖아요^^
저도 로리외부부에 대해 많이 생각했고 그들이 참 미웠는데 그런 환경에서 그나마 집세 내고 빚을 지지 않으려면 그렇게 살아야 하는건가요? ㅠㅠ
구제도 결혼자금을 제르베즈에게 빌려줬고 받지도 못했잖아요~~
아유 이 책에 대해 할 말이 너무 많은것 같아요^^

새파랑 2022-02-17 09:42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그놈의 술이 문제이긴 합니다. 쉽게 조절하기 힘든게 술인거 같아요. 그런면에서 <목로주점>은 제목을 잘 지은거 같아요 ㅋ 실제 저 제목이 아니었다고 본거 같은데 ㅎㅎ
사실주의 소설은 재미있으면서도 읽어가면서 괴로운 측면도 있는거 같아요. 저는 페넬로페님을 존경합니다 ^^

페넬로페 2022-02-17 14:10   좋아요 5 | URL
술이 술을 마시고 중독이 되어가니 정말 문제인것 같아요.
저는 목로주점을 가요의 제목으로 알고 있는 세대라서 목로주점이란 단어에 좀 낭만적인 감성을 지니고 있었어요 ㅎㅎ
이 책 읽으며 괴로웠고 속상했고 먹먹했어요^^

coolcat329 2022-02-17 11:3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목로주점을 읽다가 봄밤이 떠오르셨군요.
저도 알콜중독하면 권여선의 봄밤이 생각나요. 페넬로페님 덕분에 목로주점이 더욱 기대되고 재미있을거 같아요~

페넬로페 2022-02-17 14:12   좋아요 3 | URL
네, ‘봄밤‘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소설이거든요~~
알콜중독도 그렇지만 두 사람의 사랑이 넘 좋았어요^^
쿨캣님의 ‘목로주점‘ 감상 궁금합니다^^

그레이스 2022-02-17 12: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모임이 끝났으니 리뷰 쓸 일만 남았는데, 머리가 하얘진 느낌입니다. 약간의 각성과 함께 ^^~
전 좀 묵혀 두었다가 2,3일 내에 ....

페넬로페 2022-02-17 14:12   좋아요 3 | URL
멋진 리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프레이야 2022-02-17 12: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 님 사려깊고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졸라가 친했던 세잔과 나빠지면서 세잔의 용기없음을 지적했다던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 대개가 그렇듯.

페넬로페 2022-02-17 14:14   좋아요 5 | URL
세잔이 졸라의 ‘작품‘ 을 읽고 결별을 선언했다고 하는데 소설의 내용이 궁금하고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 영화도 보고 싶어요^^

희선 2022-02-18 01: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해도 자기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마음을 술로 달래다니, 빠지면 더 헤어나지 못하는 게 술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마음도 알아줘야 할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사람은 지금 시대에도 많네요 술이 아닌 다른 데 빠지는 사람도 있고...

정치 하는 사람이 일하는 사람과 어린이를 잘 들여다 보면 좋겠네요 선거가 있을 때만 그런 거 말하지 말고, 선거가 끝난 다음에도... 그런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요


희선

페넬로페 2022-02-18 10:46   좋아요 3 | URL
술이란게 개인의 의지로 조절되면 좋은데 일단 중독되면 그것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 시대나 지금이나 술을 마실수밖에 없게 내모는 이 사회도 문제가 많고요~~
열심히 살아도 결국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면 체념하고 무기력해지는게 당연한거 같아요^^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모든 국민이 잘 살 수 있는 정치를 하면 좋겠어요**

2022-02-18 0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8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22 0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22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감 2022-02-20 15: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편의점 사장님의 입장이 참 난감하겠어요. 저러다 일이라도 나면 내가 판매한 술 때문일 것 같잖아요... 어쩌면 제르베르도 쿠포에게 그런 입장이지 않았을까 싶어져요. 술이 남편을 무너뜨리는 걸 알면서도 남편에겐 술 밖에 없다는 걸 아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나저나 이 책을 쓰고 노동자들과 하층민한테 욕 무지 먹었다죠! 그러고도 마카르 총서를 스무권이나 계속 썼다는게 전 좀 놀랐어요. 만약에 국내 모 작가가 서민들의 민감한 이슈를 소설로 쓴다면 그걸로 작가인생 끝날지도 모르는데 말이에요..ㅎㅎㅎ

페넬로페 2022-02-20 15:43   좋아요 4 | URL
술을 판매하는 분의 입장에서는 그런 갈등을 매번 겪을 것 같아요. 근데 술을 사는 사람은 이곳에서 제지당해도 다른 곳에 가서 사면되니 본인의 의지없이는 술을 끊기가 쉽지 않을 듯 해요. 에밀 졸라가 이렇게 욕을 먹어도 20권이나 책을 썼다는 게 참 대단해요.
그로서는 그 당시 사회를 그대로 알리고 싶은 맘이 커서 그럴 수 있을것 같고 후대에 그의 작품을 읽는 저로서는 감사할 따름이죠^^
 
목로주점 2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4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4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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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몰락으로 질주하는 제르베즈와 쿠포에게 남은 건 무기력, 체념, 알코올 중독, 죽음뿐이다. 분노를 넘어 슬픔과 절망뿐인 이들을 포기하고픈 나에게, 작가 에밀 졸라는 ‘거친 노동과 비참함이 지배하는 환경 때문에 망가진 것‘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 스스로의 잘못은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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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2-15 15:4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2권의 추락이 넘 가파르게 진행되서 좀 어질어질할 정도였어요. 페넬로페님~♡ 괜찮으신가요🙄

페넬로페 2022-02-15 16:03   좋아요 8 | URL
랄리 죽을때, 쿠포가 정신병원에 있을때, 제르베즈가 마지막으로 구제 만났을때 넘 슬퍼서 많이 울었어요~~
그리고 정신 차려 나가서 반찬가게에서 보름나물 몇가지 사왔어요 ㅎㅎ
전 너무 불량주부예요.
근데 도저히 책을 놓지 못하겠더라고요~~
맘이 넘 안좋아요 ㅠㅠ
2권은 페이퍼로 제 감정을 좀 적어야할 것 같아요^^

청아 2022-02-15 16:27   좋아요 6 | URL
아! 랄리 생각납니다ㅠㅠ
불량주부라뇨 저도 종종 사다먹어요ㅋㅋㅋㅋ

새파랑 2022-02-15 17:04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에밀졸라 작품중에는 이 책이랑 인간 짐승이 가장 좋더라구요. 비극적 결말이 슬프지만 왠지 더 사실같이 느껴졌어요~! 페이퍼가 기대됩니다 ^^

페넬로페 2022-02-15 17:27   좋아요 7 | URL
넘 사실적으로 잘 적었더라고요~~
전 1권보다 2권이 더 좋았어요^^
인간짐승은 이 책에 나오지 않은 랑티에의 자식이 주인공이라는데 기대됩니다^^

서니데이 2022-02-16 00: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정월대보름입니다. 조금 전에 잠깐 나갔다왔는데, 날씨가 많이 추워요.
보름달 사진 찍어왔으니, 구경오세요.
올해도 건강하고 좋은 한 해 되세요.^^

페넬로페 2022-02-16 02:24   좋아요 3 | URL
날씨가 또 엄청 춥네요.
마지막 겨울 추위가 매서워요 ㅠㅠ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꼭 꼭 그런 한 해 되었음 좋겠어요^^
 

그것은 그들의 과거의 삶과 함께했던 트렁크였다. 플라상을 떠나올 때부터 그녀와 함께했던 가방은 이제는거죽이 벗겨지고 망가진 채 끈으로 둘둘 묶여 간신히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트렁크는 그녀가 종종 꿈꾸었던 대로 다시 돌아왔던 것이다. - P21

하지만 제르베즈는 무언가에 홀린 듯 미친 듯이 빚을 지면서 가장 비싼 것들을 사들였고, 빚을더 이상 갚지 못하게 되면서 더욱더 탐욕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매우 올바른 생각을 간직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일해 수백 프랑을 모아 빚을 진 상인들에게 100 수짜리 동전을 한 웅큼씩 나눠줄 수 있기를 꿈꾸었다. 비록 돈을 어떻게 모아야 할지 알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제르베즈는 점점 더 악화 일로로 치달았고, 그럴수록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얘기를 늘어놓았다.  - P32

부인은 사흘 동안이나몸을 뒤틀면서 끔찍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어요… 아! 아마 노예선에 보내진 불한당들도 그 남자만큼 악한 짓을 하진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남편한테 맞아 죽는 여자들을 일일이 신경 쓰다보면 법이 할 일이 너무 많아지겠죠. 매일같이 맞고 사는 여자들한테는 한 대 더 맞고덜 맞는 게 무슨 상관이겠어요, 안 그래요? 그런데도 그 불쌍한 여자는 자기 남편이 참수형이라도 당할까봐 거짓말을 하더라고요. 글쎄.
물통 위에서 떨어져서 배를 다친 거라면서…… 그러고는 밤새 비명을 기르다가 죽었어요.
- P38

제르베즈는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앞으로는 자신의 이불 속으로 당당하게 들어가 잠자는 것을 방해하는 천하의 웬수같은 남편이 인사불성으로 뻗어 있고, 뒤로는 그녀를 다시 차지하려고 그녀의 불행을 이용할 생각만 하는 비열한 인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 P68

쿠포와 랑티에는 말 그대로 제르베즈의 진을 빼놓았다. 마치 초를 태우듯 그녀를 남김없이 불태우고 있었다. 물론 함석공은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하지만 모자 제조업자는 그 반대로 아는 게지나치게 많은 게 문제였다. 적어도 불결한 속내를 감추기 위해 새하얀 셔츠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처럼 유식함을 자랑했다. 어느 날 밤,
제르베즈는 우물가에 서 있는 꿈을 꾸었다. 쿠포는 그녀를 주먹으로쳐서 우물 안으로 밀어 떨어뜨린 반면, 랑티에는 그녀가 빨리 뛰어내리도록 허리를 간질였다. 그랬다. 그 꿈은 그녀의 삶과 똑 닮아 있었다. 아! 그녀는 아주 된통 걸린 셈이었다. 앞으로 쪽박을 차게 된다고해도 놀랄 게 없었다. 그러니까 동네 사람들이 그녀를 두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었다. 제르베즈의 불행은 그녀 탓이 아니었다.  - P95

집세를 낼 수만 있다면 살이라도 떼어서 팔았을 것이다. 찬장과 난로가 텅 빈 것도 모두가 집세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파트 전체에 탄식소리가 넘쳐흘렀다. 불행을 알리는 장송곡이 건물의 층마다 계단과복도를 따라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누군가 죽었다고 할지라도 그렇게까지 끔찍한 곡소리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정한 마지막 심판의 날, 모든 것의 종말, 불가능한 삶,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빈곤한 삶의 모습이었다. 4층의 한 여자는 벨옴 가의 모퉁이에서 일주일을 서성이며 호객 행위를 했다. 6층에 사는 석공은 주인집에서 도둑질을했다.
- P152

빈곤에 시달리며 살면서도 제르베즈는 주위에 배고픔으로 허덕이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더욱더 고통 받았다. 건물에서 이 구역은독하게 곤궁한 이들의 은신처였다. 마치 서너 집이 빵을 매일 먹지는말자고 담합이라도 한 듯했다. 문을 아무리 활짝 열어놓아도 음식 냄새가 조금이라도 
새어 나오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기다란 복도에는 죽음 같은 침묵만이 무겁게 깔려 있었고, 벽들은 텅 비어버린 배처럼 공허하게 울렸다. 때로 여기저기서 소란이 일면서, 여인네들이흐느끼는 소리와 굶주린 아이들이 애처롭게 칭얼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가족들은 배고픔을 잊기 위해 서로를 잡아먹었다. 굶주린 이들이 하나같이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있는 통에 목구멍에 경련이 이는 것은 다반사였다. 먹을 게 없어 각다귀조차 살아남기 힘든 이곳에서 공기를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움푹 파여 들어갔다. - P156

그는 몸을 일으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베개에 깊숙이 머리를 박은 채 침대에 누워 뒹굴면서 거칠게 말을 모는 마차꾼처럼 기다란 채찍을 요란하게 휘둘렀다. 그리고 랄리의 몸 한가운데로 채찍을 내려쳐서는 마치 팽이를 김듯이 딸의 몸을 감았다가 풀었다. 그 자리에 쓰러졌던 아이는 기어서 도망치고자 했다. 하지만 비자르는 또다시 랄리를 채찍으로 휘감아 다시 일으켜 세웠다. - P167

이제 랄리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침묵하는 눈빛, 체념의 빛이 가득한 커다란 검은 눈동자뿐이었다. 
그 눈동자 속에서는 끝없는 고통과 비참한 삶의 모습만을 발견할수 있었다. 이제 랄리는 말문을 닫아버린 채 커다랗게 뜬 검은 눈만껌뻑거렸다. - P170

정신 병원에서 다시 말짱해진 그를 보면서 
새로 인간다운 삶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행복을 꿈꾸었던 순간이 또다시허망하게 날아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순간은 이제 결코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오! 이젠 아무것도, 심지어 임박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조차 그를 막을 수가 없으므로 그녀 역시 이제부터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살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집 안이 엉망이 돼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임은 물론, 그녀 자신도 흥청망청즐기면서 살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다시 지옥 같은 삶이 시작되었다. 그 어디에서도 좀 더 나은 순간을 향한 기대 같은 것을 가져볼 수없는, 진창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가는 삶이었다. 나나는 아비에게 뺨을 맞을 때마다 치를 떨면서, 왜 저 쓸모없는 인간을 정신병원에서 죽게 놔두지 않았느냐고 악을 써냈다. 그리고 얼른 돈을 벌어아비에게 술을 더 많이 먹여, 아비를 더 빨리 죽게 만들리라 다짐했다. - P178

솥처럼 생긴 저 망할 놈의 기계가, 주물 가게 뚱보 여주인의 배처럼 둥그런 저것이 그녀의 양어깨에 전율을 일으키면서 마시고 싶다는 욕구와 두려움을 동시에 불어넣었다. 그랬다. 몸집이 거대한 창녀나 마녀의 금속으로 만든 내장 같은 것이 뜨거운 불을 한 방울씩 토해내는 것처럼 보였다. 진정한 독의 근원인 저런 기계는 진작 깊숙한 땅속으로 파묻어버렸어야 하는 게 아닌가. 저토록 뻔뻔하고 가증스러운 것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제르베즈는 그 속에 코를 파묻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싶어 했다. - P188

겨울이 되자 쿠포 가족의 삶은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나나는 매일 저녁 구타를 견뎌야 했다. 그러다가 아비가 지친 듯보이면, 이번에는 어미가 똑바로 처신하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명목으로 뺨따귀를 올려붙였다. 그러다가 상황은 가족 전체의 난투극으로발전하곤 했다. 한 사람이 때리면 다른 한 사람은 두둔하다가는 결국셋이 함께 깨진 그릇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바닥으로 나뒹구는 일이반복되었다. 게다가 늘 배가 고팠고, 지독한 추위마저 그들을 괴롭혔다. 혹시라도 나나한테서 장식용 리본이나 소맷동에 다는 단주 같은 것이 띄기라도 하면 부모는 그것을 빼앗아 즉각 돈으로 바꾸었다. 나나의 것이라곤 매일 저녁 할당받는 따귀밖엔 없었다. - P222

독약이 온몸을 망가뜨린 듯. 마치 살아 있는 유령 같았다! 알코올을 잔뜩빨아들인 그의 몸은 약국에 진열된 병 속의 태아처럼 쪼그라들어 있었다. 그가 창문 앞에 서면 갈비뼈 사이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움푹 팬 볼에, 눈에서는 밀랍 같은 분비물이 대성당에 조달할 수도 있을 만큼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그의 얼굴에서 유일하게 번성한 것은황폐해진 얼굴 한가운데에 마치 아름다운 카네이션처럼 활짝 피어난붉은색 코뿐이었다. 쿠포가 노인처럼 허리를 구부린 채 비틀거리면서거리를 지날 때면, 그가 이제 겨우 갓 마흔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몸서리를 쳤다. 손 떨림 증상 또한 날로 심해졌는데, 특히 오른손은그 정도가 심각했다.  - P253

"전 그럴 수가 없어요,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전 지금 죽어가고 있어요."
그사이 제르베즈는 비자르에게 달려들어 채찍을 빼앗았다. 그는 얼빠진 표정으로 아이의 침대 앞에서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저 코흘리개 계집이 지금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지? 아프지도 않은데 어떻게이렇게 어린 나이에 죽을 수 있다는 건지! 일하기 싫어서 수작을 부리는 게 틀림없다!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본 다음 거짓말이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테다!
"이제 곧 아시게 될 거예요. 제 말이 사실이라는 걸, 그동안 식구들을 성가시게 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그러니까 이번에는 제 말을 좀 들어주세요. 그리고 제게 작별인사를 해주세요. 아빠."
비자르는 딸의 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으려고 자신의 코를 비틀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아이의 얼굴이 평소외는 달리 죽은 사람의 얼굴빛을 띤 채 어른처럼 진지해 보였다. - P275

제르베즈는 자신의 무덤속으로 들어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시각에 황폐한 모습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건물 입구가 마치 굶주린 짐승의 아가리처럼 보였다. 그런데 한때 그녀는 짐승의 시체처럼 흉물스럽기 짝이 없는 이곳 한 귀퉁이에서 사는꿈을 꾼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귀가 멀어 저 벽들 뒤에서 나지막이 울리는 크나큰 절망의 음악 소리를 미처 듣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발을 들여놓은 후로 추락이 시작되었다. 그랬다. 빈곤한 노동자들끼리 아래위로 겹겹이 살아가는 초라한 공동주택에서의 삶은 불행하게 끝날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콜레라와 같은 가난에 전염되고 마는 것이다. 그날 밤은 그곳의 모든 사람이 죽어버린 것만 같았다. 다만 오른쪽에서는 보슈 부부가 코를 고는 소리가, 왼쪽에서는아직 잠들지 않은 랑티에와 비르지니가 눈을 감고 편안히 가르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안뜰로 들어서자 공동묘지 한가운데에있는 기분이 들었다. 바닥에는 눈이 그려놓은 희고무레한 사각형이보였다. 불빛이라곤 하니도 없이 납빛을 띤 회색으로 높이 솟은 건물들의 정면은 폐허의 잔해를 연상케 했다. 마을 전체가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 매장되기라도 한 것처럼 조그만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 P308

그러는 동안 쿠포는 웅얼거리듯 신음을 했다. 전날보다 고통이 심한 듯 보였다. 이따금 끊어지는 신음은 그가 온갖 종류의 고통을 겪고있음을 짐작게 했다. 수천 개의 바늘이 몸을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또한 묵직한 무언가가 몸 곳곳을 짓눌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차갑고축축한 짐승이 허벅지 위를 기어 다니면서 송곳니로 살을 물어뜯는느낌이었다. 또 다른 짐승들은 그의 어깨에 매달려 발톱으로 등 거죽을 벗겨냈다.
- P324

죽음은 제르베즈가 자초한 비참한 삶 속에서마지막까지 조금씩 그녀를 침범해왔다. 심지어 제르베즈가 어떻게 죽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추위 때문에 얼어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은 빈곤함과 불결함그리고 삶의 고단함으로 인한 것이었다. 로리외 부부의 표현에 의하면, 제르베즈는 조금씩 타락해감으로써 죽음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복도에서 악취가 풍겼고, 사람들은 이틀 전부터 제르베즈가 보이지 않았음을 떠올렸다. 그리고 계단 밑 골방에서 이미시퍼렇게 변해버린 제르베즈의 시신을 발견했다.
-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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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3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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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3세는 노동자의 퇴직연금제도를 실시할 생각도 하고 있었다. 1864년 그는 노동조합 금지법을 폐기하고 파업권을 인정했지만 노동자의 삶은 여전히 비참했다. 하루 노동시간은 12시간이었고 에밀 졸라는 그의 작품 목로주점제르미날에서 그들의 생활상 중 알코올 의존증과 난잡한 생활의 참상을 묘사하고 있다.

- '프랑스사', 앙드레 모루아, 김영사, p638]

 

1877년에 출간된 목로주점의 시대적 배경은 1850년경부터 1869년까지이다. 작가 에밀 졸라는 이 책의 서문에서 자신이 쓴 소설 중에서 목로주점이 가장 순수한 편에 속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초반부에 랑티에가 제르베즈에게 어린 자식 두 명만 남기고 떠나 버리고, 세탁장에서 제르베즈와 비르지니가 뒤엉켜 싸우는 장면에서부터 강한 막장의 향기와 더불어 나의 진을 완전 빼놓았다. 자연주의 문학의 대가인 에밀 졸라의 문장은 적나라한 사실적 묘사에 빛을 발했고, 1권의 마지막 부분인 제르베즈의 생일 파티에서 그것은 극에 달한다.

 

별 탈 없이 일하면서 배불리 빵을 먹고, 지친 몸을 누일 깨끗한 방 한 칸, 아이들을 좋은 시민으로 만들 수 있으면(p71)’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여자, ‘제르베즈 마카르 쿠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프랑스 노동자의 삶은 비참하다. 그들에게 항상 붙어 다니는 것은 가난, , 폭력, , 나태, 체념이다. 열 살부터 세탁소에서 일을 시작하고, 열네 살에 아들을 낳은 제르베즈 역시 하층민의 삶을 살아간다. ‘엎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처럼 그녀에게 행운이나 요행은 주어지지 않는다. 조금 여유 있는 삶을 살게 되면 거기에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나고 다시 불행해지는 삶이 되풀이됨으로써 그녀는 점점 체념하고, 식탐으로 인해 뚱뚱해지기 시작한다. 그녀는 착하고 열심히 일하며, 남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한 보상은커녕 점점 삶이 어려워만 간다. 그 이유가 단지 계급적인 문제와 사회 구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 자신뿐만 아니라 그러한 환경에 처해진 노동자들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나태함, 삶의 포기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목로주점의 원제는 아쏘무아르(L'Assommoir)이다. ’때려눕히다, 머리를 쳐서 죽이다라는 의미의 동사 assommer의 명사형 assommoir는 도살용 도끼 혹은 곤봉이라는 뜻인데, 비유적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돌발적인 사건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아쏘무아르는 당시 파리 벨빌에 있던 선술집 이름이자 노동자들 사이에서 싸구려 독주를 파는 주점이라는 의미로도 통용되었다. -2, p341, 역자 해설에서]

 

아쏘무아르목로주점으로 번역될 만큼 이 소설에서는 매번 술과 술을 마셔 취한 인간들이 등장한다. 그들에게 술은 인생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첫 번째이자 가장 최고의 관문이다. ‘증류주라는 파란색 글씨 하나만으로 간판을 채우고 있는 콜롱브 영감의 주점으로 대표되는 술집을 노동자들은 스스로, 동료들의 유혹으로 찾아온다. 아침에 파리로 물밀듯이 들어오는 노동자의 대열 중에서도,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할 때도 이 술집을 지나치지 못한다. 그들은 그곳에서 죽치고 앉아 술을 마시며 하루를 허비해 버린다. 싸구려 독주를 마시고 취한 그들에게 자연스레 따라붙는 건 폭력이다.

 

제르베즈의 남편 쿠포 역시 마찬가지였다. 성실한 함석공이었던 그는 지붕에서 떨어져 부상당하자 그때부터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독주로 희석시킨다. ‘온몸의 근육을 달콤한 무기력함에 내맡긴 채 무위도식하는 즐거움을 알아가고, 게으름의 느긋한 승리를 느끼며 앞으로도 죽 이렇게 살고 싶은(p198)' 욕망으로 제르베즈의 등골을 빼먹기 시작한다.

 

사람이 사는 모습을 담은 풍경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 중의 하나는 결혼식이다. 이 책에서는 제르베즈와 쿠포의 결혼식을 통해 가난한 노동자의 결혼 과정을 자세히 보여 준다. 가난한 그들은 빚을 얻어 결혼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시청과 교회에서조차 그들은 차별 당한다. 그들은 자신의 결혼식이 날림으로 진행되는 느낌을 받는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와, 그들의 산책, 피로연도 왠지 씁쓸하고 슬프다.

 

산책길에 비에 젖은 그들은 하객 마디니에 씨의 제안으로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한다. ‘낡은 옷으로 호사스레 치장한 가난한 이들의 모습옷장에 오랫동안 넣어둔 탓에 퇴색해버린 코믹한 모양의 낡은 모자를 쓴 남자들의 모습은 다른 관람객들의 구경거리가 된다. 아폴론 갤러리와 살롱 카레를 지나며 그들은 여러 그림들을 감상한다. 그들에게 그 그림들은 별다른 의미를 주지 않는다. 넓은 박물관에서 길을 잃은 그들은 지루해하고 지친다. 하지만 어쩌면 그 순간들이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새로운 경험이 아니었을까? 평생을 뼈를 깎는, 되풀이되는 노동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그들에게 주어진 처음이자 마지막 문화적 향유일지도 모른다. 작품 메두사 호의 뗏목’, ‘가나의 혼인 잔치는 흡사 그들의 모습 같고, ‘모나리자’, 무리요의 성모마리아도 분명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에밀 졸라는 소설 속의 여러 부분에서 그 시대 사회상에 대한 비판을 한다. 1850531일 의회는 투표를 하려면 최소 3년간 한 선거구에 거주해야 한다는 선거법을 통과시킨다. 이 선거법은 일자리를 찾아 거처를 수시로 옮기는 수많은 노동자의 투표권을 앗아갔다(p143, 역자 해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3세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18482, 6월 혁명으로 공화파가 국립작업장을 해산하기로 하자,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였으나 정부에 의해 진압 당한다.

 

[민중은 언젠가는 팔짱을 낀 채 구경만 했던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쿠포는 그런 일에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것도 단지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밥이나 축내는 의회 의원들에게 일당 25프랑을 주기 위해서라니. -p177]

 

대장장이 구제를 만나러 간 제르베즈는 구제가 보여 준 엄청난 기계의 움직임에 압도당한다. 새로운 기계 때문에 구제의 일당은 12프랑에서 9프랑으로 떨어졌다.

 

[인간의 육체가 쇠로 된 기계와 싸워 이길 수 없음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고자 애쓸 때조차 그의 우울함은 커져만 갔다.....물론 언젠가는 기계가 노동자들을 모두 죽이고 말 터였다..... p277]

 

똑같이 불행한 밑바닥 인생이라도 여자의 삶은 더 척박하고 비참하다. 아이를 낳기 직전까지 일을 하고 남편의 저녁밥을 준비해야 한다. 술 취한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기 일쑤이고 아이들은 고스란히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나나를 낳고 여자로 파리에서 살아가기에 힘들다며 슬퍼한 제르베즈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하며, 심술을 부리고 나쁘게 말하는 인간의 악한 심리도 작가는 잘 표현했다.

 

1권의 마지막은 제르베즈가 질펀하게 자신의 생일 파티를 여는 장면이다. 하루 종일 일하고도 빚만 늘어나는 생활이 계속되지만, 제르베즈는 또 빚을 얻어 생일 파티 준비를 한다. 그리고 그녀와 초대받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먹고 마셔댄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밑바닥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체념과 아귀 같은 허기의 욕망들이 어지럽게 펼쳐진다. 그 모습들을 보며 저렇게 살 수밖에 없는 건가?’그럴 수밖에 없으니 이해하자는 내 마음속의 두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나에게는 제르베즈와 같은 성향은 없는지 점검하게 된다.

 

한 번씩 볼일을 보러 집을 나섰을 때, 우리 동네 대로변에서 날렵하고 잘 빠진 스포츠카가 큰 소리를 내며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쫓아가 한 대 패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아직 1권만 읽었지만 이 소설을 읽으며 그러한 분노가 자주 치솟아 올랐다. 왜 그렇게 패주고 싶은 사람이 많은지. 특히 제르베즈의 남편인 쿠포가 랑티에를 데리고 왔을 때 폭발할 뻔 했다. 2권을 읽으며 나의 분노지수는 얼마나 올라갈지 벌써부터 긴장된다.

 

무슈 에밀 졸라여!

그대는 과연 자연주의 문학의 대가이십니다.

 

[“그런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오, 아름다운 부인....그대도 언젠가는 죽는 걸 다행으로 여기게 될 거요....아무렴, 난 죽음이 데려간다면 오히려 고맙다고 할 여인네들을 아주 많이 알고 있거든....죽는다는 건 말이지....내 말을 명심하시오.....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오.”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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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3-10 15:38   좋아요 1 | URL
러블리땡님,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2-03-10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페넬로페 2022-03-10 15:39   좋아요 1 | URL
thkang님, 감사드려요.
오늘은 정말 봄이 온 것처럼 날씨가 좋습니다.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래요**

thkang1001 2022-03-10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감사합니다!

scott 2022-03-10 22: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달의 ✌관왕 축하 합니다!
졸라 담번 어떤 작품 읽으실지 궁금합니다 ^ㅅ^

페넬로페 2022-03-11 00:01   좋아요 0 | URL
scott님, 감사합니다^^
담번은 아마 ‘나나‘가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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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 창비세계문학 19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송승철 옮김 / 창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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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로 많이 알려진 이 소설의 원제목은 ‘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이다. 창비 세계 문학판의 제목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라서 처음에는 내가 아는 그 소설이 맞는지 의아했었다. 다른 출판사는 거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로 번역했고, 최근에 출간된 민음사판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나와 있다.

 

[여기서 사례라고 번역했지만 영어 ‘case'는 법적인 경우는 사건이고, 정신의학의 경우가 사례이다. 이 작품은 기이한 살인사건을 다루는 선정적이고 엽기적인 추리소설이면서, 동시에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욕망과 윤리의 충동 및 기이한 사례를 다루는 진지한 심리소설이기도 한 것이다. -p193, 번역자 작품해설 중에서]

 

읽지 않아도 읽은 것처럼 느껴지는 소설 중의 하나에 들어갈 정도로 우리는 이 작품에 대해 대충은 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가 어떤 관계이고, 여기서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도 알고 있다. 지킬 박사의 친구인 변호사 존 어터슨이 이끌어가는 이 소설을 처음 읽을 때는 재미도 별로 없고 약간 밋밋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예상했던 것만큼 잔인하지 않았고 어떤 상황에 대한 친절한 설명도 없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번갈아 등장시키고, 여러 사건의 발생에 따라 독자 스스로 앞뒤의 정황을 이해하게 했다. 소설의 끝에 나오는 두 통의 편지를 읽고서야 비로소 이 소설의 전체 내용을 알 수 있었고, 지킬과 하이드의 관계가 명확하게 이해되었다. 그렇게 다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재독을 할 때 복선과 인물의 행동, 말들이 잘 갖춘 틀에 절묘하게 들어맞는다는 사실을 깨달아 훨씬 더 흥미롭고 긴장한 상태로 읽을 수 있었다.

 

지킬은 인간의 본성이란 하나로 합쳐져 있지만 원래는 선과 악 두 영역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p97)’이라는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다. 그는 인간에게서 올바른 본성부정직한 본성을 분리해 별개의 육신 속에 넣는다면 양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그것을 위해 과학 실험을 한다.

 

[나는 도덕적 측면과 나 자신의 인성 안에서 철저하면서도 시원적인 인간의 이중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즉 내 의식의 영역에서 두 본성이 투쟁하고 있으며, 만일 내가 그 둘 중 어느 하나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가 근본적으로 그 둘 모두이기 때문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화해 불가능한 둘이 하나의 다발로 묶인 것, 즉 고통스러운 의식의 자궁 속에서 양극단에 위치한 쌍둥이가 끊임없이 투쟁하는 것이야말로 인류에게 가해진 저주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둘을 분리할 것인가? -p98~99]

 

처음에 실험은 성공한 듯 보인다. 거울에 비친 하이드의 모습을 보며 이것 역시 자신의 모습이라고 하며 만족해한다. 그러나 점차 지킬의 본성은 하이드의 악마적 광기와 폭력에 휘둘리게 된다. 그에게서 분리된 악은 그 자체로 더 달콤해지고 해방감을 느끼며, 이유 없이 무모해진다. 통제할 수 없이 커진 하이드적 본성은 계속 질주하고 지킬은 힘을 잃는다. 그 둘은 서로를 미워하고 혐오한다.

 

지킬이 어터슨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내용은 모두를 옮기고 싶을 정도로 이 소설의 압권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인격에 대해 고민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나 말은 나 자신의 모든 것이 아닌 그저 일부분에 불과하다. 나의 성격이나 기질 중에 버리고 싶은 것도 많고, 남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것을 내 속에 집어넣고 싶기도 하다. 내가 원하고 행하고 싶은 것이 도덕이나 관습에 의해 제지당하기도 한다. 어느 것이 진정한 나인지 헷갈리기도 하고 어쩌면 나의 페르소나가 나를 대표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간의 속성으로 지킬 박사의 원대한 계획은 사실 매력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것은 실패할 것이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결국 나는 내 속의 많은 것들을 통제하고 제거시켜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고통과 좌절은 인간의 숙명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고, 매 순간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는 각자의 몫이다.

 

하이드의 모습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비슷하다. 추악하고 기형적이며 흉악하다고 말한다. 그냥 싫고 사악한 영혼이 진흙 덩어리 육신을 관통해서 형체를 비틀고 나오면 저런 모습(p30)'일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정말 악의 모습은 비정상적이고 메피스토펠레스처럼 발을 절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일까? 우리는 악의 모습을 그렇게 상상하며 악에 대한 혼돈을 서슴지 않는다. 어쩌면 악은 반듯하고 친근한 모습에서 더 많이 나올지도 모른다. 절묘하게 숨겨진 곳에서 악의 행동은 더 많이 자행되고 거침없다.

 

래니언 박사를 찾아 간 하이드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혜를 원하십니까? 자기 자신을 지키기를 원하십니까?....선생 결정에 따라 선생은 예전 그대로.....반대로 선생이 원하기만 하면 여기 바로 이방에서 지금 이 순간 지식의 새로운 영역, 그리고 명성과 권력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이 눈 앞에 펼쳐질 겁니다. p93]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지킬과 하이드는 후대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 작품이다. 일단 연극과 뮤지컬로 유명하고, 수많은 영화에 패러디되었다. 좋은 작품이란 텍스트 그 자체로서도 물론 훌륭해야 하지만, 이 작품처럼 수많은 변용과 다양성을 줄 소재와 형식을 갖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소설은 광장 한가운데에 던져져 수많은 사람들이 기웃거리고 그것에 대해 궁금해 하고 계속 얘기할 수 있는 큰 구경거리임에 틀림없다.

 

2015, 조승우 배우의 지킬 앤 하이드뮤지컬을 볼 땐 거기에 나오는 뮤지컬 넘버에 더 치중했던 것 같다. 이번에 본 홍광호 배우의 '지킬 앤 하이드'에서는 책을 읽은 후에 봐서 그런지 훨씬 더 내용에 몰입할 수 있었다. 물론 그와 다른 배우들이 부르는 넘버들도 좋았다. 책이란 그런 것 같다. 읽을 때는 잘 못 느끼지만 어느 순간, 다른 곳에서 그 책을 만났을 때, 밀려오는 감동과 깊이는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결코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뮤지컬을 보기 위해 이번에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를 읽었지만,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난 이번에도 그저 뮤지컬의 넘버에 더 치중했을 것이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책의 위대함은 바로 이런 것이다.

 

홍광호 배우는 그야말로 무대를 찢었다. 노래는 물론이고 그의 연기는 더 좋았다.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은 너무 당연했고, 한 씬에 지킬과 하이드를 표현한 '대결(confrontation)' 역시 더할 나위 없었다. 그의 노래는 음원으로 듣는 것 보다 직접 듣는 것이 백배 더 좋다. 뮤지컬에는 원작과 달리 지킬의 약혼자인 루시와 거리의 여자, 엠마가 출연한다. 그녀들이 부르는 넘버도 좋았다. 'Once upon a Dream', 'In His Eyes', 'Someone Like You', 모두 내가 좋아하는 곡들이다






홍광호 배우는 워낙 유명해 그가 출연하는 회차에 예매하기가 어렵다. 딸아이가 힘들게 2매를 예매했다. 난 전에 이 뮤지컬을 봤기에 남편에게 양보하려고 했다. 남편은 내가 뮤지컬을 좋아하는 것을 알기에 나보고 가라고 했다. 뮤지컬을 관람하며 양보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그의 노래는 완벽했다. 매번 집에 있는 나의 책을 버리라고 협박하는 딸아이가 인터미션때 캐스팅보드를 찍으로 갔는데, 내가 생각나 지킬 앤 하이드노트를 샀다며 나에게 주었다. 책을 좋아하는 엄마에게 독서 노트하라고 사 준 것이다. 노트의 겉표지는 마음에 들었지만 촘촘히 그려져 있는 줄을 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노안으로 고생하는 내가 쓰기에는 좀 벅찼다. 그러나 그런 내색을 하지도 못하고 너무 좋다고, 고맙다고 말했다. 역시나 난 나를 감추고 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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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02-10 14: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양보하지 않아 다행!!ㅋㅋㅋ
감동이셨겠어요^^
딸아이의 엄마를 배려한? 선물까지!!
두 세 줄 한꺼번에 한 줄로 쓰면 어떨까요?^^
딸 앞에서 열심히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나중에 또 다른 선물도 받을 수 있습니다ㅋㅋㅋ

페넬로페 2022-02-10 16:22   좋아요 3 | URL
네, 정말 양보하지 않아 다행일 만큼 감동적이었어요. 노트를 열심히 사용해야 하는데 요즘은 메모를 거의 컴이나 패드로 해서 고민이예요~~
뭐라도 써야겠어요, 그래야 원망 듣지 않을 것 같아요.
요즘은 자식보다 남편이 더 편해요 ㅎㅎ

레삭매냐 2022-02-10 14: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원제에 대한 깔끔진 스타트,
아주 좋았습니다.

피라미드 시절부터 세상 아래
새로운 건 없다고 했다죠...

고전의 울궈먹기, 작가들의
영원한 밥줄이 아닐 수 없습
니다.

뮤지칼 관람 고저 부럽삽니다.

페넬로페 2022-02-10 16:25   좋아요 2 | URL
이번에 원제를 알게 되었어요. 저는 당연히 지킬과 하이드로 알고 있었거든요~~
여러 방향으로 소재를 제공하는 것이 고전의 힘인 것 같아요
뮤지컬은 홍광호 배우를 만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오미크론을 뚫고 다녀왔어요^^

청아 2022-02-10 15: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페넬로페님 처음 올려주신 영상이 홍광호라니!👍👍👍👍
저 이 노래 너무 좋아해요! 특히 홍광호버젼으로요~🧡
공연보고 오셨다니 너무×200
부럽습니다!!!!🙆‍♀️ 아직 안읽었는데 기대만땅이예요ㅎㅎ

페넬로페 2022-02-10 16:29   좋아요 3 | URL
미미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해서 첫 영상 올리기 성공했어요~~
정말 감사감사해요^^
홍광호 배우, 공연 넘 좋았어요.
화욜 저녁에 관람했는데 지금까지 기분 좋아요~~
생각보다 원작도 깊이가 있어 좋았어요^^
살짝 재미는 없더라고요~~

stella.K 2022-02-10 16: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기이한 사례까지가 진짜 제목이었군요.
홍광호도 잘하긴 하지만 역시 이 노래는 조승우를 위한
노래는 아닌가 싶기도 해요. 조승우는 뭔가 꽉찬 느낌인데
형만한 아우 없다는 심리 때문일까요?
하긴 조승우가 유키즈에 나와서 자기만 보면 사람들이
지금이 순간을 부르려고 해서 부담스럽단 얘기를 한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작품도 세대 교체가 된 걸까요? 조승우가 오래하긴 했죠.
저도 다시 한 번 보고 싶네요.ㅠ

페넬로페 2022-02-10 16:36   좋아요 5 | URL
네, 원제에 기이한 사례가 들어가더라고요~~
요즘 뮤지컬 공연에 세대교체가 많이 된 듯 해요.
그래도 조승우 배우는 레전드죠.
연기력은 어떨지 몰라도 노래는 홍광호 배우가 더 앞선 느낌이었어요. 홍배우는 영국 뮤지컬 미스 사이공 오디션에서 데모 테잎만으로 투이역에 합격했다는 전설이 있어요 ㅎㅎ
홍광호 버전으로 꼭 보시길 바래요~~
그리고 stella.k님께서 쓰신 극본으로 올려진 뮤지컬 꼭 보고 싶어요^^

stella.K 2022-02-10 17:50   좋아요 4 | URL
헉, 이런...!ㅠㅠ 그런 날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혹시 있게된다면 꼭 알려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mini74 2022-02-10 18:4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장발장 생각나네요.쭈욱 장발장인줄 알았는데. 하이드 책 원제를 페넬로페님덕에 알게 되네요 ~ 딸아이 예쁩니다. 줄공책 ㅠㅠ 막 아른거리죠 ㅎㅎ

페넬로페 2022-02-10 18:46   좋아요 5 | URL
우리가 아마 원제를 모르는게 수두룩할 것 같아요~~
미운짓도 많이 하는데 이럴 때 키운 보람이 있더라고요^^

새파랑 2022-02-10 19:2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읽은거 같은데 그동안 안읽은 책이었어요 ㅋ 작년에 열린책들 35주년 세트로 읽었는데 너무 좋더라구요 ^^ 뮤지컬도 즐기시는 페넬로페님 넘 멋지십니다~!!

페넬로페 2022-02-10 21:03   좋아요 5 | URL
열린 책들, 미드나잇에 이 책이 있군요. 소설에 많은 의미가 들어 있어 좋았어요~~
뮤지컬 좋아하는데 이번에 특히 더 좋았던 것 같아요^^

그레이스 2022-02-10 19: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부러워요~~~

페넬로페 2022-02-10 21:04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ㅎㅎ

2022-02-10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0 2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2-02-10 23: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책의 위대함!
페넬로페님을 폭풍 감동으로 몰아 넣은
홍광호!
꼬옥 기억 하겠습니다 ^ㅅ^

페넬로페 2022-02-11 00:08   좋아요 3 | URL
책의 위대함은 누구나 다 알지만 이렇게 뭉클할 수 있는 이유가 그나마 시간을 쪼개어 열심히 책을 읽는 제가 받은 선물일 것 같아요.
뮤지컬, 특히 홍광호 배우의 노래는 정말 폭풍 감동이었어요^^
scott님, 반가워용^^

꼬마요정 2022-02-12 02: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홍광호님 지킬 하이드 보고 오셨네요 ㅎㅎ 진짜 우리나라 뮤지컬 배우 중에서 저런 성량과 고음을 뽑아내는 배우는 진짜 없을 거에요 ㅎㅎㅎ 심지어 노력으로 만들어낸 거라고 하더라구요. 대단하다 생각했어요!! 지킬 앤 하이드는 이젠 낡은 소재라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고전의 힘이 쎄긴 한가봐요. 뮤지컬 속에서 댄버스 경이 예비 장인이라는 게 재밌지 않나요 ㅎㅎ

저는 류정한님, 조승우님, 홍광호님 지킬 앤 하이드 정말 추천합니다^^

페넬로페 2022-02-12 08:55   좋아요 3 | URL
네, 정말이지 홍광호배우님, 무대를 찢더라고요. 심지어 지킬과 하이드의 목소리를 다르게 해서 노래하고 귀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노래를 잘하더라고요. 책에서는 하이드가 댄버스경을 죽이는데 저도 좀 그랬어요 ㅎㅎ
담엔 꼭 류정한 배우의 지킬앤 하이드를 보겠습니다^^

희선 2022-02-12 02: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은 읽지 않고 어렸을 때 만화영화 같은 걸로 봤던 것 같아요 본래 제목은 조금 다르군요 이 소설 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보물섬》을 썼더군요 이 책은 몇해 전에 봤는데... 책 보고 뮤지컬 보셔서 좋으셨겠습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2-02-12 08:58   좋아요 3 | URL
보물섬은 어릴 때 동화책으로 많이 읽었고, 이 책도 어린이용 버전으로도 많이 나와 있더라고요. 희선님께서 이 책 읽으셨군요. 감상이 궁금하네요~~
뮤지컬은 많이 각색되어 있는데 그래도 더 이해가 잘 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