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휴일’이라는 이 영화는 1956년도 영화다. 영화가 시작하고 내레이션이 나온다. 내레이션과 배우가 말을 주고받는 영화 작법으로 시작하여,
서울의 거리가 왜 이렇게 한산할까, 이상야릇한 노릇이군, 어허 이건 무슨 일일까.라며 내레이션이 나오다가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서울의
휴일이라면서 영화는 포문을 연다
.
50년대의 영화는 60년대의 영화와는 또 달라서 목소리 톤이 거의 이북 사투리에 가깝다. 개인적으로
오래된 한국 영화를 여러 편 본 편이라 지난 배우들의 얼굴을 꽤 알고 있지만 50년대 영화 속 배우들의 모습은 생소하다
.
이 영화의 줄거리는 신문사 사회부 기자와 뷔너스 산부인과 의사인 부부, 노능걸(기자는 휴일이 따로
없다)과 양미희가 서로 바빠서 둘 만의 시간을 갖지 못하다가 모처럼 둘 만이 시간이 되는 서울의 휴일에 같이 보내려다가 남편 노능걸이 전화 한
통을 받고 부인인 양미희에게 한 시간만 기다리라며 나가서 후암동 살인 사건에 휘말려 쫓기면서 부인에게 돌아오는 시간을 못 지키고 양미희는
친구들의 말과 신문사에 전화를 해도 오늘 안 나왔다는 말을 듣고 남편은 바람을 핀다고 의심을 하고, 남편은 취재를 갔다가 살인범과 격투 끝에
검거하고, 다른 곳에서 살인범의 아내가 출산을 하는 것을 도와준 양미희는 그곳에서 남편을 만나고 남편을 이해 하게 된다. 이 영화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의 서울의 신 세대, 신 여성과 신 남성인 부부의 이야기다
.
이 영화에는 서스펜스, 미스터리, 휴먼, 가족애, 불륜, 정신질환, 배신, 리벤지 모든 것을 영화
속에서 녹아내려고 했고 그리고 잘 했다. 영화는 무엇보다 세련됐다
.
이 영화 ‘서울의 휴일’은 ‘로마의 휴일’의 스타일을 잘 따라 하고 있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신여성의
모습인 양미희의 헤어스타일은 오드리 헵번을 따라 했고 입고 있는 세련된 양장 스타일 역시 그렇다
.
영화 속에서는 대화 역시 신시대에 맞게끔 영어를 섞어가며 하고 대사는 소설처럼 화려한 문체를
구사한다. 희한한 운명의 희롱이로군 짓밟힌 인생과 생명의 탄생. 같은 대사가 이 영화 속에는 널려 있다. 그리고 영화 시작 초반 두 사람의
대화는 이렇다
.
우리 둘만의 시간을 가져본 적 있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엔조이 하고 있는 거잖소.
석 달 만에 우리 둘만의 시간인데 당신은 너무 에고이스트에요.
요즘의 여성들은 애정의 진리를 통 모르는군.
이러다가 오늘 플랜이 다 틀어지고 말 거예요.
그렇게 빈정만 대시면 전 동무들하고 놀러 갈 테니까 그렇게 아세효
.
친구들을 동무들이라 칭하는 것도, 말끝이 올라가는 이북 사투리에 요, 가 효,처럼
들린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당시에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의 동경이 되는 생활과 배경, 그리고 건물과 술을 영상
속에 가득 집어넣었다. 당시에는 아주 세련되게 만든 영화다
.
양미희 뒤로 보이는 건물은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인 반도 호텔이다. 계단이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이
보인다. 집 안 내부의 모습도 지금 우리집 보다 좋다. 거실과 침실도 크고 벽지도 세련됐다. 분명 로마의 휴일이나 그레이스 캘리가 나오는 영화의
배경을 답습했다. 당시에는 엄청난 돈을 들여 영화 속 세트를 만들었던 것이다. 창문의 커튼과 책장의 모습도 세련됐다. 다른 장면을 보면 책장
속의 책은 아주 오래된 것이다
.
신문을 보면 한글보다는 한문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50년대에는 한글보다 한문으로 글을 읽는 것이
어쩌면 더 수월했을 것이다
.
이 영화 이전에는 시도하지 않았던 키스 장면도 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소설책을 읽는 듯 흘러가다가
두 사람은 포개져서 키스를 한다. 아마 극장 밖에 이런 장면을 볼 수 없기에 사람들은, 즉 서울에 있는 사람들은(지방에는 극장도 없었을뿐더러
있다 해도 상영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기를 쓰고 보러 가지 않았을까
.
산부인과의 모습도 세련됐다. 의사 가운을 입은 주인공 양미희의 모습이다
.
후암동 살인사건의 제보를 받는 모습이다. 전화기의 모습을 보면 세트에 맞추기 위해 소품을 구하려
고생을 한 듯 보인다. 외국에서 들여왔거나 그랬을 것이다. 뒤의 페치카의 모습도 좋다
.
서울의 당시 시내 모습도 볼 수 있는데 당시 사람들은 구경도 해보지 못할 최초의 자동차가 이 영화
속에는 오드리 헵번의 로마의 휴일만큼이나 많이 나온다
이 장면은 꽤 쇼킹한 장면이었다. 양미희의 회상 부분인데 한강에서 보트를 타는 장면을 회상하는
장면인데 이렇게 영상으로 옮겨놨다. 수영복의 모습 역시 당시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 속의 배우들이 입던 세련된 수영복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수영복이 있다는 것조차 당시 사람들은 몰랐을 테니까
.
60년대의 로맨스 빠빠나 서울의 지붕 밑 같은, 이 영화보다 더 후에 만들어진 영화 속에도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이 대부분인데 이 영화에서는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맥주도 아마 최초로 등장하지 않았나 싶다. 크라운 맥주로 여성은 맥주를
마실 때 새끼손가락을 든다
.
당시에는 없었을, 빨대로 주스를 마시는 모습도 나온다. 이 한 장면으로 이 영화가 미술적으로 얼마나
세련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테이블 보의 문형부터, 뒤로 보이는 건물과 신여성들도 보이는 옷들 역시 한껏 세련됐다. 이 장면에 두 명의 신 여성이
등장하는데 대화는 남편들을 까는 내용인데 바람을 피우는 남자를 난봉쟁이라 일컫는다
.
남편의 회사 동료들과 어울리는 장면이다. 남편의 동료들도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양미희를 데리고 기분을 풀어 주려고 맥주를 마시러 간다. 이런 장면은 요즘은 흔한 장면이나 봉건 제도가 강했던 50년대에서는 틀을 깨는
장면이다. 여자 혼자 남자 셋과 어울려 술을 마신다는 건 사실 요즘도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
굉장히 세련된 장면으로, 야외의 테라스에서 맥주를, 남녀가 마주 보며 맥주 잔을 부딪힌다. 역시 뒤로
반도호텔의 모습이 보인다
.
맥주를 마시기 전 남편의 친구들과 골프를 친다. 내기 골프에서 양미희가 져서 맥주를 마시러 가는
것이다. 사실 골프보다는 크로케에 가깝다. 공을 좁은 곳에서 이리저리 굴려 홀에 집어넣는다
.
캡처한 장면 되로 보이는 지붕에 서울시청의 모습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집어넣을 수 있는 한국의,
서울의 세련된 배경은 다 넣었다
.
이 장면에서 아주 멋진 대사가 나온다. 남편 친구들은 양미희에게 왜 술잔을 부딪히는지 아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대사가 나온다.
말할 수도 없이 우리의 미각을 만족시키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만은 이 황금색 액체는 우리의
시각도 만족시키고 이렇게 시원한 것이 제법 촉각도 만족시키죠. 야릇한 향기는 후각도 만족시킵니다만은 다만 한 가지 모자라는 청각은 요렇게 해서
사람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거랍니다.
이 이상 맥주 잔의 부딪힘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
이 영화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저 높은 동경의 대상이라 재미도 있지만 기록성을 지니는 아주 귀한 영화가
아닐까. 사람들은 로마의 휴일은 기억하지만 이렇게 좋은 한국 영화는 전혀 모르니까. 참고로 컬러로 된 복원 판도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