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골목에 겨울 어둠이 내리면 골목의 집에서 새어 나오는 노란 불빛이 달의 뒤편 같은 그림을 만들어내고 호들갑스럽지 않은 영혼들이 모여들어 고요한 축제를 펼친다.

작은 영혼들은 덜 지기 위한 것, 덜 불행한 것, 흔들림 없이 굳건한 진실보다 흔들흔들거리는 가능성을 믿는다.

차가운 겨울 골목의 겨울 어둠 속에서 영혼들은 전부이기보다 일부로서 만족하는 법을 배운다.

고요한 정적 속에 시계 초침이 짹짹짹짹 움직이는 소리는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준다.


세상에는 이런 사소한 것들에게서 때때로 인간은 위로를 받는다.

반복되고 일정한 간격의 짹짹짹짹 움직이는 소리는 묘하지만 뭐랄까, 어떤 무엇인가를 간절하게 피하려고 할 때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처럼 정적 속에 듣는 시계 초침 소리는 강렬하게 원했을 때 도망갔던 그 무엇이 곧 다가온다는 믿음을 주기도 한다

시계 초침의 소리가 말라버린 웅덩이처럼 느껴지면 딸각 불을 끄고 이불을 코밑까지 덮고 잠을 청한다.


명순응처럼 눈을 감아도 시계 초침의 짹짹짹짹 움직이는 소리가 부재의 형태처럼 귓가에 맴돈다.


그런 미묘한 느낌이 좋다. 겨울의 골목의 겨울의 밤에서야 느낄 수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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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4-12-20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마주하기 쉽지 않은 골목 풍경이네요.
 

응팔마니아들 이 장면 기억나지? ㅋ


세상 쓸데없는 정봉이가 심장 때문에 수술을 하고 난 후 몸을 회복하면서 힘이 드는 가운데 정팔이가 병실에 오니 정봉이가 다 죽어가는 소리로 정팔이에게, 너 코피 나는 건 괜찮냐고 묻는다.

이 장면은 기억에 참 많이 남는다. 세상 쓸데없던 정봉이가, 세상 쓸모 있는 사람의 모습이란 정봉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명이 덕선이다. 참 쓸데없이 놀기 좋아하고, 외모 꾸미기만 좋아한다. 덕선이는 공부 못하고 말썽꾸러기에 놀기 좋아하는 아이로 어른들이 썩 좋아하지 않는다.

덕선이 옆에는 까칠한 반장이 앉아 있는데 항상 인상을 쓰고 있고 시끄럽게 하면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친다. 반장은 친구도 없다. 늘 혼자서 밥 먹는 반장에게 같이 먹자고 한다.

반장은 그런 덕선이에게 조금은 마음을 연다. 소시지 반찬을 싸 온 반장. 덕선이는 덥석 집어 먹는다. 그렇게 반장과 같이 앉아 점심을 먹은 지 여러 날이 흘렀다.

어느 날 반장의 엄마가 학교로 찾아와 덕선이를 찾았다. 학교 벤치에 앉아서 반장엄마의 말을 듣는 낯빛 어두운 덕선이. 그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친구들.

그날 덕선이가 교실에 오니 반장이 간질병이 도저 바닥에 쓰러져 있고 아이들이 빙 둘러싸 바라보고만 있다. 반장은 입에서 거품을 물고 몸을 떨고 있다. 덕선이는 아이들에게 쳐다보지 말라며 반장의 몸을 주무른다.

양호실에서 깨어난 반장. 양호선생님이 괜찮냐고 묻는데 반장은 자신의 그런 병이 아이들이에게 발각된 게 창피했다. 그만 눈물이 나왔다. 이제 학교를 다니지 못할 것 같았다.

착잡한 마음에 반장이 교실로 들어오니 덕선이가 점심시간이니 밥을 먹자고 한다. 아이들이 나의 병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대한다. 하지만 그건 겉으로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위해서다. 반장은 그런 생각을 한다.

멤버가 전부 도시락을 펼쳤는데 덕선이가 수저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 덕선이는 친구들에게 하나 빌려 달라고 한다. 모두가 포크숟가락이다.

그때 반장이 수저통을 열었는데 젓가락과 숟가락이 있다. 하지만 내가 먹던 숟가락으로 누군가 먹는다면 내 병이 옮긴다고 생각할 텐데,라고 하는 순간 덕선이가 아싸,라며 반장의 숟가락을 뺏어서 입으로 죽 빨아 버린다.

그때만큼은 덕선이는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친구의 숟가락을 하나 빌려서 밥을 먹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반장의 눈에 비친 덕선이는 나를 병이 있는 아이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미옥이와 자현이처럼 그냥 똑같은 친구로 생각해주고 있다.

계엄군과 대치하던 영상이 쏙쏙 올라오고 있다. 그때 중년의 어머니들이 계엄군과 대치하며 우리 아들이 군에 있다며 이러지 말라고 소리치며 손찌검을 하기도 하는데 계엄군은 그냥 맞고 있다.

유리창을 깨고 국회 안으로 들어갔을 때 어떤 계엄군은 그 와중에 키우고 있던 난초화분이 깨질까 봐 치워주기도 했다.

쓸모없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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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에서 하기에 또 봤다. 여기 인스타그램에도 세 번 정도 사랑과 영혼에 대해서 썼을 것 같다. 두 번인가? 암튼 겨울에는 또 고스트지 ㅋ

사랑과 영혼은 진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당황스럽기까지 하고 황당하다. 이상한 사랑 이야기다. 그냥 이상한 게 아니라 너무 이상하고 그저 이상하기만 사랑 이야기다.

근데 사랑이 그렇다. 사랑을 할 때에는 답답하고 미칠 것 같다가 평온하고 열채고 빡치다가 죽을 것처럼 보고 싶고 설명 할 수 없이 황당한 게 사랑이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고 뚜렷한 답을 알고 있는 사람도 없다. 학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고 부모도 잘 모른다. 비난을 각오하고서라도, 사회에서 매장이 될지언정 사랑은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버린다.

사랑에 빠지면 사랑 그 이외의 것은 모래성처럼 무너트려 버린다.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지지를 했던 사람들의 외면을 받아도 사랑은 두 사람을 자석처럼 붙어 버리게 한다.

불같은 사랑이 그렇다. 당황스럽고 이상하고 미쳤고 말도 안 되는 것이 그런 사랑이다. 사랑 그 하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이 식고 나면 사랑이란 너무나 볼품없는, 눈 내린 후 도로에 쌓인 검은 눈뭉치같아져 버린다.

좋아 죽을 것 같은 부분이 사랑이 식자마자 미워 죽겠는 부분이 된다. 사랑이란 그렇다. 한 마디로 사랑은 유치하다.

그래서 사랑과 영혼은 유치하다. 그렇기에 시간이 지나도 보면 재미있다. 몰리는 영화에서 크게 두 번 눈물을 흘린다. 동전이 공중부유하며 손에 쥐어질 때 샘의 존재를 알고 눈물을 흘리고, 마지막 샘과 헤어질 때 눈물을 흘린다.

몰리는 사랑하는 샘에게 진정 사랑받았다는 그 느낌, 그 사실 하나만으로 샘이 없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잘 살아가리라.

몰리는 예쁘고 사랑스럽다. 데미 무어가 이렇게 예쁘게 나온 영화는 또 없을 것이다. 몰리가 샘과 헤어질 때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그때 두 사람의 마지막 대사가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된다.

샘: 사랑해 몰리, 언제나 사랑했어.

몰리: 동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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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의 바다가 해무로 가득차면 무진기행이 떠오른다. 무진기행은 아름다운 문체의 시와 시가 이어진 문장의 행렬이다.

 

현재의 아내는 과거의 엄마

현재의 인숙은 과거의 자신

현재의 무진과 과거의 무진

동경하던 서울과 벗어나고픈 서울

책임의 서울과 무책임의 무진

치욕스럽던 과거와 치욕마저 잊고 지낸 현재

쓸쓸함을 말할 수 있었던 과거와 부끄러움만 지낸 현재

현재 아내의 남편 자리에 들어가는 윤

개 두 마리의 교미는 사이렌 소리 속에 창부와 교미를 하는 상상하는 자신이 결국 인숙과 몸을 섞는 관계로 이어지고 현재의 윤은 과거의 자신과 몸을 섞음으로 그 치욕을 치욕으로 덮으려 한다.


과거의 윤에게 쓸쓸함이란 시간의 지루함, 느끼는 허전함, 안타까움 이런 것들이 다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는 생활을 쓸쓸하다,라고 느낄 수 있었다. 윤에게 사랑은 쓸쓸함과도 같다. 사랑을 하게 되면 쓸쓸해진다. 너무 흔한 말이라 할 수 없는 말 사랑, 하지만 간단히 말해버리고 마는 윤.


어머니의 묘를 찾은 윤은 비를 흠뻑 맞는다. 비가 나를 효자로 만들어 주었다. 자기 멸시가 가득한 문장이다. 바지까지 걷어 올리며 묘를 정리하고 있지만 자기 멸시에서 오는 부정. 비가 쏟아져 나는 울고 있음을 대신 떠넘긴다.


죽은 이 여자가 나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아프긴 하지만 아끼지 않으면 안 될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체를 보며 정욕을 느낀 자신이 치욕스럽고 경멸스럽다.


인숙과 맞잡은 손. 우리가 잡고 있는 손바닥과 손바닥의 틈으로 희미한 바람이 새어 나가고 있었다. 바람은 두 사람의 사랑, 쓸쓸함, 부끄러움, 연민, 자기애 또는 자기모멸이었으리라. 두 사람은 바쁘게 서투를 것이고 상처가 났어도 아프지 않고 상처가 없는데 아플 것이다.


무진은 멀리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에 안으로 들어와서 봐야만 보이는 세계. 그곳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동시에 교접하는 무서운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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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보위처럼 되고 싶은 적이 있었지ㅋ

 

하지만 지구에 불시착해서 잠시 인간이 되어 살다 간 데이빗 보위처럼 되는 건 나 따위가 생각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진작업을 할 때 주위에서 한 소리 꽤나 들었다. 돌아이새끼.


오늘은 조깅을 하면서 스페이스 오디티를 들었다. 오늘 밤 7.5도. 포근하다. 마지막 조깅 코스에 오르막길이라 땀이 뻘뻘 났다.


그때 자기네 별로 돌아간 데이빗 보위가 먼저 가 있던 프레디 머큐리를 만나는 모습을 보았다.


이봐 프레디, 그동안 잘 지냈나.라고 보위가 말했다.

 

그렇다네 데이빗, 자넨 잠시 있겠다고 하더니 그렇게도 오래 있다가 왔군. 그곳 생활이 마음에 들었나 보네, 인간의 모습으로 잘 지내는 것 같았어.라고 프레디가 말했다.


프레디, 인간들은 꽤 재미있게 지내고 있어, 금방 변질될 결혼생활에 책임감이라는 방부제를 뿌려 쉽게 변색되지 않게 하기도 해, 하지만 인간들은 말이야 사랑이라는 묘한 감정으로 서로에게 어떤 힘 같은 것을 불어넣어주더군, 그 힘이라는 게 위로 같은 거야.라고 보위가 말했다.


데이빗, 인간들이란 바보스럽긴 해도 사랑스러운 생명체라네.라고 프레디가 말했다.


그들은 내가 만든 노래를 좋아해 주었어, 프레디 자네의 노래처럼 말이야, 내가 지구인이 아니란 걸 모르는 것 같았어.라고 말하며 보위가 웃었다.


데이빗, 아마도 그들 모두는 알고 있었을 거야, 그들은 자네가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받아들인 거지, 저길 보라구 ‘당신을 통해 우리는 고양되는 존재’ 자네가 지구인이 아니지만 저들은 아직도 자네를 지구인과 똑같이 추모를 하고 있어.라고 프레디가 말했다.



David Bowie - Space Oddity https://youtu.be/L-7EROynApU?si=jeSgiq85aba4JX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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