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필모 중에서 가장 한 소리를 여러 곳에서 듣는 영화다. 거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거에 매몰된 징징거림이 많다고 하는 이도 있고, 평론가들은 이 영화는 피해자를 가장한 가해자의 코스프레 같은 영화라 일컫는다.
이 영화는 원폭피해를 다루고 있다. 그 사건을 겪지 못한 손자손녀들이 할머니의 집에서 그 사건을 직접 겪은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듣고 원폭이 떨어진 곳들을 다니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1990년 여름, 원폭이 떨어진 나가사키에 사는 할머니 댁에 여름방학을 맞이해 손주들이 놀러 온다. 할머니는 손주들이 와서 마냥 기쁘다. 음식도 해주는데 손주들 입에는 맞지 않다.
그리고 손주들이 하와이에 사는 친척이 미국 여자와 결혼하여 낳은 클락(리처드 기어)이 찾아올 것이라는 편지를 받는다. 할머니의 기억 속 원폭의 모습은 마치 섬광 속의 눈동자처럼 보였다.
그려면서 손주들에게 45년 8월 9일의 악몽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원폭이 떨어진 8월 9일 클라크가 할머니를 찾아온다. 클라크를 호텔로 데리고 가려는 어른들에게 클라크는 고모부가(원폭피해로 죽은 할머니의 남편) 돌아가신 곳에 먼저 가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인으로 할머니에게 머리 숙여 사과를 한다. 삼광이 터졌던 그 산과 산 사이의 달을 배경으로 두고 사과가 이루어진다. 할머니는 그 사과를 받아들인다. 손주들은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45년 그때처럼 거대한 폭풍이 몰려오자 할머니는 그 당시의 원폭이 떨어질 때로 되돌아간다. 나가사키에서 도망치듯 푸르른 비바람을 뚫고 달린다.
이 영화는 구로사와 감독이 힘이 달리는 가운데 만들어서 인지 다른 작품에 비해 좋은 평은 없다. 그러나 주인공 할머니의 대사에서 처럼 전쟁은 일본사람도, 미국사람도 전부 죽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을 일으킨 자들은 전쟁의 피해 뒤에 숨어서 아무렇지 않고 피해를 당하는 사람은 그저 일반 시민, 국민뿐이다.
지금 전쟁 중인 나라들을 보라. 네타냐후 같은 지도자는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다. 만약 윤석열의 바람대로 북한과 전쟁이 터졌을 때 피해를 보고 길거리로 나가게 되는 건 그저 일반 국민일 뿐이다.
원폭은 일본이라는 나라에는 굉장한 악몽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일본인, 그 후의 세대에게는(손주들) 지나간 일, 역사의 한 페이지 정도일 뿐이다. 내 가족이 죽어 없어져도 인간은 일 년 뒤 오늘은 잘 지내고 있다.
할머니의 무의식에는 원폭 섬광의 악몽이 너무나 커 폭풍 속에서 이성을 잃어버리고 완전한 기억 속의 자아가 되어 무서운 향수에 젖어 들어간다.
이 영화에 돌입할 때에는 이미 구로사와 시스템을 갖추었던 스텝들이 다 떠난 상태였다. 홀로 남겨진 거장의 안타까운 몸부림 속 고독이 돋보이는 영화다.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은 평화를 위해 언제나 전쟁을 해야 한다고 한다. 개소리라는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