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뎅탕과 오뎅국


차이가 뭘까. 오뎅탕과 오뎅국의 차이는 글자에만 있는 것일까. 사실 오뎅탕과 오뎅국의 차이는 크게 없다. 술집에서 안주로 먹으면 오뎅탕이고 집에서 밥으로 먹으면 오뎅국 정도가 아닐까 싶다. 오뎅이 땡기는 계절이다.


날이 쌀쌀해지면 오뎅을 찾게 되고 오뎅을 먹으면 어린 시절의 겨울이 떠오른다. 고개를 들어 진열장 위의 아버지 사진을 보면 아버지와 함께 어린 시절에 살던 마당이 있던 집이 생각난다. 겨울에는 추웠지만 따뜻한 기억. 물론 난방이 지금처럼 잘 되지 않았지만 따뜻하게 겨울을 보낸 추억만 가득하다.


겨울방학이 오기 전까지 국민학교 점심시간에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기다리는 그 시간도 행복했다. 겨울방학은 보통 12월 24일에 했는데, 12월이 되면 교실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했다. 주렁주렁 지금 보면 촌스럽겠지만 아이들이 교실의 여기저기에 장식을 달고 교실 가장자리에 트리를 만들었다. 트리는 학교에서 교실마다 제공해 주었다. 6학년 내내 그랬던 건 아니었다. 1학년에 입학을 했을 때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2학년이 되었을 때는 다른 학교에 다녔다. 전학은 아니었고 이동이었다. 


대체로 집에서 가까운 곳에 배정을 해주었다. 그러나 2학년 때의 국민학교도 꽤나 걸어가야 했다. 9살 인생은 그렇게 따분함이 없기 때문에 학교에 걸어가는 길이 재미있었다. 겨울이 오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을 때 장식을 했는데 그때 트리를 장식하는 담당이 나였는데 장식을 하다가 산타할아버지모형의 집개를 슬쩍 들고 집으로 와 버렸다. 조마조마 떨리면서도 짜릿했다.


3학년부터는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 3학년에서 6학년까지의 겨울이 가장 생각이 많이 나고 아버지와의 추억이 가장 많은 시기였다. 한 동네에서 죽 자랐고, 한 동네의 여러 집으로 이사를 다녔다. 3학년에 이사를 간 집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주인집이었다. 엄마는 주인집과 친하게 지냈다. 주인집 할머니는 여고에서 매점을 했다. 여고도 집에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한 버는 동생과 함께 여고에 놀러 갔을 때 매점 안에 들어가서 여고생 누나들에게 과자를 팔았다. 재미있었다. 


그 여고가 있던 자리를 매일 조깅을 하면서 돌아온다. 여고는 다른 곳으로 옮겼고 그 자리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여고는 영화 클래식에 나오는 학교처럼 소나무가 많고 정원이 예쁘게 가꿔진 학교였다. 담벼락이 있고 담벼락 바깥쪽에는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담벼락은 겨울에는 스산했는데 여름에는 무섭게 느껴졌다. 국민학생 때라 단순하게 공포영화 포스터가 여름에 많이 붙었기 때문이다.


겨울이면 담벼락 맞은편에 붕어빵 포장마차가 들어섰다. 포장마차는 핫도그도 팔고, 붕어빵도 팔고, 떡볶이도 팔고 오뎅도 팔았다. 이 정도면 이 작은 동네에서 중소기업이었다. 핫도그 하나에 오뎅국물이 최고의 조합이었다. 핫도그에는 설탕과 케첩을 듬뿍 뿌리는 게 맛있다. 하지만 주인아줌마는 설탕은 잔뜩 묻혔는데 케첩은 듬뿍 뿌려주지는 않았다. 겨울의 칼바람이 차단된 포장마차 안에서 오뎅을 먹는 맛은 정말 좋았다.


그 길의 끝에는 동네 목욕탕이 있었다. 목욕탕 하면 아버지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에는 목욕탕에 혼자 못 가니까 늘 아버지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 목욕탕을 갔다. 아버지가 일찍 퇴근하고 오시는 토요일 저녁은 목욕탕에 가는 날이었다. 그런데 기억을 아무리 기억을 떠 올려도 겨울의 목욕탕 기억 밖에 없다. 아버지와 여름에도, 봄에도, 가을에도 목욕탕을 갔을 텐데 겨울에 목욕을 하고 밖에 나와서 찬 공기를 맞으며 입김을 후후 불었던 기억. 그리고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슈퍼에서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사 주었다. 집으로 와서 저녁을 먹고 그걸 동생과 함께 먹었다. 투게더를 먹기 위해 저녁을 대충대충 빨리 먹었다.


그 동네는 작년에 완벽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그전까지는 조깅을 하면서 그 동네로 둘러 오면서 몇 년을 지켜보았다. 마을 사람들이 생활을 하다가 점차 떠나가고 철거 페인트가 칠해지고 전부 철거되더니 벌판이었다가 현재는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다. 동네에 딸린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 꿈도 가끔씩 꿨지만 근래에는 전혀 꾸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동네에는 두 군데의 목욕탕이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가던 목욕탕은 꿈에 나타나지 않지만 혼자서 가끔 가던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 꿈은 얼마 전까지 잠이 들면 꿈속에 나왔다. 


동네의 풍경도 꿈에 지도처럼 나타났다. 하지만 꿈이라 목욕을 하는데 옷이 잘 벗겨지지 않아서 옷을 입은 채 목욕탕에 들어가거나, 아직 반도 씻지 않았는데 목욕탕 청소를 하면서 나가라고 하거나, 목욕탕에는 들어갔지만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동안 꿈이 다 지나가버렸다. 꿈이라서 현실처럼 목욕탕에서 몸을 담그고 때를 미는 건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꿈이란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참으로 묘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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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 밖의 빛이 막 산란하는 게

휴일이의 노래 속 같네

광모의 사진도 떠오르고

우리의 사랑은 부서지기 쉽고

사랑이 깨지는 소리는 겁이나고

그래도 넌 내 꿈이야


검정치마 에브리띵 https://youtu.be/Aq_gsctWHtQ?si=jjhf09uQI0Lr3WLn


사진가 광모의 작품들




제목이 ‘별을 쫓는 아이들’라는 사진은 나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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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샘학원 밑에는 화성오락실이 있었다. 화성 오락실은 꽤 커서 학원에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우르르 오락실로 들어갔다. 화성 오락실에 가면 아무리 빨리 나와도 한 시간은 넘게 있었다. 그만큼 재미있었다. 좋아하는 게임을 위해 앉아서 하는 사람의 게임을 보면서 뒤에서 기다리는 것도 재미있었다. 화성오락실은 다운타운에 있었다. 동네 오락실과는 달랐다. 따지고 보면 좀 크다는 것 빼고는, 그래서 오락기가 많다는 것 빼고는 특별할 것도 없는데 동네 오락실처럼 어린이들이 없고 학생들만 가득해서 그런지 화성오락실은 우리의 단골 오락실이었다. 


오락이라는 게 지기 위한 게임이다. 오락을 해서 이길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오락기에 동전을 밀어 넣는 걸 멈추지 않았다. 동전을 밀어 넣는 순간 오락기와 나 사이의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눈에 드러나지 않는, 기묘한 흐름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리고 스타트와 동시에 항상 진다는 생각은 저 멀리 달아나 버리고 이겨야 한다는 의지로 불타게 된다. 내 생각과는 분명 다르게 흘러가는 세계라는 걸 알면서도 외면하는 건 쉽지 않다. 내 쪽에서 죽어야 오락실의 게임이 끝이 나기 때문에 절대 이길 수 없다. 아주 간단한 이치지만 나는 오락에 빠져서 게임에서 승리의 목표 속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인간의 인생이란 반드시 이기기 위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지기 위해서 오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사이에서 어떻게 지는가 하는 방식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확정 지을 수도 있다. 지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도전을 하고 실패를 맛보는 것, 그건 어쩌면 인간은 태어났지만 죽는 것을 알고 있어도 하루를 열심히 견디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알게 모르게 오락을 하는 동안 조금씩 실력이 늘어간다. 그리고 동전을 넣는 횟수도 점차적으로 줄어든다. 게임에서 지고 나면 허탈해하고 친구와 함께 고개를 숙이고 집으로 오지만 다음 날이면 어제보다 나은 회차를 넘기리라는 동기부여가 된다. 그래서 기대를 안고 화성 오락실의 문을 당당하게 연다.


우리 인생은 너무나 약하여 금방 부서지는 장난감 같다고 어느 드라마에서 그랬다. 여러 번 이겨도 한 번 지면 모든 것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나는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지만 그런 일은 예고 없이 어느 순간 닥쳐온다.


힘이 들지만 그럴 때마다 주머니의 동전을 꺼내서 오락기에 집어넣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무너지기 전까지 그동안 쌓아놓은 개개인의 비교할 수 없는 금자탑이 있어서 다시 하면 된다. 오늘은 누구에게나 처음이라 힘들어서 질 수 있지만, 내일이 되어 다시 오늘을 맞이하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한 발 나아가 있는 하루가 된다. 인생이란 꼭 이기기 위해 치열하기보다는 덜 지기 위해 일상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쌓여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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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 되면 담배냄새가 좋아진다. 나는 담배도 피우지 않지만 11월의 담배냄새는 나쁘지 않아. 11월의 담배냄새는 시월과는 다르고 유월과도 다르다.


가을을 지나 겨울의 초입이 되면 담배냄새에 냉소가 가득해지는 것 같아. 이른 오전에 세탁소 앞에서 스팀연기와 함께 세탁소 주인이 피우는 담배 냄새가 슬슬 좋아져.


엑토플라즘처럼 위로위로 올라가는 푸른 담배연기는 마치 바슐라르가 말하는 촛불의 욕망일지도 몰라.


담배냄새에는 일종의 불협화음이 있는데 11월이 되면 그 불협화음에 동참하는 기분이 들어. 11월이 되면 담배냄새가 좋아져. 자연스럽게 시가렛 애프터 섹스의 노래가 떠오르지.


나는 어째서 담배를 피우지 못할까. 담배를 피울 수 있다면 11월에 내가 피우는 담배냄새를 맡으며 괜찮은 하루를 보낼 수 있을 텐데. 담배를 아주 맛있게 피우는 친구가 있었지. 특히 겨울에 담배를 피울 때면 그 녀석 입에서 굉장한 양의 연기가 나왔거든. 


특히 가로등 밑에서 담배를 피우면 못생겼지만 그렇게 그 녀석이 멋지게 보였지. 따라 하고파서 담배를 억지로 피우면 나는 먹은 것들을 전부 토하고 말았지. 만취해서 토하는 건 괴로워도 받아들일 수 있지만 정신이 살아있는데 토하는 건 세상 괴로운 일이라는 걸 알았어. 거의 죽음 직전이었어. 


담배는 그야말로 가까이 있지만 너무나 먼 기호였던 거지. 나에게는 말이야. 겨울의 담배냄새가 그렇게 나쁘지 않게 느낀 건 그때부터였을지도 몰라. 친구는 고민에 휩싸인 영화 속 주인공처럼 술을 한 잔 마시고 가로등에 기대어 담배를 피웠지. 나는 그 녀석의 말을 듣기보다 그 푸르스름한 연기와 냄새에 빠져들어가고 있었어. 


담배냄새라는 건 몹시도 이상하여 흡연자들도 담배냄새는 싫어하기도 하잖아. 그런데 나는 담배도 피우지 않는데 11월의 담배냄새를 좋아하고 있어. 잘 설명은 못하겠지만 화장품냄새와 향수냄새와 함께 섞여서 나는 담배냄새는 묘한 질감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아. 좋다는 말이야. 나쁘지 않아. 모든 여성이 피우는 담배냄새가 좋은 건 아니야. 모든 계절에 나는 담배냄새가 좋은 건 아닌 것처럼 말이야. 


부러운 일상적인 모습이 여럿 있지만 식사 후에 맛있게 담배를 한 대 피우는 모습처럼 부러운 모습도 없어. 그들의 얼굴에는 어떤 안도감이 잔뜩 있잖아. 무릇 꽁초 오상순 시인의 시 하나가 생각나네. 나는 그 시가 너무 좋더라고. 


웃는 사람 따라서

웃지 못함은

고통이다

그러나

우는 사람 위하여

울지 못함은

더 큰 고통이다


11월이다. 11월이 되면 담배냄새가 좋아진다.



Cigarettes After Sex-Apocalypse https://youtu.be/5ey60YJmjQE?si=RxaH6zWPEQV2lb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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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미있다. 굿이다. 미스터리 스릴러 추리물은 스페인이 최고다. 넷플릭스가 가장 잘하는 게 이런 시리즈다. 8부작인데 눈을 뗄 수 없다. 보통 일을 하면서 영화를 보는데 이 시리즈는 한눈팔지 않고 보게 되었다.

진짜 재미있었던 인비저블 게스트를 8부작으로 보는 느낌이다. 주인공도 인비저블 게스트의 주인공이 나온다.

매 회마다 떡밥이 하나씩 풀어지며 다음 회가 당연하지만 너무 궁금해진다. 스페인 스릴러 추리물이 괜찮은 점은 촘촘한데 답답하지 않고 빠르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미드처럼 고구마가 거의 없다. 8부작이라 길지 않기 때문에 매 회가 긴장과 스릴이 넘친다. 거기에 잔인함은 기본이고 고어적인 부분과 인간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추악한 짓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무엇보다 미드나 할리우드 영화에서처럼 피씨가 없다.

미드가 언젠가부터 정치적 올바름으로 흑인, 인도인, 아랍인 등 골고루 등장시켜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인지 계속 엉망이 되는 영화가 많은데 스페인 스릴러에는 딱 그짝 사람들만 나온다.

등장인물이 많이 나오지만 전혀 헷갈리지 않는다. 매 회에 등장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자세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지루하지 않다.

줄거리는 간단하게 이야기를 할 수 없어서 패스. 예고편을 보고 대충 넘겨짚거나 드라마 정보를 보거나.

이야기는 사고로 사람을 죽인 주인공이 출소 후에 만난 아내와 새 출발을 하려는데 아내가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아내가 아니면서 온통 꼬이는 일에 휘말리는데 엄청난 일에 말려들어 범인으로 몰려 다시 감옥에 갈 판.

반전에 반전에 반전에 반전이 반전을 하는데 그게 다 설득이 된다. 도대체 원작 소설은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이 정도로 촘촘하게 이야기를 만들려면 얼마나 조사하고 얼마나 똑똑해야 할까.

곧휴는 물론이고 자극과 잔인함이 강한 장면이 꽤 있으니까 혼자서 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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