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90년대 뉴욕 배경으로 한 영화가 최고다. 대도시의 온 거리가 크리스마스트리로 장식되어 있고 어디를 가나, 길거리에도 캐럴이 흘러나왔고 눈도 내려서 몽글몽글한 크리스마스는 역시 90년대다.

34번가의 기적은 크리스마스에 딱 맞는 영화다. 그 분위기, 따뜻한 털실 같은 그 느낌이 물씬 나는 크리스마스 영화다.

크리스마스를 믿지 않는 10살의 수잔에게 최고의 선물인 가족과 집을 선물하는 산타인 크리스의 이야기. 백화점과 백화점의 경쟁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려 불타오른다.

백화점의 진가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니까 영화를 보면 크리스마스 기분이 확 올라온다. 요즘 공원에 가면 사계절의 옷차림을 다 볼 수 있는 희한한 계절이다. 반팔, 긴 티셔츠, 겨울 겉옷, 오리 털까지 보이고 대형 백화점은 이미 크리스마스 장식을 마친 곳도 있다. 그러나 길거리에 캐럴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앞으로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매년 삭막해지는 것 같은 크리스마스지만 영화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가득하다. 수잔의 엄마로 나오는 엘리자베스 퍼킨스는 고급 지게 예쁘다. 키도 크고 나이가 들어가는데도 고급 지다는 말이 어울리는 얼굴이다.

수잔의 아빠가 되는 딜란 맥더모트는 이때가 정말 리즈시절이다. 너무 잘 생겼다. 딜란하면 가장 생각나는 건 개인적으로 아호스에서 였다. 그 외에 떠오르는 영화가 없네.

무엇보다 수잔 역의 열 살의 마라 윌슨의 연기가 똑 부러졌다. 산타는 없는 거죠? 할 때에는 아니 저 어린애가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심하면,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라 윌슨은 이 영화보다는 로알드 달의 마틸다에서 마틸다 역으로 기억에 박혀있다. 너무 사랑스럽고 연기를 잘했다.

영화 속에서 마틸다를 괴롭히는 아주 못된 계부로 대니 드비토가 나온다. 마라 윌슨은 마틸다를 끝내고 공황장애에 정신질환까지 힘든 시기를 가졌는데 이유는 마틸다 촬영 당시 엄마가 암에 걸려 너무 고통스러워했는데 그걸 보면서 마틸다를 연기해야 하니까 어린 나이에 뭔가 뇌의 어느 부분이 긁혀 버린 것이다.

어린 나이에 너무 힘들어할 때 영화 속 계부였던 대니 드비토가 물심양면으로 보살피고 도와주었다. 암이 너무 심해 임종이 다가왔을 때 아직 마틸다가 나오지 않았는데 1차 편집본을 들고 대니 드비토가 가장 먼저 마라 윌슨의 엄마에게 들고 가서 보여 주었다. 당신의 딸이 이렇게 주연으로 세상의 아이들에게 용기를 줄 거야, 그러니 마라 윌슨에 대해서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마라 윌슨의 엄마는 죽음을 맞이했다.

마라 윌슨은 그 후로 공황이 심해 연기는 하지 않고 뉴욕대에 입학해서 공부에 몰두했는데 그때에도 대니 드비토가 도움을 주었고, 얼마 전에 마틸다 멤버들이 모여 그 당시를 이야기하는데 마라 윌슨에게 엄마에게 가장 먼저 영화를 보여주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현재는 서른 중반인가? 서른 초반인가? 전업 작가라는데. 34번가의 기적은 마라 윌슨의 연기와 산타를 보낸 재미, 위에서 말한 것처럼 90년대 뉴욕의 크리스마스 분위기.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건 너무나 어렵지만, 진정한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걸 믿는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신과 같은 산타도 실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고, 마지막 재판정에서는 실수가 많은 인간이라도 옳은 일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영화 ‘34번가의 기적’이었다.

이 영화는 47년도 버전, 73년도 버전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9.


 운전을 하다가 도로 한가운데 구두 한 짝이 떨어져 있으면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다. 저 신발 주인은 어쩌다가 한 짝을 잃었을까. 아니면 사고를 당했을까. 장갑이나, 수건, 옷이 떨어져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데 신발은 그런 생각에 휩싸이게 만든다.      

         

 신발 주인의 안타까운 사연이 상상이 되고 만다. 만약 한 켤레가 떨어져 있다면 오히려 그런 생각이 덜하다. 버렸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한 짝만 있다면 신발 주인이 불행한 일을 당해서 그렇게 된 것만 같다.   

            

 나는 구두를 신어본 적이 없다. 구두를 사 본 적도 없다. 지금까지 전부 운동화만 신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의 구둣발 소리가 듣기 좋았다. 구두를 신고 바닥에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나는 소리. 무척 듣게 좋은 소리였다. 내가 초등학교 때 옆집에 사는 대학생 형이 있었다. 4학년인데 구두를 신고 다녔다. 제대도 했고 영문과에 다니고 있었다.          

     

 말 그대로 나는 대학생이야, 같은 모습이었다. 서류 가방 같은 가죽으로 된 가방을 손에 들고 다녔다. 나는 그 형이 정말 멋있었다. 중학교 때 그 형에게 과외받았다. 영어다. 나는 영어 성적이 형편없었다. 그런데 과외받은 후에 신기하게도 차도가 있었다. 나는 그 얘기를 동네 친구에게 했더니 같이 친구의 어머니가 같이 과외받게 했다. 형은 답답할 법도 한데 우리에게 영어를 천천히 잘 가르쳐 주었다.       

        

 어느 일요일에는 우리를 데리고 소풍까지 갔다. 마치 초등학생이 된 기분까지 들었다. 영어 시험 성적이 나오는 날 두근거리는 기분이 과외받지 않았을 때와는 달랐다. 형은 대학교 졸업 후에 자동차 회사에 입사했고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마냥 행복한 앞날만 있을 줄 알았는데 회사 다닌 지 일 년 만에 과로사하고 말았다. 형은 항상 세상의 아름다움을 말했다.          

     

 소풍을 갔을 때도 바람을 느끼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파란 하늘을 오랫동안 쳐다보라고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보려 들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왜냐면 세상은 폭력이 난무하고 천재지변으로 사람들은 고통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한창 신혼이고 아직 애도 없었는데 피곤해서 잠들어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후에 과로사라는 결론이 났다는 말을 들었다. 형은 운동화를 신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항상 구두를 신고 멋있는 소리를 내며 걸었다. 형이 죽고 형의 집에 갔을 때 형의 신발 한 짝을 보았다. 그 뒤로 도로에 떨어진 신발 한 짝은 바닥에 뿌려진 피 같은 기분이었다.            

   

 해안도로를 달리면 늘 하늘이 막역하게 보였다. 하늘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처럼 허물 하나 없이 모든 것을 다 보여준다. 이렇게 바다처럼 펼쳐진 하늘을 보며 해안도로를 달리는 걸 좋아한다. 이 도로를 달리는 모든 차는, 차의 운전자는 그렇지 않을까 싶다. 비가 오지 않는 이상 하늘에 구름은 늘 있다. 그리고 구름은 매일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어떻게 매일 다를 수 있을까.         

      

 구름은 인간과 비슷하다. 인간도 구름처럼 같은 인간은 없다. 쌍둥이라도 둘은 다르다. 인간은 눈은 두 개, 코는 하나, 입도 하나에 귀는 두 개라는 건 같지만 그 모양새가 전부 달라서 같은 얼굴의 사람은 없다. 구름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마음 역시 구름처럼 시시때때로 변한다. 구름은 방금까지 저 모양이었지만 잠깐 생각하는 사이에 다른 모양이 된다. 인간의 마음도 그렇다. 시시각각, 시시때때로 변한다.      

         

 에이리언에서도 인간은 마지막에 감정 때문에 선택을 흩뜨려 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마음은 전부 제각각이며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시시때때로 변한다. 구름을 보면 인간의 내면을 보는 것 같다. 하늘 위에 있어서 구름에 날아가면 만져질 것 같지만 실은 구름 가까이 가면 실체가 없다. 인간의 마음도 그렇다. 실체라는 게 없다. 언젠가는 그런 인간의 마음을 빗대어서 만연한 폭력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 물론 생각일 뿐이지만.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8.


 일 킬로미터 정도 되는 도로에는 신호등이 하나만 있다. 원래는 없었는데 중간에 노인복지센터가 생긴 이후 신호등이 생겼다. 그러니 신호대기 하면서 노인이 건널목을 건너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인간은 누구나 노인이 된다. 그것은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불변의 진리다.  

             

 그러나 노인이 되기 전에 자신이 노인이 된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노인이 되는 건 서서히 오는 것 같지만 어느 날 갑자기 노인이 되어 있다. 노인이 되기 전에는 노인이 되는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노인이 된 후에도 인정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나도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 노인이라고 해서 노인이라는 교집합에 한데 묶을 수 없는 노인들도 요즘은 많다. 고령화 시대에 돌입해서 노인이 되어서도 노인처럼 보이지 않게 자기 관리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노인이 된다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자연스러운 것에 대해서 반항하기 시작했다.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 불멸을 꿈꾸며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신비의 묘약을 만들어냈다. 묘약은 인간의 몸에 있는 단백질 배열을 청년 시절처럼 되돌려 주었다. 인간에게 병이 오는 건 전부 단백질 때문이다. 단백질이 모자라거나 넘쳐나거나 배열이 잘못되거나,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다른 곳에 자리를 잡는 단백질 때문이다.       

        

 묘약은 인간의 단백질을 완벽하게 분배해서 자리를 잡게 해 주었다. 더불어 죽음으로 향하는 시간이 길어도 너무 길었다. 인간은 불멸을 원하지만 백 년 하고 몇십 년만 더 살게 되면 상당히 깊은 우울감에 젖어 든다.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 죽기 때문이다.     

          

 다시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다. 게다가 겉모습은 젊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지만 긴긴 세월을 살다 보면 소화가 안 된다거나 먹는 음식에 따라 단백질이 배열에서 조금씩 이탈한다. 몸은 건장하더라도 정신세계가 무너지면 그 틈으로 총체적으로 균형이 깨질 수 있다. 그래서, 까지 생각하다 보니 커브 길에 들어섰다.          

     

 바로 신호등이 있다. 이곳은 사고가 자주 나는 곳이다. 사고가 나는 이유는 길고양이들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이 도로에서 길고양이가 많이 죽었다. 길고양이는 도로 건너편에서 악착같이 도로를 건너려고 했다. 특히 밤에는 자동차의 불빛보다 자신이 더 빠르다고 착각하고 건너다가 자동차에 치여 죽고 만다. 고양이를 죽인 쪽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어쩌면 고양이들도 삶이 힘들어서 포기하려고 지나가는 자동차에 몸을 던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살에 관한 책자를 많이 출간한 인문학자 마르텡 모네스티에의 ‘자살 백과’의 402페이지에는 고양이의 자살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프랑스 바닷가의 어부 집에서 공생하던 암고양이의 자살에 관한 이야기다. 다리를 저는 암고양이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주인을 따라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같이 배에 올랐는데 고양이가 물에 뛰어들었다. 물에 빠져 죽는 걸 주인이 건져서 수건으로 물을 닦아내고 볕이 드는 옆에서 털을 말리게 두었더니 다시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다.        

       

 이 도로에서 유독 고양이가 로드킬을 당하는 건 어쩌면 처지를 비관한 고양이들일지도 모른다. 고양이도 고양이 세계에서만 살아남으면 되는데 더 크고 넓은 인간 사회에서도 살아남는 게 만만찮은 일이다. 고양이는 개와 달리 항상 인간을 경계한다. 항상 느긋하게 잠자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양이는 물수제비처럼 항상 물 위를 걸어갈 수 있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늘어나면 고양이들에게도, 인간들에게도 공격받을 수 있으니까. 매일 행복하다가 한 번 불행한 게 나은 삶일까, 늘 불행하다가 한 번 행복한 게 괜찮은 삶일까.    

           

 이제 커브를 돌면 해안도로가 나온다. 그 도로에는 신호등이 없다. 15킬로미터나 되는 도로가 신호등 없이 쭉 뻗어있다. 일직선이라 아무 생각 없이 달리면 된다. 해안도로는 자동차 회사 내에 설치된 도시형 도로다. 해안도로가 생기기 이전에는 버스가 다니는 일반도로 하나밖에 없어서 출퇴근 시간이 지옥에 가까웠다.   

            

 굴지의 대기업에서 해안도로를 회사 내 부지에 만들었다. 덕분에 수출하는 자동차를 싣는 거대한 선박에 정박해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수출하려고 완성된 자동차는 도로 밑으로 지나간다. 그리고 정박해 있는 거대한 선박에 차곡차곡 들어간다. 그런 모습도 볼 수 있다.   

            

 해안도로는 평균 속력이 70킬로미터다. 처음에는 80킬로미터였다. 신호등도 없고 일직선의 도로에 3차선이다. 그런데 사고가 자주 났다. 80킬로미터인데 100킬로미터로 달리는 차들이 많았다. 사고가 나면 처참했다. 차가 막힐 리가 없는 도로가 막히면 분명 저 앞에서 사고가 난 것이다. 느릿느릿 거북이걸음으로 가다 보면 수습하는 모습을 본다.        

       

 차체가 마치 종이가 구겨진 것처럼 형편없는 모습이다. 대부분이 그렇다. 한 번은 거대한 트럭이 넘어지면서 승용차들을 덮친 사고가 있었다. 그러다가 몇 해 전에 평균 속력이 10킬로미터 줄었다. 그랬더니 사고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아주 묘한 일이었다.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7.


 이번에는 카세트를 바꾸었다. 림프 비즈킷이다. 테이크 룩 어라운드가 나온다. 강렬하고 또 강렬한 록 음악이다. 도로 위에서 가끔 이런 노래가 어울리기도 한다. 이 곡은 영화 미션임파서블의 주제곡이기도 하다. 미션임파서블 3편을 보면 애단 헌트는 에클린과 함께 요원들 모두가 반대했던 바티칸으로 들어가기 위해 작전을 수행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DHL 택배 회사의 트럭이 고장 난 것처럼 길을 막고 그 틈을 타 담벼락을 타고 바티칸으로 침투한다. 영화에서 길을 막아선 트럭을 향해 뒤에 멈춰 선 차들이 경적을 울리고 소리를 지른다.               

 그런데 되려 에클린이 차가 고장이 난 것이지! 내가 고장을 낸 거이냐! 차가 이런 것이 내 탓이야? 라며 오히려 소리친다. 이런 부분을 보면 그 나라의 국민성이나 도민성 같은 것을 엿볼 수 있다. 하루키의 에세이 ‘먼 북소리’에도 잘 나와 있다. 먼 북소리는 다른 하루키의 에세이에 비해 진중하다. 단추 한두 개를 풀어놓고 볕 좋은 곳에 덱체어를 깔고 누워 미소를 지어가며 읽는 다른 에세이와는 조금 다르다.       

        

 그건 아마도 하루키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노르웨이 숲’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하루키식, 하루키 만의 소설인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집필하기 위해 좁고 외로운 크레타섬, 더 안으로 기어 들어가 오들오들 떨며 집필하면서 겪은 느낌을 적은 글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로마 사람들의, 일종의 천부적인 느긋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은 재미있다. 요컨대 호텔에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도 세월아 네월아 한다든가, 우체국에서 우편 한 번 받아보려면 이러쿵저러쿵하는 일이나 로마의 빽빽한 주차 공간에 차를 밀어 넣으며 앞뒤로 차를 쿵쿵 박아도 자동차의 범퍼는 이러려고 있는 거지, 하며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일화들 말이다. 그리고 한 여성이 낑낑거리며 복잡한 주차 공간에 차를 밀어 넣으면 주위에서 재미있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휘파람을 불며 환호하고 박수를 보낸다.               


 로마 사람들의 천부적인 느긋함은 로마에 여행을 온 타국 사람들을 당황케 하기도 하고 꽤 흥미로운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도로 한복판에서 자동차가 퍼져도 그건 운전자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에 아주 당당하다. 곧 수리하는 정비차가 올 것이다, 그러니 나의 잘못이 아니니 돌아가든지 기다리든지, 여기서 말하는 ‘곧’은 몇 분 일지 몇 시간 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하루키가 80년대의 로마의 모습을 에세이에 적은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국민성이나 도민성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미션 임파서블 3편을 봐도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각 나라의 국민이 가지고 있는 국민성이나 살고 있는 지역의 도민성은 유전자처럼 사람들의 세포에 들러붙어 끈질기게 이어져 내려온다. 영화에서도 로마인이 가진 느긋함 덕분에 애단과 에클린은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트럭이 아니라면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요즘은 어떨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로에 가장 많이 다니는 차가 트럭이었다. 포터가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 반대편 차로에서 오는 차들 사이사이에 빠지지 않고 돌진해 오는 포터는 끊이지 않았다. 트럭의 용량 때문에 크고 작은, 차종은 다양하지만 아주 큰 트럭을 제외하고 통틀어 포터라고 단연 도로에 포터가 가장 많았다.               

 도로 위를 용감하게 달리는 포터를 보는 재미가 있다. 포터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형태가 있지만 실은 다양하다. 한 해에 가장 많이 팔린 자동차가 포터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택배 회사의 포터뿐 아니라 식재료를 싣거나 편의점에 식품을 넣는 차 역시 포터다. 공기구를 싣고 다니며 관급공사 현장을 오고 가는 차도 포터이며 소를 싣고 다니는 차 역시 포터다.             

  

 승용차는 사람만 실어 나르지만 포터는 실로 다양한 것들을 실어 나른다. 도로에 끊이지 않고 크고 작은 포터가 다니는데 휴일에는 그 숫자가 줄어든다. 그러니 포터가 많이 보이면 이 사회의 경제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포터가 가장 많이 팔린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구조가 빈익빈 부익부가 분명해지면서 그럴수록 포터는 더 많이 도로에 보이게 된다. 자가용보다 인기가 더 할 것 같은 포터는 가장 인기가 많은 차이며 포터가 인기가 많을수록 어쩐지 손뼉을 칠 수만은 없다.      

         

 요즘의 포터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예전의 포터는 후진하면 ‘엘리제를 위하여’가 흘러나왔다. 베토벤의 바가텔 A단조인 이 곡은 일명 ‘엘리제를 위하여’로 알려졌고 포터가 후진하면 가장 유명한 부분인 라라라 라라 라라라 하는 음이 나왔다. 포터 열 대가 한 번에 후진을 죽 하면 ‘엘리제를 위하여’가 단체로 나올 것이다. 멋있을 것 같다. 포터들이 달리 보일 것이다. 엘리제를 위하여, 을 집중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들으면 아주 좋은 곡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면 포터는 참으로 우아한 자동차일지도 모른다.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6.


 신호에 늘 걸리지만 출근길은 언제나 한가하다. 대부분이 출근하는 시간이 지난 후에 출근하기 때문이다. 이제 앞으로 죽 뻗은 1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를 달리면 된다. 이 도로는 양옆으로 벚나무가 심겨 있어서 봄이 되면 도로가 아름답게 변한다. 경남지역이라 이른 벚꽃이 피었다가 빨리 진다. 4월이 오기 전에 바람이 불어 벚꽃이 흩날리는 모습을 매년 본다.    

      

 도로를 벚꽃이 수놓는다. 언젠가 천천히 이 도로를 걸으며 봄날을 만끽해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적은 없었다.          


 사람들은 봄을 좋아한다. 겨울의 두꺼운 옷을 벗어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겨울옷 안으로 꽁꽁 숨겨 두었던 물오른 살도 드러나기에 마냥 봄이 좋다고만 할 수는 없다. 양가감정을 느끼는 계절이다.       

   

 봄은 생동하는 계절이라지만 나는 봄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사계절이 뚜렷해서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좋다고들 한다. 정수라의 노래 중에서도 ‘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볼수록 정이 드는 산과 들’라는 가사도 있다. 사계절이 있어서 우리는 복 받은 나라에 살고 있다는 말을 사람들은 왕왕한다.          


 하지만 나는 늘 이런 사계절이 있어서 정말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정확하게는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진정 복 받은 것이 맞나 하는 의문을 가진다. 사계절이 뚜렷하면 정말 살기 좋은 나라가 맞는 것일까.          


 나는 여름이 아주 좋다. 그래서 여름만 일 년 내내 있는 나라가 부럽다. 반바지 하나만으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춥다고 난리 떨면서 패딩을 꺼내서 입을 필요도 없다. 여름에는 기온이 30도까지 올라간다. 겨울에는 추운 곳은 기온이 영하 30도까지 떨어진다. 이렇게 기온 차가 심하게 나는 곳이 과연 살기가 좋은 곳일까.          

 겨울에 한파만 오면 얼어 죽는 사람이 생겨난다. 여름에 폭염에도 사람이 죽는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추워서, 더워서 죽는 사람이 매년 생기고 증가한다니 그건 어떻게 봐도 이상하다.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파가 오니 주의하세요,라는 뉴스가 뜨면 공무원들부터 잠도 자지 못하는 비상근무다.      

    

 도시에 눈이 쌓이면 심각한 상황이 된다. 교통난에, 자동차 사고에, 동파에, 낙성 사고까지, 겨울이니까 두꺼운 옷을 꺼내 입어야 한다. 도대체 옷장에 옷이 얼마나 들어있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작년까지 잘 입던, 그 비싸게 주고 산 롱패딩은 유행이 지나서 숏패딩을 사달라고 자식들은 조른다. 난방을 해야 하지만 가스비와 전기세는 지속적으로 오를 뿐이다. 전기가 한전에서 만들어 낸다고 생각했지만, 한전은 대기업이나 개개인이나 중소기업에서 만든 전기를 사들여 공급한다. 오래전에 국가에서 바카라 원전에 투자했는데 그때 한전이 중간에서 보증을 서서 조 단위를 돈을 빌렸다. 그 돈을 현재 달라고 한다. 하지만 국가의 수장은 여러 번 바뀌었고 한전은 돈이 없다. 그러다 보면 전기세를 올릴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안 되면 검은 머리 외국인이 들어와서 한전을 나누어서 민영화를 시킨다. 미국화되는 것이다. 민영화가 되어서 여러 개로 전기회사 쪼개지면 어느 시간대 전기가 가격이 싼 회사 전기를 알아봐야 하는 수고를 겪게 된다. 그러다 보면 중간에 전기회사를 선택해 주는 또 다른 회사가 생겨난다. 정전되면 지금처럼 빠르고 편리하게 대처하지는 않는다. 하루 이틀 걸린다는 말을 듣는 게 당연시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옛날처럼 혹독한 추위가 몰아쳐도 영차영차 하며 그냥저냥 넘어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게 되어 간다.          


 여름에는 장마 기간에 늘 흘러넘치는 하수구는 어김없이 그 자리에 또 흘러넘친다. 온열질환 역시 매년 속출한다. 그렇다고 은행이나 건물을 예전처럼 아주 시원하게 해 놓고 있을 수도 없다. 전기세 폭탄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폭우에 시장 상인들이 전부 물 폭탄을 맞아서 모든 것이 다 떠내려가고 잠기기라도 하면 어디서 어떻게 보내야 할지 깜깜하기만 하다.      

    

 마찬가지로 겨울의 폭설에 불이라도 전통시장에 나서 전부 홀라당 타버리고 나면 어디에서 손을 대야 하는지 너무나 깜깜하다. 그곳에서 지내던 사람들은 추운 곳에 그저 내몰리게 된다. 추위 때문에 얼굴이 벌겋게 된 상태로 한없이 기다리고만 있어야 한다. 손과 발이 얼마나 시리고 추울까. 여름에도 물 폭탄으로 모든 것이 떠내려간 사람들은 에어컨도 없는 곳에서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잠들어야 한다. 거기에 사람들은 전통시장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동정 어린 시선보다 오히려 잘 됐다고 비난한다.     

     

 하나의 계절만 있다면 열심히 그 계절에만 맞는 피해복구를 하고 경계하고 재발 방지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겨울에 살기 좋다고 말하는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한 것 같다. 겨울에는 크리스마스와 눈이 있어서 낭만적이라고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크리스마스 같지 않기만 하다. 초등학생 때에는 학교에 가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잔뜩 느끼며 좋았다.          


 교실을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몄다. 초등학생 때에는 학교에 가면 재미있었고 좋았는데 요즘은 학교도 전부 힘들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얼마 없어서 기본적으로 우울하고 춥다. 게다가 교사와 학생들의 경계가 허물어져서 장점도 있지만 단점이 더욱 두드러지는 시대가 되었다.      

    

 예전부터 여름만 있는 나라에 가서 살고 싶었다. 더운 건 견딜 수 있다. 하지만 추운 건 참을 수가 없다. 추운 건 너무 싫다. 지금까지 여름에 더우면 더울수록 밖에서 조깅을 하면서 땀을 있는 대로 흘린다. 그러면서 태양의 빛을 받는다. 그러고 나서 샤워하고 나면 어지간한 더위는 그렇게 덥게 느껴지지 않는다. 에어컨 바람보다 선풍기 바람만으로도 여름을 보내고 있다. 천재적인 미친 박사가 나타나서 “나는 기후를 바꾸는 연구를 하고 있어! 이제 막바지에 와서 우리나라 사계절을 없애고 여름만 있는 나라로 만들겠다”라고 선언한다면 나는 대환영이다. 대통령에 출마한다면 한 표 찍어 주겠다. 사람들에게 혼나겠지만 말이다.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