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경계선’은 정말 재미있다. 여기서 말하는 ‘재미’는 영화적 익사이팅의 재미가 아니라, 다음 장면이 궁금해서 화면에 고정해야 하는 재미를 말한다. 경계선의 주인공 티나를 따라 그다음 장면이 보는 사람의 생각 그 밖의 무엇을 하게 될까, 궁금하면서 금기를 건드리는 두근거림이 가슴을 두드린다

티나는 어쩌면 인간 세계에 들어온 강아지와 같다. 개는 동물이면서 더 이상 동물의 집단에 귀속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인간화되었지만 인간도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 같으면서 제일 불쌍한 동물이 강아지이다. 티나는 그런 강아지 같은 경계선에서 생활하고 있다

인간보다 탁월한 후각으로 일자리도 얻고 그것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을 구별해낸다. 멀쩡하게 생긴 인간의 겉모습으로는 괴물인지 뭔지 분간을 할 수 없다. 그런 인간을 티나는 후각으로 잡아낸다

티나는 사람이지만 인간이 아니다. 인간 속에서 인간의 음식을 먹으며 그 음식이 맛이 없었는데 보레라는 자신과 비슷한 존재를 만나고 맛있는 음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간 숨겨왔던 자신의 본능, 욕구, 욕심, 욕망에 대해서 접근한다

더 이상 인간의 추악함을 보기에 티나는 너무 순수했고, 너무 무서웠고, 너무 자연주의였다. 그리고 티나는 각성을 한다. 영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회의 모든 경계를 말한다. 정상과 비정상, 여성과 남성, 안과 밖, 숲과 나무의, 또는 그 너머의 경계

영화는 확실하게 재미있다. 보자마자 린드크비스트의 원작 소설이 읽고 싶어 진다. 나는 다행히도 '렛 미 인'의 원작 소설 '렛 더 라이트 원 인'도 중고로 소중히 가지고 있고 영화에도 빠져들었다. 가장 잔혹하고 아름다운 뱀파이어의 사랑이야기

경계선은 금기를 드러내기에 사람에 따라서 역겹기도 할 것이다. 걸작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괴작이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분명. 영화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까지 의미를 던지듯 그 경계에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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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브이와 황금날개는 태권브이 4편인가 그렇다. 태권브이는 안 그런척하지만 7편인가? 8편까지 나왔었다. 태권브이가 4편에 와서 수리를 하면서 동력원의 방식을 바꾸는 것으로 안다

태권브이는 한국인이면, 한국남자면, 현재 한국 성인 남자라면 누구나 좋아했었다. 80년대까지 꾸준하게 거대 로봇물은 꾸준하게 나왔는데 칼로 두부를 싹둑 자르듯 어느 날부터 인기가 없어져 버렸다

태권브이는 동체의 크기가 30미터정도 된다. 그건 과학적으로 제비호의 높이와 제비호를 탄 영희와 훈이의 키를 감안하여 제비호가 태권브이 머리에 박힌 다음 제비호는 머리통에 두고 사수와 부사수만 어떤 통로를 경유해서 태권브이 배로 내려가서 조종을 하게 되는데 그 훈이의 키를 통해서 제비호의 높이를 추정하고 제비호를 통해 태권브이의 키를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래서 태권브이는 엄청 크다. 참고로 마징가는 12미터 정도다. 게다가 태권브이의 동력원은 전기여서 다리 하나를 움직이는 데만 엄청난 전기가 들어간다. 김박사는 그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나 보다. 몸체는 합금이다. 티타늄합금이라 관절이 접히는 부분에 물이 들어가면 불리하다. 비 오는 날에도 조심해야 하는데 3편인가 에서는 수중특공대작전을 펼친다고 바다 밑으로 기어 들어가 버리고 만다

대신 거기서 만난 인어, 누구더라? 암튼 영희를 두고 살짝 바람을 피운 훈이의 모습도 볼 수 있다. 훈이는 1편에서도 안드로이드 메리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기도 하는데 이번 편에서 꿈에서 바람피우는 장면을 계속 떠올리다가 눈을 뜨고 쪽팔리는지,,,,, 태권브이를 과학적으로 좀 보자면

원통형으로 발판에서 나오는 제트 추진력으로 비행을 한다. 요잉을 제외한 롤링이나 피칭을 일으킬 수 있는 매커니즘이 전혀 없다. 마징가처럼 수평날개라든가 방향타, 승강타 같은 것들이 없다. 그래서 수직수평 비행만 가능하다. 그건 원통형주위에 생기는 터뷸런스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마징가는 가능하다. 제트스쿠류를 부착하고 비행을 하기 때문에 요리조리비행이 가능하다. 비교를 하는 김에 계속 하면, 마징가는 머리에서 바로 육안으로 렌드스케이프를 보며 전투를 하기 때문에 접근성이 뛰어난다. 반면에 태권브이는 배 밑으로 들어가서 스크린을 보며 전투를 하기 때문에 화각이 좋지 않다. 대신 괴랄한 괴수에게 들킬 염려가 좀 덜한 장점이 있다. 마징가는 조종사가 드러나기에 그곳에 집중 포화 될 염려가 있다. 그래서 마징가는 몸에 무기가 엄청 많다. 레이저빔, 블래스트 파이어, 로켓펀치, 칼(ㅋㅋ이름이 있을 텐데) 등이 있어서 원거리전투가 가능하다

태권브이는 일단 괴수와 맞붙어야 한다. 엄청난 전기동력. 거기에 마의 6번 키를 누르면 태권브이와 훈이가 하나가 되어 훈이가 하는 태권 동작을 그대로 태권브이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근거리 전투에 능한 로봇이 태권브이다. 하지만 엄청난 전기동력. 게다가 비라도 올라치면

이게 재미있는 건 태권브이는 시간이 지나서 지금 보면 일단 허무하다. 황금날개 1, 2, 3은 바벨 2세의 포세이돈이나 로뎀을 그대로 본떠서 만들었고, 훈이 보다 멋지고, 태권브이 시리즈 중 가장 멋진 황금날개는 캐산을,,,,여기까지만 하고, 태권브이는 시간이 훌쩍 지나서 보기에는 아쉽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아이들이 보기에는 어떨까 한다면 글쎄다. 왜냐하면 정의, 용기, 못써, 안 돼, 나쁜 사람, 이런 말들이 너무 많다

바른 사람은 정의롭고 나쁘면 안 된다고, 나오는 모든 캐릭터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친구끼리는 우애 있게 지내야 하고 등등. 그런데 묘하게도 전설거인 이데온은 시간이 지나서 봐도 재미있다. 감독인 토미노 유시유키는 만화지만 물리학으로 사실적 근거로 인해서 이데온을 만들었으며 전쟁이 일어나면 아이나 여자나 모두가 처참하게 죽기 때문에 그런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그래서 어쩌면 어린이들이 보기에는 어렵고 이해하지 못 할 수 있으나 그런 어린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어서 다시 봤을 때 아, 그렇지, 그래! 맞아! 하며 보게 된다. 슈퍼로봇 만화가 인기를 계속 이어가려면 이런 이야기들이 물밑에서 사람들에게 회자가 되어야 한다. 태권브이는 그 후에 광자력 우라늄 원석으로 동력원이 바껴야 하지 않아? 그리고 동체가 좀 작아져야지, 괴수들은 이제 괴랄한 모습에서 좀 벗어나도 좋을 텐데, 같은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태권브이 시작은 늘 공기 좋은 태백산 같은 곳에서 태권도를 하는 훈이와 자신이 최고라 여기는 똥꼬발랄한 깡통로봇이 등장하면서 시작한다. 오프닝은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비행기가 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태권브이의 시그니처 시작은 그런 장면이다

태권브이는 원통형에서 후에 스퀘이형으로 변형이 된다. 거기에 변신도 하고 분리도 한다. 슈퍼태권브이에서는 우주로 가는데 이야기도 우주로 가고 난리난다. 실사화 이야기가 나온 지가 베트맨과 슈퍼맨 이전인거 같은데 아직 지지부진 한 것이. 그렇다면 피규어라도 잘 만들어주었음 하는데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비싸면서 얼굴 도색이나 얼굴 모형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반다이에서 꾸준하게 나오는 마징가는 얼굴이 잘 생겼는데 태권브이는 얼굴이 ‘한입만’했을 때 문세윤 얼굴 같다. 태권브이 여러 시리즈가 있지만 황금날개 시리즈는 더 재미있을 수 있었는데. 황금날개는 정말 멋지다. 능력도 탁월하다. 어떤 기계의 도움 없이 초능력으로 비행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초능력이 사람들이 알고 나면 없어진다니, 허무하다. 엉엉

황금날개는 주제가도 좋다. 무적의 주먹으로 때려 부수리. 망설임이 없다. 거침없고 시원시원하다. 청동거인도 계속보면 태권브이보다 더 멋지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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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바닷가에는 당연하지만 갈매기가 있다. 바닷가에 나오면 너무나 마땅하게도 있는 갈매기를 우리는 볼 수 있다. 매일 출근하기 전 바닷가에 나가서 갈매기들을 하릴없이 바라보는데 지겹지 않다. 대형마트 어항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질리지 않는다.


바닷가에는 갈매기가 날아다니고 그것이 평범하고 평온하다면 평온하고 안정된 바닷가의 모습일 것이다. 갈매기는 오를 때 날갯짓을 하는데 다리를 몸통에 바짝 붙여서 활공을 하기 때문에 다른 새들에 비해 굉장히 날렵해 보이고 멋진 모습이다.


시간이 된다면 사람들이 갈매기를 봤으면 한다. 갈매기를 바라보는 것도 꽤 흥미가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활공을 할 때는 날개를 쭉 펴서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데 체공시간이 비둘기에 비해서 길다. 갈매기는 물과 인접해서 서식하는 다른 새들과 조금은 다르다.


황량한 바다를 제외하고 그들은 대부분 바다에 둥둥 떠 있는 경우가 잘 없다. 언제나 정박해있는 어선이나 부표 위에서 숨을 고르게 쉬며 시간을 죽여가고 있다. 항상 내려앉는 자신의 자리에 다른 갈매기가 앉아있으면 가서 쪼아내는데, 자신보다 서열이 높으면 쫓아내지 못하고 그 자리를 피해서 비행을 하면서 울부짖기도 한다.


어떻든 갈매기를 바라보는 것이 깔깔깔 거릴 정도는 아니지만 지겹지는 않다. 갈매기가 바닷가에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여기 바닷가에는 당연한것처럼 비둘기도 갈매기화되어 있다.


골목이나 건물 사이에서는 비둘기가 오랜 시간 활공하는 모습은 보기 드물다. 하지만 바닷가에서는 어쩐지 갈매기에게 지기 싫은지 비둘기들도 날개를 활짝 펴고 해변 위를 길게 날아다니는데 멋있다기보다 뭔가 재미있다. 큭큭 웃음이 나온다.


갈매기들은 해변에 무리로 내려앉아 눈을 감고 있기도 하는데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갈매기가 있으면 어김없이 그 근처에 비둘기가 고개를 앞뒤로 까닥거리며 어슬렁어슬렁 간다. 바짝 가까이는 가지 않고 늘 거리를 둔다. 마치 염탐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떻든 재미있는 장면이다.


갈매기들이 그런 비둘기가 신경이 쓰여 무리로 다가오는 비둘기를 쫓아내면 머리를 앞뒤로 까닥거리며 저만치 도망을 가지만 멀리 가지는 않는다. 늘 여지를 두고 ‘어이 갈매기 네가 이 바닥에서 얼마나 하는지 두고 보겠어’라고 하는 것 같다.


어떤 날은 갈매기는 보이지 않고 비둘기가 해변을 점령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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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나라의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다음 이야기로 상상으로 똘똘 뭉친 이야기다. 루이스 캐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피터 팬을 만들어낸 제임스 배리의 이야기인 ‘네버랜드를 찾아서’를 보면 이런 상상력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잘 나온다. 네버랜드를 찾아서는 안 그럴 것 같았는데 감동이었다.


어쩐지 하루키도 그렇고 창작물인 작품보다는 그 작품을 만들어낸 작가에 관심이 더 간다. 위대한 개츠비보다 피츠 제럴드도, 헤밍웨이도, 백석이나 조지아 오키프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 훨씬 재미가 있다.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시간, 시계에 관한 이야기다. 하루키의 에세이 ‘시계의 조촐한 죽음’을 읽어보면 단순한 시계 이야기에 빠져들게 써놓았다. 좋아하지만 얄미운 무라카미 하루키 씨.


자신의 삶 속에 들어온 시계.

요즘의 똑똑한 디지털시계가 아닌 태엽을 감아주어야(만) 하는 시계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시계의 죽음.

덜 똑똑한 것보다 더 똑똑한 것이 낫겠지만 똑똑함이 생활의 전부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하루키는 그것을 시계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전달해준다.


태엽을 감아주면 하루 동안은 꼬박 영차영차 하며 시간을 알려주니까 다음 날 그 시간이 되면 태엽을 감아준다. 그건 아침에 일어나서 배변을 보고 밥을 먹고 옷을 입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린 시절 나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외할머니와 무척이나 친했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가난했던 집안의 사정 때문에 4, 5세 정도를 어머니와 떨어져 외가댁에서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외가댁이 있는 촌에서 동네 아이들에게 맞고 들어와서 울고 있으면 외할머니는 캡틴 마블이 되어서 동네 아이들과 아이들의 부모까지 혼을 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어서 집으로 와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멀리 떨어져 있는 외할머니를 자주 볼 수 없었지만 외할머니는 내가 보고 싶으면 먼길을 달려 집으로 오곤 했다. 외할머니가 오면 외할머니 손목에 차던 손목시계에 관심을 가지곤 했다. 요즘 아이들처럼 똑똑하지 못해서 저학년 때에는 초침 시계를 보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외할머니의 손목시계가 다른 전자시계보다 좋아 보였다.


외할머니는 매일 비슷한 시간이 되면 시계태엽을 감아 주었다.

시계의 밥을 주는 거란다.

사람이 밥을 먹는 건 이상하지 않은데 시계가 밥을 매일 먹는 건 참 신기한 일이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외할머니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나에게 차 주었다. 가볍지 않고 묵직한 무게의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반짝이는 금색이 빛을 받아서 빛났다. 나는 시간도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그걸 차고 학교로 갔다. 시계가 손목 밖으로 드러나기를 바라면서.


매일 밥을 줘야 하기에 편리하진 않지만 그 불편함이 시계와 좀 더 친밀하게 하는 관계를 형성시켜 주었다. 매일 밥을 챙겨 먹어야 하는 불편함이 또 하루를 버티게 하는 동력이 된다. 태엽을 감는 것은 귀찮지만 뿌듯한 행위라고 한 하루키의 말이 떠오른다. 드르륵드르륵 태엽을 감다 보면 느슨하게 풀려있던 것이 팽팽해지면서 딱 고정되는 그 의식 속에서 나와 시계를 인지한다.


그리고 시계는 또 하루를 성실히 움직인다.


요즘처럼 몇 년에 한 번 전지를 갈아주면 되는 시계는 분명 편리하지만 시간이 뚝 끊기면 그것대로 시계가 죽어버린 느낌이 든다. 요즘도 손목시계를 오른쪽에 차고 다니는 건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한 외할머니가 그렇게 차고 다녀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희미하게 생각해본다.



8년 전에 선물 받은 한국산 시계는 고장이 나지 않고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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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라는 이름이 좋아서 아이를(여자건 남자건) 낳으면 건우라고 지어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아이가 없다. 결혼도 하지 않아서 언젠가 소설 속에라도 건우라는 이름을 등장시키고 싶다.


건우라는 이름이 좋은 이유는 백건우 때문이고, 백건우의 음악을 듣게 된 건 순전히 친구 때문이었다. 그녀는 현재 한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다. 쾰른 음대에서 유학시절 걸핏하면 전화가 와서 힘들다고 징징거렸다.


그녀가 레슨을 마치고 접시를 닦고 이것저것 하고 전화를 하면 나는 대체로 쿨쿨 잠들어 있던 새벽이었다. 으, 하는 좀비 소리로 전화를 받으면 슈만이 어쩌고 독일 사람들이 어쩌고 오늘 식사를 대접받은 독일 아줌마는 어쩌고 하는 이야기들.


폴더폰을 귀에 걸쳐 놓고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오늘 연주하다 손톱이 빠졌어. 진지하게 이야기를 쏟아내는 그녀였지만 이쪽에서는 몽롱한 새벽이니 그녀의 진지한 모든 이야기를 정색하며 진중하게 들을 수만은 없었다. 전화비 많이 나오지 않아?라고 하면 또 다른 이야기를 주렁주렁 늘어놓았다.


아마 그녀는 내가 잠결에 대충 흘려듣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가족에게는 힘든 이야기를 못하는 성격상 누군가에게는 한국말로 전부 토하듯 뱉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 후에 그것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해본 적은 없다.


쾰른 음대는 학비가 없다. 대신에 졸업을 하려면 혹독하다. 마녀의 젖꼭지처럼 혹독한 12월을 표현한 셀린저의 문장보다 혹독하다. 혹독하고 혹독한 하루의 연속이었다. 생활비까지 책임져야 했던 그녀는 절박했고 필사적으로 건반을 두드렸다.


그런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가 백건우였다. 덩달아 클래식에 대한 무식쟁이 나 역시 백건우의 연주를 듣게 되었다. 백건우가 연주하는 걸 들어보면 나이가 많음에도 청년 같은 힘과 아이 같은 유약함과 느긋한 어른의 면모가 다 느껴지는 게 못내 신기했다. 그래서 연주를 보고 있으면 참 못 생겼네, 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고 정말 멋있구나, 하게 된다.


다행인지 아파트 바로 옆, 1분 거리에 예술 회관이 있어서 백건우가 매년 연주회를 가졌다. 게다가 가격도 엄청나지 않아서 야호 하며 왕왕 보러 다녔다. 그게 몇 년 전이었다. 어쩐 일인지 이후 매년(까지는 아니지만) 열리는 백건우의 연주회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얼핏 윤정희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게 오래된 일이었다.


김수용 감독의 영화를 좋아해서 여러 편 찾아봤다. 그중에서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영화적 작법으로 옮겨 놓은 ‘안개’ 속에 10대의 윤정희가 인숙으로 나온다. 문예영화를 고집하던 김수용의 ‘안개’를 보면 술 집에서 윤정희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소설 속 인숙이 그대로 튀어나왔을 정도로 해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본 윤정희의 영화가 이창동 감독의 ‘시’였다. 거기서 윤정희는 치매가 걸린 노인으로 나왔다. 그래서 그런지 백건우의 이 인터뷰가 애착이 간다.


인간의 삶은 필멸하게 되어있다. 살아봤자 몇 년이나 살지 모른다. 백건우의 말대로 언제까지나 자신을 몰아세우며 자신과 싸워가며 스트레스받을 필요가 없다.


내일을 위해서?라는 말보다 오늘을 버티는 것이다. 하루키도 근간의 인터뷰에서 죽음에 대해서 언급을 했다. 언젠가는 죽기 때문에 사후에 자신의 원고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게 싫어서 와세다 대학에 기증을 한다고 했다. 자기 자신과 싸우지 말고 자신 자신을 사랑하면서 그냥 오늘을 열심히 버티자. 언젠가 건우라는 이름을 소설 속에 등장시키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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