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신사』, 『우아한 연인』으로 국내 독자들에게 그 이름을 알린, 내게는 장소의 철학자로 여겨지는 에이모 토울스가 그의 첫 소설집으로 기다리던 독자들에게 돌아왔다, 이 컬렉션은 여섯 편의 단편과 한 편의 중편소설로 구성되어 그간 호흡이 제법 길었던 장편과 달리 단편소설로 작가 수련을 해왔던 그의 섬세하고 예리한 순간의 포착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서사 미학을 즐기는 기회가 된다.
수록된 전체 작품에 앞서 맛보기로 단편 「밀조업자」를 프리뷰 북을 통해 읽게 되었다. 에이모 토울스는 ‘작가의 말’에서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을 다 모은 뒤 의식하지 못했지만 수록작품들이 “낯선 사람 두 명이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서 자기 삶에 나타난 새로운 사실과 직면한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고 쓰고 있다. 다시 말해 “테이블에서 나눈 단 한 번의 대화로 인생이 크게 변할 때가 많다는 잠재의식 속 확신이 낳은 결과”인 것 같다고 말한다.
「밀조업자」 또한 한 순간의 우연한 상황, 그로인해 이어져야만 하게 된 대화가 한 인간 삶에 있어 유익한 저주였음을 감수성 높은 화자의 입을 빌려 세련된 유머와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품격있게 이야기를 지펴내고 있다. 화자인 메리 하크니스는 “아이비리그 대학을 나와 10만 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는” 30대 중반의 투자은행가인 남편 토머스 하크니스(토미)와 두 아이를 둔 뉴욕에 거주하는 여인이다. 메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남편 토미를 사랑한다”는 점을 이야기 서술에 앞서 밝히고 있다. 때문에 메리가 전하는 1996년 4월의 어느 토요일에 발생했던 카네기홀에서의 사건 속 주인공인 남편 토미에 대한 섬세한 관찰자의 시선은 사랑, 타자에 대한 공감능력으로서의 사랑에 기초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어떤 비난이나 조롱에서 벗어난다.
젖먹이 아이들의 뒤치다꺼리에서 해방되자 토미는 부부의 ‘저녁외출 캠페인’이라는 아이디어를 꺼내들게 되고, 카네기홀에서 저녁시간을 보내는 것 등의 목록을 만든다. 메리는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카네기홀에서 저녁 시간을 보낼 만도 했다.” 중산층 부부의 여가생활로서 감당 할 만큼의 여유가 있었다는 말일게다. 조금은 시니컬한 분위기를 띤 이러한 자기 객관화 표현이 내게는 꽤 흥미롭게 여겨졌는데, 여기에 더해 “하지만 가장 내 마음에 든 것은 적극적으로 나선 토미의 태도였다. 그래서 나는 ‘그래, 안 될 것도 없지.’ 라고 대답했다.”는 상황 묘사들은 그 디테일이 전달하는 감성이 그대로 느껴져 재미를 배가시켰다. 아무튼 이후 메리가 묘사하는 상황들은 이러한 섬세한 순간 포착능력에 기초하고 있기에, 우리들 일상의 생생한 표정들이 담고 있을 익살맞고, 친근함이 공감력을 높여 더욱 몰입하게 된다.
카네기홀 공연 예약을 시도하다 기부금 2천 달러인 후원자 혜택의 유혹에 4월의 매주 토요일 밤 ‘거장들의 연주회’를 예매하게 되고, 토미와 메리 부부는 카네기홀 5열 좌석에 앉는다. 그런데 그들의 옆 좌석에 여든 살쯤의 레인코트를 입은 노인이 자리잡고, 그의 소매 끝에 곤충 더듬이처럼 나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때 토미가 속삭인다. “메리! 저 손목을 봐.” 이후로 토미는 콘서트 내내 ‘마이크’를 바라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다. 여기서 메리가 지적하는 토미의 “세 가지 재능이라는 승부욕, 예리함, 소유함으로써 얻게 되는 이득에 대한 감각”을 빼놓으면 얘기가 이어지지 않을 것 같다. 아마 여기 승부욕에 필수적인 집요함을 더해야 할 것 같다. “믿을 수가 없네, 너무 뻔뻔하잖아! 카네기홀에서 콘서트를 녹음하다니.” 이때 메리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 만다. 토미의 반응은 모든 것을 말하는데, “토미는 충격받은 얼굴로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이 행동의 묘사에서 토미가 어떤 인물인지, 자기 의견에 얼마나 심취하며, 마치 사회정의를 자기 한 몸이 짊어진 것처럼 자기 생각만을 좇는 사람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반면 메리는 연주회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눈 내리는 숲 한 복판에 아주 정답고 매력적인 분위기와 가로등”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는 사람이다. 감수성, 타자에 열려있는 정신으로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다. 토미와는 반대의 성향이랄까? 미친 듯이 재미있는 장면이 있는데, 노인의 연주회 녹음이라는 불법 행위에 대한 놀라움, 자기 윤리와 정의관에 배치되는 행위에 토미는 콘서트는 뒷전이고, 온 정신을 노인의 카세트 녹음기에 달린 마이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연신해서 불만 가득한 목소리를 중얼거린다. “믿을 수가 없네. 어이가 없어!”
자기 도덕성의 기준에 용납되지 않음에 참을 수 없어하는 사람들을 우리들 주변에 발견하는 일은 매우 쉬울 정도로 흔하다. 이때 뒤에 앉은 여자가 쉿 소리를 낸다. “토미는 충격으로 입을 다물지 못한다. 미국의 법률, 카네기홀의 예의, 모든 예술가의 지적재산권을 수호하려 애쓰는 자신이 저런 소리를” 듣게 된 것에 대한 충격이다. 억울함 가득한 토미의 얼굴을 상상 할 수 있게 된다. 자기 정의감에 대한 반응이 징벌로서 다가왔을 때 경악스러움이 덮쳤을 것이다. 아무튼 메리의 이 생동감 넘치는 묘사들은 상황 모두를 상상 가능하게 한다. 토미의 표정을 이해할 수 있는 나도 이와 유사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상황, 자신의 정의감이 홀대된 현실을 참아낼 수 없었던 토미는 연주회 중에 좌석에서 일어나 통로로 나가기 시작한다. “주위 좌석의 음악 애호가들이 저마다 분노와 충격을 드러내는” 것은 아마 당연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토미 자신이 주장하던 ‘카네기홀의 예의’는 그렇게 그 자신이 파괴한다. 사실 소설의 많은 묘사에 이러한 상황역전이 주는 웃음, 미소의 코드가 있다. 연주회장을 벗어난 토미는 안내직원에게 다짜고짜로 밀조업자를 신고하려한다고 말한다. “음반 밀조업자요!”, 안내 직원이 눈동자를 굴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지금 나한데 눈동자를 굴린 겁니까?” 또다시 토미는 충격을 받는다. 자기 정의감에 심취한 인간은 타인의 모든 행위와 언어가 자신에 호응하지 않으면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인데, 특히나 그의 학력, 직업적 신분이라는 사회 계층적 우월감에 대한 확신을 가진 토미와 같은 인물들이 으레 보이는 반응일 것이다.
객석에서 노인은 카네기홀 매니저의 부름에 불려나오고, 경비원의 신고를 받은 경찰까지 출동한 현장, 연주회 중간 휴식시간에 로비로 나온 메리는 이 상황을 수치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기분이 어떻든 아내로서 남편 옆에 서서 정신적으로 응원해줘야 하는 때가 간혹 있지만, 그때는 그런 때가 아니었다고, 그래서 그녀는 5 미터쯤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상황을 지켜본다. “만약 내가 프로그램을 가져왔더라면, 그것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만 내밀었을 것이다.”고. 출동한 경찰관의 시선 또한 이 상황의 분위기를 더하는데, “토미를 한번 쓱 훑어보았다. 이런 주장을 내놓는 월스트리트 인간들에 대해 완벽히 안다는 뜻을 전달하려는 것 같았다.”고 메리는 쓴다.
불려나온 팔십의 노인, ‘아서 파인’은 13년 동안 아내와 함께 공연을 보아왔지만, 아내가 큰 병이 들어 콘서트에 올 수 없게 되자 공연을 녹음하기 시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수치심과 연민이 교차하는 이 순간의 황망한 정경이 눈에 선하다. 경찰관이 카네기홀의 매니저 미스터 코넬을 본다. “고발하실 생각입니까? 그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상황이 끝일까? 메리가 말하는 남편 토미의 성격을 들어보자, “아무리 사소하고 짧게 오고간 대화라도 토미는 나쁜 감정이 남지 않았다는 확인을 상대에게 받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에겐 상황이 종료된 것이 아니다. 토미는 ‘사과와 설명의 요구’를 위해 파인씨를 만나야 한다며 로비를 떠나지 않는다. 단순히 노인에게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을 요구할 것이란다. 이 지독한 자기중심적 정의관, 타인의 감정에 대한 몰감각, 무신경의 극치랄까? 이 상황에 한 마디로 어이없어, 기막혀! 하는 메리의 당시 감정은 정말 재치 넘친다.

【이미지는 『테이블 포 투』의 프리뷰 북 입니다.】
“그의 끈질긴 성격, 남자의 자존심이 죽음에 저항하며 보이는 곡예, 아내로서 이제는 놀라지 말아야 할 일에 여전히 놀라고 있는 나의 능력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 그녀는 잘 알고 있는 토미의 집요함이건만 다시금 놀라는 자신에게 놀라 금치 못하는 것이다. 토미에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오직 자기감정의 확신만을 위한 행위는 정말 놀라운 것이다. 그런데, 이 무공감 능력, 타자의 감정에 대한 무관심은 아마 요즈음 세태에 흔히 발견되는 실제일 것이다. 폭넓게 그 세력권을 확장하는 타자에 대한 무관심과 몰이해가 차고 넘치는 세상이니 말이다. 노인은 직원 출입구를 통해 다시는 카네기홀에 입장 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이미 집으로 돌아갔다.
토미에겐 자기감정의 해소를 위한 확인이 되지 않았으니, 노인을 찾는 행위가 계속되는 것은 그에겐 당연한 일이다. 메리 역시 예감했던 일이다. 토미는 마침내 카네기홀에서 멀지 않은 공동주택에서 노인을 찾아낸다. 치밀하고 예리한 감각을 자랑하는 투자금융사 간부인 토미의 무신경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노인이 혼자 산다는 말을 들었을 때 노인에게 손가락질해대며 분노를 터뜨린다. “당신 혼자 산다며!”, “아내가 죽은 뒤 혼자 살아요.” 노인이 죽은 아내와 함께 카네기홀을 찾아 음악 연주를 감상하던 사연을 듣기 시작한다. 감동과 수치심이 물밀듯 몰려왔을 것이다.
콘서트홀에서 지켜야 할 예의? 예술가의 지식재산에 대한 권리? 호들갑을 떨어댔지만 정작 자신은 음악이 삶의 일부가 되었던 노부부의 삶과 달리 사기꾼에 불과했음을 느끼는 것인데, 아마 소위 중산층의 문화적 자본에 대한 자부심에 도사린 과시와 허위의식의 발견이었을 것이다. 마침 아버지 파인을 찾아 온 딸 메레디스로부터 “피도 눈물도 없는 자식!”, “노인이 아내를 추억하면서 음악을 좀 듣고 싶어 한 것, 이게 어느 섬세한 분의 감수성을 건드렸거든....자기가 남보다 뛰어난 정의감을 지녔다고 생각하는...”이라며, 자신이 아닌 다른 것에는 더 이상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며, 자기 행동이 낳을 결과를 생각지 않는 부주의에 대해 혐오의 일갈을 뱉어낸다. “그동안 당신이 앉았던 그 자리는 바로 우리 어머니 자리였어!” 이 한마디 말 때문이었을까? 토미는 명치를 주먹으로 얻어맞은 듯, 몸속에 산소가 부족해서 사과조차 할 수 없는 순간에 처한다.
그런데 당시 자기 정의감에 몰입해 연주회 도중에 다른 청중의 감상을 방해하며 토미가 뛰쳐나갔을 그때, 메리는 거장 이설리스가 연주하는 바흐의 첼로 모음곡 1번(G장조) 전주곡에서 완벽한 것, 깊이 잠들었던 영혼이 갑자기 깨어나는 승천, 비현실적 감각에 심취해 있었다. 그 감각의 묘사는 어쩌면 이 작품이 들려주려는 커다란 주제에 가깝게 여겨지는데, 크레센도( crescendo), 최고조를 향해 점진적으로 고조되는,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폭포에 덩달아 승천하는 감각, “올라가는 행위가 가능한 영역 너머로,.....희망과 포부를 넘어 모든 가능성이 우리 앞에 열려 있는 기쁨의 영역으로.”라는 “공유한 기쁨, 공유를 통해 더욱 풍부해진 그 기쁨에도 박수를 보”내는 청중들 서로를 향한 공유의 감각을 닮아있다.
“당신이 평생 카네기홀에 다니면 좋겠어요. 토머스 하크니스, 그리고 우리 어머니 자리에 앉을 때마다, 바흐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첼로 연주를 들을 때마다....당신에게 독선적이고 무신경한 개자식이라고 말한 일을 기억하면 좋겠어요.”, 메레디스가 저주처럼 전한 이 말은 토미라는 인간의 삶의 태도에 분명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믿어진다. 감수성, 공감능력, 사랑, 이 글자만 다른 동일한 감성의 능력을 잃을 때 우리는 자기 너머의 타자를 알지 못하게 된다. 그것이 설령, 법 윤리가 되었건, 예술의 보호가 되었건, 지키고자 하는 정의감이 되었건, 그것은 결국 이러한 능력의 토대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될 터이다.
아마 토미는 자기용서의 기나긴 시간을 보냈을 것이고 어쩌면 마침내 서로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열려있는 기쁨의 영역에 도달했으리라. 아, “욕망과 양심, 관계의 회복을 다루며 우아함과 예리함 사이의 과감한 변주와 품격있는 도약으로서 크레센도의 거장이 연주하는 공연 같다”는 이 작품에 대한 칭송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확인하게 되는 작품이라 함에 주저치 않겠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두 도시를 무대로 펼쳐지는 일곱 편의 이 첫 소설집 『테이블 포 투』는 탁월한 서사 미학에 굶주린 독자들에게 이 여름 우아한 선물이 되어줄 것이라 확신한다.
* 본 페이퍼 글은 출판사 현대문학으로부터 에이모 토울스의 첫 소설집
『테이블 포 투(Table For Two)』의 프리뷰 북을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