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호철이는 상처받았다. 몸과 마음에 전부 상처를 입었다. 매일 상처를 받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우리 학교와 중학교 사이의 하천으로 흐르는데 호철이는 걷다가 하천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하천에는 오리도 몇 마리 있었다. 하천은 그렇게 넓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하천도 아니었다.               


 나는 꿈에서 이 하천에서 남자가 빠져 죽어 있는 모습을 봐. 엎드린 채 일어나지 않아. 남자는 밤새도록 그렇게 있었나 봐.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 그런 소리가 들렸지. 엎드린 채 등이 부풀어 올라 그렇게 죽었나 봐. 그런 꿈을 꿔.라고 호철이가 말했다. 서늘하고 건조한 말투였다. 호철이 같지 않았다. 그날은 그렇게 호철이와 헤어졌다. 토요일이었다. 내가 호철이 집까지 바래다준다고 했지만 호철이는 애써 거절했다. 일요일에 호철이 집에 전화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를 여러 번 했지만, 신호음만 가고 호철이와 연결되지 않았다.                    

 화학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은 호철이는 고물상에서 이런저런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기름이나 약품을 많이 알고 있었다. 고물상에는 쥐들이 많이 나왔는데 지난번 호철이가 나에게 자신이 만든 약물로 쥐를 죽이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약품이 쥐의 몸속으로 들어가서 쥐가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호철이는 나에게 보여주었다. 쥐가 잠시 괴로워하는 것 같았지만 서서히 움직이면 둔해졌다. 그리고 쥐의 등이 부풀어 올랐다.         


 만약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약품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 있다고 호철이가 말했다. 그러나 호철이는 그 약품을 쥐를 잡는 데 사용할 뿐이었다. 그마저도 쥐를 잡는 약품이나 쥐약이 있어서 사용하지 않았다. 호철이는 모든 수업 시간에 공허하게 보냈어도 화학 시간만큼은 눈이 말똥말똥했다. 나는 점심을 먹고 도서관에 간다고 하고 호철이 집으로 갔다. 고물상이 보였다. 고물상은 문이 닫혀 있었다. 일요일이니까 고물상도 쉬는 날이다. 나는 문틈으로 호철아! 호철아! 크게 불렀다. 고물상 근처에는 집들이 없었다.    


 주택지는 고물상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아무리 크게 불러도 호철이는 나오지 않았다. 내가 소리를 질러 근처 개들이 크게 짖었다. 틈으로 고물상 안을 보았다. 고물상은 마치 더 이상 반응이 없는 시체 같았다. 잘 보이지 않아서 틈으로 억지로 머리를 밀어 넣어서 안을 보았다. 저기 보이는 버스는 그냥 고장 나고 고물인 버스로만 보였고, 그 안에 생활할 수 있는 침구류 같은 물품도 보이지 않았다. 잘 보이지 않아서 없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문을 두드렸다.          


 그때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어떤 작업복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었다. 야성 기업이라는 로고가 붙어 있는 작업복이었다. 40대로 보이는 아저씨였다. 너 누구야? 누군데 여기 출입 금지인데 들어와서 누굴 찾아?라고 했다. 고물상에 친구가 사는데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저씨는 나를 훑어보더니 빨리 가라고 했다. 나는 친구를 봐야 한다고 했다. 아저씨는 여기 고물상 자리는 철거지역이라 누구도 들어와서 살면 안 된다면서, 또 누구도 살지 않는다면서 여기는 위험하니 빨리 나가라고 했다.         


 이상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렇다면 하루 만에 이사했단 말인가. 아니지, 며칠 동안 이사를 준비해서 갔을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른다. 내일 호철이가 학교에 오면 물어보자. 괜찮은지 어떤지. 나는 도서관으로 가려다가 도서관에 가봐야 잠만 잘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학교로 갔다.      


 평일에 학교로 가는 길을 일요일에 걸으니 이상하지만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평일에 보던 풍경도 일요일에 보니 달랐다. 뭐가 다르냐고 물어도 딱히 대답할 길은 없었다. 문방구도 문을 다 닫았고 교복을 입고 다니는 학생들도 보이지 않았다. 방방도 철수한 상태였다. 같은 거리인데 요일에 따라서 풍경이 달라졌다. 나는 방방이 있던 자리에 서서 방방을 타던 호철이를 떠올렸다. 그리고 우리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근데 하천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경찰차도 몇 대 보였다. 나는 그곳으로 갔다. 지금 막 휀스를 치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서 무슨 일인지 봤다. 하천에 누군가 엎드려 있었다. 얼굴이 하천에 박힌 채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시체였다. 나는 시체를 처음 봤다. 서서 5분 정도 지났는데도 시체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당연하다, 시체니까. 하지만 얼굴을 물이 고인 하천에 박고 죽었다는 게 너무나 기묘한 모습이었다. 나는 저 남자가 누구인지 안다. 저 옷도, 키도. 내가 아는 사람과 같다. 시체는 등이 부풀어 있었다. 경찰이 나에게 돌아가라고 했다.                


 호철이는 월요일에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이제 나도 친구가 한 명도 없다. 호철이는 점점 아이들에게서 잊혔다. 영어 선생님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호철이는 생각하면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 방방, 컵라면과 도넛, 고물상 등.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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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하지만 호철이는 버스에서 생활하지 않고 밖에 있는 컨테이너에서 생활했다. 훨씬 크고 좋은 방이었지만 뭔가 아쉬웠다. 호철이의 방에는 재미있는,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았다. 전자기기와 각종 부품 그리고 영화에서나 보던 철제로 된 무기 같은 것들이 가득 있었다. 호철이는 냄비에 있는 짜장을 데워서 밥 위에 올려 주었다. 우리는 그걸 맛있게 먹으면서 놀았다. 천국이었다. 호철이는 친구를 부르는 건 처음이니 나에게 이것저것 먹을 것들을 내주었다. 하지만 호철이가 대부분 먹어 치웠다.             


 호철이는 사실 그렇게 많이 먹지도 않았다. 물론 나보다는 많이 먹었지만, 라면도 두 개 정도 먹으면 배불러했다. 라면 두 개 정도는 나도 가끔 끓여 먹었다. 라면은 졸이듯이 끓여서 먹는 걸 좋아해서 호철이와 나는 토요일에는 같이 라면을 끓여서 먹곤 했다. 호철이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마시멜로라고 부르는 선생님 중 가장 미운 사람은 영어 선생님이었다. 영어 선생님은 완벽하게 학벌주의, 성적 위주로 학생들을 대우했다.               

 그러니까 호철이와 나는 영어 선생님이 대우해 주는 학생에 속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영어 성적이 제일 낮았기 때문이다. 영어 선생님은 억양을 몹시 중요하게 생각했다. 억양을 왜 그렇게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한국말이라면 억양 때문에 소통이 안 된다거나 하는 일이 없다. 영어는 억양이 이상하면 대화가 안 되는 것일까? 분명 그런 것도 아닐 텐데 선생님은 억양에 모든 수업을 할애했다.               


 억양이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면 영어 선생님은 매를 들었다. 수업 시간 내내 억양만 가르쳤다. 그는 늘 드럼 채를 들고 다녔다. 그걸로 칠판을 탕탕 두드려가며 억양을 강조했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때도 드럼 채를 사용했다. 영어 시간에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호철이가 해 오지 않았다. 숙제는 아침에 반장이 전부 거둬간다. 호철이만 숙제를 내지 않고 있다가 재빠르게 날치기로 작성해서 제출했다.       

        

 억양을 표시해서 제출하는 게 숙제다. 호철이는 바빠서 억양을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표시해서 냈는데 영어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들어오자마자 호철이를 불러냈다. 바로 옷소매를 걷고 나서 드럼 채로 머리를, 정수리부터 뒤통수까지 드럼을 치듯 때렸다. 호철이가 아파서 아야 아야 하는 소리를 냈을 때는 영어 선생님은 때리다가 더 화가 났는지 드럼 채를 마구 휘둘렀다.  

                            

 숙제를 지 마음대로 해와! 라며 소리를 지르더니 드럼 채로 등을 때리고 허벅지를 난도질했다. 호철이는 손으로 허벅지를 막다가 손가락도 맞았다. 호철이는 아파서 고통스러워했다. 영어 선생님은 그런 호철이의 모습에 더 화가 났다. 그따위로 숙제하니 영어 성적이 바닥을 기는 거야! 집에서 그렇게 가리키디! 라며 부모님까지 들먹이며 드럼 채를 마구 휘둘렀다. 영어 선생님은 자기가 때리다가 자기 분에 못 이겨 드럼 채를 격렬하게 휘둘렀다. 그때 복도를 지나가던 미술 선생님이 들어와서 말렸다.     

          

 진정 좀 하시라고, 하지만 이미 폭주 기관차가 된 영어 선생님은 멈추질 못했다. 미술 선생님은 뛰쳐나가고 반 아이들은 가만히 얼음처럼 있었다. 호철이는 맞다가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책상이 끼이이익 앞으로 밀려갔다. 그 소리에 영어 선생님이 나를 획 쳐다보았다. 드럼 채로 나를 가리키며 무서운 얼굴을 했다. 다시 쓰러진 호철이를 때리려는데 미술 선생님이 담임을 데리고 왔다.             


 호철이는 양호실에 누워 있었다. 우리는 늘 맞았지만 호철이는 이번에 충격이 컸다. 그렇게 말을 많이 하던 친구였는데 내가 양호실에 있어도 그저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누워 있는 것도 고통스러워 보였다. 도대체 선생님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호철이를 심하게 때린 걸까. 억양표시를 잘못했다고 해서 그렇게 학생을 구타할 수 있는 일일까. 애들 말을 들어보니 호철이는 영어 선생님에게 일 학년 때에도 많이 맞았다고 했다.               

 호철이는 몸에 멍이 들어도 집에 이야기하지 않았다. 고물상 하시는 부모님에게 걱정 끼치기 싫었고 또 학교에 부모님이 오는 것도 싫었다. 학교에 부모님들이 오면 대부분 촌지나 선물을 선생님에게 줬기 때문이다. 그걸 영어 선생님이 알고 있는 것 같다고 아이들이 그랬다. 호철이는 부모님에게 맞아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생이면 학생을 마음대로 폭행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이렇게 호철이를 개 패듯이 때릴 수 있을까. 그날 호철이가 양호실에서 나올 때까지 늦게까지 기다렸다. 호철이는 애써 웃음을 보였지만 매우 힘들어 보였다. 나는 호철이에게 택시를 타고 갈래?라고 물었다. 하지만 호철이는 걸어가기를 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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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3까지 흥행을 했던 트루 디택티브가 5년 만에 감독과 주연이 바뀐 채 돌아왔다.

형사 추리물로서는 듀엣 형사의 기분 좋은 수사물이 강세였던 지상파 세계에 경종을 울리듯 HBO에서 작정하고 퇴폐적이고, 어둡고 깔려있는 듯한 느낌의 수사물을 선보였다.

이후 킬링이나 어둡고 피폐함이 가득한 다크 한 수사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수사물인데 초자연적 존재가 범죄의 중심에 있고 그 사건을 쫓는 형사물은 단연 HBO가 최고였다.

케이트 윈슬렛이 할머니 형사로 나오는 메어 오브 이스트 타운 같은 형사물은 보는 내내 푸우우욱 빠져서 보게 되었다. 한마을의 어느 집 찻잔 세트까지 몇 개가 있다는 것까지 알 정도로 정밀하고 세밀해서 놀랐다.

이 시리즈, 트루 디텍티브 4 역시 이전의 1, 2, 3과는 다른 메어 오브 이스트 타운의 분위기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오컬트적인 부분이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더 좋았다.

겨울겨울한 알래스카의 한마을에서 연구를 하던 연구진들이 몽땅 사라졌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근데 마을의 누가 죽은 남편이 초자연 존재로 나타나 사라진 연구진들의 위치를 알려준다.

호수에 얽힌 채 무엇에 놀란 듯한 모습으로 얼어 죽어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기괴하고 괴괴하다. 옮기려 얼음을 자르는데 팔이 잘려나가는 순간 얼어 죽었던 사람이 고통에 찬 소리를 지른다.

조디 포스터는 범인을 어떻게 찾을까. 기존 시리즈 팬들은 별로라고 할 수 있는 이번 시리즈는 인디언, 관습, 인종차별에 오컬트 요소가 섞여 있다.

어둡고 찝찝하고 시리고 추운 분위기를 죽 끌고 간다. 과거의 아픔이 있는 조디 포스터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트루 디텍티브 4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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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집에서 학교까지 꽤 떨어진 거리를 걷는 시간이 좋았다. 집과 학교 사이에는 여러 학교가 있었고, 문방구를 몇 곳이나 지나쳐야 했는데 문방구를 구경하거나 그 앞의 풍경들이 재미있었다. 들판도 지나쳐야 했고, 도로와 한창 짓는 집들을 지나쳤다. 모든 풍경이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집에 가는 길 사이사이에는 돈을 빼앗는 불량배들이 매복하고 있었다. 돈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버티다 보면 어김없이 폭력이 이루어졌다. 나는 돈을 도시락통에 숨기기도 했고, 양말 바닥에 숨기기도 했다. 그래봐야 코 묻은 돈이었다. 그때의 등하굣길 풍경은 잠이 들면 가끔 나타났다. 꿈에서도 이상하지만 아주 평온하고 고요했다. 보통 꿈은 요란하고 무섭거나 이상했다. 그러나 중학교 때의 등하굣길의 꿈은 고요하기만 했다. 나는 그 거리를 계속 걷기만 한다. 어떠한 사건이나 이벤트가 일어나지 않는 꿈이다.               


 나는 중학교 때 학교 매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는 걸 좋아했다. 매점 표 도넛이 있는데 컵라면이 익어갈 때까지 도넛을 먹고 있으면 그렇게 맛있었다. 겉면에 묻은 설탕과 기름이 위장에 들어가서 니글니글할 때 컵라면 국물을 한 모금 마셔서 니글거림을 내려준다. 일 학년 때 친구와 함께 먹다가 여름방학이 지나고 나서 친구는 학원 때문에 일찍 집으로 갔다. 나는 집까지 걸어야 하니 매점에서 컵라면과 도넛을 먹었다. 단짠단짠의 맛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터득하게 된다. 소변을 보는 것처럼.    

           

 각 학교 안에서도 주먹을 휘두르는 폭력서클 같은 부가 있었다. 우리 학교는 레슬링부가 그랬다. 덩치도 크고 머리도 빡빡 밀고 레슬링부 아이들은 꽤 무서웠다. 레슬링부 아이들에게 걸리면 뼈도 못 추렸다. 레슬링부는 학교 아이들의 돈을 빼앗기도 했다. 암암리에 행해지고 있었고 선생님들도 알아서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레슬링부 아이들에게 반항하거나 버티면 학교 뒤 산에 끌려가서 맞기도 했다.    

           

 토요일에는 자율학습을 했다. 나는 창가에 앉아서 두 시의 데이트를 선생님 몰래 들었다. 아버지가 작은 포켓 라디오를 사주었다. 이어폰으로 한쪽 귀에만 꽂아서 라디오를 들었다. 그 시간이 나에게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집중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팝을 들을 수 있었다. 가요보다는 팝을 좋아했다. 다른 이유보다 가사를 모르니까 내용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내가 상상하고픈 것만 음악을 들으며 상상하면 된다. 그냥 책만 펴놓고 잠을 자거나 라디오를 들으면 된다. 아이들은 중간고사 때문에 열심히 공부했다. 공책에 열심히 적어가며, 책에 줄을 그어가며 공부했다.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왜 이런 식으로 공부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선생님들이 그렇게 하라고 하니까 했다. 무조건 외우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에는 이런 식으로 공부하지 않았는데 중학교는 전부 외워야 한다. 나와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성적은 나오지 않았다. 전부 외우라고 하는데 외우는 게 나는 잘되지 않았다. 심지어 미술도 외우는 수업뿐이었다. 미술 시간에 그림을 그리거나 뭔가 만들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미술가를 외우고, 그 미술가가 살았던 시대를 외우고, 뭐든 외워야 했다. 이상했다. 노래 가사는 잘 외워지는데 수업 시간에 공부한 것들은 아무리 붙들고 있어도 외워지지 않았다. 성적은 점점 바닥으로 추락했다. 선생님들은 성적 위주로 차별을 했기 때문에 나는 먼지 취급을 받았다. 그렇다고 그걸 싫어하지는 않았다.               


 토요일 오후 자율학습이 끝나고 매점에서 컵라면과 도넛을 하나 사 먹고 가려고 했다. 오후 세 시 정도였고 출출했다. 매점에는 학생들이 없어서 공허했다. 매점 아줌마에게 도넛과 컵라면을 사서 물을 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레슬링부 일 학년 두 명이 들어왔다. 레슬링부 일 학년들은 늘 배가 고프다. 레슬링부에서 잡다한 심부름과 일은 다 해야 한다. 그래서 평범한 학생들의 돈을 뜯어내는 것도 일 학년의 몫이었다. 나를 보더니 레슬링부 아이들이 와서 나에게 조용하게, 있는 돈을 다 달라고 했다.   

            

 매점 아줌마 몰래 말을 한다고 아이들은 한껏 긴장한 채 읊조렸다. 나는 돈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돈이 없었다. 무엇보다 무서웠다. 덩치가 큰 한 녀석이 십 원에 한 대, 라고 말했다. 뒤져서 돈이 나오면 십 원에 한 대를 쳐서 때린다는 거였다. 이백 원이 나오면 스무 대를 맞아야 한다. 녀석들은 그렇게 할 녀석들이었다. 나는 너무 겁이 나고 떨리는 목소리로, 없다고 했다. 컵라면이고 뭐고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슬링부 아이들은 매점 아줌마 몰래 나를 협박했고 나는 겁이 너무 났다.    

           

 그때 누군가 매점 안으로 들어왔다. 같은 일 학년으로 다른 반 녀석이었다. 레슬링부만큼 덩치가 있었지만, 그냥 살이 찐 녀석으로 매점에 들어와서 대충 눈치를 보더니 알아챘다는 듯 매점 아줌마에게 뭔가 이야기를 하며 컵라면을 샀다. 매점 아줌마가 안에서 나와 레슬링부 녀석들의 귀를 꽉 잡고 학생들 돈 뺏는다며 레슬링부 선생님에게 데리고 갔다. 레슬링부 선생님이 가장 싫어하는 게 힘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거였다. 녀석들은 잘못했다며 아줌마에게 귀를 잡혀 아야야 하며 끌려갔다.         

      

 아줌마에게 신고해준 학생의 이름은 호철이었다. 그 계기로 친하게 되었다. 우리는 2학년에 같은 반이 되었다. 호철이는 나와 성적도 비슷했다. 중학교 때에는 성적이 비슷한 아이들끼리 친하게 지냈다. 호철이는 2학년에 같은 반이 되고 나서 같이 걸어서 집으로 왔다. 호철이네 집은 우리 집보다 훨씬 멀었지만, 버스를 타지 않고 나와 함께 하굣길을 걸었다.        

       

 살 빼야 하거든, 라고 호철이는 말했지만 걸어가면서 중간중간 문방구에서 불량식품을 자주 사 먹었다. 호철이 별명은 마시멜로다. 고스트버스터즈 1편에 나오는 스테이 퍼프트 마시멜로맨을 호철이는 닮았다. 그러나 찐빵 괴물로 호철이는 불렸다. 호철이는 그런 것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았다. 호철이를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선생님들도 호철이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역시 호철이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2학년이 된 후 호철이와 집으로 오는 길은 재미있는 것들로 넘쳐났다. 나 혼자였다면 라디오나 들으며 왔을 테지만 호털이와 올 때면 이야기하면서, 놀면서 오기 때문에 먼 거리가 가깝게 느껴졌다. 봄이 지나 사월에는 우리 학교와 여중 사이에 방방이 생겼다. 방방에 올라타서 뛰는 아이들은 대부분 남자아이였다. 중학생이 대체로 많았다. 학교 근처니까. 호철이가 올라타려고 하면 주인이 못 타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몸무게가 너무 많이 나간다는 말이다. 주인이 호철이를 타게 해주는 날이 있었는데 그때는 다른 아이들이 방방을 같이 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면 내가 같이 방방을 탔다. 나는 방방이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다. 너무 고된 점프만 반복하는 것이다. 그래도 호철이와 타면 재미있었다. 호철이가 떨어질 때 그 반동으로 나는 좀 놓게 공중부유를 할 수 있었다.               


 호철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는 수업도 열심히 듣고, 자율학습 시간에 책에 줄을 그어가며 공부했지만, 성적은 바닥이었다. 공부라는 게 하면 느는 건 줄 알았는데 나에게는 해당하지 않았다. 호철이네는 고물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호철이는 신기한 것들을 많이 들고 다녔다. 호신용이라는데 그걸 사용한 적은 없다고 했다. 대신에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한 번은 사용할 거라고 했다.         

      

 하루는 돌아오는 토요일에 일찍 마치면 우리 집에 안 갈래?라고 호철이가 말했다. 야호! 정말? 호철이는 친구를 한 번도 집으로 데리고 간 적이 없다고 했다. 내가 처음으로 초대를 받은 것이다. 최초다. 뭐든 최초는 의미가 있다. 호철이네 집은 정말 멋졌다.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멋진 집은 처음이었다. 호철이네 집은 고물상 한 편에 세워진 대형버스가 집이었다. 버스 안에는 없는 게 없었다. 침대와 주방, 거실에 샤워실까지 그리고 거실에서는 고물상 전경이 다 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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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정중하고 진중하게 조금씩,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다. 마치 지구를 덮치는 대재앙처럼 멈추지 않고 온다.

크리스마스 하면 역시 오래전 영화들이다. 게 중에 크리스마스에 병맛쪼꼬미들의 인간사냥 영화 그램린 1, 2가 있다.

중국 잡화상에게서 들여온 지정할 수 없는 귀여움을 장착한 생명체 기즈모는 햇빛을 보면 안 되고, 물이 묻어도 안 되고, 자정이 지나 음식을 먹이면 안 된다. 그러나 영화에서 금기시 되는 건 반드시 하라는 것이다.

기즈모의 몸에 물이 묻고 기즈모의 몸에서 돌기가 솟아나서 여러 다른 그램린을 만들어 내는데 기즈모에게서 나온 그램린들은 아주 고약하고 무섭고 개판이다.

1편은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작은 마을에서 난리피우는 이야기고 2편은 뉴욕 도심지에서 일어나는 소동극이다.

책받침 여신이라 불리는 피비 케이츠가 나오는 것으로도 유명한 영화다. 2편에서는 뉴욕 거대 빌딩 안에서 인간들을 점령한 후 크리스마스에 맞춰 뉴욕 뉴욕을 부른다. 아주 인상적이다. 1편에서 으캬캬캬칵 하는 악마 그램린을 엄마가 믹서기에 넣고 돌려 버리는 장면이 굿이다.

1편이 84년에 만들어졌는데 당시 인기가 엄청나서 제작비 14배를 벌어들였다고 한다. 그래픽이 없기 때문에 스타일이 다 다른 그램린들을 전부 하나하나 다 만들어서 촬영을 했다.

각본을 쓴 크리스 콜롬버스가 후에 나홀로 집에를 연출한다. 기획을 맡은 사람이 스필버그이며 감독은 죠스와 피라냐를 연출한 죠 단테 감독이다.

당시 스톱모션으로 영혼을 갈아 넣어서 현실과 이질감이 나지 않게 연출을 했다. 12세 관람이라 어린이들이 봐도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어린이 들이 보면 조금 무섭지 않을까 싶다가고 요즘 어린이들은 또 흥! 할 수 있는 그램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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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4-11-26 1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나중에 아기랑 같이 보고 싶네요...^^

교관 2024-11-27 11:20   좋아요 0 | URL
다시 봐도 재미있었어요 ㅎㅎ 마치 만화를 보는 것 같은

잉크냄새 2024-11-26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램린 하면 피비 케이츠죠!!
소피 마르소, 브룩 쉴즈와 함께 책받침 3대 여신...

교관 2024-11-27 11:21   좋아요 0 | URL
피비 케이츠 노래도 불렀던데 좋더라구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