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태사공은 말하였다........

처음 책공이 정위(廷尉)가 되었을 때에는 빈객들이 문을 가득 매웠다. 그가 벼슬에서 물러나자 대문 밖에서 작라(雀羅)를 쳐도 될 정도였다. 그러다가 책공이 다시 정위가 되자 빈객들이 교제하려 하였는데, 책공은 이에 그의 대문에다 크게 써 붙이기를 한 명은 죽고 한 명이 살아 있으면 비로소 우정의 진심을 알게 되고, 한 명은 가난하고 한 명이 부유하면 비로소 우정의 태도를 알게 되고, 한 명은 출세하고 한 명이 천해지면 비로소 우정의 진심을 알게 된다라고 하였다. 급암과 정당시 역시 이와 같으니, 슬프도다!”

-사기열전, 120, ‘급정열전중에서, p1008

 

 

2, 중국 전국시대 말에 제나라 재상을 역임한 맹상군(孟嘗君)은 자신의 재산으로 빈객들을 후하게 대접하였다. 그의 식객의 수가 무려 3000명이나 되어서 봉읍의 세금만으로는 그들을 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제나라 왕이 맹상군의 명성이 그의 군주보다도 높고 제나라의 권력을 제마음대로 휘두른다고 여겨 그를 쫒아낼 때, 모든 빈객들이 맹상군이 파면되는 것을 보고 다 떠나버렸다. 뒤에 제나라 왕이 맹상군을 복권시키니, 풍환은 다시 빈객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맹상군은 그에게 이렇게 탄식한다.

 

식객들은 내가 하루 만에 파직되는 것을 보고 다 나를 저버리고 가서 나를 돌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제 선생에 의해서 다시 그 지위를 얻었지만, 식객들은 무슨 면목으로 나를 다시 볼 수 있다는 말입니까? 만약 다시 나를 보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그 얼굴에 침을 뱉고 그를 크게 욕보일 것입니다.”

 

그러자 풍환이 말하였다.

 

무릇 물건에는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결과가 있고, 일에는 당연히 그렇게 되는 도리가 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은 사물의 필연적 결과이며, 부유하고 귀하면 선비가 많고 가난하고 천하면 친구가 적은 것은 일의 당연한 면모입니다. 선생께서는 아침에 모이는 사람들을 보지 못하였습니까? 날이 밝으면 어깨를 비비고 다투며 문으로 들어가는데, 날이 저문 뒤에는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돌아보지 않습니다. 이것은 아침을 좋아하고 저녁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기대하는 물건이 그 안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기열전, 75, ‘맹상군열전중에서, p213~227

 

3, ‘책공의 말처럼 우정은 그렇게나 명료하고, 맹상군을 찾아오고 떠나가는 빈객들의 행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이 행하는 자연적인 이치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만 한다.

 

4, 8년간 참여한 독서 동아리가 반토막이 났다. 멤버중 한 사람이 건강상의 이유로 더 이상 책을 읽지 못하겠다며 동아리를 떠난다고 했다. 다른 것을 추구하느라 책읽기가 시큰둥한 다른 멤버가 거기에 나쁘게 편승해, 사람이 중요하니 모임에 책을 없애자고 했다. 책이 없어도 얼마든지 재미있고 힐링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독서 동아리에 책이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며 나는 심하게 반대했고, 모임에서 탈퇴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중요시하지 않는 인정머리없고 책만 읽는 나쁜 사람이 되었다. 그런 말을 들어도 할 수 없다. 조기 축구회에는 축구가, 독서 동아리에는 책이 있어야 한다. 결국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만 남았다. 그것도 2달에 한 권을 읽는 걸로 결정됐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수용했다.

 

5, 하루 아침에 몇 억씩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만을 추구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책, 특히 문학이나 고전은 읽을 가치가 없는 것으로 전락했는지도 모른다. 책을 바탕으로 한 우정은 날이 밝으면 어깨를 비비고 다투며 들어갈 필요가 없는 하찮고 쓸모없는 문이 되었다.

 

 

 

 

 

 

 

 

 

 

 

 

 

 

 

 

6, 봄볕이 따스한 날  30분 정도를 걸어서 구립 도서관에 갔다. 얼마 전 리모델링을 한 그곳은 산뜻하게 잘 정비되어 있었다. 책을 빌리고 잠깐 쉬기 위해 휴게실로 갔다. 도서관 휴게실에는 거의 남자 노인들만 계셨다. 책이나 신문을 읽으시는 분도 계셨지만 의자에 앉아 잠을 자고 있는 분이 많았다. 내 노년의 버킷리스트중의 하나가 매일 도서관에 가는 것인데 도서관에 왜 여자할머니는 안보이는지 모르겠다. 여자들은 나이 들어도 여전히 집에서 가사노동을 하고 손주를 키워야해 시간이 없어서 도서관에 오지 못하는 것일까? 도서관에서 만나는 젊은 여자들은 주로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 열람실로 향하는 엄마들이다. 세상이 많이 변한 듯 하지만 들여다보면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7, 도서관 휴게실에서 북플을 열었는데 SYO님이 쓴 이주윤 작가를 향한 연서(戀書)가 있었다. 그 글을 읽고 이주윤 작가의 책이 읽고 싶어 내친김에 빌려와 내쳐 다 읽어버렸다.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는 이 나이가 되도록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나에게 이렇게 살라고 가르쳐주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다보니 나는 작가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솔직하고 담백한 문장들에 간간이 소리내어 웃기도 했다. 나는 책의 1부 보다는 2부인 전기장판 위의 사색이라는 생활 에세이가 더 좋았다. 세상을 살면서 부대끼며 얻은 여러 가지 경험과 생각들을 유머있게 그 본질을 잘 표현해 주었다.

 

8, 잠깐 책 속으로-

 

우리가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적에는 싫어도 싫은 티를 내지 못했다. 상대방이 언짢을까봐. 그런 그가 우리를 헐뜯을까 봐. 결국에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봐 두려워서 말이다. 그런데 세상을 좀 살아보니 남보다는 내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다른 이의 눈치를 살피며 행동하는 대신, 싫은 건 싫다고 얘기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주장하게 된 것뿐.

아뇨,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그건 좀 어렵겠어요.” 요즘 내가 열심히 연습하는 말이다. 꽁하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보다는 확실하게 말로 표현하는게 더 나을 것 같아서이다.

-p94

 

정말? 그렇단 말이야? 그런데 이를 어쩌면 좋지? 미안하지만, 정말로 미안하지만 나는 그녀의 고민에 관심이 없다. 어쩜 그렇게 인정머리가 없냐며 손가락질할지도 모르겠지만 마음이 기울지 않는 걸 나더러 어쩌라고. 내 한 몸 어르고 달래 살아가기도 힘에 부치는 마당에 다른 이의 불안까지 보듬을 여력 따위 내게는 없다. 너에게는 세상 가장 심각한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하찮은 푸념으로밖에 들리지 않음을. 본인이 가진 문제를 진지하게 염려하고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닌 너임을.-p205

 

무엇이든 네가 느끼는 대로 하면 되는 거다. 남의 말을 너무 따라갈 필요는 없다. 너만의 방식대로 해서 누군가가 알아주면 좋은 거고 만약 알아주지 않더라도 너의 것이 남으니 그것 또한 좋은 일 아니겠느냐. 그러니 누가 시키는대로 하지 말고 무엇이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해라.-p284

 

9, 내가 독서 동아리에서 강력하게 책을 남기자고 주장한 것은 독서 동아리에 책이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때문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솔직히 남의 징징거림을 듣기 싫어서이다. 그나마 책 얘기로 그것을 덮기 위해서이다.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를 읽으며 내 선택이 옳았다고 확신했다.

 

 

 

 

 

 

 

 

 

 

 

 

 

 

 

 

 

 

10, 메리 E. 윌킨스 프리먼의 책에는 4개의 단편소설이 들어있다. ‘책읽는 고양이출판사의 얼리퍼플오키드 시리즈중 하나이다. 이 시리즈는 이전 세기를 산 여성 작가가 여성의 시각으로 쓴 여성들의 이야기를 묶은 단편집 모음이다. 프리먼의 작품들은 1880년대와 1890년대에 집필되었는데,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생각과 행동이 예사롭지 않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관습과 인습에 얽매여 살았던 시절에,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고 품위있게 말하며 행동에 옮기는 여성들의 삶이 너무 좋았다. 그 품위에 반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게 당연히 쉽지 않을테고 고단한 것인데도, 자기자신으로 살기 위해 댓가를 받아들이고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진취적이고 그 뒤에 누리는 편안함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가르침을 또 받는다.

 

목사님의 선의를 의심하지는 않습니다만, 사람 간에도 서로 간섭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 있는 법이지요. 저는 수십 년 간 교회를 다닌 사람입니다. 저도 심신이 멀쩡한 사람이니 나름의 방식으로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저는 신을 믿고 살 테니, 신이 아닌 분들은 제게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으셨음 합니다”-p34, '엄마의 반란중에서

 

루이자 엘리스가 자기만의 권리를 팔아버렸거나 자기가 누리는 유일한 만족이 흔들림 없이 계속 유지됐다면, 지금도 그것의 가치를 전혀 몰랐을 것이다. 평온과 평안은 이제 그 자체로 루이자의 특권이 되어 버렸다. 루이자는 하루하루가 묵주 알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부드럽고 흠 없고 순수하게 오랬동안 계속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감사함으로 마음이 벅차올랐다.

-p96, '뉴잉글랜드 수녀중에서

 

 

 

11,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영화 미나리를 보았다.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였다. 죽는 날까지 꾸역꾸역 살아감에 있어 매번 힘들고 신산스럽지만 그래도 어디선가에서 한줄기 빛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날이 있다. 이 영화가 그런 것 같다.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엄마의 반란에서 단호히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배우고 정했지만, 이 영화가 나를 흔들며 혼란스럽게 한다. 또다시 묵직함과 답답함이 시작되었지만 한 줄기 빛 같은건 분명 느꼈다. 그거면 됐다.

 

12, 독서 동아리가 반토막이 나면서 단호히 결심한 것이 하나 있다.

나라도 더 열심히 책을 읽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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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3-07 16: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미나리 영화 보셨군요. 독서모임을 8년동안 하셨다는것도 대단하시지만 책을 읽겠다는 사람만 남은 두달에 한권씩 읽더라도 읽어야하는 사람은 읽어야한다는것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책을 손에 놓지 않으신 페넬로페님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가 책한권만 손에 쥐고 있다면 바닷속에 빠져버려도 좋다고 ,,,우리 함께 책의 바다 속으로 풍덩 ~*

페넬로페 2021-03-07 17:14   좋아요 1 | URL
그렇죠, scott님~~
책을 읽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읽어야하니까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명문장을 인용해 용기주시는 scott님께 감사드려요. 함께 열심히 책 읽어요^^

청아 2021-03-07 16: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4. 헉..지금 눈이 아파 겨우 글 올리고 쉬다가 이 부분 읽고 너무 놀랐어요. 아니 그게 무슨 일이랍니까. 사람이 중한것과 독서모임의 존폐 여부가 어떻게 그렇게 갈리는지 참 이상한 일이네요. 😳

페넬로페 2021-03-07 17:16   좋아요 3 | URL
그러게요.
다른 일 하면서도 한달에 책 한권 못 읽는다는게 이해가 안돼요.
그것도 그렇지만 자신의 취향으로 모임의 목적을 바꾸려는 태도가 더 이상하더라구요**

파이버 2021-03-07 2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마음고생 하셨겠어요.... 8년이었으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셨을텐데..ㅜㅜ 제가 참여하는 독서모임도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으로 전환하면서 점점 예전만큼 책을 읽지 못하게 되었어요.... 그래도 12번 글에서 페넬로페님의 곧은 결심이 느껴져서 멋져요!

페넬로페 2021-03-07 21:27   좋아요 1 | URL
네,파이버님 말씀대로 오랜 시간을 같이 했기에 아쉬움이 남아요.
코로나때문에 만나지 못해 아무래도 소통이 잘되지 않아 이런 결과가 나온것 같기도 하구요.
응원해주셔서 감사해요^^

2021-03-08 1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8 1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8 2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21-03-08 2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지세요, 로님!!!👍
미나리 보셨군요!!! 저는 스티븐 연의 인터뷰를 들었는데 어찌나 말을 조리있고 똑똑하게 잘 하던지,,,넘 자랑스럽더군요.
저도 빨리 보고싶네요.
저는 독서모임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지만, 오래 함께 했던 모임이 반토막이 났을 때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은데, 더 많은 책을 읽겠다고 (이미 그러고 계시지만) 결심하시는 단호한 모습이 멋지십니다!!! 로님을 응원해요!!! 아자아자~~~!!!

페넬로페 2021-03-08 23:09   좋아요 0 | URL
미나리 영화를 저 혼자봤는데 저는 너무 좋았어요.
한예리, 윤여정 배우는 본래 좋아해요.
스티브 연은 버닝에서 너무 리얼하게 연기해 이미지가 좀 도회적이었는데 이번에 잘 소화하더라구요~~
독서모임때문에 그동안 맘이 좀 그랬는데 이제 편안해졌어요^^
저 혼자 열심히 읽으면 돼죠 뭐**
라로님의 응원 받으며 열심히 책 읽겠습니다.감사합니다**

2021-03-08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8 2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입구에 있는 놀이터를 지나올 때, 한 번씩 어떤 초등학생을 본다. 그는 매번 긴 벤치를 책상으로 삼

고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수학 문제지를 풀고 있다. 아마 학원에 가기 전, 급하게 숙제를 하는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불편한 곳에서 공부를 하는지 이해가 잘 가지는 않는다. 오늘도 지나다가 그 학생을 봤는데, 그는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계산기를 사용하며 문제를 풀고 있었다.

 

아직 한국에서는 초,,고에서 계산기를 사용하는 수학 문제 풀이가 통용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계산기를 사용하는 그 초등학생의 수학공부는 완전한 것이 못되는 것일까? 어른이 되면 수학이란 학문을 전혀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지금 왜그렇게 어려운 공부를 해야하는지를 불평하는 학생도 많다. 어른이 되면 우리는 수학을 하지 않을까?

 

나는 수학으로 세상을 읽는다는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데 접하는 통계나 수치가 계산기를 사용한 정확한 값보다는 추정값이나 어림값이 훨씬 더 많다고 말해준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어림짐작한 근삿값이 정확한 참값보다 훨씬 쓸모 있고, 더욱 믿을 만하다는 걸 증명하려고 한다.

 

계산이 필요할 때 우리는 무심결에 계산기에 의존하지만, 영업이나 의사결정을 할 때 순간적인 어림 계산 능력이 훨씬 더 성공으로 가는 길을 보장해 줄 지도 모른다.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같은 굴지의 회사에서, 신입 사원을 채용할 때 지원자에게 엉뚱한 수학 문제를 낼 때가 많다. 그럴 때 역시 추정과 어림의 능력은 면접관에게 좋은 점수를 받기 좋다. 그 능력은 자신의 두뇌가 뛰어나고 창의적이라는 것을 어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어림 계산법은 중요하고 가치 있는 삶의 지혜다. 하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장점은 아니다. 어림 계산법은 그 자체로 두뇌를 자극하는, 예리하고 흥미로운 훈련이다.(p10)

 

 

어림 계산을 잘하기 위해서는 산술 능력이 당연히 필요하다. 산출이란 사칙연산뿐만 아니라 양이나 비율등을 계산해내는 것(좁은 의미)인데, 단순한 계산이란 측면에서 수학이란 학문에 비해 폄하되기가 쉽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산술 능력을 위한 공부 역시 상당히 머리를 사용하는 것이고, 두뇌 회전과 정확성, 논리적인 사고에 도움이 된다.

 

수학과 산술 사이에는 겹치는 부분이 매우 많다. 수많은 산술적 기법과 지름길은 깊은 수학적 사고로 연결되며, 학교를 떠날 때까지 공부하는 수학에는 대부분 산술이 필요하다.(p50)

 

 

이처럼 한국에서도 고등학교까지는 산술능력이 바탕이 되는 수학을 하기 때문에 놀이터 벤치에서 계산기를 사용해 수학 공부를 했던 학생은 제대로 공부를 하고 있지 않다고 봐야 한다. 그것은 스스로 자신의 머리를 사용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며, 나중에 학교 정규시험에서도 좋은 성적을 얻기 힘들 것이다. 또한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힘도 기를 수 없다.

 

그러면 그 학생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본인은 나중에 수학이 필요없는 일을 하겠다고....소위 말하는 일머리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단순한 노동을 하더라도 그것은 생각을 요구한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노동은 자신에게 유용할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도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 수학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회 생활의 바탕이 되는 사고력과 정확성은 스스로 해낸 수학공부에서 길러진다. 또한 지금 이 시점에서 세상이 돌아가는 추세를 알기 위해서도 기본적인 산술 능력과 수학적인 사고는 필요하다.

 

이 책에는 각 장마다 몸풀기 연산이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실생활에 어떻게 사용되는지가 나와 있다. 마지막 장에는 물리학자인 엔리코 페르미의 추정법을 소개한다. 충분한 데이터 없이 수행하는 계산을 페르미 문제하고 한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두뇌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 상당히 귀찮고 피곤하지만, 문제해결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른이 되어서 수학이 필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쉽게 살기 위해 생각하기 싫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의 재산이나 주식 시세에만 관심을 가지면서, 정작 정부의 정책이나 실업률, 빈곤, 지구 온난화에 대한 수학에는 눈감아버리는 어른은 아닌지....

 

살다 보면 수학머리가 꼭 필요한 순간이 온다. 이 책은 그 순간을 위해 쓰였다. 일상에서 만나는 많은 숫자에는 함정이 있고 우리는 올바른 숫자를 찾아 답을 빨리 구해야 한다. 마트에 나열된 물건값을 비교하고, 얼마나 저축해야 1억을 모을 수 있을지, 뉴스가 말하는 취업률 수치가 정말인지 알고 싶을 때 말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일상의 수학이 필요하다.-책의 뒷표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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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2-28 19: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졸업 전에는 그렇게 싫던 수학, 쓸모없게만 여겨지던 수학이 여러모로 유용하고 은근히 많이 활용되는구나 느껴요. 가끔 재..재미도 좀 있구요ㅋㅋ😳👉👈

페넬로페 2021-02-28 20:56   좋아요 1 | URL
네, 사실 수학을 시간내서 열심히 하면 재미있는 학문이거든요~~
활용도 많이 되구요^^

scott 2021-02-28 20: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페넬로페님 살다보면 수학머리가 꼭 필요한 순간이 와요.

졸업하고 나면 수학 끝인 줄 알았는데 정말 면접 때 통계수치 내놓고 ppt해야하고,,,
일상생활이 전부 숫자,,,,
성적이 아닌 숫자가 아닌 일상의 수학적 언어 사고가 정말 정말 필요합니다.


페넬로페 2021-02-28 20:57   좋아요 2 | URL
심지어 수학머리는 집안 살림에도 필요해요 ㅋㅋ
수학을 공부하는것이 성적에도 중요하지만 논리적 사고를 갖게 하는것이 더 큰것 같아요**

파이버 2021-03-01 0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급하게 수학숙제하는 아이의 모습이 귀엽네요ㅎㅎㅎ 페넬로페님 말씀대로 수학적논리적 사고를 하는 연습이 필요해요 다만 어릴땐 그걸 깨닫기 어려운 것 같아요ㅜㅜ

페넬로페 2021-03-01 00:40   좋아요 1 | URL
네, 저도 그 학생이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더라구요~~
파이버님 말씀대로 고등학교까지 배운 것들이 우리가 사용하는 지식들의 거의 모든 근간을 이루고 있는데 그걸 학창시절에는 깨닫기가 어려운것 같아요^^

라로 2021-03-01 0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집은 제 유전자 때문인지 애들이 다 수학못알못(이라고 하나요?ㅎㅎ)입니다.ㅠㅠ

페넬로페 2021-03-01 09:27   좋아요 0 | URL
수학공부가 사실 쉽지 않죠~~공부할 양도 많고 계단식으로 쌓여야 그 다음개념을 받아들일수 있으니 ㅜㅜ
모든 사람들의 고민이예요

psyche 2021-03-01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국에서는 무슨 수업을 듣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중학교 정도부터 계산기를 사용하고요 고등학교때는 공학용계산기를 써요. SAT 시험 같은 대학입시시험때도 계산기를 가지고 들어간답니다. 물론 시험에 따라 허용이 되는 계산기와 안되는 계산기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계산기를 쓴다고 보면 될 거 같아요.
처음에 미국와서 수학시간에 계산기를 쓰는 걸 보고 이래서 미국애들이 산수를 못하는구나 했었네요.ㅎㅎ
근데 학창시절에는 수학 좀 했던 저... 지금은 계산기 없으면 간단한 더하기 빼기도 못해요. ㅜㅜ

페넬로페 2021-03-01 10:27   좋아요 0 | URL
네, 사실 이 문제에 많은 고민을 해봐야할 것 같아요. 이 책의 저자도 계산기와 병행을 해야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단 어려운 수학에 있어서요.
계산기 병행을 해야하는데 우리가 계산기를 사용하는 순간 간단한 것도 계산기에 의존하게 되는게 문제인것 같아요.^^
 
라이프 트렌드 2021 : Fight or Flight
김용섭 지음 / 부키 / 2020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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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란 항상 변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며, 어느 정도의 예상도 한다. 물론 그 예상이 빗나가기도 하고, 어떤 변수에 의해 번복되기도 하지만, 2020년 한 해는 특히 우리에게 급변의 상황을 주었다. 갑자기 우리에게 닥친 위기에 당황하고, 그 대처방안에 우왕좌왕했지만, 사실 이것이 오래전부터 경고되어 왔던 것의 결과물일지도 몰라 한편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해가 바뀌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벼랑에 몰린 우리는 스스로 살아 갈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누군가를 믿고 해결책이 나오기를 기다리기엔 너무 절박하다.

 

대개의 계획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연결되는 흐름에 기초하는데, 2021년을 앞두고는 계획의 방향을 잡지 못하는 이가 유독 많다. 우리가 살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 팬데믹이 초래한 사회적 격리와 봉쇄 속에서, 일상의 당연한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2020년을 살았기 때문이다.-p4

 

라이프 트렌드 2021에도 팬데믹이 그 중심에 있다. 저자는 2021년을 관통할 트렌드 코드로 ‘Fight or Flight(맞서 싸우거나 도망가거나)’를 제시한다. 상황이 급변하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난무한 이 때에 치열하게 맞서 싸우거나, 과감히 회피하여 도망가라고 한다. 여기서의 회피는 비겁하거나 무능한 것이 아니라 훗날을 도모하기 위한 작전상 후퇴이다.

또한

세이프티 퍼스트(Safety First), 뉴 프레퍼(New Prepper), 팬데믹 세대(Pandemic Generation), 욜리(YOLY), 피시(FISH), 로컬(Local), 메타버스(Metaverse)등의 단어를 제시하며 올해의 트렌드를 예상한다.

 

위기는 이미 누구에게나 다가왔고, 과거에 구축한 사회 체계와 관점으로는 풀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이지만 오히려 거대담론을 논의하자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로봇이 사람을 대신하는 시대에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 것인가는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절체절명의 화두이다. 복지에 대한 방향, 기본 소득, 인구 절벽에 대한 대처 방안들은 지금 이 시점에서 논의되어야 할 중요한 담론으로 본다.

 

미국 캔자스주에 있는 서바이벌 콘도(Survival Condo)는 아주 비싼 호화 벙커다. 1960년대 초에 건설된 이곳은 원래 핵탄두가 탑재된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보관하던 지하 격납고였다. 이를 부동산 개발업자가 매입해서 부자들을 위한 피난처로 개조해 2012년에 분양했는데 100평 규모의 아파트가 450만 달러였지만 분양하자마자 다 팔렸다-p93

 

다 아는 사실이지만 부자들은 위기에 더 많은 돈을 벌고 살아남을 수 있다. 비대면 경제시대에 가진 자가 훨씬 더 유리할 수 밖에 없다. 경제적 격차는 더 가속화되고 설국열차는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어디서부터 그 원인을 찾고 어떤 말을 해야할지 나로서는 역부족이지만 어쨌든 모두가 잘 살아갈 수 있는 논의는 분명 있어야한다.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각종 공해와 쓰레기가 이러한 팬데믹을 가져왔지만, 우리는 지금 살기 위해 일회용품을 무한정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에서 오랫동안 지속 가능한의 의미를 새기고, 공존을 위한 삶은 필수이다.

 

팬데믹 시대를 맞이해 그것에 관련된 책이 쏟아져나오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각자 자신의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해야하며 그것은 무척 어렵다. 다만 세상이 돌아가는 방향과 그 물결의 흐름을 아는데는 이러한 책들이 도움이 된다. 귀찮지만 급변하는 세상에 머리를 싸매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치열하게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세이프티 퍼스트
우리는 확실하게 경험했다. 개인위생을 철저히 관리하도록 만들기 위한 지난 수십 년간의 어떤 시도보다, 한 번의 강력한 팬데믹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종식되더라도 손 씻기와 개인위생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다시 과거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안전민감증으로 우리는 좀 더 안전할 수 있게 되었고, 안전과 위생은 우리의 중요한 욕망으로 부상했다. - P35

뉴 프레퍼
프레퍼란 재난과 사고가 닥칠 것을 우려해 일상생활 중에도 생존을 위해 스스로 대비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 P80

팬데믹 세대
팬데믹 세대는 나이도 어리고 지위와 돈도 없지만 온라인에서의 영향력은 그 누구보다 강력하다...그들의 세력화는 환경과 기후 위기에 대해 목소리를 내게 만들었고, 미닝 아웃을 통한 적극적인 소비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 P173

욜리(You Only Live for Yourself)
한 번뿐인 인생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인생은 자기 힘으로 살자는 것이다. 남의 눈치를 보며 살기보다 남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 자신이 편한 관점에서 살자는 것이다. 착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 P195

피시(Financial Independence Sustainable Hobby)
경제적 독립을 이루려면 돈도 잘 벌고, 투자도 잘하면서 잘 관리하는 것이 필수다. 이렇게 확보한 경제적 기반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과 취미를 지속적으로 누리며 살자는 것이다. - P196

메타버스
3억 5000만 명이 존재하는 메타버스 공간은 그 어떤 플랫폼보다 강력하다. 오죽하면 넷플릭스의 CEO가 넷플릭스의 라이벌은 디즈니가 아니라 포트나이트라고 했을까. 강력한 소셜 플랫폼은 좋은 콘텐츠만큼 중요한 무기다. - P290

서스테이너블 라이프(Sustainable Life)-오랫동안 지속 가능한
서스테이너블 라이프는 우리의 일상과 소비에서 중요한 요소로서 삶의 관점과 태도가 되었다. 그리고 비즈니스에서도 ESG(환경 사회 지배 구조)는 필수 경쟁력이 되었다.이렇게 변화한 이유는 바로 공존 때문이다. ...많은 이가 전염병의 실체와 생태계 파괴, 기후 위기 문제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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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2-24 21: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각자도생이지만 거대담론을 논해야할 때라는것에 공감해요. 뽑아주신 명칭들 두 개 빼고 다 완전 낯설어 궁금ㅋㅋ🙄 욜로아니고 이제 욜리네요!

페넬로페 2021-02-24 22:57   좋아요 2 | URL
네, 우리 모두 공존하기위해 노력해야 할 듯해요^^이 책에 나오는 새로운 용어들을 알아가는게 재밌어요.
뭔가 트렌드를 좀 아는 느낌!

scott 2021-02-24 23: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그러네요 요즘 뉴노멀,뉴노멀이라고 전부들 한마디씩 하는데 페넬로페님이 적어주신 트렌드 용어 입에 착착 감기게 외워야쥥 근데 전 태생적으로 욜리 같이 살아서 솔직히 요즘 넘 편해여 ^.~

페넬로페 2021-02-25 00:41   좋아요 2 | URL
저는 전에는 트리플 A형처럼 살았는데 많이 바뀌었어요.요즘은 맘편히 살려고해요~~욜리에 가깝게요^^
 

마음에 새기자^^

지극하구나.
곧고도 오만하지 않고
굽은 듯해도 복종하지 않으며,
가까이하되 너무 핍박하지는 않고
먼 듯해도 마음은 배반하지 않으며,
변해도 음란하지 않고
반복하나 싫증나지 않고,
구슬프나 근심하지는 않고
즐거우나 방종하지 않으며,
쓰기는 해도 모자라지 않고
넓어도 드러나지 않고,
베풀어도 낭비하지 않고
구하더라도 탐욕스럽지 않으며,
머물더라도 막혀 있지는 않고
나아가더라도 떠다니지는 않는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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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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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씩 소설을 읽을 때, 그 내용보다 작가의 문장에 빠질 때가 있다. 주인공의 생각과 말에 얹힌 그 문장들이 가슴을 서늘하게 하고, 상황을 똑바로 보게 한다. 니클의 소년들은 작가의 좋은 문장으로 인해, 인종 차별을 받는 흑인들의 불행함을 넘어, 인간이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직시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당연히 이 책의 내용도 좋다. 복선과 반전도 절묘해 소설을 읽는 재미도 있다. 오래간만에 스토리와 문장, 작가의 개입이 잘 짜여진 훌륭한 소설을 만났다.

 

짐 크로법이 이미 효력을 잃었지만 여전히 인종 차별이 심하게 존재하는 남부의 탤러해시에 누구 못지않게 착하고 반듯한 흑인 소년, ‘엘우드 커티스가 산다. 그는 마틴 루터 킹목사의 연설을 들으며 흑인도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미래를 꿈꾼다. 불의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품위를 갉아먹는 것이라 생각하며 앞으로 나서며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소년이다.

 

엘우드는 하나의 원칙에 마음이 기울었다. 킹 목사가 그 원칙에 형태와 소리와 의미를 주었다. 짐 크로처럼 검둥이들을 계속 누르려고 하는 거대한 힘이 있고, 엘우드 너를 계속 누르려고 하는 작은 힘이 있다. 이를테면 주위의 다른 사람들. 이런 크고 작은 힘 앞에서 너는 꼿꼿이 일어서 너 자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 -p39

 

그런, 누구 못지않게 착한 엘우드는 생각지도 않게 누명을 쓰고 악명 높은 니클 소년 아카데미라는 감화원으로 가게 된다. 니클 안에서 자행되는 만행은 뻔하다. 원칙 없음. 가차없는 폭행과 살인. 강제적 데이트라 불리어지는 어른에 의한 강간. 노동. 주정부에서 지급되는 물품들을 뒤로 빼돌려 이익을 챙기는 윗대가리들. 바깥의 자유로운 세상에서는 착한 척 하지만 니클에서만은 가식을 떨지 않는 어른들. 언제나 오트밀을 먹는 망가진 소년들.......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니클에서도 엘우드는 고민한다. 삶의 방향을 어디로 정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조용히 모든 것에 눈 감고 침묵해서 그곳에서 벗어날 것인지, 아니면 죽을 지도 모르지만 장애물을 정면으로 통과해 니클의 실상을 알릴지에 대해 엘우드는 갈등한다. 그리고 엘우드는 선택한다.

 

이렇게 정의의 메커니즘이 움직이게 된 것은 버스에서 앉으면 안 되는 자리에 앉은 여자, 금지된 식당에 들어가 호밀빵에 햄을 얹은 샌드위치를 주문한 남자 덕분이었다. 이번에는 증거를 담은 편지가 그런 역할을 할 수도 있었다. -p226

 

지금 현재 겪는 불행이 무서운 건, 그것이 현재에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폭력과 차별에 의해 남들과 똑같은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과 같은 출발선에 서지 못한다. ‘그들은 평범한 삶이라는 소박한 즐거움조차 누릴 기회가 없고, 경주가 되기도 전에 이미 불구가 되어 절룩거리며, 정상이 되는 방법을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니클이 폐쇄되고 인종 차별이 없어져도 니클의 소년들은 여전히 니클에서 산다. 애써 막아놓고 일상을 살아가지만 어두운 곳에서 언제나 니클은 그들을 지배한다. 불행은 여전히 불행을 가져온다.

 

착하고 굳건한 소년, 엘우드가 혼자 투쟁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끊임없는 인식과 관심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해주기를 마냥 기다리면 빠른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그는 마틴 루터 킹목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지만, 사랑해야만 한다는 목사의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니클의 소년들은 스토리의 전개와 거기에 스며든 문장들이 잘 짜여진 좋은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폭력에 놓여진 소년들을 보는 것이 힘들었다. 그 시대에서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사람에게 가해지는 여러 종류의 폭력은 여전하다. 그 폭력을 보는 것이 힘들어 많은 것에 눈 감는다.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가 그것에 대항해 싸워줄 것이라는 은근한 기대를 하며 슬그머니 빠지는 나 자신을 본다. 니클에서 혼자 저항하지 않고 같이 싸웠더라도 그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 같다는 무력감도 있다. 모든 것이 구조적으로 잘못된 것이라서 내가 개입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상대라는 두려움도 있다. 나를 지키고자 선택한 침묵이 분명 이 세상의 수많은 엘우드를 외롭고 힘들게 할 것이 분명하다. 부끄럽다, 세상을 살아가기에.

 

어렸을 때 그는 리치먼드 호텔의 식당을 지켜보았다. 그의 종족에게는 금지된 장소였지만 언젠가 그 문이 열릴 것이라는 믿음을 안고, 그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어두운 감방에서 그는 자신의 기다림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는 어두운 피부색을 초월해서 인정받기를 원했다.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 동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을 원했다. 그를 동지로 불러줄 사람, 똑같은 미래가 다가오고 있음을 아는 사람, 비록 속도는 느릴지라도 뒷골목과 신선한 나날로 점철된 그 미래 앞에서 손으로 쓴 항의의 팻말과 연설에 장단을 맞추는 사람. 커다란 레버에 체중을 실어 세상을 움직일 준비가 된 사람. 그런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그 식당에서도 다른 곳에서도.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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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2-21 00: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사회에서는 죽어서도 골치덩어리라고 ㅜ.ㅜ
‘자신의 영혼을 믿고 자부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루터킹 목사의 말도 전혀 믿지 못하는 사회 ㅜ.ㅜ


페넬로페 2021-02-21 00:41   좋아요 5 | URL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이 궁극적으로는 맞는 말일까요?
이 책은 참 많은걸 생각하게 해주네요^^

scott 2021-03-05 15: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달의 당선 추카~* 추카~
행운의 福🐸개굴
놓고 가여 ^0^

페넬로페 2021-03-05 16:28   좋아요 1 | URL
scott님 감사합니다^^
scott님도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