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한국인터뷰를 재구성 한 파인딩 하루키의 한 페이지입니다. 한국의 광주민주화항쟁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고 있고 일본 정치 시스템에 대해서 NO라고 외친 것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어요. 마지막에는 한국의 젊은 독자들이 일본인들보다 자신을 더 많이 알아보고 아는 체 하는 것에 즐거워했다는 인터뷰도 있습니다. 하루키는 스토리의 중요성을 늘 강조하는데, 스토리가 세상을 재건한다? 뭐 이런 대사도 왕좌의 게임 시즌8에 나오는데 스토리, 즉 상상력이 사라지면 인간의 삶이란 단단히 망가지게 되어있다고 늘 말하죠. 일큐팔사만큼 긴 장편 ‘태엽 감는 새‘도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장편이전에 단편이 있죠.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 이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에 등장하는 여자는 총 세 명이다. 여자들은 주인공에게 이렇다 할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수화기 너머의 기묘한 여자는 발가벗고 누워서 주인공에게 전화를 해 10분 동안 우리들을 알아가자고 한다. 무엇을요? 기분 말이에요. 수화기 너머의 아내는 집 나간 고양이를 찾아보라고 한다. 그 골목으로 들어가서 찾아보라고 한다. 골목은 편의상 골목이지 골목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험하고 난해한 지역으로 아내는 그곳에 몇 번이나 들어갔다고 했다. 나에게 말도 없이. 라고 주인공은 생각한다. 모두가 나에게 전화를 해서 이거해라, 저거해라 라고 명령만 내리는 것 같다. 와타나베 노보루, 아내 오빠의 이름을 딴 고양이를 찾으러 그 골목에 들어갔다가 16세 소녀를 만난다. 소녀는 질문을 계속한다. 손가락이 여섯 개의 여자와 만나면 어떻게 할 것이냐. 가슴이 네 개인 여자는?처럼 당황스러운 질문을 계속한다. 소녀는 눈이 좋아서 같이 고양이를 기다리자고 한다. 나타나면 소녀가 보고 알려준다고 한다. 소녀와 쓸데없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주고받는 동안 주인공은 의식의 사각지대에 대해서 생각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 계기를 따지고 보면 법학과에 입학하는 순간부터였다. 그 이전까지는 희망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꽤 괜찮은 삶이었다. 내가 일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에도 아내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일은 꼭 하지 않아도 괜찮지않겠냐고 했다. 낮에 통화했을 때 골목에는 왜 들어갔냐고 물었지만 아내는 일 때문에 급하게 끊고 말았다. 기억이 나면 물어봐야겠다. 아내가 퇴근시간보다 조금 늦게 들어오고 밥을 먹고 어두운 주방에 혼자서 앉아 있다. 그 모습을 보니 아내는 잘못된 장소에 있는 것처럼 안타깝고 평소보다 왜소해보였다. 고양이를 못 찾았다고 하니 고양이는 더운 날씨에 음지에서 팔팔 떨다가 죽었을 것이라며 아내는 울었다. 그리고 고양이를 죽인 건 나라고 했다. 예전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도 나는 많은 것들을 죽여 왔다고 했다. 고양이에게 밥을 준 것도 나인데 어째서 아내는 그런 말을 할까.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와 난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24번의 울림이 있은 후 전화는 끊어졌다. 마치 사각지대의 의식이 꺼져버리듯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 단편은 짤막하지만 앞뒤 상상을 굉장히 하게 합니다. 미지의 존재에게서 전화가 오는 건 이후 ‘여자 없는 남자들‘에서도 계속 되고 버닝에서도 종수는 그런 존재에게 전화를 받습니다. 내 의식의 사각지대에 있는 어떤 존재가 전화를 걸어오는 것처럼. 하루키 소설 중에는 아주 잔인한 장면이 묘사된 소설도 있어요. 목을 자르고 그 시체를 숨기기 위해 거꾸로 들어서 피를 다 뺀 후 처리하는 장면이 있어요. 칼로 목을 자를 때 그 서늘한 기분과 서걱거리는 부분도 꽤 세밀하게 묘사를 했습니다. 하루키 답지 않은 것 같은데 하루키 답군. 하는 소설이에요. 하루키스트들, 무슨 소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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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앞에 앞의 앞에 앞에 앞에앞에 또 쭉 앞에 가보면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레디 플레이어 원에 대해서는 몇 번을 해도 할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 영화다. 스티븐 스필버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영화가 바로 이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이 아닌가.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선배 캐릭터를 모두 소환하면서 엄청난 비용을 지불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또는 컴퓨터로 봐야만(돌려서 보고 화면을 멈추어야만) 잠깐 등장하는 캐릭터들에게도 스필버그는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레디 플레이어 원에 등장을 시켰다

 

그리고 스필버그는 사운드트랙을 전부 7, 80년대 유행했던 음악으로 화면을 꽉 채웠다. 죽어버린 프린스의 노래부터 시작해서 블론디, 얼쓰 원 댓 파이어 등 주옥(이 단어를 꼭 쓰고 싶다)같은 음악이 나온다. 영화음악이란 정말 영화를 살리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게 한다

 

반 헤일런의 점프도 신나지만 영화 속 플레이어가 되어서 짜릿한 기분을 느끼게 한 음악이 트위스티드 시스터의 ‘웨어 낫 고나 테이크 잇’이다. 이 노래는 영화 속 모두가 영화 속 권력에 맞서 일개 힘 없는 개인들이 자신의 캐럭터를 가지고 와 하며 돌진을 할 때 트위스티드 시스터의 이 노래가 나온다. 첫 시작부터 신나기 시작하여 마지막까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꼰대가 등장한다. 집 구석에서 권력을 휘두른다. 오로지 자기 말한 듣고 자기 뜻대로 하는 꼰대권력자인 아버지가 나오고 윗층에서 기타소리를 내는 아들이 짜증나서 올라가서 이거 저거 자신이 하라는 대로 하라고 하며 넌 도대체 뭐가 되려고 하느냐,라며 꼰대 짓을 한다. 그리고 마이클 잭슨의 블랙 오어 화이트 처럼 기타를 징 울리니 밖으로 튕겨져 나가면서 트위스티드 시스터가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의 가사도 단순하지만 그래서 정말 좋다

 

Oh we're not gonna take it

우린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No, we ain't gonna take it

아니, 우린 참지 않을 거야

Oh we're not gonna take it anymore

우린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We've got the right to choose and

우린 선택할 권리가 있고

There ain't no way we'll lose it

절대 잃지 않을 거야

This is our life, this is our song

이건 우리의 삶이고, 우리의 노래야

We'll fight the powers that be just

우린 바로 권력에 맞서 싸울 거야

Don't pick our destiny cause

우리의 정의를 꺾지 마

You don't know us, you don't belong

넌 우릴 모르잖아, 넌 여기 속해있지도 않잖아

 

이건 우리의 삶이고, 우리의 노래고 우린 권력에 맞서 싸울 거야, 우린 더 이상 참지 않을 거야, 라며 내지르는 이 노래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오늘 아침에도 아이를 잃은 엄마들이 뉴스공장에 나와서 2년을 노력해도 안 되는 것에 대해서 비통해했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권력자들이 여의도에 앉아 있으니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지금도 도무지 무엇을 위해서 단식을 하는지 모를 그 앞에 가서 신나게 이 노래를 부르고 싶다

 

우린 선택할 권리가 있고 절대 잃지 않을 거야

우린 권력에 맞서 싸울 거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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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문기자는 여론을 조작하고 가짜 뉴스를 만들어 내는 정부의 내각정보실에 대해서 진실을 알리려는, 인지도가 떨어지는 신문사 토우토 신문의 요시오카(심은경) 기자와 내각정보실의 관료인 스기하라(마츠자카 토리)의 이야기를 어두운 분위기로 죽 끌어가는 이야기다. 이 영화를 보면 지금 우리 나라 전 정권 시절에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곳, 정장을 입고 출근을 하여 하루 종일 가짜 뉴스를 트위터와 페이스 북에 올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도 나오고 지금 김학의 사건과 비슷한 사건(2017년 성폭력 기자회견을 한 이토 시오리 사건)도 다루고 있고 무엇보다 일본의 현 정부가 꾸미는 전쟁국가로의 발돋움 계획(대학교를 군부생화학 개발을 하는 군사시설로)을 알고 요시오카와 스기하라가 계란이 되어 바위를 깨트리려고 한다. 요시오카의 아버지도 기자출신으로 비리를 까발리다 언론의 거짓뉴스에 자살을 했다. 이 영화에는 많은 사실적인 대사가 나온다. 진실을 판단하는 건 우리들(정부관료)이 아니라 국민이다. 그러니 가짜뉴스를 계속 퍼트려라고 한다. 영화 속에서는 일본의 공무원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가짜뉴스를 퍼트리고 기업언론권력이 작동을 하여 악플에 시달리게 하고 결국 자살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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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김누리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재 한국 사회가 헬조선이 된 이유를 알 수 있다. 왜 청춘들이 자살을 하고 고통속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지금 한국 사회는 시대착오적인 지옥이다. 가장 큰 이유는 잘못된 정치에 있다. 지금 우리는 정말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민주화를 이루었고 경제화도 성공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살 수 없는 지옥이 되어 버렸다. 불평등, 노동시간, 산업재해, 자살률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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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국사회가 헬조선의 지옥이 된 이유는 독재, 군사정권의 계승 정당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자체가 희한한 현상이고 또 그런 정당이 힘이 강하다. 군사독재에서 민주화로 넘어온 것이 아니라 군사독재에서 자본독재로 넘어온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민주화라는 ‘형식’이 한국 사회를 덮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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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민이 이루어 낸 이 엄청난 성취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 한국사회에서 우리는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건 여의도 국회에 있는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생활의 강제력, 구속력을 가지는 법을 만드는 그곳의 법이 제대로 된 법이 만들어진다면 우리가 이렇게 고통을 받고 자살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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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 300명의 의원이 있는데 그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자유시장경제’이다. 295명이 ‘프리 마켓 이코노미’를 추구하고 있다. 저들에게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생명권, 노동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저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말도 ‘경쟁력’이다. 국회에 앉아 있는 자들의 99%가 국가경쟁력, 기업경쟁력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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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존엄성, 사회적정의를 말하는 정치를 한국에서는 볼 수 없다. 정치의 목적은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적인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기업경쟁력을 높이려고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은 기업인들이 알아서 열심히 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정치인들은 기업이 잡아먹는 인간의 존엄을 보호하고 기업을 규제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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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경우 베를린 국회에 633명 국회의원이 있는데 ‘자유시장경쟁’을 추구하는 의원이 이전 회기에는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이번 회기에 10%정도 생겼다. 자유시장경쟁을 지지하는 정당은 대체로 앞에 자유가 붙는 자유당 또는 자유민주당 같은 정당인데 인간의 자유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자유를 성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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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장경제는 인간과 함께 갈 수 없다. 잉겔라 메르켈이 2005년 총리가 된 이후 16년(곧) 총리를 했다. 어째서 이렇게 오랫동안 총리를 할 수 있을까. 메르켈의 정당은 기독교민주연합 정당으로 보수정당이다. 메르켈 정당이 추구하는 체제는 ‘소셜 마켓 이코노미’다. 즉 ‘사회적시장경제’다. 우리 한국의 ‘자유시장경제’와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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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20세기에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데 훨씬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경제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거대한 경쟁이 있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경쟁을 했다. 거의 90년 가까이 결투를 해서 결론은 자본주의가 이겼다. 1990년에 사회주의경제가 붕괴를 했다. 자본주의시장경제가 훨씬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준다고 결말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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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자유시장경제는 인간의 욕망을 효율적으로 총족은 시켰는데 대신 인간을 잡아먹는다. 독일에서는 이 부분을 ‘야수자본주의’라고 한다. 미국도 카트리나가 왔을 때 흑인들을 대피시키는 자본과 카트리나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의 시체를 치우는 자본을 비교했을 때 후자가 낫다고 정부는 판단을 했고 그렇게 프로그램을 돌렸다. 후에 그 사실이 국회에서 까발려졌고 미국사회는 발칵 뒤집어 졌다. 이를 미국의 ‘재난자본주의’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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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을 비롯한 서유럽 나라에서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자본주의’의 병패를 보았다. 그냥 자유경쟁, 프리하게 놔두면 인간을 잡아먹는다는 것이다. 그럼 무엇을 잡아먹는 다는 것일까. 정말 인간을 잡아먹는 것일까. 그건 바로 ‘실업’과 ‘불평등’이다. 여기에 따르는 것이 ‘빈곤’과 ‘불안’이다. 그리고 불안은 바로 ‘자살’을 키운다. 자본주의는 상시적으로 5~8%의 실업을 내장하고 있는 체제다. 실업이 없을 수가 없다. 불안과 자살이 따라오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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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독일과 서유럽 대부분의 나라는 실업과 그에 따른 불안과 자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에 ‘소셜’로 잡아줘야 된다는 체제가 이루어졌다. 마르켈은 ‘자유시장경제‘가 아니라 ‘사회적시장경제’로 불평등과 실업 그리고 불안으로 인한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지 않고 사회에서 그걸 잡아주려고 노력했기에 오랫동안 총리를 하고 보수집권당이지만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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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흔히 듣는 말 ‘소셜’은 ‘관계’로 ‘공동체’를 말한다. 이 공동체는 개인의 불평등과 불안과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개인의 불안과 자살은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있다. 기업형 언론이 배설하듯 뱉어놓은 기사를 가지고 사람들은 악플을 단다. 개인의 문제이니까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없다. 그러니까 악플은 악플을 낳고 악플은 축소되는 것 없이 확대되고 재생산되고 결국 청춘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자살을 막으려면 악플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있어야 하고 그 이전에 기업언론의 과다한 가짜기사도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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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을 지켜줘야 하는 일을 여의도에 앉아있는 정치인들이 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고 있다. 실업과 빈곤과 불평등으로 인한 자살이 얼마나 더 나타나야 할지 모르는 이곳이 그래서 헬조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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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미캔을 기점으로 일본에서 잘 나가는 또는 잘 나갔던 AV배우들이 한국 유튜브로 진출을 하고 있다. 한국 유튜브라 해서 꼭 한국에서 방송을 한다는 건 아니다. 한국 구독자를 상대로 방송을 한다. 인삿말도 한국어로 하고 블랙핑크의 팬들을 블핑이라 부르듯이 자신의 구독자들 애칭도 한국어로 부르면서 방송을 한다

AV계의 몰랐던 이야기를 쏙쏙 풀어내면서 구독자 수를 늘리고 있다. 지금의 청춘들은 태어남과 동시에 야동이라 불리는 AV배우들과 동시대와 같은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는 청춘들에게 무엇보다 큰 즐거움을 안겨줄지도 모른다

배우들이 은퇴를 하고 한국어와 한국말을 섞어가며 방송을 한다고 해서 엄청난 걸 방송하는 것이 아니다. 궁금한 것을 질문 받고 대답하고, 일본 성인배우에 대한 환상에 젖어있는 것을 꼬집는가 하면 콘돔의 제대로 된 사용법(요컨대 지갑에 넣어 다니면 찢어질 우려나 세균이 들어갈 염려가 있으니 파우치나 상자 그대로 가방에 넣어 다니고)이나 청소년들은 반드시 콘돔을 착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히로티브이에서는 요시자와 아키호와 함께 그간의 어려운 일과 어째서 이 일을 접하게 되었는지도 이야기 해준다. 물론 19금의 수위가 있는 이야기도 있다. 한국에 인기가 많은 메구리가 하는 방송은 한국 남자친구와 지내는 에피소드나 자신의 메니저가 배우가 되어서 나타나서 한 작품에 출연을 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같은 업계에 배우를 불러서 여러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시미캔의 방송에도 현역 배우들이 나와서 방송이 진행되는 과정이나 뒷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이 크게 이상하다든가 듣기 거북한 것은 없다. 오히려 성교육으로서 괜찮은 방송도 있다

그렇다면 왜 자국민인 일본인들을 놔두고 한국인을 상대로 방송을 하는 것일까. 그들은 왜 한국으로 넘어오는 것일까. 크게 보면 일본의 현재 대중문화가 삐거덕 거리는 수준을 넘었다는 것이다. 문화에는 다양한 컨텐츠가 존재한다. 그 대중문화 속에 일본은 분명 AV도 있다. 80년대를 거쳐 90년대의 일본 대중문화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당시 한국은 일본문화를 사랑하는 수준을 넘어 흡수하는 수준이었다

90년대 일본의 대중문화는 하늘을 뚫을 기세였다. 드라마, 광고, 모델, 특히 가수들의 기세는 대단했다. 가수들이 입는 의상과 메이크업, 헤어는 눈부셨다. 마츠다 세이코의 스타일은 당시 우리나라 광고에 등장하는 여자 연예인들이 모두 따라했다

이렇게 대중문화가 발달을 하려면 나라가 힘이 있고 경제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일본은 90년대 버블경제로 엄청난 자본이 일본의 땅과 하늘을 수놓았다. 밥 한 끼 먹고 돌아서면 또 한 끼를 걱정해야 하는 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수준도 높았고 철학이 가득해서 구석구석 꽃을 피웠던 일본의 대중문화가 무너진 것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지금 일본의 청년은 태어나면서 부터 일본은 망해간다는 뉴스를 들으며 자랐다. 희망이라는 게 없어져 버린 시대에 일본 청년들은 놓이게 되었다. 90년대 회사원의 연봉이 지금보다 높은 이상한 시점에 와 버렸다. 그런 시대적 배경에서 대중문화가 발전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영화는 고레에다 감독이나 이와이 슌지 감독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이전에 비해 만화를 그대로 영화화시킨 수준이 낮은 영화가 많아졌고 일본의 최고 자랑이던 애니메이션 역시 우리의 웹툰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특히 꽃을 피웠던 노래가 그야말로 곤두박질쳤다. 일본 우익들은 한국은 아이돌 밖에 없다고 하지만 한국의 발라드는 최고다. 엑소의 발라도, 폴킴도, 태양의 후예나 동백꽃 필 무렵의 OST를 부른 김나영의 ‘그 한 마디‘는 정말 좋다. 이런 감성의 노래들을 한국의 가수들은 꾸준하게 부르고 있다. 특히 작은 몸으로 큰 울림통의 노래를 부르는 벤의 노래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아이돌 그룹뿐 아니라 이 모든 노래들이 한국은 강세다. 한 순간에 이렇게 올라온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이렇게 대중문화가 기울었을까. 먼저 노래로 보면 한국은 검증된 과정을 거쳐 가수를 발탁한다. 오디션을 거쳐 실력이 된 가수들을 발탁하여 연습을 거쳐 대중에게 선택받게 한다. 일본은 언젠가 부터 쟈니스(지금은 죽었지만) 회사 같은 경우 쟈니스가 자신이 좋아하는 꽃미남 남자 외모의 아이들을 골라서 그냥 데뷔를 시킨다. 쟈니스 회사는 우리나라로 치면 에스엠, 와이지, 제와피 같은 대형기획사인데 쟈니스가 할아버지인데도 꽃미남 남자의 외모를 선호했다. 쟈니스 출신으로 기무라 타쿠야가 있는 스맙이 있겠다

이 모든 게 아베 때문이기도 하다. 그 녀석은 자민당 집권 56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베가 정권을 잡으면서 일본은 전체주의 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아베정권은 우경화다. 전체주의는 정권에 쓴 소리를 하거나 반하는 문화는 퇴출되어 버린다. 지난 번 소녀상 전시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빤스 목사 전광훈을 보면 대통령의 목을 따야 한다며 사람들에게 돈을 걷는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하게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대중문화가 발전을 한다. 아베가 존경하는 인물이 요시다 쇼인인데 이 사람이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우긴 최초의 인물이다. 일군만민론을 주장한 사람인데, 천하는 천황이 지배하고 그 아래 만민은 평등하다는 것이다. 국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요시다 쇼인의 제자로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을사늑약을 강요한 이토 히로부미가있다. 아베의 고조부 오시마 요시마사는 1893년 고종이 잠들어 있을 때 쳐들어가서 총질을 했고 서문을 폭파했고 고종을 잡아서 동학군을 잡는데 전시 작전권을 일본에 넘기게 했다

아베는 미쳤다. 아베가 있는 한 일본에게 좋을 리 없다. 그들은 엘리트주의가 강하기에 지배하는 자들이 있고 그 밑에 국민이 있다는 전체주의를 부르짖고 있다. 한국인들이 여행을 가지 않아 일본의 지방이 죽는 소리를 하는데도 꼼짝하지 않는 이유는 그 지역에 대체로 자민당 의원들이 하나 내지는 둘 정도 꼭 있다. 죽는다고 해도 자민당 의원들이 그걸 탁 막고 있다

시미캔을 비롯한 메구리 같은 잘나갔던 일본성인배우가 희망이 없는 일본을 탈출하려고 하는 이유가 납득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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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생활하면서 정말 필요 없는 곳이 동물원이다. 좁은 공간에 동물을 잡아와 가둬두고 우르르 몰려가서 시끄럽게 구경하고 인간들이 먹는 과자나 던지고 재미있다고 웃고 즐기면서 동물들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그로 인해 동물들은 치아가 빠지고 입이 비뚤어진다. 같은 생명의 시간을 고통으로 보내다 죽고 만다. 동물원은 돈이 많이 들고 어떤 나라는 전쟁이 나면 동물원 먼저 폭파시키는 메뉴얼이 있다. 인간을 즐겁게 해주었던 야생의 동물들은 인간의 전쟁 때문에 가장 먼저 죽게 된다

 

이 영화에 나오는 동물원은 그런 동물원이 아니다. 방사를 위해 다친 야생동물들을 치료하고 멸종위기의 동물을 보존하는 동물원이다. 이 동물원을 지키는 사람들, 동물을 자신보다 더 아끼는 사람들이 있다. 이 영화는 동물을 위해 생활을 바치는 이들을 그리는 영화다

 

다친 새 한 마리를 살리기 위해 이들은 인상을 쓰고 고민하고 약을 투여하고 붕대를 감는다. 이들은 다친 동물들에게는 자신밖에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열과 성을 다해서 다친 동물을 치료한다

 

돈도 많이 못 벌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 친구들은 동물 똥 치우러 가냐고 비아냥거리고 동물가둬 놓고 괴롭힌다는 소리도 들어가면서 이들은 방사를 위해 동물 치료에 힘을 쏟는다. 이들을 이렇게 움직이게 하는 게 ‘신념’이다. 이 세상은 천 명 중에 한 두명 숨어 있는 신념이 있는 사람들로 인해 삐거덕거리지 않고 돌아간다

 

이들은 나이가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멸종위기의 동물을 보존하려고 한다. 다친 동물을 치료하고 동물의 세계에서 인정받지 못한 새끼 새를 살리려 필사적이다. 때로는 야생의 동물들에게 공격을 받아서 상처가 나고 피를 흘리기도 한다. 이들이 그러면서도 이렇게 하는 이유는 그저 동물이 좋아서다

 

부리가 틀어져 야생에서는 먹이를 먹을 수 없어서 구조된 독수리가 치료되는 동안 살이 쪄서 날 수가 없게 되었다. 여기에 동물 야생재활치료사가 붙어서 몇 달을 훈련을 시켜 2미터밖에 날지 못하는 독수리의 체중을 줄이고 비행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런 모습은 꽤 감동적이다. 감동적이라는 감정은 인간이 느끼는 것이고 동물의 입장에서는 인간이 왜 이러는지 알지 못한다. 인간이 자신을 괴롭히는 줄 안다. 그래서 인간에게 공격적이 되는데도 수의사들과 사육사들은 그런 위험을 뛰어 넘어서 독수리의 방사를 위해 애쓴다. 정말 누구하나 알아주지 않는 일이지만 이들은 자신의 일처럼, 자신의 가족처럼 그 일을 한다

 

점박이 물범 에프소드는 새끼 물범이 물에서 뭍으로 나오지를 못해서 그냥 뒀다가는 물범이 물에 빠져서 죽는 이상한 일이 발생하기에 물에서 새끼를 건져 올려준다. 그런데 또 물범 엄마 입장에서는 새끼를 보호해야 하니 인간이 다가오면 으르렁 거린다. 거리를 두고 밀대 같은 것으로 새끼가 물에 빠져 죽지 않게 하려고 밀어 올리며 사육사와 수의사들이 새끼 때문에 물범우리를 24시간 돌아가면서 돌본다. 새끼는 젖도 잘 못 빨고 던져주는 물고기도(먹으라고 풀어 놓은 미꾸라지를 보고도 뭐지? 하는 표정과 미꾸라지가 팔딱 거리면 놀라기도 한다) 잘 못 먹는데 나중에는 치료가 잘 되어서 물고기도 잘 먹게 되고 서식지인 백령도 바다에 방사를 하는 계획에 돌입한다

 

이 다큐 영화의 압권은 말미에 모두가 매달려 호랑이 박람이의 건강을 지키려고 애쓰는 장면이다. 박람이는 항공이와 함께 새끼때부터 이곳에서 자랐는데 이제 항공이는 없어졌고 혼자 쓸쓸하게 좁은 우리 속에서 늘 엎드려 있다보니 살아있는데도 욕창이 심해지고 근육과 뼈가 퇴화되었다. 이들은 박람이를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과 할 수 없을 정도로 노력을 쏟아 붓는다

 

영화 제목이 동물원이 아니라 ‘동물, 원‘인 이유는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야생의 동물이 다쳐서 이곳, 다큐의 장소에서 치료를 받고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는 것, 계속 원을 그리며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로 동물, 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살=48.6살, 5살=56.8살, 7살=62.1살, 10살=67.8살, 13살=72살, 15살=74.3살, 18살=77.2살, 19살=78.1살, 20살=78.9살

이것은 개의 나이를 인간나이로 환산한 것이다. 개는 반려견이라 말하지만 집이 마치 동물원처럼 그저 갇혀 지내는 개도 많다. 개는 주인과 떨어져서는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이다. 개는 친구보다 주인이 더 필요한 이상한 존재이기에 집을 동물원처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외로워서 개를 키우면서 개를 외롭게 하는 게 얼마나 이기적이고 잘못 되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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