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하루키가 간토 대학살에 대해서 말한 이야기야. 하루키가 간토 대학살에 대해서 말한 거 모르는 팬들 꽤있지? 


하루키는 2020년 12일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종의 위기적 상황에 놓였을 때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처럼 사람들이 이상한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라며 “그런 것을 진정시켜 가는 것이 미디어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사회의 폐쇄성이 짙어지고 자국 중심주의가 확산하는 흐름을 두고 내린 진단이야. 

언급된 사건은 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 지방에서 진도 7.9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후 수습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조선인 관련 유언비어를 조장했던 일이야.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탔다’ ‘조선인이 방화를 저질렀다’ 등의 거짓말이 기정사실화됐고 조선인들의 대량 학살로 이어졌잖아. 

이 같은 언급은 지옥처럼 컴컴한 곳의 빛과 같은 하루키 씨의 말이야. 살아있었던 아베는 이렇게 의식 있는 작가의 말을 왜 듣지 않았을까. 하루키는 인터뷰를 하는 언론을 비롯해서 정부를 향해 일본의 각성에 대해서 한 마디 했지. 

하루키의 소설에는 한국인이 꽤 나와.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도 뮤의 아버지가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일큐팔사에서는 우시카와를 저세상으로 보내는 무시무시한 다마루도 한국인이지. 

하루키는 이렇게 사실을 당당하게 말을 하는데 어째서 우리 정부 인사는 왜 그 모양일까. 나 청문회 보면서 사실 너무 슬펐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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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9-21 1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베가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리가없겠죠? 그렇게 말해주니 다행이긴합니다만 강력한 느낌은 좀 안 들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암튼 그래도 훌륭하긴 하네요.

교관 2024-09-21 14:25   좋아요 2 | URL
이런 댓글을 보면 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ㅋㅋ. 정작 강력하게 말해야 하는 건 우리나라 정부입니다. 그런데 청문회를 보면 알겠지만 독도도 한국땅이라고 말도 못 하는 등신 머저리 같은 정부가 되었어요. 일본작가가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해서 언급한 내용을 강력하게 하지 않았다,라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대단하다고 받아들여야 하는 게 맞겠죠. 하루키는 일본정부나 자신의 입지나 또는 부당한 것에 대해서 언제나 비슷한 톤을 유지하는 인터뷰를 해 왔어요. 그게 강력하게 한 번 쏟아내는 발언보다 지금까지 더 힘이 있었어요.

2024-09-21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4-09-22 1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안하다는 사과 정도는 하실 줄 알았는데...ㅠ
 

기형도 시인 좋아하지? 이 검은 버섯을 먹다 보니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이 생각나더라 ㅋ 기형도의 시집의 제목은 기형도가 지은 게 아니야.


기형도 시인을 좋아하는 스니들은 다 알겠지만 기형도는 자신의 적은 시를 아기처럼 안고 출판사로 가던 도중 제목도 짓지 못한 상태로,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잖아.


기형도 시인의 시집 제목을 지은 사람은 당시 문지에서 활동하는 평론가 김현 선생이 지었어. 김현 평론가의 평론을 듣던 80년대 대학생들은 딱딱할 줄로만 알았던 평론이 문학이 된다는 것을 느꼈지.


요즘은 신형철의 평론이 그렇지? 신형철의 평론을 읽고 있으면 아아 하며 빠져들잖아. 이건 평론이 아니야 문학 그 자체야 하면서 말이지 ㅋㅋ


기형도가 파고다극장인가? 종로의 심야 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사망했을 당시 김현 평론가가 기형도의 가방을 보니 시집을 내기 위한 시들이 있었어. 그때 그 시들을 보고 김현 선생이 [입 속의 검은 잎]이라는 제목을 붙여서 출간을 했지.


잎은 혀를 말하며 그 혀는 이미 검게 되었고 그 입은 죽은 자의 입속을 말하는 거야. 기형도의 시를 읽고 있으면 창밖으로 보이는 비를 보며 적은 시가 아니라 창밖으로 나가서 비를 맞으며 시를 적은 것 같은 느낌이지?


거기에 두터운 모호함과 이성의 손길로도 잡히지 않는 무의식의 신호와 예측 불가의 미지를 향한 구애, 두려움의 대상인 낯선 것들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 우리는 어둠 속 미아로 헤매는 존재이며 죽음과 상실을 미치도록 탐닉했던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어.


유난히 기형도의 젊은 죽음은 비극적이야. 기형도의 시는 몽상과 심연에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 김현 평론가가 이런 기형도의 내면을 들어가 본 것처럼 알고 제목을 ‘입 속의 검은 잎’으로 지은 것은


김현 평론가 역시 기형도와 같은 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해. 기형도의 시가 세상에 나온 그다음 해 김현 평론가도 기형도를 따라갔지. 김현 선생은 기형도를 무척 좋아했데.


기형도의 시 ‘정거장에서의 충고’를 읽으면 인간은 사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존재 같은 기분이 들어. 그러나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느끼게 되는 게 있어.


어디에 와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갈 곳이 없음에도 버스에는 계속 사람들이 올라타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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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소설 ‘댄스 댄스 댄스’ 좋아하는 사람 있나? 하루키의 소설을 통틀어 개인적으로 아주 마음에 드는 인물, 좋아하는 인물이 이 소설에 있어.


고탄다가 바로 그 인물이야. 고탄다는 이 소설에서 빌런의 모습을 지녔어. 빌런은 늘 기존의 틀을 바꾸려 해. 그래서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세상을 비틀고 바꾸려고 하는 건 빌런이지.


그리하여 우리는 매력적인 빌런에게 늘 빠져드는 거 같아. 쫄쫄이 메리야스 슈퍼영웅들의 잔치였던 엑스맨에서도 미스티(크)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사회는 이유를 묻지 않고 그냥 매그니토니까, 그저 매그니토의 모습이니까 악으로 간주해 버린 매그니토에게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없었지. 미국은 스타워즈의 제다이보다 다스베이더의 코스튬을 더 많이 하잖아.


고탄다는 확실하게 그런 매력을 지니고 있어. 고탄다는 양사나이의 모습일지도 모르고, 일종의 관념일지도 몰라. 아니면 ‘기사단장 죽이기’의 이데아 일지도 모르고 ‘해변의 카프카’의 커넬 샌더스 일지도 몰라.


고탄다는 알고 있어. 자신의 주류에 속해 있지만 주류에서는 자신의 상실을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말이야. 그래서 그는 사소한 일에는 구차하리만큼 구애되면서도 큰일에는 관대하지.


결국 고탄다는 불꽃에 달려는 나방처럼 미련도 없이 죽음을 향해 스텝을 밟고 밟아 자동차를 그대로 몰아 바다에서 자유한 몸이 되잖아. 그것에 망설임이나 질척임이 없어. 델마와 루이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 소설을 읽다 보면 고탄다가 하는 말을 들을지도 몰라. "마지막에 웃는 자는 별거 아니야, 마지막에 가서야 웃기보다 자주 웃는 게 훨씬 나은 인생이야,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달려들면 얼마나 많은 것을 잃는지 알아? 그러니까 평소에 스텝을 밟아, 춤을 추라고."


고탄다는 빌어먹을 인간이지만 커트 코베인과도 닮았어. 퍼스트 제너레이션 세대. 물질만 쫓는 위 세대들에게 반항을 하듯 돈을 벌고 섹스를 하고 배설하듯 언어를 뱉어냈는데 물질만 쫓는 세대가 오히려 자기를 더 좋아하게 된 것에 대해서 괴로워하다 결국 34살에 끝내버리는 고탄다.


인간이란 건 1년, 1년 순서대로 나이를 먹어가는 거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렇지 않아. 인간은 한순간에 나이를 먹는다구. 고탄다가 하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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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스토리 좋아하지? 나도 엄청 좋아해. 토이 4에서 소외된 자, 소외된 것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내가 도와줄게,라고 말할 때 왜 그렇게 감동적이냐고. 하찮은 것들이 나에게 감동을 이만큼이나 주었는데 ㅋㅋ 우리는 보통 가정에서 특별하게 자라지만 조직 속에 스며들어 버리면 그저 하찮은 존재로 전락하기도 하잖아. 나는 소외된 자가 아니라고 해도 누군가에게 나는 소외된 자이기도 하고 말이야.


미국의 거대 영화 산업 중에 40% 이상 차지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산업은 토이 스토리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거 알지? 애니메이션 판도를 바꾼 토이스토리를 누가 탄생시켰는지도 다 알지? 바로 스티브 잡스야.

스티브 잡스가 86년에 토이 스토리를 제작하기 전, 83년에 11월 태평로 삼성본관 호암 집무실을 찾았어. 거기서 호암 이병철을 만나게 되잖아. 당시 호암은 73세인가? 그랬고 이미 몸에 암세포가 퍼져 있었지. 잡스는 애플사에서 쫓겨나기 직전 직접 만든 매킨토시 1호 리사를 들고 호암을 찾아간 거야.


잡스는 호암에게 리사를 미래의 세계를 이끌어갈 이곳, 삼성에서 구입해야 한다고 했지. 당시 호암은 몸도 그렇지만 삼성의 모든 명운을 한 곳으로 모으는 시기였어. 삼성전자 공정을 뒤로하고 반도체에 사활을 걸어야 했고, 후계자로 맹희와 건희 중 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었어. 이 부분은 김진명의 소설을 읽어보면 잘 알 수 있어. 삼성가에 대한 이야기도 잘 써놨거든.


그래서 호암은 잡스를 돌려보내지. 잡스는 돌아가서 85년에 애플사에서 퇴출을 당하잖아. 그리고 다음 해 86년에 애니메이션 회사 ‘픽사’를 차리게 돼.


그때 잡스가 한 사람을 데리고 오는데 그 사람은 70년대 스타워즈를 제작하고 있던 조지 루카스 필름의 그래픽 부서에서 그래픽을 만들고 있던 존 라세티였어. 두 사람으로 픽사의 모습을 갖추게 돼.


픽사라는 이름은 픽셀과 아트의 합성어야 다 알지? 매킨토시 스펠링 역시, 미국에서는 잼이나 만들어 먹는 맛없는 사과 Mcintosh가 아닌 애플사의 Macintosh로 잡스가 만들었잖아.


존 라세티가 잡스와 손을 잡게 된 건 당시 그래픽으로 중무장해야 할 스타워즈 때문에 파견근무 형식으로 디즈니사에 왔다 갔다 하면서 3D 애니메이션에 눈을 뜬 거야.


잡스는 86년 픽사 설립 후 95년 토이스토리가 나오기까지 건 10년 동안 토이 스토리 한 편에 매달리게 돼. 10년 동안 애니메이터들이 지치지 않고 토이 스토리, 즉 우디와 버즈에 매달릴 수 있었던 건 잡스에게 동화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


우리의 이 허황된 노력으로 사람들에게, 아이들에게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날 것이다, 비록 생명이 없는 장난감이 주인공이지만 이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당신들 뿐이다. 기계라도 인간의 감성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바이다. 잡스는 그렇게 말했지.


잡스의 이 신념하에 애니메이터들이 10년 동안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하나에 밤낮 가리지 않고 매달려. 잡스는 그러한 사원들을 위해 10년 동안 생산이 없음에도 투자를 해. 월급을 꼬박꼬박 주는 거야. 노력 끝에 95년도에 토이 스토리가 세상 밖으로 나왔어.


그전에 짤막한 애니메이션 룩소 주니어를 선보이는데 평단의 반응이 괜찮았지. 룩소 주니어 알지? 픽사의 마스코트가 된 꼬마전등 말이야.


토이 스토리가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평론가들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와 비교해 가며 곧 망할 것이라 예측했지. 하지만 사람들은 우디와 버즈에 열광했어. 3D 애니메이션에 감동을 느끼고 말았지. 우디와 버즈를 보기 위해 미국의 엄빠들이 아이의 손을 잡고 극장으로 몰려드는 기현상이 일어났어.


이후 픽사는 어마어마한 가격에 디즈니사로 넘어갔지지만 디즈니가 아닌 픽사의 타이틀, 위에서 말한 룩소 주니어의 타이틀로 영화가 계속 나오게 되었고, 토이 스토리 2, 3이 나오게 되었지. 그 사이에 잡스는 세상을 떠나고 말아.


사람들은 잡스를 아이폰의 아버지로만 알고 있지만 미국의 영화계는 좀 달랐지. 애니메이션의 판도를 바꾼 사람으로 말이지.


토이 스토리 3에서 탈출하는 그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지. 3에서 우디가 대학생이 된 앤디와 헤어지면서 이런 대사를 해. So long partner~. 이 대사는 픽사가 눈을 감은 잡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


시간이 지나 4편이 나왔을 때 뭐야?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재미있었어. 하늘에서 잡스가 흐뭇하게 웃고 있지 않을까. 뉴발신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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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말하는 ‘호밀밭의 파수꾼’,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소설 좋아하지? 욕쟁이 홀든 녀석의 하루하루 견뎌내기 같은 이야기 ㅋㅋ. 하루키는 이 소설이 빙 크로즈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앨범과 필적할 만큼 팔려 나갔다며 대단하다고 하지.

욕이 잔뜩 나오는데 ‘퍽’이나 ‘쉣’은 0개로 나온다고 하지. 실은 우리 번역본에도 이런 욕은 번역이 말랑말랑하게 되어 있을 거야.

이 소설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는 건 샐린저의 영혼이 갉아 넣어졌기 때문일 거야. 호밀밭의 파수꾼을 쓰는 과정을 그린 영화가 니콜라스 홀트가 셀린저로 나온 ‘호밀밭의 반항아’가 있어. 아주 재미있어.

입대해서 막사에 포탄이 터지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이 소설을 적었는데 그 일화도 잘 표현했더라. 비틀스의 존 레넌을 죽인 살인범 마크의 손에도 이 소설이 들려 있었고

멜 깁슨과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컨스피러시’에서 멜 깁슨의 집 책장에는 이 소설만 가득 꽂혀 있어. 영화 속에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멜 깁슨은 서점에만 가면 이 소설을 사지 않을 수 없는 거야.

많은 작가들이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해서 비평이나 감상문을 써 놨는데, 영국과 미국에서 책의 제목이나 내용에 나오는, 같은 단어지만 받아들이는 각국의 사람들은 다르게 받아들인다고 해. 요컨대 비틀스의 ‘노르지안느 우드’는 영국에서는 노르웨이산 가구, 미국에서는 노르웨이 숲으로 받아들인다고.

호밀밭의 파수꾼이 각 나라마다 제목이 달라. 호밀밭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나라가 거의 없어.

이탈리아: 한 남자의 인생

일본: 인생의 위험한 순간들

노르웨이: 모두들 자신을 위해 그리고 악마는 최후 순간을 취한다

스웨덴: 기억의 순간에 나타나는 구원자

덴마크: 추방당한 젊은이

독일: 호밀밭의 남자

네덜란드: 사춘기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12월을 마녀의 젖꼭지처럼 춥다고 표현한 샐린저 정말 마음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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