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방 E. M. 포스터 전집 4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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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가 지난 1908년 발표된 작품이다. 세월이 가져온 인간사의 정신적, 문화적 환경의 변화로 인해 오늘의 시선으로는 꽤나 낯설다. 그러함에도 이 작품의 문학적 의미가 퇴색되지 않음에는 그 사실적 심리묘사, 신분적 갈등과 화해, 현대사회화로의 진행에 따른 여성의식의 변화, 그리고 인간 본성의 섬세한 해부 등 그 구성의 탁월함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도시와 교외, 현대와 봉건, 남성과 여성, 권위와 민주, 구속과 자유와 같은‘문명의 충돌’이 첨예해지는 새로운 세기로의 전환에 따른 혼란스러운 인간정신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 듯하다. 작품의 제목과 같이 '전망(View)'은 이러한 다양한 갈등을 바라보는 창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 아닐까?

영국 귀족 여성의 전형적인 사고를 가진 어린 아가씨‘루시’와 그녀의 사촌인‘샬럿’의 여행지인 이태리 피렌체의 한 펜션에서의 전망 없는 방이 배정됨으로서 작품은 시작된다. 펜션 베르톨리니는 작품의 귀중한 제재로서 동기를 제공하는 사건의 무대역할을 한다. 펜션에 묵고 있는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 이국적 문화와 그 사회를 구성하는 새로운 질서에서 주인공 루시는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게 된다.

비브목사와 이거목사를 통해 권위적 종교의 해체를, 소설을 쓴다는 엘리너 레비시는 남성중심 사회에 도전하는 여성으로서, 그러나 진실 되지 못한 여성으로서 여전히 여성정신의 뚜렷한 설정에 모호한 입장을 유지하고, 샬럿의 권위적이고 중세적인 여성의 자의식에 내재하고 있는 이중성을 그리고 있다. 신문기자였던 사회주의자로서 에머슨을 등장시켜 사회적 평등주의의 시선과 당시대의 가치관과의 마찰적 요소로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이 작품의 특성을 꼽는다면, 등장인물들에 대한 성격, 태도, 행동양식, 가치관등이 디테일하게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루시의 약혼자로 등장하는 세실, 동생 프레디, 엄마 허니처치 부인, 그리고 그녀의 사랑을 얻는 조지 에머슨까지, 이 인물들을 독자는 아주 구체적으로 예상할 수 있으며, 루시와 세실, 그리고 루시와 조지의 관계를 통해 낭만적 로맨스를 뚜렷하게 구별할 수 있게 된다.

100년 전의 열정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아주 재미있다. “열정이란 저항 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예의범절이라든가 심사숙고하든가  그 밖에 교양이라는 이름의 각종 족쇄를 잊는 것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통행권이 있는 곳에서 허락을 구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무척이나 예의바른 포옹 후에 무언가 결핍된 듯 하여 이어지는 나레이션이다. 이 작품이 오늘에 읽혀지며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당시대의 사회상이라 할 수도 있겠다.

전망에 대해 작가는 작품 속에서 조지가 아버지 에머슨의 말을 인용하여“완전한 전망은 하나”이다,“우리 머리위로 올려다 보이는 하늘의 전망”, “땅위에서 보이는 전망들은 다 그걸 어설프게 흉내 낸 거래요”라고 전망이란 진실과 위선의 차이를 슬그머니 던진다. 이는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성격묘사에서 샬럿이란 인물을 통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세실과 조지의 대비적 특성등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일부 유치한 전개방식이나 설명식 사족, 구태의연한 표현 등 비록 1세기가 지난 작품이지만 문학적 감수성을 이해하고 인간 심연에 대한 본질적 탐험과 같은 섬세한 인물묘사 등은 가히 명작으로서 우리의 양식을 풍요롭게 하는데 일조한다 할 수 있다. 유쾌한 고전적 낭만과 로맨스를 즐기는 색다른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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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의 눈
금태섭 지음 / 궁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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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대중에게 가까이 소개하려는 작자의 의도가 충분히 전달되었을까? 오히려 이것이 법의 실체란 말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쉽게 풀어쓴 판례해설문에 가까운 일화와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몇 가지 소송사례와 배경 등 17개의 소재로 구성되어 있는 인간사회에 대한 작가 나름의 시선을 담고 있다할 수 있겠다.

작자가 검사출신이다 보니 형사소송에 치중되어 일반 대중들이 빈번하게 시달리는 민사부문과 관련한 법의 실상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법은 현실이다.”라고 했던가?, 그럼에도 실제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거나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이 법이란 이야기는 없다. 재판법정에 참여해 본 사람들은 불과 1~2시간 만에 수 십 건의 재판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우리의 재판현실을 목격할 수 있다. 변호사를 선임한 돈 많은 기업과 법에 대해 무지한 소시민과에 대한 재판부의 태도도 볼 수 있다. 짜증이 묻어나는 판사의 비난어린 목소리와 법적 용어와 지식이 전무(全無)한 원고의 초라한 모습을 보게 된다. 작자의 말은 옳다. 법은 현실이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인데 법적 판단의 원리와 재판부의 고심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섰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존중 욕구의 다른 표현 아닌가?

가볍게 그리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저술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많은 독자들의 대다수는 익히 인지하고 있는 내용들이기에 작자의 사변적 특성을 보여주는 소재로 선정된 17개의 항목구성이나 각 소재의 설명에 앞서 인용되고 있는 관련문헌을 찾아보는 재미와 같은 것이다.

진화론과 창조론과 관련한 일부 소재는 작자의 의도가 앞서 “디케의 눈”이라고 진지하고 거창하게 시작된 법 이론의 친절한 접근은 장황하게 과학과 종교의 논리를 대변하느라 슬그머니 본질이 실종된 느낌을 갖게 한다. 디케는 정말 왜 두 눈을 가리고 있을까? 이론과 현실, 말과 행동이 정말 일치하고 있는가? 불일치하는 그 틈새는 누가 감당하고 있는가? 감히 쳐다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일체의 편견을 버리고 공정하게 양쪽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 재판부의 시각에서 할 말이다. 그러나 현실의 대중은 이렇게 평등하고 공정한 지위에 이미 있지 않다. 이것이 현실이다! 흥미롭고 유익한 법의 시선을 이론적이지 않은 이야기로 전달하고자 한 작자의 따듯한 노고를 이해하지만 보다 폭 넓은 입장(Stance)를 가지고 접근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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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인간학 - 어진 사람은 적이 없다
렁청진 지음, 김태성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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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어떠한 형태이든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사람은 소속이 된다. 작게는 가정에서, 직장, 단체, 학교, 정부조직, 그리고 국제기구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무리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고 하는 것일까? 그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또한, 동료 사이에서, 상사와 부하로서, 조직의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도리란 어떠한 것인가?

저자는 유가의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라는 5가지 덕목과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기본 이념으로 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이 익히 인지하고 있는 삼강(三綱)과 오륜(五倫)을 덧대어 중국 고대사회로부터 근대 봉건국가인 청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인물들을 통한 인간다움의 실체를 설명하고 있다.

중국 오대(晩唐五代)시기, 관료사회의 오뚝이라 불리는 수치를 모르는 인간의 전형인 ‘풍도(馮道)’를 통해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이야기할 때,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럴듯한 명분을 통해 국무총리직을 몇 차례나 맡았던 누군가가 떠오른다. 이와는 달리 중국 역사에 공과 훌륭한 사상, 그리고 품덕으로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청대의 ‘증국번’은 모택동의『강당록(講堂錄)』에서 언급 하였듯이 ‘완벽한 인물’의 표상으로 소개되고 있다. “잠이 덜 깼어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으려면 항상 긴장 할 필요가 있다”는 근면성과 수많은 곤경과 위기상황의 인내, 그리고 끈기와 가장 중요한 미덕이었던 ‘분배의 실천’을 그의 인간다움의 최고 선(善)으로 지적하고 있다. 즉, 자신의 성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줄 안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청대 최고의 군사력과 재화, 학덕을 갖춘 이가 자신의 힘을 나누기란 수월한 일이 아니다. 우리의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부재를 생각할 때 남의 나라의 성인이 괜스레 부러워진다.

‘일일삼과(一日三過)’라는 유명한 고사(古事)의 주인공인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황제 경공과 재상이었던 ‘안영’의 일화는 리더가 갖추어야 할 겸양과 덕목, 그리고 충신이 품어야할 인의(仁義)에 대한 귀중한 예이다. “인의는 맹목적 너그러움과 의로움이 아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용기와 이를 바탕으로 한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황제에게 귀에 거슬리는 직언을 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시대였다. 안영의 매일 세 차례에 걸친 황제의 불의에 대한 꾸짖음은 진정 의로움만 가지고 할 일이 아니다. 시종일관 청렴과 훌륭한 품성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가히 군자의 자세이다.

 

의리(義理), 의협심(義俠心), 청빈(淸貧), 강직함을 큰 목소리로 부르짖으면 비웃음을 흘려대는 것이 오늘의 우리 모습이다. 상사를 모함하고, 동료를 시기하고, 부하를 억압하며, 자기가 하는 것은 작은 부정이라고, 아니 떡 값이라고 치부하는 것이 정상적인 삶의 자세가 되어버렸을 정도이다. 올 곧은 청렴의 태도는 오히려 융통성 없는 뒤떨어진 인간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 ‘렁청진(冷成金)’의 이야기는 현실 모르는 뒷방 늙은이의 부질없는 옛이야기에 불과한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의 옛날 이야기는 21세기 비즈니스 세계의 최첨단을 걷는 조직전략을 품고 있기도 하다. “신하를 벗으로 대하라” 이제 기업조직은 상하의 수직적 의사소통으로서는 단속적이고 급격한 진보가 몰아치는 오늘에, 생존하기 불가능한 조직체계가 되어가고 있다. ‘파트너쉽(Partnership)’이라는 상하가 대등한 역량관계를 기초로 하는 관계로 발전하고 있음이다.

또한 “CEO인간학”이라는 부제와 같이 기업,단체,국가등 조직의 리더가 갖추어야 할 도량들이 사기, 삼국지등 걸출한 중국의 사료(史料)속에 감추어졌던 일화들을 발굴해 오늘의 우리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전달해주고 있다. 부하인 인재의 마음을 살피고, 신의로 대하면 충성하지 않을 자가 어디 있겠는가!, 자신보다 유능한 사람을 수하에 두기위해서는 넉넉한 도량이 우선되는 자질일 것이다.
유능한 인재에게는 그 만큼 무거운 책무를 위임하라, “커다란 배는 많은 물건을 실을 수 있다고” 수나라 시절 황제 양견이 재상 소위를 시기하는 무리에게 타이르며 한 말이다.

이 저작(著作)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권을 아우르는 유교의 뿌리에 연원을 두고 있다. 특히나 조선조를 되돌아볼 때 유교의 폐해와 구태의연함이 없지 않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의 우리 사회가 건전한 처세, 투명하고 청명한 삶을 추구함에는 변함이 없지 않은가? 틀에 박힌 진부함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만물의 본질로부터 깊이 있는 오묘한 이치를 이끌어내는데 참 맛을 일깨워 줄 것이며, 또한 천차만별의 문제를 처리할 때 삼국지 이상의 모략과 음모, 즉 이해관계의 즉흥성 높은 탄력적 지혜를 제공할 것이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인술(仁術)의 정치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 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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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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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가지는 정염(情炎)의 대상에 대한 도덕적 기준이란 무엇인가? 1955년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에서 출간되자 미국을 비롯한 영국 등 유럽각국의 비난과 性的 기준의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 작품이 오늘날 현대문학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명작의 대열에 서게 된 것은 사회적 가치기준이란 변화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실증 예(例)라 할 수 있겠다.

12년 7개월의 세상을 산 사랑스런 소녀‘돌로레스 헤이즈’에 대한 37세의 남자‘험버트’의 격정적이고 치명적인 사랑이야기다. 그가 사랑의 열정에 휩싸여 부르는 이름은 ‘롤-리-타’, 그는 어여쁘지만 섹시하고 천박함이 어울린 사랑스런 소녀들을 ‘님펫’(요정의 별칭)이라 통칭한다. 어린 시절 겪었던 달콤한 사랑의 연인 ‘에너벨’의 죽음이 가져다 준 상처를 ‘프로이트 식’정신적 외상(外傷)이 가져다준 병적 성향으로 그 변질된 性的대상에 대한 취향을 정당화 하지만, 내심 험버트는 그런것만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상상력의 자극을 극대화하는 감각적인 문장들은 압권이다. 작가의 후기에서 이 작품이 미국의 출판사에서 거절된 이유 중의 하나가 포르노그라피로 읽히기에 실패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듯이 외설이 난무하는 작품으로 접근하면 그 독서는 실패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체로서의 롤리타를 향한 험버트의 떨리는 욕정과 순간순간의 그 관능적 묘사의 미학은 감정적 공감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다.

“푹신한 세포 속에 있는 아주 작은 미친 남자”,“그 뜨겁고 귀여운 고양이의 앞발을 잡고 어루만지고 꼭 쥐었다”, 독자들 모두 상상이 가리라, 누군들 그가 말하는 앞발을 놓고 싶겠는가! 오, 그리고 “상아 같이 매끄럽던 감촉”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의 서문을 작성한 자가 작가 본인이 아닌 ‘존 레이 주니어 박사’로, 감옥에서‘험버트’가 작성한 유고의 출간편집자로 노출된다. 그러나 이는 서문이라기보다는 진실과 실제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작품 해석의 중요한 단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작품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후기는 작가 자신 바로 ‘나보코프’의 서술로서 작품‘롤리타’가 가지는 소설적 위치와 그의 지속적인 고민의 하나였던 소설의‘실재’성에 대한 고뇌가 설명되고 있다. 작가는 어찌보면 실재성을 표현하려는 현대소설의 허구성만을 입증하려는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지막 작가의 후기는 독자를 당혹스럽게 할 수도 있다.

어린소녀 롤리타를 향한 주인공 험버트의 광적인 탐닉은 분명 오늘에도 윤리적, 그리고 법적으로도 용인될 성질의 사랑이라고 순순히 수용하기에는 버겁다. 그러나 험버트의 롤리타에 대한 육체적 갈망에는 보호적 요인이 끝없이 등장되어 지고지순함과 희생적 열정으로 표현되고 있다. 오히려 롤리타의 게임에 놀아난 인상을 갖기에 이른다. 성적 대상의 선정에 있어 비정상적이고 모멸감을 갖기에 충분하지만 주인공의 운명적이자 마법적이라기 까지 할 수 있는 롤리타에 대한 격정은 인간에 내재된 어찌할 수없는 통제 불가능한 그런 것이라고 하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려스러운 공감인가?

단순화해서 관능을 표현한 최고의 문학성을 지닌 최음성 강한 성도착자의 회고록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작가 ‘나보코프’ 소설의 실재성에 대한 실험을 볼 수도 있으며, 우리 인간 본성에 대한 모순과 분열된 이중성을 읽을 수도 있다. 그리고 성적 대상의 기준과 같은 성적 취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위선, 즉 도덕적 가치기준에 대한 회의라는 측면에서 접근 할 수 도 있다.

독서 내내 내밀한 관능의 향기가 쉬이 유실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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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
이중텐 지음, 박경숙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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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漢字)문화권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또한 공맹(孔孟)의 유교적 예(禮)의 사회에 살아가고 있어 저자의 논리와 설명은 낯설지 않다. 오히려 한국의 한자에 조예가 깊은 어느 문화인류학자가 한국인의 생각과 태도, 의식구조를 설명한 것이라 해도 크게 다름이 없어 보일정도이다.

단체, 집단의식의 뒤에 숨어 등 돌린 채 뒷담화만을 흘리는 태도나, 매사 먹을 것이 개입된 언어 상의 표현 습관과 생활양식에 베어있는 또 다른 음식의 모습, 체면치레와 평등의식 속에 내재한 본질의 성찰 등이 그러하다. 물론 21세기 오늘, 개방과 개혁의 대 격변기를 맞이하고 있는 중국사회와 중국인, 그리고 중국의 권력(官,軍)과 학문, 문화를 주도하는 중심세력에 대한 진실어린 충언이기는 하나, 주변국, 아니 이해당사자일 밖에 없는 우리에게도 그들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우리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의미심장한 주석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할 수 있다.

음식, 의복을 비롯한 우정과 한담(閑談)등 총 9개장으로 구성되어 중국인의 의식을 해부하고 있으나, 크게 ‘체면’과 ‘단위’를 중심적 행동양식으로 구분하여 오늘에 이르는 중국인들의 습성과 태도, 의식구조, 그리고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 이면의 본질적 양식을 관련지어 풀어내고 있다 할 수 있다.

우리(한국인)가 사용하는 많은 어휘, 속담, 관용어 등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일한 표현으로 그들의 언어에 있음을 발견하고는 흠칫 놀라게 된다. 무엇이든 먹는 것과 연관짓는 범식주의(泛食主意)의 예에서 ‘입에 풀칠한다’, 강사보고 ‘입을 놀려먹고 산다’라든지, 직업이나 일을 ‘밥그릇 ’이라 하고, 나라 밥 먹는 관료를 ‘ 철 밥그릇’, ‘한 방 먹었어’, 곤경에 빠졌던 것을 ‘쓴 맛 보았다’와 같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유사함을 보게 된다. 이러한 언어표현의 방식과 어원에 대한 해석을 통해 친밀성, 정중함, 배려 등 식사문화가 갖는 그들만의 속내로 유연하게 연결짓고 있다.

이러한 해석의 방식은 의복의 장에서도 계속되어 자본과 물질의 홍수 속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유행의  행렬에 대한 비교의식과 평등주의의 관념, 그리고 체면이라는 오래된 습속의 발현이라는 측면에서 중국인 자신을 적나라하게 해체하고 있으며, 그들의 앞날에 대한 우려스러운 목소리로 안타까움을 호소하고 있다.

제3장인 체면의 장은 『아Q 정전』의 '아Q'의 일례를 곁들여가며 흥미로움을 더해 수월한 이해의 장으로 나가게 한다. 그들의 체면의 법칙이나 가면과 체면의 관계, 의식과 무의식의 정의를 통한 ‘의식적 자기기만’에 이르는 해설은 가히 최고의 인문서로 손색이 없을 정도의 걸작에 이른다. 이 저술을 읽는 내내 매 페이지마다 밑줄을 긋지 않고 넘어 갈 수 없는 다양한 지식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음을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체면과 인정과 같이 중국인들의 오랜 태도와 행동 양식이 그들의 처세와 어떻게 관련되고 있는 것인지, 세상물정에 밝다는 것,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처세인 만큼 가식적일 수 있다는 것 등 그들의 ‘체면’이라는 것의 의식 속 배경과 의미를 이해케 된다.

단위의 장을 기초로  결혼, 가정, 우정의 장은 중국사회의 본위(本位), 즉 기초 단위와 관련하여 그들의 개인으로서의 개체 부존재와 오직 단체만이 존재하는 사회임을 통찰한다. 최소의 단위는 가정이라는 단체이며, 개인이란 단위는 존재치 않는다.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역사적 배경과 공산사회로 이어지는 불과 30여 년 전까지의 중국은 그러했으며, 이는 중국사회와 중국인의 의식과 행동의 근원이 되는 가장 중요한 인식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일상의 행동, 태도, 양식은 여기에 뿌리를 두고 파생되었다 할 정도로 그 근원적 의의는 깊다.

단체에 숨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의식, 공사불분(公私不分)의 태도, 전통적인 등급사회로서의 관본위주의 등 오늘의 중국 관료사회의 부패와 부조리의 근원적 연결고리를 제시하고 있다. 이후 사랑 없는 결혼제도의 배경- 단체인 가정, 가정의 주체인 아버지의 선택이면 당사자와는 무관한 혼인제도 - 과 이혼문제, 우정과 관련한 의협심과 의리의 논의와 현재적 해석에서의 의미까지 중국인의 의식개혁을 위한 저자의 주장과 논리는 거침없이 전개된다.

끝으로 한담, 우리말로는 뒷담화라 할 수 있는 등지고 하는 타인에 대한 이야기가 가지는 해학과 풍자는 오늘 그들 사회에서 얼마나 혐오스럽게 횡행하는지 짐작케 한다. 반세기에 걸친 우리한국사회의 본격적인 서구화와 자본주의화, 민주주의를 위한 고통스런 학습과 체화의 시기가 오늘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중텐의 이 저술의 의미는 다분히 그네들을 향한 자성과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탁월한 계몽서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모습을 보고, 여전히 구태를 밟고 있는 변화 없이 고집스럽도록 어리석은 우리자신들을 목격 할 수 있다.

저자가 말미에 이 저술을 한담의 격(대중적 문체로의 접근)으로 집필한 의도를 밝히고 있다. 그래서 많은 독자들에게 가까이하고, 많은 이야기와 지혜와 지식을 제공하려한 노력이 전체에 묻어난다. 밑줄 그어놓은 문장들과 아름다운 시구(詩句), 역사의 일화, 『홍루몽』을 마치 다 읽어 본 듯 할 정도의 다양한 참고문헌 등은 두고 두고 들춰 볼 만큼 유익한 언어들로 무성하다. 이중텐은 그야말로 멋진 수다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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