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메이지 이전 시대에 다무라 스까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시기에는 한문으로 탁광이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열도에 기근으로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극에 달했다. 그때 탁광이라는 스님이 무를 절여서 간이 안 된 곡기와 같이 먹게 했다. 그것이 탁광이었는데 발음하기가 힘들어 닥광 따꽝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와 함께 일본 국민들에게 굶지 않고 곯지 않을 수 있도록 식문화를 발전시킨 사람이 다무라 스까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의 방법으로 나도 밥을 먹었다. 모두 스까 묵는 것이다. 다 스까 묵으면 맛있는 끼니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라쇼몽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50년대 영화로 1910년대에 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이 원작이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를 나는 딱 두 편을 봤는데 라쇼몽과 7인의 사무라이다. 영화배우들이 요즘만큼 없어서 여기저기에 같은 배우들이 비슷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7인의 사무라이는 4시간 가까이 되는 러닝타임에 50년대 일본의 산속에서 한마을을 지키는 이야기지만 보다 보면 빠져서 보게된다. 최근에 이병헌과 스타 로드의 서부극으로 리메이크 되었다. 라쇼몽 역시 보다 보면 인간 내면에 대해서 흑백의 영상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라쇼몽의 이야기는 대부분 알고 있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쓴 원작 나생문, 즉 라쇼몽의 한 구절을 읽어보면 이후에 아쿠타가와 상이 탄생된 것에 고개를 끄덕하게 된다

 

시체의 머리카락을 뽑아서 가발을 만들 거야.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을 뽑는 것은 좋다고 할 수 없지만, 내가 방금 머리카락을 뽑은 이 계집은 토막 낸 뱀을 마른 생선이라고 팔았어. 염병에 걸려 죽지 않았다면 지금도 팔고 다니겠지. 나는 이 여자가 한 일을 나쁘다고 생각지 않아.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굶어 죽었을 테니까. 그러니 내가 한 일도 나쁘지 않아. 이 노릇도 안 하면 굶어 죽게 생겼거든. 이 여자도 아마 내가 하는 짓을 너그럽게 보아줄 거야.

노파의 말을 듣고 있던 사내의 마음에는 차차 어떤 용기가 솟았다.

정말 그래? 그럼 내가 네 껍질을 벗겨가도 날 원망하지 않겠지? 나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판이란 말이야.

사내는 재빨리 노파의 옷을 벗겼다. 그리고는 다리에 매달리는 노파를 거칠게 시체 위로 걷어차 버렸다-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라쇼몽 중

 

아쿠타가와는 병약한 체질과 고질적인 정신병에 시달리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라는 구절을 남기고 젊은 나이에 자살을 했다. 이후 다자이 오사무가 자살을 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예술가들의 자살을 경멸보다는 숭고에 가깝게 대했다. 인간생활에 개신교가 들어옴으로 자살이라는 것은 죄악에 가까운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 심각한 고뇌가 있었지만 집안사람들, 가족이나 일하는 사람들과는 돈독했다. 하지만 자신과 가장 친했던 셋째 형이 병으로 죽고 나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자이 오사무는 ‘직소’라는 소설에서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 유다에 관한 이야기를 다자이의 관점에서 썼다. 개인적으로는 어려워서 읽고 나서도 나는 누구? 같은 느낌이었지만 다자이는 그만큼 개신교에 대해서 깊게 들어가 있었다. 예술가들이 자살이 오래전만큼 숭고하게 받아들여지진 않지만 얼마 전 마광수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좀 벗어난 이야기로 메탈리카의 제임스 해필드의 엄마는 절실한 개신교 신자였는데 병을 기도로 치유하려 하다가 죽고 만 것에 대해서 제임스는 굉장히 과격해지고 개신교에 대한 불신이 들기 시작했었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우리의 몸과 아이는 신이 주신 것이라는 전제가 붙어서 우리 몸이지만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살은 물론 당사자나 사랑했던 주위의 사람들에게 아픔을 준다. 해서는 안 되지만 자살이 죄악이고 나쁜 것의 범주에 함축하고 간단하게 말할 수는 없다. 이제 낙태죄도 사라지는 시대가 되었다

 

예전에 (지금은 아마 없어졌을) 라쇼몽이라는 술집에 갔을 때 어느 손님이 주인에게 라쇼묭이 뭡니까,라고 물었을 때 쥔장이 그거 일본 영화 같은데요?라고 해 버려서 에이 뭐야 싱겁게.라는 생각을 했다. 손님들이 라쇼몽에 대해서 꽤 궁금해할 텐데, 그러면 라쇼몽의 이야기를 짤막하게 해주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과 그의 짧은 이력(요컨대 아쿠타가와는 나쓰메 소세키의 문하생으로 있었다는 둥)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면 손님들이 더 재미있어 할 텐데. 어차피 일본 이름으로 된 술집에서 일본 안주와 일본 술을 파는데 그 정도 서비스는 괜찮을 것 같은데

 

아쿠타가와 상을 노리는 고마쓰의 목적은 문단을 조롱하기 위해서였다. 어둠침침한 동굴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서로 칭찬하고 핥아주는 한심한 자들을 조롱하기 위해서 덴고를 끌어들이고 이렇게 해서 두 개의 달이 있는 거대한 일큐팔사의 서사가 시작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래된 작은 초등학교의 복도를 걸었다. 아직 나무로 된 복도였다. 걷다가 삐거덕 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물밀듯이 밀려오는 작은 기억들. 삐거덕 거리는 소리가 좋아서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면서 삐거덕 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가끔 그런 소리가 있다. 잊고 지냈던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소리. 그것도 강력하고 강렬하게 .

 

집에 관한 다큐영화를 봤다. 오래된 집만 보여주는 이상하고 참 재미없는 영화였다. 재미는 없는데 보다 보니 그만 빠져들게 되는 묘한 영화였다. 재미없는 인간이 재미없는 영화를 보니 재미없는 시간이 모순적으로 다가왔다

 

집에 관한 다큐는 오래된 연립주택에 사는 오래된 집 주인이 오랫동안 살아온 자신의 집에 대해서 중요하지 않을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 뿐이다. 정말 재미없다. 집 주인이 집의 거실에 앉아서 보면 창문 밖으로 여름에 느티나무가 보이고 바람이 불면 느티나무가 움직이며 그 뒤의 숲이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소리가 마음을 확 잡아 끄는 것이다

 

쏴아아아아아

쌀을 씻는 듯한, 몽돌이 파도에 휩쓸려 가는 듯한, 시골의 개울가에 깨끗한 빗물이 쏟아지는 듯한 소리가 거실에 앉아 있을 때 바람이 불면 들리는 것이다. 강력하고 강렬하게

 

그 집의 다 큰 아들은 외지에 나가있다가도 가끔 집에 오면 그 소리를 듣는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어느 시점의 과거로 가 있다. 가방을 울러매고 뛰어서 학교로 등교할 때 라든가, 먹던 하드를 땅에 떨어트려 울던 때 라든가

 

집은 오래되고 오래되었지만 주변의 고즈넉한 풍경과 어울려 마음을 차분하게 해 준다. 집은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을 닮았다. 인간이 만든 물품 중에 유일하게 사람의 들숨과 날숨이 오고 가고 손때가 묻어야만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것이 집이다

 

집은 몇 개월 동안 비워 놓고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퀴퀴하고 곧 곰팡내가 퍼질 것처럼 죽어버리게 된다. 모든 물품이 사람의 손이 타면 망가지지만 집 만은 유일하게 사람의 손이 타야만 유지가 된다. 내 집에 앉아서 가만히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덜 불행한 것 같다

 

집은 우리에게 너무 힘들면 요만큼 기운을 내봐,라고 한다. 절대 이만큼 힘내라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들어오면 수고했다며 편하게 잠들라고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엑스의 토시는 상상이상으로 순진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이랬던 비주얼에서 머리를 자르고 화장이 옅어지고 결국에는 일반인 같은 모습으로 노래를 불렀던 토시는 아트 오브 라이프, 앨범 발매 당시 요시키에게 영어 발음이 구리다며 계속 영어 발음을 강요받고 어떤 면에서 그저 하나의 악기로 밖에 취급받았다 .

 

토시는 자신은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 같은 고뇌에 빠진다. 하지만 요시키가 부탁을 하거나 시키면 다 했던 토시는 그만 그 고뇌의 시기에 여자에게 빠지고 만다. 여자는 모두가 잘 아는 사이비 종교의 일원으로 토시를 쥐었다 흔들었다 하며 엑스를 악마의 밴드라고 주입을 시키고 거기서 탈퇴하기를 강요하고 벌어놓은 돈을 종교집단에게 다 갖다 바치게 한다

 

이 시기는 요시키의 불같은 성격이 극에 달해있었던 시기라 누구도 건드릴 수 없었는데 딱 한 사람 바로 히데가 그런 요시키와 멤버들의 가교 역할을 했다. 토시가 이렇게 된 사연을 말하자면 시간을 돌려돌려 엑스제팬이 엑스였을 시기, 인디밴드였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엑스는 한국인도 많이 좋아했던 비주얼록 밴드로 일본에서 최고의 음악을 하는 록밴드는 아니지만 액스의 활동은 영화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밴드의 멤버 하나하나가 전부 독특하고 사연이 많고 멤버 하나가 하나가 모여 밴드의 시너지가 폭발을 하는 밴드였다

 

엑스는 이미 인디에서는 유명한 밴드였다. 넘사벽이었다. 하지만 엑스는 고민이 있었다. 이 메탈이라는 장벽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인디에서는 스타였지만 버는 돈은 너무 적고 지출은 더 컸다. 각종 액세서리와 의상 때문에 지출이 심했다. 전기가 끊기고 물건도 훔치며 겨우 살아간다. 여기서 엑스는 현실과 타협을 하느냐, 록의 자존심을 지키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었는데 엑스는 현실과 타협을 하기로 한다

 

그러면서 금기시되는 티브이 출연을 하게 된다. 요시키는 이런 비주얼로 일반들과 육상 시합을 하기도 하고 초밥집에서 오르가슴 라이브를 한다. 유튜브에 있다. 무명일 때 엑스는 처절하게 엑스를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초밥집 사장님의 표정도 으

 

요시키와 베이시스트 타이지는 일본에 온 키스의 공연을 보고 그만 빠져들어버려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 요시키는 리더였고 드러머였으며 건반을 맡았고 대부분의 노래를 만들었다. 타이지는 베이스뿐만 아니라 기타도 끝장나게 쳤다. 하지만 타이지는 편곡에 굉장한 재능이 있었다. 타이지도 요시키만큼 성격이 불같고 개 같아서 후에 요시키와 대립을 하며 찢어지게 된다

 

기타리스트 히데는 요코스카 사벨 타이거의 해체 이후 미용사의 길을 걸으려고 하는데 요시키가 와서 간곡한 설득으로 엑스에 들어가게 된다. 기타 실력은 말할 것도 없지만 히데는 독창성으로 사람들의 인기를 흡수해버린다. 엑스의 인격자라고 불렸다. 골 때리는 멤버들 사이에서 정리를 해주며 엑스의 생명을 연장시켜준 장본인이다. 히데는 엑스의 얼굴이었다

 

파타의 이야기 부터는 다음에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요소로 꽉 찬 영화다. 달리기와 소설. 이 두 주제가 이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다. 타치바나는 늘 달린다. 왜 그렇게 매일 달리는 거야?라는 물음에 대답은 딱 정해져 있다. 달리면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달리지 못하는 날이 오기 때문에 달릴 수 있을 때 그 기분 좋음을 잔뜩 느끼는 것, 그것이다. 매일 숨을 할딱거리며 여기서 저기 끝도 보이지 않는 곳을 달리다 보면 여름에는 자칫 데드포인트까지 도달하는 아찔함도 느낄 수 있다. 꼭 약을 해야만 그런 기분을 느끼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 콘도 마사미는 이혼 남에 책을 너무너무 좋아하고 글을 쓰고 싶어 소설가의 꿈을 지니고 있지만 늘 좌절하고 만다. 하는 일은 패밀리 레스토랑의 점장. 손님들에게 맨날 굽신거리기만 하고 허술하고 꿈도 희망도 없지만 시간만 나면 책이 가득한 곳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그런 남자다

 

그런 이혼남에 별 볼 일 없는 아저씨를 좋아하는 육상 유망주였던 고등학생 타치바나의 이야기가 이 영화다. 타치바나는 일본 여학생 중에 가장 빠른 기록 보유자이지만 아킬레스건이 끊어짐으로 달리기를 포기하고 만다. 그렇게 좌절을 겪는 여고생이 좌절을 겪어버린 이혼남을 좋아하는 이야기

 

영화에는 좋은 대사가 나온다. 책은 일방적으로 추천받아서 읽는 건 아니야, 그 책이 안 맞으면 계속 읽는 게 고통이 되거든.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나에게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늘 집에 책이 있으면 그걸 읽으라고 해버리는데 이런 이유다. 책을 추천해 달라는 것만큼 좀 이상한 건 없는 것 같다. 책을 추천하는 건 음식을 추천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이 영화에 대해서 평론가보다 일반인이 더 멋진 댓글을 남겼는데 평론가는 여고생과 이혼남 아저씨의 어쩌구 하는 식으로 댓글을 남겼다면 어떤 일반인은 ‘이 영화의 주제는 이혼남 아저씨와 여고생의 사랑이 아니라 좌절에서의 회복이다’라는 댓글을 남겼다

 

아마도 평론가는 달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소설을 쓰고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