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빵집에서 인기가 좋은 소라빵을 운 좋게 건졌다. 소라빵을 먹으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소라빵은 추억의 맛이다. 그래서 맛있다. 한 입 먹는 순간 오래전 공백 속으로 잠시 들어간다. 그 공백에는 질감이 있다. 느껴지는 질감 속에서 일종의 부유감을 느낀다. 나는 이내 작은 부표가 되어 공백 속을 유동한다. 이리저리 부유하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소라빵은 우리 동네가 아니라 내가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의 빵집에서 구입했다. 빵집이 한 40년은 됐다. 오래된 빵집이 있는 건물은 건물로서 기능은 잃어버리고 [실패]라는 낙인 하에 비참해 보였다. 그러나 빵집만은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듯 할머니, 할아버지 주인이 열심히 빵을 굽고 있었다.


주위는 온통 발전했지만 빵집 건물과의 부조화가 눈에 띌 정도는 아니다. 빵집으로 들어가면 아주 작은 공간이 나온다. 빵집 정문, 천장과 벽면 사이에 티브이가 이질감 돋게 설치되어 있고 소리는 죽어있다. 기분 좋은 침묵이 빵에 가득 스며있다. 저녁에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오래전 살던 동네의 빵집에 들러 운이 좋으면 소라빵을 구입할 수 있다. 빵집의 총면적이 2평 정도다. 저녁이면 선반 위는 거의 비어 있고 인기가 떨어진 빵들이 남아서 주인을 애타게 기다릴 뿐이다.


늦은 저녁까지 주인을 기다리는 빵들은 애처로워 보인다. 멋지게 태어났지만 남은 빵들은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세상 빛을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갈지도 모른다.


빵집에 들어가면 제빵실에서 늘 비슷한 톤과 늘 비슷한 옷차림과 늘 비슷한 표정의 할머니 주인이 나와서 반겨준다. 오늘도 운동 중이신가? 이렇게나 더운 날에도 대단하시네, 같은 인사를 건넨다. 다리는 계절과 나이에 관계없이 열심히 움직여줘야 해,라며 가끔 철학적인 말도 하신다.


주인 할머니는 언제나 비슷한 모습이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러한 모습을 부여받은 것처럼. 안경을 썼고 느릿하지만 목소리 그 어디에도 누군가를 향한 원망이나 요만큼의 증오도 묻어있지 않다. 인간은 참 사소한 것에서 큰 무엇인가를 얻거나 느낀다는데 그런가?



Summer Fiction https://youtu.be/dIVuNaw1HFM?si=bqni592sAOoHeT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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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필모 중에서 가장 한 소리를 여러 곳에서 듣는 영화다. 거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거에 매몰된 징징거림이 많다고 하는 이도 있고, 평론가들은 이 영화는 피해자를 가장한 가해자의 코스프레 같은 영화라 일컫는다.

이 영화는 원폭피해를 다루고 있다. 그 사건을 겪지 못한 손자손녀들이 할머니의 집에서 그 사건을 직접 겪은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듣고 원폭이 떨어진 곳들을 다니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1990년 여름, 원폭이 떨어진 나가사키에 사는 할머니 댁에 여름방학을 맞이해 손주들이 놀러 온다. 할머니는 손주들이 와서 마냥 기쁘다. 음식도 해주는데 손주들 입에는 맞지 않다.

그리고 손주들이 하와이에 사는 친척이 미국 여자와 결혼하여 낳은 클락(리처드 기어)이 찾아올 것이라는 편지를 받는다. 할머니의 기억 속 원폭의 모습은 마치 섬광 속의 눈동자처럼 보였다.

그려면서 손주들에게 45년 8월 9일의 악몽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원폭이 떨어진 8월 9일 클라크가 할머니를 찾아온다. 클라크를 호텔로 데리고 가려는 어른들에게 클라크는 고모부가(원폭피해로 죽은 할머니의 남편) 돌아가신 곳에 먼저 가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인으로 할머니에게 머리 숙여 사과를 한다. 삼광이 터졌던 그 산과 산 사이의 달을 배경으로 두고 사과가 이루어진다. 할머니는 그 사과를 받아들인다. 손주들은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45년 그때처럼 거대한 폭풍이 몰려오자 할머니는 그 당시의 원폭이 떨어질 때로 되돌아간다. 나가사키에서 도망치듯 푸르른 비바람을 뚫고 달린다.

이 영화는 구로사와 감독이 힘이 달리는 가운데 만들어서 인지 다른 작품에 비해 좋은 평은 없다. 그러나 주인공 할머니의 대사에서 처럼 전쟁은 일본사람도, 미국사람도 전부 죽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을 일으킨 자들은 전쟁의 피해 뒤에 숨어서 아무렇지 않고 피해를 당하는 사람은 그저 일반 시민, 국민뿐이다.

지금 전쟁 중인 나라들을 보라. 네타냐후 같은 지도자는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다. 만약 윤석열의 바람대로 북한과 전쟁이 터졌을 때 피해를 보고 길거리로 나가게 되는 건 그저 일반 국민일 뿐이다.

원폭은 일본이라는 나라에는 굉장한 악몽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일본인, 그 후의 세대에게는(손주들) 지나간 일, 역사의 한 페이지 정도일 뿐이다. 내 가족이 죽어 없어져도 인간은 일 년 뒤 오늘은 잘 지내고 있다.

할머니의 무의식에는 원폭 섬광의 악몽이 너무나 커 폭풍 속에서 이성을 잃어버리고 완전한 기억 속의 자아가 되어 무서운 향수에 젖어 들어간다.

이 영화에 돌입할 때에는 이미 구로사와 시스템을 갖추었던 스텝들이 다 떠난 상태였다. 홀로 남겨진 거장의 안타까운 몸부림 속 고독이 돋보이는 영화다.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은 평화를 위해 언제나 전쟁을 해야 한다고 한다. 개소리라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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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매일 조깅을 한지도 십 년은 넘은 것 같다. 2018년도인가? 그 해에는 이틀을 제외하고 밖으로 나가서 열심히 달렸더라.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나가고, 엄청난 추위의 겨울날에는 몇 겹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그동안 내가 달리는 걸 보고 살을 빼고자 몇 명이 붙어서 달렸다가 다 포기하고 나갔다.

대체로 이유는 하나로 모아지는데 몇 달 달리는 것으로 20년 이상 방치한 몸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해서다. 일 년 정도는 아무 생각 없이 꾸준하게 달리고 그 뒤에는 조금 생각을 하며 달려야 한다. 생각을 좀 하다 보면 나에게 맞는 코스나 운동화나 시간 같은 것들이 측정이 된다.

내가 매일 조깅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매일 밥을 먹고 매일 잠을 자는데 달리는 것도 매일 할 수 있다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조깅을 하면서 휴대폰은 두 대를 주웠고, 돈도 삼만 원을 주웠다. 돈은 현금이라 그냥 내가 써 버렸다. 과자도 뜯지 않은 채 여러 봉 주운 적도 있고, 지갑도 주웠다. 지갑과 휴대폰은 경찰서에 갖다 줬는데 그럴 때마다 뭔가를 작성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날은 요즘 같은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운 날이다. 이런 날 달리는 걸 좋아한다.

데드포인트까지 도달할 수 있다. 평소에 어떤 한계나 극한을 경험하니까 좋다. 마지막 코스에는 오르막길을 넣어서 다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오는데, 그 고통이 기분이 좋다.

요즘 같은 날은 아무튼 조심해야 한다. 지난번에도 한 번 썼는데, 코로나 시기에 폭염으로 인해 재난문자가 오는 날이었다. 해가 있는 시간에는 야외 활동을 삼가라고 하는 날이라 조깅을 하러 나갔다.

잘 달리고 있는데 내 앞에서 한 사십 대 남성이 픽 쓰러졌다. 하필 내 앞에서. 내 뒤에서 쓰러졌다면 그냥 갔을 텐데 내 앞에서 쓰러지는 바람에 당황했다.

온열질환으로 탈수증 같았다. 그늘로 옮긴 다음에 응급처치 그거 대충 하고 119를 불렀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급박하게 돌아갔다. 그러는 동안 주위에 구경꾼들이 잔뜩 모여들었다. 나는 가보라고 했지만 구경꾼들은 어떡해,라며 조금씩 조금씩 모여들었다.

쓰러진 곳과 119가 오는 도로가 좀 떨어져 있어서 그곳까지 가서 또 119 대원들을 데리고 왔다. 코로나 시기라 소방복 위에 감염복인가? 그것까지 입고. 보는 것만으로도 덥다 더워. 아무튼 더운 날에는 나이와 관계없이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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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4회가 공개되었다. 일단 재미있다. 한국버전보다 더 재미있는 것 같다. 분명 일드인데 일드같지 않은 이 느낌적인 느낌은 한국 원작에 제작진이 전부 CJ 엔터테인, 안길호 감독의 작품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이 시리즈는 한국 시리즈를 리메이크한 드라마가 아니라 원작 소설을 일본에 맞게 각색해서 만들었다.

그동안 철석같이 믿고 있던 나의 절친이 내가 암에 걸려 곧 죽을 날만 기다리는데 나의 남편과 바람이 났다. 모처럼 병원에서 외출 허가를 받고 집으로오니 둘이 같이 침대에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충격에 빠진 것도 잠시 사랑으로만 대했던 남편은 생명보험에 눈 독이 들어있고 절친은 고등학교 때부터 내가 싫어서 나의 옆에 붙어서 나의 행복을 기생충처럼 빨아 먹고 있었다. 그리고 남편과 절친에게 살해당한다.

그리고 눈을 떠 보니 10년 전.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었지만 인생2회차라 생각하고 행복을 위해 달려간다. 하지만 과거를 아무리 바꾸려 해도 일어나는 일은 자꾸 일어나고.

그러나 인생 1회차에서는 만날 수 없던 세상 멋진 부쵸가 나타나면서 나에게 닥칠 일들을 용기있게 덤비면 그 일이 다른 곳에서 일어난다는 걸 안다.

절친이라 믿었던 레이코는 회사생활 내내 미사를 속이고 이간질하고 미워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 2회차에서는 그런 일들을 피해간다. 그리고 학교 동창회 날. 1회차에서는 레이나가 몰래 미사를 동창회에 데리고 나가 망신을 주고 다시 따돌림을 받게 하지만 2회차에서는 여봐란 듯이 멋지게 꾸미고 동창회 자리에서 보란듯이 한 소리를 한다.

이렇게 변할 수 있었던 건 멋진 부쵸덕분이다. 그래서 2회차에서는 1회차에서 자신에게 닥쳐올 위기를 피해갈거라고 생각했지만 레이나가 느닷없이 남친을 차버리고 의도적으로 부쵸에게 다가간다. 그렇게 2회가 끝난다. 4회차까지 공개되어 있다.

레이나로 세상 나쁜 냔으로 나오는 시라이시 세이가 한 편 출연한 영화 [가슴이 떨리는 건 너 때문]에서 명랑하고 호리호리하고 얌전한 만화에서 튀어나온 츠카사를 연기할때만 해도 이게 연기가 발전이 있을까 했는데 이 시리즈에서 악역이 딱 이다.

멋진 부쵸로 나오는 사토 타케루를 보는 재미도 있고 주인공 코시바 후우카는 박민영과 다른 결이라 보는 재미가 있다. 일본판 배우들은 이미 일주일 전에 한국에서 홍보를 하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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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지 말았어야 할 영화가 여기 또 있었다. 이게 이렇게 재미가 없는 것도 미스터리라면 미스터리다. 1편의 이 쌈박한 설정으로 부족한 부분을 잘 다듬어서 5년 만에 나왔기에 재미가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 재미가 없다.

올드 가드는 액션 영화이기에 액션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액션이 참 별로네. 총질 액션은 천조국 답게 팡팡 쏘고 괜찮은데 근거리 결투 액션은 영화과 대학생들의 졸작인가 할 정도다. 광장의 소간지 액션은 정말 대단했구만 하는 생각만 든다.

이 영화가 재미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놈의 피시주의가 너무 시도 때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남발에 남발이다.

말레이시아 배우, 베트남 배우가 나와서 그냥 아시아를 다 넣어 줄게 하며 영화 속 투아가 거주하는 곳은 뜬금없이 한국이다. 한국의 거리가 나오는데 뭐야? 이게? 아직도 이런 식으로? 그래서 한국 거리를 지나 말레이 배우 헨리 골딩이 연기하는 투아의 집으로 가니 집은 또 일본 풍이다. 개판이다.

흑인도 피시주의에 빠지면 안 되기에 검거나 좀 더 검은 흑인 배우들이 나와서 처절하고 힘겨운 액션을 펼친다. 올드 가드하면 무엇보다 재생능력으로 불멸을 가지는 것이다.

1편에서 그 능력이 사라진 앤디가 2편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그게 관건인데 보는 사람 무안할 정도로 재생능력이 이런 식으로 돌아온다고?

최초의 불멸자 우마 서먼이 등장해서 예전의 킬빌의 영광을 보여주느냐 했지만 모두가 시간이 많이 흘렀고, 액션이라는 건 아무리 자본이 많은 미국이라도 나이가 많은 배우들에게는 쉽지가 않다.

이 영화는 괜히 나와서 샤를리즈 테론과 우마 서먼의 액션신으로 많은 아쉬움만 남게 되었다. 메인과 꾸인의 대화를 들어보면 별거 아닌 내용의 이야긴데 심각하게 대사를 주고받는 게 망했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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