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모지리가 두 주먹 불끈 쥐고 병원에 한 번 가보라고 하는 자기 세계에 빠져 영혼이탈웅변을 할 때 다시 본 [길위에 김대중]은 울컥 그 자체였다.

엄혹한 시대에 몇 번이나 감옥에 갇히고 정보부에 납치되어 밧줄에 꽁꽁 묶여 가면서도 사람들을 위해 민주주의 열망이 꺼지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게, 말로만 하는 소신이라는 게 이처럼 처절하고 멋있게 보일 수가 있을까.

풀려나서 오랫동안 가지 못했던 광주로 기차를 타고 가면서 창문 밖으로 자신 하나만 보러 온 어마어마한 인파에 손을 내밀었다가 아이처럼 우는 모습에서는 정말 울컥해 버렸다.

박정희, 전두환이 가장 두려워했던 사람, 사형수에서 대통령이 된 사람. 그 과정이 그야말로 험난하고 험난해서 마치 촐라체 속의 크래바스의 날카로운 끝에 찔리고 찔려도 다시 일어나야만 가능한 일을 했던 사람.

전두환이 사형선고를 내렸을 때 미국, 독일, 일본 등 다른 나라 정치인들과 수많은 국민들이 김대중의 사형은 안 된다며 전두환을 압박했다. 박수가 절로 나오는 장면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건 정말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일인데 김대중 대통령은 사람들의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고 길거리로 나오게 만들었다. 한 아주머니는 오늘 장사는 안 해도 된다, 오늘 김대중을 보러 나왔다, 제발 이 나라를,,, 같은 말을 했다.

모지리 정부와 사악한데 머리까지 나쁜 여자가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작금의 시대에 길위에 김대중은 끝으로 갈수록 가슴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진다.

두 시간의 러닝타임이 절대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빨리 후속 편을 보고 싶다. 후속편의 제목은 [대통령 김대중]이라고 들었는데 아무튼 빨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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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7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구성인데 3편만 극장 개봉을 했었고, 나머지는 오티티로 풀리는 영화다.

공포영화의 형식이지만 공포영화보다는 일본의 기묘한 이야기나 미국의 환상특급, 여욱의 블랙미러 같은 분위기의 영화다.

타로가 제목이지만 타로는 내용과 연관이 없다. 주인공들이 타로카드를 주웠는데 사건이 터지고 만다.

시각적으로 공포특급을 보여준 이야기는 세 번째 덱스가 주인공으로 나온 이야기였다. 오래전에 외국의 공포 단편을 올렸을 때의 내용과 비슷하다. 뚱뚱한 여자가 자신의 살을 깎아내고 잘라서 말라깽이가 되어버리는 이야기.

이 영화에서는 더 나아가서 배달원 덱스를 끌어들여 무서운 이야기를 더 끌어올린다. 덱스가 연기를 못하는 건 아닌데 잘 하는 것도 아니다. 마치 졸업작품 연극을 보는 것 같다.

시각적으로 볼 거리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이야기는 두 번째 고규필이 나오는 이야기 ‘고잉홈’이다. 한 가정의 아버지인 고규필은 바람을 피우다가 아내가 의심을 하는 바람에 일찍 나와서 집으로 가려 한다.

전화가 오는 아내에게 회사 회식과 함께 부장님과 있다고 하는데 아내는 믿지 않는다. 바람을 피우다가 나오려는데 애인이 너의 부인에게 전화를 해서 다 일러바칠 거라며 전화를 걸어서 다 불어 버린다. 순간 화가 난 고규필은 손에 가지고 있던 볼펜을 애인의 목에 꽂아서 죽인다.

나와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는 욕을 잘 하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택시도 자기 차가 아니고, 전화를 하는데 피를 빼고 넘기라느니 같은 말을 한다. 그리고 산속으로 들어가서 택시를 세운다.

밖에서 통화를 하는 기사의 내용을 듣고 고규필은 볼펜으로 또다시 기사의 목을 찔러 죽여 버린다. 이건 정당방위야 이 잭잭이야. 그리고 고규필은 시체를 가지러 온 두 사람도 죽이고 만다.

얼굴과 옷에 피를 묻히고 산을 내려와 도로를 걷다가 경찰에게 붙잡힌다. 모텔에서 투숙한 애인을 죽인 용의자로 체포된다. 그러다가 경찰차 안에서 볼펜으로 경찰 두 명도 죽이고 만다.

그러나 고규필은 자신의 망상이 결국 살인을 하게 만들었다. 애인은 아내에게 전화를 했지만 실은 폰만 들고 전화하는 척만 했는데 고규필은 순간 올라오는 화를 누를 수 없어서 죽이고 만다.

이런 일은 요즘 뉴스를 채우는 미친놈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순간 욱해서 수영장에서 30대 남자가 7살 남자아이 얼굴을 잡고 물어 집어넣는 사건처럼 말이다. 순간 욱해서 사람을 죽여도 우리나라는 법이 사람들의 눈높이와 달라서 아주 짧은 형량이거나 아니면 집유가 될 수도 있다.

요즘 국회 청문회를 보면 이런 미친놈들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놀랐다. 청문회 아니었으면 이런 놈들이 정부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강유정 의원한테 막 대드는 재순이 봤지? 이야 신박해도 이렇게나 신박한 인간들을 어떻게 그렇게나 잘도 뽑을까 용산 모지리야.


일곱 가지의 이야기를 마저 봤다. 극장에서 공개한 세 편을 제외한 나머지는 야스 장면이 있는 편도 있고, 욕설이 심한 편도 있다.

지난번에 말했지만 이 옴니버스 영화들은 귀신의 공포보다는 환상특급의 분위기다. 인간이 더 무섭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흉포한 괴물이 되고 가장 무서운 공포를 선물하고 가장 악독한 존재가 인간이다. 브이제이 썬자 편의 썬자는 정말 욕을 아즈그냥 맛깔나고 십창 나게도 한다. 그리고 아주 충격적이다. 고어가 쩔어.

박하선 주연의 임대맘 편이 몹시 흥미로웠다. 임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무시하는 잘 사는 아파트 엄마들. 자신의 아이가 아파트 놀이터에서 유기견에게 물려서 위험한 순간에 같은 반 아이가 살려주고, 그 아이의 엄마(박하선)를 심부름도 하고 운전기사로 고용한다.

박하선은 그러나 계속 1동 엄마들에게 개무시를 당한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임대 사는 사람은 화장실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경비가 막고. 그러다가 화장실 앞에서 서서 오줌을 싸고 만다. 당할 수 있는 갖은 모욕을 당하며 딸을 위해 견디던 박하선은 딸이 도둑으로 몰리는 것에 참지 못하고 결국.

내가 일하는 건물의 화장실 청소 해주는 이모님이 있는데 나와 친하다. 매일 10분 정도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모님이 나이도 많으신데 책도 좋아하셔서 그런 이야기도 꽤나 잘 통한다.

그러다가 며칠 동안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에 갑자기 관뒀다면서 인사를 하러 오셨다. 아주머니는 원래 건물 번영회 소속으로 일을 하시다가, 용역업체로 넘어갔다. 그런데 번영회 소속일 때 회장이 8월부터 월급이 오를 거라고 했는데 월급이 오르지 않아서 업체 사무실에 가서

경리 보는 여자에게 이런이런 이유로 오게 되었습니다.라고 했는데 느닷없이 여자는 이모님에게 소리를 지르고 다짜고짜 욕을 하면서 왜 우리가 그 돈 떼어먹었을까 봐! 하면서 하대했던 것이다. 이모님은 과호흡이 오고 너무 당황스럽고 해서

그때는 그 자리에서 나왔는데, 이모님이 일을 잘 못해서 혼이 나고 욕을 듣는다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월급 오른 건에 대해서 물어봤을 뿐인데 부리는 사람이라고 쌍욕을 박는 것에 너무 기분이 나쁘고 억울하다면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가셨다.

그때 많은 이야기를 했다. 노동부에 고발할 수도 있고, 억울한 것에 대해서 풀어버릴 수 있는 것들에 관한 것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이모님은 평생 건물의 화장실 청소를 해오셨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을 봤다고 했다.

모든 사람들이 무시를 하는 건 아니지만 무시를 하는 사람들을 봤는데 그들이 벌을 받고 잘 살지 못하면 좋겠는데 이상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라는 것이다. 그런 짓을 하고 천벌을 받을 거야, 같은 말은 그저 희망고문일 뿐이다. 전두환을 봐라 그렇게 엄청난 짓을 저지르고도 천수를 누리다 갔으니.

아무튼 영화는 재미있게 봤다, 이주빈이 대역죄인꽃거지 모습으로 나오는 백 룸 같은 편까지. 7편 중 4편은 강도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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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에세이는 하루키가 언급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야. 하루키스트들은 다 알지? 2019년 6월 일본 문예춘추에 특집으로 실린 하루키의 글이야. 이 문예지는 코로나가 덮치기 전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일본으로 달려가서 이 책 한 권 달랑 사들고 왔어. 아침에 가서 저녁에 왔지 ㅋㅋ. 비록 읽을 수는 없지만 손에 가지고 싶은 마음이 컸었어. 


 제목은 ‘고양이를 버리다- 부재: 아버지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며 아직 한국어로는 나와 있지 않았을때야. 하지만 인터넷에는 많은 번역본이 있었어. 여러 번역본을 읽어 본 결과 개인적으로 심야 북카페에서 번역해서 낭독하는 것이 가장 좋아서 입을 다물고 그걸 그대로 받아 적은 적이 있었어. 사실 번역본이 나왔을 때 읽어보니 심야북카페에서 번역한 게 훨씬 좋더라고. 


그간 하루키는 2008년 아버지가 죽기 전부터, 또 죽어서도 아버지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2009년 예루살렘 문학상 시상식에서 아버지에 대해서 길게 언급을 했다)고 아버지 역시 살아생전 자신의 아들 하루키의 소설을 거의 읽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지. 


하루키는 어느 날 문득(이라고 해야 할지)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했어. 그 이야기를 들으면 하루키가 고양이를 좋아하게 된 환경부터, 그리고 해변의 카프카에서 다무라 녀석과 아버지와의 관계, 토니 타키타니의 아버지가 오버랩되며 태엽 감는 새에서 러시아 군인을 처형하는 장면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하나레이 베이에서 사치의 모습도 나타나. 


그리고 하루키가 자신이 가장 무섭게 쓰려고 했다는 ‘헛간을 태우다’가 어째서 그렇게 쓰였는지에 대해서도 간파가 돼. 일본 우파에 비난을 받을 걸 알면서도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난징사건에 대해서 쓴 계기를 떠올리게 되며, 그것을 생각하면 살아있는 현존 작가에 대한 무한 경의를 표하게 되거든. 앞으로 몇 편 볼 수 없는 장편소설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도 깊게 들기도 했지. 하루키를 좋아한다면 읽어보고 머리를 끄덕거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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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남자의 이름은 전부 잭이다. 여기에서 키아누의 이름은 잭. 타이타닉에서 디카프리오도 잭. 스피드는 90년대 영화인데 지금 봐도 이렇게나 재미있다니 하게 되는 영화다. 90년대 영화라서 더 재미있다. 휴대폰이 없어서 마음에 들고, 그래픽 없이 시원시원한 액션과 가슴 졸이게 만드는 스릴이 있어서 너무 좋다. 요즘 영화보다 볼 맛이 더 난다.

요즘 영화는 대체로 재미가 없고 실망하게 된다. 자본을 수백억씩 들여 그래픽 무장을 하면 할수록 더 실망한다. 재미가 있더라도 그런 영화는 깊게 생각하고 고민에 빠지게 하는 영화들이다. 스피드처럼 화면 가득 스릴이 넘쳐흘러, 보는 이들을 쥐락펴락하는 영화가 요즘은 잘 없다.

잭은 너무나 멋지다. 외모도 멋지고, 거기에 정의감이 넘치는 경찰이라 사람들을 위해 몸을 불사른다. 버스 승객들을 위해 믿음을 계속 준다. 특히 끊어진 다리로 돌진할 때 애나의 눈빛은 [잭 당신 하나만 옆에 있으면 나는 그걸로 족해] 하는 눈빛이다. 산드라 블록의 카랑카랑 음색이 듣기 좋고, 말괄량이 같은 면모가 죽음과 직면한 승객들과 관객들의 마음에 안정을 준다.

큰 화면으로 보면 요즘이라도 푹 빠져 볼 수 있다. 잭은 잠시 버스에서 내려 폭탄 해체 준비를 하러 떠난다. 그때 승객들은 잭이 자신들을 버릴 것이라 생각하지만 애나는 특유의 카랑한 음색으로 우릴 잊지 말라고 한다.

잭이 버스 밑으로 기어 들어갈 때 스릴은 정말 죽인다. 스턴트를 해야 하기 때문에 위험천만한 장면이 연출된다. 줄이 타이어 밑으로 들어가고 연료통에 칼을 꽂아서 버스 밑바닥에 매달려 있을 때에도 졸깃졸깃하다.

다 잘 될 줄 알았는데 호퍼 집으로 갔던 동료 해리가 설치해 놓은 폭탄에 당하고 잭은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다. 소리를 지리며 좌절한다. 그때 애나가 잭을 위로한다. 무너지지 마라, 나 혼자서는 못 한다, 잭 도와줘요.

승객들을 전부 탈출시키고 잭과 애나는 버스 밑으로 끌어안고 탈출을 하는데 정말 멋진 장면이다. 스피드는 비행기도 폭파시키는 등 엄청난 장면이 많다. 마지막까지 호퍼의 인질이 되어 보는 이들의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마지막 전철이 멈추지 못하고 지상으로 튀어 올라 옆으로 비스듬히 넘어져 도로에서 멈추었을 때 잭과 애나는 끌어안고 있고 지하철 밖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하며 미소를 짓는 모습도 낭만적이다.

이 영화에서 잭이 달리는 모습도 굉장히 스피드 하며 멋지고, 잭이 차고 있던 지샥 디다블유 5400의 초기버전도 멋지고, 무엇보다 짧은 머리의 키아누 리브스의 모습이 멋졌던 영화 ‘스피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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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 시인의 ‘나무에 대하여’를 읽고 또 읽어 봤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스레드에서는 인기가 없지만 그래도 이성복 시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


조깅을 하고 오면서 가장 많이 보는 게 나무야. 나무는 하찮잖아. 널려 있으니까. 하찮은 것들이 곳곳에서 히 살아내고 있어’라고 말하고 있는 거 같아. 나무는 고요 위에 고요를 덮고 또 그 위에 고요를 덮어서 인간처럼 말하지 않잖아. 이렇게 말없이 도로를 지키는 나무를 보면 이성복 시인의 ‘나무에 대하여’가 떠올라.


피와 색이 비슷한 쌉싸름한 와인을 홀짝이며 조금 소리를 내면서 시인의 시를 읽어. 시는 소리를 내서 읽는 게 좋아. 그러면서 홀딱 벗고 있는 나무를 생각하면 아래로 내려가고 싶을 때가 있을 텐데, 내가 나무라면 그랬을 거야.


만약 둘 다 아래로 내려가고 싶다면, 나무와 내가 다른 점은 나는 부끄러운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이고, 나무는 그냥 남의 눈에 띄고 않고 싶어서 그런 것일지도 몰라.


왼종일 서 있는 나무는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제 뿌리가 엉켜 있는 땅 밑이 얼마나 어두운지 알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라 이성복 시인은 말했어. 그래서 그랬을까 정현종 시인은 나무는 공기에 비스듬히 기대고 있다고 했어.


시인의 삶이란 무릇 공기와 땅 밑,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서 이토록 안아 주고 싶어 하는 거 같아.


나무가 된다면, 시인의 말처럼 저 멀리 두고 온 하늘 아래 다시 서 보고 싶을 때가 있을 거야. 그럴 때가 있을 거라 믿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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