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금기를 깨버린, 기존의 콘크리트처럼 굳건한 ‘틀’을 콘크리트로 깨버린 건축가가 있었으니 그가 안도 다다오다. 안도 다다오의 이야기는 워낙 유명하고 방대하고, 또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매년 안도 다다오의 이야기를 적어놔서 썩 새로울 것도 없지만 ‘틀 깨기 4부작(영화, 음악, 사진, 건축)’을 하기로 했으니 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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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잘 알겠지만 안도 상은 쌍둥이다. 입이 거칠고, 거친 만큼 성질도 더럽고, 하지만 건축으로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은 자연과 같은 묘한 사람이다. 어린 시절 권투를 하다가 건축으로 전향한, 제대로 건. 축. 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보라, 지금은 어떤가. 그것 자체가 틀을 깨버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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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을 처음 본 것이 고등학교 사진부 암실에서였다. 당시 암실에는 금발의 제니퍼가 여체를 뽐내는 사진을 들여다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을 때 건축과를 진학한 선배가 들고 온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 전집을 봤는데 그만 빠져들어 버렸다. 아아 세상에, 내 주위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건축물. 안토니오 가우디의 아르누보와는 또 다른, 그러니까 인간이 몸을 말고 들어가서 생활할 수 있는데 점점 몸이 양수 속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느껴지는 건축물, 오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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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진과 디자인에 심취해서 디자인 학원에 1년 가까이 다니고 있었는데 방향을 틀어 나와는 무관한 건축과를 가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내 인생의 큰 실수였는데 그저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이 좋아 건축과를 갔다가 성적은 바닥을 기었고 건축 사진만 찍으러 1년을 그렇게 다녔다가 졸업의 영광을 못 누릴 뻔했는데 방대한 양의 건축 사진들과 그나마 투시도를 제법 그렸고 모델링에서 점수를 받아서 겨우 졸업을 했다. 그때 나의 동경은 오모테산도를 누비며 안도 다다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것이었다

안도 다다오는 건축물이 들어설 것 같지 않은 곳에 당당하게 보란 듯이 건축물을 세웠다. 안도는 일본 주택에 큰 관심을 보였다. 데면데면 붙어있는 오사카의 주택지에 도시게릴라의 집 제1호 도미시마 주택을 설계하는데, 지금 가서 함 보라 전혀 촌스럽지 않다. 그 속에 속 들어가면 정말 나오기 싫을 정도로 집을 살갑고 멋지게 지었다. 지나가면서 일별하는 것만으로도 머리에 딱 새겨질 만하다. 하루키의 글에 자주 등장하는 오모테산도와 오모테산도 힐즈의 거리를 몽땅 안도 다다오가 설계를 했다. 긴 도로가 죽 이어지는 양옆으로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들이 거짓말처럼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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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축물을 땅속에 묻은 지추 미술관(땅속에 박힌 미술관의 중정인 삼각 코트에는 해가 뜨면 해가 고스란히 그 속에 담긴다. 나의 얄팍한 언어로 표현하기 힘들다. 이해 바람) 등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축물은 이제 신화가 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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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는 왜 남들이 꺼려 하는 힘든 건축물을 창조하는 것일까.

안도는 처음부터 타협하기를 싫어 했다. 좀 더 잘 보이기 위해, 이득을 취하기 위해 건축물을 창조하는 행위를 버렸다. 오로지 희망과 도전으로 건축물을 설계하는 것이다. 건축가들이 가져야 할 바람직한 덕목이다(정규 이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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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안도는 70년대 절벽을 깎아서 주택, 록코 집합 주택을 건축하기로 한다. 모든 것이 끝났을 때 10년이 지나갔다. 록코 집합을 짓기로 하고 스케치를 하고 시공을 하는 동안 법규제라는 ‘틀’에 강하게 부딪힌다. 관료들은 시공허가를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허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안도는 그에 굴하지 않고 건축주의 동의를 얻어내고 스티브 잡스처럼 같이 일하는 젊은 건축가들에게 우리가 목숨을 걸고 건축물을 지어야 그 속에 들어가서 생활을 하는 사람은 목숨의 위험을 받지 않는다,라며 끝까지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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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죽은 땅)에 건축을 짓기로 하고, 법이라는 큰 규제에 부딪히고, 한계 건축을 뛰어넘고, 목숨을 건 공사, 그리하여 10년 만에 록코 집합주택이 완성된다. 83년에 록코 집합주택이 완성될 즈음, 비슷하게 지어 달라는 제의가 들어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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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 마침내 완성된 록코1, 록코2, 록코3 집합주택은 모두가 서로 연결된다. 건축주가 난색을 표하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포기를 하려고 할 때 안도는 말했다. “설비는 결국 망가질 날이 오지만 건축을 구성하는 사고방식은 살아남습니다. 긴 안목으로 보면 이것이 더 질 높고 가치 있는 건축입니다”라며 느긋하게 버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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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의 유명한 건축물 말고 이런 곳에 한 번 가보고 싶지 않습니까. 관습과 틀을 깨버린 곳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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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중에 일본 사진계의 ‘틀’을 깨버린 사진가가 있었다. 열도에 사진으로 대 파란이 일어난다. 때는 95년 캐논 공모전이 있던 날이었다. 사진의 대국답게 엄청난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공모전에 출품을 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의 눈을 사로잡는 작품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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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 중에는 사진의 신이라 불리는 아라키 노부요시도 있었다. 이건 별로군, 이게 뭐야? 이건 사진이라 할 수 없군, 예술? 에응 하며 휙휙 던지고 있었다. 올해는 글렀구나, 이러면서 지루한 심사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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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한 포트폴리오에서 앗 이런! 발칙하고 사랑스러운 사진을 담아낸 이가 누구지! 하게 된다. 95년도에 혜성처럼 등장해서 열도를 사진으로 뒤집어 버린 ‘히로믹스’였다. 히로믹스는 포트폴리오 ‘세븐틴 걸 데이즈’라는 36페이지의 자작 사진첩으로 대상을 차지하면서 일본의 기성 사진가들을 위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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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찍어놓은 세븐틴 걸 데이즈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자동카메라 코니카 빅미니로 여고생이었던 자신과 친구들의 일상을 스냅으로 담아낸다. 친구들은 스스럼없이 그녀에게 속옷 입은 모습을 카메라에 담게 한다. 히로미스는 평소의 일상에서 타인에게 들키면 안 되는 여고생의 터부 같은 모습을 적나라하게 또는 담백하게 그리고 거짓 없이 담아낸다. 포트폴리오 제목처럼 17세 당시 일본 여고생이 일상 속에서 느끼는 걱정, 불안, 미래, 밝음, 변칙 등의 모습을 그녀만의 방식으로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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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는 순간은 찰나로 지나가지만 사진이란 사진을 찍고 현상을 하고 인화를 하면서 그렇게 펼쳐진 수많은 사진 중에 몇 장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사진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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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벗어난 이야기로 저 위의 사진들은 내가 촬영한 것으로 지금은 이렇게 별 볼 일 없는 인간이지만 사진 전시회도 여러 번 했었다. 인기는 없었지만. 이 구역에서 얼마간 사진으로 미친놈이 나였지만 지금은 시들, 시들시들해진 인간이 되었다. 하지만 개인전을 몇 번 하면서 좋아하는 것에는 충분히 푹 빠질 여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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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사진에 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타인에게 자신의 일상을 드러낸다는 건 참 난처하고 힘들일이다. 다이앤 어버스가 소외된 자들의 사진을 담으려고 그들 곁으로 굳건하게 다가갔듯이 방법은 여고생들 가까이 다가가야 하고 친하게 지내야만 그녀들의 일상을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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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들은 밝고 웃음이 많고 즐겁지만 불안하고 불안정하다. 답답하다고 드러내놓고 마음껏 술을 마실 수도 없고 담배를 마음대로 피우지도 못한다. 수많은 생각들이 있지만 그것들을 입 밖으로 제대로 꺼내는 방법을 모른다. 그렇기에 그녀들에게 있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친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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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히로믹스로 돌아가서, 그녀는 공모전의 수상소감에서, 전 수동 카메라로 찍으면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자동카메라를 썼어요.라고 했다. 아주 유명한 수상소감이 되었다. 그건 구도 무시, 초점 무시, 심도 무시였다. 사진은 그 순간을 담아낸다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이 많은 사람은 신뢰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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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도 일본의 사진계에서는 그 일을 ‘사건’이라고 불렀다. 그 사건에는 세 가지의 객기가 만났다. 당시 심사 위원이었던 아라키 노부요시의 객기, 새로운 것을 바라던 일본 사진계의 객기, 자동카메라 한대로 은밀한 여고생의 불안을 담아내 전국 사진 공모전에 출품하는 히로믹스의 객기. 이 세 가지의 객기가 만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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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히로믹스의 카메라로 불린 코니카 빅미니는 열도에 불티나게 팔려 품귀현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색감이 아주 묘하게 좋다. 히로믹스의 사진은 배두나에게도 영향을 주었고 에프엑스의 앨범에도 영향을 강하게 주었다. 요즘 여자들이 화장실에서 셀카를 찍는 시초가 되기도 했다. 히로믹스는 그야말로 ‘틀’을 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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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디콘, 퀸의 베이스였던 존 디콘은 프레디 머큐리가 죽어 버리자 그대로 퀸을 떠나 활동을 접고 만다. 브라이언 메이가 주축으로 퀸을 이끌었지만 존 디콘은 프레디 머큐리 없는 퀸을 미련 없이 떠난다. 아니 음악계를 떠나고 만다. 존 디콘에게 그 어떤 부와 명예, 각종 명성은 시시하고 의미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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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의 전설인 레드 제플린, 이 위대한 밴드에서 드럼을 치던 최고의 드러머 존 본햄, 존 본햄은 술꾼으로 유명했다. 소문처럼 술을 너무 좋아해서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 집에서 보드카를 연거푸 40잔을 내리 마시고 잠이 들어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그해가 1980년. 레드 제플린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을 때였다. 드러머는 많고 새로운 드러머를 영입하면 되겠지만 존 본햄을 대처할 드러머는 없다며 그대로 레드 제플린을 해체해버린다. 존 본햄이 없는 레드 제플린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역시 부와 명성, 인기는 시시한 것이었다. 레드 제플린으로 음악을 같이 할 수 없다면 그저 시시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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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은 록을 하던 뮤지션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 정통 록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인도에서 10년간 기숙학교에서 보냈던 프레디는 학창시절에 밴드를 결성하고 키보드를 연주하면서 음악 활동을 했다. 프레디는 퀸으로 록의 ‘틀’을 깨버렸지만 음악계는 퀸을 이상한 ‘것’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퀸의 음악을 찾아서 듣기 시작했고 퀸이 움직이는 곳으로 따랐다. 틀에서 벗어나거나 틀을 깨버리면 사람들에게 공격을 받는다. 우리는 내색 안 하지만 우리와 다르면 잔인할 정도로 무섭게 공격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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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마지막 ‘라이브 에이드’ 공연은 실제를 그대로 되살렸다. 피아노, 피아노 위의 콜라까지 그대로 재현을 했다. 퀸은 음악평론가들에게 늘 저평가를 받았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틀을 깬 록을 했기에 불분명한 음악이라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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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퀸은 이에 휘둘리지 않고 하드록, 글램록, 프로그레시브, 펑크, 디스코, 오페라 록 등 새롭고 신선하고 때로는 기괴한, 지구상에 나와 있는 모든 음악을 건드렸고 멋지게 해냈다. 그리하여 사람들 마음을 움직였고 상업적으로 슈퍼밴드가 되었는데, 그럼으로써 음악평론가들에게는 더욱 쓴소리를 듣는 저평가 그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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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모든 음악을 앨범에 다루었고 다양한 음악을 접목시킨 가수가 있었다. 그 가수도 퀸의 굉장한 팬이었고 자신의 앨범도 퀸의 앨범 카버를 오마주 하기도 했다. 그가 바로 신해철이다. 신해철은 프레디 머큐리만큼 노래를 기가 막히게 부르지는 못하지만, 그래서 무릎팍 도사에 나와서도 도사에게 핀잔을 들어 먹었지만 신해철의 앨범을 들어보면 이 사람은 정말 음악을 사랑했구나, 이 사람의 돌파구는 음악이었구나,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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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의 음악을 신랄하게 저평가 한 여러 사람이 있지만 그중에는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도 있었다. 당시에 회사원이었던 이석원은 그 좋은 머리로, 그 글빨로 신해철의 음악에 대해서 오목조목, 길게도 써서 공격을 했었다. 후에 이석원이 음악을 하면서 신해철의 음악에 빠져들게 되어 그때를 반성하고 그 일화를 라디오 같은 곳에 나와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신해철을 찾아가 용서를 빌고 화해를 함으로 나중에 언니네 이발관 3집 광고의 내레이션을 신해철이 맡아서 해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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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이 이 세상에 없기에 비로소 그의 음악이 명반에 오르고 재평가를 받고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부분은 안타깝지만 퀸 역시 프레디 머큐리 사망으로 퀸의 음악이 재평가를 받는 기회를 얻었다. 이 두 그룹을 꾸준하게 지지한 음악평론가가 있었는데 임진모였다. 그는 시종일관 이들의 음악이 주는 즐거움, 놀라움에 대해서 책과 입으로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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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예술이지만 음반은 산업이기에 프로 가수가 되면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 그렇지만 퀸 이나 신해철을 보면서 음악 그 이외에는 시시한, 그래서 음악이 아니면 가족으로 눈을 돌렸던 이 미치도록 그리운 예술가들의 음악을 듣는다는 건 일상의 작은 기쁨이 확실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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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나오는, 상영관을 점령한 한국의 상업영화를 보면서 망작에 괴작이라 일컬었던 ‘리얼’을 다시 대하게 됩니다. 리얼을 다시 대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리얼은 아방가르드 한 맛이라도 있었습니다. 리얼을 보면 괴작이기는 하나 촬영, 이 하나를 잘 하려고 한 노력은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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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곡성을 그대로 리메이크한 여곡성은 무서운 영화였습니다. 우오오 소름이 돋고 극장을 박차고 나가버릴 정도로 무서웠어요. 정말 손나은이 대사를 칠까 봐 무서웠던 영화. 적외선카메라는 웬 말이며, 감독은 이 영화 관계자들은 도대체 왜 어째서 영화를 이렇게, 영화를 좋아하는 중학생들이 폰을 들고 촬영한 것보다 못 찍은 것에 대해 반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반성은 서영희를 향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졸작에 망작을 만들어 놓고 사람들의 주머니를 열어 손익분기점을 맞춰 자신의 배를 불리려고 하는 얄팍하고 괘씸한 생각을 하다니. 아무리 에이핑크의 팬들이 많고 충성도가 높다고는 하나 팬들이 등을 돌리면 더 싸늘해진다는 걸 모르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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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는 ‘틀’ 때문입니다. 흥행공식의 틀이 있는데 거기에 맞추어서 영화를 만들어서 홍보에 열을 올려 상영관만 확보하면 어느 정도,라는 얄팍한 생각 때문입니다. 그 틀의 공식에 맞게 영화에 나오는 배우가 마동석입니다. 동네 사람들로 인해 이제 마동석에 대해서 팬들 역시 등을 돌리게 됩니다. 곧 나올 성난황소 역시 불 보듯 뻔한 영화입니다. 오히려 미션임파서블처럼 범죄도시의 마석도의 캐릭터 시리즈를 만들면 더 나을 뻔했지만 틀에 박혀서 영화를 만들어내면 이렇게 졸작들만 나옵니다. 마동석은 소속사인 티씨오에서 영화를 만들면 배우를 섭외하기도 하고 제작에 같이 참여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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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든 이렇게 틀에 박혀서 영화를 만들어 사람들의 주머니를 열려고 합니다. 요즘의 관객들은 바보들이 아니거든요. 이 ‘틀’이라는 건 영화 판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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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중학생이 추락사한 사건 아시죠. 죽은 친구를 괴롭힌 아이들이 죽은 친구의 잠바를 입고 걸어 나오는 장면을 봤을 겁니다. 이 아이들을 처벌하는 청소년 법은 20년 전? 아무튼 그때 만들어 놓은 ‘틀’입니다. 바꿀 생각도 없는 ‘틀’에 맞게 일을 처리하려다 보니 사람들의 의식구조에 전혀 맞지 않는 결과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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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핫 한 사건으로 번진 이수역 사건으로 래퍼 산이와 연예인 오초희가 수면 위로 떠올랐어요. 어떤 식으로든 공격을 받고 있는데요. 산이의 페미니스트의 가사 내용은, 나는 남자로 여자를 좋아하고 이해하는 페미니스트인데 속으로는 여자를 혐오하는 남자의 내용이다. 주어가 그렇고 그런 ‘남자’ 내지는 겉과 속이 다른 ‘나’를 말하고 있는데요. 오초희는 나도 머리가 길 때까지 밖으로 나가면 안 되겠다,라고 썼다가 공격을 받고 있는데 이 사건은 머리가 짧아서 폭행이 이루어 진것이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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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틀의 구조는 정치적으로 대립이 되었습니다. 신지예와 이준석의 대립으로 틀과 틀의 논리 싸움이 되었습니다. 이런 문제가 터지면 논리 싸움에서 이기는 쪽이, 논리 싸움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쪽이 이기게 되는 것인데, 이기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사람들은 생각 이상으로 많고, 많은 사람들의 각각의 생각은 전부 다르기 때문에 어떤 ‘틀’ 속에 모두를 집어넣을 수는 없는 것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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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사회에서 실은 민주주의 거의 없다고 봅니다. 민주주의라는 부드러운 껍질을 벌리면 그 속에는 딱딱한 상하 구조의 틀이 자리를 꽉 잡고 있습니다. 학교가 그렇죠, 회사가 그렇죠, 영화판이 그렇죠, 공직사회는 더 그렇죠. 이들의 근간이 되는 가정 역시 틀이 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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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만들어진 한국의 상업영화 중에서 틀을 깨버린 영화가 암수살인이었습니다. 영화의 틀을 깨 버렸어요. 흔한 흥행의 공식을 무너트린 영화였습니다. 대도시 부산의 화려한 모습을 없애고 스산한 골목이나 범죄가 일어날 법한 외진 곳을 배경으로 나오는 것도 그렇고, 사투리 때문에 말은 많았지만 주지훈의 캐릭터도 틀에서 벗어났어요. 폭력도 영화 VIP처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폭력이 없습니다. 폭력의 폭과 넓이와 깊이를 보는 이들의 상상에 맡깁니다. 그래서 분노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잘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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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 아이돌이 주연급으로 나오는 건 나쁘지는 않습니다. 아이돌은 긴 시간 동안 엄청난 노력을 통해 카메라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요. 시선처리나 동작들을 무리 없이 해냅니다. 하지만 연기 역시 노래 하나를 세상 밖으로 내놓기 위해 노력을 했듯이 그렇게 연습과 노력을 해야 그것이 겨우 화면 밖으로 돋보이는 것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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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타인은 한국이 세 번 째인가? 두 번째 리메이크 작품이었고 학원물은 아직 일본이 잘 만들고, 보헤미안 랩소디 같은 영화를 굳이 만들 필요는 없지만 괜찮은 성장영화는 상영관에서 밀리고 틀에 맞추어서 상업영화를 만들다 보니 생각 이상으로 졸작이 많이 나오고 있네요. 근래의 틀에 박힌 상업영화를 보면서 나 역시 틀에 박혀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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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8-11-23 1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괴에서 혜리의 대사, ˝넌 누구냐!˝란 들었는 때 얼굴에서 경련이 튀어 나오려 하더군요

교관 2018-11-23 18:16   좋아요 0 | URL
저는 경련이 입 밖으로 나와 버렸습니다

세상틈에 2018-11-23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년 전부턴 저런 영화를 보면 그냥 화만 났지만 이젠 한국 영화계 자체가 막장을 향할까 두려워집니다...

교관 2018-11-24 15:09   좋아요 0 | URL
튼튼이의 모험이나 박화영 같은 영화도 멀티플렉스 상영관에 당당하게 걸렸으면 좋겠어요. 좋은 영화들은 사실 많은데 볼 수가 없으니
 

 

김약국의 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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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림짐작으로 이 글을 보는 사람은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은 읽어봤으리라 생각하에 말을 하려고 한다. 나는 김약국의 딸들은 읽어 봤지만 토지는 읽다 실. 패. 했다. 톨스토이의 부활도 대작이지만 어쩌면 토지가 더 대작일지도 모른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토지도 읽어보고, 김약국의 딸들도 한 번 더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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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으로 김약국의 딸들은 인간이 가지는 잔인함, 그리고 무력함, 인간이 인간에게 행 할 수 없는, 더 없는 잔인함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잔인함이란 인간이 언제나 가지고 있는 것으로 어떤 무엇인가에 의해서 불이 붙으면 자제를 잃고 절제가 어려워 본성에 의해 움직이고 본능에 의해 사고하며 생각하기를 꺼려 하게 된다. 어떤 무엇인가에는 나 이외의 타인, 그리고 환경이 내가 아닌 나를 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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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망과 타락과 욕심이 얼마나 무서운가. 그것이 너무나 명료하게 드러난다. 불륜을 저지르고 살인을 하고 폭력이 난무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남편이 아내를 폭행하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다. 그건 딸의 엄마도 마찬가지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할 줄 아는 건 신령님께 그저 비는 무지뿐이다. ‘까마귀야 까마귀야 돈 좀 갖다 주라’ 

행복은 신이 갖다 주리라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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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비극이다. 이런 비극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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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녀 용숙은 일찍 과부가 되고, 그녀의 아들 동훈을 치료하는 병원 의사와 정을 통한다. 이 사건 때문에 용숙은 고통을 받지만 용숙은 돈의 노예가 된다. 둘째 용빈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교육을 받지만 애인의 배신으로 상처를 받고 결혼에서 멀어진다. 셋째 용란은 관능적인 몸매와 미모를 가지고 있지만 본능적으로 움직이다 집안일을 도와주는 하인과 애욕에 빠졌다가 아편쟁이에게 시집을 가서 매일 두드려 맞는다. 김약국 집은 점점 몰락해가고 재산이 다른 사람의 손에 옮겨가면서 넷째 용옥은 전혀 정을 나누지 못하는 남편과 별거하다 시아버지가 겁탈을 하는 바람에 피하여 뱃길에서 죽어버리고, 시간이 지나 집에서 쫓겨났던 하인이 돌아와 용란에게 같이 도망칠 것을 제시하지만 이 사실을 안 남편인 아편쟁이에게 하인(황해)과 용란의 어머니(황정순)는 살해당한다. 그로 인해 용란은 정신이 나가게 된다

.

 

말 그대로 김약국의 딸들은 비극을 그리고 있다. 세상에 이런 비극이 있을까. 소설과 영화는 조금 다르다. 소설은 터널의 입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 아주 암울한 비극의 절정으로 끝나는데 영화는 비극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뉘앙스로 끝을 맺는다. 유현목 감독은 문예영화의 시초라 일컫는 ‘오발탄’을 만든 감독이다

.

 

60년대 영화에는, 그럴 수밖에 없지만 배우들이 열연을 했다. 용빈으로 나오는 엄앵란은 여러 영화 중 김약국의 딸들에서 아주 예쁘게 나온다. 불륜을 저지르는 장면이나 미쳐버려 칼을 들고 살해를 하는 장면은 정말 미치지 않았나 할 정도로 연기를 해내고 있다. 영화가 소설과 다른 점은 당시의 통영의 풍경을 자세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소설을 읽으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지만 그 상상 속의 바다가 한정적이기도 하다. 영화 김약국의 딸들에는 생생한 60년대 통영의 모습과 생생한 방언을 들을 수 있다. 말띠 신부에서 신여성으로 나왔던 최지희가 이 영화에서는 대사도 많이 없지만 몸짓과 눈빛으로만 용란을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 정말 일어나서 박수쳐주고 싶다. 영화는 비극에 대해서 이런 대사를 하면서 끝이 난다

.

 

보세요, 저기, 저 물 푸는 노파를 보십시오. 저 노파가 물 푸는 고요 귀신을 타고 바가지를 내던져 버릴 수가 있을까요. 물을 푸야죠. 안 푸면 배는 가라앉고 생명은 죽는 것입니다. 인간이 사는 곳에 어디 비극이 없는 곳이 있을까요. 미칠 것만 같은 슬픔과 괴로움을 삼키며 극복을 했을 때 비로소 인간은 비극을 짓밟고 살 수가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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