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종로 바닥은 그야말로 야생의 세계다. 온갖 쓰레기와 구토물과 만취한 사람들의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와 각종 네온사인의 혼재가 가득한 곳이 2000년대 초 서울의 밤거리다. 그 하룻밤에 일어나는 일을 그리고 있는 이야기다.

아주 재미있다. 오래전에 한 번 보고 다시 보는데 더 재미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짧은 밤이지만 새벽은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수많은 인간 군상이 드러나는 시간이다.

스무 살에 애를 낳고 모든 것이 서툰 금순이는 아기 때문에 밤새 잠을 설쳐 남편의 첫 출근에 일어나지 못하고, 와이셔츠를 다리다가 다리미 자국도 내고 엉망진창으로 남편을 보낸다. 일편단심 남편 바라기에, 일편단심 금순이 바라기인 남편은 첫 출근을 해서도 금순이에게 전화를 해서 노래 불러주고 금순이 이야기 다 들어준다.

새벽 5시에 시부모님이 촌에서 온다는 말에 고등어조림을 하려고 우당탕하는 금순이는 그럴수록 집 안이 개판이 된다.

그러던 중 남편은 퇴근 후에 회식을 하느라 꽐라기 되고. 그러다가 자정이 넘고 금순이는 술집에 뻗어있다는 남편을 찾으러 나가지만 그만 잘 못된 일에 휘말려들어 조직폭력배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면서 일이 점점 커진다.

쫓기다가 보니 꼴은 거지꼴이 되고, 금순이 눈에 몹쓸 인간의 모습까지 둘어온다. 미성년자를 모텔에 데리고 들어가려는 남자를 보다 못해 금순이는 배구 선수 출신답게 공을 던져 남자를 잡다가 일이 또 꼬이고.

전부 폭력적으로 금순이를 잡으려는데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아기 기저귀 가는 걸 도와주고, 포장마차 부부는 금순이에게 국수를 내주고, 도망 다니다 보니 아가가 없어졌다. 놀란 금순이 아기를 찾아 헤매고, 그런데 잃어버린 아기는 노숙자들이 돌봐주고 있었고, 신발 한 쪽을 잃어버린 금순이에게 신발까지 내어 준다.

한강 작가의 말을 듣고 나서 인지 이 영화에도 짧은 밤이지만 한쪽에서는 폭력이, 한쪽에서는 인간의 아름다움이 동시에 펼쳐지고 있었다. 천상병 시인이 정부에 끌려가 손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고문을 받고 행려병자처럼 버려졌지만 귀천에서 세상은 아름다웠노라고 했다.

감옥에서 고문을 받고 반 시체가 되어 감옥에 들어오면 눈물을 흘리며 빵을 주던 경찰이 있었고 버려졌을 때 거둬들여 이불을 덮어줬던 노숙자들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봤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폭력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참으로 이상한 세계.

그런 모습을 블랙코미디로 아주 잘 그린 영화가 굳세어라 금순아다. 밤새 도망 다니며 인간 군상의 일에 이리저리 얽히는데 하나의 일이 또 다른 일을 만들고 그 일이 확대되면서 점점 부풀어 오른다. 그러면서도 고등어를 사는 걸 잊지 않는 금순이.

영화를 보면 호화 캐스팅이며 곳곳에 위트와 유머가 있다. 소설로 나온다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 밤은 짧지만 일탈은 낮에 비해 몇 배, 몇십 배 일어나는 세계 ‘굳세어라 금순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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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죽어야 사는 여자가 코믹 버전으로 젊음을 되찾는 묘약의 대환장 파티라면, 이 영화는 스릴러 버전의 묘약 대환장 파티다. 포스터에 개 미친 영화라는데 미친 영화다.

거의 호러에 가깝다. 늙은 데미가 깨알 딱 벗고 있다가 묘약으로 젊음을 되찾는 장면이 에이리언 로몰루스에서 제노모프가 배를 가르고 튀어나오는 것만큼, 아니 그것보다 더 징그럽고 무섭다.

굵은 바늘로 골수 같은 걸 채취하는 장면이나, 살이 갈라지고 그 몸 안의 모습이 드러나면서 그 속에서 젊은 데미가 튀어나오는 모습이나, 눈동자의 변형이나 호러다 호러.

초반에 거의 20여분을 들여 너무 적나라하게 여성의 몸을 보여준다. 지금의 데미의 깨알 딱 벗는 몸도, 젊음의 데미- 즉 완전 다른 모습의 수가 깨알 딱 벗은 몸도 오랫동안 보여준다.

얼마 전에 브레드 피트가 그 멋진 복근을 유지하기 위해 배에 성형을 했다는 기사가 떴다. 물론 외국발 기사지만. 또 톰 크루즈 역시 자주 변하는 얼굴 때문에 이런저런 가십이 많이 떴다. 가장 최근에는 21년도에 비해서 너무나 젊어진 얼굴이 뉴스를 장식했다.

젊어지고 싶어 하는 건 나이가 들어가는 인간이면 누구나 그렇지만 아무래도 할리우드 배우들이 최고인 것 같다. 그들의 정말 피나는 노력은 항상 기사를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데미 무어 역시 몇 억을 들여서 성형을 어쩌고 하는 기사가 잊을 만하면 떴다. 이상하지만, 지금의 성형 기술은 거의 22세기를 달리고 있는데 데미의 현재 얼굴의 모습은 성형을 많이 한 할리우드의 나이 든 여성배우들의 얼굴과 비슷하다. 참 이상한 일이다.

보통 안티에이징하면 꾸준한 운동과 소식의 식습관 그리고 여러 가지 성형과 시술을 도움으로 늙어가는 모습을 최대한 미루고 있는데 영화에서처럼(90년대 참 재미있었던 죽어야 사는 여자를 비롯해서) 묘약 하나로 젊음을 되찾는 다면 돈 있는 사람들은 마구 달려들 것이다.

이 영화에서 데미는 주로 깨알 딱 벗은 채로 등장한다. 그러다 데미, 즉 엘리자베스가 활동할 때에는 수가 깨알 딱 벗은 채로 쓰러져 있는다. 묘약으로 젊어지는데 대신 규칙이 있다. 7일은 엘리자베스(데미)로, 또 7일은 수로 완벽한 균형을 맞춰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알지?

왜냐하면 한 사람이 젊어지는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한 인격이 데미의 몸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기분 나쁜 녹색의 묘약으로 두 사람으로 갈라져 따로 생활하는 데미. 너무나 예쁜 수의 모습으로 나타나면 남자들은 전부 다 허락하고 오케이다. 예쁘면 다다. 이 더러운 세상은 예쁘면 다야 ㅋㅋ

sns도 예쁘고 잘생기면 남미새와 여미새들의 대놓고 달려드는 대환장피드가 된다. 성공하고 싶으냐 그러면 예뻐라 ㅋㅋ 수의 마가렛 퀄리는 다 알겠지만 얼마 전에 제니에게 머리카락 만지며 이거 금발 맞아? 해서 인종차별의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아무튼 묘약으로 젊음을 얻는 대신 뭔가를 자꾸 해야 한다. 후반부 데미의 연기는 미쳤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인격으로 갈라진 데미와 수는 징그러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런 영화다. 호러에 가깝다. 아니 호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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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엔 텅 빈 공동(空洞)이 아주 크게 나 있다. 네 살 된 딸이 죽으면서 생겨버린 공동은 아내로 인해 채워질 줄 알았지만 아내와 사랑을 나눌 때마다 조금씩 깊어지고 더 커져서 이제는 그 무엇으로도 공동을 채울 수가 없어졌다. 아내는 나를 사랑하지만 나는 아내의 사랑에 대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 아내에게 필요한 건 나의 가슴이 아니라 누군가의 가슴이었고, 나의 품이 아니라 어떤 사람의 품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내가 다른 남자들과 잠을 잔다는 걸 알지만 그걸 아내에게 말할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아내가 나를 떠나가게 될까 봐, 그러면 내 속의 텅 빈 공동이 모든 공간을 차지하고 잡아먹어 어둠만이 내 속을 채우게 될까 봐 두렵다. 그러나 아내는 내가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잠을 잔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걸 애써 꺼내지 않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아내가 그렇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둘 다 상처를 받았지만 제대로 상처를 받는 법을 알지 못했다. 제대로 상처를 받았다면 아물어 흉터가 생기더라도 상처는 치료가 되지만 제대로 받지 않은 상처는 점점 곪고 곯아서 깊어지기만 한다. 어쩔 수 없다. 살아가는 수밖에. 가끔 우리끼리 안아주고 등을 쓰다듬어 주면서 살아가는 수밖에.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내는 길밖에 없다. 운명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야금야금 먹어가며, 없는 맛도 참고 견디며, 평화 따위 없더라도 살아가는 것이다. 제대로 상처를 받는 방법은 아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아내를,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아내를, 거짓 없는 아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이 제대로 내가 상처를 받는 일이다. 그걸 아내가 죽고 난 후에 알게 되었다.


하루키 팬들은 이 영화 정말 좋았지? 팬이 아니라도 이 영화는 정말 좋다고 할 거야. 하마구치 류스케의 모든 영화가 정말 좋잖아. '우연과 상상'을 보고 이 별 거 아닌 이야기에 너무 빠져 버렸지 ㅋㅋ


이 영화는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단편 ‘드라이브 마이카’가 영화가 되었잖아. 만년 소년 같은 얼굴의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가후쿠로 나오고. 이 소설은 이제 운전을 하지 못하게 된 나이 든 가후쿠라는 남자가 여성 운전자 미사키를 전속 드라이버로 소개받으면서 가후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잔잔한 단편 소설이잖아


그런데 영화는 거의 3시간 가까이 되잖아. 다른 단편들의 이야기도 녹아 있어. 이 영화는 원래 부산 로케로 죽 달리면서 영화를 담을 예정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일본에서 촬영을 했고. 드라이브 마이카를 영화로 만든 하마구치 감독이 한국과 인연이 좀 있잖아. 봉 감독의 기생충에 머리를 한 방 맞은 것 같은 영감을 받았고, 자신의 두 번째 영화 ‘심도’가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지원으로 만들어졌지. 또 감독은 ‘아사코’를 만들었고, 또또 우익이라고만 알려졌던 아오이 유우가 전혀 그렇지 않게 나오는 ‘스파이의 아내’의 각본을 썼어


하루키의 소설은 영화가 되기 힘들다고 하는데 하루키의 소설이 다른 그 어느 소설가보다 더 많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 같아. 아무튼 너무 재미있게 몇 번이나 봤었던 드라이브 마이 카  


이 음악 어쩔거여 https://youtu.be/ez-Wkp2gj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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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페이드의 폐급 초인 능력을 보이는 엄마와 쌍 모지리 같은 아빠가 비스트에게 대항하며 생명을 건 아이들 지키기 고군분투기다.

딸냄과 먼 나라에 여행을 간 엄마와 아빠는 사실 겉으로는 행복하지만 엄마는 아빠의 소심함(특히 몸의 대화가 너무 없어서) 때문에 외도를 하고 그 남자의 소중이 사진도 편에 간직하고 있다가 남편에게 들켜 상담사에 남편에게 잘못을 빌고 화해모드로 그냥저냥 지내다가 여행을 오게 되었다.

아빠는 이래도 저래도 설렁설렁하는 그 성격 탓에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이들에게 거절 한 번 하지 못한다. 저래도 오우 이래도 오우 정말 마음이 너무 펴어어어언해도 너무 한 것처럼 보인다. 거절하지 못하는 병 때문에 몹쓸 것들의 집까지 초대되었다고 간다.

이 딸냄은 그 몸의 토끼 인형이 없으면 난리 난리 개난리를 피운다. 애착 인형이라 없어지면 큰일 나는데 소에는 또 들고 다니지 않는다. 잠들 때 껴안고 자야 하는데 없으면 안 된단다. 그러다 몹쓸 것들의 집에서 도망치는데 역시나 딸냄이 토끼 인형이 없다며 운전하는 아빠에게 발길질하고 난리 난리 개난리다. 그리하여 다시 그 집으로 가게 된다.

중반을 넘어 갈수록 으이그 하며 속 터져 죽을 것만 같다. 아내는 술자리에서 남편 소중이 한 달에 한 번 본다고 빈정거리지 남편은 용서한 아내의 외도를 또 걸고넘어지지, 딸냄은 지 때문에 몹쓸 것들의 집으로 간 것도 모르고 헤헤 달걀에 색칠놀이나 하고 있지.

하지만 점점 찝찝하고 이상한 비스트 집 사람들. 그러다가 그 집의 혀가 없는 아들이 딸냄과 같이 있을 때 모든 비밀을 말해준다. 그러면서 이야기가 공포에서 스릴러로 마지막에는 액션이 된다.

길쭉길쭉 맥캔지 엄마는 다크페이드로 흑화 해서 불도 지르고 총도 쏘고 후반부에 길쭉한 팔로 도끼를 들어 빌런의 뚜껑에 사정없이 내리꽂아 버린다. 와우.라고 하지만 어쩌면 영화에서 가장 폐급에 속하는 캐릭터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답답한 남편과 대화를 하면서 점점 남편의 안 좋은 점을 부각시켜서 자신의 잘못이 없는 것처럼 몰아간다. 낯선 이들에게 호의적으로 얼굴에 웃음을 보이지만 실은 자신보다 의식 수준이나 생활 수준이 낮다고 생각이 되면 돌아서서 한없이 까내린다. 꼰대와 비슷하다. 대답을 정해 놓고 질문을 하고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상대방을 비난한다. 채식주의자라고 하지만 생선을 먹는 것에 대해서 한없이 관대한 아주 이상한 캐릭터가 엄마다.

가장 고구마였던 아빠 역시 아이들을 위해서 뭔가를 하지만 역시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하는 아빠의 모습은 그야말로 답답함 그 자체다. 마지막 비스트에 잡힌 딸냄의 동물마취제 활약으로 가족 액션 활극으로 끝난다. 붙잡혀서 혀가 잘린 아들이 돌멩이로 얼굴 박살 내는 장면 없었으면 욕할 뻔. 블룸 하우스 제작에 리메이크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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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도 없고, 그래픽도 뭐 그렇게 막 정교하지도 않고 내용도 크게 없는데 보다 보니 울컥하네. 별거 없는데, 고양이 한 마리의 움직임으로 모든 생각과 의미가 드러나는 게 신기할 정도다.

플로우는 저거지? 뜻은 흐르는 것지만, 저거 뭐더라 바다에 노랗게 떠 있는 그거. 해수욕장에서 바다에 그 이상 나가지 말라고 띄워 놓은 노란 그거. 아님 말고.

세상에 대 홍수가 나서 작은 배에 고양이와 함께 여러 동물이 타서 그냥 끝없이 항해를 하는 이야기다. 고양이는 물을 싫어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고양이는 물속에 들어가야 하고 받아들인 다음 물속에서 물고기도 직접 잡아 온다.

의인화가 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배의 돛을 조종한다던가, 밧줄로 카피바라를 구하려 한하는 모습은 의인화가 되었다. 수줍은 물수제비 같은 고양이에 비해 마냥 어린이 같은 댕댕이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는 것은 재미있다.

위태로운 조각배 위에는 고양이를 위해 무리에서 싸우면서 맞서던 새, 댕댕이, 안경원숭이, 카피바라 이렇게 생판 보고 듣도 못하던 동물들이 모여서 항해를 하면서 서로에게 적응을 하는 모습이 이상하게 마음을 건드리네.

고양이는 온 세상이 홍수로 물바다가 되어서 움직일 수 있는 곳은 고작 조각배 위인데 물속에서 고래가 마음껏 자유롭게 다니고 있는 모습을 본다.

영화는 몹시 신비로운 음악이 고양이가 움직일 때마다 흐른다. 그리고 몹시 신비로운 빛의 향연이 이어진다. 시간이 갈수록 고양이가 너무 기특하게 느껴진다. 하찮은 것에 대해서 동화가 된다.

고양이가 따르던 새가 빛으로 가버리고 난 후 이 세상에 혼자만 남은 듯한 고양이가 저 멀리 가버린 배와 친해진 동물들을 애타게 부르지만 배는 더 멀어진다. 고양이는 플로우에 올라타 배를 향해 가는데, 느닷없이 홍수가 난 것처럼 느닷없이 물이 다 빠지며 아름다운 지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우여곡절 끝에 동물 친구들을 만나는 장면도 아름답고, 마지막 이 아름다운 세계가 펼쳐졌는데 고래가 땅 위에서 숨을 할떡 거리며 죽어가고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 장면은 이렇게 아름다운 곳 자체가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세상은 항상 아름다운 세계인 동시에 폭력의 세계다. 그 속에서 견디며 버티는 고양이가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뭐야!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할 영화, 아이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너무 빠져들 영화 ‘플로우’였다. 뭐 그렇다고 내가 아이의 마음이 있다는 건 아니지만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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