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일본인들은 고양이를 이렇게나 사랑하는 것일까

올해 불과 6개월 만에 고양이를 다룬 일본 영화를 세 편이나 봤다. 그들의 고양이 사랑은 이렇게 상상 속에서 피어나 영화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매일 그 시간에 길고양이들의 밥을 주로 가는 모친과 옥신각신하는 나에게 나무라고 싶은 심정이다

길고양이 나나는 늘 자신에게 먹이를 주는 사토루와 밀땅을 한다. 그러던 중 자동차에 치여 죽음 직전까지 간 나나는 사토루를 애타게 부르고 사토루는 나나를 구해주면서 같이 지내게 된다. 버려진 길 고양이 나나를 애지중지 키우는 사토루 역시 부모님이 버려진 사토루를 아기 때 데리고 와서 애지중지 키웠는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현대판 버전 같기도 한 영화 ‘고양이 여행 리포트’이다

애묘인들은 푹 빠져서 보게 되고, 보고 나면 아마도 퉁퉁 불어서 물에 데쳐진 시금치가 될 것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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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바다 근처는 습도가 낮아서 햇빛은 강하지만 그늘은 아주 시원한 날의 연속이다. 바닷가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으면 바다가 밀려오는 소리가 일정해서 꼭 연주를 듣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파도가 기분 나쁘지 않게 밀려올 때 한창 연습 중인 고등학생들 연주자들의 연주를 듣는 것 같다. 프로의 냄새는 안 나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아마추어의 연주 같아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바다는 그렇게 말을 한다. 너무 몸에만 신경 쓰지 마라, 중요한 건 마음일지 모른다. 마음의 체형도 잡아주어라, 몸에 신경을 쓰는 것의 3분의 1만이라도 마음을 잡아주라고 한다. 요즘의 너를 봐라, 생활에 급급하고 조바심이 가득하다, 매일 글을 적는 건 좋지만 필요 이상으로 많은 양의 소설을 써 나가고 있다, 소설을 적어서 돈을 벌려고 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마음을 팽개치고 불안하게 달려가려고 하는가,라고 말을 한다.

바다가 이런 타개책을 알려주기도 한다. 바다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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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 3의 제목은 ‘슈퍼맨과 클라크’이다. 슈퍼맨 3에서는 스몰빌이 나오고 다시 스몰빌로 가게 된 슈퍼맨이 그곳에서 예전 학창시절 좋아했던 여자 동창을 만나게 되고 그녀의 아들을 구해주면서 마을 행사에 초대되었는데 거기서 슈퍼맨의 힘을 빼앗는 크립톤(을 만드는데 재료 하나를 몰라서 니코틴으로 대처해서 만든 조금 이상한)을 받았는데 잘못 만들어진 크립톤때문에 바로 죽지는 않지만 해리성 슈퍼맨이 처음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클라크와 검은 슈퍼맨과 대결, 초자아를 넘어선 이드와 대결하는 구도를 슈퍼맨 3에서는그리고 있다

슈퍼맨 3이 재미있는 점은 처음으로 영화 전반에 컴퓨터가 등장하고 알아서 생각하는 슈퍼컴퓨터의 무서움도 나온다. 이후 5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컴퓨터와 인간과의 갈등을 비슷하게 그려내고 있으니 슈퍼맨 3의 컴퓨터 등장은 꽤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 어느 영화의 사무실에서는 타자기가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슈퍼맨 3에서는 전자 펜도 나온다. 전자 펜으로 도스 같은 깜빡이는 화면에 지우고 줄을 긋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 슈퍼맨 3에서 원작에서의 빌런인 브레니악과 슈퍼걸이 같이 등장할 뻔했었다. 하지만 슈퍼맨 3부터 위태하던 크리스토퍼 리브의 시리즈는 슈퍼맨 4에서 삐거덕거리면서 중단되었다. 만약 브레니악과 슈퍼걸이 등장했다면 판도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제작이 확실했던 ‘슈퍼맨 리브스’에서 주연이 니콜라스 케이지로 확정되었다는 것을 아는가. 만약 니콜라스 케이지의 슈퍼맨이 나왔다면 덜덜덜

슈퍼맨 3에서는 1, 2편보다 확실하게 그래픽이 좋아졌다. 3에서는 이드의 검은 슈퍼맨이 술에 째리고, 피사의 사탑을 바로 세우고, 올림픽의 성화를 꺼트리는 등 삐뚤어질 테다!의 슈퍼맨을 볼 수 있어서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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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어쩐지 키보드로 글을 적는 것보다 폰의 자판으로 글을 쓰는 게 더 편해진 것 같다. 키보드로 글을 적다 보면 팔목이나 손가락이 무리를 한다며 신호를 보내는데 폰의 자판은 아무리 오랫동안 글을 적어도 전혀 그런 기미가 없다. 그렇다고 자판으로만 적어야 하는 글을 폰으로 적을 수도 없다.

매일매일 자판으로 3시간 정도 글을 적고 있는데 손에 무리가 오는 신호는 더 자주 많아지는 것 같다. 자판으로 글을 적는 건 테이블이 반드시 있어야 가능하다. 오래전에는 책상과 전등이 글을 쓰는 필수 요소였지만 이제는 인공 광원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게 되었다. 게다가 폰으로 글을 적는다면 책상도 없게 되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는 2G폰 메시지 보내는 란에 떠오르는 글을 적어서 500자 꽉 차게 글을 적어서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그것을 다시 저녁에 워드로 작업을 했다. 더 이전에는 주머니에 늘 수첩과 볼펜을 가지고 다니면서 뭔가 적고 싶은 글이 있으면 길거리를 걷다가도 벽에 대고 글을 적어 놓고 저녁에 워드로 작업을 하곤 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책상과 불빛은 반드시 있어야 했다. 근래에는 폰의 기능도 화면도 자판도 좋아져서 이전에 반드시 필요하던 요소들이 전혀 필요 없게 되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생각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글을 적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수첩에도 무엇인가를 많이 적는 편이지만 오랜 시간 적을 수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글자를 못 알아볼 정도로 희한해진다. 폰으로 글을 적는 것이 글을 쓰는 것의 최적화가 되었다는 건 폰이 이제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가장 일선의 물품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동을 하며 티브이를 보는 날이 올 거라고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집안에서만 보던 티브이를 쿠션보다 작게 만들어서 그것을 들고 어딘가에 가서 전선을 꼽아 티브이를 보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몹시 신기해했다. 작은 화면에 티브이가 나오는 것도 신기했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말을 하는 것도 신기했다. 하지만 주파수 때문인지 잘 나오는 티브이를 보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게다가 초기 이동식 티브이는 흑백이었다.

그러던 시대를 지나 들고 다니는 조그만 액정 티브이가 나왔다. 시디플레이어만 한 아주 작은 티브이. 컬러에 무선에 이동을 하면서 티브이를 보는 것이다. 하지만 정규방송은 저녁에만 했고 역시 주파수로 움직이며 티브이를 보는 것이 만만찮은 일이었다. 오래전 고속버스에 달린 티브이로 고속도로를 달리며 티브이를 시청하기는 힘들었다. 주로 비디오테이프를 틀어 주었다.

하지만 승객 모두를 매료시킬 영화를 고른다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기사는 아마도 늘 가지고 다니는 테이프 중에 아무거나 틀어 놓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작 기사는 영화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모든 어려운 것들을 뛰어넘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모든 영상을 실시간이든 지난 영상이든 전부 이동을 하면서 볼 수 있다.

게다가 실시간으로 참여도 할 수 있다. 참여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 댓글, 바로 글을 적는 것이다. 짤막한 한 줄에 내 생각을 녹여내는 사람들을 보면 이 사람들은 정말 작가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폰으로 글을 적는다는 것이 특별할 것은 없다. 단지 바다에 앉아서 바다를 보면서 바다에 관한 글을 적고 있으면 꽤 생생하게 바다의 흐름을 글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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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에서 몰카 두 번 걸리면 폐업처리를 한다고 한다.
한 번 걸리는 건 괜찮다는 말이지.
도대체 법이라는 게 누구를 위한 걸까 .

왜? 한 번 살인하는 것도 봐주지그래.
이렇게 무서워져가는 요즘 법이라는 것은 누구를 위해 버티고 있는 제도일까

선과 악의 구분은 어디에서 결정짓는 것일까

강도에게 들린 가위와 의사에게 들린 가위는 용도가 다르다.
하지만 강도가 든 가위로 사람을 구했다면?
의사의 손에 들린 가위로 환자를 죽었다면? .

선과 악의 정의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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