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일 킬로미터 정도 되는 도로에는 신호등이 하나만 있다. 원래는 없었는데 중간에 노인복지센터가 생긴 이후 신호등이 생겼다. 그러니 신호대기 하면서 노인이 건널목을 건너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인간은 누구나 노인이 된다. 그것은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불변의 진리다.
그러나 노인이 되기 전에 자신이 노인이 된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노인이 되는 건 서서히 오는 것 같지만 어느 날 갑자기 노인이 되어 있다. 노인이 되기 전에는 노인이 되는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노인이 된 후에도 인정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나도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 노인이라고 해서 노인이라는 교집합에 한데 묶을 수 없는 노인들도 요즘은 많다. 고령화 시대에 돌입해서 노인이 되어서도 노인처럼 보이지 않게 자기 관리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노인이 된다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자연스러운 것에 대해서 반항하기 시작했다.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 불멸을 꿈꾸며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신비의 묘약을 만들어냈다. 묘약은 인간의 몸에 있는 단백질 배열을 청년 시절처럼 되돌려 주었다. 인간에게 병이 오는 건 전부 단백질 때문이다. 단백질이 모자라거나 넘쳐나거나 배열이 잘못되거나,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다른 곳에 자리를 잡는 단백질 때문이다.
묘약은 인간의 단백질을 완벽하게 분배해서 자리를 잡게 해 주었다. 더불어 죽음으로 향하는 시간이 길어도 너무 길었다. 인간은 불멸을 원하지만 백 년 하고 몇십 년만 더 살게 되면 상당히 깊은 우울감에 젖어 든다.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 죽기 때문이다.
다시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다. 게다가 겉모습은 젊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지만 긴긴 세월을 살다 보면 소화가 안 된다거나 먹는 음식에 따라 단백질이 배열에서 조금씩 이탈한다. 몸은 건장하더라도 정신세계가 무너지면 그 틈으로 총체적으로 균형이 깨질 수 있다. 그래서, 까지 생각하다 보니 커브 길에 들어섰다.
바로 신호등이 있다. 이곳은 사고가 자주 나는 곳이다. 사고가 나는 이유는 길고양이들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이 도로에서 길고양이가 많이 죽었다. 길고양이는 도로 건너편에서 악착같이 도로를 건너려고 했다. 특히 밤에는 자동차의 불빛보다 자신이 더 빠르다고 착각하고 건너다가 자동차에 치여 죽고 만다. 고양이를 죽인 쪽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어쩌면 고양이들도 삶이 힘들어서 포기하려고 지나가는 자동차에 몸을 던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살에 관한 책자를 많이 출간한 인문학자 마르텡 모네스티에의 ‘자살 백과’의 402페이지에는 고양이의 자살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프랑스 바닷가의 어부 집에서 공생하던 암고양이의 자살에 관한 이야기다. 다리를 저는 암고양이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주인을 따라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같이 배에 올랐는데 고양이가 물에 뛰어들었다. 물에 빠져 죽는 걸 주인이 건져서 수건으로 물을 닦아내고 볕이 드는 옆에서 털을 말리게 두었더니 다시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다.
이 도로에서 유독 고양이가 로드킬을 당하는 건 어쩌면 처지를 비관한 고양이들일지도 모른다. 고양이도 고양이 세계에서만 살아남으면 되는데 더 크고 넓은 인간 사회에서도 살아남는 게 만만찮은 일이다. 고양이는 개와 달리 항상 인간을 경계한다. 항상 느긋하게 잠자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양이는 물수제비처럼 항상 물 위를 걸어갈 수 있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늘어나면 고양이들에게도, 인간들에게도 공격받을 수 있으니까. 매일 행복하다가 한 번 불행한 게 나은 삶일까, 늘 불행하다가 한 번 행복한 게 괜찮은 삶일까.
이제 커브를 돌면 해안도로가 나온다. 그 도로에는 신호등이 없다. 15킬로미터나 되는 도로가 신호등 없이 쭉 뻗어있다. 일직선이라 아무 생각 없이 달리면 된다. 해안도로는 자동차 회사 내에 설치된 도시형 도로다. 해안도로가 생기기 이전에는 버스가 다니는 일반도로 하나밖에 없어서 출퇴근 시간이 지옥에 가까웠다.
굴지의 대기업에서 해안도로를 회사 내 부지에 만들었다. 덕분에 수출하는 자동차를 싣는 거대한 선박에 정박해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수출하려고 완성된 자동차는 도로 밑으로 지나간다. 그리고 정박해 있는 거대한 선박에 차곡차곡 들어간다. 그런 모습도 볼 수 있다.
해안도로는 평균 속력이 70킬로미터다. 처음에는 80킬로미터였다. 신호등도 없고 일직선의 도로에 3차선이다. 그런데 사고가 자주 났다. 80킬로미터인데 100킬로미터로 달리는 차들이 많았다. 사고가 나면 처참했다. 차가 막힐 리가 없는 도로가 막히면 분명 저 앞에서 사고가 난 것이다. 느릿느릿 거북이걸음으로 가다 보면 수습하는 모습을 본다.
차체가 마치 종이가 구겨진 것처럼 형편없는 모습이다. 대부분이 그렇다. 한 번은 거대한 트럭이 넘어지면서 승용차들을 덮친 사고가 있었다. 그러다가 몇 해 전에 평균 속력이 10킬로미터 줄었다. 그랬더니 사고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아주 묘한 일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